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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

프린스 (1958–2016)

'앨범, 기억하시나요? 앨범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책과 흑인의 생명이 그렇듯이.' — 2015년 그래미 시상식 무대에서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 …재즈 피아니스트 부친앤더슨 가의 지하실2. 데뷔열아홉의 워너 계약전 악기 홀로 녹음「Dirty Mind」3. 정점「1999」와 레볼루션「Purple Rain」 2…아카데미 음악상4. 실험「Sign o' the Ti…페이즐리 파크 설립마돈나와 「Love Song」5. 투쟁이름 대신 기호원판권을 둘러싼 싸움독립 앨범 「Emancipa…6. 말년신앙과 2004년 귀환빗속의 슈퍼볼2016년 4월 별세프린스1958–2016모든 악기를 홀로 익혀, 자기 음악의 주인이 …
무대의 여정 🧭🗺️
N미국미니애폴리스1958–1987채너선1987–2016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존 L. 넬슨

    재즈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로, 그의 무대 이름이 아들의 이름이 됐고 아들은 그의 악상을 곡에 담아 공동 작곡자로 올렸다.

  • 후원버나뎃 앤더슨

    친구 안드레의 어머니로, 갈 곳 없던 십대 소년에게 집 지하실을 내주어 첫 연습실을 마련해 주었다.

  • 경쟁마이클 잭슨

    같은 1958년에 태어나 1980년대 내내 서로를 의식한 맞수로, 「Thriller」와 「Purple Rain」은 그 시대 흑인 팝의 두 봉우리가 됐다.

  • 동료웬디 멜보인과 리사 콜먼

    레볼루션의 기타와 건반을 맡아 「Purple Rain」부터 「Parade」까지 그의 소리와 편곡에 깊이 관여한 음악적 동반자였다.

  • 우정마돈나

    1989년 그녀의 앨범 「Like a Prayer」에서 「Love Song」을 함께 쓰고 불렀다.

  • 스승래리 그레이엄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의 베이시스트로, 2001년 무렵 그를 여호와의 증인 신앙으로 이끈 영적 멘토였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노스사이드의 소년 · 1958–1976

(출생) 1958년 6월,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프린스 로저스 넬슨이 태어났다. 아버지 존 L. 넬슨은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프린스 로저스 트리오'라는 재즈 밴드에서 피아노를 쳤다. 아들의 이름은 그 무대 이름에서 왔다. 어머니 매티 쇼는 그 트리오에서 노래하던 재즈 가수였다. 두 해 뒤 여동생 타이카가 태어났고, 부모가 각자 앞선 결혼에서 얻은 이복형제들도 있었다. (병약) 그는 몸이 약하고 키가 작은 아이였다. 2009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어린 시절 뇌전증 발작을 앓았고 그 때문에 학교에서 놀림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렇게 받은 상처를 메우려고 최대한 화려하게, 최대한 크게 소리 내는 쪽을 택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이별) 그가 일곱 살 무렵 부모가 헤어졌다. 소년은 아버지의 피아노로 귀에 들리는 가락을 따라 치며 혼자 건반을 익혔다. 어머니가 재혼한 뒤 의붓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 아버지 집으로 옮겼지만 그곳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했다. 십대 중반에는 친구 안드레 앤더슨의 어머니 버나뎃 앤더슨이 그를 받아 주었고, 그는 그 집 지하실에서 지냈다. (지하실) 그 지하실이 첫 연습실이 됐다. 그는 안드레, 사촌 찰스 스미스와 밴드 그랜드 센트럴을 꾸려 도시 북쪽 흑인 동네의 무대를 돌았다. 기타와 베이스, 드럼을 독학으로 익혔고 제임스 브라운과 슬라이 스톤, 지미 헨드릭스, 그리고 뜻밖에도 조니 미첼의 음반을 깊이 들었다. 펑크(funk)의 리듬과 록 기타, 포크 싱어송라이터의 섬세한 화성이 이 시절 한 소년의 귀 안에서 섞였다.

II. 열아홉의 계약 · 1976–1980

(데모) 1976년 그는 녹음 엔지니어 크리스 문의 작은 스튜디오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문은 이 십대 소년에게 스튜디오 열쇠를 맡기고 녹음 장비 다루는 법을 가르쳤다. 이곳에서 만든 데모 테이프는 지역 광고업자 오언 허스니의 손에 들어갔고, 허스니는 그의 첫 매니저가 되어 여러 음반사의 관심을 끌어냈다. (계약) 1977년, 열아홉 살의 그는 워너 브러더스와 앨범 세 장 계약을 맺었다. 신인이 자기 음반을 스스로 프로듀싱한다는 조건은 당시 메이저 음반사에서 드문 일이었다. 자기 음악은 자기 손으로 통제한다는 그의 고집은 이 첫 계약에서부터 시작됐다. (독주) 1978년 데뷔 앨범 「For You」에서 그는 작곡과 편곡, 노래, 프로듀싱을 도맡았고 크레디트에는 그가 연주한 악기가 스물일곱 가지로 적혔다. 녹음은 예산을 크게 넘겼고 판매는 기대에 못 미쳤다. 이듬해 두 번째 앨범의 싱글 「I Wanna Be Your Lover」가 R&B 차트 1위에 오르며 비로소 이름이 알려졌다. 무대를 위해 그는 안드레, 기타의 데즈 디커슨, 건반의 맷 핑크, 드럼의 보비 Z. 등과 밴드를 꾸렸다. (도발) 1980년 그는 펑크 스타 릭 제임스의 투어에 오프닝으로 섰다. 두 사람의 신경전은 유명했고, 제임스는 이 젊은 경쟁자가 자기 무대를 흉내 낸다고 불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해 집 안 작업실에서 거의 혼자 녹음한 「Dirty Mind」는 성(性)을 거침없이 말하는 화법과 뉴웨이브 록의 날 선 소리를 섞었다. 판매는 크지 않았지만 평단은 흑인 음악과 백인 록의 경계를 넘는 새 목소리로 받아들였다.

♪아이 워너 비 유어 러버 (I Wanna Be Your Lover)1979실황 Prince · 1986

첫 앨범의 부진 뒤 그의 이름을 처음 알린 곡이다. 스무 살의 그가 거의 모든 악기를 혼자 연주해 만든, 1인 녹음실 시대의 결실이다.

  • 처음부터 끝까지 평소 음역보다 훨씬 높은 가벼운 목소리(가성, 팔세토)로 부른다. 소년 같은 목소리가 수줍으면서도 대담한 구애의 정서를 만든다.
  • 디스코 시대의 고른 박자 위에서 기타를 짧게 끊어 치는 연주(커팅)와 통통 튀는 베이스가 맞물린다. 이 모든 악기를 그가 직접 연주했다.
  • 가진 것 없는 젊은이가 자기 처지를 털어놓으며 마음을 고백하는 화법이어서, 가볍게 들리는 곡에 은근한 절실함이 배어 있다.
  • 노래가 끝난 뒤 긴 연주 구간이 이어지며 건반과 기타가 즉흥처럼 주고받는다. 무대 위 밴드 연주를 상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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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미니애폴리스 사운드 · 1981–1983

(소리) 그의 소리는 곧 한 도시의 이름으로 불렸다. 금관 악기가 맡던 짧고 강한 가락을 날카로운 신시사이저가 대신하고, 드럼 머신의 딱딱한 박자 위에 잘게 끊어 치는 펑크 기타와 뉴웨이브의 차가운 질감이 얹혔다. 평단은 이를 미니애폴리스 사운드라 불렀다. 1981년 「Controversy」는 그 문법을 다듬으며 성과 종교, 정치를 한 앨범에 뒤섞는 그의 버릇을 드러냈다. (분신) 그는 고향의 음악가들을 모아 밴드 더 타임과 여성 트리오 배니티 6를 만들고, 그들의 곡 대부분을 직접 쓰고 녹음하면서 크레디트에는 '제이미 스타'라는 가명을 올렸다. 1983년 더 타임의 지미 잼과 테리 루이스가 다른 가수의 음반 작업 중 눈보라에 발이 묶여 공연에 빠지자 그는 두 사람을 내보냈다. 독립한 두 사람은 1986년 재닛 잭슨의 「Control」을 만들었고, 미니애폴리스 사운드는 그의 손을 떠나서도 퍼져 나갔다. (1999) 1982년 두 장짜리 앨범 「1999」는 그를 전국구 스타로 만들었다. 「Little Red Corvette」가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 안에 들었고, 흑인 가수의 영상을 잘 틀지 않던 MTV가 그의 뮤직비디오를 자주 내보냈다. 앨범 표지에는 '더 레볼루션'이라는 밴드 이름이 작게 숨어 있었다. 건반의 리사 콜먼에 이어 1983년 기타의 웬디 멜보인이 합류해 둘은 그의 가장 가까운 음악적 동반자가 됐다. (맞수) 같은 해 나온 마이클 잭슨의 「Thriller」는 그에게 넘어야 할 산이었다. 같은 1958년에 태어난 두 사람은 서로를 주의 깊게 지켜보는 맞수였다. 그는 매니저들과 계약을 갱신하며, 자신이 주연하는 영화를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만들어 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1999 (1999)1982실황 Prince and The Revolution · 1985 시러큐스

미니애폴리스 사운드를 전국에 알린 곡이다. 레볼루션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그가 밴드와 목소리를 나누기 시작한 순간을 담았다.

  • 도입부에서 속도를 늦춰 낮게 변조한 목소리가 말하듯 등장해, 축제 같은 곡 앞에 섬뜩한 예고처럼 깔린다.
  • 첫 절의 노래를 그가 혼자 부르지 않고 리사 콜먼, 질 존스, 데즈 디커슨과 한 줄씩 나눠 부른다. 여러 목소리가 바통을 넘기듯 이어진다.
  • 드럼 머신(린 LM-1)의 딱딱한 박자 위로 금관 악기를 흉내 낸 굵은 신시사이저 가락이 반복된다. 미니애폴리스 사운드의 교과서 같은 짜임이다.
  • 냉전 시대 핵전쟁의 공포를 배경으로, 세상이 끝나기 전에 춤추자는 역설적인 정서를 경쾌한 파티 음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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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보랏빛 비 · 1983–1986

(영화) 영화 「퍼플 레인」은 1983년 가을 미니애폴리스에서 촬영됐다. 영화 속 주인공 '키드'는 다투는 부모 밑에서 자라고, 그의 아버지는 자기 곡을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는 피아니스트다. 허구였지만 많은 대목이 그의 성장기를 닮았다. 그는 실제로 아버지의 악상을 바탕으로 한 「Computer Blue」 등에 아버지 이름을 공동 작곡자로 올렸다. (정점) 1984년 7월 공개된 영화와 사운드트랙은 그해 미국 대중문화의 한복판에 섰다.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24주 동안 지켰고, 「When Doves Cry」는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 됐다. 한때 그는 미국에서 1위 영화, 1위 앨범, 1위 싱글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었다. 이듬해 그는 아카데미 음악상(오리지널 송 스코어)을 받았다. (그늘) 성공은 소란도 데려왔다. 수록곡 「Darling Nikki」의 노골적인 내용을 문제 삼은 학부모 단체 PMRC의 활동은 음반에 부모 지도 경고 스티커가 붙는 계기가 됐다. 1985년 1월 아프리카 기근 구호곡 「We Are the World」 녹음에 그가 나타나지 않은 일도 언론에 오르내렸다. 그는 대신 자선 앨범에 미발표곡 한 곡을 내놓았다. (전환) 그는 같은 공식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1985년 「Around the World in a Day」는 사이키델릭 팝으로 방향을 틀었고, 1986년 「Parade」는 그가 직접 연출한 흑백 영화 「언더 더 체리 문」의 음악이었다. 영화는 외면받았지만 앨범의 「Kiss」는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그해 가을 투어가 끝나자 그는 레볼루션을 해산했고, 웬디와 리사도 그의 곁을 떠났다.

♪웬 더브스 크라이 (When Doves Cry)1984공식 MV — Prince and the Revolution

영화 「퍼플 레인」에서 부모의 다툼과 자신의 연애가 겹쳐 보이는 장면에 쓰인 곡이다. 그해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 됐다.

  • 대부분의 팝송에 있는 베이스가 이 곡에는 없다. 그가 녹음 막바지에 베이스 트랙을 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로, 그 빈자리 때문에 곡이 묘하게 허공에 떠 있는 듯 들린다.
  • 짧고 화려한 기타 솔로로 문을 연 뒤, 드럼 머신의 건조한 박자와 단순한 건반 가락이 곡 전체를 끌고 간다.
  • 여러 번 겹쳐 녹음한 목소리가 낮은 음에서 높은 가성까지 오르내리고, 절정에서는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터져 나온다.
  • 끝부분에 바로크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건반 선율이 흐르며 곡이 차분하게 정리되는 듯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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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 레인 (Purple Rain)1984실황 Prince · 1999 Paisley Park

영화의 절정이자 그의 이름과 동의어가 된 곡이다. 고향 클럽의 실황 녹음에서 출발해 23년 뒤 슈퍼볼의 빗속까지 이어졌다.

  • 1983년 미니애폴리스 퍼스트 애비뉴 클럽의 실황 녹음이 바탕이고, 그 위에 스튜디오에서 현악과 소리를 덧입혔다(오버더빙). 객석의 공기가 곡 밑바닥에 남아 있다.
  • 울림이 넓게 퍼지는 기타 화음으로 시작하는데, 이 화음의 짜임에는 웬디 멜보인의 손길이 컸다고 알려져 있다. 가스펠의 느린 걸음과 록 발라드가 섞인 짜임이다.
  • 노래가 끝난 뒤 긴 기타 솔로가 이어지고, 그 위로 가성의 울부짖음이 얹힌다. 곡이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가사보다 이 연주에 있는 것처럼 들린다.
  • 마지막은 피아노와 현악만 남아 천천히 사그라든다. 8분이 넘는 곡이 한 편의 의식처럼 마무리된다.
  • 2007년 마이애미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실제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이 곡을 연주한 장면은 역대 최고의 하프타임 무대로 자주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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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Kiss)1986실황 Prince · 1999 Paisley Park

영화 「언더 더 체리 문」이 실패하던 해에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곡이다. 원래 다른 밴드에게 준 곡을 그가 되찾아 다시 만들었다.

  • 원래 그가 밴드 마자라티에게 준 데모였고, 프로듀서 데이비드 Z가 편곡한 녹음을 그가 되찾아 자신의 노래와 기타를 얹었다.
  • 베이스가 없고, 마른 어쿠스틱 기타의 짧은 반복 가락과 드럼 머신만 남겼다. 악기를 덜어 낼수록 리듬이 더 또렷해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편곡이다.
  • 곡 전체를 가성으로 부르며 숨소리와 짧은 외침을 악기처럼 쓴다. 장난스럽고 자신만만한 화법이 이 목소리에 실린다.
  • 사이사이 날카롭게 끊어 치는 일렉트릭 기타가 끼어들어 텅 빈 공간에 불꽃처럼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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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시대의 징후 · 1986–1992

(카밀) 밴드가 흩어진 뒤에도 그는 쉬지 않고 녹음했다. 녹음 속도를 높여 높고 중성적으로 만든 목소리의 분신 '카밀'의 앨범, 세 장짜리 「Crystal Ball」 같은 기획이 차례로 만들어졌다 엎어졌다. 워너가 세 장짜리를 받아들이지 않자 그는 두 장으로 추렸고, 1987년 「Sign o' the Times」가 나왔다. 판매는 「Purple Rain」에 한참 못 미쳤지만 평단은 지금까지도 이 앨범을 그의 최고작으로 꼽는다. (근거지) 1987년 그는 미니애폴리스 남서쪽 교외 채너선에 녹음 스튜디오이자 리허설 공간인 페이즐리 파크를 열었다. 이곳은 그가 남은 생 동안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열고 끝내 살게 되는 근거지가 됐다. 같은 해 말 그는 이미 찍어 둔 「The Black Album」을 발매 직전 거둬들였다. 지나치게 어둡고 분노에 찬 음반이라 느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고, 이듬해 영적인 색채가 짙은 「Lovesexy」를 냈다. (교류) 다른 스타들과의 교류도 잦았다. 1989년 마돈나의 앨범 「Like a Prayer」에서 두 사람은 「Love Song」을 함께 쓰고 불렀다. 같은 해 영화 「배트맨」의 사운드트랙은 미국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1985년 그가 자신이 꾸린 밴드 더 패밀리를 위해 썼던 「Nothing Compares 2 U」는 1990년 아일랜드 가수 시네이드 오코너가 불러 세계 곳곳에서 1위에 올랐다. (세대) 1991년 그는 새 밴드 뉴 파워 제너레이션과 「Diamonds and Pearls」를 냈다. 래퍼를 밴드에 들이고 힙합의 리듬을 받아들인 이 앨범에서 「Cream」이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서른을 넘긴 그는 자신을 듣고 자란 세대의 언어를 배우며 그들과 겨루고 있었다.

♪사인 오 더 타임스 (Sign o' the Times)1987무대 Prince · 2004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

레볼루션을 해산하고 홀로 남은 그가 시대의 뉴스를 담담하게 읊은 곡이다. 그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같은 이름 앨범의 첫 곡이다.

  • 녹음된 소리를 건반으로 불러 쓰는 기계(샘플러)의 건조한 베이스음과 드럼 머신만으로 거의 텅 빈 공간을 만든다. 화려함을 뺀 소리가 곡의 무게를 만든다.
  • 화음이 거의 바뀌지 않는 블루스의 짜임 위에서 곡이 끝까지 같은 자리를 맴돈다. 그 단조로움이 오히려 긴장을 쌓는다.
  • 에이즈, 마약, 갱 폭력, 우주 왕복선 사고 같은 1980년대의 뉴스를 높이지 않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늘어놓는다. 노래보다는 보도에 가까운 화법이다.
  • 구절 사이에 짧은 블루스 기타가 탄식처럼 끼어든다. 같은 해 공개한 콘서트 영화에서도 이 곡이 무대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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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이름 없는 이름 · 1992–2000

(계약) 1992년 그는 워너와 새 계약을 맺었다. 언론은 1억 달러 규모라고 보도했고 그는 회사 부사장 직함까지 받았다. 그러나 갈등은 곧 드러났다. 그는 만드는 속도대로 음반을 내고 싶어 했고, 회사는 시장을 생각해 발매 간격을 벌리려 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만든 녹음의 원판권(마스터)을 회사가 갖는다는 사실을 그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기호) 1993년 6월 7일, 서른다섯 번째 생일에 그는 이름을 발음할 수 없는 기호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언론은 그를 '예전에 프린스라 불리던 아티스트'라고 불렀고, 그는 뺨에 '노예(slave)'라는 글자를 쓰고 무대에 섰다. 당시에는 조롱거리가 됐지만, 지금은 음악가의 소유권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이른 사례로 다시 평가받는다. (독립) 1994년 그는 워너를 거치지 않고 독립 레이블을 통해 「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를 냈고, 이 곡은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1996년 남은 계약을 채우고 워너를 떠난 그는 그해 11월 해방이라는 뜻의 세 장짜리 앨범 「Emancipation」을 냈다. 1998년 「Crystal Ball」은 전화와 인터넷 주문으로 팬에게 직접 팔았다. (결혼) 1996년 2월 그는 댄서 마이테 가르시아와 결혼했다. (계승) 그 사이 그를 듣고 자란 음악가들이 앞에 나서고 있었다. TLC는 1994년 「CrazySexyCool」에서 그의 「If I Was Your Girlfriend」를 다시 불렀고, 디안젤로는 2000년 「Voodoo」에서 그에게 배운 리듬과 목소리의 결을 숨기지 않았다. 1999년 말 음악 출판 계약이 끝나자 그는 2000년 5월 다시 프린스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더 모스트 뷰티풀 걸 인 더 월드 (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1994공식 MV — Prince

워너와 다투던 그가 음반사를 거치지 않고 독립 레이블로 낸 곡이다. 이름 대신 기호로 활동하던 시기에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 처음부터 부드러운 가성으로 시작하는 소울 발라드다. 목소리를 힘껏 내지르기보다 속삭이듯 아껴 부른다.
  • 후렴에서 여러 겹의 목소리 화음이 쌓이며 곡이 따뜻하게 부풀어 오른다.
  • 크레디트에 이름 대신 기호가 적힌 이 곡의 성공은, 음반사 없이도 히트곡을 낼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증명한 사례로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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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마지막 무대 · 2001–2016

(신앙) 2001년 무렵 그는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의 베이시스트였던 래리 그레이엄의 인도로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됐다. 같은 해 낸 「The Rainbow Children」은 재즈의 색이 짙은, 신앙을 주제로 한 앨범이었다. 무대에서 옛 노래의 노골적인 대목을 고쳐 부르는 일이 잦아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해 그는 재혼했으나 이 결혼도 2007년에 끝났다. (귀환) 2004년 그래미 시상식 오프닝에서 그는 비욘세와 함께 「Purple Rain」과 그녀의 「Crazy in Love」를 엮어 불렀고, 앨리샤 키스와 아웃캐스트의 소개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앨범 「Musicology」와 그해 투어도 크게 성공했다. 2007년 2월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는 쏟아지는 비 속에서 「Purple Rain」을 불렀다. (소유) 2014년 워너와 다시 손잡으면서 그는 오래 바라던 원판권을 되찾았다고 보도됐다. 이듬해 그래미 무대에서 앨범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했고, 경찰 구금 중 숨진 프레디 그레이의 죽음으로 들끓던 볼티모어에서 평화를 위한 공연을 열었다. (퇴장) 2016년 그는 피아노 한 대와 마이크만 놓고 옛 노래와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투어를 돌았다. 4월 15일 새벽 애틀랜타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던 전용기가 일리노이주 몰린에 비상 착륙했고, 엿새 뒤인 21일 그는 페이즐리 파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쉰일곱 살이었다. 사인은 펜타닐 과다 복용에 따른 사고사였다. 유언장은 없었고 유산 정리는 2022년에야 법원에서 마무리됐다. 페이즐리 파크는 박물관이 됐다.

덜 알려진 이야기

「Purple Rain」의 타이틀곡은 스튜디오 녹음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바탕은 1983년 8월 3일 미니애폴리스 퍼스트 애비뉴에서 열린 미네소타 댄스 시어터 후원 자선 공연의 실황 녹음이다. 웬디 멜보인이 레볼루션의 기타리스트로 처음 선 무대이기도 했다. 이 녹음에 스튜디오에서 현악과 소리를 덧입히고 일부를 잘라 낸 것이 앨범에 실렸다. 영화 속 공연 장면이 워낙 강렬해, 그 원래의 밤은 오래 가려져 있었다. 그는 남에게 준 곡에 자주 가명을 썼다. 더 타임과 배니티 6의 프로듀서 '제이미 스타', 뱅글스의 「Manic Monday」 작곡자 '크리스토퍼', 시나 이스턴의 「Sugar Walls」 작곡자 '알렉산더 네버마인드'가 모두 그였다. 그가 일부러 크레디트를 감췄기 때문에, 당시 많은 청취자는 이 곡들이 한 사람의 손에서 나왔다는 것을 몰랐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오랜 친구였던 정치 평론가 밴 존스는 프린스가 흑인 청년에게 코딩을 가르치는 프로그램 #YesWeCode 등 여러 사회 활동을 조용히 후원해 왔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기를 원했다고 한다. 페이즐리 파크에는 볼트(vault)라 불린 보관실이 있었고, 그 안에 발표되지 않은 녹음이 방대하게 쌓여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사후 1983년의 피아노 독주 녹음 「Piano & a Microphone 1983」(2018), 남에게 준 곡의 원래 데모를 모은 「Originals」(2019), 2010년에 녹음해 두었던 「Welcome 2 America」(2021)가 이곳에서 나왔다.

용어 노트 📚🔎

가성(팔세토)

(말뜻) 이탈리아어 falsetto는 가짜라는 뜻의 falso에서 왔다. 우리말 가성(假聲)도 거짓(假) 소리(聲)라는 뜻이다. 평소 말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따로 꾸며 내는 목소리라는 의미가 이름에 담겨 있다. (팝에서) 성대를 가볍게 떨게 해서 평소 음역보다 훨씬 높은 음을 내는 창법이다. 소리가 얇고 숨이 섞여 부드럽고 몽롱하게 들린다. 친구를 웃기려고 만화 속 아기 목소리를 흉내 낼 때 목소리가 위로 확 뒤집히는 느낌이 바로 가성이다. 프린스는 이 목소리를 한 곡 전체에 쓰기도 했다.

펑크(funk)

(말뜻) funk는 원래 영어에서 땀내나 퀴퀴한 냄새를 가리키던 속된 말이었다. 재즈 음악가들 사이에서 꾸밈없고 진한 연주를 칭찬하는 말로 바뀌었다고 알려져 있다. (팝에서) 1960년대 후반 제임스 브라운 등이 만든 흑인 댄스 음악이다. 화려한 가락보다 리듬이 주인공이어서, 베이스와 드럼, 짧게 끊어 치는 기타가 맞물려 몸을 저절로 움직이게 한다. 체육 시간에 여럿이 긴 줄넘기를 할 때 모두가 같은 순간에 뛰어오르는 그 박자감처럼, 악기들이 한 박에 딱 모였다가 흩어진다. (다른 데서는) 한국어로 똑같이 펑크라고 적는 punk는 1970년대의 거칠고 빠른 록 음악을 가리키는 전혀 다른 말이다.

신시사이저

(말뜻) 영어 synthesize는 여러 요소를 합쳐 하나를 만든다, 곧 합성한다는 뜻이다. 신시사이저는 전기 신호를 합성해 소리를 만드는 기계라는 뜻이다. (팝에서) 건반을 누르면 전자 회로가 소리를 만들어 내는 악기다. 피아노나 현악기, 금관 악기를 흉내 내기도 하고 세상에 없던 소리를 만들기도 한다. 프린스는 트럼펫·색소폰 같은 금관 악기가 맡던 짧고 강한 가락을 신시사이저로 쳤다. 요리할 때 재료를 섞고 불 세기를 조절해 새 맛을 내듯, 손잡이를 돌려 소리의 높이와 두께, 울림을 조절해 원하는 소리를 빚는다. (다른 데서는) 화학에서 합성(synthesis)은 여러 물질을 반응시켜 새 물질을 만드는 일을 말한다.

드럼 머신

(팝에서) 사람이 드럼을 치는 대신, 미리 입력해 둔 박자대로 북과 심벌 소리를 내는 전자 기계다. 1980년대 초 린 LM-1 같은 기계가 나오면서 녹음실에서 널리 쓰였다. 사람처럼 지치거나 박자가 흔들리지 않아 딱딱하고 정확한 느낌이 난다. 리듬 게임에서 화면 위 노트가 정해진 박자로 한 치 어긋남 없이 떨어지는 것처럼, 같은 틀이 똑같이 되풀이된다. 프린스는 이 기계의 차가운 박자를 펑크의 뜨거운 기타와 맞붙여 독특한 소리를 만들었다.

미니애폴리스 사운드

(팝에서) 1980년대 초 프린스와 그 주변 음악가들이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만든 소리를 부르는 이름이다. 펑크의 리듬에 뉴웨이브 록의 차갑고 날카로운 질감을 섞고, 금관 악기 대신 신시사이저를, 사람 드러머 대신 드럼 머신을 즐겨 쓴 것이 특징이다. 같은 김치찌개라도 집집마다 손맛이 다르듯, 한 도시의 음악가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같은 장르에 그 동네만의 맛을 낸 경우다. 프린스 곁에서 일했던 지미 잼과 테리 루이스가 이 소리를 재닛 잭슨의 음반으로 옮겨 가 더 널리 퍼뜨렸다.

원판권(마스터)

(말뜻) 영어 master는 주인이라는 뜻과 함께, 모든 복사본의 바탕이 되는 원본이라는 뜻도 있다. (팝에서) 녹음실에서 완성된 최초의 원본 녹음을 마스터라 하고, 그 원본을 가진 권리를 원판권이라 한다. 음반이 팔리거나 스트리밍·광고에 노래가 쓰일 때 돈과 결정권은 대개 원판권을 가진 쪽에 돌아간다. 가수가 노래를 직접 만들어도 원판권은 음반사가 갖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학급 문집인데 원본 파일은 학교가 갖고 있어서, 내 마음대로 다시 인쇄하거나 고칠 수 없는 상황을 떠올리면 된다. 프린스가 음반사와 오래 싸운 이유가 이것이었다. (다른 데서는) 영어권 대학에서 마스터는 석사 학위를 뜻한다.

오버더빙(덧입힘)

(말뜻) over(위에)와 dub(녹음을 덧붙이다)를 합친 말로, 이미 녹음된 것 위에 소리를 겹쳐 녹음한다는 뜻이다. (팝에서) 먼저 녹음해 둔 연주를 들으면서 그 위에 새 악기나 목소리를 한 겹씩 더 녹음하는 방법이다. 이 덕분에 한 사람이 드럼을 녹음하고, 그것을 들으며 베이스를, 다시 기타와 노래를 차례로 얹어 혼자서 밴드 전체의 소리를 만들 수 있다. 미술 시간에 밑그림 위에 물감을 한 층씩 덧칠해 그림을 완성하는 것과 같다. 프린스의 데뷔 앨범이 이렇게 만들어졌고, 「Purple Rain」은 실황 녹음 위에 스튜디오에서 덧입힌 소리로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