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na Ross
디트로이트 공영주택의 소녀가 모타운의 얼굴이 되었고, 끝내 자기 이름 하나로 무대에 섰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동료플로렌스 발라드
프라이메츠 시절부터 함께 노래했고 슈프림스라는 이름을 고른 창립 멤버였다.
- 동료메리 윌슨
공영주택 시절부터 슈프림스의 끝까지 함께한 멤버로, 2021년 세상을 떠났다.
- 후원스모키 로빈슨
디트로이트의 이웃으로, 소녀들이 모타운 오디션을 볼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았다.
- 후원베리 고디
모타운의 창립자로 로스를 리드 보컬로 세우고 솔로와 영화의 길을 열었다.
- 우정마이클 잭슨
로스가 업계에 소개한 잭슨 파이브의 막내로, 「위즈」에 함께 출연하고 「머슬스」를 써 주었다.
- 동료나일 로저스
시크의 기타리스트이자 제작자로, 로스 최다 판매 앨범 「다이애나」를 만들었다.
I. 브루스터의 소녀 · 1944–1960
(출생) 1944년 3월,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프레드 로스 시니어와 어머니 어니스틴 사이 여섯 남매 가운데 둘째였다. 집에서는 다이앤이라 불렸는데, 출생증명서에 담당자가 다이애나로 적어 넣은 이름이 훗날 무대 이름이 됐다. 어머니가 결핵으로 요양하던 시기에는 아이들이 남부 앨라배마의 친척 집에 맡겨지기도 했다. (브루스터) 1958년 무렵 가족은 디트로이트 동쪽의 공영주택 단지 브루스터-더글러스로 옮겼다. 가까운 동네에 스모키 로빈슨이 살았고, 아이들이 길모퉁이와 계단참에서 화음을 맞추던 시절이었다. 로스는 캐스 테크니컬 고등학교에서 의상 디자인과 미용을 공부하며 직접 옷을 짓고 화장법을 익혔다. 1960년 허드슨 백화점 식당에서는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버스걸(식당 보조)로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라이메츠) 1959년, 매니저 밀턴 젱킨스는 자신이 돌보던 남성 보컬 그룹 프라임스의 자매 그룹을 꾸렸다. 플로렌스 발라드, 메리 윌슨, 베티 맥글론에 로스가 합류해 프라이메츠가 됐다. 프라임스의 에디 켄드릭스와 폴 윌리엄스는 훗날 템테이션스의 중심이 되었고, 이 인연으로 두 그룹은 이후에도 무대와 녹음에서 자주 얽혔다. (문턱) 로스는 이웃이던 로빈슨을 통해 모타운 오디션 자리를 얻었다. 1960년 베리 고디는 학교부터 마치라며 계약을 미뤘지만, 소녀들은 히츠빌 USA 스튜디오를 드나들며 다른 가수의 녹음에 손뼉과 코러스를 보탰다. 그해 작은 지역 레이블에서 낸 첫 싱글은 주목받지 못했다. 열여섯 살의 로스에게 그 거절은 끝이 아니라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II. 히츠빌의 소녀들 · 1961–1966
(계약) 1961년 1월 모타운과 계약하면서 그룹은 이름을 바꿔야 했다. 직원 재니 브래드퍼드가 내민 이름 목록에서 발라드가 슈프림스를 골랐다. 맥글론은 앞서 결혼으로 떠났고, 바버라 마틴이 잠시 함께하다 1962년 빠지면서 로스·윌슨·발라드의 3인조가 굳어졌다. 고디는 1963년 말 로스를 그룹의 리드 보컬로 정했다. (무명) 처음 3년 동안 낸 싱글은 대부분 차트 하위권에 머물렀고, 회사 안에서는 노 히트 슈프림스라는 놀림을 들었다. 그 사이 그들은 모타운의 예비 학교라 할 체계 안에서 다듬어졌다. 맥신 파월은 걸음걸이와 인터뷰 예절을, 안무가 촐리 앳킨스는 손짓 하나까지의 동선을 가르쳤다. 흑인 가수가 백인 중산층의 무대와 텔레비전에 설 수 있게 하려는 고디의 계산이었다. (전환) 1964년 작곡·제작 팀 홀랜드-도지어-홀랜드의 「웨어 디드 아워 러브 고」가 빌보드 1위에 오르며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어 「베이비 러브」, 「컴 시 어바웃 미」, 「스톱! 인 더 네임 오브 러브」, 「백 인 마이 암스 어게인」까지 다섯 곡이 잇달아 1위를 했다. 비틀스가 미국 차트를 휩쓸던 시절에 미국 그룹이 낸 성적으로는 이례적이었다. (크로스오버) 1965년 뉴욕 코파카바나 나이트클럽에 섰고, 「에드 설리번 쇼」에 거듭 출연했다. 쇼 비즈니스의 문법을 익힌 슈프림스는 흑인 음악을 백인 가정의 안방까지 넘긴 크로스오버의 상징이 됐다. 로스는 무대 의상을 고르는 일에도 깊이 관여했고, 디자인을 공부한 이력은 반짝이는 가운으로 나타났다. 그 화려함 뒤에서 그룹의 무게중심은 차츰 로스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3년의 무명 끝에 찾아온 슈프림스의 첫 1위곡이다. 로스의 담담한 음색이 그룹의 얼굴이 된 출발점이었다.
- 인트로는 드럼 대신 발로 바닥을 구르는 소리와 손뼉이 박자를 세운다. 스튜디오 바닥에 나무판을 깔고 밟아 녹음했다는 증언이 전한다.
- 메리 윌슨의 음역에 맞춘 낮은 조로 녹음돼, 로스는 힘을 빼고 숨이 섞인 낮은 음역으로 부른다. 이 속삭이듯 담담한 음색이 이후 슈프림스의 표정이 됐다.
- 윌슨과 발라드의 코러스가 리드의 한 줄마다 짧게 되받아 주는 주고받기(콜 앤 리스폰스)가 단순한 곡에 리듬감을 더한다.
- 간주에 나오는 굵고 낮은 바리톤 색소폰이 가벼운 보컬과 대비를 이루며 곡에 무게를 싣는다.
다섯 곡 연속 1위의 정점에 놓인 곡으로, 모타운식 안무 교육이 가장 선명하게 남은 무대이기도 하다.
- 오르간 화음이 경보처럼 울리는 인트로가 첫 박부터 멈춰 세우는 긴장을 만든다.
- 후렴에서 손바닥을 앞으로 내미는 안무는 텔레비전 무대에서 가장 유명한 동작이 됐다. 템테이션스의 폴 윌리엄스가 동작을 짜는 데 도움을 줬다고 전해진다.
- 모타운의 전속 연주자들인 펑크 브라더스가 만든, 쉬지 않고 달리는 베이스와 탬버린이 애원조의 가사를 춤곡으로 바꿔 놓는다.
- 로스의 보컬은 애원과 경고 사이를 오간다. 높이 지르지 않고 또렷한 발음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이 당시 그룹의 개성이었다.
III. 이름의 무게 · 1967–1970
(개명) 1967년 그룹 이름은 다이애나 로스 앤 더 슈프림스로 바뀌었다. 같은 해 여름 발라드는 고디의 결정으로 그룹을 떠나야 했고, 신디 버드송이 자리를 이었다. 공영주택 시절부터 함께 노래한 동료의 이탈은 그룹의 역사에 오래 그늘로 남았다. 발라드는 1976년 서른두 살로 세상을 떠났고, 로스는 그 장례식에 참석했다. (격변) 비슷한 시기 홀랜드-도지어-홀랜드가 모타운을 떠나면서 히트의 공식도 흔들렸다. 1968년 「러브 차일드」는 가난 속에 태어난 아이의 처지를 다룬 곡으로, 사랑 노래가 중심이던 그룹이 사회의 그늘을 정면으로 노래한 첫 1위였다. 그해 템테이션스와 합동 앨범을 내고 텔레비전 특집 「TCB」에 함께 출연해, 프라이메츠 시절의 인연을 다시 무대로 불러왔다. 합동 싱글 「아임 고나 메이크 유 러브 미」도 크게 히트했다. (잭슨) 1969년 로스는 비벌리힐스의 한 클럽에서 업계 인사들에게 인디애나 출신 다섯 형제를 소개했고, 그들의 첫 앨범에는 「다이애나 로스 프레젠츠 더 잭슨 파이브」라는 제목이 붙었다. 막내 마이클 잭슨과의 우정은 이후 수십 년 이어졌다. (작별) 1970년 1월 라스베이거스 프런티어 호텔 공연을 끝으로 그룹을 떠났다. 직전의 마지막 1위곡 「섬데이 위일 비 투게더」는 작별 인사처럼 받아들여졌다. 솔로 첫해 고디는 작곡 부부 애시퍼드 앤 심슨에게 제작을 맡겼다. 마빈 게이와 태미 테럴이 불렀던 「에인트 노 마운틴 하이 이너프」를 전혀 다른 짜임으로 다시 만든 녹음이 그해 1위에 오르며, 로스는 홀로서도 정상에 설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룹을 떠난 첫해, 홀로 거둔 첫 1위곡이다. 경쾌한 듀엣 원곡을 독백과 합창의 드라마로 바꿔 솔로 가수 로스의 출발을 알렸다.
- 현악과 낮은 피아노로 조용히 시작해, 로스가 노래 대신 말하듯 읊조리는 대목(스포큰 워드)으로 이야기를 연다.
- 6분이 넘는 앨범판은 절정을 계속 미루며 현과 코러스를 층층이 쌓다가, 후반에 교회 성가대 같은(가스펠풍) 합창으로 터진다.
- 마빈 게이와 태미 테럴의 빠른 원곡과 나란히 들으면, 애시퍼드 앤 심슨이 같은 곡을 얼마나 다른 짜임으로 다시 지었는지 드러난다.
- 고디는 긴 낭독 부분을 탐탁지 않아 했지만 라디오 DJ들이 앨범판을 먼저 틀기 시작하자 편집 싱글이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IV. 스크린의 시간 · 1971–1979
(서부) 1972년 모타운이 본거지를 로스앤젤레스로 옮기면서 로스의 삶도 서부로 옮겨 갔다. 고디는 레코드 회사를 넘어 영화 제작에 뜻을 두었고, 그 첫 얼굴로 로스를 세웠다. 음반 가수가 배우로 나서는 일에 회의적인 시선이 많던 때였다. (빌리) 1972년 영화 「레이디 싱스 더 블루스」에서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를 연기했다. 연기 경험이 거의 없던 로스는 홀리데이의 녹음을 되풀이해 들으며 박자 뒤에 늦게 들어가는 프레이징과 음을 꺾는 버릇을 익혔다고 밝혔다. 흉내가 아니라 자기 음색 위에 홀리데이의 호흡을 얹는 방식이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사운드트랙은 앨범 차트 1위를 했다. (마호가니) 1975년 「마호가니」에서는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여성을 맡았다. 고디가 촬영 도중 직접 감독을 넘겨받았고, 로스는 극 중 의상 상당수를 손수 디자인했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재봉이 스크린에 오른 셈이었다. 주제가 「마호가니의 테마」는 1976년 1위에 올랐다. (디스코) 같은 해 「러브 행오버」로 디스코의 흐름에 올라탔다. 브로드웨이 1인 공연 「앤 이브닝 위드 다이애나 로스」로 이듬해 토니상 특별상을 받았고, 빌보드는 로스를 세기의 여성 엔터테이너로 꼽았다. (오즈) 1978년 시드니 루멧 감독의 「위즈」에서 도로시를 맡아 허수아비 역의 마이클 잭슨과 함께 출연했다. 흑인 배우들로 다시 짠 「오즈의 마법사」였다. 영화는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고전했지만, 이 촬영장에서 잭슨은 음악 감독 퀸시 존스를 만났다. 로스가 소개한 소년이 자기 시대를 여는 길목이 거기 있었다.
배우로 이름을 넓히던 시기, 로스가 디스코의 흐름에 직접 뛰어든 곡이다. 한 곡 안에서 발라드와 댄스곡이 이어진다.
- 앞부분은 느린 발라드다. 로스는 숨을 많이 섞어 거의 속삭이듯 부르며 높은 음을 가볍게 띄운다.
- 2분 40초 무렵 베이스와 하이햇(박자를 잘게 쪼개는 심벌)이 들어오면서 곡이 통째로 춤곡으로 뒤집힌다. 이 전환이 곡의 핵심이다.
- 7분이 넘는 앨범판 후반에는 로스의 즉흥적인 추임새와 웃음이 섞여, 짜인 녹음이라기보다 클럽의 한때처럼 들린다.
- 제작자 할 데이비스가 스튜디오 조명을 낮추고 클럽처럼 꾸며 녹음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V. 나의 이름으로 · 1980–1988
(다이애나) 1980년 시크의 나일 로저스와 버나드 에드워즈에게 앨범 제작을 맡겼다. 녹음 뒤 로스는 자기 목소리가 밴드 사운드에 묻혔다고 여겨 엔지니어 러스 테라나와 함께 다시 믹스했고, 로저스는 훗날 자서전에서 그 과정의 긴장을 털어놓았다. 결과물 「다이애나」는 로스의 정규 앨범 가운데 가장 많이 팔렸고, 「업사이드 다운」은 4주간 1위를 했다. (독립) 1981년 라이오넬 리치와 부른 「엔들리스 러브」가 9주 연속 1위에 오르기에 앞서, 그해 5월 20년 가까이 몸담은 모타운을 떠나 RCA와 계약했다. 당시 음악계 최대 규모로 보도된 조건이었고, 무엇보다 자기 제작사를 통해 음반을 직접 만드는 권한을 얻었다. 고디의 품에서 자란 가수가 처음으로 스스로 결정하는 자리에 선 것이다. (공원) 1983년 7월 뉴욕 센트럴파크 무료 공연은 첫날 폭우로 중단됐고, 로스는 이튿날 다시 무대에 올라 공연을 마쳤다. 비에 젖은 채 노래를 이어 간 첫날 영상은 지금도 회자되며, 공연을 계기로 한 약속은 1986년 공원 안 다이애나 로스 놀이터로 이어졌다. (동료) 1982년 마이클 잭슨이 곡을 쓰고 제작한 「머슬스」를 냈다. 1985년에는 비지스의 배리 기브가 제작한 앨범 「이턴 얼라이브」를 냈는데, 기브 형제가 쓴 「체인 리액션」은 이듬해 영국 차트 1위에 올랐다. 같은 해 「위 아 더 월드」 녹음에도 참여했다. 사생활에서는 두 번 결혼했고 다섯 자녀를 두었다. 1988년에는 슈프림스의 일원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시크와 손잡은 앨범 「다이애나」의 첫 싱글로 4주간 1위를 했다. 제작진과 가수가 믹스를 두고 줄다리기한 끝에 나온 녹음이다.
- 버나드 에드워즈의 굵게 튀어 오르는 베이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곡의 뼈대를 이룬다.
- 나일 로저스가 줄을 짧게 끊어 긁는 리듬 기타(치킨 스크래치 주법)가 베이스 사이의 빈틈을 채우며 몸을 들썩이게 한다.
- 현악이 높은 음에서 짧고 날카롭게 꽂히는 편곡은 시크 특유의 서명 같은 소리다.
- 로스는 빠르게 쏟아지는 음절을 힘주지 않고 가볍게 얹는다. 다시 믹스한 판에서 보컬이 앞으로 나와 있는 점도 들어 볼 만하다.
로저스는 뉴욕의 한 클럽에서 로스로 분장한 공연자들을 보고 이 곡을 떠올렸다고 회고했다. 모타운을 떠나 홀로서기를 앞둔 로스에게 자기 선언처럼 들리는 곡이 됐다.
- 금관이 팡파르처럼 울리는 인트로는 등장 음악 그 자체다. 로스는 이후 오랫동안 이 곡으로 공연을 열었다.
- 간주의 트롬본 솔로는 「스타워즈」 디스코 편곡으로 알려진 메코 모나르도가 연주했다.
- 자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겠다는 정서 덕분에 성소수자 공동체의 찬가로 자리 잡았다.
- 1997년 노토리어스 B.I.G.의 「모 머니 모 프라블럼스」가 이 곡을 샘플로 써서 새 세대에게 다시 들려졌다.
비지스의 기브 형제가 로스를 위해 쓴 곡으로, 슈프림스 시절의 모타운 사운드에 바치는 헌사처럼 지어졌다. 이듬해 영국 차트 1위에 올랐다.
- 손뼉, 탬버린, 밝은 금관 등 1960년대 모타운 녹음의 질감을 일부러 되살린 짜임이다.
- 기브 형제의 높은 가성 코러스가 뒤를 받쳐, 비지스와 모타운이 한 곡 안에서 만나는 소리가 난다.
- 후렴이 거듭될수록 음높이 기준을 한 단계씩 올리는 전조(조옮김)로 끝까지 들뜬 기분을 유지한다.
- 1960년대 텔레비전 음악 쇼를 흑백으로 재현한 뮤직비디오에서 로스는 슈프림스 시절의 자신을 연기하듯 무대에 선다.
VI. 귀환 · 1989–2026
(귀환) 1989년 모타운으로 돌아왔다. 고디가 회사를 매각한 뒤였고, 로스는 새 체제에서 지분을 지닌 아티스트로 복귀한 것으로 보도됐다. 1993년 자서전 「시크릿츠 오브 어 스패로」를 펴내 공영주택 시절과 어머니, 무대 뒤에서 느낀 불안을 스스로의 언어로 정리했다. (무대) 1996년 1월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히트곡 메들리를 부른 뒤 헬리콥터를 타고 경기장을 떠나는 연출로 마무리했다. 1960년대의 스타가 1990년대의 가장 큰 무대를 여전히 장악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장면이었다. (유산) 2006년 비욘세가 출연한 영화 「드림걸스」는 모타운 여성 그룹의 궤적에서 느슨하게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여겨지며, 비욘세가 연기한 디나 존스는 로스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었다. 로스는 2007년 케네디 센터 공로상, 2012년 그래미 평생공로상, 2016년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다. 경쟁 부문 그래미를 한 번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 이력의 역설로 자주 언급된다. (감사) 2021년 2월 메리 윌슨이 세상을 떠났고, 로스는 오랜 동료를 기리는 글을 남겼다. 같은 해 15년 만의 정규 앨범 「생큐」를 냈는데, 팬데믹 기간 집에서 만든 곡들이 중심이었다고 밝혔다. 2022년 영국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의 레전드 무대에 섰고, 2020년대에도 공연을 이어 가고 있다. 앨범 제목처럼 이 시기의 무대는 지난 60년을 함께한 청중에게 건네는 인사에 가까웠다.
덜 알려진 이야기
로스의 본래 이름은 집에서 부르던 다이앤이었다. 출생증명서에 담당자가 다이애나로 적은 것이 공식 이름이 됐고, 초기 모타운 시절 문서와 동료들의 회고에는 여전히 다이앤이 자주 나온다. 무대 이름이 하나로 굳으면서 이 작은 혼선은 전기의 각주로만 남았다. 「웨어 디드 아워 러브 고」는 마블레츠에게 먼저 제안됐다는 회고가 있지만, 브라이언 홀랜드는 처음부터 슈프림스를 염두에 두고 썼다고 말해 이야기가 엇갈린다. 곡이 메리 윌슨의 음역에 맞춘 조로 녹음돼 로스는 평소보다 낮게 부르라는 주문을 받았고, 그 낮고 담담한 음색이 그룹의 상징이 됐다. 히트의 서사에 가려 이 출발은 잘 언급되지 않는다. 잭슨 파이브를 로스가 발견했다는 이야기는 모타운의 홍보 문구였다. 실제로 형제들의 모타운 오디션을 주선한 것은 가수 바비 테일러였다. 홍보가 사실보다 오래 살아남은 경우다. 슈프림스의 마지막 1위곡 「섬데이 위일 비 투게더」는 원래 로스의 솔로 데뷔곡으로 준비됐고, 녹음에서 로스를 받친 목소리는 윌슨과 버드송이 아니라 세션 가수들이었다. 그룹의 작별 노래로 기억되는 곡에 그룹 멤버 둘이 빠져 있다는 사실은 크레디트를 꼼꼼히 읽는 이들 사이에서만 오간다.
용어 노트 📚🔎
리드 보컬
(말뜻) 리드(lead)는 영어로 앞장서서 이끈다는 뜻이다. 노래를 앞에서 이끄는 목소리라는 말이다. (팝에서) 그룹에서 멜로디의 중심을 맡아 맨 앞에서 노래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나머지 멤버는 화음과 추임새로 그 목소리를 받친다. 반 합창 발표에서 한 친구가 독창 부분을 부르고 나머지가 뒤에서 화음을 넣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슈프림스에서는 고디가 로스를 리드 보컬로 정하면서 그룹의 모습이 크게 달라졌다. (다른 데서는) 영업이나 마케팅에서 리드는 앞으로 고객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뜻한다.
크로스오버
(말뜻) 영어 cross over 는 건너간다는 뜻이다. 한쪽 강가에서 다른 쪽으로 다리를 건너가는 모습이 이름에 들어 있다. (팝에서) 특정한 청중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 다른 청중의 차트와 무대로 건너가 인기를 얻는 것을 말한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흑인 가수의 음악이 흑인 청중 중심의 R&B 차트를 넘어 백인 청중이 많이 듣는 팝 차트 1위에 오르는 일을 뜻했다. 우리 반 몇몇만 알던 노래가 어느새 전교생이 흥얼거리는 노래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농구에서는 공을 좌우 손으로 번갈아 튀기며 수비를 제치는 드리블을 크로스오버라고 부른다.
디스코
(말뜻) 음반을 틀어 춤추는 클럽을 뜻하는 프랑스어 디스코테크(discothèque)에서 왔다. 원래는 음반(disque)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팝에서) 1970년대 클럽에서 크게 유행한 춤곡이다. 큰북이 한 박도 빠짐없이 쿵쿵 울리고, 베이스와 현악, 금관이 화려하게 얹힌다. 긴 시간 끊김 없이 춤출 수 있도록 곡이 길게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체육 시간에 일정한 박자의 음악에 맞춰 줄넘기를 하면 몸이 저절로 리듬을 타는데, 디스코의 일정한 큰북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믹스
(팝에서) 녹음실에서는 목소리, 기타, 베이스, 드럼, 현악을 따로따로 녹음한다. 믹스는 이렇게 모은 여러 소리의 크기와 위치, 음색을 조절해 하나의 완성된 곡으로 합치는 작업이다. 같은 녹음이라도 누가 어떻게 믹스하느냐에 따라 목소리가 앞으로 나오기도 하고 악기 뒤로 숨기도 한다. 비빔밥을 만들 때 같은 재료라도 고추장과 나물의 비율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이미 믹스한 곡을 다시 섞는 것을 리믹스라고 한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믹스는 그냥 여러 가지를 섞는다는 뜻으로, 믹스커피처럼 쓰인다.
전조
(말뜻) 전조(轉調)는 옮길 전(轉)과 고를 조(調)를 합친 말로, 곡의 조를 다른 조로 옮긴다는 뜻이다. 조옮김이라고도 한다. (팝에서) 곡이 진행되는 중간에 음높이의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팝에서는 마지막 후렴 앞에서 음높이를 한두 단계 올려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방식이 흔하다. 노래방에서 노래가 한창일 때 키 올리기 버튼을 눌러 같은 가락을 더 높은 음으로 부르게 되는 순간을 떠올리면 된다.
스포큰 워드
(말뜻) 영어 spoken word 는 소리 내어 말한 낱말이라는 뜻이다. 노래하지 않고 말로 한다는 점이 이름에 들어 있다. (팝에서) 곡 중간에 멜로디 없이 말하듯 읊조리는 부분을 가리킨다. 노래로 다 하지 못한 감정을 직접 말을 거는 것처럼 전해 듣는 사람을 더 가까이 끌어당긴다. 학예회 노래 공연 중간에 한 친구가 반주 위로 짧은 대사를 하는 장면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문학과 공연 예술에서는 시를 낭독하며 무대에서 펼치는 공연 장르 자체를 스포큰 워드라고 부른다.
사운드트랙
(말뜻) 영화 필름의 가장자리에는 소리를 기록한 가느다란 띠가 있었는데, 이를 사운드트랙(소리의 길)이라 불렀다. 여기서 영화 음악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팝에서) 영화에 쓰인 노래와 배경음악을 모아 낸 앨범을 말한다. 영화가 흥행하면 사운드트랙이 따로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한다. 좋아하는 게임의 배경음악을 따로 모아 들으면서 그 장면을 떠올리는 것과 같다. 로스가 출연한 「레이디 싱스 더 블루스」의 사운드트랙은 앨범 차트 1위를 했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내 인생의 사운드트랙처럼, 어떤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들을 비유적으로 부를 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