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ie Parker
찰리 파커: 「네가 살아보지 않은 것은 악기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I. 캔자스시티의 소년 · 1920–1935 (0–15세)
(캔자스시티) 1920년 8월, 미국 캔자스주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찰스 파커 시니어는 철도 식당차 웨이터이자 떠돌이 보드빌 연예인이었는데, 아들이 아직 어릴 때 집을 나갔다. 가족은 곧 강 건너 미주리주 캔자스시티로 옮겨 정착했고, 이 도시가 그의 삶과 음악의 근거지가 되었다. (어머니) 어머니 애디 파커는 야간 청소부로 일하며 외아들을 홀로 키웠다.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와도 아들을 끔찍이 아꼈고, 학교를 자주 빠지는 것도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열한 살 무렵 전당포에서 낡은 알토 색소폰을 사준 것도 어머니였다. (12번가) 당시 캔자스시티는 정치 보스 톰 펜더개스트의 비호 아래 금주법을 사실상 무시한 유흥가가 밤새 돌아가는 도시였다. 12번가와 18번가 일대 클럽에서는 카운트 베이시 악단과 테너 색소폰 주자 레스터 영의 연주가 밤새 흘러나왔고, 소년은 나이가 안 돼 들어가지 못하는 클럽 문밖에 서서 그 소리를 몰래 듣곤 했다. 학교 밴드에 잠시 몸담기도 했으나 음악은 대부분 귀로 익혔고, 레스터 영의 가볍고 유연한 음색은 훗날 그의 연주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II. 거리의 수련 · 1935–1939 (15–19세)
(자퇴) 1935년, 열다섯 살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음악에 전념하기로 했다. 지역 밴드를 전전하느라 이미 출석은 뒷전이었고, 어머니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리드 페이퍼를 살 돈이 없어 입김으로 적셔 오래 쓰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을 만큼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결혼) 1936년, 열여섯 살에 동갑내기 레베카 러핀과 결혼했다. 두 해 뒤인 1938년 아들 프랜시스 리언이 태어났다. 그러나 밤새 클럽을 전전하며 연주하는 생활과 어린 가장의 책임은 오래 양립하지 못했고, 부부는 몇 해 지나지 않아 갈라섰다. (굴욕) 10대 시절 레노 클럽 잼세션에서 드러머 조 존스가 박자를 놓친 그를 향해 심벌즈를 바닥에 내동댕이쳐 무대에서 쫓아낸 일화는 수없이 되풀이해 전해진다. 수치심에 사로잡힌 그는 그해 여름 오자크 산맥의 한 리조트 악단 일자리를 얻어 하루 몇 시간씩 스케일과 곡의 화성을 통째로 외우며 연습에 매달렸다고 회고했다. (약물) 비슷한 시기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했을 때 처방받은 진통제를 계기로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10대 후반 이미 헤로인에 의존하게 되었고, 이는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연주 경력과 건강, 주머니 사정 모두를 흔드는 그림자가 되었다.
III. 뉴욕과 비밥의 탄생 · 1939–1945 (19–25세)
(상경) 1939년 처음 뉴욕에 올라갔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할렘의 식당 지미스 치킨 섁에서 설거지를 했는데, 그 가게에서 밤마다 연주하던 피아니스트 아트 테이텀의 화성 감각을 가까이서 들으며 귀를 틔웠다고 훗날 회고했다. (돌파) 같은 해 어느 밤, 다운 월스 칠리 하우스에서 체로키를 연주하던 중 코드의 9도, 11도, 13도 같은 윗부분 음들을 멜로디로 끌어올리면 지금껏 듣지 못한 새로운 선율이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이 순간을 자신이 찾던 소리를 처음 발견한 때로 꼽았다. (민튼스) 1940년대 초 할렘의 민튼스 플레이하우스와 먼로스 업타운 하우스의 애프터아워스 잼세션에 트럼펫 주자 디지 길레스피,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멍크 같은 젊은 연주자들이 모여들었다. 밴드 리더 제이 매션의 악단에서 일하며 캔자스시티와 뉴욕을 오가던 그도 이 자리의 단골이 되었고, 길레스피와는 서로의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비밥이라는 새 어법을 함께 빚어낸 평생의 동료가 되었다. (전환) 1942년 얼 하인스 악단에, 1944년에는 빌리 엑스타인 악단에 들어가 길레스피, 가수 사라 본 등과 한솥밥을 먹으며 새 화성 언어를 큰 무대에서 다듬었다. 밤새 잼세션을 돌고 낮에는 큰 악단 리허설을 서는 고된 생활이었지만, 그 안에서 비밥의 틀이 점점 뚜렷해졌다.
체로키의 화성 위에 새 멜로디를 얹은 콘트라팩트로, 디지 길레스피가 트럼펫과 피아노를 겸해 참여한 세션에서 비밥을 세상에 알린 선언과 같은 녹음이다.
- 도입부 8마디 테마 뒤 곧장 이어지는 솔로는 체로키의 빠른 코드 진행을 거의 숨 쉴 틈 없이 타고 넘으며 시작해, 중반부 셋잇단음표로 쌓아 올리는 프레이즈에서 절정에 이른다.
- 맥스 로치의 드럼은 정박을 또박또박 짚기보다 심벌 위에서 잘게 쪼갠 리듬으로 솔로이스트를 따라붙으며 숨 가쁜 호흡을 함께한다(인터플레이).
- 머리-솔로-머리(헤드-솔로-헤드) 구성 안에서 빠른 템포에 맞춰 디지 길레스피가 피아노로 반주를 받친 점이 이례적인 편성으로 꼽힌다.
- 단 한 테이크로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질감이 오히려 그 긴장감을 그대로 담아냈다고 평가된다.
같은 세션에서 녹음된 12마디 블루스로, 복잡한 비밥 화성 속에서도 단순하고 노래하듯 하는 멜로디를 지녀 널리 사랑받았다.
- 테마 멜로디는 몇 개의 음만으로 이루어져 누구나 흥얼거릴 만큼 단순하지만, 그 위에 얹힌 즉흥연주는 정교한 코드 변형으로 가득하다.
- 솔로는 블루스 특유의 꺾인 음(블루 노트)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두 번째 코러스에서 음형을 반복하며 쌓아 올리는 대목이 특히 회자된다.
- 12마디 블루스 형식을 한 바퀴씩 돌 때마다 리듬 섹션이 같은 화성 틀을 지치지 않고 받쳐 주는 덕에 솔로이스트는 마음껏 모험할 수 있었다.
IV. 52번가의 정점 · 1945–1949 (25–29세)
(52번가) 1945년 무렵 뉴욕 52번가에 늘어선 좁은 클럽들이 비밥의 무대가 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소규모 그룹을 이끌며 어린 트럼펫 주자 마일스 데이비스, 드러머 맥스 로치 같은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했고, 1945년 사보이 레이블 세션에서 녹음한 곡들은 비밥을 하나의 양식으로 세상에 알린 기록으로 남았다. (궁핍) 명성과 달리 주머니 사정은 늘 쪼들렸다. 클럽 개런티는 낮았고 레이블과의 계약도 유리하지 않았으며, 약물 비용을 대느라 자신의 색소폰을 전당포에 맡기는 일도 거듭됐다. 악기가 없어 빌린 악기나 플라스틱 색소폰으로 무대에 오른 적도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1945년 말 길레스피의 그룹과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갔다가, 그룹이 떠난 뒤에도 홀로 남아 일거리를 찾아 헤맸다. 1946년 7월 다이얼 레이블에서 녹음한 「러버 맨」세션은 금단 증상에 시달리던 상태에서 이뤄져 흔들리고 갈라지는 음색으로 남았고, 몇 시간 뒤 묵고 있던 호텔 방에 불을 낸 끝에 체포되어 카마리요 주립병원에 반년 가까이 입원했다. (회복) 1947년 1월 퇴원한 뒤 녹음한 「릴랙싱 앳 카마리요」는 그 시절을 지나온 심경을 제목에 그대로 담았다. 이후 마일스 데이비스, 피아니스트 듀크 조던, 베이시스트 토미 포터, 드러머 맥스 로치로 꾸린 이른바 클래식 퀸텟으로 가장 왕성한 창작기를 맞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금단 증상에 시달리며 녹음한 세션으로, 흔들리는 음색과 불안정한 박자가 오히려 그가 처한 상태를 고스란히 증언한다.
- 테마를 연주하는 첫 소절부터 음정이 흔들리고 숨이 가빠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는 당시 그의 몸 상태를 가감 없이 드러낸 결과로 흔히 거론된다.
- 느린 발라드 템포 속에서 평소보다 드문드문 끊기는 프레이징이 오히려 절박한 감정을 전한다.
- 본인은 훗날 이 테이크를 부끄러워해 재발매를 반대했다고 전해지지만, 다이얼 레이블은 이를 그대로 세상에 내놓았다.
카마리요 주립병원에서 퇴원한 직후 녹음한 곡으로, 제목부터 회복의 안도감을 담았다.
- 중간 빠르기의 블루스 위에서 펼쳐지는 솔로는 「러버 맨」때와 달리 다시 또렷하고 힘 있는 음색을 되찾은 모습을 들려준다.
- 트럼펫 하워드 맥기와 주고받는 프레이즈가 서로를 가볍게 밀고 당기며 대화하듯 진행된다(인터플레이).
- 여러 테이크를 거듭 녹음한 끝에 완성됐다고 알려져 있으며, 조금씩 달라지는 테이크마다 그가 되찾아 가는 컨디션의 변화가 비교된다.
거슈윈의 발라드를 재료 삼아 원곡 멜로디를 거의 버리다시피 하고 새로운 선율을 즉흥으로 길게 풀어낸 연주로 꼽힌다.
- 테마를 암시만 한 채 곧바로 자유로운 변형으로 들어가는 솔로 도입부가 유명하며, 재즈 역사상 가장 자주 채보되고 분석된 즉흥연주 중 하나로 꼽힌다.
- 느린 템포 안에서도 쉼 없이 음을 채워 넣는 프레이징이 그의 테크닉과 호흡을 동시에 보여 준다.
- 두 개의 테이크가 남아 있어, 같은 코드 진행 위에서 전혀 다른 멜로디 선택을 들려주는 비교 감상이 가능하다.
V. 흔들리는 날들 · 1949–1954 (29–34세)
(버드랜드) 1949년 브로드웨이에 그의 별명을 딴 클럽 버드랜드가 문을 열었고, 개관 공연 무대에 섰다. 같은 해 파리 국제 재즈 페스티벌 초청으로 유럽 청중 앞에 처음 섰는데, 미국보다 인종 차별에서 자유로운 분위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가족) 무용수 챈 리처드슨과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서 함께 살았다. 정식 혼인 신고는 복잡한 이혼 절차 탓에 끝내 이뤄지지 않았지만, 서로를 부부로 여기며 챈이 전 관계에서 낳은 딸 킴을 함께 키웠고, 1951년 딸 프리, 1952년 아들 베어드가 태어났다. 킴은 훗날 재즈 보컬리스트로 활동했다. (카바레카드) 1951년 마약 소지로 체포된 뒤 뉴욕시는 그의 카바레 카드를 취소했다. 술을 파는 클럽에서 연주할 자격을 잃는다는 뜻이었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뉴욕 클럽 무대를 잃으면서 생계가 크게 흔들렸다. 이 무렵 「버드 위드 스트링스」처럼 현악 편성과 함께한 녹음으로 대중적 인기를 넓히려 애쓰기도 했다. (상실) 1954년 3월, 폐렴 합병증으로 세 살배기 딸 프리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크게 무너졌고, 그해 자살을 기도해 벨뷰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이 상실의 무게는 이후 남은 삶과 연주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현악 오케스트라를 배경으로 녹음한 「버드 위드 스트링스」시리즈의 대표곡으로, 비밥 클럽을 넘어선 대중적 인기를 겨냥한 녹음이었다.
- 현악 편곡이 감싸는 가운데 솔로는 평소보다 노래하듯 서정적인 프레이징으로 흘러가며, 본인이 가장 만족스러워한 녹음 중 하나로 꼽았다고 전해진다.
- 8마디씩 네 부분으로 된 32마디 에이비에이시(ABAC) 형식의 곡으로, 두 번째 여덟 마디(B 부분)에서 화성이 바뀌는 순간 선율의 색깔도 함께 바뀌는 대목이 들을 만하다.
- 재즈 클럽 편성과 달리 현악기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과 색소폰의 날카로운 음색이 대비를 이룬다.
자신이 직접 작곡한 32마디 곡으로, 비밥 어법이 완숙기에 이르렀을 때의 화성 감각과 멜로디 감각을 함께 보여 준다.
- 테마 멜로디 자체가 이미 정교한 화성 변화를 품고 있어, 솔로로 넘어갈 때 자연스럽게 즉흥연주의 재료가 된다.
- 빠른 템포 속에서도 프레이즈 끝을 살짝 늘이거나 당겨 긴장과 이완을 만드는 리듬 감각(스윙)이 잘 드러난다.
- 이후 세대 연주자들이 교재 삼아 가장 많이 채보하고 연습하는 곡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VI. 마지막 해 · 1954–1955 (34–35세)
(쇠약) 1954년에서 1955년 사이 그의 몸은 눈에 띄게 상해 있었다. 위궤양과 오랜 음주로 인한 간 손상, 거듭된 약물 사용이 겹쳤지만 무대에는 여전히 섰다. (버드랜드마지막) 1955년 3월 초 버드랜드에서 피아니스트 버드 파월, 베이시스트 찰스 밍거스와 함께 선 공연은 끝내 파행으로 끝났다. 파월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흐트러졌고, 그를 둘러싼 언쟁 끝에 무대를 떠났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공개 연주가 되었다. (죽음) 며칠 뒤인 1955년 3월 12일, 평소 그를 아끼던 후원자 파노니카 드 쾨니히스바터 남작부인의 뉴욕 아파트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중 숨을 거두었다. 공식 사인은 폐렴 등 복합적 원인이었고, 검시한 의사는 서른넷의 몸이 쉰 대 중반으로 보일 만큼 상해 있었다고 기록했다. (유산)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직후 뉴욕 지하철과 거리 곳곳에 버드 리브스라는 낙서가 번져 나갔다. 장례는 어머니 애디의 뜻에 따라 고향 캔자스시티에서 치러졌다. 서른넷의 짧은 생애였지만, 그가 남긴 화성과 리듬의 언어는 이후 모든 재즈 연주자가 통과해야 할 관문이 되었다.
덜 알려진 이야기
컨트리 음악을 즐겨 들었다는 것은 그를 아는 이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는 일화다. 동료 연주자들은 그가 투어 중 숙소나 차 안에서 주크박스로 컨트리·웨스턴 음악을 틀어 놓고 즐겼다고 증언했는데, 비밥의 선구자가 당시 흑인 음악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덜했던 장르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뜻밖으로 받아들여져 잘 알려지지 않은 채 남았다. 현대 클래식 작곡가들에 대한 관심도 깊었다. 스트라빈스키, 바르토크, 힌데미트의 악보를 늘 끼고 다녔고, 1950년대 초에는 작곡가 에드가르 바레즈에게 사사를 청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전해진다. 1951년 버드랜드 공연 중 객석에 스트라빈스키가 있는 것을 알아채고 그의 「불새」 첫 소절을 「코코」 즉흥연주에 슬쩍 끼워 넣었다는 일화는 여러 동료의 증언으로 남아 있다. 버드라는 별명의 유래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있다. 밴드 리더 제이 매션은, 투어 차량이 닭(야드버드)을 치자 그가 차를 세우고 그 닭을 거두어 숙소에서 요리해 먹자고 고집했던 일화를 들려주며 별명이 거기서 왔다고 회고했다. 다른 동료들의 기억은 조금씩 엇갈려, 어느 쪽이 정확한 기원인지는 지금도 분명하지 않다.
용어 노트 📚🔎
비밥
(말뜻) 비밥이라는 이름은 흔히 이 음악 특유의 끊어지는 두 음짜리 악센트 선율을 흉내 낸 의성어에서 왔다고 전해진다. (재즈에서) 1940년대 중반 뉴욕 할렘의 애프터아워스 잼세션에서 태어난 새로운 재즈 어법으로, 빠른 템포와 복잡한 화성, 불규칙한 악센트가 특징이다. 큰 악단이 정해진 편곡을 연주하던 스윙 시대와 달리, 소규모 편성이 한 사람씩 돌아가며 즉흥연주를 길게 펼치는 것이 중심이 되었다. 마치 반 친구들이 정해진 줄넘기 노래 대신 각자 리듬을 바꿔가며 즉흥으로 박자 놀이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코드 체인지
(재즈에서) 한 곡이 처음부터 끝까지 거쳐 가는 화음들의 순서를 가리키는 말이다. 연주자는 이 진행을 외워 두었다가 그 틀 안에서 즉흥연주를 펼친다. 마치 보드게임의 정해진 이동 경로 칸 같아서, 그 칸을 밟아나가는 순서는 정해져 있지만 그 위에서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전략을 쓸지는 그때그때 다른 것과 비슷하다.
콘트라팩트
(재즈에서) 이미 잘 알려진 곡의 코드 진행은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완전히 새로운 멜로디를 작곡하는 방식이다. 찰리 파커의 「코코」는 재즈 스탠더드 「체로키」의 화성을 빌려와 전혀 다른 선율을 얹은 대표적 사례다. 마치 익숙한 동요의 반주에 맞춰 전혀 새로운 노랫말과 가락을 지어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12마디 블루스
(재즈에서) 12마디를 한 바퀴로 삼아 반복되는 가장 오래되고 기본적인 재즈·블루스 형식이다. 정해진 화음의 순서가 12마디마다 한 번씩 되풀이되기 때문에 연주자들은 이 틀을 암묵적으로 공유하며 즉흥연주를 주고받을 수 있다. 운동장에서 다 같이 아는 박수 치기 구호를 한 바퀴씩 돌아가며 반복하는 놀이에 비유할 수 있다.
헤드-솔로-헤드
(재즈에서) 곡의 멜로디(헤드)를 맨 앞에서 한 번 연주하고, 그다음 연주자들이 돌아가며 그 화성 위에서 즉흥연주(솔로)를 펼친 뒤, 마지막에 다시 처음 멜로디로 돌아와 곡을 맺는 가장 흔한 재즈 연주 구성이다. 책을 읽을 때 처음에 제목을 말하고, 각자 돌아가며 자기 생각을 발표한 다음, 마지막에 다시 처음 제목으로 돌아와 마무리하는 발표 시간과 비슷하다.
카바레 카드
(재즈에서) 1940~1960년대 뉴욕시가 술을 파는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려는 음악가에게 의무적으로 발급하던 신분증이다. 체포 기록이 있으면 발급이 거부되거나 취소되었기 때문에, 카드를 잃은 음악가는 뉴욕의 주요 클럽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어 생계에 치명타를 입었다. 학교에서 한 번 규칙을 어기면 일정 기간 동아리 활동 자체를 못 하게 되는 벌칙과 비슷한 효과를 냈다.
스윙
(재즈에서) 박자를 기계처럼 정확히 나누지 않고 뒷박을 살짝 늦게, 혹은 셋잇단음표에 가깝게 밀고 당기며 쌓아 올리는 리듬의 탄력을 가리킨다. 그네를 탈 때 발을 구르는 타이밍을 아주 조금씩 밀고 당겨야 더 높이, 더 부드럽게 올라가는 느낌과 비슷하다고들 한다. (다른 데서는) 스윙은 야구나 골프에서 공을 치기 위해 팔을 크게 휘두르는 동작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