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okey Robinson
노래에는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 디트로이트 소년의 공책은 모타운의 시가 됐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루시 로빈슨
그가 열 살 때인 1950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로, 이후 그는 누나 제럴딘의 손에서 자랐다.
- 스승베리 고디
노래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 사람으로, 그의 권유로 모타운을 세우고 그를 부사장으로 앉혔다.
- 동료클로뎃 로빈슨
미라클스의 창립 멤버로 그와 함께 화음을 쌓았고, 1959년 그와 결혼했다.
- 동료마브 타플린
미라클스의 기타리스트로, 「더 트랙스 오브 마이 티어스」와 「크루징」의 기타 가락을 함께 만든 작곡 파트너였다.
- 우정마빈 게이
모타운의 동료이자 오랜 친구로, 그가 써 준 「아일 비 도건」과 「에인트 댓 페큘리어」를 불렀다.
- 동료스티비 원더
직접 만든 연주 데모를 그에게 건넸고, 그 곡이 그룹의 첫 팝 1위 「더 티어스 오브 어 클라운」이 됐다.
I. 노스엔드의 소년 · 1940–1955
(출생) 1940년 2월,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윌리엄 로빈슨 주니어였다. 집은 도시 북쪽 노스엔드의 벨몬트 거리에 있었다. 어린 그를 데리고 카우보이 영화를 보러 다니던 삼촌은 그를 '스모키 조'라고 불렀고, 그는 이 별명을 평생 무대 이름으로 썼다. (상실) 1950년, 열 살이던 그는 어머니 루시를 잃었다. 아버지가 곁에 있었지만, 살림을 맡아 그를 키운 사람은 손위 누나 제럴딘이었다. 제럴딘은 자기 아이들을 여럿 키우면서 막내 동생까지 거두었다. 그는 훗날 인터뷰와 자서전에서 누나에게 진 빚을 여러 번 이야기했다. (이웃) 노스엔드에는 재능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가까운 곳에 훗날 다이애나 로스가 될 소녀의 가족이 살았다. 그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오빠 세실과 단짝으로 지내며 프랭클린 집을 드나들었다. 그때 어린 아레사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그는 여러 차례 회고했다. (귀) 집에서는 세라 본과 빌리 엑스타인의 레코드가 흘러나왔다. 십대의 그를 사로잡은 것은 디트로이트의 두왑 그룹 디아블로스를 이끈 놀런 스트롱의 높고 가는 테너였다. 그는 그 목소리를 따라 부르며 자신의 음역을 찾아 갔다. 여섯 살 무렵부터 노랫말을 끄적였다는 그는 노던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공책 한 권을 자작곡으로 채웠다. 이 공책이 몇 해 뒤 그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II. 공책과 레이블 · 1955–1960
(결성) 1955년, 그는 고등학교 친구 로니 화이트, 피트 무어 등과 보컬 그룹 파이브 차임스를 만들었다. 그룹은 곧 마타도어스로 이름을 바꿨고, 바비 로저스와 그의 사촌 에머슨 '서니' 로저스가 들어왔다. 서니가 군에 입대하자 그의 누이 클로뎃 로저스가 그 자리를 이었다. 1958년, 그룹은 미라클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오디션) 1957년, 그들은 재키 윌슨의 매니저들 앞에서 오디션을 보고 떨어졌다. 그 자리에 윌슨에게 곡을 써 주던 젊은 작곡가 베리 고디가 있었다. 고디는 그가 들고 온 공책에 흥미를 보였지만, 운은 잘 맞는데 이야기가 없다고 짚었다. 노래에는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어야 한다는 이 가르침을 그는 평생의 작법으로 삼았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독립) 1958년 고디가 제작한 첫 싱글 「갓 어 잡」이 뉴욕의 엔드 레코드에서 나왔지만, 손에 들어온 돈은 보잘것없었다. 그는 남의 레이블에 곡을 넘기지 말고 직접 회사를 차리라고 고디를 설득했다. 1959년 탐라 레코드가 문을 열었고, 이듬해 모타운 레코드가 법인으로 세워졌다. 1959년 11월, 그는 클로뎃과 결혼했다. (첫 히트) 1960년 가을에 나온 「숍 어라운드」는 서두르지 말고 사람을 잘 고르라고 어머니가 아들에게 이르는 이야기였다. 리드가 한 줄을 던지면 멤버들이 받아치는 짜임새(콜 앤 리스폰스)가 곡을 이끌었다. 이 곡은 R&B 차트 1위, 팝 차트 2위에 오르며 모타운에 첫 밀리언셀러를 안겼다. 고디에게 배운 이야기 짓기가 처음 거둔 결실이었다. 레코드 뒷면(B면)에는 그가 쓴 발라드 「후즈 러빙 유」가 실렸다.
고디에게 배운 대로 처음과 끝이 있는 이야기를 담은 곡으로, 모타운이라는 회사가 설 자리를 마련해 준 첫 밀리언셀러다.
- 지금 널리 알려진 판은 두 번째 녹음이다. 느린 첫 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고디가 한밤중에 멤버들을 불러 템포를 끌어올려 다시 녹음했고, 피아노는 고디가 직접 쳤다고 전해진다.
- 로빈슨의 높은 테너가 노래보다 이야기에 가깝게 줄거리를 풀어 간다. 어머니의 충고를 전하는 화법이라 첫 소절부터 귀가 사연을 따라가게 된다.
- 리드가 한 줄을 던지면 멤버들이 받아치는 주고받기(콜 앤 리스폰스)가 곡 내내 이어진다. 교회 음악과 두왑에서 온 이 짜임새가 초기 미라클스의 뼈대였다.
- 느린 첫 판과 나란히 들어 보면 템포 하나가 곡의 성격을 얼마나 바꾸는지 분명히 느낄 수 있다.
III. 모타운의 시인 · 1961–1966
(부사장) 1960년대에 고디는 그를 회사 부사장에 앉혔다. 그는 미라클스의 리드 보컬로 무대에 서는 한편, 다른 가수들의 곡을 쓰고 녹음을 지휘하는 프로듀서로 일했다. 메리 웰스에게 써 준 「마이 가이」는 1964년 팝 차트 1위에 올랐다. (템테이션스) 템테이션스에게는 「더 웨이 유 두 더 싱스 유 두」로 첫 큰 히트를 안겼다. 이어 로니 화이트와 함께 쓴 「마이 걸」이 1965년 그룹의 첫 1위가 됐다. 그는 이 곡에서 새로 합류한 데이비드 러핀의 거칠고 절박한 목소리를 리드로 세웠다. 마빈 게이에게는 「아일 비 도건」과 「에인트 댓 페큘리어」를 써 주었다. 게이와 그는 같은 회사의 동료이자 오랜 친구였다. (대서양) 1962년 미라클스의 「유브 리얼리 갓 어 홀드 온 미」가 나왔다. 이듬해 비틀스가 이 곡을 두 번째 앨범에 실었다. 존 레넌과 조지 해리슨은 그를 존경한다고 공공연히 말했고, 해리슨은 1976년 그에게 바치는 곡 「퓨어 스모키」를 발표했다. (눈물) 1965년은 그의 작곡이 무르익은 해였다. 「우 베이비 베이비」와 「더 트랙스 오브 마이 티어스」는 웃는 얼굴 뒤에 슬픔을 감춘 사람의 마음을 다뤘다. 「더 트랙스 오브 마이 티어스」의 바탕에는 기타리스트 마브 타플린이 짠 짧은 반복 가락(리프)이 있었다. 같은 해 앨범 「고잉 투 어 고고」부터 그룹 이름은 스모키 로빈슨 앤드 더 미라클스로 표기되기 시작했다.
비틀스가 이듬해 커버하면서 그의 이름을 대서양 건너편에 알린 곡이다.
- 로빈슨은 샘 쿡의 「브링 잇 온 홈 투 미」에서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썼다고 밝혔다. 느리게 출렁이는 리듬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 리드는 로빈슨이지만 바비 로저스가 거의 같은 선율을 나란히 불러, 두 목소리가 한 사람처럼 겹쳐 들린다.
-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에 묶여 괴로워하는 모순된 마음이 주제다. 후렴에서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며 애원하는 조로 바뀐다.
- 비틀스는 1963년 앨범 「위드 더 비틀스」에서 존 레넌의 리드로 이 곡을 불렀다. 원곡의 느린 출렁임과 비틀스의 직선적인 록 해석을 견주어 들을 만하다.
1965년, 자신을 낮추는 화법과 가성으로 그만의 발라드 정서를 완성한 곡이다. 미라클스의 피트 무어가 작곡을 함께했다.
- 로빈슨의 가성(팔세토)이 곡의 거의 전부다. 힘을 빼고 높이 띄운 목소리가 용서를 구하는 사람의 떨림처럼 들린다.
- 제목이 되는 짧은 부름을 멤버들이 길게 늘여 받쳐 주고, 부드러운 화음이 리드 보컬을 감싼다.
- 반주가 절제돼 있고 템포가 매우 느려서 숨을 고르는 순간까지 노래의 일부처럼 들린다.
- 잘못한 사람이 상대에게 사과하는 노래다. 화려한 고음 대신 낮은 자세의 고백으로 감정을 쌓는다.
웃는 얼굴 뒤의 슬픔이라는 그의 평생 주제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곡이다. 마브 타플린과의 작곡 호흡이 만든 정점이기도 하다.
- 도입부의 기타 리프는 마브 타플린의 것이다. 타플린이 이 짧은 가락을 먼저 들려주었고, 로빈슨은 여기에 맞는 이야기를 찾기까지 오래 걸렸다고 회고했다.
- 남 앞에서는 웃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곡의 중심이다. 담담하게 시작한 목소리가 갈수록 감추던 감정을 드러낸다.
- 절에서 후렴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리듬 섹션에 힘이 실리고 멤버들의 화음이 두터워지며 감정이 한 단계 올라간다.
- 여러 매체의 역대 명곡 목록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곡으로, 모타운 발라드의 한 표준으로 꼽힌다.
IV. 광대의 눈물 · 1966–1972
(파티) 1966년 모타운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스티비 원더가 프로듀서 행크 코스비와 함께 만든 연주 데모를 그에게 건넸다. 가사를 붙일 사람을 아직 찾지 못한 곡이었다. 서커스 악단을 떠올리게 하는 선율을 듣고 그는 광대를 생각했다. 그리고 웃음 뒤에 눈물을 숨긴 광대라는 오래된 주제로 노랫말을 지었다. 「더 티어스 오브 어 클라운」은 1967년 앨범 「메이크 잇 해픈」에 조용히 실렸다. (말장난) 같은 해 히트한 「아이 세컨드 댓 이모션」은 일상의 말실수에서 나왔다. 동료 작곡가 알 클리블랜드와 백화점에서 선물을 고르던 중, 클리블랜드가 동의한다는 뜻의 관용구에서 한 단어를 엉뚱하게 바꿔 말했다. 두 사람은 그 말을 그대로 곡 제목으로 삼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우스운 말 한마디를 사랑 노래로 바꾸는 솜씨는 그의 장기였다. (유예) 1960년대 말, 그는 계속되는 투어에 지쳐 있었다. 회사 일도 늘었다. 그룹을 떠날 생각을 굳혀 가던 1970년, 영국에서 3년 묵은 트랙 「더 티어스 오브 어 클라운」이 싱글로 나와 1위에 올랐다. 곧 미국에서도 팝 차트 1위가 됐다. 그룹의 첫 팝 1위였고, 그는 떠나는 시기를 미뤘다. (작별) 1972년 여름, 그는 고별 투어를 마치고 미라클스를 떠났다. 리드 보컬 자리는 빌리 그리핀이 이어받았다. 같은 해 모타운이 본거지를 디트로이트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옮기면서 그도 서부에 터전을 잡았다.
스티비 원더의 선율에 그가 광대 이야기를 입힌 곡이다. 3년 늦게 터진 이 히트가 그룹을 떠나려던 그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 인트로의 서커스 같은 소리에는 바순이 쓰였다. 스티비 원더와 행크 코스비가 만든 반주가 회전목마 음악처럼 빙글빙글 돈다.
- 신나는 춤곡 반주와 슬픈 노랫말이 정면으로 부딪친다. 밝게 들릴수록 이야기가 아프게 다가오도록 설계된 곡이다.
- 가사는 이탈리아 오페라 「팔리아치」의 광대를 끌어와 무대 위의 웃음과 무대 뒤의 눈물이라는 오래된 주제를 잇는다.
- 1967년에 녹음돼 앨범 속에 묻혀 있다가 1970년 영국에서 싱글로 나와 1위에 올랐고, 이어 미국에서도 1위가 됐다.
V. 고요한 폭풍 · 1973–1986
(솔로) 1973년, 그는 첫 솔로 앨범 「스모키」를 냈다. 처음 몇 해는 부사장 업무와 솔로 활동을 병행하며 자기 소리를 찾는 시간이었다. 답은 1975년 앨범 「어 콰이어트 스톰」에서 나왔다. 바람 소리로 문을 여는 7분 남짓의 타이틀곡은 서두르지 않는 템포 위에 가성(팔세토)을 쌓아 올린 밤의 음악이었다. (라디오) 1976년, 워싱턴 D.C. 하워드 대학교 방송국 WHUR-FM의 진행자 멜빈 린지가 늦은 밤 부드러운 R&B 발라드를 이어 트는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이 앨범의 이름을 붙였다. 이 방식이 미국 전역의 흑인 음악 방송으로 퍼졌다. 그러면서 콰이어트 스톰은 한 앨범의 제목을 넘어 라디오 포맷이자 장르의 이름이 됐다. (재기) 1979년 마브 타플린과 함께 쓴 「크루징」이 팝 차트 4위에 올랐다. 솔로로서 처음 거둔 큰 성공이었다. 1981년 「비잉 위드 유」는 미국 팝 차트 2위, 영국 1위를 기록했다. 1960년대의 히트 작곡가가 디스코 이후의 시장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 준 결과였다. 「크루징」은 1995년 디안젤로가 데뷔 앨범 「브라운 슈거」에서 다시 불러 새 세대에게 이어졌다. (이별) 1986년, 그는 클로뎃과 이혼했다. 미라클스 시절부터 무대 위에서 화음을 함께 쌓아 온 사람과의 27년 결혼이었다. 그 무렵 그는 쉰 살을 바라보고 있었고, 다음 장은 회고와 정리의 시간이 된다.
솔로 가수로서 자기 소리를 찾은 곡이다. 이 곡의 제목은 이후 한 라디오 포맷과 장르의 이름이 됐다.
- 바람 소리 효과로 시작해 7분 넘게 이어진다. 라디오용 3분짜리 싱글과는 호흡부터 다르다.
- 로빈슨의 가성(팔세토)이 여러 겹으로 포개져, 한 사람의 목소리가 작은 합창처럼 퍼지는 듯 들린다.
- 낮은 음역에서 천천히 반복되는 베이스와 부드러운 타악기가 서두르지 않는 그루브를 만든다.
- 이 곡의 분위기가 늦은 밤 라디오 프로그램의 이름이 됐다. 그 뒤로 이 곡은 차분한 R&B 발라드를 가늠하는 기준점처럼 쓰였다.
미라클스 시절의 파트너 마브 타플린과 다시 손잡고 쓴 곡으로, 솔로 시대에 거둔 가장 큰 성공 중 하나다.
- 타플린의 부드러운 기타가 곡을 연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두 사람의 작곡 호흡이 솔로 시대로 넘어왔음을 보여 준다.
- 느린 템포로 시작해 후반으로 갈수록 로빈슨의 목소리가 점점 높이 올라가 가성(팔세토)으로 치솟는다.
- 현악과 코러스가 뒤를 받쳐 1970년대 말 부드러운 R&B 프로덕션 특유의 매끈한 질감을 들려준다.
- 1995년 디안젤로가 데뷔 앨범에서 이 곡을 다시 불렀다. 원곡과 새 세대의 해석을 나란히 들어 볼 만하다.
VI. 이야기를 짓는 원로 · 1987–2026
(전당) 1987년, 그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해 앨범 「원 하트비트」를 냈고, 수록곡 「저스트 투 시 허」로 이듬해 그래미 최우수 남성 R&B 보컬 퍼포먼스 상을 받았다. 수많은 히트곡을 썼지만 그래미 경쟁 부문에서 받은 첫 트로피였다. (자서전) 1988년 고디가 모타운을 매각하자 그도 오랫동안 지켜 온 부사장 자리를 내려놓았다. 이듬해 그는 작가 데이비드 리츠와 함께 쓴 자서전 「스모키: 인사이드 마이 라이프」를 냈다. 1980년대 중반 코카인 중독을 겪고 벗어난 일도 이 책에서 스스로 밝혔다. (헌사) 2002년 국가예술훈장을, 2006년 케네디 센터 공로상을 받았다. 2002년에는 프랜시스 글래드니와 재혼했다. 200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마이클 잭슨 추모식에서는 다이애나 로스와 넬슨 만델라가 보낸 추모 글을 대신 읽었다. 잭슨 파이브는 1969년 데뷔 앨범에서 그가 쓴 「후즈 러빙 유」를 불렀다. 어린 마이클의 노래는 이 곡을 대표하는 해석으로 남았다. (현재) 2014년, 그는 엘튼 존, 제임스 테일러 등과 옛 노래를 다시 부른 듀엣 앨범 「스모키 앤드 프렌즈」를 냈다. 2016년에는 미국 의회도서관이 대중음악 작곡가에게 주는 거슈윈상을 받았다. 80대에 들어서도 그는 새 앨범을 내고 무대에 섰다. 열일곱 살에 고디에게 배운 이야기 짓기는 70년 가까이 그의 일이었다.
덜 알려진 이야기
(기타리스트) 1959년 무렵, 다이애나 로스가 속한 프라이메츠가 모타운 오디션 자리를 마련해 달라며 같은 동네 선배인 그를 찾아왔다. 그는 부탁을 들어주면서 그룹의 기타리스트 마브 타플린을 미라클스로 데려왔다. 슈프림스의 출발을 다룬 이야기에서는 흔히 빠지는 대목이지만, 미라클스를 대표하는 기타 가락 상당수가 이 만남에서 비롯됐다. (수표) 「갓 어 잡」으로 받은 로열티 수표가 3달러 19센트에 불과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전해진다. 이 금액은 남의 레이블에 곡을 넘겨서는 남는 것이 없다는 로빈슨의 설득에 힘을 실었다. 모타운의 출발에 이런 셈법이 있었다는 사실은 성공담에 가려 잘 거론되지 않는다. (엇갈림) 「비잉 위드 유」는 원래 킴 칸스에게 줄 생각으로 쓴 곡이었다. 칸스가 그의 「모어 러브」를 다시 불러 히트시킨 직후였다. 그러나 프로듀서 조지 토빈의 권유로 결국 그가 직접 불렀다. 1981년 미국 차트에서 이 곡의 1위를 가로막은 노래는 공교롭게도 칸스의 「베티 데이비스 아이스」였다. (전당) 198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는 그의 이름만 올랐고, 미라클스의 다른 멤버들은 2012년에야 함께 헌액됐다. 리드 싱어 한 사람만 기리던 당시 관행 탓에 이런 사정은 오래 주목받지 못했다. (인용) 밥 딜런이 그를 미국 최고의 살아 있는 시인이라 불렀다는 말은 수십 년째 소개 글마다 따라붙는다. 하지만 딜런이 언제 어디서 그렇게 말했는지는 분명히 확인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용어 노트 📚🔎
팔세토
(말뜻) 이탈리아어 falsetto 는 거짓(falso)에 작다는 뜻의 꼬리말이 붙은 말로, 작은 가짜 목소리라는 뜻이다. 평소 말하는 목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라는 점이 이름에 담겨 있다. (팝에서) 성대를 얇고 가볍게 써서 평소 음역보다 훨씬 높은 소리를 내는 창법으로, 우리말로는 가성이라고 한다. 힘 있게 내지르는 소리보다 부드럽고 가냘프게 들려서 속삭이거나 애원하는 감정을 표현할 때 자주 쓰인다. 친구 목소리를 흉내 내며 장난으로 아주 높고 가는 소리를 내 본 적이 있다면, 그게 바로 가성이다. 스모키 로빈슨은 이 목소리를 발라드의 중심 악기처럼 썼다.
콜 앤 리스폰스
(팝에서) 한 사람이 한 소절을 부르면(콜) 다른 사람들이 그에 답하듯 받아 부르는(리스폰스) 방식이다. 흑인 교회에서 목사와 신도가 말을 주고받던 전통에서 나와 가스펠, 블루스, 소울, 두왑으로 이어졌다. 응원석에서 한쪽이 팀 이름을 외치면 다른 쪽이 구호로 받아치는 것과 같은 짜임새다. 미라클스의 초기 곡에서는 리드 보컬과 멤버들의 주고받기가 곡을 끌고 간다.
두왑
(말뜻) 두왑이라는 이름은 뜻 없는 소리에서 왔다. 화음을 받치는 멤버들이 내던 의미 없는 음절, 곧 두왑 같은 소리가 그대로 장르 이름이 됐다. (팝에서) 1940~50년대 미국 도시의 흑인 청년들이 길모퉁이나 계단에서 악기 없이 목소리만으로 부르던 보컬 그룹 음악이다. 한 사람이 선율을 부르면 나머지가 낮은 소리와 높은 소리로 화음을 쌓고 리듬까지 입으로 만든다. 친구들끼리 노래방 반주 없이 한 명은 노래하고 나머지는 둥둥, 빰빰 하며 반주 흉내를 내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미라클스도 이런 두왑 그룹으로 출발했다.
프로듀서
(말뜻) 영어 produce 는 라틴어 producere 에서 왔는데, 앞으로(pro) 이끌어 낸다(ducere)는 뜻이다. 가수 안에 있는 소리를 끌어내 음반으로 만드는 일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팝에서) 음반 녹음 전체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어떤 곡을 고를지, 어떤 악기와 연주자를 쓸지, 가수가 어느 대목을 어떻게 부를지 정하고, 녹음이 끝난 뒤 소리를 다듬는 일까지 맡는다. 학교 연극에서 배우는 아니지만 대본을 고르고 배역과 무대를 정하며 연습을 이끄는 연출 선생님과 비슷하다. 스모키 로빈슨은 직접 노래하면서 메리 웰스, 템테이션스 같은 다른 가수의 프로듀서로도 일했다. (다른 데서는) 경제학에서는 물건을 만드는 생산자를, 영화와 방송에서는 돈과 인력을 모아 작품을 기획하는 제작자를 가리킨다.
B면
(팝에서) 레코드판 시절 싱글 한 장에는 앞뒤로 한 곡씩 실렸다. 앞면(A면)에는 방송과 판매를 노리는 주력 곡을, 뒷면(B면)에는 덜 알려진 곡을 넣었다. 그런데 가끔 B면 곡이 따로 사랑받기도 했다. 과자 봉지 안에 든 덤 장난감이 과자보다 더 인기를 끄는 일과 비슷하다. 「숍 어라운드」의 B면에 실린 「후즈 러빙 유」는 훗날 잭슨 파이브가 다시 불러 대표곡처럼 남았다.
리프
(팝에서) 곡 안에서 되풀이되며 귀에 박히는 짧은 가락이나 반주 무늬다. 기타나 베이스, 피아노가 주로 연주하고, 곡을 듣자마자 무슨 노래인지 알아채게 하는 얼굴 같은 역할을 한다. 체육 시간 줄넘기에서 반복되는 박자 구호처럼, 짧지만 계속 돌아오기 때문에 몸이 먼저 기억한다. 「더 트랙스 오브 마이 티어스」를 여는 마브 타플린의 기타 가락이 좋은 예다.
콰이어트 스톰
(말뜻) 고요한 폭풍이라는 뜻이다. 조용하지만 감정은 세차게 일렁인다는, 서로 반대되는 두 말을 붙인 이름이다. 스모키 로빈슨의 1975년 앨범 제목에서 왔다. (팝에서) 1976년 워싱턴 D.C.의 라디오 진행자 멜빈 린지가 늦은 밤 부드럽고 느린 R&B 발라드를 이어 트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이 앨범 이름을 붙였다. 이 방식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차분하고 감미로운 밤의 R&B를 가리키는 장르 이름이 됐다. 잠들기 전 조용히 틀어 두는 플레이리스트를 떠올리면 비슷하다. 다만 이 플레이리스트는 사랑 노래가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