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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 Armstrong

루이 암스트롱 (1901–1971)

만약 재즈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면, 당신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뉴올리언스 출생홀어머니 슬하거리의 사중창2. 스승킹 올리버시카고 이주핫파이브3. 도약스캣 창법웨스트엔드블루스독주자 시대4. 시련입술 부상조 글레이저갱단 압박5. 정점올스타즈앰버서더 새치리틀록 발언6. 말년헬로돌리원더풀월드퀸스에서 영면암스트롱1901–1971뉴올리언스 뒷골목에서 태어나 독주자 재즈를 세…
무대의 여정 🧭🗺️
N미국뉴올리언스1901–1922시카고1922–1929뉴욕1929–1971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메이앤 암스트롱

    홀로 아들을 키우며 가난을 견뎠다.

  • 스승킹 올리버

    코넷을 가르치고 시카고로 불러들였다.

  • 가족릴 하딘 암스트롱

    피아니스트이자 아내로, 그의 독립을 밀어붙였다.

  • 동료베시 스미스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서 코넷으로 화답했다.

  • 경쟁시드니 베셰

    뉴욕 세션에서 즉흥연주로 서로 겨뤘다고 전해진다.

  • 후원조 글레이저

    평생 매니저로 그의 사업을 도맡아 관리했다.

YouTube에서 6곡 이어 듣기 ↗

I. 뉴올리언스의 아이 · 1901–1913 (0–12세)

(뉴올리언스) 1901년 8월,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도심 뒷골목 제인 앨리였고, 근처에는 홍등가 스토리빌이 있어 밤마다 피아노와 코넷 소리가 골목까지 흘러나왔다. 본인은 독립기념일인 7월4일을 생일로 즐겨 이야기했지만 세례 기록은 8월4일을 가리켜, 정확한 날짜는 지금까지도 학자들 사이에서 확정되지 못했다. (어머니) 어머니 메이앤은 남의 집 살림을 도우며 홀로 생계를 꾸렸고, 아버지 윌리엄 암스트롱은 출생 직후 가족을 떠나 이후로도 거의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 상당 기간을 외할머니 조지핀의 손에서 자랐으며, 두 살 아래 여동생 베아트리스는 훗날 마마 루시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훗날 회고록에서 그는 이 시절의 가난을 부끄러움 없이 담담하게 적었다. (거리) 열 살 무렵부터 골목에서 신문과 석탄을 팔았고, 남는 시간에는 또래 소년들과 거리 사중창단을 꾸려 술집과 유흥가를 돌며 동전을 벌었다. 장례 행렬을 따라다니며 브라스 밴드의 연주를 듣는 일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는데, 뉴올리언스식 장례 음악 특유의 느린 애가와 뒤이은 흥겨운 행진곡의 대비는 훗날 그의 연주에서 슬픔과 활력을 오가는 감정 표현의 원형이 되었다.

II. 소년원에서 코넷으로 · 1913–1922 (12–21세)

(소년원) 1912년 12월31일 밤, 새해를 맞아 축포 삼아 권총을 쏜 일로 흑인 소년들을 수용하던 유색인소년보호소에 넘겨졌다. 그곳 음악 교사 피터 데이비스에게 처음으로 코넷을 배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내 브라스 밴드를 이끄는 자리까지 맡으며 난생처음 리더의 경험을 했다. 훗날 그는 이 시절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았다. (킹올리버) 1914년 풀려난 뒤 낮에는 석탄 마차를 몰고 밤에는 클럽을 전전하며 코넷 연주로 생계를 이었다. 뉴올리언스에서 이름난 밴드를 이끌던 킹 올리버가 그의 연주를 눈여겨보고 개인 지도를 자청했으며, 마치 아들처럼 대했다고 전해진다. 올리버가 시카고로 떠나며 남긴 키드 오리 밴드의 자리를 물려받아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뉴올리언스 음악계에 알렸다. (결혼과리버보트) 1918년 무렵 데이지 파커와 결혼했으나 잦은 다툼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이 시기 미시시피강 유람선에서 페이트 마러블 악단에 들어가 처음으로 악보 읽는 법을 익혔는데, 귀로만 익힌 뉴올리언스식 연주에 정식 훈련이 더해지며 음악적 기반이 한층 단단해졌다. 1922년, 시카고에 자리 잡은 킹 올리버가 마침내 그를 불러들였다.

III. 시카고와 핫 파이브 · 1922–1929 (21–28세)

(시카고) 1922년 킹 올리버의 크레올 재즈 밴드에 두 번째 코넷 주자로 합류하며 시카고에 정착했다. 밴드의 피아니스트 릴 하딘은 그의 재능을 곧바로 알아보았지만, 스승 올리버는 자신의 그림자 뒤에 그를 묶어두려 했다. 릴은 그에게 독립을 권했고, 두 사람은 1924년 결혼했다. (뉴욕과동료들) 같은 해 뉴욕으로 옮겨 플레처 헨더슨 악단에서 활동하며 클래런스 윌리엄스의 세션에서 시드니 베셰와 함께 연주해, 두 즉흥연주자가 서로 물러서지 않고 겨루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925년에는 베시 스미스의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녹음에 참여해 그녀의 목소리에 코넷으로 화답했다. 이듬해 시카고로 돌아와 자기 이름을 내건 밴드를 꾸렸다. (핫파이브) 1925년부터 핫 파이브와 핫 세븐이라는 이름으로 취입한 일련의 음반에서 집단 연주 중심이던 뉴올리언스 양식을 벗어나 독주자가 곡을 이끄는 새로운 재즈의 틀을 세웠다. 「히비 지비스」녹음 중 가사가 적힌 종이를 떨어뜨려 즉흥으로 의미 없는 음절을 노래했다는 일화는 스캣 창법의 기원 설화로 전해진다. 1928년 취입한 「웨스트 엔드 블루스」의 무반주 도입부는 재즈 독주자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이퍼마우스 블루스 (Dipper Mouth Blues)1923 (22세)무대 Wynton Marsalis · 1990 Newport Casino 실황

킹 올리버 밴드의 이인자로 참여해 스승과 코넷을 주고받으며 뉴올리언스 집단 연주의 진수를 보여준 시절의 기록이다.

  • 킹 올리버와 주고받는 이인 코넷 브레이크(솔로 없이 짧게 치고 빠지는 대목)에서 스승과 제자의 손발이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 클라리넷과 트롬본이 코넷 선율 아래서 각자 다른 가락을 동시에 얹는 집단 즉흥연주(폴리포니)가 뉴올리언스 초기 재즈의 전형을 보여준다.
  • 녹음 상태는 거칠지만 취입 당시 스물두 살이던 암스트롱이 이미 또렷한 음색을 지녔음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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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 블루스 (St. Louis Blues)1925 (24세)영화 장면 — Bessie Smith · 1929 단편 영화

블루스의 여제 베시 스미스의 목소리에 코넷으로 응답하며, 두 예술가가 서로의 감정을 받아치는 대화를 들려준다.

  • 베시 스미스의 노래 한 줄이 끝날 때마다 암스트롱의 코넷이 짧은 응답구(콜 앤드 리스폰스)로 끼어들어 마치 대화를 나누듯 진행된다.
  • 하모늄(오르간과 비슷한 소리를 내는 건반악기) 반주 위에서 열두 마디 블루스 형식이 느리고 무겁게 반복되며 애가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 암스트롱은 화려한 기교 대신 절제된 음 하나하나로 가수의 감정에 여백을 남기는 반주자의 태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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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 엔드 블루스 (West End Blues)1928 (27세)

도입부의 무반주 트럼펫 카덴차만으로 재즈 독주자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녹음이다.

  • 반주 없이 홀로 시작하는 도입부(카덴차)는 이후 모든 재즈 독주의 기준점으로 자주 언급된다.
  • 곡 중반 가사 없이 음절로 부르는 스캣 창법 대목이 트럼펫 음색과 거의 구분되지 않을 만큼 닮아 있다.
  • 마지막 코러스에서 길게 끄는 고음 하나가 곡 전체의 감정을 정점으로 밀어올린 뒤 서서히 내려앉는다.

IV. 부상과 조 글레이저 · 1929–1938 (28–37세)

(빅밴드) 1929년 이후 뉴욕에서 대형 악단을 이끌며 브로드웨이 히트곡을 재즈로 바꿔 부르는 방식으로 대중적 인기를 넓혀갔다. 트럼펫의 고음역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탓에 입술에 반복해서 흉터가 생겼고, 한동안 연주를 쉬어야 할 만큼 상태가 심각해지기도 했다. 이 시기의 무리한 연주는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그가 감내한 육체적 대가였다. (글레이저) 시카고 갱단과 얽힌 매니저들 사이의 다툼에 휘말려 곤란을 겪던 중, 1935년 조 글레이저를 새 매니저로 맞았다. 글레이저는 계약에서 큰 몫을 가져갔지만 이후 평생 그의 사업을 안정적으로 관리했고, 두 사람은 신뢰로 맺어진 관계를 죽을 때까지 이어갔다고 알려져 있다. (유럽과이혼) 갱단의 압박을 피해 1933년부터 유럽 각지를 순회하며 영국과 프랑스에서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이 무렵 릴 하딘과의 결혼 생활은 사실상 끝나 있었고, 1938년 정식으로 이혼한 뒤 곧이어 앨파 스미스와 재혼했다.

♪에인트 미스비하빙 (Ain't Misbehavin')1929 (28세)영화 장면 — Fats Waller · 《Stormy Weather》(1943)

브로드웨이 히트곡을 재즈로 바꿔 부르며 대중가요 해석자로서 새로운 경력을 연 곡이다.

  • 관현악 편성의 대형 악단 반주 위에서 트럼펫과 목소리가 번갈아 멜로디를 변주하며 노래와 연주의 경계를 허문다.
  • 원곡 멜로디를 그대로 두지 않고 박자를 앞뒤로 밀고 당기며 부르는 창법(스윙)이 대중가요를 재즈로 바꾸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 트럼펫 솔로에서 고음을 길게 끄는 대목은 이 시기 반복된 입술 부상의 위험을 무릅쓴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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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루실과 전쟁의 시대 · 1938–1947 (37–46세)

(루실) 1942년 앨파 스미스와 이혼하고 코튼클럽 무용수 출신 루실 윌슨과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 친자녀는 없었지만, 루실은 이후 남은 생애 동안 그의 곁을 지킨 안정적인 동반자가 되었다. (할리우드) 대형 악단을 이끌고 할리우드 영화에 잇달아 출연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크게 넓혔다. 트럼펫 연주자보다 웃음을 파는 엔터테이너로 소비되는 이미지에 일부 평론가는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정작 그는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었다. (전쟁)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군 위문공연에 나서 인종별로 분리된 부대들 앞에서 각각 연주했다. 전쟁이 끝나고 스윙 빅밴드의 시대가 저물면서 대형 악단을 유지하는 일은 경제적으로 점점 더 버거워졌다.

VI. 올스타즈와 리틀록 · 1947–1957 (46–56세)

(올스타즈) 1947년 대형 악단을 해체하고 소규모 편성인 루이 암스트롱 앤드 히즈 올스타즈를 꾸려 뉴올리언스 시절의 앙상블 연주로 되돌아갔다. 이 편성은 이후 남은 활동 기간 내내 그의 음악을 지탱하는 기본 틀이 되었다. (순회) 냉전기 미국 정부가 후원한 해외 순회공연에 나서 아프리카와 유럽 곳곳을 돌며 앰버서더 새치라는 별명을 얻었다. 국가를 대표해 우호를 다지는 동안에도 정작 본국에서는 여전히 인종 분리의 벽 앞에 서야 했다. (리틀록) 1957년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흑인 학생들의 등교를 막아서는 사태가 벌어지자, 그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미온적인 대응을 신문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평소 온화한 이미지 뒤에 감춰두었던 분노를 드러낸 드문 순간이었고, 정부 후원 순회공연을 거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맥 더 나이프 (Mack the Knife)1955 (54세)실황 Louis Armstrong · 1968 BBC

소규모 편성 올스타즈로 재편한 뒤 얻은 대중적 히트곡으로, 순회 외교관으로 불리던 시절의 대표곡이다.

  • 트롬본과 클라리넷이 트럼펫 선율 아래서 각자의 대위 선율을 얹는 뉴올리언스식 편성으로 돌아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허스키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듯 노래하는 화법이 이 시기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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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헬로 돌리와 마지막 무대 · 1957–1971 (56–70세)

(헬로돌리) 1964년 「헬로 돌리」가 비틀스의 곡들을 밀어내고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르며 예순둘의 나이에 다시 한번 대중적 정점을 맞았다. 젊은 시절의 파격적인 즉흥연주보다 친숙하게 갈라진 목소리와 트럼펫 톤 자체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건강) 오랜 심장 질환으로 활동이 줄었지만 무대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다. 의사의 만류에도 트럼펫 연주를 이어갔고, 뉴욕 퀸스 코로나의 자택에서 동네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지내는 소박한 일상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죽음) 1971년 7월6일, 뉴욕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숨을 거두었다. 향년 69세였다. 뉴올리언스의 뒷골목에서 시작된 코넷 소리는 그의 죽음 이후에도 재즈라는 이름과 함께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다.

♪헬로 돌리 (Hello, Dolly!)1964 (62세)실황 Louis Armstrong · 1968 BBC

예순둘의 나이에 대중음악 정상에 오르며 다시 한번 폭넓은 사랑을 받은 순간을 담았다.

  • 밴조와 튜바가 이끄는 경쾌한 반주가 초기 재즈 시절의 소리를 의도적으로 되살린다.
  • 허스키하게 갈라진 목소리로 곡의 제목 구절을 반복해 부르는 대목이 널리 회자되는 순간이다.
  • 트럼펫 간주는 길지 않지만 특유의 따뜻한 음색만으로 곡 전체 분위기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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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어 원더풀 월드 (What a Wonderful World)1967 (66세)실황 Louis Armstrong · 1968 BBC

인종 갈등과 베트남전으로 어지럽던 시대에 낙관을 노래해, 세상을 향한 그의 마지막 메시지로 남았다.

  • 현악 편성이 감싸는 부드러운 반주 위에서 트럼펫 없이 목소리만으로 곡을 이끄는 드문 구성이다.
  • 낮고 굵은 저음에서 시작해 후렴으로 갈수록 감정을 조금씩 밀어올리는 호흡 조절이 돋보인다.
  • 발매 당시 미국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유럽에서 먼저 사랑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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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오랜 세월 대마초를 즐겨 피웠고 스스로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1930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대마초 소지로 체포돼 며칠간 구금된 적도 있었으나, 자서전 초고에서는 오히려 그 경험을 담담한 유머로 회고했다. 이런 기록은 오랫동안 공개를 꺼려하는 분위기 속에 묻혀 있다가 최근에야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방대한 양의 편지와 일기, 릴테이프 녹음, 스크랩북을 남겼다. 테이프 상자마다 사진과 신문 조각을 오려 붙인 콜라주로 장식했는데, 이는 훗날 퀸스 자택이 박물관으로 개조되면서 본격적으로 정리되기 전까지는 개인 수집품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소화제 겸 변비약인 스위스 크리스의 열렬한 애용자여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를 선물하며 건강 비결로 권했다. 화장실에 앉은 스스로의 모습을 찍은 사진에 짧은 문구를 적어 지인들에게 보내는 것을 즐겼다는 일화는, 위대한 음악가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용어 노트 📚🔎

스캣

(재즈에서) 가사 대신 의미 없는 음절을 노래하며 목소리를 마치 악기처럼 사용하는 창법이다.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가락을 만들어내는 점이 핵심이며, 트럼펫 주자가 목소리로 즉흥 솔로를 연주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예로 학교에서 정해진 가사 없이 그 자리에서 라임을 만들어 내는 랩 배틀과 비슷하다 — 스캣도 그 자리에서 가락과 리듬을 즉석에서 지어낸다.

콜 앤드 리스폰스

(말뜻) 부르다(콜)와 답하다(리스폰스)를 그대로 합친 말로, 한쪽이 소리를 내면 다른 쪽이 곧바로 화답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재즈에서) 한 연주자나 가수가 짧은 구절을 던지면 다른 쪽이 그것을 받아 답하는 대화식 연주 방식이다. 교회 예배에서 목사가 한마디 하면 신도들이 화답하는 구조가 재즈 연주에도 그대로 스며들었다. (다른 데서는) 응원단이 선창을 외치면 관중이 따라 외치는 응원 구호도 같은 원리다.

폴리포니

(말뜻) 많다는 뜻의 폴리와 소리를 뜻하는 포니가 합쳐져, 여러 개의 독립된 선율이 동시에 울린다는 뜻이다. (재즈에서) 뉴올리언스 초기 재즈에서 클라리넷·트롬본·코넷이 각자 다른 가락을 동시에 연주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어우러지는 연주 방식을 가리킨다. 여러 명이 동시에 서로 다른 돌림노래 구절을 부르는데도 신기하게 화음이 맞아떨어지는 상황과 비슷하다.

12마디 블루스

(재즈에서) 코드(화음) 세 개를 정해진 순서로 열두 마디 동안 반복하는 가장 기본적인 곡 형식이다. 블루스뿐 아니라 초기 재즈 대부분이 이 틀 위에서 즉흥연주를 펼쳤다. 노래방에서 반주가 같은 열두 마디 패턴을 계속 반복해 주는 동안 그 위에 가사를 얹어 부르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

카덴차

(말뜻) 이탈리아어로 떨어지다라는 뜻의 카데레에서 나온 말로, 원래는 곡이 끝나기 직전 잠시 멈춰 장식하는 대목을 가리켰다. (재즈에서) 반주 없이 독주자 혼자 자유로운 리듬과 화성으로 연주하는 대목을 뜻한다. 정해진 박자 없이 마음대로 말하듯 연주할 수 있어, 연주자의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으로 꼽힌다.

스윙

(재즈에서) 정박자를 살짝 어긋나게 밀고 당겨 몸이 저절로 들썩이게 만드는 독특한 리듬감을 가리킨다. 악보에는 똑같이 적혀 있어도 연주자마다 이 밀고 당기는 정도가 달라 저마다의 느낌을 만들어낸다. 친구와 손뼉을 맞출 때 정확히 같은 박자보다 살짝 늦게 치면서 더 신나는 느낌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스윙은 놀이터 그네를 뜻하기도 하고, 야구에서 배트를 휘두르는 동작을 가리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