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areads.musicClassical

Richard Wagner

리하르트 바그너 (1813–1883)

오페라와 연극, 시와 음악을 하나로 녹여 새로운 무대 예술을 지으려 한 건축가였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독일 라이프치히 출생아버지 요절계부 가이어2. 방랑빚과 도피파리 궁핍미나와 결혼3. 비상드레스덴 성공탄호이저 작곡1849년 혁명4. 망명취리히 유랑마틸데 베젠동크트리스탄 구상5. 정점루트비히 2세 후원코지마와 재혼바이로이트 극장6. 말년파르지팔 완성니체와 결별베네치아 죽음바그너1813–1883빚과 혁명, 사랑과 신화를 가로지르며 악극이라…
삶의 여정 🧭🗺️
N스위스독일라이프치히1813드레스덴1814–1849취리히1849–1858뮌헨1864–1865바이로이트1872–1883베네치아1883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루트비히 가이어

    어머니의 재혼 상대로 어린 리하르트를 아들처럼 돌본 계부다.

  • 우정프란츠 리스트

    망명 시절 그를 돕고 작품을 지휘해 준 벗으로, 훗날 딸 코지마를 통해 사돈이 되었다.

  • 영향마틸데 베젠동크

    후원자의 아내로, 이룰 수 없는 사랑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낳았다.

  • 후원루트비히 2세

    바이에른 국왕으로서 빚을 갚아주고 바이로이트 극장 건립을 지원했다.

  • 가족코지마 바그너

    리스트의 딸로 두 번째 아내가 되어 바이로이트 극장을 함께 일구었다.

  • 우정프리드리히 니체

    한때 열렬히 그를 따르던 철학자였으나 파르지팔 이후 돌아섰다.

YouTube에서 8곡 이어 듣기 ↗

I. 라이프치히의 유복자 · 1813–1830 (0–17세)

(출생) 1813년 5월, 작센 왕국(오늘날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카를 프리드리히 바그너는 경찰 서기였는데, 리하르트가 태어난 지 반 년도 지나지 않아 나폴레옹 전쟁의 혼란 속에서 번진 열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홉 남매 가운데 막내였던 그는 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자랐다. (계부) 어머니 요한나는 이듬해 배우이자 화가인 루트비히 가이어와 재혼했다. 가이어는 리하르트를 제 아들처럼 아꼈고, 가족은 그를 따라 드레스덴으로 거처를 옮겼다. 가이어가 리하르트의 생부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후대 전기 작가들 사이에서 끊이지 않았지만, 이를 확정할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가이어는 리하르트가 여덞 살 되던 해 결핵으로 죽었고, 소년은 또 한 번 아버지를 잃었다. (연극) 드레스덴의 극장을 드나들며 자란 그는 음악보다 먼저 무대의 분장과 소품, 희곡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리스 신화와 셰익스피어를 탐독했고, 직접 비극을 써보기도 했다. 음악은 한참 뒤에야, 거의 자습하듯 그에게 다가왔다. (전환) 열다섯 무렵 베토벤의 교향곡을 처음 듣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써 둔 비극에 어울리는 음악을 스스로 짓겠다는 다짐으로 화성학과 작곡을 독학하기 시작했다. 라이프치히의 니콜라이 학교와 토마스 학교를 오가면서도 정규 수업보다는 악보를 베끼고 분석하는 방식으로 혼자 길을 텄다.

II. 빚과 도피 · 1830–1839 (17–26세)

(입문) 1831년 라이프치히 대학에 이름을 올렸지만 학업보다 음악에 몰두했다. 테오도어 바인리히에게 화성법을 배우며 짧은 기간에 교향곡과 서곡을 습작처럼 써냈고, 1833년 뷔르츠부르크에서 합창 지휘 자리를 얻으며 첫 오페라 '요정들'을 작곡했다. (유랑) 이후 마그데부르크, 쾨니히스베르크, 리가의 소규모 극장을 떠돌며 지휘자로 일했다. 봉급은 늘 적었고 극장은 번번이 문을 닫거나 그를 내보냈다. 빚은 가는 곳마다 쌓였고, 채권자를 피해 도시를 옮기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결혼) 1836년 마그데부르크 극장의 배우 미나 플라너와 결혼했다. 미나는 현실적이고 생활력 있는 여성으로, 들쭉날쭉한 남편의 수입과 거듭되는 이사를 오래 견뎌냈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었고, 애정과 다툼이 뒤섞인 결혼 생활이 수십 년 이어졌다. (도피) 1839년 리가에서도 빚더미에 올라앉자 여권도 없이 국경을 몰래 넘어 배를 타고 파리로 향했다. 항해 중 만난 거센 폭풍과 노르웨이 해안의 좁은 협만 풍경은 훗날 '방황하는 홀란드인'의 음악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III. 파리의 궁핍과 드레스덴의 영광 · 1839–1849 (26–36세)

(궁핍) 파리에서는 아무 인맥도 없이 삼 년을 버텼다. 생계를 위해 다른 작곡가의 오페라를 편곡하고 악보를 필사하는 일까지 떠맡았으며, 한때는 빚 때문에 갇힌 적도 있었다. 이 시절의 궁핍은 평생 쓴맛으로 남았다. (리엔치) 궁핍 속에서도 대작 오페라 '리엔치'와 '방황하는 홀란드인'을 완성했다. 리가에서 겪은 폭풍의 기억은 홀란드인의 음악 속 성난 바다와 저주받은 선장의 이야기로 옮겨졌다. 두 작품 모두 파리에서는 외면당했지만, 드레스덴에서 받아줄 길이 열렸다. (성공) 1842년 '리엔치'가 드레스덴에서 초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듬해 작센 왕국 궁정 카펠마이스터로 임명되었다. 안정된 봉급을 받으며 '탄호이저'와 '로엔그린'을 잇따라 작곡했다. 이 시기 멘델스존과도 만났지만 가까운 사이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혁명) 안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혁명가 바쿠닌 등과 가까이 지내며 1849년 드레스덴 봉기에 가담했고, 봉기가 실패하자 수배자가 되어 스위스로 몸을 피했다. 궁정 카펠마이스터의 자리와 명성을 한순간에 잃은 채였다.

♪방황하는 홀란드인 (Der fliegende Holländer, WWV 63)1841 (28세)실황 hr-Sinfonieorchester · Marek Janowski 지휘

리가에서 겪은 폭풍의 기억과 저주받은 뱃사람의 운명이 겹쳐진 작품으로, 파리 궁핍 시절 완성되었다.

  • 서곡 도입부에서 호른과 현악기가 만들어내는 거친 바다 음형은 폭풍에 휘말린 배를 그대로 그려낸다.
  • 1막에서 홀란드인이 부르는 독백은 저주에 묶인 인물의 절망을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드러낸다.
  • 여주인공 젠타의 발라드 선율은 후반부 구원의 순간에 오케스트라 전체로 다시 울려 퍼진다 — 특정 인물이나 감정을 상징하는 짧은 선율(라이트모티프)의 초기 형태다.
  • 노르웨이 선원들의 합창과 유령선 선원들의 노래가 교차하는 장면은 산 자와 죽은 자의 대비를 소리로 보여준다.
YouTube에서 듣기 ↗
♪탄호이저 (Tannhäuser, WWV 70)1845 (32세)실황 hr-Sinfonieorchester · Alain Altinoglu 지휘

드레스덴 카펠마이스터 시절, 세속적 사랑과 종교적 구원 사이에서 갈등하는 기사의 이야기에 자신의 처지를 담았다.

  • 서곡 전반부의 느리고 장중한 선율은 순례자들의 합창 주제로, 후반부에서는 금관악기로 웅장하게 확장된다.
  • 서곡 중반 현악기가 빠르고 들뜬 리듬으로 바뀌는 대목은 세속적 쾌락의 세계인 비너스의 동굴을 묘사한다.
  • 3막 '저녁별에게 바치는 노래'는 낮은 현의 잔잔한 반주 위에 바리톤이 부르는 대목으로, 오페라 애호가들 사이에서 가장 사랑받는 독창곡 중 하나다.
YouTube에서 듣기 ↗
♪로엔그린 (Lohengrin, WWV 75)1848 (35세)지휘 János Kovács · Hungarian Nat. Phil.

궁정 카펠마이스터로서 안정을 누리던 시절에 쓴 작품으로, 오늘날 결혼식 음악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선율을 남겼다.

  • 3막 전주곡의 당당한 금관 리듬은 혼례 잔치의 들뜬 분위기를 그리고, 곧이어 나오는 '혼례의 합창'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 결혼식에서 신부 입장 음악으로 쓰인다.
  • 1막 전주곡은 현악기가 아주 높은 음에서 아주 조용하게 시작해 점차 커지는데, 성배의 신비로운 빛이 다가오는 느낌을 준다.
  • 로엔그린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말라고 요구하는 장면의 선율이 이후 정체가 드러날 때 전혀 다른 분위기로 되돌아와 극적 대비를 만든다.
YouTube에서 듣기 ↗

IV. 취리히 망명과 트리스탄 · 1849–1864 (36–51세)

(망명) 취리히에 정착한 그는 수년간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생계는 막막했지만 오히려 이 시기에 '오페라와 드라마', '예술과 혁명' 같은 이론서를 쏟아내며 음악과 극을 하나로 합친 새로운 무대 예술에 대한 구상을 다졌다. (리스트) 이 무렵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와의 우정이 깊어졌다. 리스트는 바이마르에서 그의 작품을 지휘해 주었고, 궁핍할 때마다 돈을 보내거나 악보 출판을 도왔다. 두 사람은 편지로 음악과 철학을 주고받았으며, 이 우정은 훗날 가족 관계로까지 이어진다. (반감) 1850년에는 '음악에서의 유대성'이라는 글을 발표해 멘델스존 등 유대계 작곡가들을 비방했다. 이 글에 담긴 반유대주의는 그의 사상 가운데 가장 어두운 대목으로, 후대까지 두고두고 논쟁거리가 되었다. (사랑) 후원자 오토 베젠동크의 아내 마틸데와 가까워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빠졌다. 미나와의 결혼은 이 일로 완전히 금이 갔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갈망과 체념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대본과 음악에 그대로 흘러들었다. (반지) 동시에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한 '니벨룽의 반지' 4부작 대본을 완성하고 작곡에 들어갔다. 너무 거대한 구상 앞에서 한동안 작업을 멈추고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먼저 매달렸는데, 이 선택이 그의 화성어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 WWV 90)1859 (46세)실황 hr-Sinfonieorchester · Andrés Orozco-Estrada 지휘

유부녀 마틸데 베젠동크를 향한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낳은 작품으로, 서양음악사의 화성을 뒤바꾼 전주곡으로 시작한다.

  • 전주곡 첫 화음, 흔히 '트리스탄 화음'이라 불리는 이 화음은 어느 쪽으로도 쉽게 풀리지 않고 계속 미끄러지며, 채워지지 않는 갈망을 소리로 만든 것으로 음악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분석된 화음 중 하나다.
  • 2막의 밤의 사랑 장면은 두 연인의 선율이 서로 얽히며 점점 느려지다가 외부의 방해로 갑자기 끊기는데, 이 단절이 두 사람의 운명을 미리 보여준다.
  • 마지막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은 전주곡의 풀리지 않은 화음이 비로소 완전한 화음으로 해결되는 순간으로,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쌓아 올리는 낮은 음에서 높은 음으로 차례로 오르는(상행) 긴 선율이 절정을 이룬다.
YouTube에서 듣기 ↗

V. 루트비히 2세와 바이로이트 · 1864–1876 (51–63세)

(구원) 빚에 쫓겨 거의 도망자 신세이던 1864년, 열여덮 살의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가 그를 뮌헨으로 불러들여 빚을 갚아주고 생활비를 지원했다. 오랜 궁핍 끝에 찾아온 구원이었다. (코지마) 뮌헨에서 그는 리스트의 딸이자 지휘자 한스 폰 뷜로의 아내인 코지마와 사랑에 빠졌다. 1866년 미나가 세상을 떠난 뒤 코지마는 뷜로와 이혼하고 그의 곁에 남았다. 두 사람은 1870년 결혼했고 이졸데, 에바, 지크프리트 세 자녀를 두었다. 아들 지크프리트는 훗날 바이로이트 극장을 물려받아 지휘자 겸 작곡가로 활동했다. (목가) 1870년 아내 코지마의 생일이자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 아침, 전해 태어난 아들 지크프리트를 기념해 작곡한 작은 실내악곡을 집 계단에서 연주하게 했다. 이 곡이 '지크프리트 목가'로, 평생 거대한 무대 작품에 매달렸던 그가 가족만을 위해 조용히 써 내려간 드문 곡이었다. (극장) 루트비히 2세의 지속적인 후원 아래 바이로이트에 전용 극장을 짓는 꿈을 실현했다. 오케스트라를 무대 아래 깊이 숨긴 독특한 구조는 소리를 신비롭게 뒤섞어 무대에 집중하게 만들려는 오랜 구상이었다. 1876년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전체가 이 극장에서 처음으로 완주되었고, 유럽 각지의 음악가와 평론가들이 몰려들었다. (명가수) 반지 연작 사이사이 비교적 가볍고 따뜻한 희극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도 이 시기에 완성했다. 전통과 새로움 사이에서 갈등하는 장인 가수의 이야기는 당시 자신이 처한 예술적 위치에 대한 생각과 겹쳐 읽히기도 한다.

♪니벨룽의 반지 - 발퀴레의 기행 (Die Walküre, WWV 86B)1856 (43세)연주 Metropolitan Opera Orchestra

북유럽 신화를 빌려 쓴 4부작 중 한 대목으로, 바이로이트 극장을 짓게 한 거대한 구상의 핵심이다.

  • 금관악기들이 외치듯 연주하는 발퀴레 주제는 전사자의 영혼을 거두러 말을 타고 하늘을 가르는 여전사들을 묘사하며, 영화 예고편 음악에도 자주 쓰여 가장 널리 알려진 바그너 선율이 되었다.
  • 현악기의 빠르게 끊어지는 리듬은 말발굽 소리를 흉내 낸 것으로, 지휘자마다 이 리듬을 얼마나 거칠게 혹은 절제해서 끌고 가는지가 해석의 갈림길이 된다.
  • 여덟 명의 발퀴레들이 차례로 외치는 고음 구간은 성악가들에게 악명 높은 대목으로, 긴 공연 내내 체력을 아껴야 부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YouTube에서 듣기 ↗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WWV 96)1867 (54세)실황 hr-Sinfonieorchester · Alain Altinoglu 지휘

반지 연작 사이 숨 돌리듯 쓴 희극으로, 전통과 새로움 사이의 갈등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담겼다.

  • 서곡 도입부의 당당한 행진 주제는 중세 장인 조합의 위엄을 그린다.
  • 중간에 여러 성부가 동시에 서로 다른 주제를 쌓아 올리는 대목은 여러 선율을 동시에 짜 맞추는 기법(대위법)의 정교함을 보여준다.
  • 트럼펫과 목관이 주제를 서로 주고받으며 쌓이는 후반부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다른 노래를 부르다가 결국 하나로 맞아 들어가는 합주를 듣는 느낌을 준다.
YouTube에서 듣기 ↗
♪지크프리트 목가 (Siegfried Idyll, WWV 103)1870 (57세)실황 hr-Sinfonieorchester · Alain Altinoglu 지휘

아내 코지마의 생일 아침, 가족만을 위해 몰래 준비해 계단에서 연주하게 한 사적인 곡이다.

  • 현악기가 조용히 흔들어 재우는 듯한 선율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요람 곁에서 흥얼거리는 자장가 같은 분위기를 낸다.
  • 중간에 호른이 부르는 선율은 반지 연작 속 지크프리트의 음악과 이어져 있어, 거대한 무대 음악과 사적인 가정의 순간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보여준다.
  • 오페라 극장이 아니라 실내악 규모의 작은 편성으로 쓰인 몇 안 되는 바그너 작품이라, 다른 음악과는 사뭇 다른 다정한 결을 느낄 수 있다.
YouTube에서 듣기 ↗

VI. 파르지팔과 베네치아의 죽음 · 1876–1883 (63–70세)

(갈등) 바이로이트의 성공 이후에도 극장 운영 자금은 늘 모자랐다. 1876년 축제에서 가까웠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와의 우정은 이 무렵 돌이킬 수 없이 금이 갔다. 니체는 '파르지팔'에 짙게 깔린 기독교적 구원의 색채를 자신에 대한 배신처럼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다시 가까워지지 못했다. (파르지팔) 성배 전설을 바탕으로 한 '파르지팔'을 마지막 악극으로 완성했다. 이 작품이 오직 바이로이트 극장에서만 상연되어야 한다고 고집했고, 1882년 초연을 지켜보았다. 종교적 구원과 연민을 다룬 이 작품은 혁명가였던 젊은 시절과는 다른 자리에 선 노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건강) 오랜 심장 질환으로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요양을 위해 가족과 함께 베네치아의 벤드라민 저택에 머물렀고, 그곳에서도 작곡과 지휘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았다. (죽음) 1883년 2월, 베네치아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코지마는 그의 시신 곁에서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유해는 바이로이트의 자택 정원으로 옮겨져 묻혔고, 그가 세운 극장은 이후에도 해마다 그의 음악만을 올리는 축제를 이어갔다.

♪파르지팔 (Parsifal, WWV 111)1882 (69세)실황 hr-Sinfonieorchester · Jérémie Rhorer 지휘

생애 마지막 악극으로, 성배 전설을 빌려 구원과 연민을 이야기하며 혁명가였던 청년기와는 다른 자리에 선 노년을 보여준다.

  • 전주곡 첫머리, 현악기가 아주 낮고 느리게 그려내는 선율은 성찬을 상징하는 주제로, 작곡가 자신이 '사랑, 믿음, 소망'을 담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 금관이 느리게 쌓아올리는 화음은 성배 기사단의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공연장 전체를 가라앉은 침묵 속으로 끌어들인다.
  • 바그너가 이 작품만은 바이로이트 극장 밖에서 공연되지 않기를 바랐을 만큼 종교적 색채가 짙어, 다른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경건한 분위기로 듣는 경우가 많다.
YouTube에서 듣기 ↗

덜 알려진 이야기

바그너는 몸에 닿는 천의 감촉에 유난히 민감했다. 빈의 양장점에 보낸 편지들에는 분홍빛이나 연보랏빛 실크로 지은 실내복과 모자를 주문하며 색과 질감을 세세히 지시한 대목이 남아 있다. 이 편지들은 그가 살아 있던 1877년 빈의 신문에 조롱 섞인 해설과 함께 실려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는 평생 여러 마리의 개를 길렀다. 리가 시절의 뉴펀들랜드종 '로버'와 드레스덴·취리히 시절의 '페프스'는 자서전 '나의 생애'에도 등장하며, 작곡으로 바쁜 와중에도 개들의 죽음을 깊이 슬퍼한 기록이 남아 있다. 말년에는 채식과 동물 보호에 깊은 관심을 보여, 1879년에는 생체 해부 반대를 주장하는 글을 발표했다. 혁명가로 시작해 반지 연작으로 신들의 종말을 그렸던 그가, 노년에는 동물의 고통에 대한 연민을 글로 남긴 것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대목이다. 바이로이트 극장의 숨은 오케스트라 구조는 혁신적이었지만 연주자들에게는 고역이었다. 무대 아래 깊이 가려진 좁은 공간은 통풍이 되지 않아 한여름 공연에서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더위에 쓰러지는 일도 있었다고 동시대 연주자들의 회고에 전해진다. 바그너가 추구한 신비로운 음향의 대가를 연주자들이 치른 셈이었다.

용어 노트 📚🔎

라이트모티프

(말뜻) 독일어로 이끄는(leit) 동기(motiv)라는 뜻이다. 특정 인물이나 감정, 사물을 상징하는 짧은 음악 조각을 가리키는 이름에 그 역할이 이미 담겨 있다. (음악에서) 바그너는 반지, 검, 사랑, 운명 같은 것마다 고유한 짧은 선율을 붙이고, 그 대상이 등장하거나 암시될 때마다 오케스트라에서 그 선율을 다시 울리게 했다. 영화에서 특정 인물이 나올 때마다 같은 배경음악이 깔리는 것과 비슷하다 — 음악만 듣고도 누가, 혹은 무엇이 다가오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다른 데서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반복되는 상징이나 문구를 라이트모티프라 부르기도 한다.

무한선율

(말뜻) 끝나지 않는 선율이라는 말 그대로다. (음악에서) 또렷한 종결점 없이 선율이 한 악구에서 다음 악구로 끊임없이 흘러가며, 화음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다음 긴장으로 미끄러져 넘어간다.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는 느낌과 비슷하다 — 한 문장이 끝나는 듯하다가 곧바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 버리는 식이다.

반음계

(말뜻) 색깔(chroma)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왔다. 온음계의 일곱 음 사이사이에 있는 반음들을 더해 색을 입힌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음악에서) 피아노의 흰 건반만이 아니라 검은 건반까지 촘촘히 한 칸씩 오르내리는 음들을 쓰는 것을 말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화음은 어디로 가야 할지 쉽게 정해지지 않는 반음계적 진행으로 가득해, 듣는 사람에게 해소되지 않는 갈망의 느낌을 준다.

악극

(말뜻) 음악(樂)과 극(劇)이 합쳐진 말 그대로, 노래와 극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녹아든 작품을 뜻한다. (음악에서) 전통 오페라는 아리아와 합창, 대화 장면이 번갈아 나오며 음악이 멈추는 지점이 뚜렷했지만, 바그너의 악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이 끊이지 않고 흐르며 극의 모든 순간을 떠받친다. 학교 연극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과 대사만 하는 장면이 또렷이 나뉘는 것이 오페라라면, 악극은 대사마저 노래처럼 이어지는 연극이라 할 수 있다.

종합예술

(말뜻) 독일어로 전체(gesamt) 예술(kunst) 작품(werk), 즉 모든 예술을 하나로 합친 작품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바그너는 음악, 시, 연기, 무대미술, 조명까지 어느 하나도 다른 것에 종속되지 않고 동등하게 어우러져야 한다고 믿었다. 미술, 체육, 음악 시간이 따로따로가 아니라 한 무대 위에서 동시에 평가받는 발표회를 떠올리면 가깝다.

서곡

(말뜻) 서곡(序曲)은 순서를 여는(序) 곡(曲)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오페라나 극이 시작되기 전에 오케스트라만으로 연주되는 곡으로, 흔히 그날 들을 주요 선율을 미리 암시한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제목과 함께 깔리는 음악이 그날 볼 이야기의 분위기를 미리 알려주는 것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