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s Waller
"발이 너무 커"라고 놀리면서도 그는 늘 웃음 뒤에 눈물을 감췄다 — 동시대인들의 회고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I. 목사의 아들 · 1904–1920 (0–16세)
(뉴욕) 1904년 5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토머스 라이트 월러였고, 태어난 곳은 그리니치빌리지였으나 곧 가족과 함께 할렘으로 옮겨 그곳에서 자랐다. (아버지) 아버지 에드워드 마틴 월러는 침례교 평신도 설교자였다. 집안에는 늘 찬송가가 흘렀고, 아버지는 아들이 교회 음악가나 목사가 되기를 바랐다. 어린 토머스가 세속적인 피아노 소리에 이끌리는 것을 아버지는 못마땅하게 여겼다. (어머니) 어머니 애덜린 로킷 월러는 아들에게 처음 피아노를 가르친 사람이었다. 다정하고 음악을 사랑한 어머니 밑에서 그는 여섯 살 무렵부터 건반을 만졌다고 전해진다. 1920년, 그가 열여섯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훗날 이 상실이 자신을 밤의 피아노 바로 내몬 결정적 계기였다고 회고했다.
II. 스트라이드의 문하생 · 1920–1927 (16–23세)
(제임스피존슨) 어머니를 잃은 뒤 그는 할렘의 피아니스트 제임스 피 존슨을 찾아갔다. 존슨은 왼손으로 베이스음과 화음을 크게 뛰어다니듯 짚는 연주법(스트라이드 피아노)의 창시자로 꼽히는 인물이었고, 어린 월러를 제자로 받아 기술을 전수했다. 이 사제 관계는 평생 이어졌다. (오르간) 십 대 후반 그는 할렘의 링컨 극장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일했다. 무성영화 상영 중 장면에 맞춰 즉흥으로 반주를 넣는 일이었는데, 이 경험이 그의 손끝에 오르간 특유의 넓은 울림과 유머를 심었다. (결혼) 이 무렵 그는 에디스 해쳇과 결혼해 아들 토머스 주니어를 얻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의 결혼과 불안정한 벌이로 부부는 오래가지 못했다. (레코딩) 1922년부터 피아노롤 녹음을 시작했고, 이어 빅터사와 처음 계약을 맺으며 레코드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제임스 피 존슨에게 배운 스트라이드 주법을 홀로 마음껏 펼쳐 보인 솔로 피아노 곡이다.
- 왼손이 낮은 베이스음과 중간 화음 사이를 크게 뛰어다니며 걷는 듯한 리듬(스트라이드)을 만들고, 오른손은 그 위에서 자유롭게 노래한다.
- 곡 중간 오른손 프레이즈가 점점 빨라지며 절정으로 치닫는 대목이 유명하다.
- 혼자 연주하는 곡이라 인터플레이는 없지만, 양손이 마치 두 사람처럼 주고받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 빠른 템포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손목의 여유로움이 그의 스트라이드 스타일을 대표한다.
III. 라조프와 브로드웨이 · 1927–1932 (23–28세)
(라조프) 시인이자 작사가 앤디 라조프를 만난 것은 그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 중 하나였다. 월러가 멜로디를 흥얼거리면 라조프가 가사를 붙이는 방식으로 두 사람은 수백 곡을 함께 썼다. (핫초콜릿) 1929년 브로드웨이 레뷰 「핫 초콜릿」을 위해 쓴 노래 가운데 「에인트 미스비하빙」이 있었다. 자신을 두고 떠난 애인에게 행실을 바르게 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떠는 듯한 이 노래는 삽시간에 히트했고, 루이 암스트롱도 이 곡을 자신의 레퍼토리로 삼아 더 널리 알렸다. (저작권) 그러나 정작 월러 자신은 이 곡들로 큰돈을 벌지 못했다. 당장의 생활비가 급할 때마다 그는 자신이 쓴 노래의 저작권을 헐값에 출판업자에게 팔아넘기곤 했다. 그의 이름으로 남은 명곡이 여럿이지만, 인세는 대부분 다른 이들의 몫이 되었다. (재혼) 이 시기 그는 애니타 러더퍼드와 재혼해 두 아들 모리스와 로널드를 두었다. 애니타는 이후로도 그의 곁을 지킨 반려자였다.
앤디 라조프와 함께 「핫 초콜릿」을 위해 쓴 곡으로, 이후 그의 대표곡이자 재즈 스탠더드가 되었다.
- 32마디로 이뤄진 노래 형식(AABA)이 뚜렷해, 같은 멜로디가 돌아올 때마다 조금씩 다른 표정을 짓는 것을 들을 수 있다.
- 노래 사이사이 그가 슬쩍 끼워 넣는 말투와 웃음소리가 가사의 진지함을 능청스럽게 비켜간다.
- 피아노 반주는 화려하게 튀지 않고 노래를 받쳐 주는 데 집중한다.
- 느긋하게 밀고 당기는 박자감(스윙)이 곡 전체에 여유를 준다.
같은 무대를 위해 라조프와 함께 쓴 곡으로, 피부색 때문에 겪는 설움을 담아 당대로서는 드물게 정면으로 다룬 노래였다.
- 느린 템포와 낮은 음역이 곡 전체에 무거운 분위기를 드리운다.
- 루이 암스트롱이 부른 버전이 특히 널리 알려져, 그의 허스키한 음색이 곡의 슬픔을 한층 깊게 만든다.
- 화려한 즉흥연주보다 절제된 프레이징으로 감정을 눌러 담는다.
- 가벼운 코미디가 많던 당시 무대 곡들 사이에서 이례적으로 진지한 주제를 다룬 곡으로 평가된다.
IV. 시카고의 생일 파티 · 1932–1934 (28–30세)
(공황) 대공황이 깊어지며 그의 벌이도 줄었다. 브로드웨이 무대와 레코딩 세션이 뜸해지자 그는 다시 클럽과 라디오 출연으로 생계를 이었다. (카포네) 대공황 이전인 1926년의 일로, 시카고에서 총을 든 남자들에게 붙들려 자동차에 태워진 뒤 도착한 곳이 알 카포네의 생일 파티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흘 동안 그 자리에서 연주하도록 붙잡혀 있다가 두툼한 현금 다발을 쥐고 풀려났다는 것인데, 이를 뒷받침할 기록은 뚜렷하지 않아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일화다. (리듬) 1934년 그는 자신의 콤보 '팻츠 월러 앤드 히즈 리듬'을 결성하고 빅터사와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 이 작은 편성이 이후 그의 레코딩 인생을 지탱하는 뼈대가 되었다.
V. 웃음이라는 무기 · 1934–1938 (30–34세)
(빅터) '히즈 리듬'과 함께 그는 빅터사를 통해 매달 여러 곡씩 쏟아내는 다작 레코딩 스타가 되었다. 대개 유행하는 시시한 대중가요를 골라 연주했지만, 그 진부한 노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뒤집어 놓았다. (페르소나) 그는 노래하다 말고 껄껄 웃거나, 가사 중간에 한마디씩 농담을 끼워 넣거나, 눈을 크게 굴리는 몸짓으로 곡의 진지함을 슬쩍 비웃었다. 이 익살은 단순한 재롱이 아니라, 백인 청중 앞에서 흑인 연주자가 스스로를 지키면서도 웃음으로 긴장을 허무는 방식이었다고 후대 평론가들은 읽는다. (라디오영화) 라디오 방송과 단편 영화 출연이 이어지며 그는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순회공연 중에는 여전히 흑인 연주자 출입이 금지된 호텔과 식당을 피해 다녀야 했다. (암스트롱) 루이 암스트롱은 그의 곡을 즐겨 불렀고 두 사람은 서로를 아끼는 사이였다. 듀크 엘링턴 역시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 종종 그의 곡을 자신의 오케스트라 레퍼토리에 올렸다.
'히즈 리듬' 결성 직후 녹음한 곡으로, 이후 수많은 연주자들이 즉흥연주 연습곡으로 삼은 스탠더드가 되었다.
- 정해진 코드 진행을 따라가며 즉흥으로 노는 연주(재즈 스탠더드 즉흥연주)의 전형적인 본보기로 자주 인용된다.
- 리듬 섹션과 피아노가 짧은 주고받음(콜 앤 리스폰스)을 나누는 대목이 흥겹다.
- 월러 특유의 굴리는 듯한 목소리 톤이 가사 사이사이 유머를 더한다.
- 훗날 재즈 학생들이 이 곡의 코드 진행 위에 자신만의 새 멜로디를 얹어 연습하는 관행이 생길 만큼 화성 구조가 널리 활용되었다.
그의 코믹 페르소나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곡 중 하나로, 진지한 사랑 노래의 틀을 빌려 온전히 농담으로 채웠다.
- 노래하다 말고 끼어드는 짧은 말장난과 웃음이 곡의 절반을 차지한다.
- 피아노 반주가 노래의 익살스러운 타이밍에 맞춰 짧게 강조음을 찍어 준다.
- 느긋한 스윙 리듬이 곡 전체를 가볍고 편안하게 만든다.
- 당시 그의 라디오·클럽 무대에서 관객의 폭소를 끌어낸 대표 레퍼토리로 꼽힌다.
VI. 대서양을 건너 · 1938–1942 (34–38세)
(유럽) 1938년과 이듬해 그는 영국과 스칸디나비아를 도는 순회공연에 나섰다. 런던에서는 방송국의 초청으로 오르간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고, 이 기간의 인상을 담아 「런던 스위트」라는 모음곡을 작곡했다. (전쟁)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유럽 투어는 서둘러 마무리됐고 그는 미국으로 돌아왔다. 전쟁의 그림자는 이후 미국 내 순회공연에도 짙게 드리워졌다. (영화) 1943년 할리우드에서 흑인 배우와 음악가들이 대거 출연한 뮤지컬 영화 「스토미 웨더」에 출연했다. 앞서 「후레이 포 러브」(1935)와 「킹 오브 벌레스크」(1936)에도 출연했던 그에게 이 영화는 마지막 장편 영화 출연작이 되었다. (건강) 오랜 순회와 밤샘 녹음, 잦은 음주로 그의 몸은 빠르게 상해갔다. 동료들은 그가 무대에서는 여전히 활력이 넘쳤지만 이동 중에는 지쳐 잠들기 일쑤였다고 증언했다.
영국 순회공연의 인상을 담아 쓴 피아노 모음곡으로, 그의 작곡가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는 드문 기악곡이다.
- 노래 없이 피아노만으로 진행되는 여러 짧은 곡들이 이어지는 모음곡(스위트) 형식이다.
- 각 곡마다 다른 분위기와 화성색을 시도해, 그의 작곡 역량이 노래 반주 이상임을 보여 준다.
- 스트라이드 주법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이전보다 더 서정적이고 인상주의적인 화음이 자주 등장한다.
- 당시 흑인 재즈 연주자가 유럽 청중을 위해 쓴 기악 모음곡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인 작업으로 꼽힌다.
삼박자 왈츠 리듬에 스윙 감각을 얹은 실험적인 곡으로, 말년의 그가 여전히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 보통 재즈에서 흔치 않은 삼박자 왈츠 리듬 위에서 스윙감을 살려 낸 드문 시도다.
- 멜로디가 잔잔히 흐르다 후반부로 갈수록 화성이 살짝 어두워지며 깊이를 더한다.
- 피아노 톤이 앞선 코믹한 레퍼토리들과 달리 사색적이고 차분하다.
- 이후 여러 연주자들이 이 곡의 독특한 리듬 구조를 자신만의 편곡으로 재해석했다.
VII. 기차의 마지막 밤 · 1942–1943 (38–39세)
(투어) 1943년 말, 그는 「스토미 웨더」 개봉 이후에도 쉬지 않고 순회공연 일정을 소화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마친 뒤 그는 뉴욕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올랐다. (기차) 12월 15일,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인근을 지나던 기차 안에서 그는 숨을 거두었다. 폐렴에 따른 심부전이 사인으로 알려졌으며, 향년 39세였다. 객차 승무원이 그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장례) 그의 장례는 할렘에서 치러졌고 수천 명의 조문객이 몰려들었다. 제임스 피 존슨을 비롯한 동료 음악가들이 그를 배웅했다. 그가 남긴 방대한 레코딩과 스탠더드가 된 곡들은 이후로도 셀 수 없이 많은 연주자들의 레퍼토리로 살아남았다.
덜 알려진 이야기
그는 무성영화 반주 오르간 연주자로 일할 때, 화면에 맞춰 즉흥으로 곡을 짓는 훈련을 오랫동안 했다. 이 경험이 훗날 스튜디오에서 짧은 시간 안에 즉석으로 완성도 높은 반주를 만들어 내는 능력의 밑바탕이 되었다는 것은 그의 레코딩 방식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만 자주 언급되는 대목이다. 그가 헐값에 팔아넘긴 곡들 중 상당수가 이후 다른 작곡가나 출판사 명의로 더 유명해졌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업계 안에서만 알려진 이야기였다. 스스로 쓴 곡의 정당한 몫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는 점은 그의 사후 저작권 정리 과정에서야 뒤늦게 조명되었다. 라디오와 클럽 무대에서 보여 준 익살스러운 몸짓과 농담은 단순한 개인기가 아니라, 인종차별이 엄연했던 시대에 흑인 연주자가 백인 청중 앞에서 자신을 지키던 방식이었다는 해석은 그의 생전보다 후대 평론가들의 재평가를 통해 자리 잡았다.
용어 노트 📚🔎
스트라이드 피아노
(재즈에서) 왼손이 낮은 베이스음과 중간 화음 사이를 크게 오가며 걷는 듯한 리듬을 만들고, 오른손은 그 위에서 멜로디를 자유롭게 노는 피아노 주법이다. 마치 운동장을 크게 성큼성큼 걷는 것과 비슷해서 '걷는다(stride)'는 이름이 붙었다. 줄넘기를 할 때 발이 규칙적으로 바닥을 짚어 주는 것처럼, 왼손이 일정한 간격으로 리듬의 기준점을 짚어 주는 셈이다. (다른 데서는) 스트라이드는 일상에서 그냥 '큰 걸음'이나 '진전'이라는 뜻으로도 자주 쓰인다.
렌트 파티
(재즈에서) 1920~30년대 할렘에서 집세를 마련하기 위해 이웃과 친구를 초대해 입장료를 받고 연 작은 파티다. 피아니스트를 불러 연주하게 하고 음식과 술을 팔아 그 돈으로 방세를 냈다. 반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문구를 사는 것과 비슷하게, 이웃끼리 십시일반으로 생활비를 메우던 방식이었다. (다른 데서는) 이 말은 특정 시대와 장소에 묶인 표현이라 다른 분야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저작권과 인세
(재즈에서) 노래를 만든 사람이 그 곡이 팔리거나 연주될 때마다 받아야 할 몫을 저작권과 인세라고 한다. 당시에는 형편이 급한 작곡가가 이 권리를 통째로 헐값에 출판사에 넘기는 일이 흔했다. 숙제를 대신 해 주고 친구에게 받을 보답을 미리 다 써 버리는 것과 비슷하게, 나중에 들어올 몫을 지금 당장의 돈으로 바꿔 버리는 셈이다. (다른 데서는) 저작권은 책이나 영화, 소프트웨어 등 창작물 전반에 똑같이 적용되는 개념이다.
카바레 카드
(재즈에서) 20세기 중반 뉴욕에서 술을 파는 클럽이나 카바레에서 연주하려면 경찰서에서 발급하는 신원 확인 카드가 있어야 했다. 이 카드가 없으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무대에 설 수 없었고, 사소한 시비만으로도 카드를 빼앗기는 경우가 있어 연주자들에게는 생계가 걸린 문제였다. (다른 데서는) 이 제도는 재즈 클럽 역사에 한정된 용어라 다른 분야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브로드웨이 레뷰
(재즈에서) 하나의 줄거리 없이 노래와 춤, 촌극을 이어 붙여 만든 뮤지컬 형식의 무대 공연이다. 학예회에서 여러 반이 돌아가며 다른 장기자랑을 보여 주는 것과 비슷하게, 레뷰는 매 장면마다 다른 노래와 볼거리를 이어 붙인다. (다른 데서는) 레뷰(review)라는 말 자체는 평론이나 검토라는 뜻으로도 널리 쓰인다.
32마디 AABA 형식
(재즈에서) 대중가요와 재즈 스탠더드에서 흔히 쓰이는 노래 구조로, 같은 멜로디(A)가 두 번 반복된 뒤 다른 멜로디(B, 흔히 브리지라 부른다)가 한 번 나오고, 다시 처음 멜로디(A)로 돌아오는 여덟 마디씩 네 덩어리, 총 서른두 마디 구성이다. 돌림노래를 부르다가 중간에 잠깐 다른 후렴을 넣고 다시 원래 가락으로 돌아오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AABA라는 표기는 시나 운문의 각운 구조를 나타낼 때도 비슷하게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