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ney Bechet
고국에서 밀려난 재즈가 파리에서 다시 전설이 되어 돌아왔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I. 뉴올리언스의 소년 · 1897–1916 (0–19세)
(뉴올리언스) 1897년 5월,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오마 베셰는 구두 수선공이었고 취미로 코넷을 불었다. 일곱 남매 중 막내였고, 형 레너드 베셰는 훗날 치과의사가 되면서도 트롬본을 놓지 않아 집안의 밴드를 이끌었다. 크리올(프랑스어권 유색인) 공동체 특유의 음악적 분위기 속에서 자랐고, 집 안에는 늘 악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독학) 여섯 살 무렵 형이 두고 간 클라리넷을 몰래 집어 들면서 악기를 처음 만졌다. 악보를 배우는 대신 귀로 듣고 흉내 내며 소리를 익혔고, 평생 음표 읽기를 즐기지 않았다. 동네 클라리넷 주자 조지 바케에게서 잠깐 지도를 받았지만, 정식 교습보다는 거리와 마당에서 어른들의 연주를 훔쳐 들으며 스스로 터득한 쪽에 가까웠다. (신동) 열 살을 갓 넘긴 나이에 이미 어른들 밴드에 불려 다니는 신동으로 소문났다. 스토리빌 언저리의 여러 악단을 넘나들며 실력을 쌓았고, 한번은 훨씬 노련한 킹 올리버의 악단이 연주하는 자리에 끼어들어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고 전해진다. 앳된 얼굴로 산전수전 다 겪은 코넷 주자들 사이에서 밀리지 않는 소리를 냈다는 이야기가 뉴올리언스 음악계에 두고두고 회자됐다. (고집) 어릴 때부터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정이 뚜렷했다. 밴드 리더가 시키는 대로 따르기보다 자기 방식을 고집했고, 이 때문에 여러 악단을 옮겨 다녔다. 그 고집은 훗날 그의 연주를 남들과 구별 짓는 힘이 되었지만, 동시에 평생 그를 따라다닌 갈등의 씨앗이기도 했다.
II. 방랑과 유럽 · 1916–1922 (19–25세)
(순회) 십대 후반부터 뉴올리언스를 떠나 순회 악단을 옮겨 다니며 시카고와 뉴욕을 오갔다. 정착보다 이동이 익숙한 삶이었고, 이 시기에 쌓은 여러 도시의 경험이 훗날 그의 연주에 다양한 색을 입혔다. (유럽행) 1919년, 작곡가 윌 마리온 쿡이 이끄는 서던 신코페이티드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유럽 순회에 올라 런던 무대에 섰다. 미국을 벗어나 처음으로 인종 차별의 무게가 덜한 청중 앞에 섰고, 그 해방감은 그의 연주에도 스며들었다. (소프라노) 런던의 한 악기점에서 우연히 소프라노 색소폰을 손에 넣었다. 클라리넷보다 크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이 악기에 곧바로 매료되어 자신의 대표 악기로 삼았고, 이후 재즈사에서 소프라노 색소폰을 진지한 독주 악기로 세운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극찬) 스위스 출신 클래식 지휘자 에르네스트 앙세르메가 그의 연주를 듣고 1919년 평론지에 글을 남겼다. 그는 베셰를 천재적인 예술가라 부르며, 그가 걷는 길이 언젠가 온 세상이 뒤따를 길이 될지도 모른다고 썼다. 한 즉흥연주자를 이렇게 진지하게 다룬 비평은 재즈 역사상 처음이었지만, 정작 이 글은 오랫동안 미국 재즈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추방) 런던에서 한 여성과 다툼이 벌어져 체포됐고, 실형을 산 뒤 영국에서 추방됐다고 전해진다. 화려한 극찬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이 사건은, 재능과 불안정한 성정이 늘 함께 다녔던 그의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III. 뉴욕의 결투와 파리의 총성 · 1922–1929 (25–32세)
(귀환) 1922년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에 자리 잡았다. 1923년, 클라렌스 윌리엄스의 블루 파이브와 함께 「와일드 캣 블루스」와 「캔자스시티 맨 블루스」를 녹음했다. 소프라노 색소폰이 중심에 선 최초의 재즈 레코드로 꼽히는 녹음이었다. (듀엣) 1925년에는 루이 암스트롱과 함께 「케이크워킹 베이비스 프롬 홈」을 녹음했다. 두 사람은 서로 지지 않으려는 듯 번갈아 솔로를 주고받았고, 이 녹음은 두 관악기 거장의 우호적인 자존심 대결로 두고두고 회자됐다. 암스트롱은 이후로도 베셰의 소리를 두려워할 만한 상대로 여겼다고 전해진다. (파리) 같은 해 조세핀 베이커가 주역인 「라 르뷔 네그르」에 합류해 파리 무대에 섰고, 이어 드러머 벤 페이턴의 악단과 함께 동유럽과 러시아까지 순회했다. 미국에서보다 유럽에서 그의 음악이 더 열렬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반복됐다. (총성) 1928년 파리 거리에서 밴조 주자 마이크 매켄드릭과 음악적 다툼 끝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유탄에 지나가던 프랑스 여성이 다쳤고, 베셰는 11개월간 옥살이를 한 뒤 프랑스에서도 추방됐다. 유럽에서 쌓은 명성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사건이었고, 그는 수년간 자신을 반겨 주던 파리 땅을 다시 밟을 수 없었다.
클라렌스 윌리엄스와 함께한 이 녹음으로 소프라노 색소폰은 처음 재즈 독주 악기로 세상에 알려졌다.
- 도입부에서 베셰의 소프라노 색소폰이 클라리넷보다 굵고 강한 소리로 앙상블을 압도하며 등장한다.
- 제목과 달리 12마디 블루스가 아니라 여러 악절이 이어지는 래그타임식 구성 위에서, 베셰는 같은 가락을 조금씩 비틀며 반복해 긴장을 쌓는다.
- 여러 관악기가 동시에 각자 다른 가락을 얹는 뉴올리언스식 연주(집단 즉흥연주) 방식이 살아 있어, 한 사람의 독주보다 여러 목소리가 뒤섞이는 느낌이 강하다.
- 당시 녹음 장비의 한계로 좁은 스튜디오에서 원테이크로 녹음됐다고 전해지며, 다소 거친 음질에도 소프라노 색소폰의 존재감은 또렷하다.
루이 암스트롱과 나눈 우호적인 자존심 대결이 고스란히 녹음에 남았다.
- 곡 초반 코넷과 소프라노 색소폰이 번갈아 멜로디를 주고받으며 누가 더 화려하게 꾸미는지 겨루는 듯한 주고받음(인터플레이)이 이어진다.
- 암스트롱의 솔로 코러스 뒤에 이어지는 베셰의 솔로는 한 호흡을 길게 끌며 음을 밀어붙이는 특유의 진한 비브라토로 유명하다.
- 32마디 형식을 여러 차례 돌며 두 사람이 순서를 바꿔 가며 솔로를 쌓아 올리는 헤드-솔로-헤드 구성이다.
- 속도를 서서히 끌어올리는 리듬 섹션 위에서 두 관악기가 점점 격렬해지는 흐름은, 훗날 재즈 듀엣 녹음의 표본으로 자주 언급된다.
· 1929–1938 (32–41세)
(귀향) 프랑스에서 쫓겨나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지만, 곧이어 대공황이 미국을 덮쳤다. 음반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한창 잘나가던 연주자들도 일거리를 잃었고, 베셰도 예외가 아니었다. (재봉소) 트럼펫 주자 토미 래드니어와 함께 할렘에 재봉소를 차려 생계를 이었다. 낮에는 옷을 수선하고 밤이면 가게에서 동료 음악가들과 즉흥 잼 세션을 벌였는데, 이 소박한 가게가 한동안 두 사람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핏워머스) 1932년 래드니어와 함께 뉴올리언스 핏워머스를 결성해 빅터 레이블에서 녹음을 남겼다. 스콧 조플린의 「메이플 리프 래그」를 재즈 편성으로 되살린 녹음도 이때 나왔다. 그러나 불황 속에 음반 판매가 부진해 밴드는 오래가지 못하고 흩어졌다. (생계) 한때 유럽에서 천재로 칭송받던 연주자가 미국에서는 셔츠를 기우며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이 시절은, 재능만으로는 버틸 수 없었던 재즈 음악가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공황의 궁핍 속에서 결성된 뉴올리언스 핏워머스가 스콧 조플린의 래그타임 명곡을 재즈 편성으로 되살렸다.
- 피아노 래그타임 원곡의 규칙적인 왼손 박자 대신, 베이스와 드럼이 박자를 살짝 밀고 당기는 느낌(스윙)으로 곡 전체를 훨씬 유연하게 이끈다.
- 베셰의 소프라노 색소폰이 원곡의 멜로디를 거의 그대로 따르다가도, 반복 구간마다 살짝 다른 꾸밈음을 얹어 즉흥의 여지를 남긴다.
- 토미 래드니어의 트럼펫과 베셰의 색소폰이 동시에 서로 다른 가락을 얹는 구간이 곡 후반부에 두드러진다.
- 궁핍한 시절 급히 소집된 세션이었던 만큼 편곡은 간결하지만, 그만큼 연주자 개개인의 순발력이 더 도드라진다.
V. 블루 노트와 스윙의 그늘 · 1938–1949 (41–52세)
(재기) 1939년, 막 설립된 신생 레이블 블루 노트와 인연을 맺었다. 창립자 알프레드 라이언은 스윙과 유행에 밀려나던 전통 재즈를 진지하게 대해 준 몇 안 되는 사업가였고, 베셰의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깊이 매료됐다고 전해진다. (서머타임) 거슈윈의 「서머타임」을 녹음해 블루 노트 최초의 히트작을 만들어 냈다. 원곡의 애절한 멜로디를 소프라노 색소폰의 굵고 떨리는 음색으로 풀어낸 이 녹음은, 궁핍했던 대공황 시절을 지나온 그의 연주에 깊은 감정을 실어 주었다. (비밥) 1940년대 들어 찰리 파커를 필두로 한 비밥이 재즈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복잡한 화성과 빠른 속도를 앞세운 젊은 세대의 음악 앞에서, 뉴올리언스식 집단 즉흥연주를 고수한 베셰의 스타일은 낡은 것으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그는 이런 취급에 적잖이 서운함을 내비쳤다고 전해진다. (외로움) 미국 재즈계에서 설 자리가 좁아지는 동안에도 작은 클럽을 전전하며 연주를 이어갔다. 한때 유럽에서 천재로 불렸던 그가 정작 고국에서는 한물간 취급을 받는 아이러니 속에서, 그는 점점 더 자신을 알아봐 준 유럽 쪽을 그리워하게 됐다.
신생 레이블 블루 노트의 첫 히트작으로, 궁핍했던 시절을 지나온 연주자의 감정이 짙게 배어 있다.
- 느린 템포 위에서 소프라노 색소폰이 원곡 멜로디를 거의 노래하듯 길게 늘여 부르며 시작한다.
- 곡 중반, 멜로디를 벗어나 자유롭게 음을 쌓아 올리는 솔로 구간이 이 녹음을 특히 유명하게 만든 대목으로 꼽힌다.
- 정해진 리듬 대신 다소 느슨하게 흐르는 리듬 섹션의 반주가 소프라노 색소폰의 굵고 떨리는 음색을 한층 도드라지게 한다.
- 짧은 러닝타임 안에 도입과 솔로를 압축해 담아, 3분 남짓한 시간에도 강한 여운을 남긴다.
VI. 파리, 다시 태어나다 · 1949–1959 (52–62세)
(개선) 1949년 파리 재즈 페스티벌 초청을 받아 20년 만에 다시 프랑스 땅을 밟았다. 총격 사건으로 쫓겨났던 도시는 이번엔 그를 살아 있는 전설로 맞았고, 열광적인 반응에 그 자신도 놀랐다고 전해진다. (정착) 이듬해부터 아예 프랑스에 뿌리를 내리기로 했다. 1951년 앙티브에서 엘리자베트 치글러와 결혼했다. 아들 다니엘 베셰는 훗날 드러머가 되어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인종의 벽 없이 순수하게 음악으로만 평가받는 프랑스에서의 삶은, 평생 미국에서 겪어야 했던 차별과 대비되는 늦은 위안이었다. (프티 플뢰르) 1952년 발표한 자작곡 「프티 플뢰르」가 프랑스 전역에서 크게 히트했다. 소프라노 색소폰의 애틋한 선율은 그의 이름을 프랑스 대중가요 차트에까지 올려놓았고, 「레 조뇽」 같은 다른 곡들도 잇따라 사랑받으며 그는 명실상부한 프랑스의 국민적 스타가 되었다. (회고) 말년에는 구술로 자서전 「트리트 잇 젠틀」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이 노예였던 할아버지 오마로부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 믿었다고 회고했는데, 사실관계보다 그가 스스로 자기 삶에 부여한 의미로 읽힌다. (별세) 1959년 5월 14일, 예순두 번째 생일에 파리 근교 가르슈에서 폐암으로 눈을 감았다. 한때 미국에서 낡은 음악 취급을 받았던 그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프랑스 팬들이 몰려 거리를 메웠다. 그의 마지막 안식처는 태어난 고향이 아니라, 그를 처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여 준 프랑스였다.
프랑스에 정착한 뒤 발표한 자작곡으로, 뒤늦게 찾아온 대중적 성공을 상징한다.
- 느린 템포 위에서 짧고 애틋한 단조 멜로디가 노래하듯 흐른다.
- 정해진 32마디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단순한 구조지만, 반복될 때마다 음색과 셈여림을 미묘하게 바꿔 가며 감정을 쌓는다.
- 관악기 특유의 숨을 길게 끄는 프레이징과 잔잔한 비브라토가 이 곡을 대중적인 히트곡으로 만든 핵심 매력으로 꼽힌다.
- 훗날 영국의 크리스 바버 악단이 클라리넷 주자 몬티 선샤인의 연주로 다시 녹음해, 베셰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영국 차트에 오르며 곡의 생명을 이어갔다.
파리에서 큰 사랑을 받은 또 다른 자작곡으로, 말년의 여유롭고 따뜻한 정서를 담고 있다.
- 느릿한 템포 위에서 소프라노 색소폰이 낮고 굵은 음역대를 오가며 편안하게 노래하듯 흐른다.
- 같은 선율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도 매번 다른 꾸밈음과 리듬적 여백을 두어 지루하지 않게 이어간다.
- 리듬 섹션이 절제된 셈여림으로 뒤에서 받쳐 주는 가운데, 색소폰의 숨소리 섞인 음색이 한층 또렷하게 들린다.
- 말년 파리 시절 그의 연주 전반에서 느껴지는 여유와 관조적인 분위기를 대표하는 녹음으로 꼽힌다.
덜 알려진 이야기
(앙세르메의 잊힌 평론) 1919년 지휘자 에르네스트 앙세르메가 스위스의 한 평론지에 남긴 베셰 예찬은 오늘날 재즈 비평사의 첫머리에 놓일 만큼 중요한 문헌으로 꼽힌다. 그러나 발표 당시에는 프랑스어권의 작은 잡지에 실린 글에 지나지 않아, 미국 재즈계는 물론 베셰 자신도 이 글의 존재를 한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이 평론이 재조명된 것은 훗날 학자들이 초기 재즈 비평의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였다. (추방과 사면) 1928년 파리 총격 사건으로 추방된 뒤, 베셰는 한동안 공식적으로 프랑스 입국이 금지된 상태였다. 1949년 파리 재즈 페스티벌 초청이 성사되기까지는 시간이 흐르며 형기와 추방 조치의 효력이 다한 사정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한때 총을 쏘고 쫓겨났던 도시가 20여 년 뒤 그를 국민적 영웅으로 맞아들인 반전은 그의 전기에서도 자주 아이러니로 언급된다. (악보를 읽지 못한 작곡가) 평생 악보를 능숙하게 읽거나 쓰지 못했지만 백여 곡에 이르는 작곡·공동작곡 크레디트를 남겼다. 머릿속의 멜로디를 직접 흥얼거려 동료 연주자나 편곡자에게 들려주고 이를 옮겨 적게 하는 방식으로 곡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이 사실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유족과 동료들의 회고를 통해서야 구체적으로 알려졌다. (할아버지의 전설) 자서전 「트리트 잇 젠틀」에서 그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이 노예였던 할아버지 오마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것이라 밝혔다. 전기 작가들은 이 이야기가 문서로 뒷받침되기보다는 베셰 자신이 스스로의 삶에 부여한 신화에 가깝다고 본다. 사실 여부보다, 그가 자신의 음악을 핏줄과 역사로 설명하고 싶어 했다는 점 자체가 그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단서로 남아 있다.
용어 노트 📚🔎
즉흥연주
(말뜻) 즉흥(卽興)은 그 자리에서(卽) 흥(興)이 이는 대로 한다는 뜻이다. (재즈에서) 정해진 악보 없이 그 순간 떠오르는 가락을 만들어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연주자마다, 또 같은 곡이라도 매번 다르게 연주한다. 예: 학교 합창 대회에서 정해진 노래 대신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화음을 지어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즉흥적으로 결정했다처럼, 계획 없이 그때그때 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집단 즉흥연주
(재즈에서) 뉴올리언스 스타일 재즈에서 트럼펫, 클라리넷, 트롬본 같은 관악기 여럿이 동시에 각자 다른 가락을 즉흥으로 얹어 뒤섞이게 연주하는 방식이다. 한 사람의 솔로가 아니라 여러 목소리가 한꺼번에 대화하듯 얽힌다. 예: 여러 친구가 동시에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하는데도 신기하게 대화가 성립하는 것과 비슷하다.
커팅 콘테스트
(말뜻) 영어로 자르다(cut)에서 온 말로, 상대를 실력으로 눌러 이긴다는 뜻에서 붙었다. (재즈에서) 두 연주자나 밴드가 번갈아 연주하며 누가 더 뛰어난지 겨루는 즉흥 대결을 말한다. 관객과 동료 음악가들이 승패를 가늠했다. 예: 학교에서 친구들과 즉석으로 랩 배틀을 벌여 누가 더 잘하는지 겨루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오늘날에는 스포츠나 게임에서 즉석 실력 대결을 가리킬 때도 비유적으로 쓰인다.
래그타임
(말뜻) 영어 래그(rag)는 낡은 헝겊 조각을 뜻하는데, 박자가 고르지 않고 살짝 어긋나 보인다는 뜻에서 래그타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재즈에서) 왼손이 규칙적인 박자를 짚는 동안 오른손이 그 박자를 살짝 어긋나게 타는 피아노 음악 양식으로, 재즈보다 앞서 유행하며 재즈 리듬의 뿌리가 됐다. 예: 걸을 때 왼발 박자에 맞춰 오른손으로 살짝 엇박을 치며 손뼉 치는 놀이와 비슷하다.
비밥
(재즈에서) 1940년대에 등장한 빠르고 복잡한 화성과 리듬을 쓰는 재즈 양식으로, 춤을 위한 음악이던 스윙과 달리 앉아서 듣고 감상하는 음악을 지향했다. 예: 익숙한 노래를 훨씬 빠른 속도로, 단순한 후렴 대신 복잡한 화음으로 바꿔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블루 노트
(말뜻) 영어로 블루(blue)는 우울하다는 뜻과 파랗다는 뜻을 함께 지니는데, 블루스 음악 특유의 구슬픈 음정을 가리키는 데서 이름이 왔다. (재즈에서) 원래는 블루스와 재즈에서 온음계의 음을 살짝 낮춰 구슬프고 처지는 느낌을 내는 특정한 음(3음·5음·7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 노래를 부르다가 음을 살짝 낮춰 구슬프게 끄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시드니 베셰의 인생 후반부에 중요했던 미국의 재즈 음반사 이름이기도 하다. 이 회사는 이 블루스 음정에서 이름을 따왔지만, 오늘날에는 회사·상표 이름으로 더 많이 쓰인다.
코러스
(재즈에서) 한 곡의 화성 진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바퀴 도는 단위를 가리키며, 연주자들은 같은 코러스를 여러 번 돌며 그 위에서 다른 즉흥연주를 쌓는다. 예: 같은 놀이터 트랙을 여러 바퀴 도는데, 바퀴마다 다른 동작을 하며 도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노래에서는 후렴구를 뜻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