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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t Basie

카운트 베이시 (1904–1984)

가장 적은 음으로 가장 크게 스윙하게 만든 피아니스트였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레드뱅크 출생마부의 아들팻츠 월러 사사2. 캔자스시티블루 데블스베니 모튼 악단모튼의 죽음3. 카운트 탄생리노 클럽 라디오존 해먼드 발굴영-에번스 경쟁4. 스윙 전성기원 어클락 점프캐서린과 결혼1950년 해산5. 재기뉴 테스트먼트 밴드시나트라 협연엘링턴과 만남6. 말년심장마비휠체어 지휘1984년 별세베이시1904–1984캔자스시티에서 카운트라는 이름을 얻어 스윙 시…
무대의 여정 🧭🗺️
N미국레드뱅크1904뉴욕1920년대–1970년대캔자스시티1927–1936프리포트1960년대–1970년대할리우드1970년대–1984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릴리언 베이시

    집에 피아노를 들여 처음 건반을 가르친 어머니.

  • 스승팻츠 월러

    할렘 링컨 극장에서 오르간과 즉흥연주의 기초를 가르쳐준 선배.

  • 동료베니 모튼

    캔자스시티 악단의 리더로, 나란히 피아노를 치며 밴드 운영을 곁에서 배우게 해준 인물.

  • 후원존 해먼드

    라디오에서 밴드를 발굴해 뉴욕 데뷔를 이끈 프로듀서.

  • 동료레스터 영

    밴드의 대표 테너 솔로이스트로, 독특하고 가벼운 음색으로 이름을 알렸다.

  • 경쟁듀크 엘링턴

    평생 서로 다른 스타일로 우호적 경쟁을 이어간 동시대 최고의 라이벌 밴드 리더.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레드뱅크의 소년 · 1904–1924 (0–20세)

(뉴저지) 1904년 8월, 미국 뉴저지주 레드뱅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윌리엄 제임스 베이시였다. (부모) 아버지 하비 리 베이시는 동네 부유한 집안의 마부 겸 관리인으로 일했고, 어머니 릴리언 베이시는 남의 집 빨래를 맡아 생계를 도왔다. 어머니는 피아노를 조금 칠 줄 알았고, 집에 낡은 업라이트 피아노를 들여 어린 베이시에게 처음 건반을 가르쳤다. (드럼) 처음에는 드럼에 마음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같은 동네에 살던 소년 소니 그리어 — 훗날 듀크 엘링턴의 드러머가 되는 — 가 이미 발군의 솜씨를 보이자, 베이시는 스스로 드럼을 접고 피아노로 방향을 돌렸다고 회고했다. (할렘) 10대 후반 뉴욕 할렘으로 나가 무성영화관에서 반주 피아니스트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이 시기 오르간 연주자 팻츠 월러를 만나 링컨 극장의 오르간 앞에 나란히 앉아 페달 밟는 법과 즉흥연주의 기초를 배웠다고 전해진다. 화려한 기교보다 정확한 타이밍을 앞세우는 훗날 베이시의 반주 철학은 이 시절의 배움에서 이미 싹트고 있었다.

II. 캔자스시티로 가는 길 · 1924–1935 (20–31세)

(보드빌) 1920년대 중반, 흑인 공연자들을 순회시키던 무대 조직인 티오비에이(TOBA) 서킷의 반주자로 여러 악극단을 따라 전국을 돌았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생활이었지만, 다양한 무대에서 온갖 곡을 즉석에서 받아치는 능력을 키운 시기이기도 했다. (캔자스시티) 1927년 무렵 몸담았던 쇼가 캔자스시티에서 자금난으로 해산했다. 동료들은 뉴욕으로 돌아갔지만 베이시는 돌아갈 여비가 없어 그 도시에 눌러앉았다 — 훗날 그의 음악 인생을 결정지은 우연이었다. (월터페이지) 캔자스시티에서 베이시스트 월터 페이지가 이끌던 악단 블루 데블스에 합류해, 처음으로 여러 악기가 하나의 리듬으로 맞물려 흘러가는 스윙 감각을 몸으로 익혔다. (베니모튼) 1929년, 캔자스시티 최고의 악단으로 꼽히던 베니 모튼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피아노와 편곡을 맡았다. 모튼과 베이시는 두 대의 피아노를 나란히 놓고 함께 연주하며 서로의 스타일을 주고받았고, 베이시는 이때부터 밴드를 이끄는 법을 곁에서 배웠다. (죽음) 1935년, 모튼이 편도선 수술 도중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향년 마흔이었다. 악단은 뿔뿔이 흩어질 위기에 놓였고, 남은 단원들은 베이시를 중심으로 새 악단을 꾸리기로 뜻을 모았다.

III. 카운트의 탄생 · 1935–1938 (31–34세)

(리노클럽) 캔자스시티의 리노 클럽에 눌러앉아 밤마다 라디오로 생중계되는 무대에 섰다. 방송 진행자가 듀크 엘링턴, 얼 하인스처럼 귀족 칭호가 붙은 이름난 리더들 틈에서 그를 소개할 호칭이 필요하다며 즉석에서 카운트라는 작위를 붙였다고 전해진다. (존해먼드) 우연히 자동차 라디오로 그 방송을 들은 프로듀서 존 해먼드가 밴드를 발굴했다. 그의 후원에 힘입어 1936년, 베이시 악단은 뉴욕으로 진출했다. (리듬섹션) 기타의 프레디 그린, 베이스의 월터 페이지, 드럼의 조 존스, 그리고 베이시 자신의 피아노 — 네 사람은 훗날 올아메리칸 리듬 섹션이라 불리며 재즈 역사상 가장 정교한 스윙 반주로 꼽히게 된다. 베이시는 화려한 코드 대신 여백을 남기는 연주로, 나머지 세 사람이 숨 쉴 자리를 내주었다. (경쟁) 테너 색소폰의 레스터 영과 허셜 에번스는 서로 다른 음색으로 밴드 안에서 유명한 맞수 관계를 이루었다. 가볍고 부드러운 영의 소리와 굵고 거친 에번스의 소리가 밤마다 클럽 손님들 사이에서 비교되고 회자됐다고 전해진다. (보컬) 블루스 가수 지미 러싱이 밴드의 목소리를 맡아 도시적이고 활기찬 창법으로 인기를 끌었다.

♪원 어클락 점프 (One O'Clock Jump)1937 (33세)영화 장면 — Count Basie Orchestra (1943)

리노 클럽 시절 즉흥에서 다져진 리프가 밴드의 상징곡이자 방송 마무리곡으로 굳어졌다.

  • 베이시의 짧고 단순한 피아노 인트로 네 마디가 곡 전체의 표지판 역할을 한다 — 화려한 기교 대신 여백을 남기는 연주 철학이 처음부터 드러난다.
  • 금관과 리드 섹션이 주고받는 반복 악구(리프)가 쌓이며 12마디 블루스 형식 위에서 점점 열기를 더해간다.
  • 프레디 그린의 기타는 화음을 들려주기보다 리듬만 또박또박 짚어 스윙의 뒷심을 받친다 — 녹음에서도 잘 들리지 않을 만큼 낮게 섞였지만 밴드 전체가 그 위에 얹혀 있다.
  • 방송이 새벽 한 시에 끝날 무렵 늘 이 곡으로 마무리했다는 데서 제목이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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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 립스 인 (Lester Leaps In)1939 (35세)무대 Harry James · 1960 Ed Sullivan Show

밴드 안 맞수였던 레스터 영의 개성이 소규모 편성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녹음이다.

  • 레스터 영의 솔로는 첫 코러스부터 낮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흘러 들어가 서두르지 않는다 — 즉흥연주가 반드시 화려해야 한다는 통념을 뒤집은 연주로 꼽힌다.
  • 곡의 화성은 조지 거슈윈의 「아이 갓 리듬」 진행을 빌려온 32마디 형식(AABA)이다.
  • 조 존스의 브러시 드럼이 심벌 대신 스네어를 스치듯 쓸어 매우 가볍게 스윙을 그린다.
  • 소규모 편성(캔자스시티 세븐)이라 큰 빅밴드에서는 듣기 힘든 베이시와 영의 대화 같은 주고받음(인터플레이)이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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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스윙의 정점 · 1938–1950 (34–46세)

(정점) 「원 어클락 점프」(1937)와 「점핀 앳 더 우드사이드」 같은 곡들이 연이어 인기를 얻으며 베이시 악단은 스윙 시대를 대표하는 빅밴드로 떠올랐다. (결혼) 1942년, 캐서린 모건과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딸 다이앤이 태어났는데, 뇌성마비를 안고 태어난 딸을 베이시는 순회공연 중에도 늘 마음에 두고 살았다고 전해진다. (빌리홀리데이) 1937년 무렵 가수 빌리 홀리데이가 한동안 밴드와 함께 순회했다. 계약 문제로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은 훗날 그 시절의 인연을 서로 따뜻하게 회고했다. (분리)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미국 남부를 순회할 때면 인종 분리의 벽에 늘 부딪혔다. 백인 전용 숙소에 묵지 못해 버스에서 밤을 새우거나, 지역마다 다른 카바레 카드 규정에 발이 묶이는 일이 잦았다. (쇠퇴) 1940년대 말, 텔레비전의 보급과 세금 부담, 유지비가 큰 빅밴드 편성의 경제성 악화가 겹쳤다. 1950년, 베이시는 결국 18인조 악단을 해산하고 한동안 소규모 콤보로 활동을 줄였다.

♪점핀 앳 더 우드사이드 (Jumpin' at the Woodside)1938 (34세)공식 MV — Count Basie and his Orchestra

빅밴드가 절정에 오르던 시절, 밴드의 대표 솔로이스트들이 차례로 나서는 녹음이다.

  • 도입부의 금관 리프가 여러 번 되풀이되며 쌓여 올라가는 구성은 이후 빅밴드 스윙 편곡의 전형이 되었다.
  • 레스터 영의 테너 솔로에 이어 허셜 에번스가 클라리넷 솔로를 맡아, 두 맞수의 서로 다른 소리를 차례로 들을 수 있다.
  • 곡 후반부 밴드 전체가 한 리프를 반복하며 고조되는 대목(셔우트 코러스)은 라이브 공연에서 관객의 박수를 이끌어내도록 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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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뉴 테스트먼트 밴드 · 1952–1969 (48–65세)

(재결성) 1952년, 편곡자 닐 헤프티와 어니 윌킨스, 프랭크 포스터 등 젊은 인재들을 규합해 악단을 다시 꾸렸다. 평론가들은 예전 악단을 구약에, 이 새 악단을 신약에 빗대 뉴 테스트먼트 밴드라 불렀다. (포스터) 프랭크 포스터가 작곡한 「샤이니 스타킹스」 같은 곡들은 단정하고 현대적인 편곡으로 새 악단의 색깔을 규정했다. (시나트라) 1950년대 후반부터 프랭크 시나트라와 함께 무대에 서고 음반을 녹음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크게 넓혔다. 시나트라는 흔들림 없이 박자를 지켜주는 베이시 밴드를 가장 신뢰하는 반주자로 꼽았다고 전해진다. (엘링턴) 1961년, 오랜 세월 서로를 존중하며 경쟁해온 듀크 엘링턴과 처음으로 한 스튜디오에서 만나 두 대의 피아노로 함께 녹음했다. 두 거장은 평생 다른 길을 걸었지만 서로의 밴드를 아꼈다. (그래미) 1950~60년대에 걸쳐 여러 차례 그래미상을 받으며, 대형 밴드 편성이 사그라들던 시절에도 빅밴드 스윙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에브리데이 아이 해브 더 블루스 (Everyday I Have the Blues)1955 (51세)실황 Count Basie Orchestra · 조 윌리엄스 (보컬) · 1981 카네기홀

가수 조 윌리엄스가 새 악단에 합류해 부른 이 곡은 뉴 테스트먼트 밴드의 상업적 재도약을 이끌었다.

  • 조 윌리엄스의 굵고 힘 있는 목소리는 가스펠과 블루스 창법을 넘나들며, 가사를 절규하듯 밀어붙이는 화법(블루스 샤우팅)의 대표적 예로 꼽힌다.
  • 베이시의 반주는 절제돼 있다 — 화려한 장식음 대신 코드 하나하나를 정확한 자리에 찍어 가수의 목소리에 공간을 내준다.
  • 밴드가 뒤에서 짧게 되받아치는 금관 리프가 가수의 외침에 응답하듯 배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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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 인 파리 (April in Paris)1956 (52세)연주 Count Basie and his Orchestra

정교한 편곡 자체가 즉흥연주만큼 회자된 녹음으로, 재기한 악단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 오르간 연주자 와일드 빌 데이비스(Wild Bill Davis)의 편곡에 담긴 거짓 엔딩(가짜로 곡이 끝나는 듯한 대목) — 끝난 줄 알았던 곡이 다시 살아나는 장면이 이 녹음의 상징이 됐다.
  • 베이시가 직접 '원 모어 타임', '원 모어 원스'를 외쳐 밴드를 다시 불러들이는 대목은 라이브 공연에서 늘 웃음과 박수를 끌어냈다고 전해진다.
  • 색소폰·트럼펫·트롬본 섹션이 교차하며 쌓는 화음은 즉흥연주보다 편곡 자체의 짜임새로 회자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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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타임! 더 카운트 미츠 더 듀크 (First Time! The Count Meets the Duke)1961 (57세)실황 JLCO 단원들의 트리뷰트 연주

오랜 세월 서로를 존중해온 두 밴드 리더가 처음이자 유일하게 정규 스튜디오에서 마주 앉은 기록이다.

  • 두 리더가 나란히 두 대의 피아노에 앉아 서로의 밴드 단원들과 섞여 연주한다 — 엘링턴 밴드와 베이시 밴드가 한자리에 모인 유일한 정규 스튜디오 녹음이다.
  • 엘링턴 특유의 색채 풍부한 화성과 베이시 특유의 여백 많은 스윙이 곡마다 교차하며 두 스타일의 차이를 선명하게 들려준다.
  • 리듬 섹션이 두 악단에서 절반씩 섞여 구성돼, 서로 다른 스윙 감각이 맞춰가는 과정이 녹음에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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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트라-베이시: 언 히스토릭 뮤지컬 퍼스트 (Sinatra-Basie: An Historic Musical First)1962 (58세)무대 Frank Sinatra · Count Basie Orchestra · 1965 Hollywood Palace

가수와 빅밴드가 대등하게 서로를 신뢰한 협연으로, 베이시 밴드의 정확한 리듬감이 대중적으로 각인된 음반이다.

  • 닐 헤프티가 편곡을 맡아 시나트라의 노래하는 화법과 베이시 밴드의 정확한 리듬을 어긋남 없이 맞물리게 짰다.
  • 시나트라는 스튜디오에서 박자를 흔들림 없이 지켜주는 베이시 밴드에 크게 만족했다고 전해지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함께 녹음했다.
  • 빅밴드 반주가 가수를 압도하지 않도록 다이내믹을 절제한 편곡이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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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말년과 마지막 스윙 · 1970–1984 (66–80세)

(투병) 1976년 심장마비를 겪은 뒤에도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의사의 만류에도 휠체어에 앉은 채 지휘봉 대신 손짓으로 밴드를 이끌었다. (책임감) 말년에도 한 해의 절반 이상을 순회공연으로 보냈다. 밴드를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젊은 시절부터 몸에 밴 근면함이 그를 무대에 붙들어 두었다고 회고하는 단원들이 많았다. (죽음) 1984년 4월, 미국 플로리다주 할리우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일흔아홉이었다. (계승) 그의 이름을 딴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는 사후에도 해체되지 않고 이어져, 오늘날까지 스윙의 전통을 지키는 악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덜 알려진 이야기

카운트라는 이름이 정확히 누구의 입에서 처음 나왔는지는 회고마다 조금씩 다르다. 리노 클럽의 라디오 중계를 맡았던 아나운서가 즉흥으로 붙였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퍼져 있지만, 정확히 누구였는지, 어떤 말로 붙였는지는 동시대 증언마다 세부가 엇갈린다. 다만 이미 듀크 엘링턴과 얼 하인스처럼 귀족 칭호가 붙은 리더들이 있던 시절이라, 베이시에게도 그런 칭호가 필요했다는 것만은 여러 회고가 공통으로 전하는 배경이다. 베이시는 정작 악보를 빠르게 읽어내는 데는 서툴렀다고 밴드 단원들이 여러 차례 증언했다. 새 곡은 오선지에 촘촘히 적어 내려가기보다, 리허설에서 단원들과 리프를 주고받으며 귀로 맞추고 통째로 외워버리는 헤드 어레인지먼트 방식을 즐겼다. 위대한 빅밴드 리더라는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이 사실은, 오랫동안 전기 작가들 사이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다가 후대 연구자들의 인터뷰 정리 과정에서 다시 조명됐다. 기타리스트 프레디 그린은 1937년부터 베이시가 세상을 떠난 뒤로도 활동을 이어가, 반세기 가까이 밴드의 리듬 기타를 맡았다. 그 세월 동안 녹음에 남은 독주는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다 — 그는 화음을 짚는 소리 자체가 잘 들리지 않을 만큼 낮게 섞이는 것을 오히려 자신의 역할로 여겼다고 전해진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솔로이스트가 아니라 박자를 떠받치는 존재로 반세기를 보낸 이 이야기는, 화려한 솔로 중심의 재즈사 서술에서 곧잘 지나쳐지곤 한다.

용어 노트 📚🔎

스윙 (Swing)

(말뜻) 영어 단어 스윙은 그네처럼 앞뒤로 흔들린다는 뜻이다. (재즈에서) 박자를 정확히 반으로 쪼개지 않고 앞쪽은 길게, 뒤쪽은 짧게 밀고 당기듯 연주해 몸이 저절로 들썩이게 만드는 리듬감을 가리킨다. 친구를 그네에 태워 밀어줄 때 완전히 똑같은 간격이 아니라 살짝 당겼다 놓는 느낌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야구에서 스윙은 방망이를 휘두르는 동작을 가리킨다.

리프 (Riff)

(재즈에서) 짧고 인상적인 악구를 여러 번 되풀이해 곡의 뼈대로 삼는 기법이다. 응원 구호를 여러 사람이 박자에 맞춰 계속 외치는 것과 비슷하게, 금관이나 색소폰 섹션이 같은 가락을 반복하며 곡에 힘을 싣는다. (다른 데서는) 일상 대화에서 어떤 주제를 두고 '리프를 한다'는 말은 그 이야기를 이리저리 변주해 이어간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12마디 블루스 (12-Bar Blues)

(말뜻) 블루스(blues)는 영어에서 우울하다는 뜻의 표현에서 왔다. (재즈에서) 열두 마디를 한 단위로 삼아 정해진 순서로 화음이 바뀌는 곡의 틀을 가리킨다. 이 틀 안에서 연주자들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즉흥연주를 펼칠 수 있다 — 정해진 열두 칸짜리 판 위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말을 옮기는 놀이와 비슷하다.

AABA 형식 (32마디 형식)

(재즈에서) 여덟 마디씩 네 덩어리로 이뤄진 서른두 마디 노래 형식이다. 처음 여덟 마디(A)가 나오고 한 번 더 되풀이된 뒤, 다른 느낌의 여덟 마디(B, 흔히 브리지라 부른다)를 거쳐 처음 가락(A)으로 돌아온다. 학교 노래에서 같은 후렴을 반복하다 중간에 다른 소절이 끼어들고 다시 후렴으로 돌아오는 구성과 비슷하다.

셔우트 코러스 (Shout Chorus)

(재즈에서) 빅밴드 곡의 막바지에 밴드 전체가 가장 크고 힘차게 같은 악구를 반복하며 절정을 이루는 대목을 가리킨다. 운동 경기 막판에 관중석 전체가 한목소리로 응원가를 외치는 순간과 비슷한 고조감을 준다.

헤드 어레인지먼트 (Head Arrangement)

(말뜻) 헤드(head)는 머리, 즉 악보 없이 머릿속에서 만든다는 뜻이다. (재즈에서) 작곡가가 미리 오선지에 적어두지 않고, 연주자들이 리허설 중에 서로 맞춰가며 즉흥적으로 짜고 외워버리는 편곡을 가리킨다. 반 전체가 대본 없이 즉석에서 역할극을 맞춰가며 만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인터플레이 (Interplay)

(재즈에서) 연주자들이 서로의 연주를 듣고 즉석에서 주고받으며 대화하듯 음악을 만들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친구와 이야기할 때 상대의 말에 즉흥적으로 맞장구치고 되받아치는 대화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