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Ellington
음악에는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 이 두 가지만 있을 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I. 워싱턴의 소년 · 1899–1917 (0–18세)
(워싱턴) 1899년 4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제임스 에드워드 엘링턴은 한때 백악관 행사의 요리와 접대를 돕기도 한 집사였고, 뒤에는 해군 조병창에서 청사진을 그리는 일로 생계를 꾸렸다. 흑인 중산층이 자리 잡은 워싱턴의 분위기 속에서 자란 유년기는 뒷날 그의 품위 있는 태도와 격식에 대한 애착으로 이어졌다. (어머니) 어머니 데이지 켄디 엘링턴은 신앙심이 깊고 예절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외아들을 극진히 돌보며 옷차림과 말씨를 세심히 가르쳤다. 훗날 그는 어머니가 늘 너는 특별한 아이라고 말해주었다고 회고했으며, 그 말이 평생 자신감의 뿌리가 되었다고 말했다. (별명) 여덜 살 무렵 친구 에드거 매켄트리가 그의 세련된 옷차림과 귀족적인 태도를 보고 '듀크'라 부르기 시작했고, 이 별명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피아노) 일곱 살 무렵 피아노 교습을 받았지만 야구에 더 관심이 많아 건반을 등한시했다. 십 대에 접어들어 지역 랙타임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접하며 태도가 바뀌었고, 헨리 그랜트에게 화성을 배우며 스스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림) 암스트롱 실업고등학교 재학 중 미술 실력을 인정받아 프랫 인스티튜트의 장학금을 제안받았으나, 음악을 향한 마음이 더 커 결국 졸업장 없이 학교를 떠났다. 이 시기 그린 간판과 포스터로 번 돈은 그의 첫 사업 수단이 되었다.
II. 뉴욕으로 · 1918–1926 (19–27세)
(결혼) 1918년, 고교 시절부터 알아온 에드나 톰슨과 결혼했다. 이듬해 아들 머서가 태어났다. 머서는 자라며 트럼펫과 작곡을 배워 이후 아버지 악단에서 연주하고 훗날 자신의 악단을 이끌기도 했다. (밴드) 결혼 초기 워싱턴에서 '듀크의 세레네이더스'라는 소규모 밴드를 이끌며 파티와 무도회에서 연주했다. 이 무렵 함께한 드러머 소니 그리어, 알토색소폼 오토 하드윅, 트럼펫 아서 웨솔은 이후 오랫동안 그의 악단을 지킨 동료가 되었다. (뉴욕) 1923년 뉴욕으로 이주해 밴조 주자 엘머 스노든이 이끄는 '워싱토니언스'에 합류했다. 스노든이 밴드를 떠나자 1924년 무렵 리더 자리를 넘겨받아 이름을 그대로 쓰며 자신의 악단으로 키워나갔다. (만남) 이 무렵 소프라노 색소폼의 명인 시드니 베셰가 잠시 악단에 합류해 함께 연주했다. 그는 훗날 베셰의 즉흥연주가 지닌 대담함과 존재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회고했으며, 앙상블 안에서 개인의 목소리를 살리는 편곡 방식을 스스로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생계) 할렘의 클럽들을 옮겨 다니며 입지를 다지는 동안 생계는 넉넉지 않았다. 1926년 녹음한 「이스트세인트루이스 투들루」는 트럼펫 버블 마일리의 그르렁거리는 음색을 중심으로 짜여, 아직 무명이던 이 시절 악단의 색깔을 처음으로 또렷하게 보여준 곡이었다.
아직 무명이던 워싱토니언스 시절, 버블 마일리의 색채가 악단의 정체성을 처음 드러낸 곡이다.
- 도입부 버블 마일리의 트럼펫이 음향기(뮤트)로 그르렁거리는 소리(그로울)를 내며 곡의 어두운 색채를 정한다.
- 곡 전체는 정해진 멜로디를 악기들이 번갈아 받는 주고받기 구조(콜앤리스폰스)로 짜여 있다.
- 조 낸튼의 트롬본이 손으로 여닫는 음향기(플런저 뮤트)로 사람 말소리 같은 억양을 낸다.
- 느린 행진곡풍 리듬이 반복되며 이른바 정글 스타일이라 불린 초기 사운드의 원형을 들려준다.
III. 코튼 클럽 시대 · 1927–1931 (28–32세)
(입성) 1927년 12월, 할렘의 코튼 클럽에 상주 악단으로 들어가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백인 전용 손님을 받던 이 클럽에서 매일 밤 연주한 무대가 라디오로 전국에 중계되며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글) 트럼펫의 버블 마일리와 트롬본의 조 낸튼(트리키 샘)이 음향기(뮤트)로 사람 목소리처럼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만들어내며 이른바 '정글 스타일'을 완성했다. 이 시기의 「블랙 앤드 탠 판타지」는 코튼 클럽 무대가 요구한 이국적이고 극적인 분위기를 음악으로 옮긴 결과물이었다. (매니저) 사업가 어빙 밀스가 매니저로 붙어 계약과 홍보를 맡았다. 밀스는 여러 곡에 공동 작곡자로 이름을 올려 저작권 수입 일부를 나눠 가졌는데, 당시 흑인 음악가와 백인 매니저 사이에 흔했던 이런 관행은 그에게 불리했지만 동시에 악단을 전국 순회와 영화 출연으로 이끄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음반) 1930년 녹음한 「무드 인디고」는 트럼펫과 뮤트를 낀 트롬본, 낮은 음역의 클라리넷을 겹친 독특한 화음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그를 단순한 클럽 악단장에서 작곡가로 각인시켰다.
코튼 클럽 무대에서 클럽 악단장을 넘어 작곡가로 각인된 계기가 된 곡이다.
- 트럼펫, 뮤트를 낀 트롬본, 낮은 음역의 클라리넷을 겹쳐 쓴 독특한 화음 배치(보이싱)가 우울하고 푸른 색채를 만든다.
- 멜로디는 단순하지만 각 악기가 서로 다른 음역에서 조용히 스며들듯 등장한다.
- 느린 템포와 여백이 많은 편성이 소리 사이 침묵의 무게를 들려준다.
- 이후 수십 년간 다양한 편성으로 재녹음되며 엘링턴 사운드의 상징이 됐다.
IV. 스윙 시대의 정점 · 1932–1942 (33–43세)
(순회) 코튼 클럽을 나온 뒤에도 미국 전역과 유럽까지 순회를 넓혀갔다. 남부 순회 중에는 호텔 투숙을 거절당하는 일이 잦아 전용 열차 객차를 빌려 이동하고 그 안에서 자며 지냈다고 전해진다. 인종 분리의 현실을 몸으로 겪으면서도, 무대 위에서 흑인 음악가들의 품격과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곧 저항이라 여겼다고 회고했다. (스트레이혼) 1939년 젊은 작곡가 빌리 스트레이혼이 악단에 합류했다. 두 사람은 곧 떼어놓을 수 없는 협업자가 되어, 스트레이혼은 편곡과 작곡에서 그의 또 다른 자아로 불릴 만큼 깊이 관여했다. 1941년 녹음된 「테이크 더 에이 트레인」은 스트레이혼의 손에서 완성된 곡으로, 이후 악단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블랜턴-웹스터) 1939년과 1940년, 베이스의 지미 블랜턴과 테너색소폼의 벤 웹스터가 가입하며 악단은 이른바 '블랜턴-웹스터 밴드'로 불리는 전성기를 맞았다. 1940년 녹음한 「코코」는 블랜턴의 선율적인 베이스 연주와 팀 전체의 응집력을 압축해 보여준 곡으로 평가받는다. (가족) 여동생 루스 엘링턴이 이 무렵부터 그의 음악 출판 사업을 거들며 오랫동안 곁에서 사업을 관리했다. 가정적으로는 에드나와 사실상 별거 상태가 이어졌지만, 두 사람은 법적으로는 혼인 관계를 유지했다.
지미 블랜턴이 가세한 뒤 리듬 섹션 전체가 달라졌음을 3분 남짓한 시간에 압축해 보여준 곡이다.
- 단조 블루스(12마디) 형식 위에서 시작부터 팽팽한 긴장을 쌓아간다.
- 지미 블랜턴의 베이스가 단순한 반주를 넘어 선율적으로 움직이며 리듬 섹션의 성격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 트롬본과 색소폼들이 짧고 강렬한 리듬 구절(리프)을 쌓아 올리며 클라이맥스로 몰아간다.
- 짧은 시간 안에 편곡의 밀도와 악단 전체의 합주력을 압축해 보여준다.
빌리 스트레이혼이 쓴 곡으로, 두 사람의 협업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가장 잘 보여준다.
- 지하철 A선을 타고 할렘으로 가라는 안내를 음악으로 옮긴 경쾌한 도입 리프가 특징이다.
- 32마디 에이에이비에이(AABA) 형식의 짜임새 있는 스윙 곡이다.
- 레이 낸스의 트럼펫 솔로가 주제를 경쾌하게 변형하며 곡의 활기를 이끈다.
- 이후 악단의 시그니처 곡이자 공연의 오프닝 테마로 자리잡았다.
V. 카네기홀과 확장 · 1943–1950 (44–51세)
(카네기홀) 1943년 1월, 뉴욕 카네기홀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열고 대작 「블랙, 브라운 앤드 베이지」를 초연했다. 미국 흑인의 역사를 노예제부터 당대까지 그린 40여 분짜리 조곡으로, 무도장 음악을 넘어 진지한 작곡가로 인정받고자 한 오랜 바람이 담긴 작업이었다. (반응) 평론가들의 반응은 엇갈렸다고 전해진다. 일부는 재즈 악단이 클래식 형식의 대작에 도전한 것을 높이 평가했지만, 다른 이들은 형식이 산만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후로도 매년 카네기홀 공연을 이어가며 규모가 큰 작품들을 계속 시도했다. (경제) 2차대전 종전 후 빅밴드 시대가 저물면서 순회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악단이 늘었다. 그 역시 개런티가 줄고 단원들의 이탈이 잦아지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자신의 악단을 해체하지 않고 유지하는 데 작곡 저작권 수입을 쏟아부었다고 전해진다. (반려) 1938년 무렵부터 '이비'로 불린 비어트리스 엘리스와 반려 관계를 이어 왔으며, 그녀는 이후 평생 그의 곁을 지켰다. 대작을 향한 야심과 궁핍해지는 악단 경제 사이에서, 그는 사생활보다 음악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고 훗날 동료들은 회고했다.
무도장 악단장을 넘어 진지한 작곡가로 인정받고자 한 야심이 카네기홀 무대에서 시험대에 오른 작품이다.
- 40여 분에 이르는 대작으로, 미국 흑인의 역사를 노예제부터 당대까지 세 부분(블랙, 브라운, 베이지)으로 나눠 그린다.
- 단일 곡이 아니라 여러 주제와 악상이 이어지는 조곡(스위트) 형식이다.
- 카네기홀 초연 당시 평단의 반응이 엇갈렸다고 전해지는데, 클래식 형식을 재즈 악단에 접목한 시도 자체가 논쟁적이었다.
- 자니 호지스의 알토색소폼이 서정적인 대목에서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음색(글리산도)을 들려준다.
VI. 뉴포트의 부활 · 1951–1960 (52–61세)
(침체) 1950년대 초 대중의 관심이 비밥과 새로운 유행으로 옮겨가며 악단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자니 호지스를 비롯한 몇몇 핵심 단원이 자신의 소규모 그룹을 꾸리려 악단을 떠났고, 재정난 속에 순회 규모를 줄여야 했다. (호지스귀환) 자니 호지스는 1955년 악단으로 돌아와 이후 세상을 뜰 때까지 함께했으며, 그의 알토색소폼 음색은 엘링턴 사운드의 서정적인 축을 오랫동안 담당했다. (뉴포트) 1956년 7월,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서 「디미누엔도 앤드 크레센도 인 블루」를 연주하던 중 테너색소폼 폴 곤살베스가 스물일곱 코러스에 이르는 즉흥 솔로를 몰아쳤다.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열광하는 장면은 그의 경력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로 꼽힌다. (재기) 이 무대 덕분에 그해 8월 타임지 표지에 실릴 만큼 다시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이 실황을 담은 앨범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컬럼비아 레코드와의 계약도 안정되며 재정적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뉴포트 무대의 이 실황이 침체에 빠졌던 경력을 단숨에 되살렸다.
- 폴 곤살베스의 테너색소폼이 스물일곱 번에 이르는 즉흥연주 한 바퀴(코러스)를 이어가며 청중을 흥분시킨 대목이 절정이다.
- 원래 따로였던 두 곡을 곤살베스의 간주 솔로로 이어붙인 편곡이 무대의 즉흥성을 극대화했다.
- 관객의 함성과 리듬 섹션이 몰아치는 스윙이 뒤섞이며 스튜디오 녹음과는 다른 현장의 열기를 들려준다.
- 이 실황 앨범의 성공으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처지에서 벗어나 재기했다.
VII. 성찬 음악과 말년 · 1961–1974 (62–75세)
(협연) 1960년대 들어 다른 세대의 음악가들과도 녹음을 남겼다. 1961년 루이 암스트롱과 함께 「레코딩 투게더 포 더 퍼스트 타임」을 녹음했고, 1962년에는 존 콜트레인, 콜맨 호킨스, 그리고 베이스의 찰스 밍거스와 드럼의 맥스 로치와도 각각 세션을 남기며 세대와 스타일을 넘나드는 교류를 이어갔다. (성찬음악) 1965년 샌프란시스코 그레이스 대성당에서 첫 '성찬 콘서트'를 열었다. 재즈와 합창, 춤을 종교적 주제로 엮은 이 공연은 1968년과 1973년까지 세 차례 이어졌으며, 그는 이를 자신이 남긴 가장 중요한 작업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상실) 1967년 5월, 오랜 협업자 빌리 스트레이혼이 세상을 떠났다.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스트레이혼의 곡만을 모은 추모 앨범 「앤드 히스 마더 콜드 힘 빌」을 녹음했으며, 마지막 트랙에서 홀로 피아노를 치는 연주는 예정에 없던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순회) 1970년대에도 미국 국무부의 후원으로 소련과 근동, 라틴아메리카를 도는 순회공연을 이어가며 고령에도 거의 쉬지 않고 연주와 작곡을 계속했다. (죽음) 1974년 5월 24일, 뉴욕에서 폐암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뉴욕 세인트존 더 디바인 대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수천 명의 인파가 모여 그의 음악을 함께 들으며 마지막을 배웅했다.
스트레이혼을 잃은 직후 그의 곡만으로 채운 이 앨범은 반세기 협업에 대한 조용한 헌사였다.
- 빌리 스트레이혼이 세상을 뜬 직후 그의 곡들만 모아 헌정한 앨범으로, 서정적인 발라드들이 중심을 이룬다.
- 마지막 트랙에서 홀로 피아노를 치는 대목은 예정에 없던 연주였다고 전해지며, 조용한 애도로 들린다.
- 자니 호지스를 비롯한 오랜 단원들의 솔로가 스트레이혼의 화성적 색채를 살려낸다.
- 화려한 편곡보다 느리고 담담한 템포가 전체를 지배한다.
덜 알려진 이야기
(악보) 그는 정식으로 앉아 총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써내려가는 작곡가가 아니었다. 순회 중 기차나 호텔에서 떠오른 악상을 냅킨이나 호텔 편지지, 담배 상자 뒷면에 적어두었다가 피아노 앞에서 빌리 스트레이혼이나 단원들에게 불러주며 완성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세상을 뜬 뒤 스미소니언 협회가 수만 장에 이르는 그의 육필 자료를 정리하면서야 이런 작업 방식과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들의 규모가 제대로 드러났다. (명칭) 그는 자신의 음악을 '재즈'라는 한 단어에 가두는 것을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인터뷰에서 종종 자신이 하는 일을 그저 '아메리칸 뮤직'이라 불러달라고 요청했는데, 이는 장르의 경계 안에 대작들을 가두지 않으려는 뜻이었다고 평전 작가들은 풀이한다. (오페라) 죽기 전까지 흑인 여성 사업가를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풍 무대극 「퀴니 파이」를 구상했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이 작품은 세상을 뜬 뒤 다른 음악가들의 손을 거쳐 1986년 무대에 올랐는데, 생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 미완성 야심작은 최근에야 학자들 사이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용어 노트 📚🔎
그로울
(말뜻) 그로울(growl)은 원래 개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다. (재즈에서) 관악기 연주자가 사람이 화난 듯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흉내 내는 연주 기법을 가리킨다. 만화 속 화난 캐릭터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낼 때처럼, 트럼펫이나 트롬본 연주자가 특수한 음향기(뮤트)나 목의 떨림을 이용해 비슷한 효과를 낸다.
콜앤리스폰스
(말뜻) 영어로 부름(call)과 응답(response)이 합쳐진 말로, 단어 자체가 방식을 그대로 설명한다. (재즈에서) 한쪽이 짧은 구절을 던지면 다른 쪽이 이를 받아 대답하듯 연주하는 주고받기 구조를 뜻한다. 체육 시간에 선생님이 구호를 외치면 학생들이 따라 외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교회 예배에서 목사와 신도가 낭독을 주고받는 방식도 콜앤리스폰스라 부른다.
조곡(스위트)
(말뜻) 조곡(組曲)은 짤 조(組)와 곡 곡(曲)이 합쳐져 여러 곡을 짜서 엮었다는 뜻이다. 영어 스위트(suite)도 이어지는 것들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왔다. (재즈에서) 여러 개의 짧은 곡이나 주제가 하나의 큰 이야기나 주제 아래 이어지는 형식을 가리킨다. 만화책 한 권이 여러 화로 나뉘어 있지만 전체가 하나의 큰 이야기를 이루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호텔에서 스위트룸이라고 할 때는 여러 방이 이어진 넓은 객실을 가리킨다.
코러스
(재즈에서) 즉흥연주에서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바퀴 도는 것을 한 코러스라 부른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것처럼 정해진 곡의 길이를 한 번 다 돈 것을 세는 단위인데, 폴 곤살베스가 스물일곱 번이나 이 바퀴를 돌았다는 것이 바로 27코러스라는 뜻이다.
보이싱
(말뜻) 목소리(voice)라는 말에서 왔으며, 여러 음을 어떻게 쌓아 소리 내는지를 뜻한다. (재즈에서) 같은 화음이라도 어떤 악기가 어떤 음을 맡아 쌓느냐에 따라 소리의 색깔이 달라지는데, 이렇게 쌓는 방식을 보이싱이라 부른다. 합창단에서 같은 노래도 누가 높은 음을 맡고 누가 낮은 음을 맡는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리프
(재즈에서) 짧고 반복되는 멜로디나 리듬 구절을 가리킨다. 응원 구호를 계속 반복해서 외치는 것처럼, 짧은 음악적 구절을 여러 번 되풀이해 곡에 힘을 싣는다. (다른 데서는) 대화나 글에서 같은 주제를 이리저리 변주해서 이야기할 때도 리프를 돈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