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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sie Smith

베시 스미스 (1894–1937)

판잣집에서 자란 고아 소녀의 목소리가, 무대 위에서는 한 시대를 울리는 여제의 목소리가 되었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테네시 채터누가 출생아버지 이른 죽음거리 버스킹2. 보드빌마 레이니와 만남TOBA 순회81극장 스타3. 도약컬럼비아 계약다운하티드 블루스잭 지와 결혼4. 정점전용 객차 순회암스트롱과 협연아들 입양5. 쇠락대공황 타격컬럼비아 방출스윙으로 전환6. 마지막교통사고 사망병원 신화 반박조플린의 묘비스미스1894–1937채터누가의 고아 소녀가 블루스의 여제가 되었다…
무대의 여정 🧭🗺️
N미국채터누가1894–1912필라델피아1924–1937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윌리엄 스미스

    침례교 설교자였던 아버지로, 그녀가 아기일 때 세상을 떠났다.

  • 영향마 레이니

    순회극단에서 함께 무대에 서며 초기 창법과 무대 감각에 영향을 주었다.

  • 후원프랭크 워커

    컬럼비아 레코드의 프로듀서로 그녀를 발탁해 첫 계약을 성사시켰다.

  • 가족잭 지

    남편이자 한동안 매니저를 맡아 흥행과 돈 관리에 깊이 관여했다.

  • 동료루이 암스트롱

    1925년 여러 세션에서 협연하며 서로의 음악에 자극을 주었다.

  • 후원존 해먼드

    1933년 스윙 연주자들과의 마지막 녹음 세션을 마련한 프로듀서였다.

YouTube에서 4곡 이어 듣기 ↗

I. 채터누가의 소녀 · 1894–1912 (0–18세)

(가난) 1894년 4월, 미국 테네시주 채터누가에서 태어났다. 일곱 남매 가운데 막내였다. 아버지 윌리엄 스미스는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으며 틈틈이 침례교 설교를 하던 사람이었으나, 그녀가 채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판잣집 한 칸에 온 가족이 모여 살며 끼니를 걱정하는 살림이었다. (상실) 아홉 살 무렵 어머니 로라와 오빠 한 명이 잇달아 세상을 떠났다. 부모를 모두 여읜 어린 형제들은 맏이인 큰누나 바이올라의 손에서 자랐다. 바이올라는 남의 집 빨래와 다림질로 동생들을 먹였고, 학교를 오래 다닐 형편이 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거리) 베시는 학교 대신 거리에서 돈벌이를 찾았다. 오빠 앤드루와 함께 13번가와 엘름가가 만나는 화이트 엘리펀트 살롱 앞에 나가 노래를 불렀다. 앤드루가 기타를 뜯으면 베시가 목청을 돋워 지나가는 행인들의 동전을 받았다. 또래보다 몸집이 크고 목소리가 굵어, 일찍부터 어른 못지않은 소리를 냈다고 전해진다. (출발) 1912년, 먼저 집을 나가 떠돌이 악단에 들어가 있던 오빠 클래런스가 모지스 스톡스 극단의 오디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클래런스는 극단에서 광대 역을 맡고 있었고, 단장은 처음엔 어린 베시를 노래가 아니라 춤으로만 받아들였다. 열여덟 살 소녀는 그렇게 가난한 고향을 떠나 순회 흥행의 세계로 들어섰다.

II. 마 레이니와 순회극단 · 1912–1920 (18–26세)

(만남) 모지스 스톡스 극단에서 이미 이름난 블루스 가수 마 레이니를 만났다. 레이니가 어린 베시를 납치하듯 데려가 노래를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오래 떠돌았지만, 이는 후대에 부풀려진 일화로 보는 연구자가 많다. 다만 두 사람이 함께 무대에 서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여러 증언이 뒷받침한다. (순회) 흑인 공연자들의 순회 조직인 시어터 오너스 부킹 협회(TOBA) 무대를 돌았다. 배우들 사이에서는 이니셜을 빗대어 흑인 배우에게는 고되다는 자조 섞인 말이 돌 만큼 일정과 대우가 열악했다. 낮은 개런티, 비좁은 숙소, 인종 분리가 일상이었다. (독립) 몇 해 지나지 않아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공연단을 꾸릴 만큼 입지를 다졌다. 애틀랜타의 81 극장을 비롯한 남부 극장들에서 간판 공연자로 섰다. 몸집이 크고 목소리가 우렁찼던 그녀는 무대 위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였다고 동시대인들은 회고했다. (목소리) 가성 없이 가슴에서 그대로 밀어내는 굵은 저음, 한 음을 길게 끌며 감정을 짜내는 창법이 이 시절 다져졌다. 사랑과 가난, 배신을 담담하고도 절절하게 풀어내는 이야기꾼으로서의 화법도 이때 몸에 붙었다.

III. 다운하티드 블루스 · 1920–1924 (26–30세)

(거절) 1920년대 초 여러 음반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목소리가 너무 거칠고 남부 티가 난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신생 흑인 음반사 블랙 스완조차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기회) 1923년, 컬럼비아 레코드의 프로듀서 프랭크 워커가 그녀를 불렀다. 워커는 몇 해 전 셀마의 한 클럽에서 노래하는 베시를 눈여겨본 터였다. 백인이 경영하는 대형 음반사가 이른바 레이스 레코드 시장의 가능성을 알아본 순간이었다. (대성공) 첫 녹음 「다운하티드 블루스」가 발매 반년 만에 약 78만 장이 팔려 나갔다. 흑인 여성 가수의 음반으로는 전례 없는 성적이었다. 이 한 장으로 그녀는 순회극단의 스타에서 전국구 레코드 스타로 발돋움했다. (결혼) 같은 해, 나이트 워치맨으로 일하던 잭 지와 결혼했다. 잭은 곧 그녀의 매니저를 자처하며 흥행과 돈 관리에 깊이 관여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처음부터 돈과 통제를 둘러싼 다툼으로 얼룩졌다고 여러 동료가 회고했다.

♪다운하티드 블루스 (Down Hearted Blues)1923 (29세)실황 Alberta Hunter · 1981 뉴욕 The Cookery

컬럼비아와 계약한 뒤 첫 녹음으로, 이 한 장이 그녀를 무명의 순회가수에서 전국구 스타로 끌어올렸다.

  • 도입부부터 피아노 한 대만 받쳐 주는 가운데, 가성을 쓰지 않고 가슴에서 그대로 밀어내는 저음으로 첫 소절을 던진다.
  • 피아니스트 클래런스 윌리엄스는 화려한 장식 없이 화음만 짚어 목소리가 온전히 드러나도록 비켜선다.
  • 한 줄을 부르면 반주가 짧게 되받아 답하는 부르고 답하기(콜 앤드 리스폰스) 구조가 되풀이된다.
  • 세 줄의 가사를 열두 마디에 담는 기본 블루스 형식(12마디 블루스) 위에서, 같은 첫 줄을 한 번 더 반복한 뒤 마지막 줄로 맺는 짜임이 또렷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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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블루스의 여제 · 1924–1929 (30–35세)

(정점) 개런티가 하룻밤에 수백 달러에 이르렀고, 자신의 이름을 새긴 전용 철도 객차를 타고 남부와 중서부를 돌았다. 당대 흑인 연예인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축에 들었다. 객차에는 무대 소품과 단원들의 숙소까지 갖춰, 인종 분리로 여관을 구하기 어려운 남부 순회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다. (협연) 1925년 루이 암스트롱과 함께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와 「케어리스 러브 블루스」를 비롯한 여러 곡을 녹음했다. 킹 올리버 악단 출신의 젊은 코넷 주자 암스트롱은 베시의 노래 사이사이로 짧고 애절한 응답구를 불어넣었다. 트롬본의 찰리 그린, 코넷의 조 스미스 등 당대 최고의 반주자들이 그녀의 세션에 이름을 올렸다. (가족) 1926년 잭과 함께 어린 아들 잭 지 주니어를 입양했다. 순회 일정이 살인적이어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아들을 위해 값비싼 옷과 장난감을 사들였다고 전해진다. (스크린) 1929년, 유일한 영화 출연작인 단편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 얼굴을 비췄다. 배신한 연인을 향해 절규하듯 노래하는 장면은 그녀가 남긴 유일한 영상 기록으로 남았다.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St. Louis Blues)1925 (31세)노래 Bessie Smith · 1929

킹 올리버 악단 출신의 젊은 암스트롱과 함께한 여러 세션 중 하나로, 두 개성 강한 목소리가 서로를 누르지 않고 주고받는 균형을 보여준다.

  • 도입부, 암스트롱의 코넷이 짧고 애절한 가락으로 먼저 분위기를 깔아 놓는다.
  • 베시의 목소리와 암스트롱의 코넷이 마디마다 주고받으며 서로의 소리에 반응하는 대화 같은 연주(인터플레이)가 곡 전체를 이끈다.
  • 리드오르간을 반주로 쓴 프레드 롱쇼의 낮고 탄식하는 듯한 화성이 곡에 무게를 더한다.
  • 원곡을 쓴 W. C. 핸디 특유의 형식대로, 기본 12마디 블루스 사이에 탱고풍 리듬의 다른 부분(브리지)이 끼어드는 독특한 구성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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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워터 블루스 (Backwater Blues)1927 (33세)실황 Sammy Price·Betty Janette · 뉴포트 재즈

1927년 초, 남부를 덮친 미시시피강 대홍수보다 몇 달 앞서 녹음됐지만 재난으로 삶터를 잃은 이들의 심정을 예견한 듯한 노래로 오래 회자됐다.

  • 피아니스트 제임스 P. 존슨이 낮은 음역에서 굴리듯 반복하는 왼손 반주가 불어나는 물살을 떠올리게 한다.
  • 절마다 상황이 한 걸음씩 나빠지는 이야기식 전개로, 노래 한 곡이 짧은 소설처럼 굴러간다.
  • 격정적으로 내지르기보다 눌러 참는 듯한 창법으로 슬픔을 그린다.
  • 12마디 블루스를 반복하면서도 매 절 가사 상황만 바뀌는, 이야기를 담는 블루스 형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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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디 노우즈 유 웬 유아 다운 앤드 아웃 (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1929 (35세)실황 Eric Clapton · 2012 12.12.12 콘서트

대공황이 닥치기 몇 달 전인 1929년 5월에 녹음됐다. 호황이 끝나고 나면 곁을 떠나는 사람들을 그린 노래가 훗날의 현실을 예감한 듯 들렸다.

  • 클래런스 윌리엄스의 피아노에 코넷과 색소폰, 튜바가 어우러진 소편성 반주 위에서 목소리가 또렷이 드러난다.
  • 분노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어조로 담담하게 부른다.
  • 좋았던 시절과 버려진 처지를 대비시키는 화법을, 가사보다 목소리의 온도 변화로 먼저 느낄 수 있다.
  • 느린 템포와 긴 호흡의 프레이징이 곡 전체에 무게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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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대공황과 쇠퇴 · 1929–1933 (35–39세)

(붕괴) 1929년 주가 폭락과 함께 레코드 산업이 무너졌다. 사치품 취급을 받던 음반 판매량이 급격히 줄었고, 1931년 컬럼비아는 그녀와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았다. 한때 78만 장을 팔던 가수가 하루아침에 전속 없는 처지가 됐다. (쇠락) 보드빌 순회 극장들이 잇달아 문을 닫았다. 라디오와 유성영화가 값싼 오락으로 극장 관객을 흡수했다. 전용 객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은 지나갔고, 작은 클럽과 천막 공연으로 무대를 옮겨야 했다. (버팀) 그럼에도 노래를 놓지 않았다. 개런티는 줄었지만 남부와 북부의 클럽을 돌며 공연을 계속했다. 동료들은 무대에 서면 여전히 예전의 위엄을 잃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재기) 1933년, 젊은 프로듀서 존 해먼드가 그녀를 스튜디오로 다시 불렀다. 잭 티가든, 프랭키 뉴턴, 추 베리 등 흑백이 섞인 당대 스윙 연주자들과 한 세션에 세웠다. 블루스 가수로서는 마지막 녹음이 될 이 자리에서 그녀는 시대에 맞춰 한결 경쾌해진 스윙 편곡에 목소리를 실었다.

♪김미 어 피그풋 (Gimme a Pigfoot)1933 (39세)

존 해먼드가 마련한 마지막 세션에서 녹음됐다. 스윙 시대에 발맞춰 한결 경쾌해진 편곡 속에서도 목소리의 힘은 여전했다.

  • 이전의 느릿한 블루스보다 훨씬 빠른 스윙 리듬(박자 뒷부분을 살짝 끌어 미는 느낌) 위에서 노래한다.
  • 잭 티가든의 트롬본과 프랭키 뉴턴의 트럼펫, 추 베리의 테너 색소폰이 어우러진 스윙 악단이 곡에 활기를 더한다.
  • 10년 전 데뷔 녹음과 비교해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성량과 저음이 확인된다.
  • 가사 분위기도 흥청거리는 파티를 그리며, 이전 곡들의 무거운 정서와 뚜렷이 대비된다.

VI. 마지막 길 · 1933–1937 (39–43세)

(순항) 스윙 시대에 발맞춰 무대를 바꿔 갔다. 규모는 예전만 못했지만 뉴욕 클럽들과 남부 극장을 오가며 공연을 이어 갔고, 새 음반 계약과 본격적인 재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고) 1937년 9월 26일, 미국 미시시피주 클라크스데일 인근 61번 국도에서 타고 가던 차가 트럭과 충돌했다. 오른팔이 크게 다쳤고, 인근 흑인 전용 병원인 G. T. 토머스 아프리칸아메리칸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았지만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신화) 백인 병원에서 입원을 거부당해 죽음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오래도록 퍼졌고,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의 희곡 「베시 스미스의 죽음」을 통해 더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전기 작가 크리스 앨버트슨의 조사는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그녀는 처음부터 흑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안장) 펜실베이니아주 샤론힐의 마운트론 공동묘지에 묻혔으나, 묘비를 세울 형편이 되지 않아 오랫동안 무덤 표지가 없었다. 1970년, 그녀의 노래에 깊이 영향받은 가수 재니스 조플린이 전직 가정부 후아니타 그린과 비용을 나누어 마침내 묘비를 세웠다.

덜 알려진 이야기

(사업 감각) 흥행업자들이 개런티를 떼먹는 일이 흔했던 시절, 그녀는 공연 시작 전 현금 수령을 고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진하게 착취당하는 블루스 가수라는 통념과는 다른, 자신의 값어치를 정확히 알고 지킨 인물이었다. (저작권) 당시 흑인 여성 블루스 가수 대다수는 자신이 부른 노래의 작사·작곡 크레디트조차 얻지 못했다. 그러나 「영 우먼스 블루스」 등 몇몇 곡은 그녀 이름으로 저작권이 등록되어 있다. 흔치 않은 일이었고, 후대 학자들이 컬럼비아 세션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며 뒤늦게 확인한 사실이다. (납치설의 기원) 마 레이니가 어린 베시를 납치해 순회단에 끌어들였다는 이야기는 어디서 비롯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뒷받침할 기록이 없는데도, 극적인 서사 탓에 여러 전기와 다큐멘터리에 그대로 옮겨졌다. 최근 연구자들은 이를 사실로 단정하지 않고 전해지는 이야기 정도로 다루는 편이다.

용어 노트 📚🔎

레이스 레코드

(재즈에서) 1920년대 미국 음반사들이 흑인 소비자를 겨냥해 따로 분류해 판매한 음반을 가리킨다. 블루스와 가스펠, 재즈가 주로 이 분류에 실려 나왔고, 백인 대상 음반과는 광고와 유통 경로도 달랐다. 학교에서 반을 따로 나누듯 소비자를 인종으로 나눠 시장을 짰다고 보면 된다. (다른 데서는) 오늘날에는 인종을 앞세워 상품을 구분해 파는 방식 자체가 차별적 관행으로 여겨져, 레이스 레코드라는 말도 역사적 용어로만 남아 있다.

콜 앤드 리스폰스

(말뜻) 부르고(콜) 답한다(리스폰스)는 뜻 그대로다. (재즈에서) 한 사람이나 악기가 짧은 가락을 던지면 다른 쪽이 곧바로 되받아 답하는 구조를 말한다. 교회 성가대에서 목사가 한 소절을 외치면 신도들이 화답하는 방식과 같은 원리다. 블루스에서는 노래와 반주 악기가 이 방식으로 대화하듯 주고받는다.

블루 노트

(재즈에서) 장음계의 정해진 음을 살짝 낮추거나 사이 음으로 흔들어 애수와 긴장을 만드는 표현을 가리킨다. 피아노처럼 음높이가 고정된 악기에서는 정확히 낼 수 없어, 가까운 두 음 사이를 문지르듯 오가며 흉내 낸다. 슬픈 노래를 부를 때 음을 살짝 낮춰 흐느끼듯 꺾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12마디 블루스

(재즈에서) 세 줄의 가사를 각각 네 마디씩, 모두 열두 마디에 담아 한 바퀴를 도는 블루스의 기본 형식이다. 첫 줄을 부르고 같은 가사를 한 번 더 반복한 뒤 마지막 줄로 마무리하는 짜임이 뼈대를 이룬다. 돌림노래처럼 정해진 틀을 계속 반복하되, 그 안에서 가사와 감정만 계속 바뀐다고 생각하면 된다.

보드빌

(말뜻) 프랑스어에서 온 말로, 노래와 촌극을 섞은 가벼운 통속극을 뜻하는 데서 비롯했다. (재즈에서) 20세기 초 미국에서 노래, 춤, 곡예, 코미디를 한데 묶어 선보이던 순회 버라이어티 공연을 가리킨다. 오늘날의 종합 예능 프로그램과 비슷하게, 짧은 순서들을 이어 붙여 한 편의 공연을 만들었다.

스윙

(재즈에서) 박자의 뒷부분을 살짝 끌어 밀고 당기는 느낌을 주는 리듬감, 또는 그런 리듬을 앞세운 1930년대 재즈 양식을 가리킨다. 정확히 똑같은 길이로 딱딱 끊어 걷지 않고, 한쪽 발을 살짝 오래 끌었다 내딛듯 리듬에 탄력을 준다. (다른 데서는) 스윙은 야구나 골프에서 방망이나 채를 휘두르는 동작을 가리키기도 한다.

인터플레이

(말뜻) 사이(inter)에서 주고받는 연주(play)라는 뜻이다. (재즈에서) 솔로를 맡은 연주자와 반주하는 악기들이 서로의 소리를 듣고 즉석에서 반응하며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축구 경기에서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다음 동작을 바꾸는 것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