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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ter Young

레스터 영 (1909–1959)

다른 모두가 굵고 뜨겁게 불 때, 그는 가볍고 서늘하게 노래했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미시시피 출생이동악단 성장짐크로우 탈퇴2. 방랑캔자스시티 정착킹 올리버와 인연베이시 악단 합류3. 황금기프레지던트 별명빌리 홀리데이 우정레스터 립스 인4. 전쟁육군 징집군사재판 구금디비 블루스5. 그림자달라진 음색알코올과 쇠약재즈 앳 더 필하모닉6. 마지막파리 마지막 무대1959년 뉴욕 별세영1909–1959짐 크로우와 군대의 상처를 지나 재즈 색소폰의…
무대의 여정 🧭🗺️
N미국우드빌1909뉴올리언스1910년대미니애폴리스1920년대캔자스시티1930년대뉴욕1934–1959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윌리스 핸디 영

    여러 악기를 가르친 아버지이자 가족 악단의 지휘자였다.

  • 동료킹 올리버

    1930년대 초 순회 악단에서 잠시 함께 연주하며 재즈 초창기 세대의 감각을 접했다.

  • 경쟁콜맨 호킨스

    당대 테너색소폰의 표준으로 군림하던 존재로, 그와 대비되는 자신만의 음색을 벼리게 했다.

  • 후원카운트 베이시

    그를 간판 솔로이스트로 세운 악단의 리더였다.

  • 우정빌리 홀리데이

    서로에게 프레즈와 레이디 데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평생의 음악적 동반자였다.

  • 후원노먼 그란츠

    전후 그의 순회공연과 녹음을 꾸준히 지원한 제작자였다.

YouTube에서 6곡 이어 듣기 ↗

I. 미시시피의 소년 · 1909–1927 (0–18세)

(미시시피) 1909년 8월, 미국 미시시피주 우드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윌리스 핸디 영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은 뉴올리언스 인근으로 옮겨갔고, 어린 레스터는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아버지) 윌리스 핸디 영은 여러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음악 교사였고, 자녀들에게 직접 악기를 가르치며 가족 악단을 꾸렸다. 레스터는 처음에 드럼을 배웠고, 뒤이어 여동생 아이마는 피아노와 알토색소폰을, 남동생 리는 드럼을 이어받았다. (이동악단) 영 가족 악단은 카니발과 순회공연을 따라 중서부와 남부를 오가며 연주했다. 레스터는 십 대 초반부터 무대에 섰고, 드럼을 옮기고 조립하는 고된 노동보다 관악기 쪽이 자신에게 맞는다고 느껴 알토색소폰을, 다시 테너색소폰을 손에 쥐었다. (짐크로우) 1927년, 악단이 남부 지역 순회를 준비하던 무렵 레스터는 더는 그 길을 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훗날 그는 인종에 따라 식당과 숙소가 갈리던 남부의 순회 일정을 견딜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아버지의 악단을 떠난 이 결정은 열여덟 살 청년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내린 첫 선택이었다.

II. 킹 올리버와 캔자스시티 · 1927–1934 (18–25세)

(독립) 가족 악단을 나온 레스터는 미네소타 일대를 근거지로 삼아 여러 떠돌이 악단을 전전했다. 아트 브론슨의 보스토니언스에서 처음 테너색소폰 주자로 이름을 올렸고, 이후 여러 준지역 악단을 옮겨 다니며 생계를 이었다. (킹올리버) 1930년대 초 한때 킹 올리버가 이끌던 순회 악단에 몸담았던 시절이 있었다. 전성기를 지나 남부와 중서부를 떠돌던 노장 코넷 주자 밑에서 짧게나마 함께 연주한 경험은, 재즈 초창기 세대의 감각을 가까이서 접한 드문 기회였다. (캔자스시티) 월터 페이지의 블루 데블스, 베니 모튼 악단을 거치며 캔자스시티의 뜨거운 재즈 신에 스며들었다. 그곳에서 그는 당시 테너색소폰의 표준으로 군림하던 콜맨 호킨스의 굵고 힘찬 음색과는 전혀 다른, 가볍고 곧게 뻗는 자신만의 소리를 다듬어갔다. (개성) 폭이 좁고 챙이 평평한 중절모(포크파이 모자)를 즐겨 썼고, 자신만의 은어를 만들어 동료들 사이에서 통용시켰다. 돈을 뜻하는 말이나 마음에 든다는 뜻의 표현들을 스스로 지어 불렀고, 이런 말버릇은 훗날 재즈계 전반에 퍼졌다.

III. 뉴욕과 좌절 · 1934–1936 (25–27세)

(헨더슨) 1934년, 플레처 헨더슨 악단이 유럽으로 떠난 콜맨 호킨스의 빈자리를 메울 테너색소폰 주자를 찾았고 레스터가 발탁되었다. 뉴욕 무대에 처음 서는 큰 기회였다. (냉대) 그러나 밴드 단원들은 호킨스의 짙고 힘찬 소리에 익숙해 있었고, 레스터의 가볍고 여백이 많은 연주를 낯설어했다. 헨더슨의 아내 리오라는 그에게 호킨스의 음반을 들려주며 비슷하게 불어 보라고 권했다고 전해진다. 레스터는 자신의 소리를 바꾸지 않았고, 몇 달 만에 악단을 떠났다. (귀환) 상심한 채 캔자스시티로 돌아온 그는 베니 모튼의 후신 격인 카운트 베이시의 악단에 합류했다. 뉴욕에서 겪은 냉대는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자신의 음색을 지켜낼 만큼 확고한 신념이 있었음을 스스로 증명한 시간이기도 했다. (첫녹음) 1936년, 음반 제작자 존 해먼드의 주선으로 베이시 소편성 악단이 시카고에서 첫 녹음을 남겼다. 계약 문제로 밴드 이름을 존스-스미스 인코퍼레이티드라는 가명으로 올려야 했지만, 여기 담긴 레스터의 솔로는 이후 재즈 색소폰의 흐름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슈 샤인 보이 (Shoe Shine Boy)1936 (27세)연주 Sportiello·Parrott·Metz

뉴욕에서의 냉대를 딛고 돌아온 직후, 존스-스미스 인코퍼레이티드라는 가명으로 남긴 첫 리더급 녹음.

  • 솔로가 가볍게 위쪽 음역에서 떠오르듯 시작해 비브라토(음을 떨리게 흔드는 기법) 거의 없이 곧게 뻗는다 — 당시 지배적이던 콜맨 호킨스의 굵고 떨리는 음색과 뚜렷이 대조된다.
  • 드러머 조 존스가 심벌 위주로 가볍게 스윙을 끄는 방식은 훗날 모던재즈 드러밍의 시초로 꼽힌다.
  • 주제를 먼저 연주하고 즉흥연주를 넣은 뒤 다시 주제로 돌아오는 짧고 간결한 짜임새(헤드-솔로-헤드 형식).
  • 제작자 존 해먼드가 발굴한 세션으로, 베이시의 다른 레이블 계약 문제 탓에 밴드명을 가명으로 올려 발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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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프레지던트와 레이디 데이 · 1936–1940 (27–31세)

(베이시악단) 카운트 베이시 악단은 1936년 말 뉴욕으로 본거지를 옮기며 빅밴드 스윙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레스터는 악단의 간판 솔로이스트가 되었고, 절제된 음표 사이의 여백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의 연주는 당대 색소폰 주자들과 뚜렷이 구별되었다. (빌리홀리데이) 이 무렵 가수 빌리 홀리데이와 가까워졌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빌리는 그를 색소폰 주자들의 왕이라는 뜻으로 프레지던트, 줄여서 프레즈라 불렀고, 레스터는 그녀를 레이디 데이라 불렀다. 이 별명들은 지금까지도 두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허셜에반스) 베이시 악단에는 콜맨 호킨스풍의 굵은 음색을 지닌 또 다른 테너 주자 허셜 에반스가 있었다. 두 사람은 무대 위에서 종종 서로 주고받으며 솔로를 겨루었고, 1938년 녹음된 「도긴 어라운드」는 서로 다른 두 테너 색소폰의 개성이 나란히 담긴 기록으로 남았다. (전성기) 1939년 녹음한 「레스터 립스 인」은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곡이 되었다. 빌리 홀리데이의 녹음에서도 그의 오블리가토는 두 사람의 음악적 호흡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자주 꼽힌다. (이탈) 1940년 말, 임금과 대우를 둘러싼 불만이 쌓이며 베이시 악단을 떠났다. 로스앤젤레스로 옮겨가 드러머로 자란 동생 리 영과 함께 밴드를 꾸렸고, 이 시기 피아니스트 냇 킹 콜과 남긴 트리오 녹음은 큰악단을 벗어난 그의 여유로운 연주를 들려준다.

♪레스터 립스 인 (Lester Leaps In)1939 (30세)실황 색소폰 올스타(McPherson·Moody 외) · Eastwood After Hours, 카네기홀

베이시 악단 황금기,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대표곡.

  • 32마디 AABA 형식에 「아이 갓 리듬」의 코드 진행을 얹은 곡으로, 첫 코러스 솔로가 특히 유명하다.
  • 셋잇단음 리듬으로 도약하듯 움직이는 프레이징이 곡 제목의 유래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 프레디 그린의 기타와 월터 페이지의 베이스가 만드는 잔잔한 스윙 위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느낌.
  • 베이시의 반주가 최소한으로 절제되어 색소폰 솔로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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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세일보트 인 더 문라이트 (A Sailboat in the Moonlight)1937 (28세)실황 Wynton Marsalis Quintet & Richard Galliano · 2008 Marciac

빌리 홀리데이와의 우정이 낳은 대표적인 협연, 두 사람의 음악적 대화를 보여준다.

  • 레스터의 솔로가 빌리의 노래 뒤에서 마치 대화하듯 짧은 프레이즈로 화답한다(오블리가토) — 두 사람의 유명한 음악적 호흡.
  • 보컬과 악기가 대등하게 주고받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드문 반주 스타일이었다.
  • 절제된 스윙 템포 위에서 화려함 대신 깊은 여운을 남기는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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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 영 트리오 (The Lester Young Trio)1946 (36세)실황 「Mean to Me」 Lester Young · 1958 TV

베이시 악단을 떠난 뒤 피아니스트 냇 킹 콜과 로스앤젤레스에서 남긴 소편성 녹음.

  • 베이스 없는 트리오 편성으로, 리듬을 색소폰과 피아노, 버디 리치의 드럼이 나누어 짊어진다.
  • 냇 킹 콜의 피아노가 스윙과 블루스를 오가며 유려하게 반주를 받쳐준다.
  • 레스터의 프레이징이 한층 여유롭고 노래하듯 유창해져, 큰악단을 벗어난 자유로운 심경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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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군대와 감옥 · 1944–1945 (35–36세)

(징집) 1944년 가을, 서른다섯 살의 유명 색소폰 주자였던 레스터에게 육군 징집영장이 나왔다. 이미 결혼한 몸이었고 스윙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였지만 예외는 없었다. (수색) 앨라배마주 포트 매클렐런 기지에 배치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소지품에서 마리화나와 바르비투르산염이 발견되었고, 그는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인종차별이 공공연했던 남부 군대 내에서 흑인 사병에게 더 가혹하게 적용되던 규율이었다. (구금) 유죄가 인정되어 조지아주의 구금소에 수감되었다. 악기 없이 지낸 이 몇 달은 평생 씻기지 않는 상처로 남았고, 이후 인터뷰에서 그는 이 시기를 거의 입에 담지 않으려 했다. (상흔) 1945년 풀려난 직후 녹음한 「디비 블루스」의 제목은 구금소(Detention Barracks)를 가리킨다. 예전보다 탁하고 무거워진 음색은 그가 겪은 일을 말이 아닌 소리로 남긴 흔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디비 블루스 (D.B. Blues)1945 (36세)

구금소에서 풀려난 직후 녹음, 겪은 일을 음악으로 새긴 드문 기록.

  • 제목의 D.B.는 그가 수감되었던 구금소(Detention Barracks)를 가리킨다.
  • 열두 마디를 한 단위로 코드가 반복되는 형식(12마디 블루스) 위에서 느릿하고 무거운 톤으로 노래하듯 흘러간다.
  • 예전보다 탁하고 갈라진 음색은 청자들 사이에서 트라우마의 흔적으로 자주 언급된다.

VI. 달라진 음색 · 1945–1955 (36–46세)

(변화) 전쟁 이전의 가볍고 곧은 음색은 점차 짙은 비브라토와 그늘진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평론가들은 이를 기교의 퇴보가 아니라 한 사람이 겪은 상실이 소리에 스며든 결과로 읽었다. (그란츠) 음반 제작자 노먼 그란츠가 그의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그가 조직한 순회공연 재즈 앳 더 필하모닉의 단골 출연자로 무대에 섰고, 클레프와 버브 레이블을 통해 꾸준히 녹음을 남길 수 있었다. (알코올) 시간이 지날수록 술에 의존하는 날이 많아졌고, 몸무게가 줄고 무대에 서는 일 자체가 버거워지는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악기를 놓지 않았고, 느린 발라드에서는 여전히 깊은 울림을 들려주었다. (존경) 스탠 게츠, 리 코니츠 같은 젊은 색소폰 주자들이 그의 가볍고 서늘한 음색을 이어받아 이른바 쿨재즈의 흐름을 열었다. 레스터 자신은 크게 앞세우지 않았지만, 그가 개척한 소리는 다음 세대의 뼈대가 되어 있었다.

♪프레즈 앤드 테디 (Pres and Teddy)1956 (47세)실황 Earl Hines & Teddy Wilson (피아노) · 1965 베를린

옛 베이시·빌리 시절 동료였던 피아니스트 테디 윌슨, 드러머 조 존스와의 재회 세션.

  • 오랜 동료들과의 재회답게 서로를 배려하며 주고받는 편안한 인터플레이(주고받기)가 인상적이다.
  • 느린 발라드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숨결 같은 프레이징을 들려준다.
  • 제작자 노먼 그란츠가 원테이크 위주로 자연스러운 연주를 담으려 한 프로듀싱 방식이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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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파리와 마지막 밤 · 1955–1959 (46–50세)

(쇠약) 1950년대 후반 들어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무대 위에서도 지쳐 보이는 모습이 잦아졌고, 오랜 동료들은 그의 야윈 모습에 말을 잃곤 했다고 전해진다. (파리) 1959년 초, 프랑스 리듬 섹션과 함께 파리로 마지막 순회공연을 떠났다. 파리의 블루 노트 클럽에서 거의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몸으로 무대에 올랐지만, 연주만큼은 끝까지 담백하고 노래하듯 흘러나왔다. (귀국) 1959년 3월 15일, 뉴욕으로 돌아왔다. 버드랜드 클럽 맞은편의 앨빈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죽음) 그날 밤 그는 호텔 방에서 숨을 거두었다. 향년 마흔아홉이었다. 넉 달 뒤 세상을 떠나게 될 빌리 홀리데이가 그의 장례식에 참석해 옛 친구를 배웅했다. 가볍고 곧게 뻗던 그의 음색은 이후 수십 년간 재즈 색소폰 주자들의 뼈대로 남았다.

♪레스터 영 인 파리 (Lester Young in Paris)1959 (50세)연주 Lester Young (테너색소폰) 외 · Hank Jones·Ray Brown·Buddy Rich, 1950

숨을 거두기 몇 주 전, 마지막 유럽 순회공연에서 남긴 실황 녹음.

  • 몸이 좋지 않았던 상태에서도 담백하게 노래하듯 흐르는 솔로 라인.
  • 프랑스 리듬 섹션과의 호흡 — 언어가 달라도 스윙으로 통하는 순간들이 담겼다.
  • 그의 생애 마지막 실황 녹음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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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훗날 재즈계 전반에 퍼진 은어 상당수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음에 든다는 뜻의 표현이나 돈을 가리키는 말들을 스스로 지어 불렀고, 동료 음악가들이 이를 따라 쓰면서 자연스럽게 퍼졌다고 전해진다. 이런 언어 습관은 음악 못지않게 그의 개성을 드러내는 면이었지만, 녹음이나 악보처럼 남는 기록이 아니었던 탓에 정식 전기보다는 동료들의 구술 증언으로만 조각조각 전해진다. 그가 처음 익힌 악기가 드럼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59년,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프랑스 평론가 프랑수아 포스티프와 나눈 인터뷰에서 그는 가족 악단을 따라다니며 드럼을 옮기고 조립하는 일이 고되어 관악기로 옮겨갔다고 회고했다. 이 인터뷰는 그의 마지막 육성 기록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같은 해 미국 재즈 잡지에 영어 번역으로도 실렸다. 군사재판의 구체적인 기록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한동안 공개되지 않았다. 전기 작가 더글러스 헨리 대니얼스의 연구를 통해 구금소에서 그가 겪은 일의 구체적인 정황이 뒤늦게 알려졌다고 전해진다. 당사자가 생전에 이 시기를 거의 말하지 않았던 탓에, 이 대목은 오랫동안 짧은 일화로만 떠돌다가 훨씬 나중에야 학술적으로 정리되었다.

용어 노트 📚🔎

스윙

스윙(swing)은 영어로 흔들다, 그네를 타다라는 뜻이다. 재즈에서는 박자의 뒷부분을 살짝 끌어당기듯 연주해 몸이 저절로 움직이게 만드는 리듬감을 가리킨다. 그네를 탈 때 앞뒤로 흔들리는 느낌처럼, 정박자보다 살짝 밀고 당기는 느낌을 준다. 다른 데서는 스윙이 골프나 야구에서 클럽·배트를 휘두르는 동작을 가리키기도 한다.

오블리가토

이탈리아어 옵리가토(obbligato)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원래는 생략할 수 없는 필수 성부를 가리키던 말이다. 재즈에서는 노래하는 사람 뒤에서 악기가 짧은 프레이즈로 화답하듯 받쳐주는 반주를 뜻한다. 한 사람이 이야기하면 옆 사람이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과 비슷하다.

비브라토

이탈리아어 비브라레(vibrare)에서 온 말로, 떨다라는 뜻이다. 음악에서는 음을 일정하게 흔들어 떨리는 소리를 내는 기법으로, 목소리나 악기 소리에 감정을 더해준다. 노래방에서 음을 길게 뺄 때 목소리가 떨리는 것과 비슷하다.

12마디 블루스

재즈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형식 가운데 하나로, 열두 마디를 한 단위로 정해진 순서의 코드가 반복된다. 돌림노래처럼 정해진 틀이 있고, 그 안에서 연주자가 자유롭게 즉흥연주를 얹는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쿨재즈

1940년대 후반 등장한 재즈의 한 흐름으로, 뜨겁고 격렬한 비밥과 달리 차분하고 절제된 음색과 셈여림을 강조한다. 화가 난 목소리로 외치는 대신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는 것에 빗댈 수 있다.

헤드-솔로-헤드 형식

재즈 연주에서 가장 기본적인 짜임새로, 먼저 곡의 주제 선율(헤드)을 함께 연주하고, 그다음 각자 즉흥연주(솔로)를 이어가다가, 마지막에 다시 처음 주제로 돌아와 마무리한다. 이야기를 시작할 때와 끝날 때 같은 인사말을 쓰고 중간에는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