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ctor Berlioz
"시간은 위대한 스승이다. 다만 그 모든 제자를 결국 죽인다는 것이 문제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루이 베를리오즈
의사가 되길 바랐지만 정작 플루트를 손에 쥐여 준 아버지였다.
- 스승장프랑수아 르쉬외르
콩세르바투아르에서 작곡을 가르치며 정식 음악 교육의 길을 열어 주었다.
- 영향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
단순한 선율로 극적 진실을 담아내는 방식이 평생의 이상이 되었다.
- 가족해리엇 스미드슨
짝사랑 끝에 아내가 되었으나 결혼 생활은 궁핍과 병고로 점차 무너졌다.
- 후원니콜로 파가니니
곡을 청탁하고도 연주를 거절했지만, 훗날 거액을 보내 로미오와 줄리엣 완성을 도왔다.
- 우정프란츠 리스트
환상교향곡을 편곡해 유럽에 알리고, 바그너와의 만남을 주선한 든든한 동지였다.
I. 코트생앙드레의 소년 · 1803–1821 (0–18세)
(출생) 1803년 12월, 프랑스 이제르 지방의 소도시 코트생앙드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루이 베를리오즈는 이 지역에서 이름난 의사였고, 어머니 마리안투아네트 조제핀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육 남매 가운데 성인이 된 이는 그와 두 누이 낭시, 아델뿐이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바라며 라틴어와 자연과학을 직접 가르쳤지만, 정작 아들에게 플루트를 쥐여 주고 화성학 기초 교본을 건넨 것도 그 자신이었다. 시골에는 변변한 음악 교사가 없어 소년은 독학으로 기타를 익혔고, 정규 피아노 교육은 평생 받지 못했다. (피아노 없이) 이 결핍은 오히려 그를 남다른 작곡가로 만들었다. 건반 앞에서 화음을 더듬는 대신 머릿속에서 관현악을 통째로 그리는 습관이 이때부터 굳어졌고, 훗날 오케스트라 색채에 대한 예민한 감각으로 이어졌다. (첫사랑) 열두 살 무렵 이웃한 손님의 조카 에스텔 뒤부프를 보고 말도 걸지 못한 채 앓았다. 이 짝사랑은 수십 년 뒤 노년에 다시 그를 찾아와 편지를 쓰게 만들 만큼 깊은 흔적을 남겼다.
II. 파리, 의학에서 음악으로 · 1821–1826 (18–23세)
(상경) 1821년 의학을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파리로 갔다. 해부실습실의 시신 앞에서 구역질을 느끼며 의학에 정을 붙이지 못했고, 대신 오페라극장과 콩세르바투아르 도서관을 드나들며 악보를 탐독했다. (글루크) 이미 죽은 지 오래인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의 오페라들이 그에게는 살아있는 계시였다. 단순한 선율에 극적 진실을 담아내는 방식에 매료되어, 이후 평생 글루크를 스승처럼 인용했다. (결별) 1824년 의사 시험 응시를 거부하고 음악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하자 부모는 생활비를 끊었다. 성당 성가대와 잡극장 합창단에서 노래해 끼니를 잇던 시절이었고, 이 궁핍은 평생 그를 관통하는 경제적 불안의 원형이 되었다. (스승) 작곡가 장프랑수아 르쉬외르에게 사사하며 콩세르바투아르에 정식 입학했다. 원장 케루비니와는 여성 전용 열람석에 잘못 들어갔다가 쫓겨나는 소동을 겪는 등 사사건건 부딪쳤는데, 이 반골 기질은 훗날 평단과의 마찰로도 이어졌다.
III. 오필리아와 로마대상 · 1827–1830 (24–27세)
(오필리아) 1827년 파리에서 셰익스피어 극단의 아일랜드 배우 해리엇 스미드슨이 오필리아와 줄리엣을 연기하는 것을 보고 걷잡을 수 없이 사로잡혔다. 영어를 몰라 대사조차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존재만으로 넋을 잃었다. (편지) 편지를 보내고 음악회를 열어 이름을 알리려 했으나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좌절될수록 오히려 창작열로 바뀌어, 사랑하는 여인의 환영에 시달리는 예술가를 그린 교향곡의 씨앗이 되었다. (로마상) 콩세르바투아르가 수여하는 로마대상에 세 번 낙방한 끝에 1830년 칸타타 사르다나팔로스로 마침내 수상했다. 이 상은 국비로 로마에 유학할 자격을 주는 동시에 프랑스 음악계의 공인을 뜻했다. (환상) 같은 해 완성한 환상교향곡에서 사랑하는 여인은 곡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선율인 고정악상으로 형상화되었다. 실연의 고통과 마약에 취한 예술가의 환각을 표제로 내세운 이 곡은 이전까지 없던 자전적 교향곡이었다.
해리엇 스미드슨을 향한 좌절된 짝사랑이 통째로 관현악으로 옮겨진, 최초의 본격적 자전적 교향곡이다.
- 1악장 도입부에 등장하는 선율은 사랑하는 여인을 상징하는 고정악상(이데 픽스)으로, 이후 다섯 악장 내내 형태를 바꾸며 반복된다.
- 2악장 무도회 장면에서는 왈츠 리듬 위에 하프 두 대가 화음을 한 음씩 펼쳐 흐르게 하는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화려함을 그린다.
- 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은 팀파니와 저음 금관이 발소리처럼 다가오다가, 끝에서 오케스트라 전체가 순간 끊기며 목이 떨어지는 순간을 묘사한다.
- 5악장 '마녀들의 밤의 꿈'에서는 종소리와 함께 죽음을 노래하는 옛 성가 선율(진노의 날)이 저음 금관에 왜곡되어 등장한다.
- 연주자들 사이에서는 1악장 서주부를 얼마나 자유롭게 늘여 연주하느냐가 지휘자의 개성을 가르는 대목으로 꼽힌다.
IV. 배신과 결혼 · 1830–1833 (27–30세)
(약혼) 로마로 떠나기 전 피아니스트 카미유 모크와 약혼했다. 로마 체류 중 그녀가 피아노 제작자 플레엘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자 격분해 여장을 하고 파리로 돌아가 세 사람을 살해한 뒤 자결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포기) 니스에 이르러서야 마음을 돌려 계획을 접었다. 이 사건은 그의 격정적 기질을 보여주는 동시에, 스스로도 훗날 회고록에서 부끄럽게 여긴 일화였다. (귀환) 1832년 파리로 돌아와 환상교향곡 연주회를 열었는데, 마침 그 자리에 해리엇 스미드슨이 있었다. 곡이 자신을 그린 것임을 알게 된 그녀와 이듬해 마침내 만남이 이루어졌다. (결혼) 1833년 두 사람은 결혼했다. 양가 모두 반대했고 살림은 처음부터 빚투성이였지만, 오랜 짝사랑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당대 파리 예술계의 화제였다. 이듬해 아들 루이가 태어났다.
파가니니의 청탁으로 시작되었으나 정작 그가 연주를 거절했던 곡으로, 훗날 두 사람의 관계를 반전시킨 작품이 된다.
- 독주 비올라가 1악장 도입에서 조용히 등장해 곡 전체를 방랑하듯 떠도는 '해럴드'의 주제를 노래하는데, 협주곡처럼 화려하게 두드러지기보다 오케스트라 속을 관조하듯 지나간다.
- 파가니니가 이 독주부를 너무 수수하다며 거절했다는 일화 때문에, '기교를 감춘 기교'를 요구하는 곡으로 회자된다.
- 2악장 '저녁 기도를 노래하는 순례자들의 행진'에서는 낮은 현이 발걸음처럼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가운데 비올라 선율이 그 위를 떠다닌다.
- 3악장 세레나데에서는 오보에와 잉글리시 호른이 이탈리아 산악 지방의 민속 춤곡 선율을 주고받는다.
- 4악장에서는 앞선 악장들의 주제가 조각조각 되돌아왔다가 하나씩 지워지며, 비올라마저 물러난 뒤 산적들의 광란을 그린 관현악 총주로 곡이 끝난다.
V. 관현악의 야심 · 1834–1842 (31–39세)
(주문) 명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가 자신이 새로 얻은 비올라를 위한 곡을 청탁하며 1834년 이탈리아의 해럴드가 탄생했다. 정작 파가니니는 독주부가 너무 수수하다며 연주를 거절했지만, 4년 뒤 이 곡을 듣고 나서는 그의 재능에 경의를 표하며 거액을 보내왔다. (레퀴엠) 1837년 정부 위촉으로 죽은 자를 위한 대미사를 작곡했다. 1830년 7월 혁명 희생자를 기리는 이 곡에서 무대 밖 금관 악단 넷과 팀파니 열여섯 대를 동원해 최후의 심판을 소리로 압도하듯 그려냈다. (실패) 1838년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가 초연에서 참담하게 실패했다. 상심이 컸지만 파가니니가 보낸 후원금 덕분에 로미오와 줄리엣 교향곡을 완성할 수 있었으니, 좌절과 은혜가 맞물려 대작을 낳은 셈이었다. (생계) 신문 데바에 음악평을 쓰며 생계를 꾸렸다. 창작할 시간을 갉아먹는 이 일을 스스로 고역이라 불렀지만 그만두지 못했고, 날카로운 필봉으로 조아키노 로시니류의 손쉬운 인기 음악을 거듭 비판해 적도 많이 만들었다. (균열) 해리엇의 배우 경력이 기울고 술에 의지하면서 부부 사이도 벌어졌다. 1841년 무렵부터 젊은 가수 마리 레시오와 가까워졌는데, 이는 이미 삐걱대던 결혼 생활에 또 다른 그림자를 드리웠다.
전사자를 기리는 국가 위촉작이자, 생계를 위해 평론을 쓰던 시절 그가 쏟아부을 수 있었던 가장 큰 편성의 작품이다.
- '진노의 날'에서 무대 네 귀퉁이에 배치된 금관 악단이 사방에서 최후의 심판을 알리듯 울려 퍼지는데, 실연에서 가장 압도적인 순간으로 꼽힌다.
- 팀파니 여러 조를 동시에 사용해 천둥처럼 낮게 울리는 대목은 연주 인원이 많기로 악명 높은 이 곡의 상징적 장면이다.
- '눈물의 날'에서는 합창이 탄식하듯 오르내리는 선율을 반복하며 슬픔을 점차 쌓아 올린다.
- '상투스'에서는 거대한 편성과 대조적으로 테너 독창과 여성 합창만이 맑고 가늘게 울려 앞선 격정과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벤베누토 첼리니의 실패 직후 파가니니의 후원금으로 완성된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에 대한 그의 오랜 경도가 관현악으로 결실을 맺었다.
- '사랑의 장면'은 밤의 정원을 배경으로 현악기가 낮고 은근하게 노래하는 선율로 시작해, 오페라의 아리아처럼 점점 고조된다.
- 합창과 독창이 등장하지만 정작 로미오와 줄리엣 두 사람의 대사는 없다 — 두 연인의 감정이 오로지 관현악으로만 표현되는 점이 자주 언급된다.
- '마브 여왕의 스케르초'에서는 현과 목관이 나비 날갯짓처럼 가볍게 스치듯 연주해 꿈의 요정을 그려낸다.
- 종결부에서는 캐퓰릿가와 몬터규가의 대립을 나타내는 두 개의 상반된 주제가 마침내 하나로 합쳐지며 화해를 이룬다.
결혼 생활이 삐걱대고 마리 레시오와 가까워지던 시기에 쓴 가곡으로, 사랑과 상실을 오가는 정서가 훗날 그의 삶과 겹쳐 읽힌다.
- 여섯 곡의 가곡 모음으로, 시인 테오필 고티에의 시에 곡을 붙였으며 사랑의 설렘부터 상실의 슬픔까지 정서가 곡마다 뚜렷이 바뀐다.
- 첫 곡 '빌라넬'은 봄날 연인과 숲을 거니는 경쾌한 리듬으로 시작하지만, 넷째 곡 '부재'에 이르면 비슷한 박자가 애원하듯 느려진다.
- 원래 피아노 반주로 쓰였다가 1856년 관현악으로 편곡되었는데, 이 시기가 재혼 무렵과 겹쳐 후반부 곡들의 애수가 개인사와 겹쳐 읽히곤 한다.
- 여섯 곡을 서로 다른 성부(소프라노·메조소프라노·테너 등)에 배정해 부르는 관행이 있어, 연주 때마다 가수 구성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도 특징이다.
VI. 낯선 땅에서의 갈채 · 1843–1854 (40–51세)
(순회) 1843년 무렵부터 독일과 러시아를 오가며 지휘자로 활동했다. 프랑스에서는 냉담했던 청중이 라이프치히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열광했고, 이 낙차는 평생 그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리스트)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는 그의 가장 든든한 동지였다. 환상교향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해 유럽 전역에 알렸고, 젊은 바그너는 파리 시절 그의 음악회에 드나들며 존경과 경계가 뒤섞인 시선을 보냈다. (파우스트) 1846년 파우스트의 겁벌을 자비로 무대에 올렸으나 관객이 거의 들지 않아 큰 빚을 졌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얻은 이 극적 오라토리오는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 중 하나였음에도 당대에는 철저히 외면받았다. (이별과 죽음) 별거 상태이던 해리엇은 1848년 이후 여러 차례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었다. 그럼에도 죽을 때까지 그녀를 부양하며 자주 찾아갔고, 1854년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깊이 애도했다. (재혼) 같은 해 마리 레시오와 재혼했다. 오랜 연인 관계를 뒤늦게 공식화한 결합이었지만 파리 음악계는 이를 곱지 않게 바라보았다.
자비로 무대에 올렸다가 흥행에 실패해 큰 빚을 진 작품으로, 애착과 좌절이 가장 극단적으로 맞물린 사례다.
- '헝가리 행진곡'은 원래 극과 무관한 헝가리 민요였으나 파우스트가 헝가리 평원을 지나는 장면에 끼워 넣어, 헝가리 초연에서 청중을 열광시켰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 '도깨비불의 미뉴에트'에서는 목관이 가볍게 점을 찍듯 짧게 끊어 튀는 리듬(스타카토)으로 도깨비불이 어른거리는 모습을 그린다.
- 마르그리트가 부르는 '로만스'는 물레를 돌리는 듯한 반주 위에서 애타는 그리움을 노래하는데, 슈베르트의 가곡과 종종 비교된다.
- 마지막 파우스트의 지옥행 장면에서는 저음 금관과 합창이 뒤섞여 아우성을 이루다가, 급작스러운 정적 뒤에 지옥의 언어로 된 합창이 등장해 섬뜩함을 준다.
VII. 트로이 사람들과 이별 · 1854–1869 (51–66세)
(대작) 1856년부터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 기반한 대작 오페라 트로이 사람들을 쓰기 시작했다. 카르타고 여왕 디도의 사랑과 파멸을 그린 이 작품에 평생의 야심을 쏟아부었지만, 규모가 너무 커 파리 오페라극장은 상연을 거부했다. (상연) 1863년 절반에 해당하는 카르타고의 트로이 사람들만 소극장에서 겨우 무대에 올랐다. 완전한 형태의 공연은 그의 생전에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들) 아들 루이는 상선 선장이 되어 오래 바다에 나가 있었다. 부자는 편지로 애틋한 정을 나누었으나 1867년 루이가 아바나에서 황열병으로 급사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상실) 이미 1862년 두 번째 아내 마리 레시오도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였다. 잇단 상실 속에 건강도 무너져, 신경통과 위장병에 시달리며 창작력을 잃어갔다. (죽음) 1869년 3월 파리에서 눈을 감았다. 조국에서는 끝내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는 씁쓸함을 안은 채였고, 몽마르트르 묘지에 두 아내와 나란히 묻혔다.
평생의 야심을 쏟은 최대 규모의 오페라로, 완전한 형태의 상연은 끝내 생전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 2부 '카르타고의 트로이 사람들'에서 디도 여왕과 에네아스가 함께 부르는 이중창은 달빛 아래 두 연인의 사랑을 그린 대목으로 널리 사랑받는다.
- 5막 디도의 마지막 아리아에서는 낮은 현이 무겁게 가라앉으며 여왕의 절망과 자결을 예고한다.
- 1부 '트로이의 함락'에서 목마가 성 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은 행진 리듬 위에 불길한 예감을 담은 화성이 겹쳐 긴장을 고조시킨다.
- 총 다섯 시간에 이르는 방대한 길이 때문에 완전한 형태로 상연되는 일이 드물어, 완주 공연 실황을 접하는 것 자체가 특별한 경험으로 꼽힌다.
용어 노트 📚🔎
고정악상(이데 픽스)
한 인물이나 감정을 상징해 곡 전체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선율. 베를리오즈가 환상교향곡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려고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아르페지오
화음을 한 음씩 차례로 펼쳐서 연주하는 주법. 하프나 피아노에서 흐르는 듯한 느낌을 낼 때 자주 쓰인다.
진노의 날(디에스 이레)
최후의 심판을 노래하는 옛 라틴어 성가 선율. 여러 작곡가가 죽음이나 공포를 나타낼 때 인용해왔다.
로마대상
프랑스 국가가 수여하던 예술 유학 장학 제도. 수상자는 국비로 로마에 머물며 창작에 전념할 수 있었다.
표제음악
이야기나 정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려는 의도를 담은 음악. 형식미만을 추구하는 절대음악과 흔히 대비된다.
관현악법
어떤 악기를 어떻게 조합해 소리를 만들지 설계하는 기술. 베를리오즈는 이 분야의 방대한 교본을 남겨 후대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스타카토
음을 짧게 끊어서 튀듯이 연주하는 주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