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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Jackson

마이클 잭슨 (1958–2009)

다섯 살에 무대에 올라 쉰 살에 리허설장을 떠나기까지, 평생 노래와 춤 속에서만 온전히 자유로웠던 사람.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인디애나 게리 출생아버지의 혹독한 훈련여호와의 증인 신앙2. 잭슨5모타운 연속 1위「벤」 첫 솔로 1위에픽 이적·잭슨스3. 정점퀸시 존스와 3부작「스릴러」 최다 판매모타운 25 문워크4. 그늘펩시 광고 화상백반증 고백2005년 전부 무죄5. 후기네버랜드 목장재닛과 「스크림」소니와의 갈등6. 마지막「디스 이즈 잇」2009년 50세 사망추모식과 유산잭슨1958–2009잭슨 5의 막내에서 「스릴러」의 주인으로, 팝…
무대의 여정 🧭🗺️
N미국게리1958–1969로스앤젤레스1969–1988로스올리보스1988–2005라스베이거스2006–2008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조지프 잭슨

    아버지이자 잭슨 5의 첫 매니저로, 혹독한 훈련으로 아들들을 무대에 세웠고 마이클은 평생 그 그늘과 씨름했다.

  • 영향제임스 브라운

    어린 마이클이 무대 옆에서 발놀림을 따라 익힌 우상으로, 2006년 그의 장례식에서 마이클이 추도했다.

  • 후원베리 고디

    모타운 창업자로 잭슨 5를 발탁해 스타로 키웠지만, 창작의 자유를 두고 갈등하다 1975년 형제와 결별했다.

  • 동료퀸시 존스

    「오프 더 월」 「스릴러」 「배드」를 함께 만든 프로듀서로, 그의 전성기 소리를 빚었다.

  • 경쟁프린스

    1980년대 팝의 맞수로, 「배드」 타이틀곡 듀엣 제안을 거절한 일화가 남아 있다.

  • 가족재닛 잭슨

    막냇동생으로, 1995년 「스크림」을 함께 불렀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게리의 소년 · 1958–1968

(출생) 1958년 8월,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조지프 잭슨은 제철소 크레인 기사였고, 젊은 날에는 형제들과 '팰컨스'라는 R&B 밴드에서 기타를 쳤다. 마이클은 열 남매 가운데 여덟째였다. 바로 위 형 말런의 쌍둥이 형제는 태어난 직후 숨졌다. 부모와 아홉 남매가 방 두 칸짜리 작은 집에서 함께 살았다. (신앙) 어머니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고 마이클도 그 안에서 자랐다. 교리에 따라 생일과 크리스마스를 지내지 않았고, 스타가 된 뒤에도 1980년대 중반까지 변장을 하고 집집이 전도를 다녔다. 그는 평생 어머니를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여겼다. (훈련) 아버지 몰래 기타를 만지던 셋째 티토가 줄을 끊은 일을 계기로, 조는 아들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룹을 꾸렸다고 전해진다. 1964년 무렵 형들로 시작한 잭슨 브라더스에 어린 마이클이 합류했고, 곧 리드 보컬을 맡았다. 연습은 혹독했다. 마이클은 자서전 「문워크」와 1993년 오프라 윈프리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실수할 때마다 매를 들었고, 아버지가 두려워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고 털어놓았다. (순회) 1966년 지역 탤런트 쇼에서 우승한 뒤 형제는 시카고 등 중서부의 클럽을 돌았다. 마이클은 무대 옆 커튼 뒤에서 제임스 브라운과 재키 윌슨의 발놀림과 마이크 다루는 법을 지켜보며 익혔다. 학교를 마치면 밤늦게까지 술집 무대에 서던 이 시절을 그는 훗날 잃어버린 어린 시절로 기억했다. 1967년 뉴욕 아폴로 극장 아마추어 나이트에서 우승했고, 이듬해 게리의 작은 레이블 스틸타운에서 첫 싱글 「빅 보이」를 냈다.

II. 모타운의 막내 · 1968–1978

(모타운) 1968년 7월, 형제는 디트로이트에서 모타운 오디션을 보고 베리 고디와 계약했다. 이듬해 가족은 로스앤젤레스로 옮겼고, 집을 구하기 전 마이클은 한동안 다이애나 로스의 집에 머물렀다. 모타운은 그룹을 다이애나 로스가 발굴했다고 홍보했고, 첫 앨범 제목에도 그의 이름을 앞세웠다. (연승) 1969년 10월 데뷔 싱글 「아이 원트 유 백」을 시작으로 「ABC」, 「더 러브 유 세이브」, 「아일 비 데어」가 잇달아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랐다. 데뷔 싱글 네 곡이 연속으로 정상에 오른 그룹은 처음이었다. 곡은 고디가 꾸린 작곡·제작 팀 '더 코퍼레이션'이 맡았고, 열한 살 마이클은 어른의 후회와 그리움을 나이를 잊게 하는 표현력으로 불러 주목받았다. (솔로) 1971년 솔로 데뷔곡 「갓 투 비 데어」를 냈고, 이듬해 외로운 소년과 쥐의 우정을 다룬 영화의 주제가 「벤」으로 첫 솔로 1위를 차지했다. 동물을 유난히 아끼던 그의 성정과 맞닿은 노래였다. 그러나 사춘기의 변성기와 심한 여드름은 그를 위축시켰고, 그는 그 무렵 거울 보기가 싫었다고 자서전에 적었다. (독립) 모타운은 형제가 직접 곡을 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로열티도 낮았다. 1975년 형제는 CBS 산하 에픽과 계약했지만, 고디의 딸과 결혼한 저메인은 모타운에 남았다. '잭슨 5'라는 이름은 모타운의 소유여서 그룹은 '잭슨스'가 됐다. 1978년 앨범 「데스티니」에서 마이클은 동생 랜디와 함께 쓴 「셰이크 유어 바디」로 작곡가로서 첫 성공을 거뒀다. 같은 해 다이애나 로스가 주연한 영화 「더 위즈」에서 허수아비를 연기하다 음악감독 퀸시 존스를 만났다.

♪아이 원트 유 백 (I Want You Back)1969무대 The Jackson 5 · 1969 The Ed Sullivan Show

모타운이 가족의 운명을 바꾼 데뷔 싱글이다. 열한 살 소년이 어른의 후회를 노래하며 잭슨 5의 연속 1위 행진이 시작됐다.

  • 피아노가 건반을 쓸어내리듯 미끄러지는 음형(글리산도)으로 문을 열고, 곧바로 통통 튀는 베이스가 들어온다. 이 베이스는 재즈 그룹 크루세이더스의 윌턴 펠더가 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후렴에서 형들의 화음이 받쳐 주면 마이클이 그 위로 치고 나오는 주고받기(콜 앤드 리스폰스)를 따라가 볼 것. 소년의 맑은 목소리에 소울 가수 특유의 긁는 힘이 섞여 있다.
  • 브리지에서 악기가 빠지고 베이스와 리듬만 남았다가, 형제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쌓이며 다시 터지는 대목이 곡의 반전이다.
  • 1969년 12월 「에드 설리번 쇼」 출연 영상에서 마이클은 제임스 브라운에게서 배운 발놀림을 그대로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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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벽을 넘어 · 1979–1982

(퀸시) 스무 살의 마이클은 첫 성인 솔로 앨범을 맡을 프로듀서를 추천해 달라고 퀸시 존스에게 부탁했고, 존스는 자신이 하겠다고 답했다. 에픽 쪽은 재즈 편곡자 출신인 존스가 댄스 음반에 어울릴지 의심했다고 전해진다. 존스는 영국 작곡가 로드 템퍼턴과 엔지니어 브루스 스웨디언을 불러 팀을 꾸렸고, 이 팀이 이후 세 장의 앨범을 함께 만들었다. (오프더월) 1979년 8월 발매된 「오프 더 월」에서 그가 직접 쓴 「돈 스톱 틸 유 겟 이너프」와 템퍼턴의 「록 위드 유」가 1위에 올랐다. 솔로 가수의 앨범 한 장에서 톱10 싱글이 네 곡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디스코의 활기에 소울의 섬세함을 겹친 소리는 그를 아역 스타의 그림자에서 꺼내 주었다. (실망) 그러나 이듬해 그래미에서 받은 상은 R&B 남성 보컬 부문 하나뿐이었다. 그는 이 결과에 깊이 상처받았고, 다음 앨범은 누구도 외면할 수 없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고 훗날 회고했다. 흑인 음악가를 R&B라는 칸에 가두는 업계 관행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홀로서기) 이 무렵 그는 아버지의 손을 떠나 사업을 스스로 챙기기 시작했고, 1980년 변호사 존 브랑카를 고용했다. 형제 그룹 활동도 이어 갔지만 중심은 이미 솔로로 옮겨 가 있었다. 1982년에는 폴 매카트니와 듀엣 「더 걸 이즈 마인」을 녹음하며 가까워졌는데, 매카트니에게서 들은 곡 출판권(퍼블리싱)의 가치는 훗날 그의 가장 큰 사업 결정으로 이어졌다. 그해 봄 로스앤젤레스 웨스트레이크 스튜디오에서 다음 앨범의 녹음이 시작됐다.

♪돈 스톱 틸 유 겟 이너프 (Don't Stop 'Til You Get Enough)1979공식 MV — Michael Jackson

그가 직접 쓰고 퀸시 존스와 처음 함께 만든 곡으로, 아역의 틀을 벗고 성인 아티스트로 선 첫 걸음이다. 이 곡으로 그래미 R&B 남성 보컬상을 받았다.

  • 도입부에서 마이클이 낮게 속삭이듯 말을 꺼낸 뒤 외침 같은 고음으로 뛰어오르며 곡이 시작된다. 망설임이 환희로 바뀌는 순간이 곡의 주제를 압축한다.
  • 노래 대부분을 성대를 얇게 써서 내는 높은 목소리(팔세토, 가성)로 부른다. 가볍게 떠 있으면서도 리듬을 날카롭게 끊어 내는 솜씨를 들어 볼 것.
  • 앨범 크레디트에는 마이클과 동생 랜디가 타악기 연주자로 올라 있다. 짤랑거리는 금속성 소리가 그루브에 반짝임을 더한다.
  • 낮은 음역에서 쉬지 않고 같은 음형을 굴리는 베이스 위로 현과 혼 섹션이 번갈아 치고 들어와, 6분 넘는 길이가 늘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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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스릴러의 해 · 1982–1987

(스릴러) 1982년 11월 「스릴러」가 나왔다. 아홉 곡 가운데 일곱 곡이 톱10 싱글이 됐고, 앨범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음반으로 기록됐다. 흑인 음악가의 영상을 거의 틀지 않던 개국 초기 MTV는 「빌리 진」 뮤직비디오를 집중 방송하며 문을 열었다. 그 뒤에는 CBS의 강한 압박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문워크) 1983년 3월 녹화돼 5월 방영된 모타운 25주년 기념 TV 특집에서, 그는 형제들과 메들리를 부른 뒤 홀로 「빌리 진」을 불렀다. 앞으로 걷는 듯 뒤로 미끄러지는 문워크가 처음 전국 방송에 나간 순간이었다. 그해 12월에는 존 랜디스가 감독한 14분짜리 단편 「스릴러」가 공개됐고, 1984년 2월 그래미에서 8개 부문을 받았다. (화상) 1984년 1월 펩시 광고 촬영 중 폭죽 불꽃이 머리카락에 옮아 두피에 2도 화상을 입었다. 받은 배상금 150만 달러는 화상 센터에 기부했다. 진통제 복용이 이때 시작됐다는 것이 여러 전기 작가의 공통된 견해다. 같은 해 형제들과 마지막 합동 순회인 빅토리 투어를 돌고, 자신의 몫을 자선단체에 내놓았다. (피부) 이 무렵부터 피부색이 눈에 띄게 옅어졌다. 그는 피부 색소가 빠지는 백반증 때문이라고 밝혔고, 사후 부검이 이를 확인했다. 코 수술 등 일부 성형은 자서전에서 스스로 인정했다. (카탈로그) 1985년 비틀스의 곡 약 250곡이 담긴 ATV 뮤직의 출판 카탈로그를 4750만 달러에 사들였다. 매카트니도 인수를 원했던 터라 두 사람 사이는 멀어졌다. 같은 해 라이오넬 리치와 아프리카 기근 구호곡 「위 아 더 월드」를 함께 썼다.

♪빌리 진 (Billie Jean)1983실황 Michael Jackson · 1997 뮌헨

MTV의 벽을 허문 뮤직비디오와 모타운 25의 문워크로, 「스릴러」 시대를 상징하게 된 곡이다. 그가 직접 쓰고 제작에도 깊이 관여했다.

  • 첫 소리는 기계처럼 정확한 킥 드럼과 하이햇이다. 엔지니어 브루스 스웨디언은 드럼에 덮개와 받침을 따로 만들어 이 단단한 소리를 얻었다고 회고했다.
  • 낮은 음역에서 같은 음형을 반복하는 베이스 리프가 곡의 뼈대다. 퀸시 존스가 인트로가 너무 길다며 줄이려 했지만, 마이클이 그 부분이 춤추고 싶게 만든다며 지켰다는 일화가 있다.
  • 숨을 들이켜는 소리, 딸꾹질 같은 짧은 추임새가 타악기처럼 리듬에 박힌다. 억울함과 불안이 쫓기듯 이어지는 화법이 곡의 긴장을 만든다.
  • 1983년 모타운 25주년 특집에서 흰 장갑 한 짝과 반짝이는 양말 차림으로 처음 선보인 문워크는 지금도 가장 많이 회자되는 TV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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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 잇 (Beat It)1983실황 Michael Jackson · 1997 HIStory 투어 뮌헨

록과 R&B의 경계를 넘어 백인 록 청중과 흑인 음악 청중을 한데 모은 곡이다. 「오프 더 월」 이후의 다짐이 장르의 벽을 넘는 데까지 이어졌다.

  • 도입부의 징 같은 울림은 디지털 신시사이저 신클라비어에 담긴 샘플 소리다. 이어 기타 리프가 곡을 끌고 가는데, 리프와 베이스는 밴드 토토의 스티브 루카서가 연주했다.
  • 중반의 기타 솔로는 에디 밴 헤일런이 즉흥으로 연주했고 사례를 받지 않았다. 녹음 중 모니터 스피커에 불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 마이클은 짧게 끊어 뱉는 거친 창법으로 부른다. 같은 앨범의 부드러운 발라드와 비교하면 목소리의 결이 완전히 다르다.
  • 뮤직비디오에는 실제 로스앤젤레스 갱 단원들이 출연했고, 안무가 마이클 피터스와 함께 짠 군무가 칼싸움을 춤으로 바꿔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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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거울 속의 사람 · 1987–1993

(배드) 1987년 「배드」에서는 싱글 다섯 곡이 1위에 올랐다. 앨범 한 장에서 처음 나온 기록이었다. 타이틀곡은 동시대의 맞수 프린스와 듀엣으로 기획됐지만 프린스가 거절했다고 퀸시 존스는 회고했다. 그는 첫 단독 월드 투어에 나섰고, 같은 해 여호와의 증인을 떠났다. (네버랜드) 1988년 캘리포니아 로스올리보스 근처의 목장을 사들여 네버랜드라 이름 붙였다. 동물원과 놀이기구를 들였고, 아픈 아이들을 자주 초대했다. 같은 해 자서전 「문워크」가 나왔다. 그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되찾고 싶다는 말을 여러 인터뷰에서 되풀이했다. (전환) 1991년 「데인저러스」에서는 퀸시 존스와 결별하고 젊은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와 손잡아, 힙합 비트와 R&B를 섞은 뉴 잭 스윙으로 소리를 바꿨다. 그해 봄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마돈나와 함께 참석해 화제가 됐다. 1993년 1월 슈퍼볼 하프타임 무대에서는 1분 넘게 미동 없이 서 있다가 공연을 시작했다. (고백) 1993년 2월 오프라 윈프리와의 생방송 인터뷰에서 그는 백반증, 아버지의 체벌, 어린 시절의 외로움을 직접 이야기했다. 9천만 명 넘게 지켜본 이 인터뷰는 신비에 싸였던 스타가 처음 스스로를 설명한 자리였다. (의혹) 같은 해 8월 한 소년의 가족이 그를 아동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고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그는 결백을 주장했다. 11월 데인저러스 투어를 중단하고 진통제 의존을 공개한 뒤 치료에 들어갔다. 1994년 1월 민사 합의로 소송은 마무리됐고, 형사 기소는 이뤄지지 않았다.

♪맨 인 더 미러 (Man in the Mirror)1988공식 MV — Michael Jackson

자신이 쓰지 않은 곡이지만, 세상을 바꾸려면 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주제는 그 무렵 그의 신념과 그대로 겹쳤다. 「배드」의 다섯 번째 1위 싱글이다.

  • 시이다 개릿과 글렌 밸러드가 쓴 곡이다. 조용한 신시사이저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시작해 한 겹씩 소리가 쌓여 간다.
  • 후반부에 안드레 크라우치 합창단이 들어오며 곡은 교회 음악(가스펠)의 열기로 바뀐다.
  • 마지막 3분의 1 지점에서 곡 전체의 음높이 기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전조(키 체인지)가 일어나, 같은 후렴이 한층 절박하게 들린다.
  • 1988년 그래미 시상식 무대에서 합창단과 함께 부르다 무릎을 꿇고 즉흥 외침(애드리브)을 쏟아내는 장면은 그의 대표적인 라이브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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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오어 화이트 (Black or White)1991공식 MV — Michael Jackson

퀸시 존스와 결별한 뒤 낸 「데인저러스」의 첫 싱글로, 피부색을 둘러싼 오해와 싸우던 그가 인종의 경계를 넘자는 주제를 밝고 경쾌하게 풀었다.

  • 귀에 바로 꽂히는 기타 리프는 공동 프로듀서 빌 보트렐이 연주했다. 중간에 끼어드는 랩 대목도 보트렐의 목소리다.
  • 록 기타와 가볍게 튀는 리듬이 맞물려, 무거운 주제를 놀이처럼 들리게 한다.
  • 1991년 11월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차례로 녹아 바뀌는 컴퓨터 변형 기법(모핑)으로 화제가 됐다.
  • 영상 끝의 약 4분 길이 독무 장면은 공개 직후 논란이 돼 이후 편집됐다. 원본과 편집본을 비교해 보면 당시의 반응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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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역사의 무게 · 1994–2005

(결혼) 1994년 5월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했고, 1996년 이혼했다. 두 사람은 이혼 뒤에도 연락을 이어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스토리) 1995년 히트곡 모음과 신곡을 묶은 두 장짜리 앨범 「히스토리」를 냈다. 신곡에는 언론과 수사 당국을 향한 분노와 상처가 짙게 배어 있었다. 막냇동생 재닛 잭슨과 처음 정식으로 함께 부른 「스크림」은 남매가 나란히 세상에 맞서는 곡이었다. 「어스 송」은 영국에서 1위에 올랐고, 「데이 돈트 케어 어바웃 어스」는 가사 일부가 반유대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그가 사과하고 다시 녹음했다. (아버지) 그는 아이들을 언론의 눈에서 지키려 애썼다. (인빈서블) 2001년 9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데뷔 30주년 공연에서 형제들이 오랜만에 한 무대에 섰고,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더 웨이 유 메이크 미 필」을 함께 불렀으며 어셔와 휘트니 휴스턴도 무대에 올랐다. 10월 「인빈서블」을 냈지만, 홍보 방식과 원판권 문제로 소니와 갈등을 빚었고 2002년에는 공개적으로 회사를 비판했다. (재판) 2003년 11월 그는 다시 아동 성추행 혐의로 체포·기소됐다. 2005년 캘리포니아 산타마리아에서 넉 달 가까이 이어진 재판 끝에, 6월 배심원단은 14개 혐의 전부에 무죄를 평결했다. 재판 동안 그는 눈에 띄게 야위고 쇠약해졌다.

♪스크림 (Scream)1995공식 MV — Michael Jackson·Janet Jackson

의혹과 언론 보도에 시달리던 시기, 막냇동생 재닛 잭슨과 함께 그 분노를 터뜨린 곡이다. 남매가 처음 정식으로 함께 부른 노래이기도 하다.

  • 재닛의 오랜 프로듀서 지미 잼과 테리 루이스가 함께 만들었다. 쇠를 두드리는 듯 차갑고 금속성인 드럼이 곡 전체를 몰아붙인다.
  • 남매가 한 대목씩 주고받으며 부르는데, 마이클은 숨을 거칠게 내뱉는 창법으로 분노를 드러낸다.
  • 브리지에서 리듬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몰아치는 대목이 곡의 전환점이다.
  • 마크 로마넥이 감독한 흑백 우주선 뮤직비디오는 가장 비싼 뮤직비디오로 기네스북에 올랐고, 1996년 그래미 뮤직비디오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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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마지막 리허설 · 2005–2009

(유랑) 판결 뒤 그는 네버랜드로 돌아가지 않았다. 바레인 왕자의 초청으로 마나마에 머물렀고, 아일랜드와 라스베이거스를 거쳤다. 오랜 지출과 소송으로 빚이 쌓여 소니/ATV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2008년에는 네버랜드가 압류될 위기를 투자사가 채권을 인수하며 넘겼다. (복귀) 2009년 3월 런던 O2 아레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0회 공연 「디스 이즈 잇」을 발표했다. 그는 이것이 마지막 커튼콜이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 홈비힐스의 저택을 빌려 아이들과 지내며, 연출가 케니 오테가와 함께 리허설에 매달렸다. (죽음) 2009년 6월 25일, 첫 공연을 3주 앞두고 자택에서 심정지로 숨졌다. 쉰 살이었다. 사인은 수면 마취제 프로포폴 급성 중독이었다. 이를 투여한 주치의 콘래드 머리는 2011년 과실치사로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추모) 7월 7일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 센터 추모식에서 머라이어 캐리가 「아일 비 데어」를, 어셔가 「곤 투 순」을 불렀고 스티비 원더도 노래했다. 9월 글렌데일의 포레스트 론 묘지에 안장됐다. (유산) 10월 리허설 영상을 엮은 영화 「디스 이즈 잇」이 개봉했고, 유산관리단은 몇 해에 걸쳐 빚을 청산했다. 어셔, 브루노 마스, 위켄드 등은 그의 영향을 받은 후배로 꼽힌다. 2019년 다큐멘터리 「리빙 네버랜드」가 과거의 의혹을 다시 불러내며 그의 유산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고, 유산관리단은 이를 부인했다.

덜 알려진 이야기

그는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했다. 대신 베이스 라인, 드럼 패턴, 현악 선율까지 모든 파트를 입으로 불러 녹음기에 담아 연주자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입으로 낸 소리(비트박스)와 허밍으로 곡의 설계도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후 공개된 홈 데모가 이를 뒷받침한다. 무대 위 춤꾼과 가수의 이미지에 가려, 작곡가로서의 이런 방법은 오래 주목받지 못했다. 잭슨 5를 다이애나 로스가 발굴했다는 이야기는 모타운의 홍보 전략이었다. 전기 작가들에 따르면 실제로 형제를 회사에 소개한 사람은 모타운 소속 가수 바비 테일러였고, 글래디스 나이트도 일찍 그들을 추천했다. 첫 앨범에 다이애나 로스의 이름을 내건 것은 신인 그룹에 확실한 후광을 입히려는 결정이었다. 1988년 자서전 「문워크」의 편집자는 당시 출판사 더블데이에서 일하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였다. 그는 여러 해에 걸쳐 마이클을 설득해 책을 끌어냈고, 짧은 소개 글도 직접 썼다. 전직 영부인의 출판 경력은 그 자체로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어서, 이 인연도 흔히 언급되지 않는다. 1994년 게임 「소닉 더 헤지혹 3」의 음악 작업에 그가 참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의 오랜 키보디스트 브래드 벅서가 2009년 인터뷰에서 함께 작업했다고 밝혔으나, 세가는 오랫동안 이를 공식 확인하지 않아 이 대목은 아직 정설이 아니라 증언으로 남아 있다.

용어 노트 📚🔎

팔세토(가성)

(말뜻) 이탈리아어 falsetto 는 '가짜'를 뜻하는 falso 에서 왔다. 우리말 가성(假聲)도 거짓(假) 목소리(聲)라는 뜻이다. 평소 말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일부러 만들어 낸 높은 소리라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팝에서) 성대를 얇고 가볍게 써서 평소 음역보다 훨씬 높은 소리를 내는 창법이다. 소울과 R&B 가수들이 즐겨 썼고, 마이클 잭슨은 「돈 스톱 틸 유 겟 이너프」를 거의 전부 이 목소리로 불렀다. 친구 흉내를 내며 목소리를 가늘게 끌어올려 본 적이 있다면, 그때 목에서 소리가 확 가벼워지는 느낌이 바로 가성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문워크

(말뜻) 영어로 달(moon) 위를 걷는다(walk)는 뜻이다. 중력이 약한 달에서처럼 발이 땅에 붙지 않고 둥둥 미끄러지는 듯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팝에서) 앞으로 걷는 것처럼 발을 움직이면서 실제로는 뒤로 미끄러져 가는 춤 기술이다. 비슷한 동작은 그 전부터 거리 춤꾼들이 해 왔지만, 1983년 모타운 25주년 특집에서 마이클 잭슨이 선보이며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양말을 신고 반질반질한 마룻바닥에서 한 발씩 밀며 뒤로 미끄러져 본 적이 있다면, 그 움직임을 아주 정교하게 다듬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른 데서는) 우주비행사가 실제로 달 표면을 걷는 일도 문워크라 부르고, 마이클 잭슨의 1988년 자서전 제목이기도 하다.

뉴 잭 스윙

(팝에서) 1980년대 말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 등이 만든 장르로, 부드러운 R&B 노래 위에 힙합의 단단한 드럼 비트를 얹은 음악이다. 박자를 고르게 쪼개지 않고 살짝 튕기듯 밀고 당기는 리듬(스윙)이 특징이다. 마이클 잭슨은 1991년 「데인저러스」에서 라일리와 손잡고 이 소리를 받아들였다. 줄넘기를 할 때 딱딱 맞춰 뛰지 않고 살짝 리듬을 타며 엇박으로 뛰는 느낌을 떠올리면, 이 장르의 튕기는 맛을 짐작할 수 있다.

퍼블리싱(음악 출판권)

(말뜻) publish 는 출판한다는 뜻이다. 녹음 기술이 없던 시절에는 악보를 인쇄해 파는 것이 음악으로 돈을 버는 주된 길이었고, 그래서 곡의 권리를 다루는 일을 출판이라 부르게 됐다. (팝에서) 노래 자체, 즉 멜로디와 가사에 대한 저작권을 관리하며 그 곡이 방송·음반·광고·공연에 쓰일 때마다 사용료를 받는 권리다. 가수가 녹음한 음원 자체에 대한 권리(마스터)와는 다르다. 마이클 잭슨이 1985년에 사들인 비틀스 곡들의 권리가 바로 이것이다. 반 친구가 만든 보드게임의 규칙을 다른 반이 가져다 쓸 때마다 사용료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게임판을 누가 만들었든, 규칙을 쓸 권리는 따로 있는 셈이다. (다른 데서는) 일반적으로는 책이나 잡지를 펴내는 출판업 전체를 가리킨다.

크로스오버

(말뜻) 영어로 건너간다(cross over)는 뜻이다.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경계를 넘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담은 말이다. (팝에서) 특정 장르나 특정 청중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 다른 차트와 다른 청중에게까지 넘어가 성공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서는 흑인 음악이 R&B 차트에만 머물지 않고 백인 청중이 듣는 팝·록 차트까지 올라가는 경우를 특히 이렇게 불렀다. 「비트 잇」은 록 기타로 록 청중까지 끌어들인 대표적 크로스오버다. 축구부 친구가 반 대항 농구 대회에서도 활약해 농구부 친구들까지 팬으로 만든다면, 그게 바로 크로스오버다. (다른 데서는) 농구에서 공을 좌우로 바꿔 튀기며 수비를 제치는 드리블 기술, 그리고 서로 다른 만화·게임의 등장인물이 한 이야기에 함께 나오는 것도 크로스오버라고 부른다.

전조(키 체인지)

(말뜻) 전조(轉調)는 조(調)를 옮긴다(轉)는 뜻이다. 조는 곡의 음높이 기준, 즉 어느 음을 중심으로 노래하는지를 말한다. (팝에서) 곡 중간에 음높이 기준을 통째로 올리거나 내리는 것이다. 팝에서는 마지막 후렴 직전에 반음이나 온음을 올려, 같은 후렴을 더 높고 절박하게 들리게 하는 데 자주 쓴다. 「맨 인 더 미러」 후반부가 좋은 예다. 노래방에서 곡 중간에 키 올리기 버튼을 눌렀을 때 갑자기 노래가 더 신나고 힘들어지는 느낌을 떠올리면 된다.

비트박스

(말뜻) 비트(beat)는 박자, 박스(box)는 상자다. 원래는 리듬을 만들어 내는 상자, 곧 드럼 머신을 부르던 속어였고, 사람이 입으로 그 소리를 흉내 내면서 이 이름을 물려받았다. (팝에서) 입술, 혀, 목을 써서 드럼, 베이스, 효과음 같은 소리를 흉내 내는 기술이다. 힙합 공연의 볼거리로 유명하지만, 마이클 잭슨에게는 작곡 도구였다. 악기를 잘 다루지 못했던 그는 곡의 리듬과 베이스 라인을 입으로 소리 내어 녹음한 뒤 연주자들에게 들려주었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끼리 입으로 쿵, 치, 쿵쿵 치 하며 리듬을 만들어 본 적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비트박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