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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lonious Monk

텔로니어스 몽크 (1917–1982)

천재는 자기 자신과 가장 닮은 사람이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로키마운트 출생산후안힐 성장교회 오르간2. 비밥민튼스 플레이하우스콜먼 호킨스 데뷔찰리 파커3. 시련캬바레 카드 박탈6년의 침묵궁핍4. 정점파이브 스팟콜트레인몽크스 뮤직5. 명성컬럼비아 계약타임지 표지세계 순회6. 말년니카의 위호컨침묵의 은둔1982년 사망몽크1917–1982침묵과 불협화음으로 재즈의 화성을 다시 쓴 독…
무대의 여정 🧭🗺️
N미국로키마운트1917–1922뉴욕1922–1976위호컨1976–1982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바버라 몽크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홀로 세 아이를 키우고 아들의 피아노 레슨비를 마련한 어머니였다.

  • 동료찰리 파커

    민튼스 시절 몽크의 화성 감각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후로도 서로를 존중하는 사이로 남았다.

  • 후원콜먼 호킨스

    무명이던 몽크를 자신의 밴드로 끌어들여 1944년 첫 스튜디오 녹음을 함께하고 변함없이 지지했다.

  • 가족넬리 몽크

    1947년 결혼해 궁핍과 침묵의 세월을 함께 버티며 평생 그의 음악을 지켰다.

  • 제자존 콜트레인

    1957년 파이브 스팟 공연에서 몽크의 집을 드나들며 화성 어법을 가까이서 배웠다.

  • 후원파노니카 드 쾨니히스바르터

    애칭 니카, 재정적·개인적으로 몽크를 아낌없이 도운 평생의 친구였다.

YouTube에서 6곡 이어 듣기 ↗

I. 로키마운트에서 산후안힐까지 · 1917–1936 (0–19세)

(출생) 1917년 10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로키마운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델로니어스 몽크 시니어와 어머니 바버라 몽크 사이에서 태어난 세 자녀 중 둘째였다. (이주) 1920년대 초 가족은 뉴욕 맨해튼의 산후안힐 지구로 이주했다. 흑인 노동계층이 모여 살던 동네였고, 아버지는 건강 문제로 곧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되어 어머니가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세 아이를 혼자 키워야 했다. (피아노) 몽크는 어릴 때부터 집에 있던 피아노에 끌렸다. 누나가 치는 것을 어깨너머로 익히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형편이 넉넉지 않았는데도 레슨비를 마련해 선생을 붙여 주었다. 교회 성가대 반주를 도맡으며 건반과 더 가까워졌다. (순회) 십 대 시절에는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순회 전도사의 반주자로 2년가량 각지를 돌았다. 교회 음악 특유의 즉흥성과 리듬감이 이후 그의 연주에 깊이 스며들었다고 전해진다. 스타이베선트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끝내 졸업하지는 못했다.

II. 민튼스의 밤 · 1937–1944 (20–27세)

(민튼스) 1941년 무렵부터 할렘의 민튼스 플레이하우스에서 하우스 피아니스트로 자리 잡았다. 밤마다 젊은 연주자들이 모여 기존 스윙의 틀을 깨는 실험을 벌였고, 디지 길레스피와 드러머 케니 클라크 등이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비밥이라 불리는 새로운 어법이 다듬어졌다. (화성) 몽크는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화음을 쌓았다. 정해진 코드 자리에서 어긋나 보이는 음을 일부러 끼워 넣어 날카로운 울림(불협화음)을 만들었고, 멜로디 사이사이에 긴 쉼을 과감히 남겼다. 당시 많은 동료는 이를 실수로 여겼지만, 몇몇은 그 안에서 새로운 질서를 알아봤다. (파커) 색소폰 주자 찰리 파커도 민튼스를 거쳐 가며 몽크의 화성 감각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둘은 이후로도 서로를 존중하는 사이로 남았다. (첫녹음) 1944년, 테너 색소폰의 거장 콜먼 호킨스가 자신의 밴드에 몽크를 끌어들여 첫 스튜디오 녹음을 함께했다. 당시 무명이던 그를 알아본 선배의 후원이었고, 호킨스는 이후로도 변함없이 그를 지지했다.

♪온 더 빈 (On the Bean)1944 (27세)

콜먼 호킨스의 후원으로 남긴 몽크의 생애 첫 스튜디오 녹음이다.

  • 호킨스의 테너가 곡을 이끌고 몽크는 반주에 머물지만, 코드 사이사이 끼워 넣는 음이 벌써 낯설게 들린다.
  • 스윙 시대 특유의 단단한 리듬 섹션 위에서 몽크의 터치만 유독 각지게 들린다.
  • 호킨스가 몽크에게 솔로 공간을 내주는 대목에서 당시로는 파격적인 화음 선택이 드러난다.
  • 무명 시절 거의 유일하게 남긴 스튜디오 기록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III. 블루노트와 결혼 · 1944–1951 (27–34세)

(블루노트) 1947년부터 블루노트 레이블에서 자신의 곡들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라운드 미드나이트」를 비롯한 독창적인 작품들이 이 시기에 그의 연주로 녹음됐지만, 대중과 평단은 낯선 화성과 어긋나는 리듬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혼) 1947년 넬리 스미스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산후안힐에서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였고, 넬리는 생활이 궁핍했던 시절 내내 그의 음악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 주었다. 아들 델로니어스 몽크 주니어와 딸 바버라가 이 무렵 태어났다. (가난) 레코드는 팔리지 않았고 클럽 출연료도 변변치 않았다. 넬리가 바깥일로 생계를 보태야 했던 시기였고, 몽크는 집에서 피아노를 치며 곡을 다듬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고 전해진다. (평판) 동료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갈렸다. 그의 연주를 엉성하다고 깎아내리는 평론가가 있었던 반면, 어떤 이들은 그 안의 치밀한 계산을 알아봤다. 몽크 자신은 세간의 평가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자기 길을 밀고 나갔다.

♪라운드 미드나이트 (Round Midnight)1947 (30세)실황 Thelonious Monk Quartet · 1966 노르웨이 (DVD 「Live in '66」)

낯선 화성 때문에 외면받던 시기에 녹음됐지만, 훗날 가장 널리 연주되는 재즈 스탠더드가 됐다.

  • 느린 템포의 32마디 멜로디(에이에이비에이 형식)가 어둡고 불안한 화성 위에 놓인다.
  • 멜로디 사이사이 몽크 특유의 긴 침묵이 오히려 긴장을 키운다.
  • 이 곡을 처음 녹음한 것은 1944년 쿠티 윌리엄스 악단이었고, 몽크 자신의 첫 녹음은 1947년 블루노트 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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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 오브 모던 뮤직 (Genius of Modern Music)1947–1952 (30–35세)실황 「Well, You Needn't」 Thelonious Monk · 1965

가난과 무관심 속에서도 작곡을 멈추지 않았던 시기, 그 집요함이 그대로 담긴 블루노트 녹음들이다.

  • 「웰 유 니든트」 등에서 익숙한 코드 진행을 비껴가는 음을 거듭 사용해 낯선 울림(불협화음)을 만든다.
  • 헤드(주제 멜로디)-솔로-헤드로 돌아오는 단순한 틀 안에 복잡한 셈여림과 쉼을 채워 넣는다.
  • 소규모 편성의 리듬 섹션이 몽크의 갑작스러운 멈춤에도 흔들리지 않고 박을 지킨다.
  • 당시 평단에는 서투르다는 평도 있었지만, 지금은 비밥 피아노의 이정표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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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캬바레 카드와 6년의 침묵 · 1951–1957 (34–40세)

(단속) 1951년, 피아니스트 버드 파월과 함께 탄 차 안에서 마약 소지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소지품은 파월의 것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몽크는 파월에게 불리한 증언을 끝까지 거부해 60일간 수감됐다. (카드) 그 결과 뉴욕시에서 술을 파는 곳에서 연주하려면 필요한 캬바레 카드를 박탈당했다. 이후 6년 가까이 뉴욕의 클럽 무대에 설 수 없었고, 이는 생계에 직격탄이 됐다. (궁핍) 이 시기 몽크는 간간이 녹음과 외부 공연으로 버텼다. 넬리의 수입과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버티기 힘든 시간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궁핍 속에서도 작곡은 멈추지 않았다. (리버사이드) 1955년 리버사이드 레이블의 오린 킵뉴스와 계약하며 전환점을 맞았다. 1956년 녹음한 「브릴리언트 코너스」는 박자 전환이 너무 복잡해 끝까지 완주한 테이크를 얻지 못했고, 결국 여러 테이크의 조각을 편집으로 이어붙여 완성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브릴리언트 코너스 (Brilliant Corners)1956 (39세)실황 Geoffrey Keezer Trio · 2018 Sam First

캬바레 카드 박탈로 가장 궁핍했던 시기, 오린 킵뉴스와의 새 계약이 만들어낸 전환점의 기록이다.

  • 표제곡은 박자 구조가 거듭 바뀌어 녹음 현장에서 멤버 전원이 끝까지 함께 연주하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
  • 결국 여러 테이크의 조각을 편집으로 이어붙여 완성한 드문 사례다.
  • 소니 롤린스의 테너 솔로가 복잡한 구조 속에서도 유연하게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두드러진다.
  • 몽크의 피아노는 멜로디를 쪼개 던지듯 연주해 곡 전체의 긴장을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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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파이브 스팟의 밤들 · 1957–1962 (40–45세)

(복귀) 1957년 캬바레 카드를 돌려받으며 뉴욕 클럽 무대로 돌아왔다. 그해 그리니치빌리지의 파이브 스팟 카페에서 가진 장기 공연은 그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꼽힌다. (콜트레인) 이 공연에서 함께한 테너 색소폰 주자 존 콜트레인은 몽크의 집에 드나들며 그의 화성 어법을 가까이서 배웠다. 콜트레인은 훗날 그 시절을 자신이 음악적으로 가장 많이 성장한 때로 회고했다. (몽크스뮤직) 1957년 녹음한 「몽크스 뮤직」에는 콜트레인과 콜먼 호킨스가 함께 참여해, 민튼스 시절 그를 알아봤던 선배와 그에게 새로이 배우는 후배가 한 녹음에 나란히 섰다. (후원자) 이 무렵부터 유럽 귀족 가문 출신의 애호가 파노니카 드 쾨니히스바르터, 애칭 니카와 가까워졌다. 니카는 재정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몽크를 아낌없이 도왔고 평생의 친구가 됐다.

♪몽크스 뮤직 (Monk's Music)1957 (40세)

민튼스 시절 그를 알아본 콜먼 호킨스와, 그에게 새로 배우는 존 콜트레인이 한 녹음에 나란히 섰다.

  • 느린 합주곡에서 콜트레인과 호킨스, 두 세대의 테너가 나란히 소리를 낸다.
  • 피아노와 리듬 섹션 없이 관악기 넷만으로 1분이 채 안 되는 찬송가를 들려준다.
♪라이브 앳 더 파이브 스팟 (Live at the Five Spot)1958 (41세)무대 Thelonious Monk · 1963 일본 (찰리 루즈 동반)

콜트레인이 떠난 뒤 조니 그리핀의 테너와 함께 다시 선 1958년 파이브 스팟 무대를 리버사이드가 현장에서 녹음한 실황이다.

  • 클럽 현장 녹음 특유의 거친 음질이 오히려 당시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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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컬럼비아와 세계 · 1962–1971 (45–54세)

(컬럼비아) 1962년 대형 레이블 컬럼비아와 계약하며 처음으로 안정된 수입을 얻었다. 첫 앨범 「몽크스 드림」은 그의 경력 중 가장 많이 팔린 레코드가 됐다. (타임지) 1964년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에 실리며 재즈 연주자로는 드물게 대중적 유명 인사가 됐다. 정작 몽크 자신은 이런 주목을 불편해했다고 전해진다. (순회) 1960년대에는 유럽과 일본 등 세계 각지를 순회했다. 유럽 무대는 1954년 파리 재즈 페스티벌에서 처음 밟았고, 본격적인 유럽 순회는 1961년에 시작됐다. (사중주) 테너 색소폰의 찰리 라우스와 오랜 사중주를 꾸려 「스트레이트, 노 체이서」 같은 레코드를 남겼다. 라우스는 10년 넘게 그의 곁을 지킨 가장 신뢰받는 동료였다.

♪몽크스 드림 (Monk's Dream)1962–1963 (45–46세)연주 Thelonious Monk · 「Just a Gigolo」

컬럼비아와의 계약으로 처음 안정을 얻은 시기, 가장 널리 들린 레코드가 됐다.

  • 대형 레이블 녹음답게 음질과 밸런스가 이전보다 훨씬 또렷해졌다.
  • 찰리 라우스의 테너가 몽크의 까다로운 멜로디를 몸에 붙인 듯 자연스럽게 노래한다.
  • 표제곡에서 몽크 특유의 당김음(박자를 밀고 당기는 스윙감)이 두드러진다.
  •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레코드가 되어 이후 투어의 발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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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노 체이서 (Straight, No Chaser)1967 (50세)실황 Chick Corea Freedom Band · 2010 Jazz in Marciac

찰리 라우스와 10년을 함께한 사중주의 손에 익은 호흡이 담긴 레코드다.

  • 12마디 블루스 형식의 표제곡에서 라우스 사중주의 오랜 호흡이 드러난다.
  • 몽크의 솔로는 같은 짧은 구절을 자리마다 조금씩 비틀어 반복하는 특유의 작법을 보여준다.
  • 베이스와 드럼이 블루스의 단순한 틀 안에서 미묘한 스윙의 결을 만들어낸다.
  • 오랜 세월 손에 익은 레퍼토리임에도 매 공연마다 조금씩 다르게 들린다는 평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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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위호컨의 침묵 · 1971–1982 (54–65세)

(쇠퇴) 1970년대 들어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공연은 점점 줄었고 1973년 이후로는 거의 무대에 서지 않았다. (은둔) 1976년부터 니카의 뉴저지 위호컨 저택에 머물며 세상과 거리를 두었다. 피아노를 아예 치지 않고 지낸 날이 많았다고 가까운 이들은 회고했다. (가족) 넬리는 그런 그를 끝까지 지켰고, 아들 델로니어스 몽크 주니어는 드러머로 자라 아버지의 음악을 잇는 길을 걸었다. (죽음) 1982년 2월 초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2월 17일 뉴저지 잉글우드의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예순네 살이었다. 장례식에는 평생 그를 지지했던 이들과 그에게서 배운 후배들이 함께했다.

덜 알려진 이야기

몽크는 비밥의 초기 설계자 중 하나로 흔히 디지 길레스피나 찰리 파커와 함께 묶이지만, 할렘의 피아니스트 메리 루 윌리엄스의 집에 자주 드나들며 화성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당시 재즈계가 남성 트럼펫·색소폰 주자 중심으로 서사를 쓰다 보니 여성 피아니스트의 영향은 오랫동안 각주 수준으로만 남았다. 1958년 미국 델라웨어 주를 지나던 중 경찰의 검문을 받다가 거칠게 다뤄지고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혐의는 결국 유지되지 못했지만, 당시 신문 보도와 넬리의 회고를 통해 비교적 자세히 확인되는 일화다. 평생 공권력에 대한 경계심을 거두지 않았던 배경으로 이 사건이 자주 꼽힌다. 「라운드 미드나이트」는 몽크가 작곡했지만, 출판 계약 과정에서 트럼펫 주자 쿠티 윌리엄스가 공동 작곡자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당시 음악 출판업계의 관행 속에서 벌어진 일로, 전기 작가 로빈 D.G. 켈리가 자세히 정리한 바 있다. 몽크 생전에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탓에, 세상이 그의 음악에 열광할 때조차 이런 저작권의 뒷이야기는 오래도록 조용히 묻혀 있었다.

용어 노트 📚🔎

스트라이드 피아노

(말뜻) 영어 스트라이드(stride)는 성큼성큼 걷는다는 뜻이다. 왼손이 저음과 화음 사이를 크게 오가며 걷는 듯한 느낌을 주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 (재즈에서) 왼손이 낮은 음 하나와 그 위의 화음을 번갈아 짚어 쿵-짝 쿵-짝 걸어가듯 반주하고, 오른손이 멜로디를 치는 초기 재즈 피아노 주법이다. 줄넘기할 때 아래로 짧게, 위로 크게 뛰는 동작을 반복하는 것과 비슷한 리듬감이라 생각하면 된다. 몽크도 이 전통을 배우며 피아노를 익혔다.

비밥

(말뜻) 세게 끊어 치는 리듬을 입으로 흉내 낸 의성어에서 비밥(bebop)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재즈에서) 1940년대 할렘의 민튼스 플레이하우스 같은 곳에서 다져진, 빠르고 복잡한 즉흥연주 중심의 재즈 양식이다. 정해진 춤곡의 틀을 벗어나 연주자들끼리 기교를 겨루듯 빠르게 주고받았다. 친구들과 랩으로 라임을 주고받으며 즉석에서 가사를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한 즉흥성이 있다.

캬바레 카드

(재즈에서) 1940~60년대 뉴욕시에서 술을 파는 클럽에서 연주하려면 경찰국이 발급하는 신분증이 있어야 했는데, 이를 캬바레 카드라 불렀다. 범죄 경력이 있으면 카드가 나오지 않거나 박탈됐고, 몽크도 한 번 빼앗긴 뒤 몇 년간 뉴욕의 클럽 무대에 서지 못했다. 학교에서 정학을 당해 한동안 등교 자체가 금지되는 것과 비슷한 처지였다.

보이싱

(말뜻) 영어로 목소리를 낸다는 뜻의 voice에서 왔다. 화음의 음들을 어떤 자리에 어떻게 배치하느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됐다. (재즈에서) 같은 코드라도 어느 음을 맨 위나 맨 아래에 놓고, 음들을 얼마나 촘촘히 또는 넓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색깔의 화음이 된다. 몽크는 일반적이지 않은 자리에 음을 놓아 독특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즐겨 만들었다. 같은 재료로 요리해도 양념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코러스

(말뜻) 원래 그리스어 코로스(khoros)는 떼지어 노래하고 춤추는 합창단을 가리켰다. (재즈에서) 재즈에서는 곡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바퀴 도는 단위를 코러스라 부른다. 즉흥연주자는 이 틀을 몇 바퀴씩 반복해서 돌며 솔로를 쌓아간다. 노래방에서 같은 곡을 한 번 더 부르며 다른 음을 넣어 불러보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노래 가사에서는 반복되는 후렴구를 코러스라 부르기도 해서, 뜻이 살짝 다르게 쓰인다.

헤드-솔로-헤드

(재즈에서) 곡의 주제 멜로디(헤드)를 먼저 연주하고, 그다음 연주자들이 돌아가며 즉흥연주(솔로)를 펼친 뒤, 마지막에 다시 주제 멜로디로 돌아와 마무리하는 가장 흔한 재즈 연주 형식이다. 이야기를 시작할 때 제목을 말하고, 중간에 각자 겪은 일을 덧붙여 말한 뒤, 끝에 다시 처음 제목으로 돌아와 마무리하는 발표 구조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