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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vin Gaye

마빈 게이 (1939–1984)

아버지의 교회에서 배운 목소리로 거리의 고통과 침실의 욕망, 그리고 신을 한꺼번에 노래한 사람.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워싱턴 D.C. 출생목사 아버지교회의 노래2. 모타운하비 퓨쿼베리 고디와 계약크루너의 꿈3. 듀엣태미 테럴그레이프바인 1위테럴의 죽음4. 각성왓츠 고잉 온동생의 베트남창작 자율권5. 굴곡렛츠 겟 잇 온히어, 마이 디어빚과 코카인6. 마지막오스텐드 재기섹슈얼 힐링아버지의 총게이1939–1984모타운의 미남 가수에서 「왓츠 고잉 온」의 양…
무대의 여정 🧭🗺️
N미국벨기에워싱턴 D.C.1939–1959시카고1959–1960디트로이트1960–1972로스앤젤레스1972–1980오스텐드1981–1982로스앤젤레스1983–1984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마빈 게이 시니어

    목사였던 아버지로, 아들의 신앙과 상처의 뿌리였고 끝내 그의 생명을 앗았다.

  • 스승하비 퓨쿼

    문글로스의 리더로 그를 그룹에 들이고 디트로이트로 이끈 첫 스승이다.

  • 후원베리 고디

    모타운 창립자이자 처남으로, 그를 스타로 키웠고 「왓츠 고잉 온」의 발매를 두고 그와 맞섰다.

  • 동료태미 테럴

    모타운 최고의 듀엣 파트너였고, 1970년 그녀의 죽음은 그의 음악이 방향을 트는 계기가 됐다.

  • 가족프랭키 게이

    베트남에서 돌아와 들려준 전쟁 이야기로 「왓츠 고잉 온」에 영감을 준 남동생이다.

  • 우정스티비 원더

    모타운의 후배로, 게이가 연 창작 자율의 길을 함께 걸었고 그의 장례식에서 노래했다.

YouTube에서 8곡 이어 듣기 ↗

I. 목사관의 소년 · 1939–1957

(출생) 1939년 4월,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서 마빈 펜츠 게이 주니어로 태어났다. 성은 아직 끝에 e가 없는 Gay였다. 아버지 마빈 게이 시니어는 유대교 율법과 오순절 신앙을 섞은 작은 교파 하우스 오브 갓의 목사였고, 어머니 앨버타는 남의 집 가사 일로 생계를 보탰다. 위로 누나 진, 아래로 남동생 프랭키와 여동생 지올라가 있었다. 집은 가난했고 한때 공공임대 단지에서 살았다. (아버지) 아버지는 엄격하고 변덕스러웠다. 게이는 훗날 전기 작가 데이비드 리츠에게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자주 매를 맞았고 어머니가 그 사이에서 자신을 감쌌다고 털어놓았다. 아버지의 인정을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한 이 관계는 평생 풀리지 않은 매듭으로 남았다. (교회) 노래는 아버지의 교회에서 시작됐다. 어린 나이부터 예배에서 노래했고 피아노와 드럼을 익혔다. 학교에서는 말수가 적은 아이였지만 노래할 때만은 주목을 받았다. 가스펠의 화성과 높은 음을 부드럽게 다루는 법이 이때 몸에 배었다. (입대)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채 1956년 공군에 입대했으나 규율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훗날 일부러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척해 군을 떠났다고 말했고, 이듬해 일반 제대 처리됐다. 워싱턴으로 돌아온 그는 거리 모퉁이에서 화음을 맞추던 두왑 그룹들 사이로 들어갔다.

II. 두왑에서 모타운으로 · 1957–1963

(퓨쿼) 친구들과 만든 그룹 마키스는 보 디들리의 도움으로 싱글을 냈지만 반응이 없었다. 전환점은 문글로스의 리더 하비 퓨쿼였다. 1959년 원년 멤버와 갈라선 퓨쿼는 마키스를 새 문글로스로 삼았고, 게이는 그를 따라 시카고로 가 체스 레코드에서 녹음했다. 퓨쿼는 무대 매너와 화음 편곡, 음반 사업의 생리를 가르친 첫 스승이었다. (디트로이트) 1960년 그룹이 흩어지자 퓨쿼와 함께 디트로이트로 옮겼다. 퓨쿼는 베리 고디의 누이 그웬과 결혼하며 모타운 사람들과 가까워졌고, 퓨쿼의 주선으로 게이는 고디의 레이블과 계약했다. 1961년 데뷔하며 성에 e를 붙였다. 존경하던 샘 쿡을 의식한 선택이자, 아버지의 성과 그것을 두고 놀림받던 기억에서 거리를 두려는 뜻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크루너) 그가 되고 싶었던 것은 냇 킹 콜이나 프랭크 시내트라처럼 속삭이듯 부드럽게 부르는 발라드 가수(크루너)였다. 첫 앨범 「더 솔풀 무즈 오브 마빈 게이」(1961)는 재즈 스탠더드 모음이었지만 팔리지 않았다. 그사이 그는 녹음실에 불려 다니는 연주자(세션 연주자)로 드럼을 쳤고, 마벨레츠의 「비치우드 4-5789」 작곡에도 이름을 올렸다. (첫 히트) 1962년 춤추기 좋은 R&B 「스터번 카인드 오브 펠로」가 첫 히트가 됐다. 크루너의 꿈과 달리 그는 이 곡을 거칠게 내지르며 불렀다. 이 무렵 열일곱 살 연상인 고디의 누나 애나 고디와 결혼했고, 이듬해의 히트 「프라이드 앤 조이」는 애나를 위해 쓴 노래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아들 하나를 두었다.

III. 듀엣의 시절 · 1964–1970

(공장) 1964년 홀랜드-도지어-홀랜드가 쓴 「하우 스위트 잇 이즈」가 크게 히트했고, 스모키 로빈슨이 써 준 「아일 비 도건」과 「에인트 댓 피큘리어」(1965)가 뒤를 이었다. 모타운의 체계 속에서 그는 단정한 정장의 미남 스타로 다듬어졌지만, 무대 공포증이 심해 순회공연을 늘 버거워했다. (테럴) 고디는 그를 여성 가수와 짝지었다. 메리 웰스, 킴 웨스턴에 이어 1967년 태미 테럴을 만났다. 애슈퍼드와 심프슨이 쓴 「에인트 노 마운틴 하이 이너프」 「유어 올 아이 니드 투 겟 바이」가 잇따라 히트하며 둘은 모타운을 대표하는 남녀 듀오가 됐다. 게이는 테럴을 누이처럼 아꼈다. (쓰러짐) 1967년 10월 버지니아의 한 대학 공연 도중 테럴이 그의 품으로 쓰러졌다. 뇌종양이었다. 여러 차례 수술 끝에 그녀는 1970년 3월 스물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게이는 깊이 무너졌고 한동안 무대에 서지 않았다. (그레이프바인) 그사이 노먼 휫필드가 제작한 「아이 허드 잇 스루 더 그레이프바인」이 1968년 말 싱글로 나와 7주간 빌보드 1위에 올랐다. 고디는 처음 그의 녹음을 반려했고 글래디스 나이트 앤 더 핍스의 버전이 먼저 히트했지만, 라디오가 그의 앨범 수록곡을 틀면서 판이 뒤집혔다. 템테이션스의 프로듀서이기도 했던 휫필드는 그에게 편한 음역보다 높은 조로 부르게 했다. 정작 게이는 그 성공을 즐기지 못했고, 남이 만든 노래를 부르는 꼭두각시가 된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우 스위트 잇 이즈 (How Sweet It Is (To Be Loved by You))1964노래 Marvin Gaye

모타운의 체계 속에서 매끈한 스타로 다듬어지던 시기의 정점이다. 무대를 두려워하던 그가 녹음실에서는 얼마나 여유로웠는지를 들려준다.

  • 곡을 여는 것은 묵직한 피아노와 탬버린이다. 둘째·넷째 박을 세게 치는(백비트) 리듬에 탬버린이 겹쳐 모타운 특유의 경쾌한 바닥을 깐다.
  • 게이의 목소리는 힘을 빼고 미끄러지듯 흐른다. 크루너를 꿈꾸던 그의 부드러운 음색과 가스펠식 외침이 한 곡 안에서 오간다.
  • 여성 코러스가 그의 노래에 화답하는 주고받기(콜 앤 리스폰스)는 교회 예배의 형식을 그대로 옮겨 온 것처럼 들린다.
  • 후반으로 갈수록 그는 정해진 가락에서 벗어나 즉흥으로 음을 꾸민다. 같은 후렴이 반복될 때마다 조금씩 다른 표정을 들어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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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인트 노 마운틴 하이 이너프 (Ain't No Mountain High Enough)1967실황 Marvin Gaye · 1976

태미 테럴과의 첫 히트로, 둘의 듀엣이 모타운의 얼굴이 된 출발점이다. 그녀가 쓰러지기 몇 달 전의 목소리다.

  • 게이가 낮고 차분하게 첫 구절을 열고, 테럴이 밝은 음색으로 이어받는다. 두 목소리가 서로 다른 온도로 시작해 점점 하나로 포개지는 짜임새가 핵심이다.
  • 현악과 팀파니가 후렴마다 크게 부풀어 오른다. 하비 퓨쿼와 조니 브리스톨의 제작은 작은 사랑 노래를 웅장한 행진처럼 키운다.
  • 두 사람의 목소리는 따로 녹음해 합쳤다고 전해진다. 그런데도 마치 마주 보고 부르는 듯한 호흡이 들린다.
  • 후렴에서 게이는 테럴보다 한 발 물러서 화음을 받친다. 듀엣에서 그가 상대를 빛나게 하는 방식을 들어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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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허드 잇 스루 더 그레이프바인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1968실황 Marvin Gaye · 1980 Montreux

고디가 한 번 반려한 녹음이 7주 연속 1위가 됐다. 성공의 한복판에서 꼭두각시가 된 듯했다는 그의 불안이 곡의 어두운 질감과 겹친다.

  • 음산한 전자 피아노 도입부와 낮게 울리는 드럼이 처음부터 불길한 분위기를 깐다. 1967년에 먼저 나온 글래디스 나이트 앤 더 핍스의 경쾌한 버전과 비교하면 차이가 뚜렷하다.
  • 휫필드는 게이에게 편한 음역보다 높은 조로 부르게 했다. 고음에서 목소리가 살짝 갈라지며 긴장하는 결이 배신당한 사람의 초조함처럼 들린다.
  • 현악은 화려하게 노래하지 않고 서늘하게 깔리며 긴장을 유지한다. 곡 내내 해소되지 않는 불안이 이 편곡의 의도다.
  • 끝부분에서 그는 같은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며 음을 굽이치게 늘인다(멜리스마).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어 가는 감정의 곡선을 따라가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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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 1970–1972

(전쟁) 베트남에서 돌아온 동생 프랭키가 들려준 전장의 이야기, 테럴의 죽음, 디트로이트 거리의 가난과 폭력이 그를 흔들었다. 그때 포 톱스의 레날도 오비 벤슨이 1969년 버클리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을 보고 만든 곡의 초안을 가져왔다. 게이는 앨 클리블랜드와 함께 이를 다듬어 「왓츠 고잉 온」을 완성했다. (거부) 고디는 정치적인 노래가 스타의 이미지를 해친다며 발매를 반대했다. 게이는 이 곡이 나오지 않으면 다른 녹음을 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1971년 1월 싱글이 나오자 R&B 차트 1위에 오르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고디는 같은 결의 곡으로 앨범을 채워 달라고 요청했다. (앨범) 5월에 나온 앨범 「왓츠 고잉 온」은 곡과 곡이 끊김 없이 이어지며 하나의 주제를 펼치는 앨범(콘셉트 앨범)이었다. 전쟁, 마약, 도시 빈곤, 환경 오염, 그리고 신앙을 귀향한 병사의 시선으로 엮었다. 그는 처음으로 직접 제작을 맡아 펑크 브라더스의 연주에 현악과 재즈풍 편곡을 입혔다. 아버지의 교회에서 배운 신에 대한 물음이 세상을 향한 물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자율) 이 성공은 모타운에서 가수가 자기 음악을 스스로 결정하는 선례가 됐다. 같은 해 성년이 된 스티비 원더가 재계약에서 창작의 자율권을 얻어 낸 것도 이 흐름 위에 있었다는 것이 비평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게이는 당시 흑인 가수로서 이례적인 규모의 재계약을 맺었고, 1972년 영화 음악 「트러블 맨」을 낸 뒤 모타운을 따라 로스앤젤레스로 옮겼다.

♪왓츠 고잉 온 (What's Going On)1971공식 MV — Marvin Gaye (2019)

동생의 전쟁 이야기와 테럴의 죽음, 거리의 폭력이 하나의 질문이 됐다. 레이블 수장의 반대를 넘어 그가 처음 스스로 만든 음악이다.

  • 곡은 파티의 웅성거림과 색소폰으로 열린다. 친구인 디트로이트 라이언스 선수들의 목소리가 섞인 이 소음이 노래를 거실의 대화처럼 만든다.
  • 게이의 목소리 두 개가 겹쳐 들린다. 엔지니어가 서로 다른 두 테이크를 실수로 함께 틀었다가 그 울림이 좋아 그대로 살렸다고 알려져 있는, 같은 목소리를 여러 번 겹쳐 녹음하는 방식(더블 트래킹)이다.
  • 제임스 제이머슨의 베이스는 정해진 리프를 되풀이하지 않고 가락처럼 자유롭게 떠다닌다. 콩가와 함께 느슨하면서도 끈질긴 흐름을 만든다.
  • 그는 소리를 지르지 않고 달래듯 묻는다. 분노 대신 슬픔과 연민으로 말하는 화법이 이 저항가를 특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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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욕망과 빚 · 1973–1980

(욕망) 1973년 「렛츠 겟 잇 온」은 시선을 거리에서 침실로 돌렸다. 작곡 파트너 에드 타운센드와 만든 타이틀곡은 원래 신앙에 관한 노래였다가 관능의 노래로 바뀌었다. 같은 해 다이애나 로스와 듀엣 앨범 「다이애나 앤 마빈」을 냈는데, 두 사람은 대부분 따로 녹음했다고 알려져 있다. 1974년에는 테럴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본격적인 순회공연에 나섰다. (재혼) 그는 1977년 재니스 헌터와 재혼했고, 두 사람 사이에서 두 자녀가 태어났다. (이혼) 애나 고디와의 이혼 다툼은 길었다. 1977년 합의에 따라 그는 다음 앨범의 선금과 인세 일부를 애나에게 넘기기로 했다. 처음엔 대충 만들 생각이었으나, 결국 결혼의 시작과 끝을 고스란히 쏟아낸 두 장짜리 「히어, 마이 디어」(1978)를 만들었다. 당시엔 혹평과 저조한 판매에 그쳤지만 훗날 대중음악에서 가장 솔직한 이혼 기록으로 재평가됐다. 그 사이 디스코의 요구에 반쯤 마지못해 응한 「갓 투 기브 잇 업」(1977)은 1위에 올랐다. (곤궁) 씀씀이와 세금 체납으로 빚이 불어났고 코카인 의존이 깊어졌다. 그는 하와이 마우이로 옮겨 한때 개조한 빵 배달 트럭에서 지냈다. 리츠의 전기에 따르면 이 무렵 코카인을 한꺼번에 들이켜 목숨을 끊으려 한 적도 있었다.

♪렛츠 겟 잇 온 (Let's Get It On)1973실황 Marvin Gaye · 1976 Amsterdam

세상을 향하던 시선이 사랑과 욕망으로 돌아섰다. 신앙에 관한 노래로 시작됐다가 관능의 노래가 된 이 곡에는 그의 영혼과 육체가 함께 들어 있다.

  • 페달을 밟아 소리가 울먹이듯 흔들리는 기타(와와 기타)의 도입부는 첫 음만으로도 곡을 알아보게 할 만큼 유명하다.
  • 그는 낮은 음역에서 속삭이다가 갑자기 높은 가성으로 치솟는다. 그 넓은 낙차가 설득하고 애원하는 화법을 만든다.
  • 여러 겹으로 녹음한 그의 애드리브가 리드 보컬 뒤에서 대답하듯 흐른다. 혼자서 합창단을 이룬 셈이다.
  • 느린 템포 위에서 베이스와 드럼이 서두르지 않고 박자 뒤에 살짝 기대듯 연주한다. 이 느긋함이 곡의 관능을 떠받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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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투 기브 잇 업 (Got to Give It Up)1977무대 Marvin Gaye · Soul Train

이혼과 빚에 시달리던 시기, 디스코를 해 보라는 요구에 반쯤 마지못해 응한 곡이 1위에 올랐다. 수줍은 남자가 무도장에 나서는 이야기를 스스로를 놀리듯 노래한다.

  • 곡 전체를 파티 소음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감싼다. 녹음실 곡이지만 라이브 앨범에 실려 파티 한복판에 있는 듯한 현장감을 준다.
  • 그는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진성이 아닌 가볍게 띄운 가성(팔세토)으로 노래한다. 웅장함 대신 장난스러운 가벼움을 택했다.
  • 카우벨 같은 타악기와 통통 튀는 베이스가 단순한 리듬을 끝없이 굴린다. 화려한 디스코 현악 없이도 몸이 움직이는 이유를 들어 볼 것.
  • 12분 가까운 앨범 버전은 같은 그루브 위에서 즉흥적으로 늘어난다. 짧은 싱글과 비교하면 반복이 만드는 최면 같은 효과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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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오스텐드, 그리고 마지막 · 1980–1984

(망명) 1980년 유럽 공연 뒤 런던에 머물던 그는 1981년 2월 벨기에 공연 기획자 프레디 쿠사르트의 초대로 북해 연안 도시 오스텐드에 정착했다. 바닷가를 달리고 권투로 몸을 추슬렀으며 동네 교회에 나갔다. 약을 줄인 이 시기를 그는 드물게 평온했던 때로 기억했다. (결별) 같은 해 모타운은 그가 완성하지 않았다고 여긴 앨범을 「인 아워 라이프타임」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동의 없이 내보냈다. 그는 다시는 모타운을 위해 녹음하지 않겠다고 했고, 1982년 CBS와 계약했다. (치유) 1982년 가을 벨기에에서 만든 「섹슈얼 힐링」이 나왔다. 사람 손 대신 기계가 박자를 치는 장치(드럼 머신)를 앞세운 이 곡으로 그는 1983년 2월 생애 첫 그래미 두 개를 받았다. 같은 달 NBA 올스타전에서 부른 느린 소울풍 국가는 전설이 됐고, 모타운 25주년 기념 공연에서는 피아노 앞에서 흑인 음악의 역사를 이야기한 뒤 「왓츠 고잉 온」을 불렀다. 그 무대에는 스티비 원더, 다이애나 로스, 템테이션스, 마이클 잭슨도 섰다. (총성) 1983년 투어는 성공했지만 코카인과 피해망상이 그를 갉아먹었다. 투어가 끝나자 그는 자신이 부모에게 사 준 로스앤젤레스 집으로 들어가 다시 아버지와 한 지붕 아래 살았다. 1984년 4월 1일, 마흔다섯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두고 말다툼 끝에 아버지가 쏜 총에 숨졌다. 아버지는 고살 혐의를 다투지 않았고 집행유예와 보호관찰을 선고받았다. 장례식에서는 스티비 원더가 노래했고, 유해는 태평양에 뿌려졌다.

♪섹슈얼 힐링 (Sexual Healing)1982공식 MV — Marvin Gaye

모타운을 떠나 벨기에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던 시기에 만든 재기작이다. 이 곡으로 그는 생애 첫 그래미를 받았다.

  • 곡의 뼈대는 롤랜드 TR-808 드럼 머신이다. 기계적인 박자 위에 따뜻한 목소리를 얹은 대비가 1980년대 R&B의 소리를 미리 들려준다.
  • 통통 튀는 신시사이저 베이스와 짧은 키보드 리프가 단순하게 되풀이된다. 빈 공간이 많은 편곡이라 목소리가 더 가까이 들린다.
  • 그는 여러 겹의 자기 목소리로 화음을 쌓아 혼자 코러스를 만든다. 리드와 화음이 서로 속삭이듯 주고받는다.
  • 괴로움을 고백하는 듯한 화법이지만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남아 있다. 치유를 갈구하는 사람의 진지함과 여유가 함께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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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깃발 (The Star-Spangled Banner)1983실황 Marvin Gaye · 1983 NBA 올스타전

1983년 2월 NBA 올스타전에서 부른 미국 국가다. 죽기 1년여 전, 군을 떠나고 저항가를 불렀던 그가 국가를 소울로 바꿔 놓은 순간이다.

  • 익숙한 행진곡풍 국가를 느린 소울 발라드로 바꿨다. 드럼 머신의 단순한 박자만이 목소리를 받친다.
  • 그는 음을 하나하나 미끄러뜨리고 늘이며(멜리스마) 국가를 교회의 찬송처럼 부른다. 엄숙함과 관능이 한 목소리에 함께 있다.
  • 노래가 이어질수록 관중이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기 시작한다. 경기장 전체가 그의 그루브에 끌려드는 순간이 녹화에 남아 있다.
  • 높은 음을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절제한다. 화려한 기교보다 여백으로 감동을 만드는 그의 말년 창법을 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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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풋볼) 1970년 무렵 게이는 프로 미식축구 선수가 되겠다며 진지하게 몸을 만들었다. 디트로이트 라이언스 입단 테스트를 원했지만, 구단은 부상 위험과 보험 문제를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때 친해진 라이언스의 멜 파와 렘 바니는 「왓츠 고잉 온」 도입부의 파티 소음과 코러스에 목소리를 보탰다. 음악사의 명반 첫머리에 운동선수들의 웃음이 담긴 사연은 앨범 해설의 각주에나 등장한다. (발라드) 크루너가 되겠다던 꿈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 편곡자 바비 스콧과 함께 재즈 스탠더드 발라드를 녹음했고, 1970년대 말까지 여러 차례 다시 매달렸다고 알려져 있다. 생전에는 끝내 발표하지 못한 이 녹음은 그가 죽고 13년 뒤인 1997년 「버너러블」로 나왔다. 소울의 거인으로 기억되는 탓에, 그가 평생 시내트라 같은 가수를 동경했다는 사실은 대중에게 잘 전해지지 않았다. (오스텐드) 벨기에 시절은 짧았지만 기록이 남아 있다. 벨기에 감독 리샤르 올리비에가 1981년 오스텐드의 게이를 찍은 다큐멘터리에는 바닷가를 걷고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는 그의 모습이 담겼다. 미국 언론의 시야 밖에서 보낸 시간이었기에, 「섹슈얼 힐링」이 북해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팬들 사이에서만 회자됐다.

용어 노트 📚🔎

크루너

(말뜻) 영어 croon은 낮고 부드럽게 흥얼거린다는 뜻이다. 크루너는 그렇게 노래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팝에서) 마이크 가까이에서 힘을 빼고 속삭이듯 부르는 발라드 가수를 말한다. 냇 킹 콜과 프랭크 시내트라가 대표적이다. 체육관 끝까지 들리게 소리치는 대신, 바로 옆 친구에게 비밀 이야기를 하듯 조용히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마이크가 작은 소리도 잡아 주기 때문에 가능해진 창법이다.

세션 연주자

(말뜻) 세션(session)은 라틴어 sessio에서 왔는데, 함께 앉아 있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팝에서) 자기 이름으로 활동하는 스타가 아니라, 녹음실에 불려 가 다른 가수의 음반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전문 연주자다. 모타운의 펑크 브라더스가 유명하다. 학교 연극에서 무대 뒤에서 효과음과 반주를 맡는 친구들과 비슷하다. 관객은 이름을 모르지만 그들 없이는 공연이 완성되지 않는다. (다른 데서는) 컴퓨터에서는 접속해서 로그아웃할 때까지의 한 번의 이용 시간을 세션이라고 부른다.

콘셉트 앨범

(팝에서) 여러 곡을 따로따로 모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나 이야기를 따라 곡들을 차례로 짜 넣은 앨범이다. 곡과 곡 사이를 끊지 않고 이어 붙이기도 한다. 「왓츠 고잉 온」은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의 눈으로 본 세상이라는 하나의 이야기로 묶였다. 낱장의 그림 여러 장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그림책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더블 트래킹

(팝에서) 같은 가수가 같은 부분을 두 번 이상 불러 녹음한 뒤 겹쳐서 들려주는 방법이다. 목소리가 더 두껍고 풍성하게 들린다. 「왓츠 고잉 온」에서는 게이의 서로 다른 두 녹음이 겹쳐 묘한 울림을 만든다. 같은 그림을 투명한 종이 두 장에 조금씩 다르게 그려 포개면 선이 더 진하고 생생해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팔세토

(말뜻) 이탈리아어 falso는 거짓이라는 뜻이다. 팔세토는 평소 목소리가 아닌 가짜 목소리, 곧 가성이라는 뜻이 된다. (팝에서) 남자 가수가 평소 목소리로는 닿지 않는 높은 음을, 목의 힘을 빼고 가볍고 얇은 소리로 내는 창법이다. 소울과 R&B에서 부드럽고 애틋한 느낌을 낼 때 많이 쓴다. 장난으로 아기 목소리나 만화 캐릭터 목소리를 흉내 낼 때 목이 가볍게 위로 뜨는 느낌이 바로 가성이다.

드럼 머신

(팝에서) 사람이 드럼을 치는 대신, 미리 입력한 박자를 기계가 똑같이 되풀이해 연주하는 전자 악기다. 롤랜드 TR-808이 유명하고, 「섹슈얼 힐링」이 이 기계의 소리를 대중에게 알린 곡 가운데 하나다. 줄넘기를 할 때 친구가 돌려 주는 대신 자동으로 일정하게 도는 기계를 쓰는 것과 비슷하다. 박자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정확하다.

멜리스마

(말뜻) 그리스어 melisma는 노래라는 뜻이다. (팝에서) 가사의 한 음절을 여러 음으로 굽이치게 늘여 부르는 창법이다. 흑인 교회의 가스펠에서 나와 소울과 R&B 가수들의 중요한 기교가 됐다. 친구 이름을 부를 때 짧게 부르지 않고 노래하듯 오르락내리락 길게 늘이는 것과 비슷하다. 한 글자에 감정이 여러 겹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