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lle Saint-Saëns
"나는 사과나무가 사과를 만들듯 음악을 만든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샤를로트 마송
큰할머니이자 첫 피아노 스승으로, 어린 생상스의 재능을 처음 알아보고 키웠다.
- 우정엑토르 베를리오즈
일찍부터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가까이 지낸 벗으로, 그의 재능과 성격을 예리하게 꿰뚫어 본 평을 남겼다.
- 우정프란츠 리스트
그의 오르간 연주를 극찬했고, 프랑스 극장들이 외면한 《삼손과 데릴라》를 바이마르에서 초연시켜 주었다.
- 제자가브리엘 포레
니데르메예르 학교에서 만난 제자이자, 그가 죽을 때까지 60년 가까이 이어진 가장 가까운 벗이었다.
- 가족마리로르 트뤼포
1875년 결혼한 아내로, 두 아들을 함께 낳았으나 두 아들의 죽음 이후 1881년 별거에 들어갔다.
- 경쟁리하르트 바그너
젊은 시절 깊이 동경했던 음악이었으나,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공공연히 비판의 대상으로 돌아섰다.
I. 파리의 신동 · 1835–1848 (0–13세)
(출생) 1835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빅토르 생상스는 내무부의 말단 관리였다. (상실)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 아버지의 얼굴을 알지 못한 채 자랐다. (모정) 외동아들이었던 그는 어머니 클레망스 콜랭과, 피아노를 가르친 큰할머니 샤를로트 마송의 전적인 관심을 받으며 자랐다. 변변치 않은 유족 연금으로 살아가던 살림이었지만, 어머니는 피아노 수업료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신동) 두 살 반에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절대음감을 지녔다고 알려졌다. 열 살에 파리 살 플레옐에서 공식 데뷔 연주회를 열어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협주곡을 연주했고, 앙코르로는 베토벤의 서른두 곡 피아노 소나타 중 어느 것이든 악보 없이 치겠다고 청중에게 제안했다. (호기심) 음악 못지않게 수학과 천문학, 식물학에 빠져들었다. 평생 지속된 이 호기심은 훗날 그의 성격과 음악 양쪽에 깔끔하고 명료한 질서를 남겼다.
II. 콘서바투아르와 오르간 · 1848–1857 (13–22세)
(입학) 1848년, 열세 살에 파리 음악원에 들어갔다. 오르간을 프랑수아 브누아에게, 작곡을 자크 알레비에게 배웠다. (좌절) 로마대상에 두 차례 도전했지만 끝내 받지 못했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음악이 너무 쉽게 써진다고, 다시 말해 고심의 흔적이 없다고 여겼다. (오르간) 1853년 생메리 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고, 1857년에는 파리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인 마들렌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었다. 이 자리를 이후 꼬박 20년 동안 지켰다. (우정) 이 무렵 리스트가 그의 오르간 연주를 듣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오르가니스트"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엑토르 베를리오즈, 샤를 구노와도 가까워져 평생의 우정을 쌓았다. (생계) 오르가니스트의 월급은 넉넉하지 않았다. 레슨과 작곡으로 생계를 보탰고, 교회 음악에 묶인 시간 때문에 오페라와 교향곡 같은 큰 작품은 더디게 쌓여갔다.
III. 교단과 제자들 · 1857–1870 (22–35세)
(교수) 1861년, 니데르메예르 종교음악학교의 피아노 교수로 부임했다. 전통적으로 오르간과 성가 위주였던 이 학교에 그는 리스트와 바그너, 슈만 같은 당대 작곡가의 악보를 몰래 가르치며 학생들의 시야를 넓혔다. (제자) 이곳에서 가브리엘 포레를 만났다. 포레는 그의 가장 아끼는 제자가 되었고, 둘의 우정은 그가 죽을 때까지 60년 가까이 이어졌다. 생상스는 훗날 포레의 작품들을 공개적으로 변호하며 끝까지 그를 지지했다. (동경) 1859년 무렵 파리에 머물던 바그너를 알게 되어 그의 음악에 깊이 감탄했다. 당시 그는 바그너의 화성과 관현악법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여겼고, 《트리스탄》을 비롯한 바그너의 악보를 외워서 연주해 바그너를 놀라게 했다. (과작) 이 시기 피아노 협주곡과 바이올린 협주곡들을 잇달아 써냈다. 그의 음악은 선명한 구조와 손에 잡히는 선율로 "지나치게 쉽게 쓴다"는 평을 다시 불러왔지만, 그 명료함이야말로 그가 평생 지킨 미학이었다.
오르간 연주로 다져진 손과 재치가 한 협주곡 안에서 맞붙은 작품이다.
- 1악장은 바흐풍의 장엄한 서주로 시작했다가 돌연 자유로운 카덴차(독주자가 혼자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대목)로 흘러간다 — 이 극적인 전환이 곡 전체의 성격을 압축해 보여준다.
- 단 17일 만에 완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정확한 작곡 기간은 전기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진다.
- 마지막 악장은 타란텔라(이탈리아 남부의 빠른 8분의6박자 춤곡) 리듬으로 쉴 새 없이 질주해,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 손목에 무리가 갈 만큼 어렵다고 회자된다.
- 피아니스트 지그문트 스토요프스키가 "바흐로 시작해 오펜바흐로 끝난다"고 농담했다고 전해지는데, 1악장의 무게와 종악장의 경쾌한 소동 사이의 간극을 들어보면 그 말이 과장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와의 우정에서 태어난, 짧지만 화려한 기교의 결정체다.
- 느린 서주(인트로덕션)는 바이올린이 홀로 탄식하듯 노래하며 곡 전체의 긴장을 예고한다.
- 론도(같은 주제가 몇 번이고 되돌아오는 형식) 부분은 스페인풍 리듬을 빌려와, 헌정 대상이었던 스페인 바이올리니스트 파블로 데 사라사테의 기교를 염두에 두고 쓰였다.
- 빠른 더블 스토핑(한 번에 두 현을 동시에 켜는 주법)과 왼손 피치카토(현을 손가락으로 튕기는 주법)가 잇따라 나와, 바이올리니스트들 사이에서 손꼽히는 기교 과시곡으로 통한다.
- 마지막으로 치닫는 대목의 가속은 연주자가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하는 구간으로 꼽힌다.
IV. 전쟁과 아르스 갈리카 · 1870–1874 (35–39세)
(전쟁)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터지고 파리가 포위되었다. 그는 국민방위대에 자원해 성벽을 지켰고, 도시가 겪은 굶주림과 포격을 가까이서 겪었다. (결성) 전쟁이 끝난 1871년, 로맹 뷔신과 함께 국민음악협회를 세웠다. "아르스 갈리카(프랑스의 예술)"를 표어로 내걸고, 독일 음악에 가려졌던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분열) 협회는 세자르 프랑크의 제자들, 특히 뱅상 댕디와 함께 프랑스 교향악의 산실이 되었다. 그러나 외국 음악까지 받아들이자는 쪽과 순수 프랑스 음악만 지키자는 생상스 사이에 균열이 생겨, 그는 1886년 결국 협회를 떠났다. (전향) 패전의 충격은 그의 애국심을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한때 동경했던 바그너를 향한 태도도 이즈음부터 조금씩 거리를 두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무도) 1874년에는 교향시 《죽음의 무도》를 완성했다. 앙리 카잘리스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한밤중 묘지에서 해골들이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춤추는 광경을 그렸다. 초연에서는 냉담한 반응을 받았지만 훗날 그의 가장 널리 연주되는 관현악곡이 되었다.
패전 직후의 어둡고 격정적인 공기가 짙게 배어 있는 곡이다.
- 보통의 협주곡과 달리 오케스트라의 서주 없이, 첫 음부터 독주 첼로가 격정적으로 뛰어든다.
- 세 악장이 쉬지 않고 이어 붙은 단일 악장 구조여서, 중간의 느린 악장은 짧은 숨을 돌리는 왈츠처럼 끼어든다.
- 첼리스트들 사이에서는 활을 빠르게 튕기듯 켜는 대목의 정확도가 연주의 성패를 가른다고들 말한다.
- 곡 전체에 흐르는 어둡고 격정적인 분위기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패전 직후의 시대적 공기와 자주 연결지어 이야기된다.
죽음과 운명을 유머와 공포가 뒤섞인 춤으로 그려낸, 그의 가장 유명한 관현악곡이다.
- 하프가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를 열두 번 울리며 곡이 시작된다.
- 독주 바이올린은 한 현을 반음 낮춰 조율하는(스코르다투라) 기법으로, 불안하게 들리는 음정(악마의 음정이라 불리는 트리톤)을 연주해 죽음이 직접 바이올린을 켜는 듯한 느낌을 낸다.
- 실로폰이 또각거리는 소리는 해골들이 부딪치는 뼈 소리를 흉내 낸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새벽닭이 우는 소리를 오보에가 연주하면 음악과 해골들이 황급히 사라지는 마지막 대목은, 유머와 공포가 뒤섞인 생상스 특유의 균형감을 보여준다.
V. 결혼과 상실 · 1875–1881 (40–46세)
(결혼) 1875년, 열아홉 살의 마리로르 트뤼포와 결혼했다. 마흔 살이던 그와 나이 차가 컸고, 평생 음악에만 몰두해온 그의 결혼을 주변에서는 뜻밖으로 여겼다. (탄생) 1875년 11월 큰아들 앙드레가, 1877년 12월 둘째 아들 장프랑수아가 태어났다. 짧았지만 그는 가정을 꾸린 기쁨을 누렸다. (참사) 1878년 5월과 7월, 두 아들이 여섯 주 간격으로 잇따라 죽었다. 앙드레는 집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고, 장프랑수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생상스는 이 일을 글로 거의 남기지 않았지만, 지인들은 그가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전했다. (파국) 1881년, 아내와 별거에 들어갔고 둘은 그 뒤로 평생 다시 만나지 않았다. 이혼은 하지 않았기에 법적으로는 끝까지 부부였다. 그는 혼자 살며 점점 더 자주, 더 오래 파리를 떠나 여행하기 시작했다. (오페라) 이 무렵 성경 속 삼손과 데릴라의 이야기를 오페라로 쓰고 있었다. 성서를 무대에 올리는 데 보수적이던 프랑스 극장들은 주저했고, 결국 리스트가 바이마르 궁정극장을 움직여 1877년 독일에서 먼저 초연되게 해 주었다. 파리에서는 그 뒤로도 13년이 더 지나서야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리스트의 도움으로 독일에서 먼저 무대에 오른, 사랑과 배신의 성서 오페라다.
- 2막에서 데릴라가 부르는 "내 마음이 그대 음성에 열리고(Mon cœur s'ouvre à ta voix)"는 느리고 관능적인 선율로, 오페라 전체에서 가장 자주 따로 연주되는 아리아(오페라 속 독립적 솔로 노래)다.
- 3막의 바카날(고대 축제의 광란을 묘사하는 춤곡)은 오보에의 이국적인 선율과 점점 빨라지는 리듬으로 필리스티아인들의 승리의 광기를 그려낸다.
- 1막 합창은 억압받는 히브리인들의 탄식을 무겁게 쌓아 올려, 이후 삼손이 등장하는 순간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 신전이 무너지는 마지막 장면의 관현악은 짧지만 압도적인 타악기 효과로 유명하다.
VI. 원숙과 정점 · 1881–1893 (46–58세)
(상실) 1888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없이 자란 그에게 어머니는 평생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고, 그 죽음은 그를 깊이 흔들었다. 그는 파리의 집을 정리하고 오랜 방랑을 시작했다. (교향곡) 1886년에 발표한 교향곡 3번 "오르간 교향곡"은 오르간과 관현악을 한 몸처럼 엮은 작품으로, 리스트에게 헌정되었다. 공연 몇 달 뒤 리스트가 세상을 떠나자, 생상스는 이 곡이 두 사람 사이의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고 여겼다. (장난) 같은 해, 사육제 기간에 동료들과 즐기려고 《동물의 사육제》를 썼다. 재치 있고 가벼운 이 곡이 "진지한" 작곡가라는 자신의 평판을 해칠까 걱정해, 생전에는 〈백조〉 한 곡만 출판을 허락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죽은 뒤에만 공개하도록 유언에 남겼다. (여행) 어머니를 잃은 뒤로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자주 찾았다. 알제, 카이로, 룩소르의 호텔 방에서 악보를 썼고, 기후와 고대 유적, 낯선 음악이 그에게 위안이 되었다. 이 여행벽은 건강, 특히 약했던 기관지와도 관련이 있었다. (인정) 1893년에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 음악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에서 그의 음악적 권위가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리스트에게 바친, 오르간과 관현악이 한 몸처럼 울리는 그의 정점이다.
- 피날레에서 오르간이 가득 찬 화음으로 처음 터져 나오는 순간은, 이 곡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대목이다 — 모르고 듣다가도 이 순간만큼은 알아챈다.
- 곡 전체는 하나의 주제가 느리게, 빠르게, 장대하게 모습을 바꿔가며 되돌아오는 순환 구조로 짜여 있어, 처음의 선율이 전혀 다른 옷을 입고 다시 나타나는 것을 끝까지 들으면 알아챌 수 있다.
- 2악장에서 피아노가 네 손(두 명의 연주자)으로 가세해 교향곡에 이례적인 색채를 더한다.
- 리스트에게 헌정된 곡으로, 초연 몇 달 뒤 리스트가 세상을 떠나면서 생상스에게는 더욱 특별한 작품이 되었다.
동료들과의 사육제 농담에서 태어나, 그가 죽은 뒤에야 온전히 세상에 공개된 곡이다.
- 13번 곡 "백조(Le Cygne)"에서 첼로가 느리게 노래하는 선율은 전체 모음곡 중 유일하게 생전에 출판이 허락된 곡으로, 오늘날에도 가장 널리 사랑받는다.
- "화석(Fossiles)"에서는 실로폰이 자신의 옛 곡 《죽음의 무도》의 해골 주제를 그대로 가져와, 스스로의 음악마저 박물관의 화석처럼 농담거리로 삼는다.
- "피아니스트(Pianistes)"는 연습곡의 지루한 음계 연습을 일부러 서투르게 흉내 내, 동물원의 다른 "동물들" 사이에 피아노 연습생을 끼워 넣는 장난이다.
- "거북이(Tortues)"는 오펜바흐의 《천국과 지옥》 캉캉을 극단적으로 느리게 늘여 연주해, 빠른 춤곡이 느려지면 얼마나 우스워지는지를 보여준다.
VII. 말년과 세계 여행, 죽음 · 1893–1921 (58–86세)
(불화) 1902년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초연되자 공공연히 거부감을 드러내며 혹평했다. 다음 세대의 음악이 떠오르는 가운데, 그는 신구 세대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 (현역) 노년에도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돌며 연주했다. 1915년, 여든 살의 나이로 미국을 방문해 자신의 곡을 지휘했을 정도로 체력과 활동력을 오래 유지했다. (전쟁)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국수적인 태도가 더 강해졌다. 프랑스 악단들에게 독일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촉구했고, 한때 깊이 존경했던 바그너까지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원로) 프랑스 음악원과 아카데미의 원로로 존경받았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보수적인 취향을 고집하는 구세대의 대표로 여겨지기도 했다. (유작) 생의 마지막 해인 1921년에도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을 위한 소나타를 잇달아 썼다. 이 악기들을 위한 좋은 레퍼토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남긴 작품들이었고, 더 많은 관악기 소나타를 계획했지만 끝내 쓰지 못했다. (죽음) 1921년 12월, 여행지였던 알제리 알제에서 세상을 떠났다. 여든여섯 살이었다. 그의 유해는 파리로 옮겨져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다.
덜 알려진 이야기
교회음악가였지만 사적으로는 신의 존재나 영혼의 불멸을 당연하게 믿지 않는 회의주의자였다. 1894년에 낸 철학적 에세이집 《문제와 신비》에서는 영혼이나 자유의지 같은 개념을 과학적으로 재검토하며 유보적인 태도를 밝혔다. 교회 오르간 연주와 개인적 회의 사이의 이 간극은 그가 종교 음악을 직업적으로 충실히 수행한 결과로 설명되곤 하며, 평전들이 뒤늦게서야 그의 에세이를 조명하기 전까지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 천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여행 중에도 밤하늘을 관측했고, 이 학회에서 홍해에서 본 신기루 현상에 관해 강연하기도 했다. 음악가로서의 명성에 가려 그의 이런 과학적 관심은 표준적인 연주회 해설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젊은 생상스를 두고 "그는 모든 것을 알지만, 미숙함이 부족하다"고 평했다고 전해진다. 기교와 지식이 이미 완성되어 더 배울 것이 없을 만큼 노련하다는 뜻으로, 그가 더는 학생이 아니라 대가라는 것을 역설로 비튼 칭찬이었다.
용어 노트 📚🔎
교향시
(말뜻) 교향시(交響詩)는 교향곡처럼 관현악으로 연주되지만, 음악으로 시를 쓰듯 이야기나 그림을 그려내는 곡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정해진 줄거리나 장면을 음악만으로 묘사하는, 보통 한 악장짜리 관현악곡이다.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는 한밤중 묘지에서 해골들이 춤추는 장면을 음악으로 그려낸 대표적인 교향시다. 애니메이션 없이 소리만으로 영화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일반적인 글에서 "시적인"이라는 말은 아름답고 함축적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교향시는 특정 이야기나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더 구체적인 음악 용어다.
협주곡
(말뜻) 협주곡(協奏曲)은 함께(協) 연주하는(奏)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콘체르토의 라틴어 뿌리 concertare에는 겨루다라는 뜻도 있어서,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겨루듯 주고받는 음악의 성격이 이름에 이미 들어 있다. (음악에서) 한 명 또는 소수의 독주자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때로는 경쟁하듯 때로는 어우러지며 연주하는 곡이다. 생상스의 첼로 협주곡 1번은 독주 첼로가 오케스트라의 서주 없이 곡 시작과 동시에 뛰어든다는 점에서 유독 대담하다. 체육 수업의 일대일 농구 대결처럼,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번갈아 공을 주고받는 느낌과 비슷하다.
트리톤 (악마의 음정)
(음악에서) 두 음 사이의 거리가 반음 여섯 개, 정확히 한 옥타브의 절반이 되는 음정이다. 어느 쪽으로도 자연스럽게 풀리지 않고 불안하게 들려 중세에는 "악마의 음정"이라 불리며 금기시되었다. 《죽음의 무도》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이 음정으로 조율되어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 듣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끼게 된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순수한 음악 전문어다.
스코르다투라
(말뜻) 이탈리아어로 "조율을 흐트러뜨린다"는 뜻이다. (음악에서) 현악기의 현을 평소와 다르게 조율해 특별한 음색이나 화음을 얻어내는 기법이다. 《죽음의 무도》에서는 바이올린의 가장 높은 현을 반음 낮춰, 죽음이 연주하는 듣기 거북한 바이올린 소리를 일부러 만들어냈다. 기타 줄 하나를 일부러 다르게 조여 평소와 다른 소리를 내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아리아
(말뜻) 이탈리아어로 "공기" 또는 선율이라는 뜻을 담은 말에서 왔다. (음악에서) 오페라에서 한 등장인물이 부르는, 독립적으로도 감상할 수 있는 선율적인 솔로 노래다. 《삼손과 데릴라》에서 데릴라가 부르는 "내 마음이 그대 음성에 열리고"는 이 오페라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로, 유혹의 감정을 느리고 관능적인 선율에 담았다. 연극에서 한 인물이 혼자 길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독백 장면과 비슷하다.
바카날
(말뜻) 술과 황홀경의 신 바쿠스(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고대 축제에서 이름을 따왔다. (음악에서) 격렬하고 관능적인 춤을 묘사하는 관현악 장면으로, 오페라나 발레에서 자주 쓰인다. 《삼손과 데릴라》의 바카날은 필리스티아인들이 승리를 자축하며 광란에 빠져드는 장면을 그린다. 축제 뒤풀이에서 음악이 점점 빨라지며 모두가 춤에 휩쓸리는 분위기를 떠올리면 된다.
론도
(말뜻) 프랑스어 "rondeau"에서 왔고, 원래 돌고 도는 원무를 가리켰다. (음악에서) 하나의 주제가 다른 부분들을 사이에 두고 계속 되돌아오는 형식이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의 론도 부분에서는 경쾌한 주제가 몇 번이고 다시 등장하며 곡을 마무리로 이끈다. 돌림노래에서 같은 후렴이 계속 돌아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