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 Evans
가장 조용한 소리로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간 피아니스트.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해리 에번스
두 살 위 형으로 피아노의 첫 길잡이였고, 1979년 그의 죽음은 에번스에게 마지막 큰 상처가 됐다.
- 스승조지 러셀
리디안 크로매틱 콘셉트로 화성을 보는 눈을 넓혀 주고 뉴욕 시절 그를 무대에 세운 작곡가다.
- 후원오린 킵뉴스
리버사이드의 프로듀서로 데뷔작과 라파로 트리오의 명반을 만들고 어려운 시절 그를 기다려 주었다.
- 동료마일스 데이비스
1958년 그를 밴드에 들이고 「카인드 오브 블루」를 함께 만들어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 동료스콧 라파로
대등한 대화의 피아노 트리오를 함께 연 베이시스트로, 1961년 스물다섯에 사고로 숨졌다.
- 후원헬렌 킨
1962년 무렵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 매니저이자 프로듀서로 곁을 지켰다.
I. 플레인필드의 형제 · 1929–1950 (0–21세)
(출생) 1929년 8월, 미국 뉴저지주 플레인필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윌리엄 존 에번스였다. 아버지 해리 리언 에번스는 웨일스계로 골프 연습장을 운영했고, 술 문제가 있었다고 전기들은 적는다. 어머니 메리 소로카는 동유럽 루신계 이민 가정 출신으로 피아노를 즐겨 쳤고, 아이들을 정교회 예배에 데려갔다. 훗날 일부 평론가는 그의 느리고 두터운 화음에서 정교회 성가의 울림을 듣기도 했다. (형) 두 살 위 형 해리가 평생의 길동무였다. 형이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하자 여섯 살 빌도 곁에서 따라 배웠고, 이어 바이올린과 플루트도 익혔다. 악보를 처음 보고 곧바로 치는 능력이 뛰어나 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를 닥치는 대로 읽어 나갔다. 형제는 경쟁자라기보다 서로의 첫 청중이었다. (블루노트) 열두세 살 무렵 동네 댄스 밴드에서 「턱시도 정션」을 치다가 악보에 없는 음 하나를 즉흥으로 끼워 넣었는데, 그 순간 음악이 비로소 자기 것이 되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고 그는 회고했다. 이후 냇 킹 콜, 버드 파월, 레니 트리스타노의 음반을 귀로 따라가며 재즈의 문법을 익혔다. (루이지애나) 1946년 루이지애나주 해먼드의 사우스이스턴 루이지애나 칼리지에 들어가 1950년 피아노 연주와 음악 교육 학위를 받았다. 드뷔시와 라벨의 몽롱하고 색채가 풍부한 화성에 깊이 빠진 것도 이 무렵이다. 재학 중 쓴 「베리 얼리」는 십여 년 뒤 그의 트리오 레퍼토리가 되었다. 교실에서 배운 클래식의 섬세함과 무대에서 익힌 재즈의 리듬이 이 시절 한 몸에 자리 잡았다.
II. 군악대에서 뉴욕으로 · 1950–1958 (21–29세)
(군대) 졸업 직후 색소폰 주자 허비 필즈의 밴드에 들어가 시카고 등지를 돌았으나 곧 징집됐다. 1951년부터 1954년까지 시카고 근교 포트셰리든의 육군 군악대에서 플루트와 피아노를 맡았다. 동료들이 그의 낯선 화음을 두고 핀잔을 주는 일이 잦아 자신감이 크게 꺾였다고 그가 털어놓았다고 전해진다. (뉴욕) 제대 후 한동안 연습에 몰두하다 1955년 뉴욕으로 옮겨 매니스 음대에서 공부를 이어 갔다. 클라리넷 주자 토니 스콧, 제리 월드 악단 등에서 일했고, 클럽 반주와 행사 연주로 생활비를 벌었다. (러셀) 작곡가 조지 러셀과의 만남은 결정적이었다. 러셀은 음계 하나를 중심에 두고 화성을 새로 짜는 이론(리디안 크로매틱 콘셉트)을 다듬고 있었고, 에번스는 그 생각을 건반 위에서 실현할 연주자였다. 1957년 브랜다이스 대학 음악제를 위해 러셀이 쓴 「올 어바웃 로지」에서 에번스의 솔로는 평단의 눈길을 끌었다. 같은 해 찰스 밍거스의 음반 「이스트 코스팅」 녹음에도 참여했다. (데뷔) 기타리스트 먼델 로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준 데모 테이프가 리버사이드 레코드의 프로듀서 오린 킵뉴스를 움직였다. 1956년 첫 리더작 「뉴 재즈 컨셉션스」에는 형 해리의 어린 딸 데비에게 바친 1분 남짓한 독주곡 「왈츠 포 데비」가 실렸다. 음반은 첫해 수백 장 팔리는 데 그쳤다고 킵뉴스는 회고했다. 에번스는 새로 할 말이 생길 때까지 다음 녹음을 미루겠다고 했고, 킵뉴스는 두 해 가까이 그를 기다려 주었다.
III. 마일스의 방 · 1958–1959 (29–30세)
(합류) 1958년 봄,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를 불렀다. 존 콜트레인, 캐넌볼 애덜리, 베이스의 폴 체임버스, 드럼의 필리 조 존스가 있던 6인조였다. 밴드의 유일한 백인이던 그를 두고 일부 청중과 음악가들이 못마땅해했지만 데이비스는 실력만 본다며 그를 감쌌다. 데이비스는 훗날 자서전에서 그의 연주에 조용한 불길 같은 것이 있었고, 그를 통해 라벨과 라흐마니노프를 새로 알게 되었다고 적었다. (소진) 그러나 쉼 없는 투어, 피부색을 향한 시선, 자신의 연주가 모자란다는 자책이 그를 지치게 했다. 1958년 11월 그는 밴드를 떠났다. 헤로인에 손을 댄 것도 이 무렵이라고 전기 작가들은 적는다. 이후 20년 넘게 그를 따라다닐 그림자였다. (독주) 그해 12월 녹음한 「에브리바디 디그스 빌 에번스」의 표지에는 데이비스, 애덜리, 아마드 자말, 조지 시어링의 찬사가 인쇄됐다. 여기 실린 독주 「피스 피스」는 두 화음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왼손 위에서 즉흥으로 태어났다. 같은 시기 그는 애덜리의 「포트레이트 오브 캐넌볼」에서 데이비스의 곡 「나르디스」를 처음 녹음했고, 쳇 베이커의 음반 「쳇」에도 참여했다. (귀환) 1959년 3월과 4월, 데이비스는 그를 다시 스튜디오로 불렀다. 「카인드 오브 블루」였다. 정해진 코드 진행 대신 음계 하나 위에서 길게 머무는 곡들(모달 재즈)은 에번스의 화성 감각과 깊이 맞물렸고, 「플라멩코 스케치스」는 「피스 피스」와 같은 도입 음형에서 출발했다. 앨범의 라이너 노트도 그가 썼다. 「블루 인 그린」의 작곡자를 두고는 지금도 엇갈린 회고가 전한다.
데이비스 밴드를 떠나 지쳐 있던 한 달 뒤, 혼자 스튜디오에서 즉흥으로 길어 올린 독주다. 소란에서 물러난 사람의 고요가 그대로 담겼다.
- 왼손은 두 개의 화음을 같은 리듬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되풀이한다. 이렇게 고집스럽게 반복되는 음형(오스티나토)이 바닥에 깔린 채 오른손만 자유롭게 움직인다.
- 오른손은 몇 음으로 된 소박한 가락에서 출발해 점점 바탕 화음과 부딪치는 음들(불협화음)을 늘리며 긴장을 쌓다가, 끝에서 다시 처음의 고요로 돌아온다.
- 박자를 엄격히 지키지 않고 숨 쉬듯 늘였다 줄이는 흐름(루바토) 덕분에 재즈라기보다 드뷔시의 피아노 소품처럼 들리기도 한다.
- 원래 번스타인의 노래 「섬 아더 타임」의 도입부로 치던 음형이 녹음 현장에서 하나의 곡으로 뻗어 나간 것이라고 에번스는 밝혔다. 같은 음형은 이듬해 「플라멩코 스케치스」의 출발점이 된다.
밴드를 떠났던 에번스가 다시 불려 와 참여한 세션으로, 그의 화성 감각과 라이너 노트가 앨범의 공기를 정했다.
- 「소 왓」은 에번스의 피아노와 폴 체임버스의 베이스가 나누는 짧은 서주로 열린다. 이어 베이스가 한 소절을 부르면 피아노가 두 번의 화음으로 답하는 문답이 곡의 뼈대가 된다.
- 이때 피아노가 짚는 화음은 4도 간격으로 쌓은 음들 위에 3도를 얹은 모양인데, 이 음 배치(보이싱)는 지금도 '소 왓 코드'라 불리며 교본에 실린다.
- 「블루 인 그린」은 열 마디가 한 바퀴인 짧은 형식이다. 데이비스는 금속 마개(하몬 뮤트)를 끼운 트럼펫으로 속삭이고, 콜트레인은 박을 잘게 쪼갠 빠른 음들로 흐름을 바꾸는 것처럼 들린다.
- 녹음은 뉴욕 컬럼비아 30번가 스튜디오에서 이틀에 걸쳐 이뤄졌고, 연주자들은 곡의 밑그림만 받은 채 들어가 대부분 첫 완주 테이크로 남겼다고 전해진다.
IV. 세 사람의 대화 · 1959–1961 (30–32세)
(트리오) 그가 꿈꾼 것은 피아노가 주인이고 베이스와 드럼이 뒤를 받치는 트리오가 아니라, 세 악기가 동등하게 말을 주고받는 트리오였다. 1959년 말 스물세 살의 베이시스트 스콧 라파로와 드러머 폴 모션이 모였다. 라파로는 박을 고르게 짚는 대신 높은 음역에서 피아노에 대꾸하듯 가락을 그었고, 모션은 철사 솔(브러시)로 박을 흐리며 여백을 열었다. (녹음) 1959년 12월 「포트레이트 인 재즈」, 1961년 2월 「익스플로레이션스」가 리버사이드에서 나왔다. 「익스플로레이션스」 녹음 날 에번스와 라파로 사이에 언짢은 기류가 흘렀고 에번스는 두통에 시달렸다고 킵뉴스는 회고했지만, 음반은 그 긴장을 드러내지 않는다. 약물 비용으로 늘 쪼들리던 그가 킵뉴스에게 선불을 청하는 일이 잦았다고 전해진다. (뱅가드) 1961년 6월 25일 일요일, 그리니치빌리지의 클럽 빌리지 뱅가드에서 트리오는 오후부터 밤까지 다섯 세트를 연주했다. 맥스 고든이 운영하던 이 지하 클럽의 잔 부딪는 소리와 웃음까지 담긴 녹음은 「선데이 앳 더 빌리지 뱅가드」와 「왈츠 포 데비」 두 장으로 나왔다. (상실) 열하루 뒤인 7월 6일, 라파로가 뉴욕주 북부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스물다섯 살이었다. 에번스는 몇 달 동안 거의 무대에 서지 않았고, 홀로 피아노 앞에 앉아 지냈다고 주변 사람들은 회고했다. 킵뉴스는 라파로의 곡 「글로리아스 스텝」과 「제이드 비전스」를 앞세워 「선데이 앳 더 빌리지 뱅가드」를 엮었고, 음반은 결국 추모의 기록이 되었다.
라파로·모션과 처음 녹음한 스튜디오 앨범으로, 세 사람이 대등하게 말을 섞는 트리오의 첫 선언이다.
- 「고엽(Autumn Leaves)」에서는 테마 직후 피아노·베이스·드럼이 반주와 독주의 구분 없이 동시에 짧은 즉흥을 주고받는 구간이 나온다. 서로의 소리에 즉석에서 반응하는 연주(인터플레이)의 선언 같은 대목이다.
- 라파로의 베이스는 네 박을 고르게 짚는 대신 높은 음역에서 가락을 그리며 피아노 문장 사이사이로 끼어든다.
- 에번스의 솔로는 곡의 형식을 몇 바퀴(코러스) 도는 동안 오른손의 단선율을 길게 잇다가 왼손의 촘촘한 화음과 엮는다. 박 위를 살짝 앞서거나 늦추며 미끄러지는 리듬감이 특징이다.
- 「블루 인 그린」의 트리오 판이 함께 실려 있어, 데이비스 밴드 판과 견주면 같은 곡이 얼마나 다른 공기로 바뀌는지 들린다.
라파로가 세상을 떠나기 열하루 전 빌리지 뱅가드 실황으로, 이 트리오가 남긴 마지막 녹음이다. 조카에게 바친 소품이 트리오의 대표곡으로 자랐다.
- 타이틀곡은 피아노가 3박자 왈츠로 테마를 조용히 펼친 뒤, 트리오가 4박자로 박의 뒷부분을 밀고 당기는 느낌(스윙)으로 갈아타면서 활기를 얻는다.
- 「마이 풀리시 하트」는 극도로 느린 발라드다. 모션의 브러시가 들릴 듯 말 듯 박을 쓸고 지나가며 피아노의 여운을 받친다.
- 객석의 대화와 잔 부딪는 소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떠들썩한 클럽 안에서 세 사람만은 서로를 듣고 있다는 대비가 이 녹음 특유의 정서를 만든다.
- 라파로가 독주하는 동안 에번스가 반주로 물러났다가 다시 앞으로 나서는, 주객이 자연스럽게 뒤바뀌는 순간들에 귀를 기울여 볼 만하다.
V. 다시 건반 앞에 · 1961–1969 (32–40세)
(복귀) 1961년 말 베이시스트 척 이스라엘스를 맞아 다시 트리오를 꾸렸다. 1962년 봄 잇달아 녹음한 발라드 모음 「문빔스」와 「하우 마이 하트 싱스!」에는 상실 이후 한층 안으로 접힌 서정이 배어 있다. 같은 해 기타리스트 짐 홀과 단둘이 「언더커런트」를 녹음했다. (계약) 빚과 약물이 겹친 그는 리버사이드와의 계약에 남은 녹음을 채운 뒤 1962년 크리드 테일러가 이끄는 버브로 옮겼다. 같은 무렵 텔레비전 일을 하던 헬렌 킨이 매니저가 되었다. 킨은 출연료 협상부터 음반 기획까지 맡았고 훗날 여러 음반의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리며 그가 죽을 때까지 곁을 지켰다. (대화) 1963년 그는 자기 연주 위에 피아노를 두 번, 세 번 겹쳐 녹음한 「컨버세이션스 위드 마이셀프」로 첫 그래미를 받았다. 1964년에는 스탄 게츠와 함께 녹음했는데, 이 세션은 아홉 해 뒤에야 음반으로 나왔다. (동반자) 이 시절 곁에는 엘레인 슐츠가 있었다. 십여 년을 함께한 동반자로, 약물에 흔들리던 그의 생활을 붙들어 주었다고 전기들은 적는다. 1966년 스물한 살의 베이시스트 에디 고메즈가 합류해 11년을 함께했다. 같은 해 형 해리와 마주 앉아 즉흥 연주의 원리를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도 찍었다. 1968년 고메즈, 드러머 잭 디조넷과 함께한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실황은 두 번째 그래미를 안겼다.
라파로를 잃은 이듬해, 베이스도 드럼도 없이 기타리스트 짐 홀과 단둘이 나눈 대화다.
- 「마이 퍼니 밸런타인」은 흔히 느린 발라드로 연주되지만 여기서는 빠른 템포로 내달린다. 한 사람이 솔로를 하면 다른 사람이 반주와 베이스 노릇까지 혼자 떠맡는다.
- 짐 홀이 솔로를 할 때 에번스는 왼손으로 짧게 끊어 치는 화음만으로 리듬 섹션 전체의 역할을 해낸다. 둘이 서로의 가락 끝을 받아 이어 가는 대목은 대화에 가깝다.
- 기타의 둥글고 부드러운 음색과 피아노의 맑은 음색이 비슷한 음역에서 겹쳐도 엉키지 않는 것은, 서로 비켜 서는 음 배치를 즉석에서 고르기 때문이다.
- 물속에 떠 있는 여인을 찍은 사진가 토니 프리셀의 작품이 표지가 되어, 제목처럼 수면 아래 흐르는 긴장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버브로 옮긴 뒤 프로듀서 크리드 테일러와 만든 실험작으로, 첫 그래미를 안겼다. 대등한 대화를 꿈꾸던 그가 이번에는 자기 자신과 대화했다.
- 먼저 녹음한 피아노 위에 두 번째, 세 번째 피아노를 덧입혀(오버더빙) 혼자서 세 대의 피아노를 쳤다. 한 트랙이 반주를 맡으면 다른 트랙이 대꾸하는 식으로 짜여 있다.
- 「라운드 미드나이트」, 「블루 몽크」, 「벰샤 스윙」까지 텔로니어스 몽크의 곡이 세 곡 실렸다. 몽크의 모난 화음이 에번스의 손에서 한결 둥글게 다듬어지는 차이가 흥미롭다.
- 「N.Y.C.'s 노 락」은 그해 초 세상을 떠난 피아니스트 소니 클라크를 기리는 곡으로, 제목 자체가 클라크 이름의 철자를 뒤섞은 말이다.
- 세 겹의 피아노가 겹치는 대목에서는 왼쪽과 오른쪽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들리도록 배치되어 있어, 이어폰으로 들으면 대화의 짜임이 더 또렷하다.
VI. 마지막 왈츠 · 1970–1980 (41–51세)
(회복) 1970년대 초 그는 메타돈 치료로 헤로인에서 벗어났다. 1971년에는 전자 피아노를 함께 쓴 「더 빌 에번스 앨범」으로 다시 그래미를 받았다. 생전과 사후를 합쳐 그래미는 일곱 차례에 이르렀다. (이별) 1973년, 오랜 동반자 엘레인 슐츠가 뉴욕 지하철 선로에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넨네트와 결혼했고 1975년 아들을 얻었다. 훗날 그가 쓴 「B 마이너 월츠」에는 엘레인을 위한 곡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벗) 1975년과 1976년에는 가수 토니 베넷과 피아노와 목소리만으로 두 장의 이중주 음반을 냈다. 드러머는 마티 모렐에서 엘리엇 지그먼드로 바뀌었고, 1978년 베이스 마크 존슨과 드럼 조 라바버라로 마지막 트리오가 꾸려졌다. 그는 이 트리오를 각별히 아꼈다. (형) 그러나 1970년대 후반 그는 코카인에 빠져들었고 오래 방치한 간염으로 몸이 무너져 갔다. 1979년 4월, 조현병을 앓던 형 해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형을 위해 쓴 「위 윌 미트 어게인」은 그해 녹음한 음반의 제목이 되었다. (마지막) 1980년 늦여름 샌프란시스코의 클럽 키스톤 코너에서 마지막 장기 공연을 했다. 9월 15일 뉴욕 마운트 시나이 병원에서 위궤양 출혈과 간경변, 폐렴으로 숨졌다. 쉰한 살이었다. 오랜 친구인 작가 진 리스는 그의 죽음을 역사상 가장 긴 자살이라 불렀다. 그는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 형 해리 곁에 묻혔다.
떠난 동반자와 아직 살아 있던 형에게 바친 곡이 나란히 실린 음반으로, 그의 사후인 1981년에야 발매됐다.
- 「B 마이너 월츠」에는 엘레인을 위한 곡, 「위 윌 미트 어게인」에는 해리를 위한 곡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두 사람을 향한 곡이 한 음반 안에서 이어진다.
- 에디 고메즈의 베이스가 높은 음역에서 노래하듯 피아노 가락과 겹치며, 오래 함께한 두 사람의 호흡이 무르익었음을 들려준다.
- 타이틀곡은 미셸 르그랑의 곡으로, 에번스는 템포를 자유롭게 늘이며 화음 하나하나를 오래 머금는다. 말년의 그가 얼마나 느리게, 조심스럽게 소리를 놓았는지 드러난다.
- 1977년 8월 로스앤젤레스의 캐피톨 스튜디오에서 헬렌 킨의 제작으로 녹음됐다. 마지막 곡은 텔레비전 드라마 「매시(M*A*S*H)」의 주제곡으로, 담담한 연주가 음반 전체에 묘한 여운을 남긴다.
덜 알려진 이야기
(노트) 「카인드 오브 블루」의 라이너 노트를 쓴 사람이 에번스라는 사실은 의외로 덜 알려져 있다. 그는 얇은 종이에 붓을 대면 고칠 수 없어 망설임 없이 그려야 하는 일본의 회화에 즉흥 연주를 빗댔다. 앨범이 데이비스의 이름으로 기억되면서 피아니스트의 이 글은 재킷 뒷면의 작은 활자로만 남았다. (작곡자) 「블루 인 그린」은 음반에 데이비스의 곡으로 표기됐지만, 에번스는 훗날 인터뷰에서 자신이 곡을 썼다고 말했다. 그 문제를 꺼내자 데이비스가 25달러짜리 수표를 건넸다고 그가 회고했다는 이야기가 전기에 실려 있다. 반면 데이비스는 자서전에서 앨범의 곡들을 자신이 썼다고 적어, 진실은 두 사람의 엇갈린 회고 속에 남았다. (형제) 1966년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더 유니버설 마인드 오브 빌 에번스」에서 그는 배턴루지에서 음악 교사로 일하던 형 해리와 마주 앉아 즉흥 연주를 배우는 법을 이야기한다. 형이 묻고 동생이 피아노로 답하는 장면은 기교보다 원리를 먼저 붙들라는 그의 교육관과 두 형제의 각별함을 함께 보여 준다. 교육용 필름으로 제작된 탓에 오래 대중의 눈에 띄지 않았다. (흑림) 1968년 6월 몽트뢰 공연 닷새 뒤, 트리오는 독일 흑림 지방 빌링겐의 MPS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남겼다. 이 테이프는 반세기 가까이 잠들어 있다가 2016년 레조넌스 레코드를 통해 「섬 아더 타임」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고메즈·디조넷과 함께한 트리오의 스튜디오 녹음이 거의 없었던 터라 연구자들 사이에서 귀한 발견으로 받아들여졌다.
용어 노트 📚🔎
모달 재즈
(말뜻) 모드(mode)는 라틴어 modus 에서 온 말로 방식·틀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는 어떤 음들로 가락을 짤지 정한 틀, 곧 선법(旋法)을 가리킨다. (재즈에서) 몇 마디마다 바뀌는 코드 진행을 따라가는 대신, 음계 하나를 오래 붙들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가락을 펼치는 재즈다. 1959년 「카인드 오브 블루」가 대표적인 예이고, 에번스의 화성 감각이 이 방식과 잘 맞았다. 코드 진행을 따르는 연주가 정해진 장애물을 차례로 넘는 달리기라면, 모달 재즈는 넓은 운동장을 마음대로 뛰는 것에 가깝다 — 대신 어디로 달릴지 길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다른 데서는) 게임이나 기계에서 모드는 스토리 모드, 절전 모드처럼 작동 방식을 가리킨다.
보이싱
(말뜻) 영어 voice(목소리)에서 온 말로, 화음을 이루는 음 하나하나를 합창단의 성부처럼 어디에 세울지 정한다는 뜻이다. (재즈에서) 같은 코드라도 어떤 음을 맨 위에 두고, 어떤 음을 빼고, 어떤 음을 겹치느냐에 따라 소리가 완전히 달라진다. 에번스는 왼손으로 화음의 바탕음을 굳이 짚지 않고 그 위의 음들을 중심으로 배치해 맑고 투명한 화음을 만들었고, 이 방식은 후대 피아니스트들의 교과서가 됐다. 같은 반 친구 네 명이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누구를 앞줄에 세우고 누가 까치발을 하느냐에 따라 사진의 느낌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인터플레이
(말뜻) inter(서로, 사이)와 play(연주하다, 놀다)가 합쳐진 말로, 서로 주고받는 연주라는 뜻이다. (재즈에서) 솔로를 하는 사람과 반주하는 사람이 정해진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서로의 소리에 즉석에서 반응하며 대화하듯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에번스·라파로·모션 트리오가 이 방식을 피아노 트리오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축구에서 두 선수가 원투 패스를 주고받으며 수비를 뚫는 것처럼, 상대가 무엇을 할지 들으면서 다음 수를 고르는 연주다. (다른 데서는) 일상 영어에서는 사람이나 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뜻한다.
루바토
(말뜻) 이탈리아어 tempo rubato, 곧 도둑맞은 시간에서 왔다. rubare 는 훔치다라는 뜻으로, 한 곳에서 시간을 훔쳐 다른 곳에 보태 준다는 의미다. (재즈에서) 일정한 박자를 엄격히 지키지 않고 흐름에 따라 템포를 늘였다 줄였다 하는 연주다. 에번스는 발라드의 도입부나 독주에서 루바토를 즐겨 써서 말하듯 자연스러운 숨결을 만들었다. 책을 소리 내어 읽을 때 중요한 문장은 천천히, 신나는 대목은 빨리 읽는 것과 같다 — 전체 길이는 비슷해도 속도가 물결처럼 출렁인다.
오스티나토
(말뜻) 이탈리아어로 고집스러운이라는 뜻이다. 영어 obstinate(완고한)와 뿌리가 같다. (재즈에서) 짧은 음형이나 화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집스럽게 되풀이하는 것을 말한다. 바닥에 같은 무늬가 계속 깔리기 때문에 그 위의 가락이 아무리 멀리 나가도 길을 잃지 않는다. 「피스 피스」의 왼손이 대표적이다. 긴 줄넘기에서 양 끝의 두 사람이 줄을 계속 같은 박자로 돌려 주면, 안에서 뛰는 사람은 마음껏 묘기를 부릴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오버더빙
(재즈에서) 이미 녹음된 소리 위에 새로운 연주를 덧입혀 녹음하는 방법이다. 에번스는 1963년 「컨버세이션스 위드 마이셀프」에서 자기 피아노 위에 피아노를 두 번 더 겹쳐, 혼자서 세 사람의 대화를 만들었다. 휴대전화 녹음 앱으로 먼저 노래를 녹음해 두고, 그것을 틀어 놓은 채 화음을 한 번 더 불러 겹쳐 녹음하는 것과 같다. (다른 데서는) 우리말에서 더빙은 흔히 외국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대사를 우리말 목소리로 바꿔 입히는 일을 뜻한다.
코러스
(말뜻) 그리스어 choros 에서 왔다.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이야기를 거드는 무리를 가리키던 말이다. (재즈에서) 곡의 형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바퀴 도는 단위를 말한다. 32마디짜리 곡이라면 32마디가 한 코러스다. 솔로이스트는 이 틀을 몇 바퀴 돌며 즉흥 연주를 하기 때문에, 누구의 두 번째 코러스가 명장면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운동장 트랙 한 바퀴가 한 코러스라면, 솔로는 같은 트랙을 여러 바퀴 돌며 매번 다른 방식으로 달리는 것이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합창이나 노래의 후렴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