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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fford Brown

클리퍼드 브라운 (1930–1956)

술도 약물도 멀리한 스물다섯 살의 트럼펫 주자가 4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남긴 녹음.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윌밍턴 출생아버지의 트럼펫로워리 사사2. 수련수학 전공나바로의 격려1950 교통사고3. 도약R&B 악단 데뷔댐런과 골슨블루노트 녹음4. 유럽햄프턴 악단파리 비밀 녹음버드랜드 실황5. 퀸텟맥스 로치「조이 스프링」세라 본 협연6. 마지막롤린스 합류1956 턴파이크골슨의 추모곡브라운1930–1956비밥 이후 트럼펫의 말투를 새로 세우고 스물다…
무대의 여정 🧭🗺️
N미국윌밍턴1930–1954도버1948–1949프린세스앤1949–1950로스앤젤레스1954–1955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스승로버트 로워리

    윌밍턴에서 화성과 이론을 가르쳐 그의 정확한 연주의 바탕을 놓았다.

  • 영향팻츠 나바로

    필라델피아에서 그를 격려했고, 둥근 음색과 긴 선율선의 본보기가 되었다.

  • 영향디지 길레스피

    사고로 입원한 그를 찾아가 음악을 계속하라고 권했다고 전해진다.

  • 우정베니 골슨

    댐런 악단에서 만난 벗으로, 그의 죽음 뒤 「아이 리멤버 클리퍼드」를 썼다.

  • 동료맥스 로치

    브라운–로치 퀸텟을 함께 이끈 공동 리더이자 드러머였다.

  • 동료리치 파월

    버드 파월의 동생으로 퀸텟의 피아노와 편곡을 맡았고, 같은 사고로 숨졌다.

I. 윌밍턴의 소년 · 1930–1948 (0–18세)

(윌밍턴) 1930년 10월 30일, 미국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조지프 브라운과 어머니 에스텔 브라운 사이의 여덟 남매 가운데 하나였다고 전해진다. 아버지는 생업과 별개로 트럼펫과 바이올린, 피아노를 손에 잡던 아마추어 음악인이었고, 집 안에는 늘 악기가 있었다. 당시 델라웨어는 학교가 인종별로 나뉜 주였다. 그는 흑인 학생들이 다니던 하워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트럼펫) 아버지가 트럼펫을 사 준 것은 열세 살 무렵이었다(열다섯 살이라는 기록도 있다). 소년은 곧 그 악기에 매달렸다. 학교 악단에서 불기 시작했고, 연습량이 남달랐다고 가족과 친구들은 회고했다. (로워리) 결정적인 만남은 윌밍턴의 음악 교사이자 밴드 리더였던 로버트 'Boysie' 로워리였다. 로워리는 동네 아이들에게 악보 읽기와 화성(여러 음이 함께 울리는 짜임), 음악 이론을 가르쳤고, 트럼펫뿐 아니라 피아노와 비브라폰, 베이스도 다뤄 보게 했다. 브라운이 훗날 아주 빠른 템포에서도 코드의 구성음을 정확히 짚어 내는 연주자가 된 바탕에 이 시절의 체계적인 공부가 있었다는 것이 전기 작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수학) 그는 말수가 적고 성실한 학생이었고, 수학에 재능을 보였다. 윌밍턴은 필라델피아에서 멀지 않았다. 10대 후반의 그는 그 도시의 클럽에서 흘러나오던 새 재즈, 비밥을 귀에 담기 시작했다.

II. 수학과 음악 사이 · 1948–1951 (18–21세)

(대학) 1948년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도버의 델라웨어 주립대학에 수학 전공으로 입학했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기에는 불안정하다고 여긴 선택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듬해 메릴랜드주 프린세스앤의 메릴랜드 주립대학(오늘날 메릴랜드 대학교 이스턴쇼어)으로 옮겨, 그곳 재즈 악단에서 트럼펫을 불고 편곡도 맡았다. 두 학교 모두 흑인 학생을 위해 세워진 대학이었다. (나바로) 주말이면 필라델피아의 잼 세션에 나갔다. 그곳에서 비밥 트럼펫의 선두 주자 팻츠 나바로를 만났고, 나바로는 이 젊은이를 아끼며 격려했다고 전해진다. 둥글고 꽉 찬 음색, 긴 선율을 끊김 없이 이어 가는 브라운의 방식이 나바로에게서 왔다는 데에는 평론가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나바로는 1950년 7월, 결핵과 헤로인 중독 끝에 스물여섯 살로 세상을 떠났다. 같은 무렵 디지 길레스피도 그의 연주를 듣고 전업 음악가가 되라고 권했다고 전해진다. (사고) 1950년 6월, 연주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부상이 깊어 1년 가까이 병상에 있었다. 길레스피가 병원을 찾아와 음악을 놓지 말라고 다독였다는 이야기는 그의 전기에서 빠지지 않는 대목이다. 트럼펫을 불 수 없던 동안 피아노로 화성을 익혔다고 전해진다. (파커) 1951년 무렵 회복한 그는 다시 무대에 섰다. 필라델피아에서 찰리 파커와 함께 연주했고, 파커가 그의 재능을 높이 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녹음은 아직 한 장도 없었지만, 동부의 연주자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은 이미 돌고 있었다.

III. 리듬앤블루스에서 블루노트로 · 1952–1953 (22–23세)

(파월) 1952년, 그는 크리스 파월이 이끄는 리듬앤블루스 악단 블루 플레임스에 들어갔다. 춤추는 관객을 위해 연주하는 일은 비밥 클럽보다 수입이 안정적이었다. 그해 3월 시카고에서 오케 레이블을 위해 녹음한 이 악단의 곡들이 그의 첫 스튜디오 녹음이 되었다. 짧은 독주 안에서도 또렷하게 끊어 내는 음 하나하나가 이미 귀에 띈다. (댐런) 1953년 여름에는 작곡가 태드 댐런의 악단에 합류해 애틀랜틱시티의 클럽에서 연주했다. 이 악단에서 테너 색소폰의 베니 골슨, 알토 색소폰의 지지 그라이스와 만났다. 6월에는 댐런의 프레스티지 녹음 「어 스터디 인 대머로니아」에 참여했다. 노래하듯 흐르는 댐런의 곡은 선율을 중시하는 브라운의 기질과 잘 맞았다. (블루노트) 같은 해 6월부터 8월 사이, 블루노트의 알프레드 라이언은 그를 세 차례 스튜디오로 불렀다. 루 도널드슨과의 퀸텟, 트롬본 주자 J. J. 존슨의 섹스텟, 그리고 그 자신의 이름을 건 섹스텟이었다. 이 녹음들로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고, 이듬해 「다운비트」 평론가 투표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동료들은 그를 브라우니라고 불렀다. (절제) 비밥 연주자들 사이에 헤로인이 번지던 때였다. 그는 술과 약물을 멀리했고, 체스를 즐겼다. 골슨은 훗날 그를 겸손하고 남을 먼저 챙기던 사람으로 회고했다. 나바로를 잃은 경험이 그 태도에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해석도 있다.

♪메모리얼 앨범 (Memorial Album)1953 (23세)

1953년 블루노트의 두 세션을 모은 음반으로, 그가 세상을 떠난 1956년에 추모 음반으로 묶여 나왔다. 첫 녹음 무렵에 이미 완성된 그의 말투를 들을 수 있다.

  • 「브라우니 스피크스」에서는 빠른 템포에서도 음 하나하나를 혀로 또렷이 끊어 내는 기법(텅잉)이 들린다. 음이 뭉개지지 않고 구슬처럼 굴러가는 것이 그의 첫 번째 특징이다.
  • 느린 발라드 「이지 리빙」에서는 긴 음의 둥글고 따뜻한 음색, 그리고 음을 잔잔히 떨게 하는 기법(비브라토)을 아껴 쓰는 절제를 들어 보라.
  • 관악기 셋이 화음을 쌓아 주제를 부르는 섹스텟(6인조) 합주가 끝나면 독주가 이어진다. 미리 짠 합주와 즉흥 독주의 대비가 이 무렵 블루노트 녹음의 짜임새다.
  • 두 세션의 드럼은 각각 필리 조 존스와 아트 블레이키가 맡았다. 같은 트럼펫 주자를 뒤에서 미는 방식이 드러머마다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들을 만하다.

IV. 햄프턴의 악단과 파리 · 1953–1954 (23–24세)

(햄프턴) 1953년 가을, 그는 라이어널 햄프턴의 빅밴드에 들어가 유럽 순회에 나섰다. 트럼펫의 아트 파머, 트럼펫과 편곡의 퀸시 존스, 지지 그라이스, 트롬본의 지미 클리블랜드가 함께였다. 악단의 살림을 맡은 햄프턴의 아내 글래디스는 단원들이 순회 중 다른 녹음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파리) 젊은 단원들은 그 금지를 따르지 않았다. 브라운은 스톡홀름과 파리에서 현지 레이블을 위해 여러 차례 녹음했고, 그라이스와 존스가 편곡을 맡았다. 공연을 마친 밤에 숙소를 몰래 빠져나가 스튜디오로 향했다고 전해진다. 빅밴드 편성에서 작은 콤보까지, 이 녹음들에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짧게 불던 악단 생활에서 풀려난 연주자의 활기가 담겼다. 박한 급여도 동기였다는 회고가 있다. (귀국) 미국으로 돌아온 뒤 햄프턴이 이 일에 가담한 단원들을 내보냈다고 전해진다. 브라운도 악단을 떠났다. (버드랜드) 1954년 2월 21일 밤, 뉴욕의 클럽 버드랜드에서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 피아니스트 호러스 실버, 알토 색소폰의 루 도널드슨, 베이스의 컬리 러셀과 무대에 섰다. 블루노트는 엔지니어 루디 반 겔더를 보내 이 공연을 실황으로 녹음했다. 이 밤의 기록은 뒤에 하드밥이라 불릴 흐름, 그리고 블레이키의 재즈 메신저스를 예고한 것으로 꼽힌다. 길레스피의 「어 나이트 인 튀니지아」와 파커의 곡들을 연주하며, 그는 선배들의 언어를 자기 말투로 다시 풀어냈다.

♪어 나이트 앳 버드랜드 (A Night at Birdland)1954 (24세)

햄프턴 악단의 녹음 금지에서 풀려난 지 몇 달 뒤, 뉴욕의 클럽에서 마음껏 펼친 실황이다. 하드밥과 재즈 메신저스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 첫머리의 사회자 피 위 마켓의 소개와 객석의 웅성거림 — 루디 반 겔더가 클럽에서 직접 녹음한 실황의 공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 호러스 실버의 「스플릿 킥」은 라틴 리듬과 네 박을 고르게 굴리는 스윙(박의 뒷부분을 살짝 끌어 밀고 당기는 느낌)이 번갈아 나온다. 리듬이 바뀌는 순간 블레이키의 드럼이 판을 바꾸는 방식에 귀 기울여 보라.
  • 「원스 인 어 와일」은 브라운이 홀로 앞에 서는 발라드다. 느린 템포 안에서 갑자기 두 배 속도로 가락을 몰아치는 대목(더블 타임)이 이 녹음의 백미로 자주 꼽힌다.
  • 디지 길레스피의 「어 나이트 인 튀니지아」와 파커의 「컨퍼메이션」에서는 비밥 선배들의 곡을 브라운이 자기 말투로 다시 풀어 가는 모습을 들을 수 있다.
  • 블레이키가 스네어 드럼을 빠르게 굴려 독주자를 등 뒤에서 밀어붙이는 연타(프레스 롤)는 코러스가 바뀌는 지점을 알리는 신호처럼 들린다.

V. 서부의 퀸텟 · 1954 (24세)

(로치) 같은 해 봄, 드러머 맥스 로치가 그를 캘리포니아로 불렀다. 로치는 비밥이 태어나던 시절 파커, 길레스피와 함께 연주한 드러머였고, 그 무렵 로스앤젤레스 근교 허모사비치의 클럽 라이트하우스에서 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름을 나란히 건 퀸텟을 꾸렸다. (편성) 처음에는 테너 색소폰의 테디 에드워즈, 피아노의 칼 퍼킨스, 베이스의 조지 블레드소가 함께했다. 여름 무렵 테너의 해럴드 랜드, 피아노의 리치 파월, 베이스의 조지 모로로 편성이 굳어졌다. 리치 파월은 비밥 피아니스트 버드 파월의 동생이었다. 머큐리 레코드의 재즈 레이블 엠아시가 이들과 계약했고, 프로듀서 밥 섀드가 녹음을 맡았다. 8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첫 앨범을 녹음했다. 여기에는 버드 파월의 곡 「파리지앵 소로페어」도 실렸다. (결혼)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는 라루 앤더슨을 만나 그해 결혼했다. 퀸텟의 대표곡이 된 「조이 스프링」은 그가 아내를 부르던 애칭에서 따온 제목이다. 밝게 솟아오르는 이 곡의 선율에는 서부에서의 새 출발이 그대로 담긴 듯하다. (협연) 섀드는 그를 퀸텟 바깥에서도 바쁘게 썼다. 8월에는 청중을 앞에 둔 스튜디오 녹음 「다이나 잼스」에서 다이나 워싱턴과 함께했고, 12월 뉴욕에서는 세라 본, 그리고 퀸시 존스가 편곡한 헬렌 메릴의 앨범에 참여했다. 가수 곁에서 그는 앞에 나서기보다 노래의 빈자리를 짧은 응답 가락으로 채웠다.

♪클리퍼드 브라운 앤 맥스 로치 (Clifford Brown & Max Roach)1954 (24세)

서부에서 퀸텟을 꾸리고 결혼한 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녹음한 첫 앨범이다. 아내의 애칭을 제목으로 삼은 「조이 스프링」이 여기 실렸다.

  • 「조이 스프링」은 8마디 가락을 두 번 부르고 다른 가락을 거쳐 처음으로 돌아오는 형식(32마디 AABA)이다. 두 번째 A가 반음 높은 조로 옮겨 가 같은 선율을 다시 부르는데, 브라운의 솔로가 그 조바꿈을 미끄러지듯 넘는 대목이 핵심이다.
  • 「다후드」는 코드가 아주 빠르게 바뀌는 곡이다. 트럼펫과 테너가 한 몸처럼 맞물려 부르는 주제 합주의 정확성이 이 퀸텟의 특징을 보여 준다.
  • 12마디 블루스 「블루스 워크」 후반부에서는 브라운과 랜드, 로치가 몇 마디씩 짧게 독주를 주고받는다(트레이딩). 말을 주고받듯 이어지는 대화의 호흡을 들어 보라.
  • 로치의 드럼은 박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심벌과 스네어로 선율처럼 대화한다. 버드 파월의 곡 「파리지앵 소로페어」 도입부에서는 도시의 거리 소음을 흉내 낸 듯한 대목도 들린다.
♪세라 본 위드 클리퍼드 브라운 (Sarah Vaughan with Clifford Brown)1954 (24세)

섀드가 퀸텟 바깥에서 마련한 협연 가운데 가장 이름난 녹음이다. 처음엔 「세라 본」이라는 제목으로 나왔고, 본은 이 음반을 각별히 아꼈다고 전해진다.

  • 「버드랜드의 자장가 (Lullaby of Birdland)」에서 본은 뜻 없는 음절로 악기처럼 즉흥하는 창법(스캣)을 쓴다. 트럼펫·플루트·테너와 목소리가 번갈아 주고받는 대목이 이 곡의 중심이다.
  • 「에이프릴 인 패리스」 같은 느린 곡에서 브라운은 노래 뒤에서 짧은 응답 가락(오블리가토)을 넣는다. 가수의 숨이 끝나는 자리를 채울 뿐 노래를 덮지 않는 절제를 들어 보라.
  • 편성은 작은 콤보이고 곡마다 길이가 넉넉하다. 피아노의 지미 존스, 드럼의 로이 헤인스가 만드는 느긋한 흐름이 잼 세션처럼 자유로운 분위기를 낸다.
  • 본의 넓은 음역과 짙은 음색, 브라운의 둥근 트럼펫 음색이 서로 닮아 있어 두 소리가 한 덩어리처럼 섞이는 순간이 있다.

VI. 하드밥의 한 해 · 1955 (25세)

(현악) 1955년 1월, 뉴욕에서 닐 헤프티가 편곡한 현악 오케스트라와 함께 발라드 열두 곡을 녹음했다. 즉흥연주보다 선율을 노래하듯 부르는 데 집중한 앨범으로, 엠아시는 이를 넓은 청중을 겨냥한 음반으로 기획했다. 빠른 기교로 알려진 그의 다른 얼굴, 서정적인 음색이 오롯이 드러난다. (하드밥) 2월에는 다시 퀸텟과 「스터디 인 브라운」을 녹음했다. 극도로 빠른 「체로키」, 듀크 엘링턴 악단의 대표곡을 기차 소리로 감싼 「테이크 디 에이 트레인」, 그가 쓴 블루스 「샌두」가 실렸다. 미리 짠 도입부와 합주를 다섯 명이 정확히 맞추는 이 퀸텟의 방식은 즉흥 위주의 잼 세션과 달랐다. 같은 해 결성된 마일스 데이비스의 퀸텟과 함께, 이들은 비밥 다음 세대의 재즈인 하드밥을 대표하는 악단으로 흔히 나란히 놓인다. (가정) 1955년에는 아들이 태어났다. 퀸텟은 동부와 중서부의 클럽을 돌았고, 그는 길 위의 생활 속에서도 연습을 거르지 않았다고 동료들은 회고했다. 수입이나 계약 조건에 관한 기록은 많지 않다. 다만 그와 로치가 공동 리더로서 레이블과 클럽 일정을 함께 감당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롤린스) 그해 말, 해럴드 랜드가 가족 사정으로 로스앤젤레스에 돌아가면서 퀸텟을 떠났다. 빈자리는 시카고에 머물던 테너 색소폰 주자 소니 롤린스가 채웠다. 매끄럽고 정확한 브라운의 선율과, 주제를 뜻밖의 각도에서 쪼개고 비트는 롤린스의 연주가 한 무대에서 만났다.

♪스터디 인 브라운 (Study in Brown)1955 (25세)

편성이 굳어진 퀸텟이 가장 단단한 합주를 들려준 앨범이다. 미리 짠 편곡과 불꽃 같은 즉흥이 한 판 안에 공존한다.

  • 「체로키」는 퀸텟이 짠 도입부 뒤에 아주 빠른 템포로 내달린다. 브라운의 솔로는 트럼펫 연주자들이 받아 적어 연습하는 교본으로 널리 쓰인다.
  • 듀크 엘링턴 악단의 대표곡 「테이크 디 에이 트레인」(빌리 스트레이혼 작곡)은 기차가 출발하고 멈추는 소리를 악기로 흉내 낸 도입과 끝맺음으로 감쌌다.
  • 브라운이 쓴 「샌두」는 느긋한 중간 템포의 블루스다. 서두르지 않는 리듬 섹션의 밀고 당김(그루브) 위에서 그가 블루스의 짙은 음을 어떻게 고르는지 들어 보라.
  • 브라운의 곡 「조지스 딜레마」는 라틴 리듬과 스윙이 번갈아 나오는 짜임으로, 리듬이 바뀔 때마다 로치의 드럼이 색깔을 바꾼다.
♪클리퍼드 브라운 위드 스트링스 (Clifford Brown with Strings)1955 (25세)실황 「Memories of You」 등 Clifford Brown

빠른 기교로 이름을 얻은 그가 선율 하나만으로 승부한 발라드 앨범이다. 파커의 현악 녹음 이후 이어진 재즈와 현악 오케스트라의 만남에 속한다.

  • 즉흥은 최소로 줄이고 선율을 거의 그대로 부른다. 음 끝을 살짝 꾸미는 작은 장식과 음색만으로 곡을 해석하는 방식에 귀 기울여 보라.
  • 닐 헤프티의 현악 편곡은 앞에 나서지 않고 배경을 깔아 준다. 그 아래에서 리치 파월, 조지 모로, 맥스 로치, 기타의 배리 갈브레이스가 박을 받친다.
  • 「예스터데이즈」와 「스타더스트」에서는 중간 음역의 꽉 찬 음색, 긴 음을 흔들림 없이 끌고 가는 호흡이 두드러진다.
  • 열두 곡이 모두 느린 스탠더드다. 한 곡씩보다 앨범 전체를 이어 들을 때 일관된 분위기가 살아난다.
YouTube에서 듣기 ↗

VII. 펜실베이니아 턴파이크 · 1956 (26세)

(편곡) 1956년 1월과 2월, 롤린스가 가세한 퀸텟은 뉴욕에서 「클리퍼드 브라운 앤 맥스 로치 앳 베이신 스트리트」를 녹음했다. 제목은 그들이 공연하던 클럽에서 왔지만 스튜디오 녹음이었다. 리치 파월의 편곡이 한층 대담해져, 익숙한 스탠더드를 새 화성으로 감쌌다. 3월에는 같은 다섯 명이 롤린스의 이름으로 프레스티지에서 「소니 롤린스 플러스 포」를 녹음했다. (턴파이크) 6월 25일 밤, 그는 필라델피아의 음반 가게 뮤직 시티에서 열린 잼 세션에 들러 연주했다고 전해진다. 그 뒤 시카고 공연을 위해 리치 파월, 그리고 운전을 맡은 리치의 아내 낸시와 함께 밤길에 올랐다. 비가 내리던 펜실베이니아 턴파이크의 베드퍼드 부근에서 차가 길을 벗어났고, 6월 26일 세 사람 모두 숨졌다. 브라운은 스물다섯 살이었다. (장례) 그는 고향 윌밍턴에 묻혔다. 따로 이동하던 로치는 동료이자 벗을 잃은 충격에서 오래 벗어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버드 파월은 이 사고로 동생을 잃었다. (유산) 이듬해 베니 골슨은 그를 기리는 발라드 「아이 리멤버 클리퍼드」를 썼고, 이 곡은 재즈 스탠더드가 되었다. 리 모건, 프레디 허버드, 부커 리틀 같은 다음 세대 트럼펫 주자들은 그의 녹음을 교본 삼아 자랐다. 1989년부터 윌밍턴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재즈 축제가 열려 왔다. 그가 남긴 녹음은 모두 4년 남짓한 기간의 것이다.

♪클리퍼드 브라운 앤 맥스 로치 앳 베이신 스트리트 (Clifford Brown and Max Roach at Basin Street)1956 (26세)

롤린스가 가세한 퀸텟의 대표작이자, 브라운과 리치 파월이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의 기록이다.

  • 「왓 이즈 디스 싱 콜드 러브」는 리치 파월의 편곡으로 시작한다. 익숙한 곡의 코드를 다른 화음으로 바꿔 입히는 기법(리하모니제이션)이 곡을 낯설고 새롭게 만든다.
  • 브라운과 롤린스의 대비가 핵심이다. 매끄럽고 정확하게 흐르는 트럼펫의 선과, 주제를 쪼개 비틀어 다시 쌓는 테너의 방식이 차례로 나온다.
  • 빠른 템포의 「아일 리멤버 에이프릴」에서는 로치의 드럼 독주가 박자를 쪼개고 다시 모으며 하나의 이야기처럼 짜인다.
  • 리치 파월이 쓴 「파월스 프랜시스」와 「거트루즈 바운스」는 이 무렵 그가 퀸텟의 작곡·편곡자로 커 가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덜 알려진 이야기

그의 첫 스튜디오 녹음은 비밥이 아니라 리듬앤블루스였다. 1952년 3월 시카고에서 크리스 파월의 블루 플레임스와 오케 레이블에 남긴 곡들이다. 이 녹음은 오래 묻혀 있다가, 1973년 컬럼비아가 낸 「더 비기닝 앤드 디 엔드」에 실리며 다시 알려졌다. 이 음반은 마지막 날 밤 필라델피아 뮤직 시티의 잼 세션에서 녹음됐다고 전해지는 테이프와 첫 녹음을 한 장에 묶었다. 그가 떠나고 17년이 지나서야 처음과 끝이 나란히 놓인 셈이다. 햄프턴 순회 중 몰래 남긴 스톡홀름·파리 녹음은 음악적으로 중요하지만, 처음에는 유럽 현지 레이블에서 지지 그라이스나 퀸시 존스 등 여러 사람의 이름으로 흩어져 나왔다. 이 녹음들이 브라운의 이름 아래 한데 모여 들리게 된 것은 훗날 재발매가 정리되면서였다. 그래서 그의 짧은 경력에서 이 몇 주가 얼마나 많은 녹음을 낳았는지는 오늘날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54년 8월 로스앤젤레스의 「다이나 잼스」 세션은 다이나 워싱턴의 음반으로 기억되지만, 같은 자리에서 브라운은 클락 테리, 메이너드 퍼거슨과 함께 트럼펫 셋이 나란히 서서 독주를 이어 갔다. 섀드는 초청 청중을 스튜디오에 앉혀 클럽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고, 같은 연주자들의 연주는 별도의 잼 세션 음반으로도 나왔다. 서로 결이 전혀 다른 세 트럼펫 주자를 한 자리에서 비교해 들을 수 있는 드문 기록이다.

용어 노트 📚🔎

비밥

(말뜻) 비밥(bebop)은 뜻이 있는 낱말이 아니라, 이 음악의 짧고 툭 끊기는 가락을 입으로 흉내 낸 소리에서 나온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재즈에서) 1940년대 뉴욕에서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같은 연주자들이 만든 재즈다. 템포가 아주 빠르고 코드가 촘촘하게 바뀌며, 춤추기 위한 음악보다 귀 기울여 듣는 음악에 가까워졌다. 줄넘기 기본 뛰기를 익힌 사람이 이단 뛰기와 엇갈려 뛰기를 섞어 자기만의 묘기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 규칙을 몸에 익혀야 그 위에서 자유롭게 놀 수 있다.

하드밥

(말뜻) 하드(hard)는 단단하고 힘 있다는 뜻이다. 비밥(bop)에 더 굵고 힘찬 느낌을 더했다는 이름이다. (재즈에서) 1950년대 중반, 비밥을 바탕으로 블루스와 교회 음악(가스펠)의 끈끈한 느낌을 더하고, 미리 짠 도입부와 합주를 다듬은 재즈다. 아트 블레이키의 재즈 메신저스, 브라운–로치 퀸텟이 대표적이다. 축구에서 코너킥 같은 세트피스는 미리 약속한 대로 움직이고, 경기 중에는 자유롭게 뛰는 것과 비슷하다 — 짜인 부분과 즉흥 부분이 한 곡 안에 함께 있다.

잼 세션

(재즈에서) 정해진 악단이 아니라, 모인 연주자들이 다 같이 아는 곡을 골라 즉석에서 함께 연주하는 자리다. 젊은 연주자가 선배들 앞에서 실력을 보이고 배우는 학교 같은 곳이어서, 브라운도 필라델피아의 잼 세션에서 팻츠 나바로를 만났다. 방과 후 운동장에서 처음 만난 아이들끼리 편을 갈라 즉석 축구를 하는 것과 닮았다 — 규칙은 모두가 알고 있으니 처음 보는 사이라도 바로 함께할 수 있다. (다른 데서는) 잼(jam)은 빵에 바르는 과일잼, 또는 꽉 막힌 교통 체증(traffic jam)을 뜻하기도 한다.

코러스

(말뜻)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노래하고 춤추던 합창단 코로스(choros)에서 온 말이다. (재즈에서) 곡의 형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바퀴 도는 단위를 가리킨다. 32마디짜리 곡이라면 32마디가 한 코러스이고, 솔로가 세 코러스였다면 그 형식을 세 바퀴 돌며 즉흥했다는 뜻이다. 운동장 트랙을 몇 바퀴 뛰었는지 세는 것과 같다 — 트랙 모양은 매번 같지만, 바퀴마다 달리는 속도와 자세는 달라질 수 있다. (다른 데서는) 대중가요에서 코러스는 흔히 후렴을 가리키고, 일반적으로는 합창이나 합창단을 뜻한다.

트레이딩 포스

(말뜻) 트레이드(trade)는 주고받는다는 뜻이고, 포스(fours)는 네 마디씩이라는 뜻이다. (재즈에서) 연주자들이 네 마디(때로는 여덟 마디나 두 마디)씩 번갈아 짧은 독주를 주고받는 방식이다. 흔히 관악기 주자와 드러머가 주고받아서, 드럼도 선율 악기처럼 말을 거는 셈이 된다. 탁구 랠리처럼 한 사람이 치면 다른 사람이 받아 넘기는데, 상대가 보낸 공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내 답이 달라진다. (다른 데서는) 경제에서 트레이딩은 주식이나 상품을 사고파는 매매를 뜻한다.

32마디 AABA 형식

(재즈에서) 재즈 스탠더드에 가장 흔한 곡의 틀이다. 8마디짜리 가락 A를 두 번 부르고, 분위기가 다른 8마디 B(다리 역할을 해서 브리지라고 부른다)를 거쳐, 다시 A로 돌아와 모두 32마디가 된다. 응원 율동에서 같은 동작을 두 번 하고, 새로운 동작을 한 번 넣은 뒤, 처음 동작으로 돌아와 마무리하는 것과 같다 — 익숙함, 익숙함, 새로움, 다시 익숙함의 순서다. 「조이 스프링」은 두 번째 A를 반음 높여 부르는 변형을 넣어 이 틀을 비틀었다.

발라드

(말뜻) 춤추다라는 뜻의 라틴어 ballare에서 나온 말로, 원래는 춤에 맞춰 부르던 노래를 가리켰다. (재즈에서) 느린 템포의 서정적인 곡을 말한다. 빠른 곡처럼 음을 많이 쏟아 낼 수 없어서, 연주자의 음색과 호흡이 그대로 드러나 오히려 더 어렵다. 달리기보다 천천히 걸을 때 자세가 더 잘 드러나는 것과 같다. 「클리퍼드 브라운 위드 스트링스」는 발라드만으로 이루어진 앨범이다. (다른 데서는) 문학에서는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시를 뜻하고, 한국 가요에서는 느린 사랑 노래를 흔히 발라드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