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ott Joplin
"래그타임을 빠르게 연주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 스콧 조플린이 자신의 랙 악보 위에 직접 적어 넣은 연주 지시문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플로렌스 기븐스
밴조와 노래로 아들의 음악적 감성을 키운 어머니였다.
- 스승줄리어스 바이스
독일계 이민자 음악 교사로 무료로 화성학과 오페라를 가르쳐 그의 클래식 지향을 심었다.
- 동료스콧 헤이든
세달리아 시절 함께 랙을 공동 작곡한 동료 피아니스트이자 첫 아내의 인척이었다.
- 후원존 스타크
메이플 리프 랙에 이례적인 인세 계약을 맺어준 악보 출판업자로 평생의 수입원을 마련해 주었다.
- 가족로티 스톡스 조플린
1909년 결혼한 세 번째 아내로 하숙집을 운영하며 그의 마지막 작업을 지탱했다.
- 영향젤리 롤 모튼
스스로 재즈를 발명했다 주장한 후배 피아니스트로, 조플린의 래그타임을 자신이 딛고 선 토대로 꼽았다.
I. 텍사스의 소년 · 1868–1880 (0–12세)
(출생) 1868년, 미국 텍사스주 북동부 카스 카운티의 작은 마을 린든 인근에서 태어났다. 정확한 생일은 기록마다 엇갈려 11월 24일로 흔히 전해지지만 확정된 출생증명서는 남아 있지 않다. 아버지 자일스 조플린은 한때 노예 신분이었던 흑인 남성으로 주인의 저택에서 바이올린 켜는 법을 익혔고, 어머니 플로렌스 기븐스는 자유민으로 태어나 밴조를 뜯고 노래하기를 좋아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여섯 남매가 태어났고 스콧은 그 가운데 하나였다. (텍사캐나) 가족은 얼마 지나지 않아 텍사스와 아칸소의 경계 도시 텍사캐나로 옮겨갔다. 아버지는 철도 노동으로, 어머니는 부유한 백인 가정의 청소부로 일하며 생계를 이었다. 플로렌스는 자신이 일하는 집의 피아노를 아들이 만질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고, 어린 스콧은 그 낯선 건반 앞에서 처음으로 화음을 짚어보았다고 전해진다. (바이스) 소년의 재능을 눈여겨본 이는 이웃에 살던 독일계 유대인 음악 교사 줄리어스 바이스였다. 그는 흑인 아이에게 정식 수업료를 받지 않고 화성학과 유럽 오페라를 가르쳤고, 이 만남은 훗날 조플린이 춤곡 작곡가에 머물지 않고 오페라를 쓰겠다는 야망을 품게 된 뿌리가 되었다. (불화) 그러나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음악을 생계의 방편으로 여기지 않았고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쌓이다 결국 부모는 갈라섰다고 전해진다. 어머니는 홀로 자식들을 건사하면서도 아들의 건반 앞 시간을 지켜주었고, 스콧은 그 가난과 애정이 뒤섞인 어린 시절의 기억을 평생 말수 적게 안고 살았다.
II. 유랑하는 피아니스트 · 1880–1894 (12–26세)
(가출) 십 대 중반 무렵 집을 나서 홀로 건반 하나로 생계를 꾸리는 유랑 생활을 시작했다. 텍사스 각지와 인접한 주들을 오가며 철도 노동자, 광부, 뜨내기들이 모이는 거리의 술집에서 피아노를 쳤다. (밑바닥) 당시 흑인 피아니스트에게 열려 있던 무대는 대개 선술집과 도박장, 사창가였다. 조플린은 그런 자리에서 행진곡과 흑인 영가, 민스트럴 쇼 선율을 뒤섞어 즉석에서 연주하며 왼손으로 규칙적인 저음을 짚고 오른손으로 박자를 어긋내는 훗날 래그타임의 골격을 다듬어갔다. (시카고) 1893년에는 순회 성악 사중창단과 함께 시카고 만국박람회 주변을 찾았다고 전해진다. 정작 박람회 공식 무대에는 래그타임이 오르지 못했지만, 전국에서 몰려든 흑인 피아니스트들이 박람회 인근 거리와 술집에서 서로의 연주를 듣고 배우면서 이 신생 음악이 소리 없이 퍼져나간 자리였다. (차별) 이 시절의 조플린을 지배한 조건은 인종 분리였다. 백인 극장이나 정규 음악학교의 문은 그에게 열려 있지 않았고, 그가 설 수 있는 무대는 늘 도시의 그늘진 구역이었다. 훗날 그가 래그타임을 저급한 유흥 음악이 아닌 예술로 인정받게 만들겠다고 집착한 밑바탕에는 이 시절 겪은 멸시가 있었다고 여겨진다.
III. 세달리아, 메이플 리프 · 1894–1900 (26–32세)
(세달리아) 1894년 무렵 미주리주 세달리아에 정착했다. 흑인 학생을 위해 세워진 조지 R. 스미스 대학에서 잠시 화성학과 작곡을 정식으로 공부하며 유랑 시절 귀로만 익힌 음악을 이론으로 다시 세웠다. (클럽) 흑인 사교 클럽인 메이플 리프 클럽에서 상주 피아니스트로 자리 잡으며 지역 음악가들 사이에서 이름을 얻었다. 이곳에서 동료 피아니스트 스콧 헤이든을 만나 우정을 쌓고 여러 곡을 함께 작곡했으며, 헤이든의 처제 벨과도 인연이 닿았다. (스타크) 악보 상점을 운영하던 백인 사업가 존 스타크는 조플린의 연주를 듣고 곧바로 출판 계약을 맺었다. 당시로선 이례적으로 정가의 일정 비율을 계속 지급하는 인세 방식을 택했는데, 1899년 나온 '메이플 리프 랙'은 처음엔 더디게 팔리다 이내 수십만 장이 팔려나가며 조플린에게 평생 마르지 않는 수입원이 되었다. (결혼) 같은 해 벨 헤이든과 결혼했다. 이듬해 태어난 딸은 몇 달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벨은 남편의 음악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성공의 문턱에서 얻은 인세와 명성 뒤로, 조플린의 가정에는 이미 그늘이 드리우고 있었다.
세달리아에서 존 스타크와 맺은 이례적인 인세 계약으로 출판된 첫 히트작이자 평생 가장 큰 수입원이 되었다.
- 네 개의 16마디 선율 덩어리(스트레인)가 AABBACCD 순서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래그타임 구조를 지녔다.
- 왼손은 저음과 화음을 규칙적으로 오가며 행진곡풍 걸음을 유지하고, 오른손은 그 위에서 박자를 살짝 어긋나게 짚는 당김음(싱코페이션) 선율을 쌓는다.
- 조플린은 악보에 '빠르게 연주하지 말 것'이라는 지시를 직접 적어, 이 곡이 서두르지 않는 우아한 걸음으로 연주되길 바랐다.
- 1916년 그가 직접 연주해 남긴 피아노 롤 녹음은 본인의 터치와 리듬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료다.
IV. 세인트루이스와 상실 · 1900–1905 (32–37세)
(이주) 존 스타크의 출판사를 따라 1900년대 초 세인트루이스로 옮겨갔다. 그곳에서 아서 마셜, 루이 쇼빈 같은 젊은 피아니스트들과 어울리며 여러 편의 랙을 함께 짓거나 다듬었고, 개인 교습으로도 생계를 보탰다. (오페라) 오랜 야망을 실행에 옮겨 1903년 첫 오페라 '게스트 오브 아너'를 완성했다. 부커 T. 워싱턴이 백악관 만찬에 초대된 실제 사건에서 소재를 얻은 작품이었으나, 순회공연 도중 단원 한 명이 흥행 수입을 들고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극단은 빚에 몰려 해산했고 악보와 소품은 숙박비 대신 압류되어 끝내 유실되고 말았다. (이혼) 벨과의 결혼 생활은 거듭된 상실과 궁핍 속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1900년대 중반 갈라섰다. 딸을 잃은 슬픔과 오페라의 실패가 겹치며 부부 사이의 골은 이미 메울 수 없이 깊어져 있었다. (프레디) 1904년 프레디 알렉산더와 재혼했지만 결혼 열 주 만에 그녀는 감기가 폐렴으로 번져 세상을 떠났다. 조플린은 이 상실을 딛고 이듬해 왈츠 '베테나'를 발표했는데,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애상적인 이 곡이 아내를 향한 조용한 추모라는 해석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세인트루이스 시절 출판된 곡으로 원숙해진 선율 감각을 보여주며, 반세기 뒤 뜻밖의 방식으로 그를 되살릴 운명이었다.
- 세 개의 선율이 얽히는 구조로, 중간부(트리오)에서 조성이 바뀌며 색채가 밝아진다.
- 오른손 당김음이 유난히 노래하듯 유려해 래그타임 가운데 가장 노래하기 쉬운 선율로 꼽힌다.
- 왼손 저음-화음 패턴은 안정적인 2박 걸음을 유지해 오른손의 자유로운 당김음을 떠받친다.
두 번째 아내 프레디 알렉산더가 결혼 열 주 만에 세상을 떠난 뒤 쓴 왈츠로, 그의 작품 중 가장 애상적인 곡으로 꼽힌다.
- 대부분의 래그타임과 달리 3박자 왈츠 형식을 취해, 발랄한 행진 리듬 대신 흔들리듯 느린 춤곡의 호흡을 지녔다.
- 잦은 단조로의 전조가 곡 전체에 그늘을 드리워, 화사한 초기 랙들과 뚜렷이 대비된다.
- 왼손 화음이 길게 늘어지며 머무는 대목들은 그의 개인적 상실과 겹쳐 해석되곤 한다(전해지는 해석).
V. 뉴욕, 트리모니샤의 꿈 · 1905–1911 (37–43세)
(뉴욕) 1907년 무렵 뉴욕으로 거처를 옮겼다. 래그타임은 이미 유행의 정점을 지나 대중의 관심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있었지만, 조플린은 오히려 이 시기에 더 크고 진지한 작업으로 눈을 돌렸다. (로티) 1909년 로티 스톡스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함께 하숙집을 운영하며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마련했고, 로티는 남편이 인세 수입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오페라 작업에 매달릴 수 있도록 곁을 지켰다. (이상) 조플린은 자신의 음악이 유흥용 춤곡으로만 소비되는 데 분노에 가까운 불만을 품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래그타임의 당김음 어법이 유럽 클래식 못지않은 예술적 무게를 지닐 수 있다고 믿었고, 이 무렵 쓴 '솔레이스' 같은 곡에서는 이전보다 한층 내밀하고 사색적인 화성을 시도했다. (트리모니샤) 그 믿음의 결정체가 오페라 '트리모니샤'였다. 미신에 사로잡힌 흑인 공동체가 교육을 통해 벗어난다는 우화를 담은 이 작품을 1910년 무렵 완성했으나 어느 출판사도 맡아주지 않아, 1911년 자신의 저축을 털어 피아노-성악 악보를 직접 출판했다.
뉴욕 정착 이후 쓴 곡으로, 이국적 리듬을 끌어들여 래그타임의 틀을 넓히려 한 후기 실험을 보여준다.
- 왼손에 담긴 느리게 끊어지는 셋잇단 걸음(하바네라 리듬)이 전형적인 행진곡풍 랙과 다른 느긋한 흔들림을 만든다.
- 오른손 선율은 짧게 반복되며 변주되는 탄식조 프레이즈로, 밝은 초기작들보다 내면적인 정서를 드러낸다.
- 제목 그대로 '위안'이라는 뜻에 걸맞게, 처음부터 끝까지 큰 다이내믹 기복 없이 잔잔하게 흐른다.
VI. 좌절된 무대 · 1911–1917 (43–49세)
(무시) 자비로 찍은 악보를 평론가와 후원자들에게 보내며 무대에 올려줄 사람을 찾았지만 대개 정중한 무관심이나 짐짓 낮춰보는 반응만 돌아왔다. 흑인 작곡가가 쓴 정통 오페라라는 사실 자체가 당시 음악계에서는 낯설고 불편하게 받아들여졌다. (1915년) 결국 1915년, 그는 사재를 털어 할렘의 한 회관에서 단 한 번의 시연 무대를 마련했다. 무대장치도 의상도 관현악단도 없이 피아노 반주만으로 진행된 그 자리는 관객도 적었고 반응도 싸늘했다. 필생의 역작이 이런 초라한 자리에서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본 것은 그에게 돌이키기 힘든 타격이었다. (매독) 이 무렵 그의 몸은 오래전 얻은 매독이 신경계까지 번지며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기억이 흐려지고 감정 기복이 심해졌으며 새 곡을 완성하는 데도 예전 같은 집중력을 보이지 못했다고 동료들은 회고했다. (말년작) 1914년 발표한 '매그네틱 랙'은 생전 마지막으로 출판된 랙으로, 초기작의 명랑한 통일감 대신 조성이 자주 흔들리는 불안정한 구성을 지녀 그의 쇠약해지는 심경이 스며든 작품으로 후대에 읽힌다. 1917년 초 맨해튼 주립병원에 입원했고, 4월 1일 로티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마흔여덟이었다.
생전 마지막으로 출판한 랙으로, 이전 곡들보다 화성이 복잡하고 어두워 말년의 심경을 투영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네 개의 스트레인이 조성을 자주 바꾸며 이어져, 초기작의 명랑한 통일감 대신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인상을 준다.
- 마지막 스트레인에서 갑작스레 나타나는 반음계적 진행은 이전 랙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실험이다.
- 제목의 '자성'처럼 서로 다른 조성들이 팽팽하게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느낌을 준다는 해석도 있다.
흑인 공동체가 미신을 딛고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오페라로, 예술적 야망이 응축된 필생의 역작이었으나 생전에는 온전한 무대를 보지 못했다.
- 아리아와 합창, 대사가 교차하는 정통 오페라 형식을 갖추면서도 래그타임의 당김음 리듬을 관현악과 성악에 녹여 넣었다.
- 미신을 상징하는 인물들과 교육을 상징하는 여주인공이 대립하는 구성으로, 음악만으로도 그 갈등이 드러난다.
- 1972년 애틀랜타에서야 온전한 무대로 초연되었고, 조플린 자신의 관현악 편곡은 유실되어 1975년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의 전곡 녹음은 건서 슐러가 새로 편곡한 관현악으로 이루어졌다.
VII. 죽음 이후, 다시 울리다 · 1917–2026 (49–158세)
(무명묘) 퀸스 세인트 마이클스 묘지에 표식 없는 무덤으로 묻혔다. 로티는 남편이 남긴 악보와 소지품을 수십 년간 간직하며 트리모니샤를 무대에 올려줄 곳을 찾아다녔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침묵) 재즈 시대와 스윙, 비밥이 차례로 대중음악의 중심을 지나가는 동안 래그타임은 낡은 유행으로 밀려났고 조플린의 이름도 소수의 수집가와 초기 재즈 연구자들 사이에서만 기억됐다. 1950년 루디 블레시와 해리엇 재니스가 쓴 연구서가 그 명맥을 근근이 이어주었다. (부활) 반전은 1970년대에 찾아왔다. 피아니스트 조슈아 리프킨이 1970년 녹음한 랙 음반이 뜻밖의 화제를 모았고, 1973년 영화 '스팅'에 편곡되어 삽입된 '디 엔터테이너'가 대중가요 순위에까지 오르며 그의 음악은 반세기 만에 다시 미국 전역에 울려 퍼졌다. (인정) 1972년 트리모니샤가 처음으로 온전한 무대에 올랐고 1975년에는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가 전곡을 녹음했다. 1974년 그의 무덤에 마침내 묘비가 세워졌으며, 1976년에는 미국 작곡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사후 특별 퓰리처상이 수여됐다. 유흥가의 피아니스트로 지나쳐졌던 그의 이름은 그렇게 미국 음악사의 한 기둥으로 다시 새겨졌다.
덜 알려진 이야기
조플린 전기에서 자주 지나치는 대목 하나는 그가 세상을 떠난 시점의 병명이다. 오랫동안 그의 말년은 단순한 신경쇠약이나 과로로 완곡하게 서술되었는데, 이는 유족과 초기 연구자들이 매독으로 인한 신경매독(진행마비) 진단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꺼렸기 때문이라는 것이 후대 학자들의 지적이다. 1970년대 부활 붐 이후에야 병원 기록과 동시대 증언이 재검토되며 이 사실이 학계에 정식으로 자리 잡았다. 또 하나 덜 알려진 대목은 그가 1908년 뉴욕에서 래그타임 교습서 '스쿨 오브 래그타임'을 직접 써서 자비 출판했다는 점이다. 당김음 연습곡 여섯 편으로 이루어진 이 교본은 조플린이 스스로를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라 이론가·교육자로도 규정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존 스타크와의 관계도 통상 알려진 우호적 후원 서사와 달리, 트리모니샤 출판을 스타크가 거절한 뒤 두 사람 사이에 상당한 앙금이 남았다는 서신 기록이 있다. 이런 사실들이 덜 조명된 이유는 사후 신화화 과정에서 그의 이미지가 순수하게 비극적인 천재로 단순화되는 편이 대중적 서사로 받아들이기 쉬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용어 노트 📚🔎
래그타임
(말뜻) 래그타임(ragtime)은 영어로 누더기(rag)와 박자(time)를 합친 말이다. 규칙적인 박자를 일부러 흐트러뜨려 짚는 이 음악의 느낌을 그대로 이름에 담았다. (재즈에서) 왼손이 「쿵–짝쿵–짝」 하고 일정한 박자를 짚는 동안, 오른손은 그 박자에서 살짝 어긋난 자리를 짚어 선율을 만드는 피아노 음악 양식이다. 친구와 손뼉치기 놀이를 할 때 정박에 딱 맞춰 치지 않고 한 박 앞이나 뒤에서 손뼉을 치면 훨씬 통통 튀는 느낌이 나는데, 래그타임은 곡 전체가 그렇게 짜여 있다. 19세기 말 미국 흑인 음악 전통에서 태어나 이후 재즈 리듬의 뿌리가 되었다.
당김음(싱코페이션)
(말뜻) 순우리말 「당김음」이라는 이름 자체가 뜻을 담고 있다. 원래 박자보다 음을 앞으로 잡아당겨 짚는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재즈에서) 원래 세게 짚어야 할 박자 대신 그 앞뒤의 약한 박을 세게 짚어서 리듬이 어긋나는 느낌을 만드는 기법이다. 손뼉치기 놀이를 할 때 「하나 둘 셋 넷」 중 원래 강하게 쳐야 할 「하나」를 슬쩍 비켜 치고 그 사이 박자를 세게 치면 훨씬 신나는 느낌이 나는데, 이것이 당김음이다. 래그타임과 재즈 리듬의 핵심 어휘다.
스트레인
(재즈에서) 래그타임 한 곡을 이루는 16마디짜리 선율 토막을 가리키며, 보통 서너 개가 차례로 이어져 한 곡을 완성한다. 동화책이 여러 장(챕터)으로 나뉘어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듯, 래그타임 곡도 몇 개의 스트레인이 순서대로 이어지며 완결된 곡이 된다. 오늘날 대중음악의 벌스-코러스 구성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다른 데서는) 스트레인은 음악에서는 선율 토막을 가리키지만, 일상에서는 근육이나 마음에 가해지는 부담·긴장을 가리킬 때도 흔히 쓰는 말이다.
케이크워크
(말뜻) 케이크워크(cakewalk)라는 이름은 춤 경연에서 가장 우아하게 걷는 커플에게 상으로 케이크를 주던 풍습에서 나왔다고 전해진다. (재즈에서) 19세기 말 미국 흑인 공동체에서 유행한, 몸을 뒤로 젖히고 무릎을 높이 들어 과장되게 걷는 걸음걸이 춤과 그 반주 음악이다. 학예회에서 친구들이 짐짓 거들먹거리며 뽐내듯 걷는 흉내를 내 본 적이 있다면, 케이크워크가 바로 그런 과장된 걸음걸이를 음악과 춤으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래그타임 리듬이 자리 잡는 데 영향을 준 선행 장르다. (다른 데서는) 영어에서 a cakewalk은 음악과 상관없이 「식은 죽 먹기」처럼 아주 쉬운 일을 뜻하는 관용구로도 쓰인다.
피아노 롤
(재즈에서) 자동연주 피아노에 끼워 넣으면 연주자가 실제로 짚었던 건반과 셈여림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구멍이 뚫린 두루마리 종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목소리나 영상을 간단히 남기지만, 녹음기가 흔치 않던 시절에는 연주자의 손가락 움직임을 종이 두루마리에 구멍으로 새겨 남겼는데 그것이 피아노 롤이다. 조플린을 비롯한 당시 피아니스트들의 실제 연주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도 이 덕분이다.
하바네라 리듬
(말뜻) 하바네라(habanera)는 「아바나의 것」이라는 뜻으로,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유래한 춤곡이라는 데서 이름이 나왔다. (재즈에서) 길게 한 번, 짧게 두 번 끊어 짚는 셋잇단 리듬꼴로, 쿠바에서 비롯되어 20세기 초 여러 미국 작곡가가 이국적인 색채를 더하려고 빌려 썼다. 친구와 나란히 걷다가 한 걸음은 길게 끌고 그다음 두 걸음은 짧게 콩콩 뛰듯이 걸어 보면, 그 통통 튀는 느낌이 하바네라 리듬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