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areads.musicJazz

King Oliver

킹 올리버 (1885–1938)

왕관을 썼던 코넷의 소리는, 세상을 뜰 무렵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낮은 숨소리로 잦아들어 있었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루이지애나 출생이복누나 손에서 성장브라스밴드 코넷2. 명성킹이라는 별명스텔라와 결혼어린 암스트롱 조련3. 시카고크리올 재즈 밴드1923년 제네트 녹음릴 하딘과 인연4. 균열암스트롱의 독립코튼클럽 거절잇몸병과 몰락5. 말년대공황 속 유랑서배너 과일가게1938년 쓸쓸한 죽음6. 유산재즈사의 다리우드론 묘지 안장암스트롱의 회고올리버1885–1938뉴올리언스 재즈의 왕좌에서 서배너의 과일 노점…
무대의 여정 🧭🗺️
N미국도널드슨빌1885뉴올리언스1890s–1918시카고1918–1927서배너1935–1938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빅토리아

    어머니를 여읜 그를 거두어 키운 이복누나였다.

  • 후원키드 오리

    그를 밴드에 발탁하고 킹이라는 별명을 앞세워 세상에 알렸다.

  • 경쟁프레디 케플러드

    뉴올리언스 코넷의 왕좌를 두고 다툰 라이벌이었다.

  • 동료젤리 롤 모튼

    같은 뉴올리언스 무대를 오가며 재즈 초기를 함께 겪었다.

  • 제자루이 암스트롱

    직접 코넷을 가르치고 시카고로 불러들여 무대에 세운 애제자였다.

  • 동료릴 하딘

    크리올 재즈 밴드의 피아니스트였고, 훗날 암스트롱의 아내가 되었다.

YouTube에서 4곡 이어 듣기 ↗

I. 루이지애나 시골의 소년 · 1885–1900 (0–15세)

(출생) 1885년 5월, 미국 루이지애나주 도널드슨빌 인근 농장 지대에서 태어났다. 정확한 생년은 자료마다 조금씩 엇갈려 1881년으로 적힌 기록도 남아 있지만, 전기 작가들은 대체로 1885년을 받아들인다. 아버지 네이선 올리버와 어머니 버지니아 존스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이복누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어린 조는 이복누나 빅토리아의 손에서 자랐다. 가족은 뉴올리언스로 옮겨 왔고, 빅토리아는 평생 그의 곁을 지키며 훗날 그가 객지에서 세상을 뜰 때까지도 소식을 주고받는 가장 가까운 혈육으로 남았다. 가난한 형편 탓에 학교 교육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고, 어려서부터 집안일과 허드렛일을 도우며 자랐다. (눈) 소년 시절 사고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오래 전해진다. 정확한 경위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일로 그는 평생 사진을 찍을 때 오른쪽 얼굴이 카메라를 향하도록 고개를 살짝 돌리는 버릇을 지녔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 흉을 남 앞에서 굳이 드러내지 않았고, 무대 위에서도 몸의 방향을 신경 썼다고 동료들은 회고했다. (코넷) 처음에는 트롬본을 손에 쥐었다가 곧 코넷으로 악기를 바꾸었다. 뉴올리언스의 흑인 사회에는 장례 행렬과 축제마다 연주하는 브라스밴드 문화가 뿌리 깊었고, 소년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낮에는 백인 가정의 집사로 일하며 생계를 도왔고, 밤에는 거리와 공원에서 밴드 연습을 쫓아다니며 코넷 연주를 익혔다.

II. 뉴올리언스의 킹 · 1900–1918 (15–33세)

(브라스밴드) 20대에 접어들며 온워드 브라스밴드를 비롯한 여러 악단을 전전하며 실력을 쌓았다. 스토리빌의 술집과 무도장, 거리 행진까지 가리지 않고 연주했고, 곧 도시 안에서 손꼽히는 코넷 연주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결혼) 1911년 무렵 스텔라 도미니크와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 친자식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스텔라가 데려온 딸 루비를 함께 키웠다. 루비는 훗날 그가 객지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을 때 유해를 뉴욕으로 옮기는 일을 도맡을 만큼 각별한 사이로 남았다. (경쟁) 당시 뉴올리언스 코넷의 제왕은 프레디 케플러드였다. 두 사람은 종종 거리에서 마주쳐 서로 소리를 겨루는 이른바 커팅 콘테스트를 벌였다고 전해지며, 1917년 무렵 케플러드를 밀어내고 청중이 그에게 '킹'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이 별명을 밴드 이름에 앞세운 것은 트롬본 주자이자 밴드 리더 키드 오리였다. (모튼) 같은 시기 뉴올리언스에는 피아니스트 젤리 롤 모튼도 활동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은 클럽 무대를 오가며 서로의 연주를 지켜보는 사이였고, 모튼은 훗날 자신이 재즈를 홀로 만들었다는 유명한 주장을 펼치며 동시대 연주자들의 공로를 낮춰 말하곤 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뉴올리언스 재즈 초기를 함께 겪어 낸 동료였다. (암스트롱) 1918년 무렵, 빈민가에서 자란 10대 소년 루이 암스트롱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직접 코넷을 가르치고 자신의 낡은 악기를 물려주었다고 전해지며, 그해 자신이 시카고로 떠나며 비운 키드 오리 밴드의 자리를 암스트롱에게 넘겨주었다. 암스트롱은 훗날 그를 '파파 조'라 부르며 평생 아버지 같은 은인으로 기억했다.

III. 시카고로 · 1918–1922 (33–37세)

(이주) 1918년, 뉴올리언스를 떠나 시카고로 향했다. 당시 많은 남부 흑인 음악가들이 그러했듯 더 나은 벌이와 인종 차별이 덜한 환경을 찾아 북쪽으로 이동하는 대이동의 흐름 위에 있었다. 처음에는 베이시스트 빌 존슨의 밴드에 몸담았다. (밴드) 곧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악단을 꾸리기 시작했다. 클라리넷의 조니 다즈, 드럼의 베이비 다즈 형제, 트롬본의 오노레 뒤트레, 피아노의 릴 하딘 등을 불러 모아 편성을 다졌고, 이 조합은 이후 몇 년 사이 뉴올리언스 스타일 재즈를 가장 완성도 있게 들려주는 악단으로 자리 잡았다. (호출) 1922년, 뉴올리언스에 남아 있던 루이 암스트롱을 시카고로 불러들였다. 자신의 밴드에 두 번째 코넷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었는데, 이는 스승이 제자를 자기 곁에 세우는 흔치 않은 결정이었다. 암스트롱은 그날의 부름을 평생 인생을 바꾼 사건으로 기억했다. (합주) 두 코넷이 나란히 서서 서로의 즉흥선율을 예측한 듯 겹쳐 내는 이른바 2코넷 브레이크는 곧 크리올 재즈 밴드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스승과 제자가 무대 위에서 눈빛만으로 화음을 맞추는 모습은 당대 청중을 매료시켰고, 두 사람의 신뢰는 음악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IV. 크리올 재즈 밴드의 전성기 · 1922–1924 (37–39세)

(녹음) 1923년, 밴드는 인디애나주 리치먼드의 제네트 스튜디오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녹음을 남겼다. 흑인 재즈 밴드가 온전한 자신들의 소리로 남긴 초기 기록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유산으로 꼽히며, 이 녹음들 덕분에 뉴올리언스 스타일의 집단 즉흥연주가 이후 세대에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다. (뮤트) 트럼펫 벨 끝에 컵이나 양철통, 심지어 아기 젖병 뚜껑까지 갖다 대며 사람 울음소리 같은 음색을 만들어 내는 데 능했다. 「디퍼 마우스 블루스」 같은 곡에서 들리는 이 왁와우 소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고, 후배 트럼펫 연주자들이 두고두고 흉내 내고 연구한 기법으로 남았다. (경제) 밴드가 이름을 알리는 동안에도 살림살이는 넉넉하지 못했다. 리더로서 출연료를 관리했지만 곡의 저작권과 인세 등록에는 서툴렀고, 이후 이 시기 곡들의 저작권을 둘러싸고 뒷말이 남았다. 단원들 사이에서는 그가 돈 문제에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불만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릴) 밴드의 피아니스트 릴 하딘은 곧 암스트롱과 가까워졌고, 1924년 두 사람은 결혼했다. 스승의 밴드 안에서 맺어진 이 인연은 훗날 암스트롱이 올리버 곁을 떠나는 데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릴은 남편의 재능이 2인자 자리에 머무를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디퍼 마우스 블루스 (Dipper Mouth Blues)1923 (38세)실황 Secret Six · King Oliver 100주년 헌정 2023 뉴올리언스 재즈 박물관

크리올 재즈 밴드가 가장 뜨거웠던 시절, 올리버 자신이 트레이드마크로 삼은 뮤트 주법이 고스란히 담긴 곡이다.

  • 곡 중반 올리버가 뮤트를 물려 연주하는 세 코러스짜리 솔로(열두 마디 블루스를 세 바퀴 도는 독주)는 이후 수많은 트럼펫 주자가 그대로 따라 연주할 만큼 유명해졌다.
  • 클라리넷의 조니 다즈, 트롬본의 오노레 뒤트레, 코넷의 올리버가 동시에 각자 다른 가락을 얹어 내는 대목에서 뉴올리언스 스타일 합주(여럿이 동시에 즉흥으로 얽혀 연주하는 방식)를 생생히 들을 수 있다.
  • 열두 마디 블루스 틀 위에서 곡이 반복되며 조금씩 열기가 오르는 구조로, 초기 재즈 레코딩 특유의 거친 녹음 상태마저 현장감을 더한다.
  • 베이비 다즈의 드럼은 화려한 기교보다 안정된 박을 지키는 데 집중하며 관악기들의 즉흥을 든든히 받쳐 준다.
YouTube에서 듣기 ↗
♪스네이크 랙 (Snake Rag)1923 (38세)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선 두 코넷의 호흡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녹음으로, 암스트롱을 곁에 부른 결정이 음악으로 증명된 순간이다.

  • 올리버와 암스트롱 두 코넷이 사전에 맞춘 듯 동시에 같은 브레이크 선율을 연주하는 대목이 곡의 핵심으로, 실제로는 무대 밖에서 미리 짜 둔 합의된 즉흥이었다고 전해진다.
  • 래그타임에서 물려받은 당김음(제 박자를 살짝 비껴 놓아 흥을 주는 신코페이션)이 곡 전체에 깔려 있어, 재즈가 래그타임에서 갈라져 나온 흔적을 들을 수 있다.
  • 릴 하딘의 피아노는 화려한 솔로보다 리듬을 단단히 다지는 반주에 충실하다.
♪차임스 블루스 (Chimes Blues)1923 (38세)

스무 살 남짓한 루이 암스트롱이 녹음에 남긴 첫 독주로, 스승이 자기 밴드 안에서 제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내준 드문 순간이다.

  • 암스트롱의 짧은 솔로 코러스는 이후 그가 보여줄 화려한 즉흥과 비교하면 소박하지만, 종을 흉내 낸 듯한 도입부 선율 때문에 곡 제목이 붙었다.
  • 올리버는 이 곡에서 뒤로 물러나 앙상블 반주에 머무르며, 밴드 리더가 스스로 무대 앞자리를 양보한 흔치 않은 사례로 남았다.
  • 형식은 헤드(주제 선율)-솔로-헤드로 단순하게 짜여 있어, 초기 재즈가 아직 정형화된 형식을 다듬어 가던 과도기를 보여준다.

V. 균열 · 1924–1927 (39–42세)

(이별) 1924년, 암스트롱은 릴의 권유로 뉴욕의 플레처 헨더슨 악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더 높은 개런티와 더 큰 무대를 좇은 결정이었지만, 올리버에게는 자신이 키운 제자를 떠나보내는 서운함이 컸다고 전해진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후로도 예의를 지켰지만 예전 같은 밀착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딕시) 크리올 재즈 밴드가 흩어진 뒤 '킹 올리버 앤드 히스 딕시 신코페이터스'를 새로 꾸려 시카고의 플랜테이션 카페 등에서 연주를 이어 갔다. 편성을 키우고 더 세련되고 달콤한 편곡을 앞세운 방향은 상업적으로는 나쁘지 않았지만, 초기 크리올 밴드가 지녔던 거친 즉흥의 열기는 조금씩 옅어졌다. (코튼클럽) 1927년, 뉴욕 코튼클럽 측이 그의 악단에 상주 출연을 제안했다. 훗날 듀크 엘링턴에게 돌아가 엘링턴의 경력을 밀어 올린 그 자리였다. 그는 제시된 출연료가 성에 차지 않는다며 조건을 더 요구하다 협상이 결렬됐고, 이 결정은 재즈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뼈아픈 판단 착오로 남았다. (잇몸) 비슷한 시기 심한 잇몸병을 앓기 시작했다. 이가 하나둘 빠지면서 입술과 턱을 쓰는 방식, 이른바 앙부슈어가 무너졌고 트럼펫 소리는 예전 같지 않게 됐다. 이 사실을 오래 숨기려 애썼고, 밴드에 젊은 트럼펫 주자를 두어 자신의 파트를 대신 불게 하면서도 무대 앞에는 여전히 자신이 섰다.

♪스내그 잇 (Snag It)1926 (41세)실황 Keith Nichols 지휘 · 2012 Whitley Bay

딕시 신코페이터스 시절, 몸집을 키운 편성과 세련된 편곡 속에서도 올리버 특유의 걸쭉한 블루스 감각이 살아 있는 곡이다.

  • 올리버 자신의 뮤트 솔로가 곡 후반부에 등장해, 예전만큼 기교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목소리처럼 구성진 음색은 여전하다.
  • 색소폰과 클라리넷이 가세한 두꺼운 앙상블 사운드는 초기 크리올 밴드의 거친 편성과 달리 좀 더 정돈된 편곡을 예고한다.
  • 열두 마디 블루스를 여러 차례 반복하며 악기를 바꿔 가며 솔로를 주고받는 구성이 뚜렷하다.
YouTube에서 듣기 ↗
♪닥터 재즈 (Doctor Jazz)1927 (42세)연주 King Oliver & His Dixie Syncopators (1927)

몸이 예전 같지 않던 시기에도 밴드 리더로서 무대를 지키려 했던 그의 안간힘이 담담하게 느껴지는 녹음이다.

  • 노래하듯 이어지는 멜로디 라인을 관악기들이 나눠 부르는 구성이어서, 보컬이 없어도 노래 같은 느낌을 준다.
  • 밴드 전체가 한 박자씩 밀고 당기며 흥을 돋우는 스윙감이 편안하게 흘러가며, 무리한 기교보다 안정된 앙상블에 무게를 둔 편곡이 두드러진다.
YouTube에서 듣기 ↗
♪웨스트 엔드 블루스 (West End Blues)1928 (43세)연주 King Oliver and his Dixie Syncopators (1928년 6월 녹음)

잇몸병으로 연주가 흔들리던 무렵 딕시 신코페이터스가 먼저 취입한 판본으로, 보름 남짓 뒤 암스트롱이 남긴 전설적인 녹음과 나란히 놓고 들으면 스승과 제자가 같은 곡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끌어안았음을 느낄 수 있다.

  • 올리버는 화려한 도입부 대신 절제된 앙상블로 곡을 열어, 이후 암스트롱 판이 보여줄 대담한 무반주 도입부와 뚜렷이 대비된다.
  • 밴드 전체가 주제 선율을 함께 다루는 방식이어서, 한 사람의 기교보다 앙상블의 균형에 무게를 둔 올리버 특유의 후기 스타일을 보여준다.
  • 이 시기 그의 트럼펫 톤은 예전만큼 힘 있게 뻗지 못하지만, 오히려 그 숨죽인 소리가 당시 그의 처지를 짐작하게 한다.
YouTube에서 듣기 ↗

VI. 대공황 속의 유랑 · 1927–1935 (42–50세)

(순회) 코튼클럽 기회를 놓친 뒤 밴드를 이끌고 남부와 중서부 여러 도시를 떠도는 순회공연에 매달렸다. 1929년 대공황이 닥치며 클럽과 극장의 사정은 급격히 나빠졌고, 개런티는 갈수록 줄었으며 공연이 취소되는 일도 잦았다. (해체) 단원들의 급여를 제때 주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밴드는 점차 흩어졌다. 악기와 소지품을 팔아 급한 대로 돈을 마련해야 했던 시기도 있었다고 전해지며, 한때 재즈계에서 손꼽히던 밴드 리더가 겪는 이 몰락은 동시대 음악가들에게도 안타까움을 남겼다. (건강) 잇몸병은 갈수록 심해져 트럼펫을 제대로 불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천식을 비롯한 다른 지병까지 겹치며 몸도 약해졌다. 그럼에도 무대에 서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연주보다는 밴드를 이끄는 지휘자이자 흥행사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 했다.

VII. 서배너의 마지막 나날 · 1935–1938 (50–53세)

(정착) 1936년 무렵, 조지아주 서배너에 흘러들어 정착했다. 더 이상 순회공연으로 밴드를 꾸릴 형편이 되지 못했고, 그곳에서 과일과 채소를 파는 노점을 열고 당구장 청소부로 일하며 생계를 이었다. (편지) 이 시기 뉴욕의 지인들과 가족에게 보낸 편지 몇 통이 남아 있다. 편지에는 돈을 부탁하는 곤궁한 사정과 함께, 언젠가 다시 밴드를 꾸려 무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었다고 전해진다. 자존심이 강했던 그는 옛 동료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자세히 알리기를 꺼렸다고 한다. (죽음) 1938년 4월, 서배너에서 치료비도 대지 못한 동맥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쉰둘이었다. 곁에는 큰 재산도, 한때 그를 따르던 화려한 악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안장) 이복누나 빅토리아와 의붓딸 루비를 비롯한 가족과 지인들이 돈을 모아 유해를 뉴욕으로 옮겼고, 우드론 묘지에 묻혔다. 훗날 이 묘지에는 듀크 엘링턴과 마일스 데이비스를 비롯해 여러 재즈 거장이 함께 잠들게 된다.

덜 알려진 이야기

「디퍼 마우스 블루스」가 훗날 다른 밴드에 의해 「슈가 풋 스톰프」라는 제목으로 다시 녹음되며 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정작 그 밑바탕이 된 원곡을 쓴 올리버 자신에게는 별다른 저작권 수입이 돌아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자신이 만든 곡을 제때 등록하지 않았고, 계약과 저작권 절차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그의 사후 한참이 지나 음악학자들이 초기 재즈 레코딩의 저작권 관계를 다시 파헤치면서야 비로소 조명받았다. 그가 평생 사진마다 고개를 살짝 돌려 오른쪽 얼굴만 보이도록 했다는 사실은 최근에서야 전기 작가들 사이에서 구체적으로 정리됐다. 어린 시절 시력을 잃은 왼쪽 눈을 가리려는 습관이었으리라 짐작되지만, 그 자신이 이 일을 입에 올린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당대에는 그저 사진 찍는 방식의 개인적 취향 정도로 여겨져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잇몸병으로 연주가 어려워진 뒤에도 무대 맨 앞에 서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시늉만 하고, 실제 소리는 밴드에 새로 들인 젊은 트럼펫 주자가 옆에서 대신 채워 주었다는 증언이 당시 함께 연주했던 단원들 사이에서 전해진다. 리더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안간힘이었지만, 이런 사정은 화려했던 전성기의 명성에 가려 오랫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서배너에서 지내던 마지막 몇 해 동안 옛 동료들에게 보낸 편지 몇 통이 훗날 전기 작가들의 손에 들어왔다. 편지에는 노골적인 구걸 대신 안부를 묻는 말미에 슬쩍 어려운 형편을 흘리는 방식으로 도움을 청하는 문장들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한때 시카고를 주름잡던 밴드 리더의 자존심이 마지막까지 살아 있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용어 노트 📚🔎

집단 즉흥연주

(재즈에서) 뉴올리언스 초기 재즈에서 코넷·클라리넷·트롬본이 동시에 각자의 가락을 얹어 서로 얽히게 연주하는 방식이다. 한 사람이 솔로를 치고 나머지가 반주하는 후대의 스윙·비밥과 달리, 세 악기가 동시에 대화하듯 얽힌다. 학교 합창에서 여러 파트가 서로 다른 가락을 동시에 부르는 돌림노래를 떠올리면 비슷하다. 다만 재즈의 집단 즉흥은 미리 짜인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서로 눈치껏 맞춰 나간다는 점이 다르다.

브레이크

(말뜻) 영어 break는 끊다, 끊어지다라는 뜻이다. (재즈에서) 밴드 전체가 잠깐 연주를 멈추고 한두 마디 동안 한 악기만 짧게 튀어나와 연주하는 순간을 말한다. 반 친구들이 다 같이 손뼉을 치다가 한 명만 잠깐 멈춰서 혼자 박수 리듬을 넣고 다시 다 같이 합류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초기 재즈에서는 이 짧은 순간에 즉흥연주자의 개성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12마디 블루스

(재즈에서) 블루스 노래와 연주 대부분이 따르는 열두 마디짜리 화음 진행의 틀이다. 처음 네 마디, 다음 네 마디, 마지막 네 마디로 나뉘고 정해진 순서로 화음이 바뀐다. 동요를 부를 때 정해진 소절 수마다 후렴이 돌아오는 것과 비슷하게, 열두 마디가 끝나면 처음 화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한다. 연주자들은 이 틀을 외워 두고 그 위에서 매번 다르게 즉흥연주를 얹는다.

뮤트

(말뜻) 영어 mute는 소리를 죽이다, 벙어리의라는 뜻이다. (재즈에서) 금관악기의 나팔 끝에 꽂거나 손으로 막아 소리의 색깔과 크기를 바꾸는 도구나 손동작을 말한다. 킹 올리버는 컵이나 양철통, 아기용 젖병 뚜껑 같은 것까지 활용해 사람 목소리처럼 우는 듯한 소리를 냈다. 놀이터에서 손나팔을 만들었다 뗐다 하며 소리를 바꿔 보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다른 데서는) 회의 프로그램이나 마이크에서 소리를 끄는 버튼도 뮤트라고 부른다.

앙부슈어

(말뜻) 프랑스어로 입을 뜻하는 부슈(bouche)에서 온 말로, 악기에 입을 대는 방식을 가리킨다. (재즈에서) 금관악기나 목관악기를 불 때 입술과 근육, 턱을 쓰는 방식 전체를 말한다. 킹 올리버는 잇몸병으로 이가 많이 빠지면서 이 앙부슈어가 무너져 더 이상 예전처럼 트럼펫을 불 수 없게 됐다. 오래 매달려 훈련한 자세가 무너지면 다시 잘하기 어려운 것처럼, 앙부슈어도 한번 무너지면 되돌리기 힘든 몸의 기술이다.

신코페이션

(말뜻) 영어 syncopation은 그리스어로 자르다, 줄이다는 뜻의 syncope에서 왔다. (재즈에서) 원래 강하게 떨어져야 할 박자를 일부러 비켜 놓아 리듬에 긴장과 흥을 주는 기법이다. 줄넘기를 할 때 박자에 딱 맞춰 뛰지 않고 살짝 어긋나게 뛰어 넘는 순간의 짜릿함과 비슷하다. 래그타임과 초기 재즈 모두 이 어긋난 박자를 즐겨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