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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

구스타프 말러 (1860–1911)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체코 칼리슈테 출생유대인 상인 집안동생 에른스트의 죽음2. 수업빈 음악원브루크너 강의베토벤상 낙방3. 유랑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부다페스트·함부르크부모 잇단 죽음4. 정점빈 궁정 오페라 감독박수부대 추방부활 교향곡5. 알마1902년 결혼아다지에토딸 마리아의 죽음6. 작별뉴욕 진출대지의 노래·9번1911년 빈에서 사망말러1860–1911보헤미아의 유대인 소년에서 빈의 지휘자로, 교…
삶의 여정 🧭🗺️
N헝가리독일체코오스트리아이흘라바(이글라우)1860–1875빈1875–1880, 1897–1907부다페스트1888–1891함부르크1891–1897뉴욕1908–1911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마리 말러

    다리를 절고 심장이 약했던 어머니로, 말러는 평생 그녀를 깊이 연민했다.

  • 스승안톤 브루크너

    빈 대학에서 강의를 들으며 따랐고, 말러는 그의 교향곡을 편곡하고 지휘하며 널리 알렸다.

  • 경쟁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같은 시대 독일어권 최고의 작곡가·지휘자로서 서로 경쟁하면서도 상대의 초연을 도왔다.

  • 제자브루노 발터

    함부르크에서 만난 젊은 조수로, 말러 사후 〈대지의 노래〉와 교향곡 9번을 초연했다.

  • 가족알마 말러

    1902년 결혼한 아내로 교향곡 8번을 헌정받았으며, 그녀의 회고록은 말러 이미지를 크게 좌우했다.

  • 우정아르놀트 쇤베르크

    말러는 이해하기 어려워하면서도 젊은 쇤베르크의 음악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고 남몰래 생활을 도왔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이글라우의 소년 · 1860–1875 (0–15세)

(출생) 1860년 7월, 오스트리아 제국 보헤미아(오늘날 체코)의 작은 마을 칼리슈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베른하르트 말러는 행상에서 출발해 증류주를 빚고 선술집을 꾸린 유대인 상인이었고, 어머니 마리 헤르만은 비누 제조업자의 딸이었다. 그해 12월 가족은 가까운 도시 이글라우(오늘날 체코 이흘라바)로 옮겼고, 구스타프는 그곳에서 자랐다. (형제) 부부는 열네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절반 가까이가 어려서 죽었다. 아버지는 거칠고 고집이 셌으며, 다리를 절고 심장이 약했던 어머니는 그 곁에서 참고 살았다. 말러는 평생 어머니를 깊이 연민했다. 1875년에는 가장 아끼던 동생 에른스트가 열세 살로 병사했다. 말러는 긴 투병 동안 침대 곁을 지키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전한다. (나팔) 이글라우에는 군대가 주둔해 있어 행진곡과 나팔 신호가 일상에 흘렀고, 하녀와 이웃이 부르던 보헤미아 민요도 아이의 귀에 남았다. 어려서 들은 노래를 아코디언으로 따라 했다는 일화가 있고, 할머니 집 다락에서 피아노를 찾아내 친 것도 이 무렵이었다. 1870년 열 살에 이글라우 시립극장에서 첫 공개 연주를 했다. (풍경) 훗날 그의 교향곡에 군대 나팔과 민요, 장송 행진이 서로 뒤섞여 나타나는 데에는 이 유년의 소리 풍경이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에 걸기로 했다. 1875년 열다섯의 말러를 빈으로 데려가 피아니스트 율리우스 엡슈타인 앞에서 연주하게 했고, 엡슈타인은 이 아이가 타고난 음악가라며 음악원 진학을 권했다.

II. 음악원과 떠도는 지휘자 · 1875–1888 (15–28세)

(음악원) 1875년 가을 빈 음악원에 들어가 엡슈타인에게 피아노를, 로베르트 푹스에게 화성을, 프란츠 크렌에게 작곡을 배웠다. 피아노와 작곡에서 상을 받았지만 학비가 늘 문제여서 감면을 청원해야 했고, 생활비는 개인 교습으로 벌었다. (브루크너) 동급생 후고 볼프, 한스 로트와 가까웠고, 빈 대학에서는 안톤 브루크너의 강의를 들었다. 1877년 브루크너 교향곡 3번 초연이 청중이 빠져나가는 가운데 실패하자, 말러는 동료와 함께 이 곡을 두 사람이 한 피아노에서 함께 치는 연탄용으로 옮겨 1880년 출판에 힘을 보탰다. 노 작곡가는 이 젊은이를 아꼈다. (낙방) 첫 대작 칸타타 〈탄식의 노래〉를 1881년 베토벤상에 냈으나, 요하네스 브람스와 비평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가 심사한 이 상에서 떨어졌다. 친구 한스 로트는 1880년 브람스에게 교향곡을 냉대받은 뒤 정신이 무너졌고 1884년 세상을 떠났다. 말러는 훗날 로트를 새 교향곡의 길을 먼저 본 사람으로 회고했다. (유랑) 작곡으로는 먹고살 수 없어 지휘대에 섰다. 1880년 온천지 바트 할의 여름 극장을 시작으로 라이바흐(오늘날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올뮈츠, 카셀, 프라하, 라이프치히로 거의 해마다 자리를 옮겼다. 1883년에는 바이로이트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파르지팔〉을 듣고 크게 흔들렸다. 카셀에서는 소프라노 요한나 리히터를 사랑했다가 실연했고, 직접 쓴 가사로 연가곡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를 지어 그 상처를 담았다. (라이프치히) 라이프치히에서는 아르투르 니키슈 아래 차석 지휘자로 일하며 베버의 미완성 오페라 〈세 사람의 핀토〉를 완성해 1888년 초연했고, 이 성공으로 처음 이름이 알려졌다. 이 무렵 젊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도 처음 만났다.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1884–1885 (이후 개정) (24–25세)노래 Catriona Morison (메조소프라노)

카셀에서 요한나 리히터에게 실연한 뒤 말러가 가사까지 직접 써서 지은 네 곡의 연가곡이다. 여기서 만든 선율이 곧 교향곡 1번으로 옮겨 간다.

  • 1곡 ‘그녀가 결혼하는 날’은 멀리서 들려오는 결혼 잔치의 흥겨운 가락과 남겨진 사람의 슬픔이 번갈아 나온다. 목관악기의 춤곡 장단과 노래의 무거운 숨결이 엇갈리는 대목을 들어 보자.
  • 2곡 ‘오늘 아침 들판을 걸었네’의 밝은 선율은 교향곡 1번 1악장의 주제로 거의 그대로 쓰였다. 두 곡을 이어 들으면 노래가 교향곡이 되는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 3곡 ‘내게는 불타는 칼이 있네’는 분노가 폭발하는 노래로, 금관과 타악기가 가슴을 찌르는 고통을 거칠게 그린다.
  • 4곡 ‘그녀의 푸른 두 눈’은 느린 장송 행진의 걸음으로 시작해 보리수 아래 잠드는 장면에서 잦아든다. 이 끝부분 선율은 교향곡 1번 3악장 가운데 부분에 다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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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부다페스트와 함부르크 · 1888–1897 (28–37세)

(부다페스트) 1888년 스물여덟에 헝가리 왕립 오페라의 예술감독이 되었다. 독일어 대신 헝가리어 공연을 밀어붙이며 극장을 다시 세웠고, 1890년 그가 지휘한 〈돈 조반니〉를 들은 브람스는 크게 감탄했다. 반면 1889년 11월 직접 초연한 교향시(훗날 교향곡 1번)는 동요 ‘마르틴 형제’를 단조로 비튼 장송 행진 등으로 청중을 당혹하게 했고, 반응은 차가웠다. (상실) 같은 해 아버지가 2월에, 누이 레오폴디네가 9월에, 어머니가 10월에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살아남은 맏아들이 된 스물아홉의 말러는 동생 알로이스, 오토, 유스티네, 에마의 생계를 떠맡았고, 그 부담은 오래 그를 짓눌렀다. 1895년에는 음악적 재능이 있던 동생 오토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함부르크) 1891년 함부르크 시립극장 수석 지휘자가 되었다. 1892년 이 극장을 찾은 표트르 차이콥스키는 〈예브게니 오네긴〉 독일 초연을 말러에게 맡기고, 편지에서 그를 천재라 불렀다. 한스 폰 뷜로는 지휘자 말러를 높이 샀지만, 교향곡 2번 1악장의 원형 〈장례식〉을 피아노로 들려주자 귀를 막았다고 말러는 전했다. 1894년 뷜로의 장례식에서 클롭슈토크의 찬가 ‘부활’이 울리자, 말러는 몇 해 막혀 있던 교향곡 2번 마지막 악장의 실마리를 얻었다. (오두막) 여름이면 아터 호숫가 슈타인바흐의 작은 오두막에 틀어박혀 아침에 작곡하고 오후엔 걷고 헤엄쳤다. 여기서 교향곡 2번을 마치고 3번을 썼다. 찾아온 젊은 브루노 발터가 산을 바라보자 “볼 필요 없네, 저건 이미 다 음악으로 썼으니까”라고 했다는 일화가 발터의 회고에 남아 있다. (개종) 빈 궁정 오페라라는 정상의 자리는 유대인에게 닫혀 있었다. 1897년 2월 그는 가톨릭 세례를 받았고, 그해 봄 빈 궁정 오페라 지휘자로, 가을에는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교향곡 1번 D장조1884–1888 (1890년대 개정) (24–30세)지휘 Claudio Abbado · 2009 Lucerne Festival

부다페스트 초연에서 외면받은 곡이다.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군대 나팔, 보헤미아의 떠들썩한 악단 소리 등 말러가 지나온 삶의 소리가 한데 들어 있다.

  • 1악장 첫머리에서 현악기가 아주 높고 여린 음을 길게 끄는 가운데, 클라리넷이 아래로 떨어지는 두 음으로 뻐꾸기 울음을 낸다. 악보에는 ‘자연의 소리처럼’이라는 지시가 적혀 있다.
  • 3악장은 더블베이스 독주가 동요 ‘마르틴 형제(프레르 자크)’를 어두운 단조로 바꿔 꺼내고, 다른 악기들이 차례로 같은 가락을 뒤따르는 돌림노래(카논)로 쌓인다. 일부러 높은 음역에서 서툴게 들리게 한 이 독주를 한 명이 맡을지 파트 전체가 맡을지는 판본과 지휘자에 따라 갈린다.
  • 같은 3악장 중간에는 오보에와 심벌즈가 끼어들어 시골 잔치 악단 같은 떠들썩한 가락을 연주한다. 장례 행렬 옆에서 들리는 유행가처럼, 비극과 일상이 겹쳐 들린다.
  • 4악장 마지막에서 말러는 호른 주자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연주하라고 지시했다. 공연장에서 호른 줄이 일어서는 순간이 이 곡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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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2번 c단조 ‘부활’1888–1894 (28–34세)지휘 Mariss Jansons · Concertgebouworkest

함부르크 시절 뷜로의 장례식에서 실마리를 얻어 완성한 곡이다. 죽음에서 시작해 부활의 합창으로 끝나는 구도에 당시 말러의 신앙적 물음이 담겨 있다.

  • 1악장 첫머리에서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거칠게 떨리는 현(트레몰로) 위로 사납게 치솟는 음형을 내뿜는다. 원래 독립된 교향시 〈장례식〉이었던 악장으로, 영웅의 장례를 그린다.
  • 4악장 ‘원광’에서는 알토 독창이 “인간은 크나큰 고난 속에 있다”라고 아주 고요하게 노래한다. 앞뒤의 거대한 악장 사이에 놓인 이 몇 분의 정적이 곡의 중심이다.
  • 5악장에서는 무대 밖에 숨은 호른과 트럼펫이 멀리서 울리고, 플루트가 새 울음을 흉내 낸다. 최후의 심판을 부르는 ‘대소집’ 장면으로, 소리가 어느 방향에서 들려오는지 귀 기울여 보자.
  • 합창은 반주 없이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여리게 ‘부활하리라’를 부르며 시작한다. 말러는 합창단이 앉은 채로 노래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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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빈 궁정 오페라 · 1897–1901 (37–41세)

(개혁) 감독이 된 말러는 극장을 뿌리부터 바꿨다. 공연 중 객석 조명을 끄고, 늦게 온 관객은 막이 끝날 때까지 들이지 않았으며, 가수들이 돈을 주고 부리던 박수부대(클라크)를 몰아냈다. 바그너 작품에서 관행처럼 잘라 내던 부분을 되살리고, 가수에게는 연기를, 오케스트라에게는 악보에 적힌 그대로를 요구했다. (무대) 그가 올린 작품에는 이 시리즈의 이름이 여럿 있다. 1897년 스메타나의 〈달리보르〉와 차이콥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을 빈에 소개했고, 1898년에는 자코모 푸치니의 〈라 보엠〉 대신 루제로 레온카발로의 같은 제목 오페라를 골라 초연했다. 빈 필하모닉 연주회를 맡아 1899년에는 생전의 브루크너가 온전히 듣지 못한 교향곡 6번을, 일부를 줄인 형태로나마 지휘했다. (적의) 엄격함은 적을 만들었다. 단원과 가수들은 그의 독설과 끝없는 요구에 지쳤고, 반유대 언론은 개종한 유대인 감독을 끈질기게 공격했다. 그가 가장 견디지 못한 것은 타성이었다. “전통이란 게으름이다”라는 말이 그의 것으로 전해진다. (여름) 시즌 중에는 작곡할 수 없어 스스로를 ‘여름 작곡가’라 불렀다. 궁정 감독의 넉넉한 급여로 처음 형편이 펴자 1899년 뵈르터 호숫가 마이어니크에 땅을 사 별장과 숲속 작곡 오두막을 지었다. 민요 시집 『소년의 이상한 뿔피리』에 붙인 가곡들에 기대어 교향곡 4번을 1900년에 마쳤다. (출혈) 1901년 2월, 하루에 두 차례 지휘한 날 밤 심한 출혈로 쓰러져 목숨을 잃을 뻔했다. 수술을 받고 회복한 그해 여름, 그는 죽음을 가까이 본 사람의 목소리로 뤼케르트의 시에 가곡을 붙이고 교향곡 5번을 쓰기 시작했다. 5번이 장송 행진으로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V. 알마 · 1901–1907 (41–47세)

(만남) 1901년 11월 한 살롱에서 화가 에밀 신들러의 딸 알마를 만났다. 열아홉 살 아래의 알마는 작곡을 공부하던 빈 사교계의 이름난 미인이었다. 몇 주 뒤 말러는 긴 편지를 보내, 결혼한다면 작곡을 그만두고 자신의 음악에 삶을 맞춰 달라고 요구했다. 알마는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1902년 3월 결혼했다. 하루 뒤 누이 유스티네도 빈 필하모닉 악장 아르놀트 로제와 결혼했다. (딸) 1902년 11월 맏딸 마리아 안나가, 1904년 6월 둘째 안나 유스티네가 태어났다. 말러는 아이들과 뒹굴며 노는 아버지였다. 안나는 훗날 조각가가 되었고 1988년 세상을 떠났다. (고백)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는 알마에게 보낸 사랑의 고백이었다고, 지휘자 빌럼 멩엘베르흐가 자기 악보에 적어 두었다. 그러나 둘째 딸이 태어난 1904년 여름, 그는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비탄을 담은 뤼케르트의 시로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완성했다. 알마는 행복한 집에서 왜 이런 노래를 쓰느냐며 불길해했다고 회고했다. 같은 시기의 교향곡 6번은 거대한 망치 타격과 함께 비극으로 끝난다. (슈트라우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는 서로의 음악을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서로를 밀어주는 사이였다. 슈트라우스가 이끌던 독일음악협회 축제에서 1902년 교향곡 3번이 전곡 초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고, 말러는 1905년 슈트라우스의 〈살로메〉를 빈 무대에 올리려 했으나 검열에 막혔다. (찬가) 1906년 여름, 라틴어 찬가 ‘오소서, 창조주 성령이여’와 괴테 『파우스트』의 마지막 장면을 하나로 잇는 교향곡 8번을 두 달 남짓 만에 써냈다. 사랑이 구원한다는 이 곡의 결말은 그가 품은 믿음에 가장 가까운 말이었다.

♪교향곡 5번 c♯단조1901–1902 (41–42세)지휘 Simon Rattle · Berliner Philharmoniker

죽음 직전까지 갔던 1901년 출혈 뒤 쓰기 시작해, 알마를 만나 결혼한 시기에 완성했다. 장송 행진으로 시작해 사랑의 아다지에토를 지나 밝은 끝악장에 이른다.

  • 1악장은 트럼펫 독주가 세 개의 짧은 음과 긴 음으로 된 나팔 신호를 홀로 불며 시작한다. 이글라우의 군대 나팔을 떠올리게 하는 장송 행진이다.
  • 3악장은 빠르고 익살스러운 춤곡 악장(스케르초)으로, 호른 독주가 협주곡처럼 활약한다. 일부 공연에서는 호른 주자를 무대 앞으로 불러 세우기도 한다.
  • 4악장 아다지에토는 현악기와 하프만으로 연주된다. 멩엘베르흐는 알마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라고 적었다. 연주 시간이 7분대에서 12분 넘게까지 지휘자마다 크게 갈려서, 빠른 연주와 느린 연주를 비교해 듣는 재미가 있다.
  • 아다지에토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에 쓰이면서 말러를 대중에게 알린 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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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1901–1904 (41–44세)노래 Brigitte Fassbaender (메조소프라노)

두 딸이 태어나 자라던 행복한 시기에 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노래를 썼다. 3년 뒤 맏딸 마리아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 곡은 예언처럼 기억되었다.

  • 1곡 ‘이제 해가 밝게 떠오르려 한다’는 오보에와 호른의 가는 두 선율이 실처럼 얽히며 시작한다. 밤새 불행이 있었는데도 해는 아무렇지 않게 뜬다는 가사의 잔인한 담담함을 소리로 그린다.
  • 오케스트라를 크게 쓰지 않고 실내악처럼 투명하게 다룬 관현악법이 특징이다. 악기 하나하나가 따로 들릴 만큼 얇은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 5곡 ‘이런 날씨, 이런 폭풍에’는 폭풍이 몰아치는 오케스트라로 시작했다가, 끝에서 첼레스타(종소리 같은 소리를 내는 건반악기)가 들어오며 자장가로 가라앉는다. 아이들이 어머니의 집에서처럼 편히 쉰다는 위로의 결말이다.
  • 남성 가수와 여성 가수 모두 부르는데, 아버지의 목소리로 들리는 바리톤과 더 넓은 슬픔으로 들리는 메조소프라노를 비교해 들으면 같은 곡이 다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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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1907년 이후 · 1907–1910 (47–50세)

(붕괴) 1907년은 한꺼번에 무너진 해였다. 빈의 적의에 지친 말러는 궁정 오페라를 떠나기로 했다. 7월 마이어니크에서 네 살 마리아가 성홍열과 디프테리아로 숨졌고, 며칠 뒤 그를 진찰한 의사는 심장 판막에 이상이 있다고 했다. 걷기와 수영, 등산을 즐기던 그는 몸을 사리며 살게 되었다. (뉴욕) 1908년 1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데뷔했다. 몇 달짜리 시즌에 빈 시절을 크게 웃도는 보수를 받는 조건이었고, 가족의 장래를 위해 돈을 모으려는 계산도 있었다. 1909년부터는 뉴욕 필하모닉을 맡았다. 여름에는 남티롤 토블라흐(오늘날 이탈리아 도비아코)의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대지) 이 오두막에서 한스 베트게가 옮긴 당나라 시를 바탕으로 〈대지의 노래〉를 썼다. 5음음계의 동양풍 빛깔 속에 이별과 무상을 노래한 이 교향곡에 그는 번호를 붙이지 않았다. 베토벤도 브루크너도 아홉 번째 교향곡에서 생을 마쳤다는 데서 온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알마는 전한다. 이어 교향곡 9번을 완성했다. (파리) 1910년 4월 파리에서 교향곡 2번을 지휘했을 때, 알마의 회고에 따르면 클로드 드뷔시가 2악장 도중 자리를 떴다. 독일어권 교향곡 전통에 대한 프랑스 음악가들의 거리감이 드러난 장면이었다. (위기) 그해 여름 알마가 젊은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사랑에 빠진 사실이 드러났다. 큰 충격을 받은 말러는 8월 네덜란드 레이던에서 지크문트 프로이트를 만나 몇 시간을 함께 걸으며 이야기했다. 그 뒤 그는 오래 묻어 둔 알마의 가곡을 꺼내 출판을 서둘렀고, 교향곡 8번을 그녀에게 바쳤다. 9월 뮌헨에서 천 명 가까운 연주자로 8번을 초연해 생애 가장 큰 갈채를 받았다.

♪〈대지의 노래〉1908–1909 (48–49세)지휘 Alain Altinoglu · hr-Sinfonieorchester

딸을 잃고 심장병 진단을 받은 뒤 토블라흐에서 쓴 곡이다. 당나라 시에 기대어 삶과의 이별을 노래했으며, 아홉 번째 교향곡이라는 이름을 피했다.

  • 1곡 ‘대지의 비탄에 부치는 술 노래’에서 “삶도 어둡고 죽음도 어둡다”는 후렴이 세 번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반음씩 높아져 점점 절박해진다. 두터운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와야 하는 테너 파트는 악명 높은 난곡이다.
  • 3곡 ‘청춘에 대하여’는 다섯 음만으로 된 음계(5음음계)를 써서 도자기 정자에 모인 젊은이들을 동양화처럼 그린다. 피콜로와 트라이앵글의 가벼운 소리가 특징이다.
  • 6곡 ‘고별’은 앞의 다섯 곡을 합친 만큼 긴 악장이다. 낮은 징 소리와 플루트의 새소리 같은 장식음 속에 독창자가 홀로 이별을 노래한다.
  • 곡 끝에서 독창자는 ‘영원히(ewig)’를 거듭 부르며 소리가 사라지고, 첼레스타와 만돌린 위로 마지막 화음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채 공중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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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마지막 겨울 · 1910–1911 (50–51세)

(미완) 그 여름 손대던 교향곡 10번의 악보 여백에는 “너를 위해 살고, 너를 위해 죽으리! 알므시!” 같은 외침이 적혀 있다. 다섯 악장 가운데 첫 악장 아다지오만 거의 완성되었고, 나머지는 뼈대로 남았다. 흔들린 결혼과 다가오는 죽음의 예감이 악보에 그대로 새겨졌다. (강행) 1910–11년 시즌 뉴욕 필하모닉과 수십 차례 연주회를 열었다.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을 직접 편곡해 건반을 맡는 등 의욕적이었으나, 프로그램과 운영을 두고 후원자 이사회와 마찰을 빚었다. (병) 1911년 2월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21일 카네기 홀에서 마지막 연주회를 지휘했다. 진단은 세균성 심내막염이었고, 항생제가 없던 시대라 손쓸 방법이 없었다. 4월 유럽으로 돌아가 파리에서 혈청 치료를 받았으나 차도가 없었고, 5월 빈으로 옮겨졌다. (죽음) 1911년 5월 18일 밤 빈의 요양원에서 쉰 살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에 “모차르틀”(모차르트의 애칭)을 되뇌었다고 알마는 적었다. 바람대로 그린칭 묘지의 딸 마리아 곁에 묻혔고, 묘석에는 이름만 새겼다. 나를 찾아올 사람은 내가 누구였는지 알 것이고 나머지는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뜻이었다. (유산) 〈대지의 노래〉는 그해 11월, 교향곡 9번은 이듬해 6월 브루노 발터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나치 시대에 그의 음악은 유대인의 것이라며 금지되었지만, 반세기 뒤 음반 시대를 맞아 세계 오케스트라의 중심 레퍼토리가 되었다.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던 말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교향곡 9번 D장조1909–1910 (49–50세)지휘 Claudio Abbado · Mahler Jugendorchester

말러가 완성한 마지막 교향곡으로, 그는 이 곡이 초연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죽음을 마주한 사람의 작별로 흔히 들린다.

  • 1악장은 첼로와 호른이 고르지 않게 끊기는 리듬으로 시작한다. 레너드 번스타인은 이를 말러의 불규칙한 심장 박동으로 해석했는데, 널리 알려진 해석이지만 확증된 것은 아니다.
  • 1악장의 절정에서 트롬본과 트럼펫이 그 리듬을 최대의 힘으로 내리찍는다. 악보에는 ‘무거운 장례 행렬처럼’이라는 지시가 적혀 있다.
  • 3악장 ‘론도-부를레스케’에는 ‘매우 반항적으로’라는 지시가 붙어 있다. 여러 선율을 동시에 겹쳐 짜는 대위법이 숨 가쁘게 몰아쳐, 연주자에게 가장 까다로운 악장으로 꼽힌다.
  • 4악장 아다지오의 마지막 몇 분은 현악기가 ‘꺼져 가듯이’ 점점 여려지다가 사라진다. 이 끝부분에는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4곡의 선율이 조용히 인용되어 있다. 마지막 음이 사라진 뒤 객석이 얼마나 오래 침묵하는지도 명연주를 가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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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1910년 레이던에서 프로이트를 만났을 때, 말러는 어린 시절 부모의 격한 다툼을 피해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거리의 손풍금이 유행가 ‘아, 사랑스러운 아우구스틴’을 연주하는 것을 들은 기억을 털어놓았다. 비극과 하찮은 것이 늘 붙어 다니는 자기 음악의 성격이 거기서 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프로이트가 훗날 제자에게 전한 것을 어니스트 존스가 프로이트 전기에 옮겨 적은 간접 기록이라, 말러 전기에서는 각주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말러의 지휘는 녹음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가 연주한 소리를 듣는 유일한 길은 1905년 11월 벨테미뇽 자동 피아노용 롤에 남긴 네 곡이다. 교향곡 5번 1악장과 4번 끝악장의 피아노 편곡, 그리고 가곡 두 곡이다. 롤 재생 장치의 특성상 템포와 셈여림을 얼마나 믿을지 논란이 있어 연구자들 사이에서만 활발히 다뤄진다. 교향곡 6번의 망치 타격이 그에게 닥칠 세 번의 운명을 예언했다는 이야기, 아홉 번째 교향곡을 두려워했다는 이야기는 대부분 알마의 회고에서 나왔다. 말러는 개정 과정에서 세 번째 망치 타격을 스스로 지웠다. 앙리루이 드 라 그랑주 등이 원본 편지를 대조한 결과, 알마가 남편의 편지를 출판하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대목을 잘라 내거나 고친 사실도 확인되었다. 1910년 말러는 처남 카를 몰을 통해 이름을 숨기고 쇤베르크의 그림을 사들였다. 형편이 어렵던 젊은 작곡가를 돕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죽은 뒤 누가 쇤베르크를 돌볼지 걱정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알마는 미완성 교향곡 10번의 완성을 오랫동안 허락하지 않다가, 1924년 악보 사본을 공개했다. 영국 음악학자 데릭 쿡이 만든 연주판에도 처음엔 반대했지만, 1963년 녹음을 듣고 나서 연주를 허락했다.

용어 노트 📚🔎

교향곡

(말뜻) 교향곡(交響曲)은 소리가 서로(交) 울리는(響)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심포니도 그리스어로 ‘함께 울리는 소리’라는 말에서 왔다. (음악에서) 오케스트라 전체를 위해 쓰는, 보통 네 개 안팎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큰 곡이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때는 30분 안팎이었지만 말러의 교향곡은 한 시간을 훌쩍 넘고 노래와 합창까지 들어간다. 말러는 “교향곡은 세계처럼 모든 것을 품어야 한다”는 뜻의 말을 남겼다. 한 권의 장편소설이 여러 장으로 나뉘어 하나의 이야기를 하듯, 교향곡의 악장들도 따로 떨어져 있지만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룬다. (다른 데서는) ‘교향곡’은 여러 요소가 어우러진 큰 성과를 비유할 때도 쓴다. ‘색채의 교향곡’ 같은 표현이 그렇다.

연가곡

(말뜻) 연가곡(連歌曲)은 이어진(連) 노래(歌曲)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여러 편의 가곡을 하나로 묶어, 차례대로 부르면 한 사람의 이야기나 하나의 감정이 흘러가도록 만든 작품이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대표적이고, 말러의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와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도 연가곡이다. 앨범 한 장의 노래들이 순서대로 들으면 하나의 이야기가 되도록 만든 ‘콘셉트 앨범’을 떠올리면 비슷하다.

카논

(말뜻) 그리스어 kanon 은 ‘자’, ‘규칙’이라는 뜻이다. 앞 사람이 부른 가락을 정해진 규칙대로 뒷사람이 그대로 따라 한다는 데서 이 이름이 붙었다. (음악에서) 한 성부가 시작한 선율을 다른 성부가 조금 늦게 똑같이 따라 하며 겹쳐 가는 작곡 방법이다. 교실에서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를 모둠별로 한 마디씩 늦게 시작해 부르는 돌림노래가 바로 카논이다. 말러는 교향곡 1번 3악장에서 돌림노래 ‘마르틴 형제’를 단조로 바꿔 장송 행진 같은 카논으로 만들었다. (다른 데서는) ‘캐논’은 종교에서 정경(공인된 경전), 문학·영화에서는 원작의 공식 설정을 가리키는 말로도 쓴다.

관현악법

(말뜻) 관현악(管絃樂)은 관(管, 관악기)과 현(絃, 현악기)으로 하는 음악, 곧 오케스트라 음악이다. 관현악법은 그 악기들을 다루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같은 선율과 화음이라도 어떤 악기에 맡기고 어떻게 섞느냐에 따라 소리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것을 정하는 기술이 관현악법(오케스트레이션)이다. 말러는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쓰면서도 악기 한두 개만 남겨 실내악처럼 투명하게 울리는 데 뛰어났다. 같은 재료로도 굽느냐 찌느냐, 어떤 양념을 넣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요리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아다지에토

(말뜻) 이탈리아어 adagio(느리게)에 ‘조금, 작은’을 뜻하는 꼬리 -etto 가 붙은 말로, ‘조금 느리게’ 또는 ‘작은 아다지오’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아다지오보다 약간 덜 느린 빠르기를 가리키는 말인데, 그런 빠르기의 짧은 악장 자체를 부르는 이름으로도 쓰인다.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가장 유명하다. 그런데 같은 ‘조금 느리게’를 두고도 지휘자마다 해석이 크게 달라 7분에서 12분 넘게까지 갈린다. 선생님이 ‘천천히 읽어 보자’고 했을 때 학생마다 읽는 속도가 다른 것과 같다.

박수부대(클라크)

(말뜻) 프랑스어 claque 는 손바닥으로 ‘탁’ 치는 소리, 곧 박수에서 나온 말이다. (음악에서) 19세기 유럽 오페라극장에서 가수나 작곡가에게 돈을 받고 객석에 앉아 일부러 박수와 환호를 쳐 주던 무리를 말한다. 반대로 돈을 안 주는 가수에게는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말러는 빈 궁정 오페라 감독이 되자 이들을 몰아냈다. 운동 경기에서 한쪽 팀이 돈을 주고 응원단을 사서 분위기를 띄우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5음음계

(음악에서) 한 옥타브 안에서 다섯 개의 음만 쓰는 음계다. 피아노의 검은 건반 다섯 개만 눌러 보면 바로 5음음계가 되는데, 어떻게 눌러도 서로 부딪치지 않고 동양적이거나 민요 같은 느낌이 난다. 우리 민요와 중국·일본 음악, 스코틀랜드 민요에서도 널리 쓰인다. 말러는 〈대지의 노래〉에서 당나라 시의 분위기를 내려고 이 음계를 썼다. 음악 시간에 검은 건반만으로 아무렇게나 쳐도 그럴듯한 가락이 나오는 경험을 해 봤다면, 그것이 5음음계다. (다른 데서는) 영어로 펜타토닉이라 하며, 록과 블루스 기타 독주에서 가장 많이 쓰는 음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