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es Davis
적게 불어 더 많이 들리게 한 트럼펫, 그리고 같은 자리에 두 번 서지 않은 사람.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마일스 듀이 데이비스 2세
치과의사이자 농장주였던 아버지로, 트럼펫을 사 주고 뉴욕 유학과 금단의 시간을 뒷받침했다.
- 스승엘우드 뷰캐넌
비브라토 없이 곧고 둥근 소리를 내라고 가르쳐 평생의 음색을 잡아 준 고교 음악 교사다.
- 영향디지 길레스피
1944년 처음 곁에서 들은 비밥 트럼펫의 본보기로, 그를 따라갈 수 없다는 깨달음이 오히려 자기만의 소리를 찾게 했다.
- 스승찰리 파커
열아홉 살의 그를 퀸텟에 세워 비밥을 무대 위에서 가르친 사람이다.
- 동료길 에번스
「쿨의 탄생」부터 「스케치스 오브 스페인」까지 함께한 편곡가이자 평생의 친구다.
- 동료존 콜트레인
첫 퀸텟과 「카인드 오브 블루」의 테너 색소폰 주자로, 촘촘한 소리로 마일스의 여백과 짝을 이뤘다.
I. 이스트세인트루이스의 소년 · 1926–1944 (0–18세)
(올턴) 1926년 5월, 미국 일리노이주 올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마일스 듀이 데이비스 2세는 치과의사였고, 어머니 클리오타 헨리 데이비스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다뤘다. 위로 누나 도로시, 아래로 남동생 버넌이 있었다. 이듬해 가족은 강 건너 이스트세인트루이스로 옮겼다. 아버지는 근교에 농장을 두고 말을 길렀을 만큼 넉넉했고, 집안에는 흑인 중산층의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그래도 인종 분리의 도시에서 차별은 피할 수 없었다. 백인에게 욕설을 들으며 쫓기던 기억을 그는 훗날 자서전에 적었다. (트럼펫) 열세 살 무렵 아버지가 트럼펫을 사 주었다. 부모의 사이는 원만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아들이 바이올린을 배우기를 바랐다고 그는 회고했다. 고교 음악 교사 엘우드 뷰캐넌은 음을 떨어 꾸미는 비브라토를 버리고 곧고 둥근 소리로 불라고 가르쳤다. 떨림을 덜어 낸 그 음색은 평생의 서명이 되었다. 동네 선배 트럼페터 클라크 테리도 그를 아끼며 이끌었다. (엑스타인) 1944년 여름, 빌리 엑스타인 악단이 세인트루이스에 왔다. 트럼페터 한 명이 앓아누워 열여덟 살 소년이 두 주가량 대신 앉았고, 그 무대에서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파커를 처음 곁에서 들었다. 악단의 가수는 사라 본이었다. 같은 해 고교 시절 연인과의 사이에 첫딸이 태어났다. 그는 파커를 따라 뉴욕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II. 52번가의 견습생 · 1944–1949 (18–23세)
(줄리아드) 1944년 가을, 아버지가 대 주는 학비와 생활비로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에 들어갔다. 낮에는 클래식 화성과 이론을 배우고, 밤에는 할렘과 52번가의 클럽을 돌며 파커를 찾았다. 마침내 그와 한방을 쓰게 되었고, 빠른 템포와 복잡한 화성 위에서 즉흥하는 비밥을 몸으로 익혔다. 학교는 1년 남짓 다니고 그만두었다. 고향에 내려가 아버지에게 직접 허락을 받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파커) 1945년 11월 파커의 사보이 녹음에 참여했고, 1947년부터는 파커 퀸텟의 고정 트럼페터가 되었다. 디지처럼 고음과 속주로 몰아칠 수는 없었다. 그는 중음역에서 음을 아끼고 사이를 비우는 쪽을 택했다. 52번가에서는 콜먼 호킨스가 그를 기용하며 격려했다. 그러나 약물에 기운 파커의 생활과 제때 나오지 않는 개런티에 지쳐 1948년 말 밴드를 떠났다. (쿨) 편곡가 길 에번스의 좁은 지하 방에는 젊은 음악가들이 모여들었다. 제리 멀리건, 존 루이스와 함께 그는 프렌치 호른과 튜바까지 넣은 9인조를 꾸려 1948년 로열 루스트 무대에 섰고, 1949년과 1950년 캐피톨에서 녹음했다. 당장의 반향은 크지 않았지만, 이 녹음들은 훗날 「쿨의 탄생」으로 묶여 한 흐름의 이름이 되었다. 백인 알토 주자 리 코니츠를 썼다고 비난받자, 잘 불기만 하면 피부색은 상관없다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파커 곁을 떠난 젊은 트럼페터가 길 에번스의 지하 방에서 찾은 다른 길이다. 속도 대신 음색과 짜임새로 말하는 재즈가 여기서 시작됐다.
- 트럼펫, 트롬본, 프렌치 호른, 튜바, 알토·바리톤 색소폰에 리듬 섹션을 더한 9인조다. 빅밴드보다 작고, 낮은 금관이 두텁게 깔려 소리가 부드럽고 그늘지게 들린다.
- 「부플리시티」는 길 에번스가 편곡했는데, 작곡자는 마일스의 어머니 이름을 딴 클레오 헨리로 올라 있다. 여러 악기가 한 덩어리처럼 움직이다가 갈라지는 짜임을 따라가 보자.
- 마일스의 솔로는 떨림(비브라토) 없이 중음역에 머물며, 비밥의 속주 대신 노래하듯 선율을 이어 간다.
- 「문 드림스」의 끝부분에서는 박자가 거의 멈추고 관악 화음이 구름처럼 떠 있다. 즉흥보다 편곡이 주인공인 순간이다.
- 1949년 1월·4월과 1950년 3월, 세 차례 캐피톨 녹음이다. 처음엔 78회전 싱글로 흩어져 나왔고, 1957년에야 한 장의 LP로 묶여 지금의 제목을 얻었다.
III. 터널과 귀환 · 1949–1955 (23–29세)
(파리) 1949년 5월 파리 재즈 페스티벌에 초청받았다. 그곳에서 그는 흑인 연주자가 아니라 예술가로 대접받았다. 장폴 사르트르 등과 어울렸고 가수 쥘리에트 그레코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인종이 다른 두 사람의 결혼이 미국에서 그녀에게 짐이 될 것을 염려해 함께 가자고 하지 못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헤로인) 돌아온 뉴욕은 달라진 것이 없었고, 그는 우울 속에서 헤로인에 빠졌다. 1950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됐다가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평판이 무너져 일이 끊겼다. 약값을 마련하려 떳떳하지 못한 일까지 했다고 그는 훗날 스스로 적었다. 프레스티지의 밥 와인스톡이 녹음 기회를 이어 준 것이 가느다란 끈이 되었다. 1953년 말 아버지의 농장으로 돌아가 방에 틀어박혀 혼자 금단을 견뎠다. 절제로 이름난 복서 슈거 레이 로빈슨이 본보기였다고 그는 말했다. (재기) 1954년 4월의 「워킨」은 블루스의 끈적함을 되살린 비밥, 곧 하드밥의 문을 연 녹음으로 꼽힌다. 주먹만 한 금속 약음기인 하몬 뮤트를 마이크에 바짝 대고 부는 소리도 이 무렵 굳어졌다. 그해 크리스마스이브에는 텔로니어스 몽크, 밀트 잭슨과 녹음했다. 1955년 7월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서 몽크의 「라운드 미드나이트」를 불자 객석이 들썩였고, 컬럼비아의 조지 아바키언이 계약을 내밀었다.
금단을 견디고 돌아온 해의 크리스마스이브, 텔로니어스 몽크와 밀트 잭슨이 함께한 녹음이다. 다시 일어선 트럼페터의 절제된 소리와 몽크의 기이한 솔로가 나란히 남았다.
- 밀트 잭슨이 쓴 F조의 12마디 블루스(열두 마디짜리 틀을 되풀이하는 형식)다. 서두르지 않는 중간 템포라 한 음 한 음의 무게가 드러난다.
- 마일스의 솔로 동안 몽크는 반주를 멈춘다. 마일스가 그렇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해지며, 그 바람에 퍼시 히스의 베이스와 케니 클라크의 드럼만 남은 넓은 공간에서 트럼펫이 울린다.
- 몽크의 솔로는 짧은 동기 하나를 비틀고 뒤집고 끊어 가며 쌓아 올린다. 쉼표까지 연주처럼 들리는 이 솔로는 재즈사의 명연으로 자주 꼽힌다.
- 두 개의 테이크가 모두 발매되었다. 같은 날 같은 사람들이 같은 곡을 어떻게 다르게 풀었는지 비교해 듣는 재미가 있다.
- 녹음 장소는 뉴저지 해컨색에 있던 루디 밴 겔더의 스튜디오다. 날짜는 1954년 12월 24일이다.
IV. 첫 퀸텟과 푸른 빛 · 1955–1963 (29–37세)
(퀸텟) 그는 존 콜트레인, 레드 갈런드, 폴 체임버스, 필리 조 존스로 첫 퀸텟을 꾸렸다. 남은 프레스티지 계약을 채우려 1956년 두 차례의 녹음에서 앨범 네 장 분량을 한꺼번에 남겼다. 컬럼비아의 선금과 인세로 그는 처음으로 제 손으로 번 돈으로 부유해졌다. 콜트레인이 아직 약물과 씨름하던 1957년 봄 그를 내보냈다가, 이듬해 다시 불러들였다. (에번스) 길 에번스와는 대편성 앨범을 이어 갔다. 1957년 「마일스 어헤드」, 1958년 「포기와 베스」, 1960년 「스케치스 오브 스페인」에서 트럼펫은 오케스트라 속의 한 목소리처럼 노래했다. 1957년 12월 파리에서는 영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화면을 보며 즉석에서 음악을 붙였다. (블루) 1959년 봄, 빌 에번스와 캐넌볼 애덜리가 더해진 6인조로 「카인드 오브 블루」를 녹음했다. 연주자들은 리허설 없이 그가 건넨 짧은 스케치만 보고 들어갔다. 그해 8월, 버드랜드 앞에서 바람을 쐬던 그는 경찰의 이동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가 곤봉에 머리를 맞고 피투성이로 연행됐다. 혐의는 결국 풀렸지만, 이 일은 인종차별에 대한 오래된 분노를 더욱 굳혔다. (프랜시스) 1959년 12월 무용수 프랜시스 테일러와 결혼했다. 그녀는 1961년 앨범 「섬데이 마이 프린스 윌 컴」의 표지에 실렸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무대를 그만두게 했고, 질투 끝에 손찌검까지 했다고 자서전에서 스스로 털어놓았다. 1962년에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뉴포트에서 그에게 컬럼비아 계약을 안겨 준 몽크의 곡을, 첫 퀸텟으로 다시 녹음한 것이다. 재기한 연주자의 첫 메이저 레이블 앨범을 여는 곡이다.
- 마일스는 하몬 뮤트(트럼펫 끝에 끼우는 금속 약음기)를 마이크에 바짝 대고 몽크의 선율을 속삭이듯 분다. 음을 거의 꾸미지 않고 길이와 쉼만으로 표정을 만든다.
- 선율이 끝나면 짧고 힘찬 팡파르가 터지고 곧바로 콜트레인의 솔로로 넘어간다. 디지 길레스피의 편곡에서 가져온 이 연결부가 느린 발라드에 극적인 굴곡을 준다.
- 폴 체임버스의 베이스와 필리 조 존스의 브러시(쇠솔로 드럼을 쓸어 내는 주법)가 낮게 깔려, 한밤의 고요한 공기 같은 바탕을 이룬다.
- 1956년 9월 10일, 뉴욕 컬럼비아 30번가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앨범 「라운드 어바웃 미드나이트」에 실렸다.
가장 많이 팔린 재즈 앨범으로 꼽히며, 짧은 스케치만 건네고 연주자들의 첫 반응을 붙잡은 녹음이다. 그해 여름 그는 이 앨범이 나온 직후 버드랜드 앞에서 경찰에게 맞았다.
- 「소 왓」은 폴 체임버스의 베이스가 질문하듯 짧은 가락을 던지고, 피아노와 관악이 두 음짜리 화음으로 대답하며 시작한다.
- 이 곡은 코드 진행 대신 음계 하나 위에서 길게 노는 연주(모달 재즈)다. D 음계로 16마디, 반음 높은 음계로 8마디, 다시 D로 8마디인 32마디 AABA 형식이다.
- 마일스의 솔로는 몇 음을 띄엄띄엄 놓으며 공간을 남기고, 이어지는 콜트레인은 음을 촘촘히 쏟아 낸다. 캐넌볼 애덜리는 블루스의 구수한 맛을 더해, 세 사람의 성격이 한 곡 안에서 선명히 갈린다.
- 「블루 인 그린」은 빌 에번스의 피아노가 문을 연다. 그는 라이너 노트에서 이 녹음을, 한 번 그은 획은 고칠 수 없는 일본 붓그림에 빗댔다.
- 1959년 3월 2일과 4월 22일, 컬럼비아 30번가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대부분의 곡이 처음 끝까지 간 테이크로 실렸고, 「프레디 프리로더」에서만 윈턴 켈리가 피아노를 맡았다.
V. 전기의 시대 · 1964–1975 (38–49세)
(퀸텟) 1964년 초 어머니를 잃었다. 같은 해 가을 웨인 쇼터가 합류하면서 허비 행콕, 론 카터, 열여덟 살 드러머 토니 윌리엄스와 함께 두 번째 퀸텟이 완성됐다. 그는 젊은 단원들에게 작곡을 맡기고, 정해진 코드 진행을 내려놓은 채 박자만 붙든 열린 연주로 나아갔다. 고관절 통증으로 1965년 수술을 받았고, 그해 프랜시스가 집을 떠났다. (록) 1968년 스물세 살의 가수 베티 메이브리와 결혼했다. 그녀는 지미 헨드릭스와 슬라이 스톤을 들려주며 그를 록과 펑크로 이끌었고, 「킬리만자로의 딸들」 표지에도 실렸다. 결혼은 이듬해 끝났지만 방향은 되돌아가지 않았다. 1969년 「인 어 사일런트 웨이」와 「비치스 브루」에서 전기 악기와 록 리듬을 끌어들였고, 프로듀서 테오 마세로가 테이프를 잘라 이어 붙여 곡을 빚었다. 1970년에는 필모어에서 록 관객 앞에 섰다. 1974년 듀크 엘링턴이 세상을 떠나자 30여 분짜리 「히 러브드 힘 매들리」로 그를 기렸다. (침묵) 1972년 교통사고로 두 발목이 부러졌다. 고관절 통증과 진통제, 코카인이 겹쳤다. 같은 해의 「온 더 코너」는 평단에서 외면받았다. 1975년 2월 오사카 실황은 「아가르타」와 「팡게아」로 남았고, 그는 여름까지 투어를 이어 가다 9월 뉴욕 센트럴파크 공연을 끝으로 무대에서 사라졌다.
어머니를 잃고 결혼이 무너지던 시기, 그는 20대와 30대 초반의 젊은 단원들에게 곡과 방향을 맡겼다. 두 번째 퀸텟이 가장 자유롭게 달린 앨범이다.
- 웨인 쇼터의 「풋프린츠」는 한 마디에 여섯 박을 세는 24마디짜리 단조 블루스다. 토니 윌리엄스의 드럼이 박을 셋씩, 둘씩 바꿔 쪼개며 출렁이는 것처럼 들린다.
- 솔로 중에는 정해진 코드 진행을 내려놓고 박자와 흐름만 유지하는 대목이 많다. 단원들이 시간은 있되 코드는 없다고 부른 방식이다.
- 허비 행콕은 화음을 꽉 채우는 대신 드문드문 찔러 넣고, 때로는 아예 빠진다. 그 빈자리로 론 카터의 베이스가 걷는 선이 또렷하게 들린다.
- 리듬 섹션은 솔로이스트의 말을 받아 즉시 세기와 밀도를 바꾼다. 다섯 명이 대화하듯 주고받는 것(인터플레이)이 이 앨범의 핵심이다.
- 1966년 10월 24일과 25일, 컬럼비아 30번가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베티 메이브리가 들려준 헨드릭스와 슬라이 스톤의 소리가 재즈의 문법과 만난 결과다. 그의 첫 골드 레코드가 되었고 재즈와 록이 섞이는 흐름(퓨전)의 문을 열었다.
- 드럼 둘, 베이스 둘(콘트라베이스와 전기 베이스), 전기 피아노 셋에 베이스 클라리넷과 전기 기타까지 겹쳐, 소리의 밀도가 이전의 어떤 마일스 음반과도 다르다.
- 곡마다 베이스의 짧은 반복 가락(리프) 하나가 오래 이어지고 그 위에 즉흥이 쌓인다. 화음을 바꾸기보다 같은 그루브(몸을 움직이게 하는 리듬의 흐름)를 깊게 파고든다.
- 마일스는 녹음 중 손짓과 몇 마디 말로 연주를 지휘했다. 악보보다 그 자리의 반응에 맡긴 긴 즉흥이 테이프에 남았다.
- 프로듀서 테오 마세로가 테이프를 잘라 이어 붙이고 일부를 되풀이해 곡의 모양을 만들었다. 타이틀곡에서 트럼펫에 걸린 메아리 효과도 녹음 뒤에 더한 것이다.
- 1969년 8월 19일부터 21일까지 뉴욕 컬럼비아 스튜디오에서 녹음해 이듬해 발매했다.
VI. 침묵 그리고 마지막 무대 · 1975–1991 (49–65세)
(칩거) 1975년부터 다섯 해 남짓 그는 뉴욕 맨해튼 집에 틀어박혀 트럼펫을 거의 잡지 않았다. 컬럼비아는 계약을 유지하며 금고 속 녹음을 꺼내 냈다. 그는 이 시기를 몸과 마음이 함께 무너진 때로 자서전에 숨김없이 적었다. 오랜 친구였던 배우 시슬리 타이슨이 그를 찾아와 약을 끊고 몸을 돌보도록 도왔다. (재기) 1981년 「더 맨 위드 더 혼」으로 돌아왔고, 그해 11월 타이슨과 결혼했다. 이듬해 뇌졸중으로 오른손이 한동안 말을 듣지 않자 그림을 그리며 재활했고, 그림은 말년의 또 다른 일이 되었다. 신디 로퍼의 「타임 애프터 타임」, 마이클 잭슨의 「휴먼 네이처」를 레퍼토리에 넣어 옛 팬들을 당황시켰다. 1985년 인세와 대우에 대한 불만 끝에 30년 몸담은 컬럼비아를 떠나 워너 브라더스로 옮겼고, 이듬해 마커스 밀러와 「투투」를 만들었다. (몽트뢰) 1988년 타이슨과 이혼했다. 이듬해 시인 퀸시 트루프와 함께 쓴 자서전을 냈다. 1991년 7월 몽트뢰에서 퀸시 존스의 지휘로, 3년 전 세상을 떠난 길 에번스의 옛 편곡을 다시 불었다.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던 그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9월 28일,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의 병원에서 뇌졸중과 폐렴, 호흡 부전으로 65세에 숨졌다. 뉴욕 브롱크스의 우들론 묘지, 듀크 엘링턴과 멀지 않은 자리에 묻혔다.
30년 몸담은 컬럼비아를 떠나 워너 브라더스에서 낸 첫 앨범이다. 뇌졸중을 딛고 돌아온 60세의 트럼페터가 가장 새로운 기계 소리 위에 섰다.
- 마커스 밀러가 베이스, 신시사이저, 드럼 머신의 대부분을 혼자 연주하고 짜 넣었다. 마일스는 완성된 반주 위에 트럼펫을 덧입혔다(오버더빙).
- 하몬 뮤트로 길게 끄는 음과 짧은 외침을 번갈아 쓰며, 빽빽한 전자음 사이에 일부러 빈 곳을 남긴다. 적게 불어 더 크게 들리게 하는 오랜 방식 그대로다.
- 제목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에 맞선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에게 바친 것이다. 평생 인종차별에 분노한 그의 태도가 제목에 담겼다.
- 프로듀서는 토미 리퓨마와 마커스 밀러였고, 마일스는 이 앨범으로 그래미상 최우수 재즈 연주(솔로이스트) 부문을 받았다.
덜 알려진 이야기
재즈사에는 가난 속에서 자란 연주자의 이야기가 많지만, 그는 반대였다. 할아버지는 아칸소에 땅을 가진 지주였고, 아버지는 치과의사이자 농장주였다. 뉴욕 시절 초기에 그는 아버지가 보내는 돈으로 살았다. 그가 거리의 말투와 거친 태도를 즐겨 내세운 탓에 이 배경은 자주 가려졌다고 전기 작가들은 짚는다. 「쿨의 탄생」에 실린 「부플리시티」의 작곡자는 클레오 헨리로 등록되어 있다. 어머니 클리오타 헨리의 이름을 빌린 가명이다. 이 이름을 왜 썼는지 그는 자세히 밝히지 않았고, 음반 크레디트만 보아서는 그것이 마일스 자신이라는 것을 알기 어려워 오랫동안 각주로만 남았다. 그의 쉰 목소리는 타고난 것이 아니었다. 1950년대 중반 성대의 혹을 떼어 내는 수술을 받은 뒤, 말을 삼가야 할 기간에 한 음반 업계 사람과 언성을 높이다 목을 상했다고 자서전에서 회고했다. 거칠게 속삭이는 그 목소리는 이후 그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실은 사고의 흔적이었다. 「카인드 오브 블루」의 첫 면 세 곡은 30여 년 동안 실제보다 조금 빠르고 높게 들렸다. 녹음 때 테이프 기계 한 대의 속도가 미세하게 어긋났던 탓인데, 1990년대 재발매 작업에서야 확인되어 바로잡혔다. 가장 많이 팔린 재즈 앨범이 정작 본래의 소리로는 오랫동안 들리지 않았던 셈이다.
용어 노트 📚🔎
비밥
(말뜻) 비밥(bebop)은 연주자들이 빠르고 툭툭 끊기는 가락을 입으로 흥얼거릴 때 내던 소리를 그대로 이름으로 삼은 말로 알려져 있다. 뜻이 있는 낱말이라기보다 소리를 흉내 낸 말에 가깝다. (재즈에서) 1940년대 뉴욕에서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등이 만든 재즈 양식이다. 춤추기 좋은 큰 악단의 음악 대신, 작은 밴드가 아주 빠른 템포로 복잡한 화음 위를 달리며 즉흥 연주 실력을 겨뤘다. 줄넘기를 한 번씩 뛰다가 이단 뛰기로 바꾸는 것처럼, 같은 노래 틀 위에 음을 훨씬 많이, 빠르게 채워 넣는다.
쿨 재즈
(말뜻) 쿨(cool)은 영어로 서늘하다, 침착하다는 뜻이다. 뜨겁게 몰아치던 비밥에 비해 차분하고 절제된 소리라서 이렇게 불렀다. (재즈에서)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에 퍼진 양식으로, 음을 떠는 비브라토를 줄이고 부드러운 음색과 짜임새 있는 편곡을 중시했다. 마일스의 9인조 녹음 「쿨의 탄생」이 그 출발점으로 꼽힌다. 운동회 응원에서 모두가 소리를 지르는 대신 낮은 목소리로 화음을 맞춰 부르면 오히려 귀가 쏠리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쿨하다는 말은 멋지다, 뒤끝이 없다는 뜻으로 쓴다.
모달 재즈
(말뜻) 모달(modal)은 선법(旋法)을 뜻하는 모드(mode)에서 왔다. 선법은 선율(旋)을 만드는 법(法), 곧 어떤 음들을 골라 쓰는지의 규칙이다. 라틴어 뿌리 modus 는 방식, 척도라는 뜻이다. (재즈에서) 코드가 몇 박마다 바뀌는 대신, 음계 하나를 오래 붙들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가락을 만들어 가는 연주 방식이다. 「카인드 오브 블루」의 「소 왓」은 열여섯 마디 동안 같은 음계에 머문다. 미술 시간에 정해진 밑그림을 따라 칠하는 대신 파란 계열 물감만 받아 마음껏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 재료는 줄었지만 그 안의 자유는 커진다. (다른 데서는) 모드는 게임에서는 쉬움·어려움 같은 놀이 방식을, 기계에서는 작동 방식을 뜻한다.
하몬 뮤트
(말뜻) 하몬(Harmon)은 이 약음기를 만든 회사 이름이고, 뮤트(mute)는 소리를 죽인다는 뜻이다. (재즈에서) 트럼펫 나팔 끝에 끼우는 금속 약음기다. 가운데 꽂힌 줄기를 빼고 쓰면 소리가 작고 가늘면서도 속삭이듯 날카로운 결이 된다. 마일스는 줄기를 뺀 하몬 뮤트를 마이크에 바짝 대고 불어 자신만의 소리를 만들었다. 시끄러운 교실에서 친구 귀에 대고 작게 속삭이면 오히려 또렷하게 전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뮤트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의 음소거 버튼을 가리킨다.
리듬 섹션
(재즈에서) 피아노, 베이스, 드럼(때로 기타)처럼 박자와 화음의 바탕을 깔아 주는 악기들의 묶음이다. 트럼펫이나 색소폰이 솔로를 할 때 뒤에서 땅을 다져 주고, 솔로이스트와 짧은 말을 주고받듯 반응하기도 한다. 축구에서 공격수가 마음껏 달릴 수 있도록 수비수와 미드필더가 받쳐 주는 것과 같다. 좋은 리듬 섹션이 있어야 솔로가 빛난다.
퓨전
(말뜻) 퓨전(fusion)은 녹여서 하나로 합친다는 뜻이다. 붓다, 녹이다라는 뜻의 라틴어 fundere 에서 왔다. (재즈에서) 1960년대 말부터 재즈에 록과 펑크의 리듬, 전기 기타와 전기 피아노를 섞은 음악을 가리킨다. 마일스의 「비치스 브루」가 그 문을 연 앨범으로 꼽힌다. 떡볶이에 치즈를 녹여 넣으면 둘 중 어느 것도 아닌 새 맛이 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장르가 섞여 새 소리가 된다. (다른 데서는) 요리에서는 여러 나라 음식을 섞은 퓨전 요리를, 과학에서는 원자핵이 합쳐지는 핵융합을 뜻한다.
코러스
(말뜻) 코러스(chorus)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함께 노래하고 춤추던 무리, 코로스(choros)에서 왔다. (재즈에서) 곡의 형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바퀴 도는 단위다. 12마디 블루스라면 12마디가 한 코러스이고, 솔로이스트가 세 코러스를 분다면 그 틀을 세 바퀴 돈다는 뜻이다. 운동장 트랙을 한 바퀴, 두 바퀴 도는 것과 같아서, 트랙 모양은 같아도 바퀴마다 달리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합창이나 노래의 후렴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