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ie Holiday
'다른 누군가처럼 노래하려면 애초에 노래를 부를 필요가 없다.' 그가 남긴 말이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I. 필라델피아에서 볼티모어로 · 1915–1928 (0–13세)
(출생) 1915년 4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엘리너 페이건이었다. 어머니 새디 페이건은 그를 낳았을 때 열아홉 살이었고, 평생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삯일과 가사노동으로 생계를 꾸렸다. (아버지) 아버지로 알려진 클래런스 홀리데이는 기타를 치는 연주자였다. 훗날 플레처 헨더슨 악단에서 연주했지만 딸의 곁에는 거의 있지 않았다. 그는 성을 물려주었을 뿐, 부녀 관계는 평생 소원했다고 전해진다. (볼티모어)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볼티모어의 친척 집을 전전하며 보냈다.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자주 빠졌고, 그 때문에 소녀 시절 한동안 가톨릭 계열 보호시설에 보내졌다. (축음기) 심부름을 해 주는 대가로 이웃 술집의 축음기로 베시 스미스와 루이 암스트롱의 레코드를 들을 수 있었다고 훗날 회고했다. 이 일화는 세부가 엇갈려 전기 작가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가 됐지만, 그의 창법에 두 사람의 흔적이 짙게 남은 것만은 분명하다. (상처) 열 살 무렵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자서전과 법정 기록에 남아 있다.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자란 유년은 훗날 노래 속 상실과 체념의 정서로 이어졌다고 여러 전기 작가가 짚는다.
II. 할렘의 무명 가수 · 1929–1933 (14–18세)
(할렘) 1920년대 말 어머니를 따라 뉴욕 할렘으로 옮겨 왔다. 두 사람은 셋집을 전전하며 가사노동으로 생계를 이었고, 십대의 그도 생활비를 보태야 했다. (생계) 처음에는 춤으로 돈을 벌려 했지만 재능이 없다는 말을 듣고 노래로 바꿨다고 전해진다. 133번가의 소규모 술집들을 돌며 손님들이 던져 주는 팁으로 생계를 이었다. (발탁) 1933년, 음반 제작자이자 평론가 존 해먼드가 우연히 그의 노래를 듣고 매료됐다. 해먼드는 잡지에 그를 소개하는 글을 쓰고 베니 굿맨과의 첫 녹음 세션을 주선했다. (이름) 무대 이름 빌리는 좋아하던 배우 빌리 도브에서, 성 홀리데이는 아버지에게서 따왔다. 본명 엘리너 대신 이 이름으로 평생을 살았다.
III. 테디 윌슨과 레스터 영 · 1935–1938 (20–23세)
(콜럼비아) 1935년부터 피아니스트 테디 윌슨과 함께 컬럼비아 산하 레이블에서 소규모 스윙 콤보 녹음을 시작했다. 정해진 편곡 없이 그 자리에서 주제를 정하고 각자 솔로를 주고받는 즉흥적인 세션이었다. (레스터영) 이 무렵 테너색소폰 주자 레스터 영과 깊은 우정을 맺었다. 그는 레스터에게 대통령이라는 뜻의 별명 프레즈를 붙였고, 레스터는 그를 레이디 데이라 불렀다. 두 사람은 한동안 같은 건물에서 각자의 어머니와 지내기도 했으며, 무대 위에서 서로의 프레이징에 곧바로 화답하는 호흡으로도 유명했다. (빌리스블루스) 1936년에는 직접 가사를 쓴 「빌리스 블루스」를 녹음했다. 정해진 곡을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블루스 형식에 담아낸 초기 사례였다. (창법) 그는 악보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고 스스로 밝히곤 했다. 대신 루이 암스트롱의 관악기 같은 프레이징과 베시 스미스의 블루스적 호소력을 목소리로 옮겨 왔다고 자평했다.
직접 가사를 쓴 초기 곡으로, 즉흥적인 소규모 세션에서 그의 창법이 형태를 갖춰 가는 순간을 보여준다.
- 12마디 블루스 형식(정해진 길이로 반복되는 블루스 틀) 위에서 가사 한 줄 한 줄의 박자를 조금씩 밀고 당기는 화법(프레이징)이 그의 노래법의 핵심을 보여준다.
- 조 부시킨의 피아노에 버니 베리건·아티 쇼가 함께한 소규모 스윙 콤보가 헤드-솔로-헤드로 짜인 즉흥적인 편곡 안에서 자유롭게 주고받는다.
- 목소리는 기교보다 이야기하듯 말하는 화법에 가깝다 — 음을 길게 뻗기보다 말을 건네듯 짧게 끊어 부른다.
- 몇 시간 만에 끝난 즉흥적인 세션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즉흥성이 곡의 생생함을 만들었다.
IV. 빅밴드와 스트레인지 프루트 · 1937–1939 (22–24세)
(베이시) 1937년 카운트 베이시 악단에 합류해 미국 남부를 순회했다. 흑인 악단으로서 겪는 인종 분리 규정 — 뒷문 출입, 백인 전용 숙소 금지 — 을 몸소 겪었다. (아티쇼) 1938년에는 백인 밴드리더 아티 쇼의 악단에 들어가, 흑인 여성 가수로는 처음으로 백인 악단과 함께 전국을 순회했다. 호텔과 식당에서 번번이 문전박대를 당했고 결국 이듬해 악단을 떠났다. (카페소사이어티) 1939년 뉴욕 최초의 인종 통합 클럽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장기 공연을 맡았다. 이곳에서 시인이자 교사 에이벌 미어러폴을 만났다. (스트레인지프루트) 미어러폴이 사형(私刑)을 소재로 쓴 시에 곡을 붙인 「스트레인지 프루트」를 무대에 올렸다. 컬럼비아는 남부 시장의 반발을 우려해 녹음을 거절했고, 대신 프로듀서 밀트 갤러가 자신의 코모도어 레이블에서 녹음을 성사시켰다. 이 곡은 이후 그의 무대를 상징하는 곡이 됐다.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시작된 이 곡은 컬럼비아의 거절 끝에 다른 레이블에서 녹음되며 그의 상징이 됐다.
- 도입부의 피아노 단 몇 마디만으로 곡의 무거운 분위기를 예고한다 — 화려한 반주 없이 노래에 집중하게 만드는 편곡이다.
- 이 곡을 부를 때는 클럽 조명을 낮추고 박수도 받지 않은 채 무대를 떠났다고 전해진다 — 공연이 아니라 하나의 선언처럼 다뤘다.
- 발성은 거의 절제된 속삭임에 가깝다 —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눌러 담은 목소리가 오히려 더 무겁게 다가온다.
- 컬럼비아가 남부 시장의 반발을 우려해 녹음을 거절하자, 프로듀서 밀트 갤러가 자신의 코모도어 레이블에서 따로 녹음을 성사시켰다.
V. 명성과 그늘 · 1940–1946 (25–31세)
(데카) 1944년 데카 레코드와 계약하며 현악 편성을 갖춘 오케스트라 발라드로 방향을 넓혔다. 그보다 앞선 1941년에는 아서 허조그 주니어와 함께 쓴 「갓 블레스 더 차일드」를 녹음했다. (어머니) 이 곡은 어머니 새디와 돈 문제로 다툰 뒤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새디는 딸의 돈으로 식당을 열었고,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노래에 담긴 자립의 정서로 이어졌다. 새디는 1945년 세상을 떠났다. (결혼) 1941년 트럼펫 연주자 지미 먼로와 결혼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트럼펫 연주자 조 가이와의 관계에서 마약을 처음 접했다고 알려져 있다. (중독) 1940년대 중반 헤로인 중독이 시작됐다.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시기와 개인적으로 가장 힘겨운 시기가 겹쳐, 화려한 무대 뒤로 곤궁과 불안이 함께 깊어졌다.
어머니와의 갈등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지는 자작곡으로, 자립을 이야기하는 노래다.
- 아서 허조그 주니어와 함께 가사와 선율을 쓴 곡으로, 어머니와의 돈 문제로 다툰 뒤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 32마디 AABA 형식(주제-반복-다른 선율-주제로 돌아오는 노래 틀)을 따르면서도 브리지(중간의 다른 선율) 부분에서 감정이 한 단계 올라가는 구성이 두드러진다.
- 금관 편곡이 목소리를 감싸듯 뒤따르며, 그의 프레이징에 맞춰 악기들이 여백을 채운다.
데카 시절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곡 중 하나로, 스몰 콤보에서 오케스트라 발라드로 옮겨 간 변화를 보여준다.
- 현악 편곡이 들어간 데카 시절의 대표곡으로, 이전의 스몰 콤보 스윙과 달리 오케스트라 발라드 창법을 보여준다.
- 느린 템포 위에서 한 음절씩 늘여 부르는 창법이 곡 전체의 애틋한 정서를 이끈다.
- 도입부 몇 소절만으로 그해 가장 성공한 녹음 중 하나가 될 분위기를 예고한다.
VI. 감옥과 재기 · 1947–1957 (32–42세)
(체포) 1947년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돼 웨스트버지니아주 앨더슨 연방 교화소에서 약 1년을 복역했다. (카바레카드) 출소 후 뉴욕에서 술을 파는 클럽에서 공연하는 데 필요한 카바레 카드를 발급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정작 자신을 키워 준 뉴욕의 재즈 클럽 무대에는 설 수 없게 됐고, 콘서트홀 공연으로 활동을 이어가야 했다. (카네기홀) 1948년 3월, 출소 며칠 만에 카네기홀에서 매진 공연을 열었다.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맞았고, 이는 그의 재기를 상징하는 무대로 남았다. (재혼) 1957년 루이 매케이와 결혼했다. 그는 이후 그의 수입과 활동을 상당 부분 관리했다. (유럽) 1954년 유럽을 순회하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미국에서보다 인종적 긴장이 덜한 무대는 그에게 잠시의 숨통이 되어 주었다고 전해진다.
CBS 텔레비전 프로그램 「사운드 오브 재즈」의 생방송 연주로, 레스터 영과의 마지막 공식적인 재회가 담겼다.
- 레스터 영이 짧은 솔로를 연주하는 순간이 재즈사에서 가장 널리 회자되는 장면 중 하나다 — 오랜 소원함 끝에 두 사람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화답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 콜먼 호킨스를 비롯한 여러 관악주자가 차례로 짧은 솔로를 주고받는 릴레이 방식의 구성으로, 대규모 밴드보다 소규모 즉흥 잼에 가까운 편성이다.
- 이 시기 목소리는 예전만큼 맑지 않았지만, 그 거친 결이 오히려 블루스적 정서를 더 짙게 만든다.
- 생방송으로 진행돼 재촬영이나 편집 없이 단 한 번의 연주로 완성됐다.
VII. 레이디 인 새틴, 그리고 마지막 · 1958–1959 (43–44세)
(새틴) 1958년 편곡자 레이 엘리스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레이디 인 새틴」을 녹음했다. 오랜 세월 담배와 술, 마약으로 상한 목소리는 예전의 맑음을 잃었지만, 그 거친 결이 오히려 더 절실한 감정을 실어 날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건강) 수십 년에 걸친 음주와 약물로 간과 심장이 상해 있었다. 1959년 봄부터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마지막) 1959년 5월 뉴욕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 병상에서도 경찰의 마약 수사를 받는 처지에 놓였고, 그 사이 친구들이 병실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죽음) 1959년 7월 17일, 마흔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 벌어들인 돈에 비해 남긴 재산은 많지 않았는데, 이는 저작권과 계약 조건이 그에게 불리하게 짜여 있던 시대의 현실을 보여준다. (유산) 프랭크 시나트라를 비롯한 후대의 여러 가수가 공개적으로 그의 영향을 밝혔다. 말하듯 부르는 그의 노래 화법은 이후 대중음악 보컬리스트들에게 하나의 기준이 됐다.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에 만든 마지막 정규 앨범으로, 상한 목소리 그대로를 감정으로 바꿔 낸 기록이다.
- 레이 엘리스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현악 편곡 위에서, 세월이 깎아낸 목소리가 오히려 더 절실하게 들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 예전의 스윙감 넘치는 리듬 대신 느리고 여백이 많은 발라드들로 채워져, 기교보다 말하듯 부르는 화법에 집중하게 만든다.
- 녹음 당시 목 상태가 좋지 않아 힘겹게 부른 테이크가 많았다고 전해지며,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곡들의 진정성으로 읽힌다는 평이 많다.
덜 알려진 이야기
1956년 출간된 자서전 「레이디 싱스 더 블루스」는 작가 윌리엄 더프티와 함께 쓴 회고록이다. 훗날 여러 전기 작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책에는 시점이 뒤섞이거나 극적으로 각색된 대목이 적지 않다. 1972년 다이애나 로스 주연의 동명 영화가 다시 한번 이야기를 각색하면서, 대중은 오랫동안 각색된 버전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1959년 3월 레스터 영이 세상을 떠났을 때, 오랜 친구였던 그는 장례식에 참석했지만 노래를 부르지는 못했다고 전해진다. 두 사람은 말년에 소원해진 상태였지만 음악으로 맺은 우정은 끝까지 깊었다. 그 자신도 넉 달 뒤 세상을 떠났다. 1947년 영화 「뉴올리언스」에 출연했지만, 당대 최고의 가수 중 한 명이었음에도 배역은 하녀 역할에 그쳤다. 이는 당시 할리우드가 흑인 배우에게 허락한 자리가 얼마나 좁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영화 자체가 크게 흥행하지 못해 지금은 잘 언급되지 않는다. 순회공연이 잦은 삶 속에서도 여러 마리의 개를 길렀다. 특히 복서견 미스터와 치와와 페페는 무대 뒤 대기실까지 데리고 다닐 만큼 아꼈다고 동료들이 회고했다.
용어 노트 📚🔎
스윙
(말뜻) 영어 스윙(swing)은 원래 '흔들리다', '휘두르다'라는 뜻이다. (재즈에서) 박자를 정확히 나누지 않고 뒷부분을 살짝 밀고 당기듯 어긋나게 얹어 통통 튀는 느낌을 내는 특유의 리듬감을 가리킨다. 친구와 손뼉을 마주칠 때 딱 맞추지 않고 아주 살짝 늦게 마주쳐도 더 흥이 나는 느낌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 스포츠에서는 골프채나 배트를 휘두르는 동작 자체를 스윙이라 부른다.
카바레 카드
(재즈에서) 1940~60년대 뉴욕에서 술을 파는 클럽 무대에 서려면 경찰이 발급하는 일종의 출입증이 있어야 했는데 이를 카바레 카드라 불렀다. 당국이 문제 삼은 연주자는 이 카드를 받지 못해 정작 자신이 활동하던 도시의 클럽 무대에 설 수 없었다. 학교 동아리방에 들어가려면 출입증이 있어야 하는데, 그 출입증을 빼앗겨 내가 만든 동아리에 못 들어가는 상황과 비슷하다.
AABA 형식
(재즈에서) 32마디로 이뤄진 대중가요나 재즈 스탠더드에서 가장 흔히 쓰인 곡의 뼈대다. 같은 선율(A)을 두 번 반복한 뒤 다른 선율(B, 브리지)로 잠깐 벗어났다가 다시 처음 선율(A)로 돌아와 마무리한다. 돌림노래에서 같은 가락을 부르다가 중간에 다른 가락이 한 번 끼어들고, 다시 원래 가락으로 돌아와 끝맺는 노래를 떠올리면 된다.
프레이징
(말뜻) 영어 프레이즈(phrase)는 문장에서 뜻이 통하는 한 토막, 즉 '구절'을 뜻한다. (재즈에서) 연주자나 가수가 음표들을 어디서 끊고 어디서 이어 부르는지, 즉 음악에서의 말투를 가리킨다. 같은 문장도 사람마다 억양과 쉬는 지점이 달라 인상이 달라지듯, 같은 멜로디도 프레이징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들린다. (다른 데서) 글쓰기에서도 프레이징은 문장을 어떻게 끊어 표현하는지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블루 노트
(재즈에서) 장음계나 단음계의 특정 음을 살짝 낮춰 눌러서 애틋하거나 서글픈 느낌을 내는 음을 가리킨다. 정확한 음정에서 살짝 벗어난 목소리로 노래할 때 오히려 더 감정이 담긴 것처럼 들리는 경우가 이와 비슷하다.
헤드-솔로-헤드
(재즈에서) 연주 맨 처음과 맨 끝에 곡의 주제 선율(헤드)을 제시하고, 그 사이에 연주자들이 돌아가며 즉흥 솔로를 넣는 가장 흔한 재즈 연주 순서를 가리킨다. 발표 시간에 먼저 주제를 소개하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유롭게 의견을 말한 뒤, 마지막에 다시 주제로 정리하며 마무리하는 순서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