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lly Roll Morton
「나는 1902년에 재즈를 발명했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연애애니타 곤잘레스
여러 해를 함께한 동반자로, 로스앤젤레스 사업을 도왔고 말년까지 인연이 이어졌다.
- 영향스콧 조플린
래그타임의 정연함을 물려받되, 모튼은 그 위에 즉흥과 스윙감을 얹으려 했다.
- 동료키드 오리
레드 핫 페퍼스의 트롬본 주자로, 뉴올리언스 특유의 굵직한 음색을 더했다.
- 후원월터·레스터 멜로즈
악보를 출간해준 출판업자였지만, 저작권 배분을 둘러싼 불신이 평생 이어졌다.
- 경쟁W.C. 핸디
블루스의 창시자로 알려진 그에 맞서, 모튼은 자신이 진짜 창시자라 주장하며 반목했다.
- 후원앨런 로맥스
1938년 의회도서관 구술 녹음을 이끌어, 모튼의 이야기를 후대에 남겼다.
I. 크레올의 아이 · 1890–1904 (0–14세)
(뉴올리언스) 1890년 10월,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다. 세례명은 페르디낭 조제프 라모트였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스스로 나이를 여러 해 낮춰 말하곤 해, 오랫동안 정확한 출생년도를 둘러싸고 혼선이 있었다. (혼혈) 아버지 에드워드 라모트와 어머니 루이즈는 뉴올리언스의 유색 크레올 사회에 속한 집안이었다. 크레올은 프랑스·스페인계와 아프리카계 혈통이 섞인 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벽돌공이었던 아버지처럼 도시 안에서 어엿한 장인 계층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갓 도시로 유입된 흑인 노동계급과 구분 지으려는 자의식이 강했다. (상실) 어머니가 그가 열다섯 살 무렵인 1906년 세상을 떠났고, 이후 외증조모의 집과 대모 에울랄리 에코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가족) 친아버지는 그가 세 살 무렵 집을 떠났고, 어머니가 1894년 재혼한 의붓아버지 윌리엄 무통의 성을 영어식으로 바꾼 것이 모튼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이후 그는 평생 이 이름으로 살았다. (성당)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미사와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체면과 품위를 소중히 여긴 크레올 특유의 자의식은 훗날 그가 다이아몬드 앞니와 화려한 옷차림으로 자신을 내세우던 허세의 뿌리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II. 스토리빌의 건반 · 1904–1917 (14–27세)
(스토리빌) 10대 초, 뉴올리언스의 홍등가 스토리빌의 술집과 사창가에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스스로는 열네 살 무렵이라 회고했지만 정확한 시점은 불확실하다. (추방) 체면을 중시하던 집안 어른들은 그가 사창가에서 건반을 두드린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노했고,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그를 집에서 내쫓았다. 이때부터 모튼은 스스로 생계를 꾸려야 했다. (방랑) 이후 20대에 걸쳐 걸프 연안과 멤피스, 시카고, 캔자스시티를 떠돌며 피아노를 쳤다. 당구 도박과 카드 노름으로 돈을 벌었고, 한때는 포주 노릇도 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스타일) 이 시기 그는 래그타임의 정박과 블루스의 흐느낌, 프랑스풍 카드릴, 오페라 선율까지 한데 녹여 넣는 자신만의 건반 어법을 다듬었다. 그는 이 리듬적 강세를 스스로 스패니시 팅지(스페인풍 악센트)라 불렀다. (조플린) 방랑 중 스콧 조플린의 명성과도 마주쳤다. 모튼은 조플린의 「단풍잎 래그」 같은 곡이 악보 그대로는 밋밋하다며 스윙감을 살려 다시 쳐야 한다고 자주 주장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두 사람이 대표하는 세대와 미학의 차이를 보여준다. 조플린이 악보에 새긴 정연한 래그타임이라면, 모튼은 그 위에서 즉흥과 감정을 얹으려 했다.
방랑하며 다듬은 스타일이 처음 악보로 인쇄돼, 스스로 작곡가임을 증명하려던 순간이었다.
- 느릿한 인트로에서 왼손이 스페인풍으로 당겨 오는 저음(스패니시 팅지)이 곡 전체의 리듬적 성격을 미리 알린다.
- 오른손 멜로디는 래그타임의 정연함과 블루스의 흐느낌을 오가며, 한 프레이즈 안에서도 감정이 여러 번 바뀐다.
- 1915년 인쇄 악보로 출간된 이 곡은 스스로 재즈 작곡가임을 증명하려던 그의 자의식을 보여준다.
- 이후 여러 판본으로 반복 녹음되며, 매번 즉흥의 세부가 달라지는 점도 들어볼 만하다.
III.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카고로 · 1917–1926 (27–36세)
(로스앤젤레스) 1917년 무렵 로스앤젤레스로 옮겨, 오랜 연인 애니타 곤잘레스와 함께 지냈다.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지만 여러 해를 동반자로 지냈고, 애니타는 호텔과 카바레 운영을 도우며 그의 사업 감각에 영향을 주었다. (자부심) 이 무렵부터 모튼은 자신이 1902년에 재즈를 발명했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기 시작했다. 다이아몬드를 앞니에 박아 넣고 화려한 정장을 즐겨 입었으며, 이런 허세는 동료들 사이에서 종종 반감을 샀다. (시카고) 1923년 시카고로 옮겨 겐넷 레이블에서 첫 피아노 독주 녹음을 남겼다. 「킹 포터 스톰프」를 비롯한 이 초기 녹음은 그가 오랜 방랑 속에 다듬어 온 건반 어법을 처음으로 온전히 문서화한 기록이었다. (출판) 시카고에서 출판업자 형제 월터·레스터 멜로즈와 손잡고 악보를 출간했지만, 인세 배분을 둘러싼 불신은 이때부터 이미 싹텄다. 모튼은 훗날까지 이들이 자신의 저작권을 헐값에 가져갔다고 분노했다.
첫 겐넷 독주 녹음으로, 오랜 방랑 끝에 다듬은 건반 어법을 처음 문서로 남긴 순간이었다.
- 왼손이 규칙적으로 저음과 화음을 오가는 스트라이드 반주(스트라이드 피아노) 위로 오른손이 여러 선율 악상을 차례로 펼친다.
- 래그타임처럼 여러 부분이 이어지는 행진곡 형식을 따르면서도, 각 부분 사이 셈여림과 당김음 처리가 즉흥적으로 들린다.
- 이 곡은 훗날 베니 굿맨과 플레처 헨더슨의 스윙 빅밴드 버전으로 편곡되며 시대를 건너 살아남았다.
- 혼자 치는 피아노임에도 마치 여러 악기가 주고받는 듯한 다성적 질감이 느껴진다.
IV. 레드 핫 페퍼스 · 1926–1930 (36–40세)
(빅터) 1926년 빅터 레이블과 계약하며 레드 핫 페퍼스라는 이름으로 녹음을 시작했다. 그는 단순한 반주자가 아니라 편곡자로서, 정해진 합주와 즉흥 솔로를 세밀하게 배치하는 방식으로 뉴올리언스 재즈를 정교하게 다듬었다. (멤버) 트롬본에 키드 오리, 코넷에 조지 미첼, 클라리넷에 오머 시먼, 밴조에 조니 세인트 사이어, 베이스에 존 린지, 드럼에 앤드루 힐레어가 함께했다. 모튼은 피아노에 앉아 전체를 지휘하듯 이끌었다. (결혼) 1928년 무용수 메이블 버트런드와 결혼했다. 둘 사이에 자녀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모튼에게 생물학적 자녀가 있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전성기) 「블랙 보텀 스톰프」, 「데드 맨 블루스」, 「닥터 재즈」 같은 녹음들이 이 시기에 쏟아졌다. 격식과 자유로움을 오가는 그의 편곡은 훗날 재즈 편곡사에서 가장 정교한 초기 사례로 꼽힌다. (균열) 그러나 밴드 내에서도 모튼의 완벽주의와 고압적 지휘에 불만을 갖는 단원이 있었고, 편성은 자주 바뀌었다.
레드 핫 페퍼스의 대표작으로, 짜인 합주와 즉흥을 오가는 그의 편곡 감각이 절정에 이르렀다.
- 합주가 잠깐 멈추고 한 악기만 튀어나오는 짧은 대목(브레이크)이 곡 곳곳에 배치돼 각 연주자의 개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 키드 오리의 트롬본은 낮은 음역을 미끄러지듯 오가며 뉴올리언스 특유의 굵직한 색채를 더한다.
- 존 린지의 베이스와 앤드루 힐레어의 드럼이 만드는 단단한 저변 위에서, 주제 합주와 개인 솔로가 교대로 이어지는 형식(헤드-솔로-헤드)이 뚜렷하게 들린다.
- 오머 시먼의 클라리넷 솔로는 유려한 스케일 진행으로 특히 많이 회자된다.
장송곡풍 인트로로 시작해, 삶과 죽음을 오가는 뉴올리언스 장례 행렬의 정서를 담았다.
- 느린 클라리넷 삼중주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뉴올리언스 장례 행렬에서 무덤으로 향할 때 연주하는 애도의 음악을 떠올리게 한다.
- 중반부터 템포가 살아나며 화성이 밝아지는 전개는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흥겨운 곡을 연주하던 관습(재즈 퓨너럴)을 음악적으로 재현한다.
- 합주와 솔로가 교차하는 짜임새 안에서 모튼 자신의 피아노는 두드러지지 않지만 전체 구성을 단단히 받쳐준다.
킹 올리버가 쓴 곡을 모튼이 직접 노래한 보컬 넘버로, 허세와 자기 과시로 가득한 그의 무대 위 페르소나를 들려준다.
- 모튼의 목소리는 정확한 음정보다 능청스러운 화법과 리듬감으로 곡을 이끈다.
- 밴드가 그의 노래에 짧게 답하듯 끼어드는 콜 앤드 리스폰스(부르고 답하기) 구조가 선명하다.
- 노랫말 속 인물은 모튼 자신의 허풍 섞인 자기 홍보와 겹쳐 들린다.
V. 몰락 · 1928–1938 (38–48세)
(뉴욕) 1928년 뉴욕으로 옮겼으나, 스윙 시대가 열리며 그의 뉴올리언스풍 편곡은 낡은 것으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빅터와의 계약도 1930년 끝났다. (궁핍) 대공황이 덮치며 녹음 기회는 급격히 줄었고, 한때 다이아몬드 앞니와 값비싼 정장을 자랑하던 그는 전당포를 드나드는 처지가 됐다. (워싱턴) 1930년대 중반에는 워싱턴 D.C.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매니저 겸 연주자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었다. 한때 재즈계를 호령했던 그에게는 무명에 가까운 시절이었다. (칼부림) 1938년, 그 클럽에서 벌어진 다툼 중 칼에 찔리는 상해를 입었다. 이 부상은 이후 그의 건강을 갉아먹었고, 심장과 천식 증세가 겹치며 회복은 더뎠다. (분노) 그는 자신의 저작권과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억울함을 놓지 않았다. 특히 W.C. 핸디가 블루스를 만든 인물로 알려지는 데 반발해, 자신이야말로 재즈와 블루스의 진짜 창시자라 주장하는 편지를 잡지에 보내기도 했다.
VI. 로맥스의 기록과 마지막 무대 · 1938–1941 (48–51세)
(로맥스) 1938년, 민속음악학자 앨런 로맥스가 미국 의회도서관을 위해 모튼의 연주와 구술을 방대하게 녹음했다. 그는 스토리빌 시절의 기억과 자신의 음악관을 몇 주에 걸쳐 풀어놓았고, 이는 훗날 재즈 초기사를 복원하는 핵심 자료가 됐다. (재기) 이 기록 덕에 잠시 관심이 되살아나면서, 1939년 뉴욕에서 시드니 베셰 등과 함께 새 세션을 녹음했다. 「메이미스 블루스」 같은 곡은 이 만년의 짧은 재기 속에서 남겨졌다. (로스앤젤레스) 1940년 말, 그는 그해 로스앤젤레스에서 숨진 대모 에울랄리 에코의 유품을 정리하고 재기를 노리겠다며 서부로 향했다. 그곳에서 여전히 인연이 남아 있던 애니타 곤잘레스와 다시 만났다. (죽음) 1941년 7월 10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0세, 오랜 부상의 후유증과 심장 질환이 겹친 결과였다. (유산) 생전에 인정받지 못한 저작권과 공로는 사후에야 재평가받기 시작했고, 그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남긴 방대한 녹음과 구술은 오늘날 재즈 초기사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원천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앨런 로맥스를 위한 의회도서관 녹음에서 부른 자전적인 노래로, 스토리빌 시절의 기억을 담담히 되짚는다.
- 혼자 치는 피아노와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만으로 이뤄져, 화려했던 레드 핫 페퍼스 시절과 대비되는 헐벗은 질감을 들려준다.
- 로맥스와의 대화 중 녹음된 만큼, 연주 사이사이 회고하는 말투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 젊은 시절 스토리빌에서 즐겨 부르던 가락을 노년의 목소리로 다시 꺼내는 순간이 이 녹음의 핵심이다.
만년의 짧은 재기 세션에서 남긴 마지막 피아노 독주 가운데 하나로, 담백하고 쓸쓸한 어법이 두드러진다.
- 군더더기 없는 왼손 반주 위에 오른손이 느리게 우는 듯한 선율을 얹어, 화려한 기교 대신 절제된 표현을 택했다.
- 열두 마디 블루스 형식을 반복하면서도 매 코러스마다 셈여림을 미세하게 바꿔 감정의 결을 조금씩 달리한다.
- 모튼 스스로 스토리빌에서 알던 한 여인을 위한 곡이라 밝혔다고 전해지며, 초기 기억을 소환하는 말년의 자기 성찰처럼 들린다.
덜 알려진 이야기
모튼은 스스로를 재즈의 유일한 창조자로 내세운 인물로 기억되지만, 로맥스가 남긴 구술 녹음을 들어보면 그가 실제로는 뉴올리언스 음악계의 촘촘한 계보를 매우 세밀하게 짚어낸 기록자였다는 점이 드물게 언급된다. 그는 버디 볼든부터 동료 피아니스트들의 손버릇, 스토리빌 업장별 관행까지 구체적으로 열거했는데, 이는 당대 흑인·크레올 음악가들의 구술사가 문서로 거의 남지 않았던 시절에 이례적으로 상세한 1차 증언이었다. 이 자료는 오랫동안 의회도서관 서고에 방치되었다가 수십 년 뒤 학자들이 재편집하면서야 재즈사 연구의 핵심 사료로 부각되었다. 아울러 애니타 곤잘레스와의 관계는 정식 결혼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각주 취급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그의 사업 운영 전반에 깊이 개입한 동반자였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유족과 초기 전기 작가들이 정식 배우자였던 메이블 버트런드 쪽 서술을 중심에 두면서 애니타의 역할이 자연스레 축소된 결과로 보인다.
용어 노트 📚🔎
크레올
(말뜻) 크레올은 원래 유럽 사람이 식민지에서 낳아 기른 자식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그런데 뉴올리언스에서는 뜻이 조금 달라져서, 프랑스·스페인계 조상과 아프리카계 조상이 함께 섞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재즈에서) 뉴올리언스의 크레올 음악가들은 어릴 때부터 프랑스식 음악 학교에서 악보 읽는 법과 화성 이론을 정식으로 배운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도시의 흑인 브라스밴드에서 전해 내려오던 리듬과 즉흥연주 감각이 더해지면서, 이 둘이 만나는 자리에서 초기 재즈의 여러 표현이 태어났다. 반 친구들 중 한쪽은 태권도를, 다른 쪽은 발레를 배워 온 아이들이 함께 춤을 만들면 두 가지 동작이 섞인 새로운 춤이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크레올은 음식 이름에도 쓰인다. 프랑스·스페인·아프리카·카리브 지역의 조리법이 섞인 루이지애나식 요리를 크레올 요리라고 부른다.
래그타임
(말뜻) 래그타임은 영어로 누더기 박자라는 뜻이다. 오른손이 정박에서 살짝 어긋나게 멜로디를 치는 소리가 마치 천이 헤져서 너덜너덜한 것처럼 들린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재즈에서) 왼손은 규칙적으로 저음과 화음을 오가고, 오른손은 그 박자를 살짝 비껴가며 멜로디를 연주하는 피아노 음악 양식이다. 스콧 조플린이 악보로 정리해 유행시켰고, 재즈가 태어나기 전 세대를 대표하는 흥겨운 건반 음악으로 꼽힌다. 친구와 손뼉치기 놀이를 할 때 한 사람이 박자를 살짝 앞서거나 늦게 치는데도 전체 흐름은 안 깨지고 오히려 더 재미있어지는 느낌과 비슷하다.
스패니시 팅지
(말뜻) 영어로 팅지(tinge)는 살짝 물든 색깔이나 기미라는 뜻이다. 그래서 스패니시 팅지는 스페인풍으로 살짝 물든 느낌, 곧 스페인풍 악센트라는 뜻이 된다. (재즈에서) 모튼이 스스로 이름 붙인 표현으로, 라틴 음악에서 온 당김음 리듬을 재즈 안에 끌어들인 것을 가리킨다. 박자를 정박에 맞춰 딱딱 치는 대신 살짝 당겨서 먼저 오게 연주하는 방식인데, 이는 훗날 재즈와 라틴 음악이 계속 만나게 되는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줄넘기를 할 때 정확한 박자에 맞춰 뛰는 대신 한 박 먼저 뛰어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블루스
(말뜻) 영어로 블루(blue)는 파란색이라는 뜻 말고도 우울하다, 마음이 가라앉는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블루스라는 이름에는 이렇게 슬프고 애환 어린 감정을 담은 음악이라는 뜻이 이미 들어 있다. (재즈에서) 열두 마디를 한 단위로 삼아 정해진 화음 진행을 반복하고, 그 위에 슬픔과 애환을 담은 가락을 얹는 형식이다. 재즈 즉흥연주자들은 이 열두 마디 틀을 몇 번이고 돌려 가며 그때그때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술래잡기를 할 때 규칙은 똑같은데 판마다 도망치는 방법과 잡히는 순간이 매번 다르게 펼쳐지는 것처럼, 블루스도 같은 틀 안에 매번 다른 감정을 채워 넣는 놀이와 비슷하다.
스윙(리듬감)
(재즈에서) 박자를 정확히 절반씩 나누어 치지 않고, 뒷부분을 살짝 끌어당기듯 밀고 당기며 연주해서 듣는 사람 몸이 저절로 들썩이게 만드는 리듬적인 느낌을 말한다. 이 미묘한 밀고 당기는 감각은 악보에 정확히 적을 수 없어서, 연주자들은 함께 연주하며 몸으로 익힌다. 그네를 탈 때 내려갔다 올라가는 타이밍을 아주 조금 늦추면 훨씬 신나게 흔들리는 것처럼, 스윙도 박자를 살짝 늦추는 데서 신나는 느낌이 나온다. (다른 데서는) 스윙은 골프나 야구에서 방망이나 클럽을 휘둘러 공을 치는 동작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브레이크
(재즈에서) 합주가 잠깐 멈추고 한 악기, 또는 리듬을 맡은 몇몇 악기만 짧게 튀어나와 연주하는 대목을 말한다. 이 짧은 순간에 다른 소리가 다 빠지기 때문에, 연주자 한 사람의 개성과 순발력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다. 여럿이 합창을 하다가 한 소절만 혼자 튀어나와 부르고 나서 다시 다 같이 합류하는 것과 비슷하다.
헤드-솔로-헤드
(말뜻) 영어로 헤드(head)는 머리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곡의 첫머리에 나오는 주제 선율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재즈에서) 먼저 모두 함께 주제 선율을 연주하고(헤드), 이어서 연주자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즉흥연주를 펼친 뒤(솔로), 마지막에 다시 다 같이 주제 선율로 돌아오는(헤드) 재즈 연주의 기본 진행 방식이다. 모튼은 이 틀 안에 미리 짜 둔 합주 구간까지 섞어 넣어서 더 정교하게 다듬었다. 이야기를 시작할 때와 끝날 때 똑같은 인사말을 쓰고, 그 사이에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넣는 것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