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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Ra

선 라 (1914–1993)

자신은 토성에서 왔다고 말한 사람은, 앨라배마의 철도 도시에서 피아노를 치던 한 소년이기도 했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앨라배마주 버밍햄 출생외가에서 성장스승 페스 월틀리2. 계시토성 체험 회고양심적 병역 거부술·담배 멀리함3. 시카고헨더슨 악단 편곡르 소니르 라 개명새턴 레이블 설립4. 뉴욕슬러그스 월요일 밤「매직 시티」콜트레인과 길모어5. 우주필라델피아 정착영화 「스페이스…」신시사이저 실험6. 귀환휠체어 위의 순회1993년 버밍햄 별세앨런이 이은 악단라1914–1993앨라배마 소년 허먼 블런트가 우주를 노래한 아…
무대의 여정 🧭🗺️
N미국영국버밍햄1914–1946시카고1946–1961뉴욕1961–1968필라델피아1968–1993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스승존 T. 페스 월틀리

    버밍햄 인더스트리얼 고등학교의 밴드 교사로, 정확한 독보와 엄격한 규율을 가르쳤다.

  • 영향플레처 헨더슨

    어린 시절의 우상이었고, 1946~1947년 시카고에서 그의 악단에 편곡자 겸 피아니스트로 몸담았다.

  • 후원알턴 에이브러햄

    시카고에서 만난 사업가로, 새턴 레이블을 함께 세우고 오랫동안 매니저 역할을 했다.

  • 동료존 길모어

    1953년 무렵 합류한 테너 색소폰 주자로, 40년 가까이 아케스트라를 지키고 그의 사후 악단을 이끌었다.

  • 영향존 콜트레인

    길모어의 연주에 감탄해 조언을 구했다고 전해지며, 선 라의 글을 건네받은 동시대의 거장이다.

  • 동료준 타이슨

    1968년 무렵 합류한 가수로, 우주 찬가를 노래하며 20여 년간 무대의 목소리가 되었다.

I. 매직 시티의 소년 · 1914–1936 (0–22세)

(버밍햄) 1914년 5월,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허먼 풀 블런트(Herman Poole Blount)였고, 이름은 당시 흑인 관객에게 인기 있던 마술사 블랙 허먼에게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제철 산업으로 갑자기 커져 '매직 시티'라 불리던 이 도시는 짐 크로 법 아래 인종 분리가 철저한 곳이었다. (외가) 어머니 아이다를 비롯한 외가의 여성들, 특히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고 전기 작가 존 스웨드는 적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누이 메리가 있었고, 그녀는 훗날 그의 마지막을 돌보게 된다. 집에는 피아노가 있었고, 소년은 열 살 남짓에 악보를 막힘없이 읽었으며 열한두 살 무렵부터 곡을 썼다고 회고했다. (헨더슨) 순회 중인 빅밴드가 버밍햄에 들르면 그는 극장으로 달려갔다. 플레처 헨더슨 악단과 듀크 엘링턴 악단이 그의 귀를 틔웠고, 특히 헨더슨의 편곡은 평생의 기준이 되었다. 라디오와 악보로 들은 곡들을 그는 외워서 다시 쳤다. (월틀리) 인더스트리얼 고등학교에서는 엄격하기로 이름난 밴드 교사 존 T. 페스 월틀리에게 배웠다. 월틀리는 버밍햄 흑인 음악가 여러 세대를 길러 낸 인물로, 정확한 독보와 규율을 요구했다. 졸업 무렵 그는 자기 이름을 건 악단을 꾸려 남부 일대를 돌았다. 훗날 아케스트라의 혹독한 리허설과 엄격한 규율은 이 시절 배운 것과 맞닿아 있다.

II. 토성의 부름 · 1936–1945 (22–31세)

(장학금) 1930년대 중반, 그는 장학금을 받고 앨라배마주 노멀의 흑인 농공대학(오늘날 앨라배마 A&M 대학)에 들어가 교사 양성 과정과 음악을 공부했다. 그러나 한 해 남짓 만에 학교를 떠났다. (계시) 그 무렵 겪었다는 체험은 그의 평생을 설명하는 열쇠가 되었다. 그는 빛에 감싸여 토성으로 옮겨졌고, 그곳의 존재들이 세상이 혼란에 빠질 때 음악으로 말하라고 일렀다고 회고했다. 이 이야기는 그가 여러 인터뷰에서 되풀이한 것으로,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이후 그가 음악을 오락이 아닌 사명으로 대한 것만은 분명하다. (양심) 1942년 징집 통지를 받자 그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신청했다. 성경 공부와 독서로 다져진 신념에서 나온 선택이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지역 구치소에 수감된 뒤 펜실베이니아의 민간 공공봉사 캠프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당국에 보낸 편지에는 절박한 심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스웨드는 전한다. 이듬해 병역 부적격 판정을 받고 풀려났다. (귀향) 버밍햄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악단을 이끌며 생계를 꾸렸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깊은 불신, 그리고 지상의 질서 바깥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는 태도는 이 경험을 거치며 굳어졌다. 그는 술과 담배를 멀리했고, 평생 결혼하지 않았으며 자녀도 없었다.

III. 시카고에서 바꾼 이름 · 1946–1960 (32–46세)

(시카고) 1946년 그는 시카고 사우스사이드로 옮겼다. 클럽 들리사의 쇼 밴드에서 피아노와 편곡을 맡았고, 1946년에서 이듬해까지 어린 시절의 우상 플레처 헨더슨의 악단에 편곡자 겸 피아니스트로 몸담았다. 그의 편곡이 너무 까다로워 단원들이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948년 무렵에는 테너 색소폰의 거장 콜먼 호킨스, 바이올리니스트 스터프 스미스와 잠시 함께 연주했다. (개명) 1952년 10월, 그는 법적으로 이름을 르 소니르 라(Le Sony'r Ra)로 바꾸었다. 노예제가 남긴 성을 버리고 이집트의 태양신을 이름에 들인 것이다. 그는 고대 이집트, 성경, 신비주의 서적을 탐독했고, 그 생각을 짧은 글로 써서 워싱턴 공원 같은 곳에서 나눠 주었다. (에이브러햄) 이 무렵 만난 젊은 사업가 알턴 에이브러햄은 그의 사상을 함께 연구하는 모임을 꾸렸고, 1950년대 중반 둘은 독립 레이블 새턴(El Saturn)을 세웠다. 메이저 음반사에 기대지 않고 직접 녹음하고 찍어 공연장에서 파는 방식이었다. (아케스트라) 트리오로 출발한 그의 악단은 곧 아케스트라(Arkestra)라는 이름의 대편성으로 커졌다. 테너 색소폰의 존 길모어, 바리톤 색소폰의 팻 패트릭, 1958년 합류한 알토 색소폰과 플루트의 마셜 앨런, 베이스의 로니 보이킨스가 중심이었다. 멤버들은 박한 보수에도 매일 같은 리허설을 견뎠다. 헨더슨식 스윙 편곡 위에 이국적인 타악기와 전기 건반을 얹은 이 시기의 음악은, 지상의 이름을 버리고 다른 세계를 꿈꾼 그의 결심을 그대로 소리로 옮긴 것이었다.

♪재즈 바이 선 라 (Jazz by Sun Ra)1956 (42세)

시카고의 아케스트라가 처음으로 정식 LP에 담긴 기록이다. 헨더슨식 편곡의 뼈대 위에 이국적인 타악기와 전기 건반을 얹어, 이름을 바꾼 그의 새 세계관을 처음 드러냈다.

  • 1956년 시카고에서 녹음돼 프로듀서 톰 윌슨의 트랜지션 레이블에서 나왔다. 훗날 다른 음반사들이 「선 송(Sun Song)」이라는 이름으로 재발매했다.
  • 선 라는 일부 곡에서 전기 피아노를 쳤다. 재즈에서 전기 건반이 드물던 시절이라, 맑고 금속성 있는 그 음색이 어쿠스틱 피아노와 다르게 울린다.
  • 관악기들이 합주로 주제를 내놓은 뒤 독주를 돌리고 다시 주제로 돌아오는(헤드-솔로-헤드) 형식이지만, 화음이 두텁고 묘하게 어긋나 있어 익숙한 스윙과는 결이 다르게 들린다.
  • 드럼 말고도 팀파니와 여러 타악기가 리듬의 바탕을 깐다. 타악기에 대한 그의 각별한 관심이 이미 이때부터 드러난다.
♪재즈 인 실루엣 (Jazz in Silhouette)1959 (45세)

길모어, 패트릭, 앨런, 보이킨스가 자리 잡은 시카고 아케스트라의 완성형으로 꼽힌다. 스윙 악단의 품위와 고대 이집트에 대한 그의 상상이 한 음반 안에 함께 들어 있다.

  • 「에인션트 에티오피아(Ancient Aiethopia)」는 피아노가 같은 짧은 음형을 되풀이하는(오스티나토) 바탕 위에서 플루트와 관악이 동방풍 선율을 풀어낸다. 트럼펫 주자의 노래하듯 읊조리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다.
  • 「인라이트먼트(Enlightenment)」는 이후 수십 년 동안 아케스트라의 무대에서 거의 빠지지 않은 곡이다. 우아하게 흔들리는 주제 선율을 기억해 두면 후기 실황에서도 알아들을 수 있다.
  • 「블루스 앳 미드나이트」는 12마디 블루스 형식 위에서 존 길모어의 테너 색소폰이 길게 독주한다. 콜트레인이 감탄했다는 그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들어 볼 수 있다.
  • 로니 보이킨스의 베이스는 곡 전체의 무게중심이다. 깊고 묵직한 음으로 관악 합주를 받쳐 주면서도 리듬을 앞으로 밀어낸다.

IV. 뉴욕의 실험실 · 1961–1968 (47–54세)

(뉴욕) 1961년 아케스트라는 몬트리올을 거쳐 뉴욕에 자리 잡았다. 시카고 시절의 멤버 일부만 따라왔고, 일감은 적었다. 단원들은 이스트빌리지의 아파트에서 함께 먹고 자며 리허설을 이어 갔다. 그는 단원들에게 술과 약물을 금했고, 이를 어기면 내보냈다. (슬러그스) 1966년부터 이스트빌리지의 술집 슬러그스 살롱에서 월요일 밤마다 연주하면서 그들의 이름은 젊은 음악가와 예술가들 사이에 퍼졌다. 개런티는 보잘것없었지만, 이 고정 무대는 아케스트라가 몇 해를 버티는 버팀목이 되었다. (콜트레인) 존 콜트레인은 존 길모어의 연주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길모어에게 비공식적으로 조언을 구했다고 전해진다. 선 라는 콜트레인에게 자신의 글을 건넸다고 회고했다. 길모어는 1965년 한때 아트 블레이키의 재즈 메신저스에 들어가 순회했지만 곧 아케스트라로 돌아왔고, 이후 3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켰다. (실험) 1965년 ESP 디스크에서 낸 「태양 중심 세계」 연작과 새턴의 「매직 시티」는 이 시기의 정점이다. 정해진 코드 진행을 버리고 단원 모두가 동시에 즉흥하는 연주, 베이스 마림바와 팀파니 같은 낯선 악기, 그리고 전자 오르간의 실험이 이어졌다. 가난과 고립 속에서 공동체로 버틴 생활 방식이, 서로의 소리를 듣고 따라가는 이 집단적 음악을 가능하게 했다.

♪매직 시티 (The Magic City)1965 (51세)

제목은 그가 자란 버밍햄의 별명이다. 뉴욕의 궁핍한 공동생활 속에서, 그는 고향을 정해진 선율이 아닌 집단의 소리 풍경으로 그려 냈다.

  • 타이틀곡은 27분 가까이 이어지며, 미리 정한 코드 진행 없이 단원들이 서로의 소리에 반응하며 함께 지어 가는 연주(집단 즉흥연주)다.
  • 누가 주인공 독주자인지 뚜렷하지 않다. 피콜로, 색소폰, 트럼펫이 차례로 떠올랐다 가라앉으며, 큰 흐름은 선 라가 건반 신호로 이끈다.
  • 선 라는 피아노와 함께 클라비올린 같은 초기 전자 건반을 썼다. 가늘고 떨리는 그 소리가 어쿠스틱 관악과 섞이며 낯선 색채를 만든다.
  • 리듬은 일정한 박을 지키기보다 밀물과 썰물처럼 부풀고 줄어든다. 정해진 박자 대신 에너지의 높낮이를 따라가며 들어 보길 권한다.
♪태양 중심 세계 1집 (The Heliocentric Worlds of Sun Ra, Vol. 1)1965 (51세)

뉴욕 프리 재즈의 산실이던 ESP 디스크에서 나온 음반이다. 긴 즉흥 대신 짧고 응축된 소리의 조각들로, 그가 상상한 우주의 풍경을 하나씩 그려 보인다.

  • 곡마다 몇 분 남짓으로 짧다. 각 곡이 하나의 정해진 분위기나 음색을 시험하는 소품처럼 짜여 있다.
  • 선 라가 직접 친 베이스 마림바와 팀파니가 낮은 음역에서 둥근 울림을 만든다. 재즈 음반에서 좀처럼 듣기 힘든 소리다.
  • 로니 보이킨스가 활로 그어 내는 베이스(아르코)가 길고 어두운 선을 그리며 곡의 공간감을 넓힌다.
  • 관악기는 선율을 연주하기보다 짧은 외침이나 색채처럼 등장했다 사라진다. 소리와 침묵 사이의 간격에 귀를 기울여 보면 좋다.

V. 우주가 그곳이다 · 1968–1978 (54–64세)

(필라델피아) 1968년 아케스트라는 필라델피아 저먼타운의 모턴 스트리트에 있는 집으로 옮겼다. 마셜 앨런의 아버지 소유였던 이 집은 숙소이자 리허설실이었고, 선 라는 생애 끝까지 이곳을 근거지로 삼았다. 같은 무렵 가수 준 타이슨이 합류해 무대에 목소리와 춤을 더했다. (유럽) 1970년 첫 유럽 순회는 그에게 새로운 청중을 열어 주었다. 1971년 말에는 오랜 꿈이던 이집트를 찾아 카이로에서 연주했다. 같은 해 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에서 「우주 속의 흑인」이라는 강좌를 맡아, 이집트 사자의 서와 신비주의 문헌을 교재로 썼다. (영화) 1972년 오클랜드에서 영화 「스페이스 이즈 더 플레이스」를 찍었다. 그는 흑인들을 다른 행성으로 데려가려는 우주 여행자를 직접 연기했다. 이 영화와 같은 이름의 앨범은 훗날 흑인의 미래를 우주와 과학의 상상으로 그리는 흐름(아프로퓨처리즘)의 출발점으로 거론된다. (계약) 1970년대 초 임펄스 레이블이 새턴의 옛 음반을 재발매하고 새 녹음을 내기로 했지만, 계약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일찍부터 무그 신시사이저 같은 전자 건반을 받아들였고, 1978년 「랭귀디티」에서는 펑크와 소울의 느릿한 흐름까지 끌어들였다. 생계는 여전히 순회와 공연장 음반 판매에 기대고 있었다.

♪스페이스 이즈 더 플레이스 (Space Is the Place)1973 (59세)연주 Sun Ra · 1974

같은 이름의 영화와 짝을 이루는 음반으로, 흑인의 미래를 우주에서 찾자는 그의 사상이 가장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준 타이슨의 목소리가 그 메시지를 노래로 실어 나른다.

  • 타이틀곡은 20분 넘게 이어진다. 준 타이슨이 이끄는 짧은 외침을 단원들이 받아 부르는 주고받기(콜 앤드 리스펀스)가 끝없이 되풀이되며 주문처럼 쌓여 간다.
  • 노래는 청중을 향해 지금 이곳을 떠나 다른 세계로 가자고 권하는 말투다. 설교와 축제의 중간쯤에 있는 정서다.
  • 되풀이되는 노래 아래로 관악기들이 점점 거칠고 자유로운 즉흥으로 부풀어 오르며, 안정된 합창과 혼돈이 한데 겹친다.
  • 선 라의 전자 오르간이 뿜어내는 굵고 일그러진 소리가 전체를 감싼다. 1972년 가을 시카고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
YouTube에서 듣기 ↗
♪랭귀디티 (Lanquidity)1978 (64세)

가장 실험적인 음악가로 알려진 그가, 같은 시기의 펑크와 소울을 느릿하고 몽환적인 흐름으로 녹여 낸 음반이다. 생계와 청중을 고민하던 1970년대 말의 또 다른 얼굴이다.

  • 타이틀곡은 전기 피아노의 부드러운 화음과 느긋한 베이스 그루브로 시작한다. 박자를 쪼개 몸을 흔들게 하는 리듬(펑크)을 아주 느린 템포로 늘여 놓은 느낌이다.
  • 두 대의 전기 기타가 짧은 리듬 음형을 주고받으며 바닥을 깔고, 그 위로 관악기들이 천천히 떠다닌다.
  • 선 라는 화려한 독주보다 전기 건반으로 색채를 덧칠하는 데 집중한다. 음과 음 사이의 여백이 이 음반의 분위기를 만든다.
  • 프리 재즈의 거친 면을 기대하고 들으면 의외일 만큼 편안하다. 그가 대중음악의 흐름에도 귀를 열어 두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VI. 마지막 궤도 · 1979–1993 (65–79세)

(순회) 1980년대에도 아케스트라는 쉬지 않고 유럽과 미국을 돌았다. 무대에서는 반짝이는 의상 속에서 헨더슨과 엘링턴의 스윙 넘버, 자신의 우주 찬가, 소란스러운 집단 즉흥이 한 저녁에 이어졌다. 그는 전통을 버린 적이 없었고, 오히려 자신이 그 전통의 계승자라고 여겼다. (디즈니) 1988년에는 디즈니 영화 음악을 새로 해석한 모음 음반에 「퍼레이드하는 분홍 코끼리들」로 참여했고, 1989~1990년에는 A&M에서 음반을 냈다. 오랫동안 주변부에 머물던 그가 비로소 큰 레이블과 젊은 록 청중에게 닿은 것이다. (뇌졸중) 1990년 무렵부터 뇌졸중을 잇달아 겪었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서도 무대에 올랐고, 왼손이 불편해지자 남은 손으로 건반을 짚었다. 1992년, 오랜 동료 준 타이슨이 세상을 떠났다. (귀향) 1992년 말 그는 고향 버밍햄으로 돌아가 누이 메리의 보살핌을 받았다. 1993년 5월 30일 버밍햄에서 세상을 떠났고, 그곳 엘름우드 묘지에 묻혔다. (유산) 그가 떠난 뒤 존 길모어가 아케스트라를 이끌었고, 길모어가 1995년 세상을 떠나자 마셜 앨런이 지휘를 이어받아 2020년대까지 악단을 이끌어 왔다. 필라델피아의 그 집에서 리허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덜 알려진 이야기

알턴 에이브러햄이 세상을 떠난 뒤, 그가 보관해 온 선 라 관련 문서가 세상에 나왔고 지금은 시카고 대학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1950년대 시카고 거리에서 나눠 준 손글씨와 타자 원고, 사업 기록이 여기에 들어 있다. 이 자료가 정리되기 전까지 그의 사상은 무대 위의 기행으로만 비치기 쉬웠다. 존 코벳 등이 엮은 자료집이 나오면서, 그가 성경과 이집트학 문헌을 치밀하게 읽고 해석한 독서가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942년의 양심적 병역 거부는 오랫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존 스웨드가 1997년 전기를 쓰며 징병 기록과 당시의 편지를 찾아내고서야 구체적인 경위가 밝혀졌다. 선 라 자신은 이 일을 좀처럼 입에 올리지 않았다. 1966년 배트맨 열풍에 맞춰 급히 만든 한 음반에서는 아케스트라 단원들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반주를 맡았다. 생계를 위한 일이었고, 오랫동안 아무도 그들의 연주인 줄 몰랐다. 시카고 시절에는 두왑 보컬 그룹들의 싱글을 편곡하고 녹음하기도 했다. 이 녹음들은 새턴의 소량 싱글로만 흩어져 있다가, 1990년대에 모음집으로 묶이고서야 그의 또 다른 얼굴로 조명받았다.

용어 노트 📚🔎

빅밴드

(재즈에서) 트럼펫·트롬본·색소폰 같은 관악기를 악기별로 여럿 묶고 피아노·베이스·드럼을 더한, 열 명 넘는 대편성 악단이다. 1930년대 스윙 시대에 크게 유행했고, 선 라가 우상으로 삼은 플레처 헨더슨과 듀크 엘링턴의 악단이 대표적이다. 선 라의 아케스트라도 이 형식에서 출발했다. 학교 합창단이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로 파트를 나눠 함께 부르는 것처럼, 빅밴드도 악기별 파트가 한 덩어리로 움직인다.

편곡

(말뜻) 편곡(編曲)은 곡(曲)을 엮는다(編)는 뜻이다. 이미 있는 선율을 어떤 악기가 어떤 화음으로 언제 연주할지 짜 맞추는 일이다. (재즈에서) 빅밴드에서는 편곡자가 각 악기 파트의 악보를 써서 누가 주제를 맡고 누가 반주하며, 어디서 독주를 넣을지를 정한다. 선 라는 헨더슨 악단에서 편곡자로 일했고, 아케스트라의 독특한 소리도 그의 편곡에서 나왔다. 같은 재료로 만든 떡볶이도 누가 양념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처럼, 같은 곡도 편곡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린다.

오스티나토

(말뜻) 이탈리아어 ostinato 는 '고집스러운'이라는 뜻이다. 같은 음형을 고집스럽게 되풀이한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 (재즈에서) 피아노나 베이스가 짧은 음형을 계속 반복하며 바탕을 깔고, 그 위에서 다른 악기들이 선율이나 즉흥을 펼치는 방식이다. 「에인션트 에티오피아」의 피아노가 좋은 예다. 친구가 책상을 똑같은 박자로 계속 두드리는 동안 다른 친구가 그 위에 노래를 지어 부르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프리 재즈

(재즈에서)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에 생겨난 흐름으로, 정해진 코드 진행이나 일정한 박자 같은 규칙에서 벗어나 연주자가 더 자유롭게 소리를 만들어 내는 재즈다. 소리가 거칠고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연주자들은 아무렇게나 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소리를 긴밀하게 듣고 반응한다. 선 라의 1960년대 뉴욕 음반들이 이 흐름의 중요한 예다. 정해진 규칙 없이 친구들끼리 즉석에서 규칙을 만들어 가며 노는 놀이와 비슷하다.

집단 즉흥연주

(말뜻) 즉흥(卽興)은 그 자리(卽)에서 일어나는 흥(興)이라는 뜻이다. 미리 정하지 않고 그 순간 떠오르는 대로 연주한다는 말이다. (재즈에서) 한 사람씩 차례로 독주하는 대신, 여러 연주자가 동시에 즉흥으로 연주하며 함께 음악을 지어 가는 방식이다. 초기 뉴올리언스 재즈에도 있었고, 선 라는 「매직 시티」에서 이것을 대편성으로 크게 펼쳤다. 여럿이 한 장의 큰 종이에 동시에 그림을 그리면서, 옆 친구의 선을 보고 내 선을 이어 가는 것과 같다.

신시사이저

(말뜻) 영어 synthesize 는 '합성하다'라는 뜻이다. 전기 신호를 합성해 소리를 만들어 낸다는 데서 이름이 왔다. (재즈에서) 건반을 누르면 전자 회로가 소리를 만들어 내는 악기로, 피아노에 없는 새롭고 기묘한 음색을 낼 수 있다. 선 라는 1960년대 말부터 무그 신시사이저를 써서, 재즈에서 이 악기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음악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게임 속 효과음이나 배경 음악의 전자음이 바로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다른 데서는) 화학이나 생물학에서 합성하다라는 뜻의 synthesize 는 여러 물질을 결합해 새 물질을 만드는 일을 가리킨다.

펑크

(재즈에서) 1960~70년대 미국 흑인 음악에서 나온 장르로, 베이스와 드럼이 박자를 잘게 쪼개 반복하는 리듬으로 몸이 저절로 움직이게 만드는 음악이다. 화려한 선율보다 반복되는 리듬의 흐름(그루브)이 중심이다. 선 라는 「랭귀디티」에서 이 리듬을 아주 느린 템포로 녹여 냈다. 줄넘기를 할 때 일정한 박자에 맞춰 몸이 저절로 리듬을 타는 느낌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같은 소리로 들리는 펑크(punk)는 1970년대 거칠고 빠른 록 음악을 가리키는 전혀 다른 말이다.

아프로퓨처리즘

(말뜻) 아프로(Afro)는 아프리카계를, 퓨처리즘(futurism)은 미래주의를 뜻한다. 아프리카계 사람들의 시선으로 미래를 상상한다는 말이다. (재즈에서) 흑인의 역사와 정체성을 우주·과학·공상과학의 상상력과 엮어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예술 흐름이다. 이 이름은 1990년대에 붙었지만, 선 라의 영화와 음악은 그 출발점으로 꼽힌다. 고대 이집트와 우주선을 한 무대에 올린 그의 공연이 좋은 예다. 우리 조상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먼 미래의 우주 이야기를 지어 내는 상상 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