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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bie Hancock

허비 행콕 (1940–)

어쿠스틱 피아노 앞에서도, 신시사이저와 턴테이블 사이에서도, 그는 늘 아직 들어 보지 못한 소리를 향해 몸을 돌렸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시카고 출생11세 교향악단 협연그리넬 공학도2. 블루노트도널드 버드「워터멜론 맨」「메이든 보이지」3. 마일스2기 퀸텟쇼터·카터·윌리엄스「마일스 스마일스」4. 탐구음완디시 섹스텟니치렌 불교전자 건반5. 대중「헤드 헌터스」「로킷」과 힙합아카데미 음악상6. 오늘「리버」 올해의 앨범유네스코 친선대사세계 재즈의 날행콕1940–마일스의 퀸텟에서 펑크와 힙합까지, 반세기 넘…
무대의 여정 🧭🗺️
N미국시카고1940–1956그리넬1956–1960뉴욕1961–1972로스앤젤레스1972–현재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영향빌 에번스

    독학하던 10대의 행콕은 에번스의 화성과 터치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 스승도널드 버드

    그를 뉴욕으로 데려가 일자리를 이어 주고, 곡의 출판권을 직접 쥐라고 조언했다.

  • 스승마일스 데이비스

    2기 퀸텟에 그를 불러들여, 말 대신 소리로 실수를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쳤다.

  • 우정웨인 쇼터

    퀸텟에서 만나 V.S.O.P., 듀오 앨범 「1+1」, 「리버」까지 평생을 함께한 벗이다.

  • 동료버스터 윌리엄스

    음완디시 섹스텟의 베이시스트로, 1972년 행콕에게 니치렌 불교를 소개했다.

  • 후원데이비드 루빈슨

    「헤드 헌터스」를 비롯한 1970년대 컬럼비아 시절의 녹음을 함께 만든 프로듀서다.

YouTube에서 6곡 이어 듣기 ↗

I. 시카고의 소년 · 1940–1960 (0–20세)

(시카고) 1940년 4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웨이먼 에드워드 행콕은 정부의 식육 검사관으로 일했고, 어머니 위니 벨 그리핀은 자식들의 교육을 무엇보다 중히 여겼다. 형 웨이먼 주니어와 여동생 진 사이의 둘째였다. 본명 허버트 제프리 행콕은 부모가 좋아하던 가수 겸 배우 허브 제프리스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피아노) 일곱 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1952년, 열한 살의 그는 시카고 교향악단의 청소년 음악회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6번의 1악장을 협연했다. 클래식 신동으로 출발한 셈이지만, 그 무렵까지 그에게 재즈는 낯선 음악이었다. (귀) 하이드파크 고등학교 시절, 또래 학생이 악보 없이 즉흥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재즈에 끌렸다. 가르쳐 줄 사람이 마땅치 않자 그는 보컬 그룹 하이로스의 음반을 되풀이해 들으며 편곡자 클레어 피셔가 쌓은 화음을 한 음씩 받아 적었다. 빌 에번스의 화성과 터치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고 그는 여러 차례 회고했다. (공학) 1956년 아이오와주의 작은 대학 그리넬 칼리지에 들어가 처음에는 전기공학을 공부했다. 음악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작곡으로 전공을 바꿨지만, 회로와 기계에 대한 호기심은 평생 남았다. 훗날 그가 신시사이저와 개인용 컴퓨터를 동료들보다 먼저 받아들인 데에는 이 공학도 시절의 감각이 깔려 있었다.

II. 수박 장수의 노래 · 1960–1963 (20–23세)

(호킨스) 1960년 시카고로 돌아온 그는 클럽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았고, 스무 살에 테너 색소폰의 거장 콜먼 호킨스와 함께 연주할 기회를 얻었다. 같은 해 겨울, 그는 트럼펫 연주자 도널드 버드의 밴드에 피아니스트로 합류했다. (버드) 버드는 이 젊은이를 뉴욕으로 데려가 일자리를 이어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값진 것은 돈에 관한 조언이었다. 버드는 자기 곡의 출판권을 남에게 넘기지 말고 직접 출판사를 차려 쥐고 있으라고 했고, 행콕은 이 말을 평생의 경제적 기반이 된 가르침으로 회고했다. (블루노트) 1962년 그는 블루노트 레이블의 알프레드 라이언과 계약해 첫 리더 앨범 「테이킹 오프」를 녹음했다. 트럼펫 프레디 허버드, 테너 색소폰 덱스터 고든, 베이스 부치 워런, 드럼 빌리 히긴스가 함께했고, 수록곡은 모두 그의 자작곡이었다. (수박) 첫 곡 「워터멜론 맨」은 어린 시절 시카고 거리를 지나던 수박 장수의 외침과 마차 바퀴 소리를 떠올리며 쓴 곡이라고 그는 회고했다. 1963년 쿠바 출신 타악기 연주자 몽고 산타마리아가 라틴 리듬으로 녹음한 판이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까지 오르자 저작권 수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출판권을 제 손에 쥐고 있었기에, 스물셋의 피아니스트는 생계 걱정 없이 자기 음악을 고를 수 있게 됐다.

♪테이킹 오프 (Takin' Off)1962 (22세)실황 「Watermelon Man」 Herbie Hancock·Miles Davis

도널드 버드의 권유로 자작곡만 담은 데뷔 앨범이다. 여기 실린 「워터멜론 맨」의 저작권이 이후 그의 음악적 모험을 받쳐 주었다.

  • 「워터멜론 맨」은 흔한 12마디 블루스가 아니라 16마디로 된 블루스풍 형식이다. 피아노 왼손이 되풀이하는 짧은 리듬 음형은 수박 장수의 마차가 덜컹거리는 소리를 떠올렸다는 그의 회고와 겹쳐 들린다.
  • 빌리 히긴스의 드럼은 재즈의 출렁이는 리듬(스윙)과 가스펠·리듬앤블루스의 단단한 뒷박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 이 걷는 듯한 리듬이 곡을 대중적으로 만든 열쇠처럼 들린다.
  • 덱스터 고든의 테너는 굵고 느긋한 음색으로 박자 뒤에 살짝 기대어 말하듯 솔로를 풀어 가고, 프레디 허버드의 트럼펫은 밝고 날카롭게 대비를 이룬다.
  • 1962년 5월 뉴저지의 루디 밴 겔더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블루노트 특유의 따뜻하고 가까운 소리 결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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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마일스의 퀸텟 · 1963–1968 (23–28세)

(초대) 1963년 5월,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를 불렀다. 베이스 론 카터, 열일곱 살 드러머 토니 윌리엄스와 함께 며칠 동안 마일스의 집에서 연주했는데, 정작 마일스는 내려오지 않고 위층에서 듣기만 했다고 행콕은 회고했다. 그렇게 앨범 「세븐 스텝스 투 헤븐」의 녹음에 참여하며 그는 밴드의 일원이 됐다. (퀸텟) 1964년 테너 색소폰 웨인 쇼터가 들어오면서 훗날 2기 퀸텟이라 불리는 편성이 완성됐다. 「E.S.P.」, 「마일스 스마일스」, 「네페르티티」로 이어진 녹음에서 행콕·카터·윌리엄스의 리듬 섹션은 곡의 형식을 늘였다 줄였다 하며 솔로이스트와 대화하듯 움직였다. 쇼터와의 우정도 이때 시작돼 평생 이어졌다. (가르침) 마일스는 말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행콕의 회고에 따르면 어느 공연에서 그가 엉뚱한 화음을 쳤는데, 마일스가 그 위에 음을 얹어 그 화음을 옳은 것으로 바꿔 놓았다. 실수를 판단하지 않고 받아들여 살려 내는 태도를 그는 그날 배웠다고 했다. (리더) 퀸텟에 있는 동안에도 블루노트에서 「엠피리언 아일스」, 「메이든 보이지」, 「스피크 라이크 어 차일드」를 냈다. 1966년에는 안토니오니의 영화 「욕망」의 음악을 맡았고, 1967년 웨스 몽고메리의 「어 데이 인 더 라이프」 녹음에도 피아니스트로 참여했다. (결혼) 1968년 그는 기기 마이크스너와 결혼했다. 브라질 신혼여행에서 제때 돌아오지 못한 사이 칙 코리아가 자리를 이어받았고, 그는 그렇게 퀸텟을 떠났다. 이후에도 「인 어 사일런트 웨이」 등 마일스의 녹음에 객원으로 불려 갔다.

♪메이든 보이지 (Maiden Voyage)1965 (25세)실황 「Maiden Voyage」 Herbie Hancock · 2022 재즈의 날

마일스의 리듬 섹션 동료 론 카터·토니 윌리엄스와 함께 바다를 주제로 만든 앨범으로, 퀸텟에서 익힌 열린 화성이 그의 작곡으로 꽃핀 기록이다.

  • 타이틀곡은 해결되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화음(서스펜디드 코드)을 길게 이어 간다. 정해진 코드 진행보다 음계 위에서 머무는 방식(모달 재즈)에 가까워, 잔잔한 물 위를 미끄러지는 느낌을 준다.
  • 피아노와 베이스가 같은 리듬 음형을 고집스럽게 되풀이(오스티나토)하는 동안 토니 윌리엄스의 심벌이 물결처럼 일렁인다. 32마디 AABA 형식이지만 경계가 부드럽게 흐려진다.
  • 조지 콜먼의 테너와 프레디 허버드의 트럼펫이 각자 솔로를 펼치고, 행콕의 솔로는 화음을 한 겹씩 쌓아 올리듯 절제된 선율로 이어진다.
  • 마지막 곡 「돌핀 댄스」는 화성이 계속 예상치 못한 곳으로 옮겨 가는 곡으로, 오늘날 재즈 연주자들이 즐겨 연주하는 표준곡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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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스 스마일스 (Miles Smiles)1966 (26세)실황 「Footprints」 Herbie Hancock·Don Braden · UCLA

2기 퀸텟이 가장 자유롭게 숨 쉬던 시기의 녹음으로, 말 대신 소리로 가르치던 마일스 곁에서 행콕의 반주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들을 수 있다.

  • 웨인 쇼터가 쓴 「풋프린츠」는 한 마디 여섯 박(6/4박자)의 단조 블루스다. 론 카터의 베이스가 되풀이하는 낮은 음형이 곡 전체의 바닥을 받친다.
  • 몇몇 곡에서 행콕은 솔로 뒤에 화음을 채워 넣는 반주(컴핑)를 아예 멈추거나 최소로 줄인다. 피아노가 빠진 공간에서 베이스와 드럼, 관악기가 더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처럼 들린다.
  • 토니 윌리엄스의 드럼은 박자를 지키기보다 솔로이스트에게 말을 거는 듯 강약과 밀도를 수시로 바꾼다. 네 사람이 서로의 신호를 듣고 즉석에서 형식을 늘였다 줄이는 인터플레이가 이 앨범의 핵심이다.
  • 1966년 10월 뉴욕 컬럼비아 30번가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 테오 마세로와 이틀에 걸쳐 녹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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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작곡가라는 이름 · 1969–1973 (29–33세)

(독립) 1969년 그는 자신의 섹스텟을 꾸리고 워너브러더스로 옮겼다. 텔레비전 만화 특집을 위해 쓴 음악을 바탕으로 한 「팻 앨버트 로툰다」는 리듬앤블루스에 가까운 소리였지만, 밴드는 곧 전혀 다른 곳으로 나아갔다. (음완디시) 멤버는 트럼펫 에디 헨더슨, 트롬본 줄리언 프리스터, 베이스 클라리넷과 색소폰의 베니 모핀, 베이스 버스터 윌리엄스, 드럼 빌리 하트였다. 이들은 서로에게 스와힐리어 이름을 지어 불렀고, 행콕은 작곡가라는 뜻의 음완디시를 택했다. 펜더 로즈 전기 피아노에 에코 장치를 걸고, 신시사이저 연주자 패트릭 글리슨이 합류하면서 소리는 긴 호흡의 집단 즉흥으로 넓게 퍼져 나갔다. 「음완디시」, 「크로싱스」, 「섹스턴트」가 이 시기의 기록이다. (적자) 음악은 깊어졌지만 청중은 많지 않았다. 여섯 명을 데리고 다니는 순회공연은 수지를 맞추기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터멜론 맨」의 저작권료가 이 실험을 버티게 한 셈이었다. (불교) 1972년 그는 버스터 윌리엄스의 권유로 니치렌 불교를 접하고 남묘호렌게쿄를 외는 수행을 시작했다. 국제창가학회(SGI) 회원으로서 이 수행을 오늘까지 이어 왔다. 그는 수행을 통해 음악가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청중과 무엇을 나눌지를 묻게 됐고, 그 물음이 다음 방향을 정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주) 이 무렵 그는 로스앤젤레스로 근거지를 옮기고 컬럼비아 레코드와 계약했다.

♪음완디시 (Mwandishi)1971 (31세)

스와힐리어 이름을 나눠 가진 섹스텟의 대표 녹음으로, 상업적으로는 적자였지만 그가 가장 깊이 탐구하던 시기의 소리를 담았다.

  • 첫 곡 「오스티나토 (앤절라를 위한 모음곡)」는 한 마디 열다섯 박(15/8박자)이라는 낯선 박자 위에서 베이스가 같은 음형을 끝없이 되풀이한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몇 바퀴 지나면 몸이 그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 펜더 로즈 전기 피아노에 에코 장치를 걸어, 한 번 친 음이 메아리처럼 겹쳐 퍼진다. 어쿠스틱 피아노로는 낼 수 없는 공간감이 앨범 전체의 색을 정한다.
  • 「유일 노 웬 유 겟 데어」에서는 베니 모핀의 베이스 클라리넷과 관악기들이 느린 화음을 길게 깔고, 정해진 솔로 순서보다 여럿이 함께 소리를 짜 나가는 집단 즉흥이 중심이 된다.
  • 1970년 마지막 날 샌프란시스코의 월리 하이더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기타리스트 로니 몬트로스가 첫 곡에 객원으로 참여했다.

V. 헤드 헌터스와 로킷 · 1973–1986 (33–46세)

(펑크) 1973년 그는 섹스텟을 정리하고 슬라이 스톤처럼 몸을 움직이게 하는 밴드를 만들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베니 모핀만 남기고 베이스 폴 잭슨, 드럼 하비 메이슨, 타악기 빌 서머스를 불렀다. 프로듀서 데이비드 루빈슨과 샌프란시스코에서 녹음한 「헤드 헌터스」는 재즈 앨범으로는 처음으로 백만 장 넘게 팔린 음반으로 흔히 꼽힌다. (양쪽) 그는 한쪽 길만 걷지 않았다. 「스러스트」와 영화 「데스 위시」 음악을 만드는 한편, 1976년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의 회고 무대에서 쇼터·카터·윌리엄스를 다시 모으고 마일스의 자리에 프레디 허버드를 세웠다. 이 편성은 V.S.O.P.라는 이름으로 순회를 이어 갔다. 1978년에는 칙 코리아와 두 대의 피아노로 순회했고, 같은 해 목소리를 기계음으로 바꾸는 장치(보코더)로 노래한 「아이 써트 잇 워즈 유」를 냈다. (로킷) 1983년 앨범 「퓨처 쇼크」의 「로킷」은 베이시스트이자 프로듀서인 빌 라스웰, 턴테이블을 악기처럼 다룬 그랜드 믹서 D.ST와 만든 곡이었다. 기계 인형들이 움직이는 뮤직비디오가 MTV에서 널리 방송됐고, 이듬해 그래미 시상식 무대는 힙합이 대중의 눈앞에 선 초기 장면의 하나로 남았다. (진) 1985년 여동생 진이 델타 항공 191편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작사가로 일하며 오빠의 노래에 가사를 쓰기도 했던 동생을 잃은 슬픔을 그는 회고록에 담담히 적었다. (오스카) 1986년 베르트랑 타베르니에의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의 음악을 맡았다. 주연은 첫 앨범에서 함께했던 덱스터 고든이었고, 행콕은 이 영화로 1987년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헤드 헌터스 (Head Hunters)1973 (33세)실황 「Chameleon」 Herbie Hancock · 2010 Montreux

적자를 이어 가던 실험 끝에 사람들이 몸으로 느끼는 음악을 택한 결과물로, 그에게 대중적 성공과 경제적 여유를 함께 안겼다.

  • 「카멜레온」은 행콕이 신시사이저(ARP 오디세이)로 연주하는 굵은 베이스 라인으로 시작한다. 두 개의 화음만 오가는 단순한 틀 위에서 15분 넘게 그루브가 쌓여 간다.
  • 폴 잭슨의 베이스와 하비 메이슨의 드럼은 첫 박을 강하게 찍고 사이사이를 촘촘히 쪼개는 리듬(펑크)으로 맞물린다. 곡 후반에는 리듬이 바뀌며 행콕의 전기 피아노 솔로가 펼쳐진다.
  • 새로 녹음한 「워터멜론 맨」의 도입부는 빌 서머스가 맥주병에 입김을 불어 낸 소리다. 중앙아프리카 바벤젤레 사람들의 피리와 목소리를 번갈아 내는 음악(힌데후)을 본뜬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앨범에는 슬라이 스톤에게 바친 곡 「슬라이」도 실려 있어, 그가 이 밴드로 무엇을 꿈꿨는지 드러난다. 프로듀서는 데이비드 루빈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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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킷 (Rockit)1983 (43세)실황 Herbie Hancock · 2001 LA Knitting Factory

공학도의 호기심과 젊은 거리 문화가 만난 곡으로, 마흔을 넘긴 재즈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힙합 세대에 알렸다.

  • 그랜드 믹서 D.ST가 레코드판을 손으로 앞뒤로 밀고 당겨 내는 긁는 소리(스크래칭)가 곡의 주인공이다. 턴테이블이 하나의 악기로 쓰인 초기의 대표적 녹음이다.
  • 드럼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드럼 머신)가 찍은 딱딱하고 반복적인 박자다. 그 위에서 행콕의 신시사이저가 짧고 귀에 박히는 선율을 되풀이한다.
  • 빌 라스웰과 마이클 바인혼이 짠 리듬 트랙 위에 행콕이 건반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즉흥연주보다 소리의 질감과 편집이 중심이 되는 곡이다.
  • 고들리 앤드 크림이 만든 뮤직비디오에서는 기계 인형들이 음악에 맞춰 움직인다. 이 곡은 1984년 그래미 리듬앤블루스 연주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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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조니의 편지, 세계의 재즈 · 1987–2026 (47–86세)

(어쿠스틱) 1990년대에 그는 다시 피아노 앞으로 돌아왔다. 팝과 록의 노래를 재즈로 다시 읽은 「더 뉴 스탠더드」, 웨인 쇼터와 단둘이 녹음한 「1+1」, 거슈윈의 음악을 클래식과 아프리카 음악까지 넓혀 비춘 「거슈윈스 월드」가 이어졌다. (교육) 그는 셀로니어스 몽크 재즈 연구소의 이사장을 맡아 젊은 연주자를 키우는 일에 오래 힘을 쏟았다. 몽크의 이름을 달았던 이 기관은 2019년 허비 행콕 재즈 연구소로 이름을 바꿨다. (리버) 2007년 조니 미첼의 노래를 다룬 「리버: 더 조니 레터스」를 냈다. 이 앨범은 2008년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는데, 재즈 앨범으로는 1965년 스탄 게츠와 주앙 지우베르투의 「게츠/지우베르투」 이후 처음이었다. 그는 통틀어 열 번 넘게 그래미를 받았다. (대사) 2011년 유네스코 친선대사가 됐고, 이듬해부터 매년 4월 30일을 세계 재즈의 날로 정해 여러 나라에서 기념 공연을 이끌었다. 2013년 케네디 센터 공로상을 받았고, 2014년에는 하버드 대학교의 노턴 강좌를 맡았으며 같은 해 회고록 「파서빌리티스」를 펴냈다. (현재) 2023년 그는 평생의 벗 웨인 쇼터를 떠나보냈다. 여든을 넘긴 2020년대에도 그는 젊은 연주자들과 순회 무대에 서며, 어쿠스틱 피아노와 전자 건반을 오가는 연주를 이어 가고 있다.

♪리버: 더 조니 레터스 (River: The Joni Letters)2007 (67세)연주 「River」 Herbie Hancock · Corinne Bailey Rae (보컬)

오랜 벗 웨인 쇼터와 함께 조니 미첼의 노래를 재즈로 다시 읽은 앨범으로, 재즈 앨범으로는 43년 만에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 프로듀서 래리 클라인은 녹음에 앞서 연주자들이 노래의 가사가 무엇을 말하는지부터 함께 살피게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연주곡에서도 선율보다 노래의 정서를 따라가는 듯한 흐름이 들린다.
  • 노라 존스, 티나 터너, 코린 베일리 레이, 루시아나 소우자가 노래하고, 조니 미첼 본인도 한 곡을 부른다. 레너드 코언은 노래 대신 낮은 목소리로 시를 읽듯 가사를 낭송하고, 행콕의 피아노가 그 말 사이를 채운다.
  • 웨인 쇼터의 소프라노 색소폰은 짧은 음 몇 개로 긴 여백을 만든다. 두 사람이 수십 년 동안 함께 쌓아 온 호흡이 피아노와 색소폰의 주고받기에서 드러난다.
  • 조니 미첼의 노래 외에 엘링턴의 「솔리튜드」와 쇼터의 「네페르티티」도 실려, 조니의 음악이 재즈와 맺어 온 인연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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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광고) 바다를 그린 서정적 명곡 「메이든 보이지」는 원래 텔레비전의 남성용 향수 광고를 위해 쓴 짧은 음악에서 출발했다고 행콕 자신이 회고했다. 상업용 의뢰에서 나온 몇 마디가 블루노트 녹음을 거치며 재즈 표준곡이 된 셈인데, 앨범이 지닌 예술적 명성에 가려 이 출발점은 자주 언급되지 않는다. (대타) 「워터멜론 맨」이 몽고 산타마리아에게 건너간 데에도 우연이 있었다. 칙 코리아가 산타마리아 밴드를 떠난 뒤 행콕이 도널드 버드의 소개로 뉴욕의 한 클럽에서 대타로 연주하던 날, 이 곡을 들려주었고 밴드가 그 자리에서 따라 연주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훗날 마일스의 퀸텟에서 행콕의 자리를 이어받은 사람도 코리아였으니, 두 사람의 인연은 생각보다 일찍 시작된 셈이다. (받아쓰기) 그의 독특한 화성 감각은 재즈 피아니스트보다 보컬 그룹에서 먼저 왔다. 고교 시절 하이로스의 음반에서 클레어 피셔가 편곡한 화음을 한 음씩 받아 적은 경험을 그는 자신의 화성 공부의 출발점으로 꼽았다. 정규 재즈 교육이 드물던 시대에 음반을 스승 삼은 독학의 방식이었다. (맥주병) 「헤드 헌터스」판 「워터멜론 맨」의 도입부 소리는 신시사이저가 아니라 빌 서머스가 맥주병에 입김을 불어 낸 것이다. 중앙아프리카 바벤젤레 사람들의 음악을 담은 민족음악학 녹음을 본뜬 것으로, 펑크 앨범의 첫머리에 아프리카 민속음악의 흔적이 숨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용어 노트 📚🔎

하드 밥

(재즈에서) 1950~60년대 미국 동부에서 유행한 재즈로, 빠르고 복잡한 비밥에 블루스와 흑인 교회 음악(가스펠)의 끈적한 맛을 더한 스타일이다. 블루노트 레이블이 이 음악을 많이 녹음했고, 행콕의 「테이킹 오프」도 이 흐름 위에 있다. 학교 합창곡을 친구들끼리 부르다가 교회에서 배운 손뼉 장단과 흥을 섞어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 노래의 뼈대는 같지만 훨씬 몸이 들썩이게 된다.

모달 재즈

(말뜻) 모달은 선법(旋法)을 뜻하는 영어 mode 에서 왔다. 라틴어 뿌리 modus 는 재는 기준, 방식이라는 뜻이다. 어떤 음들로 노래할지 정하는 방식이라는 말이 이름에 들어 있다. (재즈에서) 화음이 몇 박마다 바쁘게 바뀌는 대신, 음계 하나 위에 오래 머물며 그 안에서 자유롭게 선율을 만드는 연주 방식이다. 1950년대 말 마일스 데이비스가 널리 퍼뜨렸고, 행콕의 「메이든 보이지」도 이 방식에 가깝다. 정해진 코스를 따라 달리는 이어달리기와, 넓은 운동장 하나를 주고 마음대로 뛰놀게 하는 자유 시간의 차이와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모드는 게임에서 하드 모드, 이지 모드처럼 플레이하는 방식을 고르는 말로도 쓴다.

컴핑

(말뜻) 반주한다는 뜻의 영어 accompanying 을 줄인 말로, 곁에서 채워 준다는 뜻의 complementing 과도 겹쳐 쓰인다. (재즈에서) 솔로이스트가 즉흥연주를 하는 동안 피아노나 기타가 뒤에서 화음을 툭툭 끊어 치며 받쳐 주는 반주다. 정해진 악보가 아니라 솔로를 들으며 그때그때 언제, 얼마나 칠지를 고른다. 친구가 발표할 때 옆에서 적당한 순간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장구를 쳐 주는 것과 같다 — 너무 자주 끼어들면 방해가 되고, 아예 가만히 있으면 발표자가 외로워진다.

오스티나토

(말뜻) 이탈리아어로 고집스러운, 끈질긴이라는 뜻이다. 영어 obstinate(완고한)와 뿌리가 같다. 같은 음형을 고집스럽게 되풀이한다는 성격이 이름에 그대로 들어 있다. (재즈에서) 짧은 리듬이나 선율 한 토막을 곡 내내 계속 반복하는 기법이다. 그 반복 위에서 다른 악기들이 자유롭게 연주한다. 행콕의 「메이든 보이지」와 「음완디시」의 첫 곡이 이 방식을 쓴다. 단체 줄넘기에서 줄을 돌리는 두 사람이 늘 같은 박자로 돌려 주기 때문에, 가운데 들어간 사람이 마음껏 뛰는 기술을 부릴 수 있는 것과 같다.

재즈 퓨전

(말뜻) 퓨전(fusion)은 라틴어 fundere(붓다, 녹이다)에서 온 말로, 여러 가지를 녹여 하나로 합친다는 뜻이다. (재즈에서) 1960년대 말부터 재즈에 록과 펑크의 리듬, 전기 기타·전기 피아노·신시사이저 같은 전자 악기를 섞어 만든 음악이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길을 열었고 행콕의 「헤드 헌터스」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떡볶이 소스로 만든 파스타처럼, 서로 다른 나라의 요리가 한 접시에서 만나 새로운 맛을 내는 퓨전 요리를 떠올리면 된다. (다른 데서는) 과학에서는 가벼운 원자들이 합쳐지는 핵융합을 뜻한다.

펑크

(재즈에서) 1960년대 미국 흑인 음악에서 나온 리듬 중심의 음악으로, 마디의 첫 박을 강하게 찍고 베이스·드럼·기타가 짧게 끊어지는 음으로 촘촘히 맞물리는 것이 특징이다. 선율보다 몸을 움직이게 하는 리듬(그루브)이 주인공이다. 체육대회 응원에서 여럿이 서로 다른 박자로 손뼉과 발 구르기를 나눠 맡았는데, 합쳐 놓으니 하나의 신나는 장단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타이어가 펑크 났다고 할 때의 펑크는 구멍이라는 뜻의 영어 puncture 에서 온 전혀 다른 말이고, 록 음악의 펑크(punk)와도 다른 말이다.

스크래칭

(말뜻) 영어 scratch 는 긁다라는 뜻이다. 레코드판을 긁는 듯한 소리에서 이름이 왔다. (재즈에서) 디제이가 턴테이블 위의 레코드판을 손으로 앞뒤로 밀고 당겨 독특한 긁는 소리를 내는 연주 기법이다. 힙합에서 시작됐고, 행콕의 「로킷」은 이 소리를 재즈 음악가의 곡에 끌어들인 유명한 예다. 녹음된 목소리를 되감기 버튼으로 빠르게 앞뒤로 돌리며 재미있는 소리를 만들어 본 경험과 비슷한데, 디제이는 그것을 박자에 정확히 맞춰 악기처럼 연주한다. (다른 데서는) 스크래치는 물건에 난 흠집을 뜻하고, 처음부터 새로 만든다는 뜻의 영어 표현(from scratch)으로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