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roah Sanders
'트레인이 성부였다면 파로아는 성자였고, 나는 성령이다.' — 앨버트 아일러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후원선 라
뉴욕에서 곤궁하던 그를 아케스트라에 불렀고, 파로아라는 이름을 쓰라고 권했다.
- 스승존 콜트레인
샌프란시스코 전당포에서 시작된 인연 끝에 그를 밴드에 들여 1965년부터 1967년까지 함께 연주했다.
- 우정앨버트 아일러
같은 시기 뉴욕 프리 재즈의 동료로, 콜트레인을 성부, 샌더스를 성자에 빗댄 말을 남겼다.
- 동료앨리스 콜트레인
콜트레인 밴드의 피아니스트였고, 스승이 떠난 뒤 「저니 인 사치다난다」 등에서 함께 영적 재즈를 이어 갔다.
- 동료리언 토머스
요들 섞인 노래로 「더 크리에이터 해즈 어 마스터 플랜」을 함께 만든 가수다.
- 동료플로팅 포인츠
영국 전자음악가 샘 셰퍼드로, 말년의 대작 「프로미시스」를 함께 만들었다.
I. 리틀록의 소년 · 1940–1959 (0–19세)
(출생) 1940년 10월, 미국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페럴 리 샌더스(Ferrell Lee Sanders)였다. 외아들이었고, 어머니는 학교 급식실에서 요리를 했으며 아버지는 시청에서 일했다고 전해진다. 흑인과 백인의 생활이 법과 관습으로 갈려 있던 남부 도시였다. (교회) 음악은 교회에서 시작됐다. 찬송가를 들으며 자랐고, 처음 손에 쥔 악기는 클라리넷이었다. 고등학교 밴드에 들어가서는 학교 소유의 테너 색소폰을 빌려 불었다. 제 악기를 살 형편이 못 됐기 때문이다. 밴드 지도교사 지미 캐넌에게서 악기의 기초와 함께 재즈라는 음악을 처음 배웠다고 회고했다. (블루스) 10대 후반에는 리틀록의 클럽에서 블루스와 리듬앤드블루스 밴드에 끼어 돈을 벌었다. 남부를 순회하던 블루스 가수들의 반주를 맡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춤추는 손님을 위한 음악이었고, 그는 굵은 음색과 큰 소리로 홀을 채우는 법을 그곳에서 익혔다. 훗날 그의 연주 밑바닥에 깔린 블루스의 울음은 이 시절에서 왔다. (분리) 1957년, 그가 10대이던 때 리틀록 센트럴 고교에서 흑인 학생 아홉 명이 연방군의 호위를 받으며 등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흑인 음악가가 설 수 있는 무대는 좁았고, 재즈를 체계적으로 배울 길도 드물었다. 1959년 고등학교를 마치자 그는 고향을 떠나 서부로 향했다.
II. 이름을 얻기까지 · 1959–1965 (19–25세)
(오클랜드) 1959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로 옮겨 오클랜드 주니어 칼리지에서 미술과 음악을 공부했다. 동료들은 고향 이름을 따 그를 '리틀록'이라 불렀다. 그는 베이 에어리어의 클럽에서 리듬앤드블루스와 비밥을 오가며 연주했다. (전당포) 이 무렵 샌프란시스코에 공연하러 온 존 콜트레인을 만났다. 샌더스는 마우스피스를 구하던 콜트레인을 데리고 전당포를 돌아다녔다고 회고했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기억해 두었다. (뉴욕) 1961년 뉴욕으로 갔다. 삶은 곤궁했다. 일거리가 없어 지하철과 건물 계단에서 잠들기도 했고, 피를 팔아 끼니를 잇고 악기를 전당포에 맡긴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그리니치빌리지의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며 버텼다. (선라) 그를 거둔 사람 가운데 선 라가 있었다. 선 라는 그를 아케스트라의 리허설에 불렀고, 남루한 그에게 옷을 마련해 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무엇보다 그에게 '파로아'라는 이름을 쓰라고 권한 사람이 선 라였다. 1964년 마지막 날 저드슨 홀 공연에서 그는 아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섰다. 같은 시기 트럼페터 돈 체리, 드러머 빌리 히긴스와도 어울렸다. (데뷔) 1964년 9월 ESP-디스크에서 첫 리더 앨범 「파로아스 퍼스트」를 녹음했다. 하드밥에 가까운 정돈된 연주였고, 샌더스 자신은 이 결과물에 만족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아직 자기 소리를 찾는 중이었다.
III. 콜트레인의 곁에서 · 1965–1967 (25–27세)
(어센션) 1965년 6월 콜트레인은 그를 「어센션」 녹음에 불렀다. 일곱 명의 관악기 주자가 정해진 코드 진행이나 박자 없이 한꺼번에 즉흥하는 이 작품(프리 재즈)에서 그는 가장 거친 소리를 내는 쪽이었다. 그해 가을 콜트레인은 그를 정식 밴드에 들였다. (소리) 샌더스의 테너는 음을 넘어 비명과 울부짖음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숨을 세게 몰아넣어 높은 배음을 끌어내고(오버블로잉), 악기 하나로 여러 음을 동시에 울렸다(멀티포닉스). 콜트레인은 그를 두고 정신의 샘이 깊은 사람이며 늘 자신에게 진실하려 애쓴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해진다. (재편) 1965년 11월 「메디테이션스」에서는 드러머 라시드 알리가 엘빈 존스 옆에 더해졌다. 박이 흩어지는 새 방향 속에서 피아니스트 매코이 타이너와 엘빈 존스는 얼마 뒤 밴드를 떠났고, 피아노는 앨리스 콜트레인이 맡았다. 베이시스트 지미 개리슨이 자리를 지켰다. 샌더스는 자기 솔로가 아닐 때 방울과 탬버린을 들고 콜트레인의 연주를 받쳤다. (일본) 1966년 7월 밴드는 일본을 순회했다. 같은 해 11월 그는 임펄스!에서 「타우히드」를 녹음했다. 콜트레인의 그늘 아래서도, 리더로서 그는 비명보다 긴 호흡과 반복되는 리듬에 기대는 다른 음악을 시작하고 있었다. (작별) 1967년 7월 콜트레인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함께한 시간은 2년 남짓이었다. 이 시기 그와 친분을 나눈 색소포니스트 앨버트 아일러는 콜트레인을 성부, 샌더스를 성자에 빗댄 말을 남겼다. 샌더스는 이후 오래도록 콜트레인의 후계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다녔다.
콜트레인이 정식 밴드에 그를 들인 직후의 스튜디오 녹음으로, 두 테너와 두 드러머가 맞부딪치는 새 방향이 그대로 담겼다. 이 방향이 타이너와 존스의 이탈로 이어졌다.
- 모음곡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곧장 폭발하듯 시작한다. 정해진 박을 세는 대신 소리의 파도가 밀려오는데, 엘빈 존스와 라시드 알리 두 드러머가 각자 다른 결로 북을 두드리며 박을 흩어 놓는 탓이다.
- 샌더스의 솔로는 음정보다 소리의 결로 말한다. 숨을 세게 몰아넣어 높은 배음이 찢어지듯 나오는 소리(오버블로잉)와 한 번에 여러 음이 겹쳐 울리는 소리(멀티포닉스)가 콜트레인의 길고 촘촘한 선율과 뚜렷이 대비된다.
- 「러브」는 지미 개리슨의 베이스 독주로 문을 연 뒤 콜트레인의 발라드 같은 서정으로 넘어간다. 앞 악장의 격렬함 뒤에 오는 이 고요가 모음곡의 숨 고르는 자리다.
- 1965년 11월 23일 뉴저지의 루디 밴 겔더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앞뒤로 휴지 없이 이어지는 모음곡 형식이라, 한 곡씩 끊기보다 앨범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기를 권한다.
콜트레인 밴드에 몸담고 있던 시기에 임펄스!에서 낸 첫 리더작으로, 비명보다 긴 호흡과 반복 리듬에 기대는 그 자신의 음악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 첫 곡 「어퍼 이집트 앤드 로어 이집트」는 방울과 타악기, 소니 샤록의 기타가 안개처럼 깔리는 긴 도입으로 시작한다. 박이나 선율이 분명해지기까지 몇 분을 기다리게 하는 구성이다.
- 이윽고 헨리 그라임스의 베이스가 짧은 음형을 되풀이하며 그루브를 세우고(오스티나토), 샌더스의 테너가 그 위에 늦게 들어온다. 노래하듯 시작한 솔로가 점점 거칠어져 울부짖음에 이르는 상승 곡선을 따라가 보자.
- 샌더스는 이 앨범에서 테너만이 아니라 알토와 피콜로도 분다. 짧은 곡 「재팬」에서는 직접 단순한 가락을 노래하는데, 소리를 찢던 연주자의 다른 얼굴이다.
- 1966년 11월 15일 루디 밴 겔더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일본 순회에서 돌아온 지 몇 달 뒤였다.
IV. 창조주의 계획 · 1967–1974 (27–34세)
(임펄스) 콜트레인이 떠난 뒤 임펄스!는 샌더스를 레이블의 새 얼굴로 세웠다. 프로듀서 밥 실이, 이어 에드 미셸이 그의 녹음을 맡았다. 그는 돈 체리의 「심퍼니 포 임프로바이저스」 같은 다른 이의 녹음에도 참여하며 자리를 넓혀 갔다. (카르마) 1969년 2월 「카르마」를 녹음했다. 한 곡이 LP 두 면에 걸쳐 32분에 이르는 「더 크리에이터 해즈 어 마스터 플랜」에서는 가수 리언 토머스의 요들 섞인 노래, 피아니스트 로니 리스턴 스미스의 굴러가는 화음이 그의 테너와 얽혔다. 이 곡은 FM 라디오와 대학가를 타고 퍼졌고, 프리 재즈의 투사로만 알려졌던 그를 더 넓은 청중에게 데려갔다. (동행) 그는 앨리스 콜트레인의 「프타, 디 엘 다우드」와 「저니 인 사치다난다」(1970)에도 참여했다. 스승이 남긴 음악을 그의 아내와 함께 이어 간 셈이었다. (영성) 이 시기 앨범의 제목에는 이슬람, 힌두, 아프리카의 어휘가 섞였다. 「험-알라-험-알라」, 「서뭄 부크문 우뮨」 같은 제목이 그랬다. 그는 한 교단에 매이기보다 여러 전통의 영성을 소리로 끌어들였고, 이 흐름은 훗날 영적 재즈(스피리추얼 재즈)라 불렸다. 베이스가 같은 음형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바탕(오스티나토) 위에 방울과 하모늄, 여러 타악기가 겹쳤다. (시대) 「블랙 유니티」(1971)에서는 스탠리 클라크와 세실 맥비 두 베이시스트가 나란히 섰다. 흑인 민권과 자긍심을 향한 시대의 열기가 제목과 소리에 실렸다. 1974년 무렵 임펄스!와의 관계가 끝나면서 그의 가장 화려한 시기도 막을 내렸다.
콜트레인이 떠난 지 2년, 그가 스승의 유산을 자기 언어로 바꿔 낸 대표작이다. 한 곡이 앨범 두 면을 채우는 대작이 라디오를 타고 퍼졌다.
- 「더 크리에이터 해즈 어 마스터 플랜」의 도입부에서 들리는 짧은 동기는 콜트레인의 「어 러브 수프림」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 널리 지적된다. 스승에게 보내는 인사로 문을 여는 셈이다.
- 곡의 바탕은 복잡한 코드 진행 대신 몇 개의 화음을 오가는 단순한 틀이며, 그 위에서 오래 머물며 노는 방식(모달 재즈)에 가깝다. 두 베이시스트가 같은 음형을 되풀이하고 로니 리스턴 스미스의 피아노가 굴러가듯 화음을 채운다.
- 리언 토머스의 보컬은 낮은 목소리와 목을 뒤집어 높게 꺾는 요들을 오간다. 가사의 주제는 창조주와 평화, 사랑을 향한 차분한 고백과 권유의 화법이다.
- 중반부에서 곡은 갑자기 집단 즉흥으로 폭발해 샌더스의 비명 같은 테너가 소용돌이를 일으킨 뒤, 다시 처음의 고요한 그루브로 돌아온다. 이 폭풍과 귀환의 구조가 32분을 끌고 가는 힘이다.
앨리스 콜트레인의 앨범으로, 샌더스는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참여해 스승의 아내와 함께 콜트레인 이후의 영적 재즈를 그려 냈다.
- 타이틀곡은 세실 맥비의 베이스가 되풀이하는 짧은 음형으로 시작해 끝까지 그 위에서 흐른다. 인도 현악기 탐부라가 한 음을 길게 끄는 소리(드론)가 그 밑에 깔린다.
- 앨리스 콜트레인의 하프가 물결처럼 음을 쓸어내리고, 샌더스는 테너 대신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장식음을 굴리는 동양풍 선율을 분다. 그의 다른 녹음보다 훨씬 절제된 소리다.
- 라시드 알리의 드럼은 박을 강하게 찍지 않고 심벌로 공기를 채운다. 리듬보다 분위기를 만드는 드럼이라는 점이 이 음반의 명상적인 성격을 만든다.
V. 작은 레이블의 세월 · 1975–1993 (35–53세)
(유랑) 임펄스!를 떠난 뒤 그의 녹음은 여러 레이블을 떠돌았다. 1977년 인디아 내비게이션에서 낸 「파로아」에는 20분 넘게 느리게 흐르는 「하비스트 타임」이 실렸다. 1978년 아리스타에서 낸 「러브 윌 파인드 어 웨이」는 리듬앤드블루스 청중을 겨냥한 음반이었다. (테레사) 1980년대에는 베이 에어리어의 작은 레이블 테레사 레코드와 오래 일했다. 앨런 피트먼과 가즈코 이시다가 세운 이 레이블에서 「저니 투 더 원」(1980), 「리조이스」(1981), 라이브 앨범 「하트 이즈 어 멜로디」(1982)를 냈다. 피아니스트 존 힉스와 드러머 이드리스 무하마드가 자주 곁에 있었다. (선회) 이 시기 그는 비명보다 노래 쪽으로 기울었다. 발라드와 스탠더드, 콜트레인의 곡을 자주 연주했고, 굵고 따뜻한 음색이 앞에 나섰다. 1960년대의 그를 기억하는 평자들 사이에서는 이를 후퇴로 보는 쪽과 성숙으로 보는 쪽이 갈렸다. (생계) 대형 레이블의 지원이 끊긴 뒤 생계는 순회공연에 달려 있었다. 작은 클럽과 유럽의 페스티벌을 돌았고, 네덜란드 레이블 타임리스에서 「아프리카」(1987)를 녹음했다. 큰돈을 번 시절은 아니었지만 연주를 멈춘 적은 없었다. (재발견) 그사이 바다 건너 영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 재즈 댄스 클럽의 디제이들이 「유브 갓 투 해브 프리덤」을 틀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영국 재즈 댄스 신의 디제이들을 거치며 그의 음악은 춤추는 젊은 청중에게 새로 닿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작 미국의 재즈 언론이 그를 덜 다루던 무렵의 일이었다.
작은 레이블 테레사에서 낸 「저니 투 더 원」의 수록곡으로, 미국에서 그가 덜 조명받던 시기에 영국의 클럽 디제이들이 되살려 낸 곡이다.
- 빠르게 질주하는 그루브 위에 짧은 리프(되풀이되는 짧은 가락)가 테마로 반복된다. 듣는 이를 곧장 몸으로 끌어들이는 구성이라 춤추는 클럽에서 사랑받은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 피아니스트 존 힉스의 솔로는 힘 있게 건반을 두드리며 화음을 밀어붙인다. 샌더스와 오래 호흡을 맞춘 동료답게 테너가 남긴 열기를 그대로 이어받는다.
- 샌더스의 테너는 1960년대의 비명을 간간이 섞으면서도 기본은 굵고 노래하는 소리다. 프리 재즈의 표현과 그루브 음악이 한 곡 안에서 만나는 지점을 들어 보자.
VI. 모로코에서 온 소리 · 1994–2014 (54–74세)
(그나와) 1994년 베이시스트이자 프로듀서인 빌 라즈웰의 주선으로 모로코 그나와 음악의 거장 말렘 마흐무드 기니아와 「더 트랜스 오브 세븐 컬러스」를 녹음했다. 그나와는 사하라 이남에서 끌려온 노예의 후손들이 지켜 온 치유 의식 음악이다. 오래도록 아프리카를 제목에 올려 온 그가 실제 아프리카의 의식 음악과 한자리에 앉은 녹음이었다. (버브) 이어 버브와 계약해 「메시지 프롬 홈」(1996), 「세이브 아워 칠드런」(1998)을 냈다. 라즈웰이 다듬은 이 음반들은 아프리카의 리듬과 전자음을 섞었다. 대형 레이블과의 마지막 동행이었다. (순회) 2000년대에는 주로 쿼텟을 꾸려 세계를 돌았다. 무대에서는 「더 크리에이터 해즈 어 마스터 플랜」 같은 옛 곡을 다시 꺼내 길게 연주했고, 객석과 함께 노래를 주고받기도 했다. (성격) 그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인터뷰에서 대답은 짧았고 웃음으로 질문을 넘기는 일이 잦았다. 대신 리드와 마우스피스를 고르고 다듬는 데 오랜 시간을 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리에 대한 그의 집착은 말이 아니라 그런 손길로 드러났다. (존경) 후배 세대의 존경은 커져 갔다. 알토 색소포니스트 케니 개릿은 2006년 앨범 「비욘드 더 월」에 그를 초대했고, 두 사람은 함께 순회했다. 2016년 그는 미국 국립예술기금(NEA)이 주는 재즈 마스터 칭호를 받았다. 리틀록의 학교 악기로 출발한 연주자가 미국 재즈가 주는 가장 높은 영예에 이른 것이었다.
오래도록 앨범 제목에 아프리카를 올려 온 그가 모로코 그나와의 거장과 실제로 한자리에 앉은 녹음이다.
- 말렘 마흐무드 기니아가 켜는 겜브리(낙타 가죽을 씌운 세 줄짜리 저음 현악기)가 베이스처럼 짧은 음형을 끝없이 되풀이하며 곡의 바닥을 만든다.
- 쇠로 만든 캐스터네츠 크라케브가 철컥거리는 리듬을 촘촘히 채우고, 노래는 한 사람이 메기면 여럿이 받는 방식(콜 앤드 리스폰스)으로 이어진다. 반복이 쌓이며 몰아의 상태(트랜스)로 끌고 가는 것이 이 음악의 목적이다.
- 샌더스는 그 반복 사이로 선율을 엮어 넣는다. 재즈의 즉흥이 의식 음악의 순환 구조를 깨지 않고 그 위에 얹히는 방식을 귀 기울여 들어 볼 만하다.
- 빌 라즈웰이 프로듀싱했고 모로코 현지에서 녹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트랙은 샌더스 없이 그나와 연주자들만으로 채워져 있다.
VII. 약속 · 2015–2022 (75–82세)
(만남) 2015년 샌더스는 영국의 전자음악가 플로팅 포인츠(본명 샘 셰퍼드)의 앨범 「일레이니아」를 듣고 그를 만나고 싶어 했다고 전해진다. 셰퍼드는 1986년생으로 그보다 마흔 살 넘게 어렸다. 두 사람은 세대도, 쓰는 악기도 달랐지만 함께 작업하기로 했다. (작업) 작업은 몇 해에 걸쳐 이어졌다. 셰퍼드가 피아노와 하프시코드, 신시사이저로 짠 짧은 동기 위에서 샌더스가 테너를 불었고,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현악이 더해졌다. 젊은 시절 비명으로 기억되던 그의 소리는 여기서 낮고 느린 숨결이 됐다. (발매) 2021년 3월, 그가 여든 살이던 해에 「프로미시스」가 나왔다. 아홉 개의 악장이 끊김 없이 이어지는 이 앨범은 그해 여러 매체의 연말 목록 맨 앞자리에 올랐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세대가 그의 이름을 새로 알게 됐다. (별세) 2022년 9월 24일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음반사 루아카 밥은 그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평온하게 숨을 거뒀다고 알렸다. 유족 가운데 자녀 도모키 샌더스는 아버지처럼 테너 색소폰을 부는 연주자다. (유산) 그의 이력은 콜트레인 곁의 비명에서 시작해 「프로미시스」의 고요로 끝났다. 그 사이에 블루스 클럽의 소리,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영성, 클럽 디제이들이 되살린 그루브가 놓여 있었다. 그는 자기 음악을 길게 설명한 적이 거의 없었고, 그 몫을 녹음에 남겼다.
여든의 샌더스가 마흔 살 넘게 어린 전자음악가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남긴 생애 마지막 대작이다. 비명으로 시작한 이력이 숨결 같은 소리로 맺어졌다.
- 플로팅 포인츠가 하프시코드와 피아노, 첼레스타로 짧은 동기를 앨범 처음부터 끝까지 되풀이한다. 아홉 악장이 끊김 없이 이어지는 동안 이 작은 가락이 실처럼 전체를 꿰고 있다.
- 샌더스의 테너는 낮고 느리며 숨소리가 많이 섞여 있다. 1960년대의 그를 떠올리면 놀랄 만큼 절제된 소리로, 음 하나를 오래 붙잡고 천천히 사라지게 둔다.
- 중반부에서 그는 악기를 내려놓고 가사 없이 목소리로 가락을 흥얼거리는데, 가장 사적인 순간처럼 들린다.
- 후반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현악이 서서히 부풀어 올라 절정에 이른 뒤, 소리가 거의 사라지고 오르간과 신시사이저의 여운만 남는다. 이 정적이 앨범의 마지막 말이다.
덜 알려진 이야기
(미술) 샌더스가 처음 오클랜드로 갔을 때 그가 공부한 것은 음악만이 아니었다. 오클랜드 주니어 칼리지에서 그는 미술을 함께 배웠다. 이 사실은 대개 전기의 한 줄로 지나가지만, 훗날 그의 앨범들이 소리의 색채와 질감, 화면 같은 짜임에 공을 들인 점과 겹쳐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다. 연주자로 성공한 뒤의 이야기에 가려 덜 언급될 뿐이다. (타악기) 콜트레인 밴드 시절의 샌더스는 흔히 비명 같은 테너로만 기억된다. 그러나 그 시기 라이브 녹음을 들어 보면 그는 자기 솔로가 아닐 때 방울과 탬버린 같은 타악기를 들고 콜트레인의 연주를 받쳤고, 자신의 「타우히드」에서는 피콜로를 불고 직접 노래도 했다. 극적인 솔로만 회자되면서 이런 모습은 기록 속에만 남았다. (평판) 오넷 콜먼이 샌더스를 두고 아마 세계 최고의 테너 연주자일 것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연주자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재즈 언론이 그를 1960년대의 인물로만 다루던 시기에도 동료 음악가들의 평가는 이렇게 높았다. 평론의 관심과 음악가들 사이의 평판이 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사례다.
용어 노트 📚🔎
프리 재즈
(재즈에서) 정해진 코드 진행, 일정한 박자, 정해진 형식 같은 약속을 내려놓고 연주자들이 그 자리에서 자유롭게 소리를 주고받는 재즈다. 1960년대 오넷 콜먼, 세실 테일러, 그리고 후기의 콜트레인이 이 길을 열었다. 대본 없이 친구들과 즉석에서 연극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줄거리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서로의 대사를 잘 들어야 이야기가 이어진다. 프리 재즈도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더 깊이 귀 기울여야 하는 음악이다.
스피리추얼 재즈
(말뜻) 스피리추얼(spiritual)은 영혼의, 정신의라는 뜻이다. 뿌리인 라틴어 spiritus 는 원래 숨이라는 뜻이어서, 숨을 불어 넣어 소리를 내는 관악기 음악과 묘하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재즈에서) 1960년대 후반 콜트레인의 「어 러브 수프림」 이후, 기도나 명상처럼 마음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려는 재즈를 가리킨다. 아프리카와 인도, 이슬람의 악기와 말을 끌어들이고 같은 리듬을 길게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수련회에서 모두 둘러앉아 같은 노래를 천천히 여러 번 부르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 그런 효과를 노리는 음악이다.
오버블로잉
(말뜻) 영어 over(넘치게)와 blowing(불기)을 합친 말로, 지나치게 세게 분다는 뜻이다. (재즈에서) 색소폰 같은 관악기에 숨을 보통보다 훨씬 세게 몰아넣어, 원래 손가락으로 짚은 음보다 높은 소리(배음)를 끌어내는 연주법이다. 샌더스는 이 방법으로 사람의 비명이나 울부짖음 같은 소리를 냈다. 리코더를 세게 불면 갑자기 삑 하고 높은 소리가 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보통은 실수로 여기는 그 소리를, 그는 일부러 다스려서 표현으로 썼다.
멀티포닉스
(말뜻) 영어 multi(여럿)와 그리스어 phōnē(소리)에서 온 말로, 여러 소리라는 뜻이다. (재즈에서) 색소폰처럼 원래 한 번에 한 음만 나는 관악기로 두 개 이상의 음을 동시에 울리는 연주법이다. 특별한 손가락 짚기와 입술 조절로 소리가 갈라지며 화음처럼 겹친다. 휘파람을 불면서 동시에 목으로 음 하고 소리를 내 보면 두 소리가 겹쳐 웅웅거리는데, 악기 하나로 그런 겹침을 만드는 셈이다. 샌더스 음색의 거칠고 두꺼운 결이 여기서 나온다.
모달 재즈
(말뜻) 모드(mode)는 우리말로 선법(旋法)이라 하는데, 가락(旋)을 만드는 법(法), 곧 어떤 음들로 가락을 짤지 정한 규칙이라는 뜻이다. 라틴어 modus 는 방식, 척도를 뜻한다. (재즈에서) 화음이 빠르게 바뀌는 코드 진행을 따라가는 대신, 음계 하나를 오래 붙잡고 그 안에서 길게 즉흥하는 재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카인드 오브 블루」와 콜트레인이 대표적이다. 게임에 빗대면, 지도를 계속 옮겨 다니는 대신 넓은 맵 하나 안에서 오래 탐험하며 구석구석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다른 데서는) 모드는 기계나 게임에서 작동 방식이라는 뜻으로 흔히 쓴다. 절전 모드, 하드 모드처럼.
오스티나토
(말뜻) 이탈리아어로 고집스러운이라는 뜻이다. 같은 음형을 고집스럽게 되풀이한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재즈에서) 베이스나 피아노가 짧은 가락이나 리듬을 끝없이 되풀이해 곡의 바닥을 깔아 주는 것을 말한다. 그 위에서 솔로이스트는 마음껏 즉흥할 수 있다. 샌더스의 「카르마」나 앨리스 콜트레인의 「저니 인 사치다난다」가 이런 반복 위에 서 있다. 긴 줄넘기에서 줄 돌리는 두 사람이 똑같은 박자로 계속 돌려 주면, 가운데 뛰는 사람은 마음 놓고 이런저런 묘기를 부릴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나와
(재즈에서) 재즈가 아니라 모로코의 전통 의식 음악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사람들의 후손이 지켜 왔고, 병을 낫게 하고 마음을 달래는 밤샘 의식에서 연주된다. 세 줄짜리 저음 현악기 겜브리, 쇠 캐스터네츠 크라케브, 한 사람이 메기고 여럿이 받는 노래로 같은 리듬을 길게 반복해 듣는 이를 몰아의 상태로 이끈다. 응원석에서 한 사람이 구호를 외치면 모두가 받고, 그걸 수십 번 되풀이하다 보면 어느새 다 같이 하나가 된 기분이 드는 것과 닮았다. 샌더스, 랜디 웨스턴 같은 재즈 음악가들이 이 음악과 함께 녹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