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colò Paganini
무대 위에서는 악마라 불렸고, 무대 뒤에서는 아들 앞에서만 말을 아끼지 않는 아버지였다.
한눈에 보기 🔭💭
곁의 사람들 ⏳🌊
- 가족안토니오 파가니니엄격한 조기교육으로 아들의 재능을 몰아붙인 아버지였다.
- 가족테레사 보차르도아들이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리라는 계시를 믿었던 어머니였다.
- 스승알레산드로 롤라파르마에서 이미 자신을 능가한 소년에게 더 가르칠 것이 없다고 말했다.
- 후원엘리자 바치오키루카의 공비로 그를 궁정악장으로 삼았고 사적으로도 얽혔다.
- 영향루트비히 판 베토벤깊이 흠모했으나 1828년 빈을 찾았을 때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 가족아킬레 파가니니말년 아버지의 목소리를 대신했고, 정식 안장을 위해 평생을 애쓴 아들이었다.
I. 제노바의 소년 · 1782–1795 (0–13세)
1782년 10월,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태어났다. (가난) 아버지 안토니오 파가니니는 항구에서 물건을 나르며 만돌린을 연주하던 소상인이었다. 어머니 테레사 보차르도와의 사이에 여러 자녀를 두었으나 그중 상당수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났고, 니콜로는 살아남은 자식 중 하나였다.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계시) 테레사는 독실한 신자로, 아들이 태어나기 전 천사가 나타나 그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리라 예언하는 꿈을 꾸었다고 훗날 전했다. 파가니니 자신도 이 이야기를 즐겨 들려주며 자신의 운명을 신비화했다. (혹독) 안토니오는 다섯 살 무렵부터 아들에게 만돌린을, 이어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하루 종일 연습을 시켰고 성에 차지 않으면 식사를 걸렀다. 파가니니는 훗날 이 시절을 '아버지의 손 아래 고통받았다'고 회고했다. (재능) 여덟 살 무렵 이미 짧은 곡을 스스로 지어냈고, 제노바의 이름난 바이올리니스트 자코모 코스타에게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스승들은 그의 흡수 속도를 따라가기 벅차했다. (몸) 어려서부터 몸이 가늘고 잔병이 잦았다. 관절이 유난히 잘 꺾여 손가락을 남들보다 훨씬 넓게 벌릴 수 있었는데, 이는 훗날 그의 독보적 기교를 뒷받침했지만 동시에 평생 그를 괴롭힌 만성 통증의 원인이기도 했다.
II. 스승과 자립 · 1795–1804 (13–22세)
(무대) 1795년, 아버지는 파르마 유학 자금을 마련하려 제노바에서 아들의 자선 연주회를 열었다. 소년의 연주는 청중을 사로잡았고, 이 성공으로 파가니니는 곧 파르마의 명바이올리니스트 알레산드로 롤라에게 보내졌다. (스승) 롤라는 병상에서 소년의 연주를 듣고는 더 가르칠 것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는 일화가 전한다. 대신 가스파레 기레티에게 작곡을, 훗날 페르디난도 파에르에게도 조언을 구하게 했다. 이 시기 파가니니는 훗날 스물네 개의 카프리스로 완성될 악상들을 이미 스케치하고 있었다. (반항) 십 대 후반, 연주로 번 돈을 아버지가 관리하는 데 점점 불만이 커졌다. 열여섯, 열일곱 무렵 그는 아버지의 통제에서 벗어나 홀로 이탈리아 북부를 순회하기 시작했다. (방탕) 자유를 얻은 청년은 도박에 빠져들었다. 한때는 판돈을 갚으려 자신의 바이올린을 저당 잡힐 위기에 몰렸는데, 그의 연주에 감탄한 한 상인이 명기 과르네리를 빌려주었다가 아예 선물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여성 편력도 잦았다. (은둔) 1801년부터 몇 해 동안 이름이 전하지 않는 귀족 여성과 시골 영지에 머물며 기타를 배우고 조용히 지냈다. 이 시기 만든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실내악은 훗날의 화려한 무대와는 다른, 사적이고 차분한 파가니니를 보여준다.
III. 루카 궁정과 사랑 · 1805–1810 (23–28세)
(궁정) 1805년, 나폴레옹의 누이 엘리자 바치오키가 루카의 공비가 되면서 파가니니를 궁정 바이올리니스트로, 이어 음악감독으로 임명했다. (염문) 궁정 안팎에서 그와 엘리자 사이의 친밀한 소문이 돌았다. 남편 펠리체 바치오키는 이를 못마땅해했고, 소문은 점점 커져갔다. (기교) 엘리자가 장난 삼아 두 개의 현만으로 연주할 수 있느냐 묻자 파가니니는 한 개면 충분하다고 답하고, G현 하나만으로 연주하는 '나폴레옹 소나타'를 지어 바쳤다고 전한다. 사적인 관계가 그의 대표적 기교 하나를 낳은 셈이다. (파열)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펠리체의 질투가 노골화되자 1809년 무렵 루카 궁정을 떠났다. 이후 다시는 한 명의 후원자나 궁정에 매이지 않았다. (자유) 이 경험은 그에게 평생의 원칙을 남겼다. 누구에게도 고용되지 않고 스스로 연주회를 열어 돈을 버는 독립 연주자의 길을 택한 것이다.
루카 궁정에서 엘리자 바치오키의 장난스런 질문에 답하며 만든 곡으로, 사적인 인연이 그대로 기교가 되었다.
-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굵고 낮은 G현 한 줄만으로 연주된다. 다른 현을 전혀 쓰지 않는 제약 자체가 이 곡의 존재 이유다.
- 행진곡풍 주제는 나폴레옹을 염두에 둔 위엄 있는 리듬으로, 궁정을 위한 헌정곡다운 성격을 드러낸다.
- G현 특유의 굵고 어두운 음색이 곡 전체를 지배해, 좁은 음역 안에서도 다채로운 표정을 만들어내는 점을 들어볼 만하다.
IV. 전설이 된 활 · 1810–1828 (28–46세)
(질주) 1810년대, 이탈리아 각지를 돌며 명성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의 연주회는 매진을 거듭했고 청중은 인간이 낼 수 없을 듯한 소리에 넋을 잃었다. (악마) 창백하고 마른 얼굴, 검은 옷차림, 활을 쥔 채 몸을 뒤트는 기이한 자세는 그가 악마와 거래했다는 소문을 낳았다. 일부 마을에서는 성직자들이 그를 꺼렸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파가니니는 이 소문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고, 오히려 무대 위 신비를 짙게 했다. (기법) 배음을 이용한 맑은 소리(플래절렛), 활 없이 왼손으로 현을 튕기는 주법, 활을 현 위에 튕겨 여러 음을 잇는 주법, 한 현만으로 곡 전체를 연주하는 재주를 차례로 완성했다. 이 성과는 1820년 스물네 개의 카프리스, Op.1로 묶여 세상에 나왔다. (존경) 베토벤을 깊이 흠모했다. 1828년 마침내 빈을 찾았을 때는 이미 그가 세상을 떠난 뒤였고, 파가니니는 생전에 만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젊은 시절에는 조아키노 로시니와도 가까이 지내며 루카에서 그의 오페라 초연을 지휘하기도 했다. (부) 폭발적인 명성은 막대한 수입으로 이어졌지만, 씀씀이는 인색하다는 평과 도박으로 큰돈을 날린다는 평이 동시에 따라다녔다. (고독) 화려한 갈채 뒤에서는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흥행업자와 평론가를 좀처럼 믿지 않았고, 악보가 무단으로 출판되어 기교를 도둑맞을까 두려워 원고를 철저히 감췄다.
루카 시절부터 다듬어온 기교들을 스물네 곡의 독주 연습곡으로 집대성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전설의 악보상 증거다.
- 24번 주제와 변주는 후에 리스트, 브람스, 라흐마니노프 같은 후배 작곡가들이 저마다 편곡할 만큼 사랑받은 선율이다.
- 9번 '사냥'은 활을 현 위에 튕겨 여러 음을 잇는 도약 활법과 배음(플래절렛)으로 사냥나팔과 새소리를 흉내 낸다.
- 13번은 트릴이 마치 웃음소리처럼 들려 '악마의 웃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 5번은 화음을 한 음씩 펼쳐 흐르게 하는 분산화음(아르페지오)이 아래위로 몰아치듯 이어져, 지금도 연주자의 손가락 훈련곡으로 쓰인다.
쥐스마이어의 발레 선율에 기댄 변주곡으로, 그를 둘러싼 악마 소문을 스스로 음악으로 즐긴 듯한 작품이다.
- 발레의 선율을 주제로 삼아, 변주가 거듭될수록 점점 기괴하고 빠르게 변한다.
- 현을 살짝 눌러 맑고 가늘게 울리는 배음(플래절렛)으로 만들어내는 유령 같은 휘파람 소리는 '마녀'라는 제목을 실감 나게 한다.
- 짧게 끊어 튕기듯 켜는 활놀림(스타카토)이 만드는 경쾌하면서도 섬뜩한 리듬은 그가 악마와 얽혔다는 소문과 잘 맞아떨어진다.
명성이 정점을 향해 치닫던 시기의 대표작으로, 그의 화려한 기교가 오케스트라와 정면으로 맞서는 협주곡이다.
- 실제로는 내림마장조로 쓰였지만 독주 바이올린의 현을 전체적으로 반음 높게 조율하는 변칙조현(스코르다투라)으로 연주자는 더 쉬운 라장조 운지를 쓰면서도 오케스트라보다 밝고 화려한 음색을 낸다.
- 1악장은 웅장한 관현악 서주 뒤에 독주 바이올린이 등장해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 활 없이 왼손 손가락으로 현을 튕겨 소리내는 주법과 활로 켜는 소리를 동시에 내는 대목은 연주자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난관으로 꼽힌다.
- 3악장 론도는 춤곡 같은 경쾌한 리듬으로 시작해 화려한 기교로 마무리된다.
V. 파리·런던, 아버지의 자리 · 1828–1834 (46–52세)
(질병) 1828년 빈과 프라하를 도는 중 크게 앓았다. 오랜 매독 치료에 쓰인 수은의 후유증과 폐결핵이 겹친 것으로 짐작되며, 이 무렵부터 목소리가 조금씩 잠기기 시작했다. (연인) 1824년경부터 젊은 성악가 안토니아 비앙키와 함께 지내며 순회공연을 다녔다. (아들) 1825년 7월 팔레르모에서 아들 아킬레 치로 알레산드로가 태어났다. 파가니니는 아이에게 깊이 애착했고, 비앙키와의 관계가 끝난 1828년 무렵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단독 양육권을 얻어내 순회 중에도 손수 아들을 돌보았다. (파리) 1831년부터 파리와 런던 무대를 휩쓸며 전설을 완성했다. 이 무렵 그의 연주를 들은 젊은 프란츠 리스트는 삶이 바뀌었다고 훗날 회고하며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베를리오즈)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에 감탄해 비올라 협주곡을 청했다. 그러나 완성된 '이탈리아의 해럴드'가 자신이 연주하기엔 화려함이 부족하다 여겨 직접 연주하지는 않았다. 대신 훗날 연주회에서 곡을 듣고는 청중 앞에서 베를리오즈에게 무릎을 꿇었고, 2만 프랑을 보내 그의 궁핍을 덜어주었다. (그림자) 명성이 정점에 이를 무렵 건강은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이동조차 남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의사들의 휴식 권고를 좀처럼 듣지 않았다.
아들 아킬레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완성된 협주곡의 마지막 악장으로, 순회 인생 최전성기의 화려함을 담고 있다.
- 제목 그대로 작은 종을 뜻하며, 오케스트라의 실제 트라이앵글 소리와 독주 바이올린의 높은 배음(플래절렛)이 서로 종소리를 주고받듯 어우러진다.
- 되풀이되는 경쾌한 론도 주제는 한 번 들으면 좀처럼 잊히지 않아, 이후 프란츠 리스트가 피아노 독주곡으로 다시 편곡할 만큼 널리 사랑받았다.
- 높은 음에서 정확히 음을 짚어내야 하는 대목은 지금도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손꼽히는 난제로 통한다.
파리·런던 순회의 절정기, 쉼 없이 몰아치던 그의 연주 인생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소품이다.
- 제목 그대로 '끊임없는 움직임'을 뜻하며, 곡 전체가 쉼표 없이 같은 빠르기의 짧은 음표들로 채워진다.
- 활을 쓰는 오른팔의 지구력을 시험하는 곡으로, 연주자들 사이에서 팔이 저릴 만큼 힘든 곡으로 통한다.
- 끊이지 않는 음의 흐름은 마치 쉬지 않고 달리는 사람의 숨결처럼 들린다.
VI. 침묵과 안식 · 1834–1840 (52–58세)
(사업) 1836년 파리에 도박장과 공연장을 겸한 '카지노 파가니니'를 열며 거액을 투자했다. 사업은 실패했고 사기 혐의로 소송에 휘말려 큰 손실을 입었다. (쇠약) 후두 질환으로 목소리를 거의 잃었다. 소년 아킬레가 아버지 대신 말을 전하고 일을 처리하며 곁을 지켰다. (니스) 1840년, 온화한 기후를 찾아 니스로 물러났다. 자리보전한 채 거의 작곡도 연주도 하지 못했다. (죽음) 1840년 5월 27일 니스에서 눈을 감았다. 사제에게 종부성사를 받지 못한 채였는데, 그가 거부했다는 설과 니스 주교가 그의 평판을 이유로 미룬 것이라는 설이 함께 전한다. 교회는 축성된 땅에 그를 묻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안식) 시신은 방부 처리된 채 제노바와 파르마 인근을 오가며 수십 년을 떠돌았다. 그동안 아킬레는 아버지를 정식으로 안장하기 위해 끈질기게 교회와 당국에 청원했고, 1876년, 세상을 뜬 지 36년 만에 파르마의 묘지에 축성된 안식처를 얻었다. 아들의 오랜 헌신이 아버지의 마지막을 완성한 것이다.
목소리를 잃어가던 말년, 초절기교 대신 악기로 조용히 노래하듯 남긴 곡이다.
- 제목 그대로 '노래하듯이'라는 뜻으로, 화려한 기교 대신 느리고 서정적인 선율이 이어진다.
- 말년에 목소리를 거의 잃어가던 그가 악기로 대신 노래하듯 쓴 곡이라는 점에서 애틋하게 다가온다.
- 단순한 반주 위에 얹힌 선율은 절제된 슬픔을 담아, 그의 다른 초절기교 곡들과 뚜렷이 대비된다.
용어 노트 📚🔎
카프리스(카프리치오)
정해진 형식 없이 자유롭게 기교를 뽐내는 짧은 독주곡이다.
플래절렛(하모닉스)
현을 살짝 눌러 맑고 가늘게 울리는 배음을 내는 주법이다. 종소리처럼 들린다.
왼손 피치카토
활을 쓰지 않고 왼손 손가락으로 현을 튕겨 소리내는 주법이다. 오른손 활 소리와 동시에 쓰면 두 소리가 겹쳐 들린다.
스코르다투라(변칙조현)
현을 표준음보다 높거나 낮게 조율해 음색이나 손가락 짚는 방법을 바꾸는 기법이다.
리코셰(도약 활법)
활을 현 위에 가볍게 튕겨 떨어뜨리듯 하여 여러 음을 빠르게 이어 연주하는 활 기법이다.
무궁동
처음부터 끝까지 쉼표 없이 같은 빠르기의 음표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곡이다.
변주곡
하나의 주제 선율을 리듬이나 화성을 바꿔가며 여러 번 반복하는 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