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zzy Gillespie
'내가 평생 배운 것은, 무엇을 연주하지 않을지였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제임스 길레스피
벽돌공이자 아마추어 악단장이던 아버지로, 그가 열 살 때 세상을 떠났다.
- 영향로이 엘드리지
레코드로 솔로를 외워 배운 트럼펫의 우상으로, 훗날 같은 밴드 자리를 물려받았다.
- 가족로레인 길레스피
1940년 결혼한 무용수 아내로, 평생 살림과 돈 관리를 맡았다.
- 동료찰리 파커
캔자스시티에서 처음 만나 함께 비밥을 벼려 나간 평생의 음악적 동반자였다.
- 동료콜먼 호킨스
그가 쓴 「우디'n 유」를 1944년 자신의 세션에서 처음 레코드에 담아 준 선배였다.
- 동료차노 포소
쿠바 리듬을 함께 접목시킨 콩가 연주자로, 1948년 세상을 떠나 짧은 협업으로 끝났다.
I. 체로의 소년 · 1917–1935 (0–18세)
(체로) 1917년 10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체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존 벅스 길레스피였다. 아버지 제임스 길레스피는 벽돌공으로 일하면서 주말이면 동네 아마추어 악단을 이끌었고, 집 안에는 피아노와 몇 가지 악기가 늘 놓여 있었다. 아홉 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 형과 누나들 사이에서 자랐고, 집에 있는 악기들을 하나씩 만져 보며 유년기를 보냈다. (아버지) 그가 열 살이 되던 192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집안의 생계는 어머니 로티 길레스피가 떠맡았고, 가족은 가난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는 훗날 자서전에서 아버지가 매를 들던 엄격한 사람이었다고 돌이켰지만, 동시에 자신을 음악 가까이 두게 해 준 사람이기도 했다고 적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음악은 가난한 소년이 손에 쥘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탈출구가 되었다. (로린버그) 트롬본을 먼저 배우다 트럼펫으로 옮겨 탄 것은 중학교 무렵이었다. 1933년 노스캐롤라이나주 로린버그 인스티튜트에 장학생으로 들어가 음악 교육을 받았지만, 졸업을 코앞에 두고 1935년 학교를 그만두었다. 집안이 필라델피아로 이사하면서, 그도 가족을 따라 도시로 나가 트럼펫 하나로 생계를 꾸릴 길을 찾아야 했다.
II. 필라델피아에서 뉴욕까지 · 1935–1939 (18–22세)
(필라델피아) 필라델피아에서 지역 밴드를 전전하며 트럼펫 솜씨를 키웠다. 당시 가장 좋아한 연주자는 로이 엘드리지였고, 라디오와 레코드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솔로를 통째로 외워 똑같이 불어 보는 것이 공부였다. 엘드리지의 화려하고 빠른 프레이징은 그가 평생 추구한 트럼펫 어법의 밑바탕이 되었다. (디지) 무대 안팎에서 짓는 익살과 즉흥적인 장난기 때문에 동료들은 그를 '디지(엉뚱하다는 뜻)'라 부르기 시작했다. 본명 대신 이 별명이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엄격한 음악 교육을 받은 진지한 연주자였지만, 동시에 무대에서 웃음을 끌어내는 광대 같은 면모를 즐겼고, 이 두 모습은 이후 경력 내내 공존했다. (뉴욕) 1937년 뉴욕으로 올라와 테디 힐 악단에 들어갔는데, 공석이 된 트럼펫 자리는 다름 아닌 로이 엘드리지가 떠난 자리였다. 같은 해 악단과 함께 영국과 프랑스를 도는 유럽 순회를 경험했다. 우상의 자리를 이어받았다는 사실은 그에게 자부심과 동시에 넘어서야 할 무게로 다가왔다.
III. 캡 캘러웨이와 버드 · 1939–1943 (22–26세)
(캘러웨이) 1939년 인기 보컬리스트이자 밴드리더 캡 캘러웨이의 악단에 들어가 안정된 자리를 얻었다. 캘러웨이는 그에게 짧은 솔로를 맡겼지만, 스윙 시대의 화려한 쇼맨십을 중시하는 악단 분위기와 그가 품은 새로운 화성적 모험심은 자주 어긋났다. 동료들 사이에서 그의 장난과 엉뚱한 소리를 내는 습관은 점점 눈총을 샀다. (칼부림) 1941년 공연 중 누군가 던진 종이 뭉치를 두고 캘러웨이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며 무대 뒤에서 몰아세웠다. 다툼이 몸싸움으로 번졌고, 그는 주머니칼로 캘러웨이를 찔러 상처를 입혔다. 그 자리에서 즉시 해고되었고, 이 사건은 이후 오래도록 그의 이름과 함께 따라다니는 일화가 되었다. (버드) 같은 무렵 순회 중 캔자스시티에서 알토 색소폰 주자 찰리 파커를 만났다. 처음 함께 연주한 그날 밤, 서로의 화성 감각이 놀랍도록 닮아 있음을 바로 알아챘다고 훗날 회고했다. 두 사람은 이후 몇 년 사이 뉴욕의 애프터 아워 클럽들을 오가며 새로운 음악 어법을 함께 벼려 나갔다.
IV. 민튼스의 밤과 비밥의 탄생 · 1943–1947 (26–30세)
(민튼스) 할렘의 애프터 아워 클럽 민튼스 플레이하우스에서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멍크, 드러머 케니 클라크 등과 밤새 세션을 벌였다. 기존 스윙 밴드에서는 들을 수 없던 빠른 템포와 낯선 코드 진행을 실험했고, 이 시간이 훗날 비밥이라 불리는 새 어법의 산실이 되었다. 한때 같은 자리에서 연주했던 기타리스트 찰리 크리스천의 화성 감각도 이 실험에 자양분이 되어 있었다. (로레인) 1940년 무용수 로레인 윌리스와 결혼했다. 로레인은 음악과는 거리를 둔 생활인이었지만 살림과 돈 관리를 맡아 평생 그의 곁을 지켰다. 두 사람 사이에 친자녀는 없었지만, 그는 자서전에서 로레인이 자신을 현실에 붙들어 매 준 사람이라고 적었다. (에크스타인) 1944년 보컬리스트 빌리 에크스타인의 빅밴드에 합류해 찰리 파커, 사라 본 등과 한솥밥을 먹었다. 같은 해 콜먼 호킨스가 이끈 세션에서 그가 쓴 곡 「우디'n 유」가 녹음됐는데, 이는 최초로 레코드에 담긴 비밥 어법으로 꼽힌다. 에크스타인의 악단은 스윙에서 비밥으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했다.
에크스타인 악단 시절 콜먼 호킨스의 세션에 참여해 자신이 쓴 곡을 처음 레코드에 남겼다 — 최초로 녹음된 비밥으로 꼽힌다.
- 곡 머리(헤드)부터 평범한 스윙 곡과 다른 낯선 코드 진행이 등장한다 — 반음씩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화성(변칙적 코드 대체) 때문에 당시 귀에는 파격적으로 들렸다.
- 디지 길레스피의 솔로는 빠른 음표들을 촘촘히 엮으면서도 호흡이 끊기지 않는 긴 악구로 이어진다.
- 콜먼 호킨스가 이끄는 세션답게 그의 테너 색소폰 솔로가 관록 있는 스윙의 어법과 새로운 비밥 감각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
- 맥스 로치의 드럼이 단순히 박자를 지키는 대신 짧은 악센트를 끼워 넣어 솔로이스트와 대화하듯 움직인다(인터플레이).
찰리 파커와 함께 녹음한 이 콤보 연주는 복잡한 화성 위에 유머러스한 보컬 추임새를 얹어 비밥의 진지함과 장난기를 동시에 보여준다.
- 곡 제목을 외치는 짧은 보컬 추임새가 반복되는 리프(짧게 되풀이되는 가락) 위에 얹혀 있어, 복잡한 비밥 치고는 유머러스한 인상을 남긴다.
-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파커가 같은 가락을 유니즌(같은 음을 함께 연주하기)으로 빠르게 몰아치는 머리 부분이 이 곡의 가장 유명한 순간이다.
- 템포가 당시 스윙 곡들보다 눈에 띄게 빨라서, 춤보다는 집중해서 듣는 음악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민튼스의 실험을 집대성한 대표곡으로, 북아프리카를 연상시키는 멜로디는 이후 그가 본격적으로 파고들 쿠바 리듬에 대한 예고처럼 들린다.
- 곡 중간, 반주가 모두 멈추고 솔로이스트 혼자 짧게 내달리는 대목(브레이크)이 이 곡의 상징적인 순간이다.
- 라틴풍 리듬 패턴 위에 얹힌 멜로디가 이국적인 음계를 사용해, 평범한 비밥 곡들과는 다른 색을 낸다.
- 디지 길레스피의 트럼펫은 높은 음역을 길게 끌어 올리며 극적인 긴장을 쌓은 뒤 빠르게 풀어낸다.
- 헤드-솔로-헤드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비밥 구성 안에서도 도입부 리듬 짜임새가 다른 곡들보다 훨씬 공들여 짜여 있다.
V. 카네기홀과 차노 포소 · 1947–1950 (30–33세)
(카네기홀) 1947년 자신의 빅밴드를 이끌고 카네기홀 무대에 섰다. 신작 「시스 투 컴」을 비롯해 복잡한 화성과 긴 형식을 갖춘 곡들을 선보이며 비밥을 춤곡이 아닌 감상용 음악으로 세워 보이려 했다. (차노포소) 같은 해 쿠바 출신 콩가 연주자 차노 포소가 악단에 합류했다. 두 사람은 함께 「망테카」를 썼고, 아프리카계 쿠바 리듬과 비밥 화성을 엮은 새로운 소리를 빚어냈다. 그러나 포소는 1948년 할렘의 한 술집에서 벌어진 다툼으로 세상을 떠났다. 짧았던 협업이었지만, 그 울림은 이후 평생 그의 음악에 남았다. (해체) 열다섯 명이 넘는 단원을 거느린 빅밴드를 유지하는 비용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불어났다. 흥행도 들쭉날쭉했고 결국 1950년 악단을 접고 더 작은 편성으로 돌아섰다. 돈 문제로 겪은 이 좌절은 이후 그가 몸집을 줄여 유연하게 움직이는 콤보 중심으로 경력을 재편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카네기홀 무대를 위해 조지 러셀과 함께 짠 긴 조곡으로, 비밥을 감상용 콘서트 음악으로 끌어올리려 한 야심이 드러난다.
- 짧은 춤곡 형식을 벗어나 여러 부분으로 나뉜 긴 조곡(모음곡) 구조를 택해, 콘서트 음악을 지향한 야심이 드러난다.
- 차노 포소의 콩가가 처음부터 기존 재즈 리듬 섹션과는 다른 아프리카계 쿠바 타악 패턴을 깔아, 곡 전체의 색깔을 바꿔 놓는다.
- 빅밴드 금관 섹션이 짧은 구절을 서로 주고받는 콜 앤드 리스폰스(부르고 답하기) 짜임새가 자주 등장한다.
- 조지 러셀이 함께 짠 편곡은 당시 빅밴드 곡들보다 화성이 훨씬 촘촘하고 어둡게 느껴진다.
차노 포소와 함께 쓴 이 곡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짧은 협업의 결실로, 이후 라틴 재즈의 표준 틀이 되었다.
- 곡을 여는 콩가와 베이스의 짧은 리프가 곡 전체를 떠받치는 틀이 되어 계속 되풀이된다.
- 차노 포소가 만든 리듬 바탕 위에 디지 길레스피의 금관 섹션이 쓴 멜로디가 얹히는 방식은, 이후 라틴 재즈라는 장르의 표준 틀이 되었다.
- 중간에 느려지며 분위기를 바꾸는 브리지 구간이 들어가 있어 단순한 춤곡 리프 이상의 구성을 갖췄다.
- 디지 길레스피의 트럼펫 솔로는 높은 음을 짧게 끊어 쏘아 올리는 특유의 프레이징으로 긴장을 더한다.
VI. 구부러진 트럼펫과 외교관의 길 · 1950–1969 (33–52세)
(나팔) 1953년 아내 로레인의 생일 파티 자리에서 무용수 두 명이 넘어지며 세워 둔 트럼펫을 짓눌렀고, 벨 부분이 위로 꺾여 버렸다. 수리를 맡기기 전 시험 삼아 불어 본 소리가 오히려 더 밝고 멀리 퍼지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쓰기로 했다. 이후 제작사에 특별히 주문해 구부러진 벨을 가진 트럼펫을 계속 썼고, 이 독특한 모양은 평생 그의 상징이 되었다. (외교관) 1956년 미국 국무부가 그의 악단을 중동과 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로 보내는 친선 순회를 기획했다. 냉전의 긴장 속에서도 현지 관객들은 뜨겁게 반응했고, 그는 미국을 대표해 흑인 음악을 세계에 소개한다는 자부심을 느꼈다. 동시에 고국에서는 여전히 카바레 카드 제도와 인종 분리가 흑인 연주자들의 생계를 옥죄고 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의식하고 있었다. (바하이) 1968년 바하이 신앙으로 개종했다. 인종과 종교의 경계를 넘어선 인류 하나됨을 말하는 가르침이 그가 평생 겪은 차별의 경험과 맞닿아 있었다고 훗날 밝혔다. 1964년에는 장난스레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며 듀크 엘링턴을 국무장관으로 앉히겠다는 농담 섞인 내각 명단을 발표해 화제를 모았는데, 이 캠페인으로 모은 기부금은 민권 운동 단체에 전달됐다.
불같은 비밥의 이미지와는 다른, 그가 지닌 서정적이고 로맨틱한 멜로디 감각을 보여주는 발라드다.
- 빠른 비밥 곡들과 달리 느린 템포의 발라드여서, 디지 길레스피가 가진 서정적인 멜로디 감각을 들을 수 있다.
- 스페인풍으로 느껴지는 화성 진행이 그가 쿠바·라틴 음악에서 받은 영향을 발라드 형식 안에서 드러낸다.
- 트럼펫의 비브라토(음을 떨어 울리는 주법)를 평소보다 짙게 써서 따뜻하고 노래하는 듯한 음색을 낸다.
- 32마디 AABA 형식을 쓰면서도 브리지 부분의 화성이 예상보다 멀리 돌아나가 신선한 느낌을 준다.
VII. 유엔 오케스트라와 마지막 순회 · 1970–1993 (53–76세)
(유엔오케스트라) 1988년 라틴과 카리브해 음악가들을 끌어모아 유엔 오케스트라를 결성했다. 차노 포소와 함께 시작했던 아프리카계 쿠바 리듬과 재즈의 만남을 수십 년 뒤 더 넓은 규모로 이어 간 셈이었다. (영예) 1990년 케네디센터 명예상을 받았고,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세계 곳곳을 도는 순회를 멈추지 않았고, 무대 위에서는 여전히 트럼펫을 불며 관객을 웃게 만드는 특유의 익살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1992년 췌장암 진단을 받았고, 1993년 1월 미국 뉴저지주 엥글우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서는 그와 함께했던 여러 음악가들이 연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아내 로레인은 2004년 세상을 떠났고, 딸 지니 브라이슨은 이후 재즈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며 아버지의 음악적 유산을 이어 갔다.
덜 알려진 이야기
1964년 그가 벌인 장난스러운 대통령 출마는 단순한 코미디로만 기억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선거 캠페인 버튼을 찍어 팔고 모금 행사를 열어 모은 돈을 민권 운동 단체에 전달한 구체적인 활동이었다. 자서전에서 그는 듀크 엘링턴을 국무장관으로 앉히겠다는 내각 명단까지 꾸몄는데, 농담의 형식을 빌렸을 뿐 모금의 목적은 진지했다는 점은 덜 알려져 있다. 젊은 트럼펫 연주자들에게 무대 뒤에서 코드 대체 기법을 거리낌 없이 가르쳐 준 일화는 여러 동료 음악가들의 구술 증언과 라이너 노트 곳곳에 흩어져 있지만, 그가 이를 따로 정리하거나 대가를 요구한 적이 없어 정식 전기에는 잘 묶여 들어가지 않았다. 배운 사람들이 뒷날 각자의 회고에서 흘리듯 언급하는 방식으로만 전해진다. 1953년 트럼펫 벨이 우연히 꺾인 사건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후 그가 악기 제작사와 협의해 구부러진 벨을 정식으로 설계해 상업적으로 만들어 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언급된다. 우연한 사고가 의도적으로 설계된 상품으로 이어졌다는 이 뒷이야기는, 사고 일화 자체의 극적인 재미에 묻혀 자주 빠진다.
용어 노트 📚🔎
비밥
(재즈에서) 스윙 시대의 큰 악단 춤곡과 달리, 작은 편성이 빠른 템포와 복잡한 화성 위에서 각자의 즉흥연주를 펼치는 음악을 가리킨다. 춤을 추기보다 집중해서 듣는 음악에 가까워졌다. (다른 데서는) 특별히 다른 분야에서 쓰이는 말은 아니다.
브레이크
(말뜻) 영어 낱말 break는 '끊다, 끊어지는 순간'이라는 뜻이다. (재즈에서) 반주가 잠깐 멈추고 솔로이스트가 혼자 짧게 연주하는 대목을 가리킨다. 마치 선생님이 노래를 잠깐 멈추고 한 학생에게 자유롭게 소리를 내 보라고 시키는 순간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학교에서는 수업 사이 쉬는 시간을, 춤에서는 브레이크댄스의 동작을 가리키기도 한다.
콜 앤드 리스폰스
(재즈에서) 한쪽이 짧은 가락을 외치면 다른 쪽이 답하듯 받아치는 짜임새다. 운동회에서 한쪽이 '이겨라!' 외치면 다른 쪽이 똑같이 외쳐 받아치는 응원과 비슷한 구조다. (다른 데서는) 교회 설교에서 신도들이 목사의 말에 맞춰 답하는 방식도 콜 앤드 리스폰스라 부른다.
아프로-쿠바 재즈
(재즈에서) 쿠바와 카리브해 지역의 콩가, 클라베 같은 타악 리듬을 재즈의 화성·즉흥연주와 섞은 음악을 가리킨다. 영어 노래에 한국 전통 장단을 얹어 새로운 느낌을 내는 것과 비슷한 시도였다. (다른 데서는) 특별히 다른 분야에서 쓰이는 말은 아니다.
스캣
(재즈에서) 가사 대신 의미 없는 음절로 멜로디를 즉흥적으로 노래하는 창법이다. 노래를 부르다 가사가 막히면 무심코 '라라라'를 흥얼거리는 것과 비슷하지만, 재즈의 스캣은 일부러 즉흥 솔로처럼 불러내는 기술이다. (다른 데서는) 특별히 다른 분야에서 쓰이는 말은 아니다.
리프
(재즈에서) 짧게 되풀이되는 가락으로, 곡의 뼈대를 이루거나 솔로이스트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응원 구호를 계속 반복해서 분위기를 끌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록이나 팝 음악에서 기타로 반복해서 연주하는 짧은 가락도 똑같이 리프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