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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ny Rollins

소니 롤린스 (1930–)

윌리엄스버그 다리 위에서 홀로 연습하던 사내는 다리에서 내려온 뒤에도 배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뉴욕 출생버진아일랜드 부모이웃 콜먼 호킨스2. 비밥몽크의 리허설버드 파월과 녹음올레오·에어레긴3. 정점색소폰 콜로서스브라운의 죽음프리덤 스위트4. 다리윌리엄스버그 연습더 브리지호킨스와 재회5. 수행인도와 일본루실과 마일스톤오퍼스 40 도약6. 말년9·11 콘서트독시 레코즈국가예술훈장롤린스1930–할렘에서 자라 즉흥연주의 거인이 된 테너 색소…
무대의 여정 🧭🗺️
N미국캐나다뉴욕1930–1955, 1956–1972시카고1955–1956저먼타운1970년대–2010년대우드스톡2010년대–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영향콜먼 호킨스

    슈거힐의 이웃이자 소년 시절의 우상으로, 1963년 함께 녹음했다.

  • 스승텔로니어스 몽크

    십대의 롤린스를 리허설에 불러 화음과 침묵의 쓰임을 가르쳤다.

  • 영향찰리 파커

    1953년 함께 녹음했고, 롤린스는 그를 음악과 삶의 본보기로 삼았다.

  • 동료마일스 데이비스

    1950년대 초 롤린스를 자주 기용해 그의 자작곡을 세상에 알렸다.

  • 동료클리퍼드 브라운

    1955년 롤린스를 퀸텟에 맞았으나 이듬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 가족루실 롤린스

    아내이자 매니저, 프로듀서로 40여 년 그의 음악적 결정을 함께 내렸다.

YouTube에서 5곡 이어 듣기 ↗

I. 슈거힐의 소년 · 1930–1948 (0–18세)

(출생) 1930년 9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월터 시어도어 롤린스였다. 부모는 카리브해의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출신이었고, 아버지 월터는 미 해군에서 복무했다. 어머니 발보르그는 고향 섬의 노래를 집에서 자주 불렀는데, 롤린스는 훗날 그 가락들이 자기 음악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고 회고했다. (형제) 그는 삼 남매의 막내였다. 형 발데마르는 바이올린을, 누나 글로리아는 피아노를 배웠다. 집안은 음악 교육을 중히 여겼지만, 막내가 끌린 것은 교실의 클래식이 아니라 거리와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처음 마음을 빼앗은 것은 루이 조던의 경쾌한 알토 색소폰이었다. (호킨스) 가족은 할렘의 언덕 동네 슈거힐로 옮겼다. 그곳에는 콜먼 호킨스가 살았다. 소년 롤린스는 호킨스의 집 앞에서 기다려 서명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테너 색소폰을 처음 하나의 목소리로 세운 사람이 바로 이웃이었던 셈이다. 그는 어머니가 사 준 알토를 불다가 열여섯 살 무렵 테너로 바꿨다. (친구) 동네에는 같은 꿈을 꾸는 또래가 많았다. 알토의 재키 매클린, 피아노의 케니 드루, 드럼의 아트 테일러가 함께 자랐다. 그들은 서로의 집에서 음반을 돌려 듣고 연습했다. 무엇보다 텔로니어스 몽크가 십대의 롤린스를 자기 리허설에 불러 함께 연주하게 했다. 몽크의 낯선 화음과 침묵의 쓰임을 그는 이때 몸으로 익혔다.

II. 비밥의 막내 · 1948–1955 (18–25세)

(데뷔) 1948년 무렵부터 그는 녹음 스튜디오에 불려 다녔다. 가수 밥스 곤살레스, 트롬본의 J. J. 존슨과 녹음했고, 1949년에는 버드 파월이 팻츠 나바로와 함께 이끈 블루노트 세션에 참여했다. 열아홉 살 신인이 비밥의 정점에 선 이들 곁에서 「댄스 오브 디 인피델스」 같은 곡을 불었다. (마일스) 1951년부터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를 자주 기용했다. 1953년 1월의 세션에는 찰리 파커가 테너 색소폰을 들고 함께했다. 롤린스는 파커를 연주자이자 삶의 본보기로 여겼고, 파커가 자신에게 몸을 망치지 말라고 타일렀다고 회고했다. 몽크와도 1953년과 1954년에 프레스티지에서 함께 녹음했다. (작곡) 1954년 6월, 마일스의 세션에서 그가 쓴 「올레오」, 「에어레긴」, 「독시」가 녹음됐다. 피아노는 호레이스 실버였다. 세 곡은 곧 재즈 연주자들이 즐겨 쓰는 표준 레퍼토리가 됐다. 「에어레긴」은 나이지리아를 거꾸로 쓴 제목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그의 관심을 담았다. (시카고) 이 시기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1950년 무장 강도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열 달가량 복역했고, 훗날 그는 젊은 시절 헤로인 중독을 겪었다고 스스로 밝혔다. 1955년 그는 치료를 받은 뒤 뉴욕을 떠나 시카고에 머물며 일용 노동을 했다. 무대 대신 자신을 다시 세우는 일을 먼저 택한 것이었다.

♪올레오 (Oleo)1954 (24세)연주 Sonny Rollins (테너 색소폰) · NHØP·Alan Dawson

마일스 데이비스의 세션에서 처음 녹음된 롤린스의 자작곡이다. 스물셋의 신인이 쓴 곡이 곧 재즈의 표준 레퍼토리가 됐다.

  • 조지 거슈윈의 「아이 갓 리듬」의 코드 진행을 빌려 새 선율을 얹은 32마디 AABA 형식(리듬 체인지)이다. 같은 뼈대 위에서 비밥 연주자들이 얼마나 다른 노래를 만들어 냈는지 들어 볼 수 있다.
  • 마일스는 하몬 뮤트(트럼펫 앞에 끼우는 금속 마개)로 가늘고 쓸쓸한 소리를 내고, 롤린스의 테너는 그와 대조적으로 굵고 단단하다.
  • 솔로가 진행되는 동안 호레이스 실버의 피아노가 자주 빠지고 베이스와 드럼만 남는다. 화음 악기가 비켜서자 관악기의 선이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 1954년 6월 29일 뉴저지 해컨색의 루디 반 겔더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베이스는 퍼시 히스, 드럼은 케니 클라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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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거상의 해 · 1955–1958 (25–28세)

(합류) 1955년 말, 시카고에 공연하러 온 클리퍼드 브라운과 맥스 로치의 퀸텟이 그를 새 테너 주자로 맞았다. 브라운은 술과 약을 멀리한 단정한 연주자였고, 롤린스는 그 곁에서 회복한 몸으로 다시 무대에 섰다. (상실) 1956년 6월 22일, 그는 자기 이름으로 「색소폰 콜로서스」를 녹음했다. 나흘 뒤 브라운과 피아니스트 리치 파월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같은 밴드의 동료를 잃은 충격 속에서도 그는 로치와 함께 연주를 이어 갔고, 그해 존 콜트레인과 맞붙은 「테너 매드니스」도 남겼다. (서부) 1957년 로스앤젤레스의 컨템퍼러리 레이블에서 피아노 없이 베이스와 드럼만 거느린 「웨이 아웃 웨스트」를 녹음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뉴욕 빌리지 뱅가드에서 역시 피아노 없는 트리오로 라이브 녹음을 했다. 화음을 채워 주는 악기가 빠지자 그의 즉흥은 더 넓은 공간을 얻었다. 디지 길레스피의 「소니 사이드 업」에서 소니 스팃과 나란히 불며 실력을 겨룬 것도 이해였다. (자유) 1958년 그는 「프리덤 스위트」를 녹음하고, 음반에 짧은 글을 실었다. 미국 문화의 뿌리에 흑인의 문화가 깊이 박혀 있는데도 흑인은 박해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말 없는 기악곡에 시대에 대한 발언을 얹은 드문 시도였다. 동료들은 다저스 투수 돈 뉴컴을 닮았다며 그를 뉴크라고 불렀다.

♪색소폰 콜로서스 (Saxophone Colossus)1956 (26세)연주 「St. Thomas」 — Sonny Rollins (테너 색소폰)

클리퍼드 브라운이 세상을 떠나기 나흘 전에 녹음됐다. 회복한 연주자가 처음으로 자기 이름 아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음반이다.

  • 첫 곡 「세인트 토머스」는 버진아일랜드풍의 경쾌한 춤 리듬(칼립소)이다. 부모의 고향 섬에서 온 가락이 뉴욕 하드 밥과 만난다.
  • 「블루 세븐」에서 롤린스는 짧은 주제 동기를 버리지 않고 쪼개고 늘리고 뒤집으며 솔로 전체를 짠다. 작곡가 군터 슐러는 1958년 이를 주제를 발전시키는 즉흥연주의 본보기로 분석했다.
  • 맥스 로치의 드럼 솔로는 박자만 치지 않고 음높이가 다른 북들로 가락을 그리듯 연주한다. 「블루 세븐」에서 그 점이 잘 들린다.
  • 토미 플래너건의 피아노, 더그 왓킨스의 베이스가 함께했고, 반 겔더 스튜디오에서 하루 만에 녹음됐다.
  • 「모리타트」는 쿠르트 바일의 노래로, 훗날 「맥 더 나이프」로 더 유명해진 곡이다. 롤린스는 단순한 선율을 느긋하게 비틀며 유머를 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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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 아웃 웨스트 (Way Out West)1957 (27세)실황 Sonny Rollins (테너 색소폰) · 1973

뉴욕의 비밥 연주자가 서부극의 노래를 피아노 없는 트리오로 연주했다. 장난기와 대담함이 함께 담겼다.

  • 베이스 레이 브라운, 드럼 셸리 맨과의 트리오다. 코드를 채워 줄 피아노가 없어서 베이스가 화음의 뼈대를 혼자 짊어지고, 롤린스는 더 자유롭게 음을 고른다.
  • 「아임 언 올드 카우핸드」에서 셸리 맨은 말발굽 소리를 흉내 내듯 또각또각 리듬을 친다. 카우보이 노래를 진지하면서도 우습게 비튼다.
  • 녹음은 세 사람이 클럽 공연을 마친 뒤 새벽 3시 무렵 시작됐다고 라이너 노트는 전한다. 피곤하지만 느긋한 공기가 연주에 배어 있는 것처럼 들린다.
  • 사막에서 카우보이 모자를 쓴 롤린스의 표지 사진은 윌리엄 클랙스턴이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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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나이트 앳 더 빌리지 뱅가드 (A Night at the Village Vanguard)1957 (27세)

1957년 11월 3일 뉴욕 클럽 빌리지 뱅가드의 하루를 담았다. 피아노 없는 트리오의 실험이 무대 위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 오후 공연과 저녁 공연의 멤버가 달랐다. 대부분의 곡은 저녁의 베이스 윌버 웨어, 드럼 엘빈 존스와의 연주다.
  • 「소프틀리 애즈 인 어 모닝 선라이즈」에서 롤린스는 한 코러스(곡 형식 한 바퀴)가 끝나도 생각을 끊지 않고 다음 바퀴로 길게 이어 간다.
  • 엘빈 존스의 드럼은 박자를 지키면서도 뒤에서 끊임없이 말을 건다. 솔로이스트와 리듬 섹션이 서로 받아치는 주고받기(인터플레이)가 생생하다.
  • 루디 반 겔더가 클럽 현장에서 직접 녹음했다. 관객의 박수와 클럽의 울림이 함께 담겼다.

IV. 다리 위의 연습 · 1959–1968 (29–38세)

(은둔) 1959년 여름, 명성이 절정에 이른 때 그는 무대에서 물러났다. 자신의 연주에 만족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는 담배를 끊고 몸을 단련하며 화성 이론을 다시 공부했다. 그는 1957년에 만난 루실 피어슨과 1965년 결혼했다. 루실은 훗날 그의 매니저이자 프로듀서가 된다. (다리) 연습 장소는 로어이스트사이드 집 근처의 윌리엄스버그 다리였다. 그는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다리의 보행로로 나가 밤낮으로 불었다고 회고했다. 강 위로 지나가는 열차 소리와 바람 속에서 그는 2년 넘게 홀로 연습했다. (귀환) 1961년 말 그는 돌아왔고, 이듬해 RCA 빅터에서 「더 브리지」를 냈다. 기타의 짐 홀, 베이스의 밥 크랜쇼, 드럼의 벤 라일리가 함께했다. 크랜쇼는 이후 반세기 가까이 그의 곁에 머문 동료가 됐다. 같은 해 그는 오넷 콜먼과 함께하던 트럼페터 돈 체리를 불러 더 자유로운 형식도 시도했다. (호킨스) 1963년에는 소년 시절의 우상 콜먼 호킨스와 「소니 미츠 호크」를 녹음했다. 따뜻하고 묵직한 호킨스의 소리 옆에서 롤린스는 일부러 거칠고 비틀린 선을 그었다. 스승 세대에 대한 존경을 흉내가 아니라 대화로 표현한 셈이었다. 1966년에는 영화 「알피」의 음악을 맡았고, 임펄스에서 「이스트 브로드웨이 런 다운」을 남겼다.

♪더 브리지 (The Bridge)1962 (32세)연주 「The Bridge」 Sonny Rollins · Jim Hall (기타)

2년 넘는 다리 위의 연습 끝에 낸 복귀작이다. 제목부터 그 시간을 가리킨다.

  • 짐 홀의 기타는 피아노보다 가볍게 화음을 짚으며 롤린스의 선 둘레에 여백을 남긴다. 둘의 대화는 조용하지만 촘촘하다.
  • 타이틀곡 「더 브리지」는 매우 빠른 템포로, 은퇴 전보다 더 단단해진 호흡과 손가락을 보여 준다.
  • 빌리 홀리데이가 부른 「갓 블레스 더 차일드」를 노랫말 없이 테너로 노래한다. 가수의 노래를 악기로 옮겨 부르는 그의 화법을 들을 수 있다.
  • 베이스 밥 크랜쇼와 드럼 벤 라일리가 함께했다. 크랜쇼는 이후 수십 년간 롤린스 밴드의 기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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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미츠 호크! (Sonny Meets Hawk!)1963 (33세)

어린 시절 이웃이자 우상이던 콜먼 호킨스와 나란히 섰다. 두 세대의 테너가 정면으로 대화한다.

  • 호킨스의 소리는 넓은 비브라토(소리를 가늘게 떨게 하는 기법)가 실린 묵직한 음색이고, 롤린스는 일부러 소리를 찢거나 비틀어 대조를 만든다.
  • 「올 더 싱스 유 아」에서 두 사람이 번갈아 솔로를 이어 가는 대목을 비교해 들으면, 같은 화음 위에서 얼마나 다른 길을 고르는지 드러난다.
  • 피아노는 폴 블레이로, 전통적인 반주보다 자유로운 화음을 써서 롤린스의 실험에 길을 열어 준다.

V. 침묵과 귀환 · 1969–2000 (39–70세)

(인도) 1969년 그는 다시 무대를 떠났다. 이번에는 일본과 인도로 향했다. 인도의 아슈람에서 요가와 명상을 배웠고, 일본에서는 선불교를 접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동양 사상과 신비주의 서적을 탐독해 왔고, 음악을 자신을 닦는 수행으로 여긴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마일스톤) 1971년 돌아온 그는 이듬해 마일스톤 레이블과 계약했다. 프로듀서는 리버사이드 시절부터 인연이 있던 오린 킵뉴스였다. 「넥스트 앨범」에서 그는 소프라노 색소폰도 들었다. 이후 루실이 녹음과 공연 일정을 직접 관리하며 그의 음악적 결정을 함께 내렸다. (농장) 1970년대 초 부부는 뉴욕주 북부 저먼타운의 농장으로 옮겼다. 도시의 소음에서 떨어진 그곳에서 그는 연습실을 두고 하루 몇 시간씩 불었다. 1970~80년대의 그는 칼립소 리듬과 전자 베이스, 긴 무반주 카덴차를 섞어 무대 위에서 끝을 모르는 즉흥을 펼쳤다. 조카인 트롬본 주자 클리프턴 앤더슨도 이 시기부터 그의 밴드에 합류했다. (도약) 1986년 8월 뉴욕주 소거티스의 야외 조각 공원 오퍼스 40 공연에서, 그는 연주 중 높은 돌단에서 뛰어내렸다가 발뒤꿈치뼈가 부러졌다. 그는 바닥에 누운 채로 끝까지 불었다. 이 장면은 로버트 머그의 다큐멘터리 「색소폰 콜로서스」에 담겼다. 같은 해 그는 도쿄에서 테너 색소폰과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을 초연했다.

♪지맨 (G-Man)1986 (56세)실황 Sonny Rollins (테너 색소폰) · 1986 Opus 40

오퍼스 40 야외 공연에서 발뒤꿈치뼈가 부러진 채 연주한 그날의 기록이다.

  • 한 곡이 15분 넘게 이어진다. 롤린스는 짧은 리프(되풀이되는 짧은 가락)를 계속 다시 불러내며 청중을 끌고 간다.
  • 드럼의 마빈 스미티 스미스가 쉼 없이 북을 밀어붙이고, 전자 베이스의 그루브(몸을 흔들게 하는 반복 리듬)가 1980년대 롤린스 밴드의 결을 보여 준다.
  • 조카 클리프턴 앤더슨의 트롬본이 테너와 나란히 주제를 부른다.
  • 공연 실황은 로버트 머그의 다큐멘터리 「색소폰 콜로서스」에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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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다리 너머 · 2001–2026 (71–96세)

(재난) 2001년 9월 11일, 그는 세계무역센터에서 몇 블록 떨어진 맨해튼 아파트에 있었다.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피난한 그는 나흘 뒤 보스턴 버클리 퍼포먼스 센터의 무대에 섰다. 이 공연은 2005년 「위드아웃 어 송: 더 나인일레븐 콘서트」로 나왔고, 수록곡 「와이 워즈 아이 본」으로 그래미상을 받았다. (작별) 2004년 11월, 40여 년을 함께한 아내 루실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그녀 없이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지 망설였다고 회고했다. 2006년 그는 자기 레이블 독시 레코즈를 세웠다. 수십 년 묵은 녹음을 직접 고르고 저작권을 스스로 쥐는 길이었고, 「로드 쇼」 연작으로 무대의 녹음을 차례로 내놓았다. (훈장) 2007년 폴라 음악상, 2011년 미국 국가예술훈장과 케네디 센터 공로상을 받았다. 2012년 무렵을 끝으로 그는 공연을 멈췄다. 2020년 인터뷰에서 그는 폐 질환으로 더는 색소폰을 불 수 없게 됐다고 스스로 밝혔다. (현재) 2017년 그의 원고와 악보, 연습 노트는 뉴욕 공립도서관 숌버그 흑인문화연구센터로 옮겨졌다. 그는 뉴욕주 우드스톡에 머물며 인터뷰를 통해 명상과 공부에 대한 생각을 나눠 왔다. 2026년 현재 아흔여섯 살로, 비밥 1세대와 함께 녹음했던 이들 가운데 남은 몇 안 되는 증인이다.

♪위드아웃 어 송: 더 나인일레븐 콘서트 (Without a Song: The 9/11 Concert)2001 (71세)

9·11의 충격 나흘 뒤 보스턴 무대에서 녹음됐다. 2005년에 발매돼 그래미상을 받았다.

  • 첫 곡 「위드아웃 어 송」은 1962년 「더 브리지」에도 실렸던 곡이다. 40년 사이 그의 음색이 어떻게 깊어졌는지 비교해 볼 수 있다.
  • 「와이 워즈 아이 본」에서 그는 선율을 잘게 쪼갰다가 다시 붙이며 긴 솔로를 쌓는다. 이 솔로로 2006년 그래미 재즈 즉흥연주 부문 상을 받았다.
  • 밥 크랜쇼의 베이스와 스티븐 스콧의 피아노가 롤린스의 긴 즉흥을 차분하게 받쳐 준다.
  • 녹음은 2001년 9월 15일 버클리 퍼포먼스 센터에서 이뤄졌다. 재난 직후의 무거운 공기 속에서도 연주는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덜 알려진 이야기

(세인트토머스) 그의 대표곡 「세인트 토머스」는 버진아일랜드에 전해 오던 민요 가락에 뿌리를 두고 있다. 롤린스는 어머니가 불러 주던 노래를 바탕으로 했다고 말해 왔다. 같은 계열의 가락은 1955년 피아니스트 랜디 웨스턴이 「파이어 다운 데어」라는 제목으로 먼저 녹음한 적이 있다. 작곡자 표기만 보면 순수한 창작곡처럼 보이지만, 실은 카리브 이민 가정의 기억이 재즈로 옮겨 온 곡이다. (이웃) 윌리엄스버그 다리 위의 연습은 흔히 고독한 수행의 신화로만 이야기된다. 그러나 롤린스 자신은 같은 건물에 아기를 기다리던 이웃이 있어 소음을 내기 미안했던 것이 실제 계기였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담담하게 설명했다. 2016년 무렵에는 이 다리 이름을 그의 이름으로 바꾸자는 시민 청원이 일기도 했다. (재발매) 「프리덤 스위트」의 원판에는 흑인 박해를 지적한 롤린스의 글이 실렸다. 그런데 리버사이드가 이 음반을 다시 찍을 때 「섀도 왈츠」라는 다른 제목과 표지로 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정치적 메시지가 판매에 부담이 된다는 판단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때문에 초기 청중 가운데 상당수는 그 글을 보지 못했다. (기록) 2017년 숌버그 센터로 간 그의 자료에는 수십 년간 써 온 연습 노트와 독서 메모가 들어 있다. 화성 연습 계획과 철학 서적의 구절이 한 공책에 나란히 적혀 있어, 무대 위의 즉흥이 오랜 독학 위에 서 있었음을 보여 준다.

용어 노트 📚🔎

비밥

(말뜻) 빠른 악구를 입으로 흉내 낸 소리(밥, 리밥)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이 널리 퍼져 있다. (재즈에서) 1940년대 뉴욕에서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텔로니어스 몽크 등이 만든 재즈 양식이다. 춤추기 위한 큰 악단 음악 대신 작은 밴드가 아주 빠른 템포와 복잡한 화음 위에서 즉흥연주 실력을 겨뤘다. 체육 시간에 다 같이 하던 줄넘기를, 실력자 몇 명이 이단 뛰기와 엇갈려 뛰기로 기술을 뽐내는 시합으로 바꾼 것과 비슷하다.

하드 밥

(재즈에서) 1950년대에 비밥을 이어받아 블루스와 가스펠의 끈적하고 힘 있는 느낌을 더 많이 섞은 재즈다. 클리퍼드 브라운과 맥스 로치, 호레이스 실버, 소니 롤린스가 대표적이다. 학교 합창곡을 친구들과 부르다가 교회 성가대처럼 박수와 함성을 넣어 더 뜨겁게 부르는 것과 닮았다. (다른 데서는) 하드는 영어로 단단하다는 뜻이라, 일상에서는 힘들다는 말로 더 자주 쓴다.

즉흥연주

(말뜻) 즉흥(卽興)은 그 자리(卽)에서 일어나는 흥(興)이라는 뜻이다. 미리 짜 두지 않고 그 순간 떠오른 대로 한다는 말이다. (재즈에서) 정해진 곡의 코드 진행 위에서 연주자가 그 자리에서 새 선율을 지어 내는 것이다. 롤린스는 특히 곡의 짧은 동기를 붙잡고 끝까지 변형해 나가는 방식으로 유명하다. 친구가 던진 한 단어로 끝말잇기를 하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가는 놀이와 비슷하다. 규칙은 있지만 어떤 말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른 데서는) 연극에서는 대본 없이 즉석에서 장면을 만드는 즉흥극을 가리킨다.

코러스

(재즈에서) 곡의 형식 한 바퀴를 말한다. 32마디짜리 곡이면 그 32마디를 한 번 다 도는 것이 한 코러스다. 솔로이스트는 보통 여러 코러스를 이어서 연주한다. 운동장 트랙을 한 바퀴 도는 것과 같아서, 몇 바퀴를 달릴지는 그날의 컨디션과 분위기가 정한다. (다른 데서는) 대중가요에서는 후렴을, 일상에서는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는 합창을 뜻한다.

칼립소

(재즈에서) 카리브해의 트리니다드에서 생겨나 서인도 제도에 퍼진 춤 음악이다. 통통 튀는 리듬이 특징이다. 버진아일랜드 출신 부모를 둔 롤린스는 「세인트 토머스」처럼 칼립소 리듬을 재즈에 자주 끌어왔다. 학교 축제에서 반 친구들이 저마다 고향 음식을 하나씩 가져와 한 상에 차리는 것처럼, 그는 집안의 음악을 재즈 무대에 올렸다.

피아노 없는 트리오

(재즈에서) 관악기 하나에 베이스와 드럼만으로 이루어진 세 사람 편성이다. 보통은 피아노가 화음을 채워 주는데, 그것이 빠지면 관악기는 어떤 음을 골라도 부딪힐 걱정이 적어 더 자유로워진다. 대신 베이스와 연주자 자신이 화음의 흐름을 책임져야 한다. 보조 바퀴를 떼고 처음 자전거를 탈 때처럼, 더 멀리 갈 수 있지만 균형은 스스로 잡아야 한다.

리듬 체인지

(재즈에서) 거슈윈의 노래 「아이 갓 리듬」의 코드 진행을 빌려 쓴 곡들을 말한다. 비밥 연주자들은 이 진행 위에 새 선율을 얹어 수많은 곡을 만들었고, 롤린스의 「올레오」도 그중 하나다. 같은 반주 음원에 친구들이 저마다 다른 랩 가사를 붙이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체인지는 영어로 바꿈이라는 뜻이라, 일상에서는 잔돈이나 변화를 가리킨다.

인터플레이

(말뜻) 영어 inter(서로)와 play(연주하다, 놀다)를 합친 말로, 서로 주고받으며 논다는 뜻이다. (재즈에서) 솔로이스트와 베이스, 드럼, 피아노가 서로의 연주에 즉석에서 반응하며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드러머가 솔로이스트의 악구 끝에 맞춰 북을 치거나, 베이스가 갑자기 리듬을 바꿔 새 방향을 제안하기도 한다. 축구에서 원투 패스를 주고받으며 수비를 뚫는 것과 같다. 한 사람이 아니라 둘의 호흡이 골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