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ie Wonder
보지 못하는 눈 대신 귀와 손끝으로 한 시대의 소리를 새로 짠 음악가.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룰라 메이 하더웨이
아들을 디트로이트에서 키웠고, 「Signed, Sealed, Delivered I'm Yours」 등을 함께 쓴 공동 작곡자였다.
- 스승클래런스 폴
모타운의 프로듀서로 소년 시절의 그를 투어에 데리고 다니며 무대와 음악을 가르쳤다.
- 후원베리 고디
열한 살의 그와 계약했고, 1971년 재계약에서 전례 드문 창작 자율권을 내주었다.
- 동료시리타 라이트
작사 파트너이자 첫 아내로 그의 초기 자작곡을 함께 썼고, 그의 프로듀싱으로 음반을 냈다.
- 동료맬컴 세실
로버트 마골레프와 함께 신시사이저 장치 TONTO로 1970년대 전성기 앨범의 소리를 함께 만들었다.
- 우정마이클 잭슨
모타운 소년 스타 시절부터의 벗으로, 곡을 써 주고 듀엣을 했으며 2009년 추모식에서 노래로 작별했다.
I. 새기노의 아이 · 1950–1961
(출생) 1950년 5월 13일, 미국 미시간주 새기노에서 스티블랜드 하더웨이 저킨스(Stevland Hardaway Judkins)로 태어났다. 예정보다 6주가량 일찍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지내는 동안 미숙아 망막병증을 얻었다. 인큐베이터 안의 과다한 산소가 원인으로 꼽힌다. 그는 평생 앞을 보지 못했다. (디트로이트) 어머니 룰라 메이 하더웨이는 1954년 무렵 아이들을 데리고 디트로이트로 옮겼고, 그는 뒤에 스티블랜드 모리스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그는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며 자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회) 그는 화이트스톤 침례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했고, 피아노와 하모니카, 드럼을 어려서부터 익혔다. 악기를 처음 손에 넣은 경위는 이웃이 물려준 피아노, 친척이 건넨 하모니카 등 전기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진다. 라디오의 가스펠과 리듬 앤 블루스가 그의 첫 교과서였다. 같은 시각장애인 음악가였던 레이 찰스는 그에게 각별한 본보기였다. (발견) 1961년, 열한 살의 그는 미러클스의 멤버 로니 화이트 앞에서 노래하고 하모니카를 불 기회를 얻었다. 로니 화이트의 동생과 친구였던 인연이었다. 화이트는 그를 모타운으로 데려갔고, 사장 베리 고디는 계약을 맺었다. 미성년자였던 그의 수입은 성년까지 신탁으로 묶였고, 그는 그동안 정해진 용돈을 받으며 일했다. 이 조건은 열 해 뒤 그의 음악 인생을 바꾸는 협상의 출발점이 된다.
II. 리틀 스티비 · 1962–1970
(이름) 모타운은 그에게 리틀 스티비 원더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름을 지은 사람이 고디인지 프로듀서 클래런스 폴인지는 기억이 엇갈린다. 폴은 그를 맡아 투어에 데리고 다니며 무대와 음악을 가르친 첫 스승이었다. 그는 미시간 시각장애인 학교에 다니며 학업과 녹음을 함께 했고, 투어 중에는 개인 교사가 동행했다. (핑거팁스) 재즈 연주곡과 레이 찰스 헌정곡으로 채운 첫 두 앨범은 반응이 크지 않았다. 돌파구는 1962년 시카고 리걸 극장 공연 실황이었다. 1963년 싱글로 나온 「Fingertips」 2부가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랐고, 실황 앨범 「The 12 Year Old Genius」도 앨범 차트 정상에 섰다. 열세 살 소년이 싱글과 앨범 차트를 동시에 차지했다. (변성기) 곧 목소리가 변하면서 회사 안에서는 그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들이 생겼다. 그는 1965년 실비아 모이, 헨리 코스비와 함께 쓴 「Uptight (Everything's Alright)」로 다시 정상권에 올랐다. 아이의 재주가 아니라 청년 가수의 노래였다. 1966년에는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를 불러 사회를 향한 노래에도 손을 뻗었다. 같은 무렵 그가 코스비와 만든 가락에 스모키 로빈슨이 가사를 붙인 곡이 1970년 미러클스의 1위곡 「The Tears of a Clown」이 됐다. (자립) 1970년 「Signed, Sealed, Delivered I'm Yours」는 그가 처음 직접 프로듀싱한 히트였다. 공동 작곡자 명단에는 어머니 룰라 메이와 모타운 직원 출신 가수 시리타 라이트가 있었다. 그는 그해 시리타 라이트와 결혼했고 두 사람은 1972년 갈라섰지만, 그 뒤에도 그는 그녀의 음반을 프로듀싱했다. 1971년 앨범 「Where I'm Coming From」의 곡 대부분도 둘이 함께 썼다. 같은 시기 스피너스에게 「It's a Shame」을 써 주며 작곡가로서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열두 살 소년의 즉흥 무대가 녹음된 그대로 1위에 오른 곡으로, 리틀 스티비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 곡의 뼈대는 하모니카가 짧은 가락을 던지면 관객이 손뼉과 함성으로 받는 주고받기(콜 앤 리스폰스)다. 노래라기보다 무대 위 놀이처럼 들린다.
- 그가 쓴 것은 옆의 단추를 눌러 반음까지 낼 수 있는 크로매틱 하모니카로, 들이쉬고 내쉬는 짧은 음들이 리듬 악기처럼 튀어 오른다.
- 끝난 줄 알았던 무대로 소년이 다시 돌아와 연주를 이어 가자, 다음 순서를 준비하던 밴드가 허둥지둥 따라붙는 혼란이 그대로 녹음됐다. 다음 무대 연주자로 알려진 누군가가 무슨 조로 치느냐고 외치는 소리도 들린다.
- 싱글 앞면이었던 1부는 그가 봉고를 두드리는 연주곡에 가깝다. 2부와 이어 들으면 공연의 흐름이 보인다.
어머니 룰라 메이, 시리타 라이트와 함께 쓰고 처음 직접 프로듀싱한 히트로, 신동이 제작자로 서는 첫걸음이었다.
- 인도 악기 시타르의 소리를 내도록 만든 전기 기타(일렉트릭 시타르)가 도입부의 짤랑이는 리프를 연다.
- 짧은 외침으로 들어오는 첫 소절부터 가스펠 교회에서 온 거칠고 뜨거운 음색이 앞에 나선다. 변성기를 지난 성인 가수의 목소리다.
- 둘째·넷째 박을 세게 치는(백비트) 드럼과 탬버린 위로 짧게 끊어 찌르는 혼 섹션이 곡을 쉴 새 없이 밀어붙인다.
- 사랑의 약속을 서류에 서명하고 봉인해 보내듯 확인하는 화법이 후렴에서 코러스와 주고받으며 반복된다.
III. 스물한 번째 생일 · 1971–1973
(성년) 1971년 5월, 스물한 살이 되면서 미성년 시절의 계약은 효력을 잃었다. 그는 신탁에 묶여 있던 돈을 받았고, 모타운과의 재계약을 서두르지 않았다. 변호사 조해넌 비고다를 내세운 협상 끝에 더 높은 로열티와 음반 제작의 폭넓은 자율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디의 모타운이 소속 가수에게 이 정도 자율을 준 것은 전례가 드물었다. 같은 해 마빈 게이가 「What's Going On」으로 회사의 제작 방식을 넘어선 일도 배경이 됐다. (톤토) 그는 뉴욕에서 맬컴 세실과 로버트 마골레프를 만났다. 두 사람은 여러 신시사이저를 엮은 거대한 장치 TONTO를 운용하고 있었다. 그는 이 장치에 매료돼 일렉트릭 레이디 스튜디오 등에서 밤낮없이 녹음했고, 드럼·베이스·건반 대부분을 혼자 연주해 겹겹이 쌓았다. 1972년 「Music of My Mind」가 첫 결실이었다. (토킹북) 같은 해 「Talking Book」이 이어졌다.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와 「Superstition」이 모두 1위에 올랐다. 「Superstition」은 기타리스트 제프 벡과의 교류에서 나온 곡으로 벡에게 주기로 했던 것인데, 모타운이 원더의 녹음을 먼저 싱글로 냈다. 그해 여름 롤링 스톤스의 북미 투어에 오프닝으로 나서며 그는 록 관객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이너비전스) 1973년 8월의 「Innervisions」는 사랑 노래를 넘어 도시의 가난과 인종차별(「Living for the City」), 약물(「Too High」), 정치 풍자(「He's Misstra Know-It-All」), 신앙과 다시 태어남(「Higher Ground」)을 다뤘다. 디트로이트의 거리에서 보고 들은 미국과, 그가 믿는 영적 세계가 한 장의 앨범에 나란히 놓였다. 손에 넣은 자유를 그는 곧바로 할 말을 하는 데 썼다.
재계약으로 얻은 자유와 신시사이저 실험이 처음 대중적으로 터진 곡이다. 미신과 불안에 기대는 태도를 경계하는 노래다.
- 곡은 그가 직접 친 드럼으로 시작한다. 하이햇을 잘게 쪼개 치는 리듬이 처음부터 곡의 맥박을 정한다.
- 건반을 누르면 줄을 때려 톡 쏘는 소리를 내는 전기 건반 악기(클라비넷)를 여러 번 겹쳐 녹음했다. 리프가 박의 정면이 아니라 사이를 파고드는 엇박(싱코페이션)으로 걸려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 낮은 음역의 베이스는 그가 신시사이저로 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클라비넷과 맞물려 그루브의 뼈대를 이룬다.
- 트럼펫과 색소폰이 리프 사이사이를 찌르듯 끼어들며 곡에 날을 세운다.
- 1973년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에 나와 연주한 실황은 지금도 그의 대표적인 무대로 회자된다.
미시시피에서 뉴욕으로 올라온 한 가족의 이야기로 도시의 가난과 인종차별을 그린 곡이다. 1975년 그래미 최우수 R&B 노래상을 받았다.
- 드럼과 신시사이저 베이스, 건반, 겹겹의 코러스까지 거의 모든 소리를 그가 혼자 연주하고 불렀다.
- 절이 거듭될수록 목소리가 점점 거칠어져, 마지막 절에서는 쉬고 갈라진 소리로 분노를 토해 낸다. 같은 사람이 같은 곡 안에서 다른 목소리가 된다.
- 앨범 버전 중간에는 버스 정류장, 거리의 소음, 체포 장면을 배우들의 대사로 연출한 짧은 라디오극 같은 대목이 들어 있다. 노래가 잠시 영화가 되는 순간이다.
- 담담하게 걷는 듯한 리듬이 끝까지 바뀌지 않아, 이야기의 비극이 더 차갑게 전해진다.
IV. 깨어난 뒤 · 1973–1977
(사고) 「Innervisions」가 나오고 사흘 뒤인 1973년 8월 6일,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 근처에서 그가 탄 차가 통나무를 실은 트럭과 부딪쳤다. 그는 머리를 크게 다쳐 며칠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 곁을 지키던 로드 매니저 아이라 터커가 그의 귀에 대고 「Higher Ground」를 부르자 손가락이 박자를 따라 움직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사고 직전에 녹음한 다시 태어남의 노래가 그의 회복과 겹쳐 기억되게 됐다. (그래미) 회복한 그는 1974년 그래미에서 「Innervisions」로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같은 해 「Fulfillingness' First Finale」는 죽음 가까이 다녀온 뒤의 차분한 신앙 고백과 「You Haven't Done Nothin'」 같은 정치 풍자를 함께 담았고, 다시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이듬해 같은 상을 받은 폴 사이먼이 수상 소감에서 올해 앨범을 내지 않은 스티비 원더에게 감사한다고 농담한 일은 당시 그의 위상을 보여 준다. (아레사) 그는 동료들에게도 곡을 건넸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1973년 그의 곡 「Until You Come Back to Me (That's What I'm Gonna Do)」를 불러 히트시켰고, 루퍼스와 샤카 칸은 1974년 그가 써 준 「Tell Me Something Good」으로 이름을 얻었다. (대작) 1975년 그는 모타운과 7년 재계약을 맺었고, 이 계약은 당시 음반 업계 최대 규모로 보도됐다. 그는 2년 가까이 작업에 매달려 1976년 9월 LP 두 장에 보너스 EP를 붙인 「Songs in the Key of Life」를 내놓았다. 1974년 세상을 떠난 듀크 엘링턴과 재즈 거장들에게 바친 「Sir Duke」, 게토의 삶을 그린 「Village Ghetto Land」, 갓 태어난 딸을 반긴 「Isn't She Lovely」가 한 앨범에 들었다. 앨범은 빌보드 1위로 곧장 진입했고, 그는 세 번째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상실과 탄생, 거리와 신앙이 스물여섯 살의 그 안에서 한 덩어리였다.
사고 몇 달 전에 녹음했지만, 병상의 그가 이 곡에 반응했다는 일화 때문에 그의 회복과 겹쳐 기억된다.
- 그는 이 곡의 악기를 혼자 연주해 짧은 시간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소리를 와-와 하고 여닫는 장치(와와 페달)를 건 클라비넷이 꿈틀거리는 리프를 만든다.
- 낮은 음역에서 반복돼 그루브의 뼈대가 되는 신시사이저 베이스가 곡 내내 몸을 앞으로 끌어당긴다.
- 다시 살아날 기회와 영적인 상승을 이야기하는 화법이라, 이후의 사고를 알고 들으면 예언처럼 들린다.
1974년 듀크 엘링턴의 죽음을 계기로 쓴 재즈 거장들에 대한 헌사로, 1977년 빌보드 1위에 올랐다.
- 트럼펫과 색소폰이 빠르고 복잡한 리프를 한 목소리로 맞춰(유니즌) 내달리는 대목이 곡의 상징이다.
-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루이 암스트롱, 엘라 피츠제럴드, 글렌 밀러를 노래 속에서 차례로 부르며 스윙 시대에 경의를 표한다.
- 네이선 와츠의 베이스가 걷듯이 움직이며 곡에 재즈의 탄력을 준다.
- 추모의 곡인데도 슬픔 대신 축제의 기운으로 채운 것이 이 곡의 태도다.
V. 생일의 노래 · 1979–1989
(식물) 1979년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사운드트랙 「Journey Through the Secret Life of Plants」를 냈다. 화면을 볼 수 없는 그가 장면 설명을 들으며 만든 실험적 작품이었고, 초기 디지털 샘플링 장비를 쓴 대중음악 앨범으로도 꼽힌다. 반응은 엇갈렸지만 소리에 대한 그의 호기심을 보여 주는 기록이다. (킹) 1980년 「Hotter than July」에는 밥 말리에게 바친 「Master Blaster (Jammin')」와 함께 「Happy Birthday」가 실렸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생일을 국가 공휴일로 만들자는 운동의 노래였다. 그는 1981년 1월 워싱턴 집회를 이끌었고, 뒤에 코레타 스콧 킹 등과 함께 약 600만 명의 서명을 의회에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3년 법안이 통과돼 1986년 첫 공휴일이 지켜졌다. (협업) 1982년 폴 매카트니와 부른 「Ebony and Ivory」는 인종의 화합을 피아노 건반의 흑백에 빗대 7주 동안 1위를 지켰다. 그는 엘튼 존의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1983)와 샤카 칸이 부른 프린스의 곡 「I Feel for You」(1984)에 하모니카를 불어 넣었다. 1985년 「We Are the World」에서는 마이클 잭슨, 다이애나 로스, 티나 터너, 디온 워윅 등과 함께했고, 디온 워윅·엘튼 존·글래디스 나이트와 부른 「That's What Friends Are For」는 에이즈 연구 기금을 모았다. (오스카) 1985년 영화 「The Woman in Red」의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그는 그 상을 수감 중이던 넬슨 만델라에게 바쳤고, 남아프리카공화국 국영 방송은 그의 노래를 내보내지 않았다. 마이클 잭슨과는 모타운의 소년 스타 시절부터 우정을 이어 갔다. 그는 잭슨의 「Off the Wall」(1979)에 「I Can't Help It」을 써 주었고, 1987년 「Bad」에서 「Just Good Friends」를 함께 불렀다. 1989년 그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킹 목사 생일을 국가 공휴일로 만들자는 운동의 노래로, 그가 이끈 집회와 서명 운동의 구호가 됐다.
- 경쾌한 신시사이저 반주와 기계처럼 반듯한 리듬이 축제 분위기를 만든다.
- 절에서는 공휴일 지정에 반대하는 이들을 조목조목 설득하는 화법을 쓰고, 후렴은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생일 축가의 모양을 띤다.
- 운동을 위한 노래였지만, 이후 많은 흑인 가정에서 생일 축가로 불리게 됐다고 알려져 있다.
- 1981년 워싱턴 집회에서 수많은 군중과 함께 부르며 이 곡은 노래이자 행진이 됐다.
VI. 오래 부르는 이름 · 1990–2026
(영화) 1991년 그는 스파이크 리의 영화 「Jungle Fever」 사운드트랙을 맡았고, 1995년 「Conversation Peace」를 냈다. 앨범 사이의 간격은 길어졌지만 무대와 사회 활동은 이어졌다. 1999년 케네디 센터 공로상을 받았다. (가족) 2005년 「A Time to Love」는 10년 만의 정규 앨범이었다. 프린스가 「So What the Fuss」에서 기타를 연주했고, 인디아 아리가 타이틀곡을 함께 불렀다. 이듬해인 2006년, 첫 히트곡들을 함께 쓰며 그의 음악 곁을 지켜 온 어머니 룰라 메이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시리타 라이트 이후 두 차례 더 결혼했고 여러 자녀를 두었다. (추모) 2009년 마이클 잭슨의 추모식에서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로 작별을 고했다. 같은 해 의회도서관의 거슈윈 상을 받았고, 유엔 평화 메신저로 위촉돼 장애인의 권리를 이야기했다. 2014년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고, 「Songs in the Key of Life」 전곡 공연 투어를 열었다. 2018년에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장례식에서 하모니카를 불며 오랜 동료를 보냈다. (오늘) 2019년 7월 런던 공연에서 그는 신장 이식 수술을 받는다고 직접 밝혔고, 그해 말 수술을 받았다. 2020년에는 열한 살 때부터 몸담은 모타운을 떠나 자신의 레이블에서 새 싱글 두 곡을 냈다. 2024년 5월에는 오래 애정을 표해 온 가나의 시민권을 받았고, 같은 해 연대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투어로 무대에 섰다. 거리와 신앙, 사랑과 정의를 한 노래에 담던 방식은 일흔이 넘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덜 알려진 이야기
리틀 스티비의 첫 앨범은 노래 앨범이 아니었다. 1962년의 「The Jazz Soul of Little Stevie」는 그가 하모니카와 건반, 타악기를 연주하는 재즈풍 연주곡집이었고, 같은 해 두 번째 앨범은 레이 찰스 헌정 앨범이었다. 뒤이은 「Fingertips」의 성공이 워낙 컸던 탓에 이 출발점은 대개 디스코그래피의 각주로만 남았다. 1968년 모타운은 「Alfie」 등을 하모니카로 연주한 앨범을 아이베츠 레드나우(Eivets Rednow)라는 이름으로 냈다. 스티비 원더의 철자를 거꾸로 쓴 이름이었다. 가수가 아닌 연주자로서의 그를 시험한 기록인데, 가명으로 나와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1970년대 전성기 앨범의 소리에는 맬컴 세실과 로버트 마골레프의 손이 깊이 닿아 있다. 두 사람은 신시사이저 장치 TONTO를 운용하며 프로그래밍과 녹음을 맡았고, 「Innervisions」로 그래미 최우수 엔지니어링 음반상을 받았다. 앨범 크레딧에는 이름이 올랐지만, 대중의 기억 속에서는 원더 한 사람의 업적으로 뭉뚱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발명가 레이 커즈와일은 1976년 시각장애인용 문자 판독기를 처음 산 개인 고객이 스티비 원더였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실제 악기 소리를 재현하는 신시사이저 개발로 이어졌고, 1984년 커즈와일 K250이 출시됐다. 그는 음악을 녹음하는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악기 기술의 방향에도 영향을 준 사용자였다.
용어 노트 📚🔎
신시사이저
(말뜻) 영어 synthesize 는 합성하다는 뜻이다. 신시사이저는 소리를 전기 신호로 합성해 만들어 내는 기계라는 뜻이 이름에 그대로 들어 있다. (팝에서) 전기 회로나 컴퓨터로 소리의 높이·굵기·울림을 조절해 세상에 없던 소리까지 만들어 내는 건반 악기다. 1970년대 스티비 원더는 여러 대를 엮은 TONTO로 베이스와 반주를 직접 만들었다. 물감 몇 가지를 섞어 새 색을 만들듯, 기본 소리 몇 가지를 섞고 깎아 새로운 소리를 빚는다. (다른 데서는) 생물학이나 화학에서 합성은 여러 물질을 결합해 새 물질을 만드는 일을 가리킨다.
클라비넷
(팝에서) 건반을 누르면 고무 망치가 줄을 때려 소리를 내고, 그 소리를 전기로 키우는 건반 악기다. 짧고 톡 쏘며 끈적한 소리가 나서 펑크 음악의 리듬 악기처럼 쓰인다. 「Superstition」의 첫 리프가 가장 유명한 예다. 팽팽한 고무줄을 손가락으로 튕길 때 나는 짧고 탄력 있는 소리를 떠올리면 비슷하다.
크로매틱 하모니카
(말뜻) chromatic 은 그리스어 chroma(색)에서 왔다. 음계 사이사이의 반음까지 모두 칠하듯 채운다는 뜻이다. (팝에서) 옆에 달린 단추(슬라이드)를 누르면 모든 음이 반음씩 올라가, 피아노의 흰 건반과 검은 건반에 해당하는 음을 모두 낼 수 있는 하모니카다. 스티비 원더의 하모니카 연주 대부분이 이 악기로 이루어졌다. 학교에서 부는 리코더에서 구멍을 반쯤 막아 반음을 내던 일을 단추 하나로 해결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퍼블리싱
(팝에서) 노래 자체의 저작권, 즉 가락과 가사를 관리하고 그 곡이 쓰일 때마다 돈을 걷는 일이다. 음반으로 녹음된 소리의 권리와는 따로 계산된다. 스티비 원더는 모타운과의 재계약에서 자기 곡의 퍼블리싱 권리를 갖는 조건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 문집에 실린 글을 생각해 보자. 문집을 인쇄한 책은 학교 것이어도, 그 글을 다른 곳에 옮겨 실을 권리는 글쓴이에게 있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일반적으로는 책이나 잡지를 펴내는 출판을 뜻한다.
싱코페이션
(말뜻) 그리스어 synkopē 는 잘라 냄, 줄임이라는 뜻이다. 박의 흐름 일부를 잘라 내 힘이 엉뚱한 자리로 옮겨 간다는 느낌이 담겼다. (팝에서) 보통 힘을 주는 박이 아닌 박과 박 사이에 강세를 두는 리듬 기법으로, 우리말로는 엇박이라고 한다. 펑크와 소울의 그루브는 대부분 이 엇박에서 나온다. 줄넘기를 할 때 줄이 바닥에 닿는 순간이 아니라 그 사이에 손뼉을 치면, 같은 박자도 훨씬 들썩이게 느껴진다. (다른 데서는) 의학에서는 실신, 즉 잠깐 의식을 잃는 증상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백비트
(팝에서) 네 박자 음악에서 첫째·셋째 박이 아니라 둘째·넷째 박을 세게 치는 드럼 리듬이다. 리듬 앤 블루스와 로큰롤, 소울의 기본 박자이며, 스네어 드럼이 이 자리를 친다. 운동 경기 응원에서 하나-둘-셋-넷 중 둘과 넷에 박수를 치면 노래가 훨씬 신나게 굴러가는 것이 바로 백비트의 힘이다.
콜 앤 리스폰스
(말뜻) 영어로 부름(call)과 응답(response)이라는 뜻이다. (팝에서) 한 사람이 가락을 던지면 다른 사람이나 관객이 받아 부르는 주고받기 형식이다. 흑인 교회에서 설교자와 신도가 말을 주고받던 전통에서 소울과 가스펠로 이어졌다. 「Fingertips」에서 소년의 하모니카와 관객의 손뼉이 이렇게 주고받는다. 체육 시간에 선생님이 구호를 외치면 반 전체가 받아 외치는 것과 같은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