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c Dolphy
'음악은 연주가 끝나면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 다시는 붙잡을 수 없다.' — 「라스트 데이트」 끝에 남은 그의 육성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사디 돌피와 에릭 돌피 시니어
파나마 출신 이민자 부모로, 뒤뜰에 연습실을 지어 주며 외아들의 음악을 끝까지 밀어주었다.
- 스승로이드 리스
밍거스와 콜레트도 가르친 로스앤젤레스의 음악 교사로, 젊은 돌피의 기초를 다졌다.
- 우정클리퍼드 브라운
1954년 돌피의 뒤뜰 연습실에서 함께 연주한 친구로, 1956년 그의 죽음은 돌피에게 큰 상실이었다.
- 동료찰스 밍거스
로스앤젤레스 시절부터 알던 사이로, 돌피를 뉴욕으로 불러 핵심 단원으로 삼고 떠나는 그를 위해 「소 롱 에릭」을 썼다.
- 동료부커 리틀
1961년 파이브 스폿에서 함께한 트럼펫 동반자로, 그해 가을 스물셋에 세상을 떠났다.
- 우정존 콜트레인
1950년대부터의 친구로 돌피를 밴드에 불렀고, 반재즈 비판을 함께 맞았으며 그를 안 것이 삶을 낫게 했다고 회고했다.
I. 뒤뜰 연습실의 외아들 · 1928–1950 (0–22세)
(출생) 1928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아버지와 같은 에릭 앨런 돌피였다. 부모 에릭 돌피 시니어와 사디 돌피는 파나마에서 건너온 이민자였고, 그는 두 사람의 외아들이었다. 집안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부모는 아들의 음악을 끝까지 믿고 밀어주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두 사람은 아들의 유품과 기억을 지키는 일을 놓지 않았다. (클라리넷) 그는 학교에서 클라리넷을 잡으며 음악을 시작했고 빠르게 두각을 드러냈다. 중학생 시절 남캘리포니아대학교 음악학교에서 공부할 장학금을 받았다고 전해지며, 이후 로스앤젤레스 시티 칼리지에서 음악을 배웠다. 알토 색소폰과 플루트를 차례로 익혔고, 이 도시의 이름난 교사 로이드 리스에게서 배웠다. 리스는 찰스 밍거스와 버디 콜레트도 가르친 사람이었다. (파커) 십대 후반의 그를 사로잡은 것은 비밥, 특히 찰리 파커였다. 1940년대 중반 파커가 서부에 머물던 무렵의 음악을 그는 받아 적듯 익혔다. 훗날 그가 멀리 떨어진 음으로 훌쩍 뛰어오르는 낯선 선율로 이름을 얻은 뒤에도, 평론가들은 그 뿌리가 파커의 언어에 있다고 자주 지적했다. (연습실) 부모는 집 뒤뜰에 아들을 위한 작은 연습실을 지어 주었다. 그는 그곳에서 종일 연습했고, 연습실은 동네 음악가들이 드나들며 합주하는 자리가 되었다. 1948년 무렵부터는 드러머 로이 포터가 이끈 비밥 빅밴드에서 연주하며 첫 녹음을 남겼다. 이 시절의 그는 눈에 띄는 독주자라기보다 악보를 정확히 읽는 성실한 단원이었다.
II. 서부에서의 긴 기다림 · 1950–1958 (22–30세)
(군대) 1950년 그는 육군에 들어가 워싱턴주 포트 루이스에서 복무했고, 군 시절 해군 음악학교에서 교육을 받기도 했다. 1953년 무렵 제대한 뒤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왔다. 군대는 그에게 악보와 합주의 규율을 다시 한 번 몸에 익히게 한 시간이었다. (무명) 이후 다섯 해 가까이 그는 지역 클럽과 댄스 밴드, 잼 세션을 오가며 무명으로 지냈다. 레코드사는 그를 찾지 않았고 생활은 빠듯했다. 그러나 이 긴 시간 동안 그는 알토 색소폰·플루트·클라리넷에 더해 베이스 클라리넷을 깊이 파고들었다. 재즈에서 거의 쓰이지 않던 이 낮은 악기를 독주 악기로 끌어올린 일은 뒷날 그의 가장 독자적인 업적이 된다. (브라운) 1954년 클리퍼드 브라운과 맥스 로치가 로스앤젤레스에서 퀸텟을 꾸렸을 때, 브라운은 돌피의 뒤뜰 연습실에서 함께 연주하곤 했다. 그때의 합주를 담은 테이프는 수십 년 뒤 음반으로 나왔다. 1956년 브라운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돌피는 아끼던 친구이자 같은 길을 걷던 동료를 잃었다. (새소리) 그는 뒤뜰에서 연습하면 새들이 따라 지저귀었고, 새소리에는 우리가 쓰는 음계 사이의 음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플루트로 새의 노래를 흉내 낸 일은 그 자신의 회고로 남아 있다. 조용하고 예의 바른 성격, 술과 마약을 멀리한 생활도 이 무렵부터 동료들 사이에 알려져 있었다. 존 콜트레인과 친분을 쌓은 것도 1950년대 콜트레인이 서부를 찾았을 때로 전해진다.
III. 치코 해밀턴에서 밍거스로 · 1958–1960 (30–32세)
(해밀턴) 1958년 그는 드러머 치코 해밀턴의 퀸텟에 들어가며 처음으로 전국 무대에 섰다. 첼로가 들어간 실내악풍의 이 밴드에서 그는 플루트와 알토, 베이스 클라리넷을 오갔다. 그해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 무대는 기록영화 「한여름 밤의 재즈(Jazz on a Summer's Day)」에 담겨, 서른 살 돌피의 연주 모습이 영상으로 남았다. (뉴욕) 1959년 해밀턴 밴드를 떠난 그는 뉴욕으로 옮겼다. 로스앤젤레스 시절부터 알던 찰스 밍거스가 그를 불렀고, 1960년 그는 밍거스 밴드의 핵심이 되었다. 밍거스는 기복이 큰 리더였지만 돌피와는 드물게 깊은 신뢰를 나눴다. 밍거스는 훗날 돌피를 가장 아끼는 연주자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데뷔) 1960년 4월 1일 그는 프레스티지 레이블에서 첫 리더 앨범 「아웃워드 바운드」를 녹음했다. 프로듀서 에스먼드 에드워즈 아래 트럼펫 프레디 허버드, 피아노 재키 바이어드, 베이스 조지 터커, 드럼 로이 헤인스가 함께했다. 첫 곡 「G.W.」는 로스앤젤레스의 선배 편곡자 제럴드 윌슨에게 바친 곡이었다. 서부에서 보낸 긴 기다림과 그 시절의 우정이 첫 앨범의 헌사가 된 셈이었다. (형편) 그러나 형편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리더작 몇 장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았고, 그는 사이드맨 녹음과 강습으로 생활비를 채웠다. 같은 해 그는 첼로에 론 카터를 기용한 「아웃 데어」, 부커 리틀과 함께한 「파 크라이」를 잇달아 녹음했다. 「파 크라이」에는 재키 바이어드가 쓴 「찰리 파커 송가(Ode to Charlie Parker)」와 무반주 알토로 연주한 「텐더리」가 실렸다.
서부에서 보낸 긴 무명 끝에 뉴욕에서 처음 낸 리더작이다. 첫 곡을 선배 제럴드 윌슨에게 바친 데서 로스앤젤레스 시절의 우정이 읽힌다.
- 첫 곡 「G.W.」에서 돌피의 알토는 비밥처럼 빠르게 달리다가 갑자기 멀리 떨어진 음으로 훌쩍 건너뛴다(넓은 음정 도약). 이 뛰어오르는 선율이 그의 서명 같은 특징이다.
- 「온 그린 돌핀 스트리트(On Green Dolphin Street)」에서는 베이스 클라리넷을 들려준다. 굵고 낮은 소리에서 새된 고음까지 한 구절 안에서 오르내리는 폭에 귀 기울여 보자.
- 로이 헤인스의 드럼은 심벌을 가볍고 짧게 끊어 치며 솔로이스트를 재촉한다. 독주자와 드럼이 서로 밀고 당기는 주고받기(인터플레이)가 또렷하다.
- 1960년 4월 1일 뉴저지의 루디 반 겔더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 에스먼드 에드워즈와 녹음했다.
IV. 가장 바빴던 한 해 · 1960–1961 (32–33세)
(대화) 1960년 10월 밍거스는 캔디드 레이블에서 「찰스 밍거스 프레젠츠 찰스 밍거스」를 녹음했다. 피아노 없이 트럼펫 테드 커슨, 드럼 대니 리치먼드와 꾸린 사중주였다. 「왓 러브」에서 밍거스의 베이스와 돌피의 베이스 클라리넷은 말을 주고받듯 대화했고, 두 사람이 이 대목에서 돌피가 밴드를 떠나려는 문제를 두고 이야기한 것이라고 밍거스가 설명했다고 전해진다. (실험) 같은 해 12월 21일에는 오넷 콜먼의 「프리 재즈」 녹음에 참여했다. 두 개의 사중주가 동시에 즉흥하는 실험에서 그는 두 번째 사중주의 베이스 클라리넷을 맡았다. 1961년 2월에는 올리버 넬슨의 「블루스 앤드 디 앱스트랙트 트루스」에서 빌 에번스, 프레디 허버드와 함께 연주했다. 조지 러셀의 「에즈세틱스」, 존 루이스와 군터 슐러의 작업에도 불려 다녔다. 그는 정교한 편곡자의 악보와 틀 자체를 흔드는 실험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 (리틀) 이 시기 그가 가장 아낀 동반자는 트럼펫 연주자 부커 리틀이었다. 두 사람은 1961년 7월 뉴욕 클럽 파이브 스폿에서 피아노 말 월드런, 베이스 리처드 데이비스, 드럼 에드 블랙웰과 공연했고, 7월 16일 밤의 연주가 프레스티지에서 음반으로 나왔다. 리틀의 둥글고 어두운 트럼펫과 돌피의 날카로운 알토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았다. (상실) 그러나 리틀은 그해 10월 요독증으로 스물셋에 세상을 떠났다. 브라운에 이어 또 한 명의 젊은 트럼펫 동료를 잃은 것이다. 파이브 스폿의 녹음은 짧게 끝난 동행의 거의 유일한 기록으로 남았다.
밍거스와 돌피의 신뢰가 가장 생생하게 남은 녹음이다. 두 사람의 악기 대화는 떠남을 앞둔 우정의 기록처럼 들린다.
- 곡 중반, 밍거스의 베이스와 돌피의 베이스 클라리넷이 두 사람이 말다툼하듯 짧은 구절을 던지고 받는다. 사람 목소리의 억양과 높낮이를 흉내 내는 것처럼 들린다.
- 피아노가 없어 화음을 채우는 악기가 없다. 그만큼 소리 사이의 빈 공간이 넓고, 베이스와 관악기의 선이 또렷하게 들린다.
- 옛 스탠더드 곡의 코드 진행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템포와 분위기가 자주 바뀌어, 정해진 틀을 느슨하게 풀어 가는 밍거스 특유의 짜임새가 드러난다.
- 캔디드 레이블에서 평론가 출신 프로듀서 냇 헨토프가 녹음을 맡았다.
실험과 정통을 오가던 해, 정교한 편곡 안에서 돌피의 플루트가 빛난 녹음이다. 빌 에번스와 한 음반에 나란히 선 기록이기도 하다.
- 열여섯 마디로 된 단조 곡이다. 네 관악기가 화음을 이루어 테마를 겹겹이 쌓는 올리버 넬슨의 편곡이 곡의 어스름한 분위기를 만든다.
- 허버드의 트럼펫 다음에 나오는 돌피의 플루트 솔로는 숨결이 섞인 소리로 시작해 높은 음으로 솟구친다. 블루스의 정서에 그의 넓은 도약이 더해진다.
- 빌 에번스의 피아노 솔로는 화음을 부드럽게 눌러 가며 차분하게 이어진다. 앞의 관악기 솔로들과 대조되는 결을 비교해 들어 보자.
- 1961년 2월 23일 루디 반 겔더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 크리드 테일러와 임펄스 레이블로 녹음했다.
부커 리틀과의 짧은 동행이 남긴 실황이다. 석 달 뒤 리틀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 밤은 두 사람의 마지막 기록이 되었다.
- 말 월드런이 쓴 곡으로, 한 마디를 셋으로 세는 춤곡 박자(왈츠) 위에서 피아노가 짧은 음형을 끈질기게 되풀이한다.
- 돌피의 알토와 리틀의 트럼펫 솔로를 이어 들어 보자. 날카롭게 꺾이는 알토와 둥글고 어두운 트럼펫이 같은 곡을 전혀 다른 빛깔로 칠한다.
- 드러머 에드 블랙웰은 북을 노래하듯 굴리며 박자를 장식한다. 오넷 콜먼과도 함께한 그의 드럼은 박을 지키는 것 이상으로 선율처럼 움직인다.
- 1961년 7월 16일 뉴욕 파이브 스폿 클럽 현장에서 녹음되어, 관객의 소리와 클럽의 공기가 함께 담겼다.
V. 콜트레인과 반재즈 논쟁 · 1961–1963 (33–35세)
(콜트레인) 1961년 봄, 오랜 친구 존 콜트레인이 그를 자기 밴드로 불렀다. 그해 5월 그는 「아프리카/브라스」의 대편성 편곡을 도왔고, 같은 무렵 녹음된 「올레 콜트레인」에는 다른 레이블과의 계약 때문에 조지 레인이라는 가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11월 뉴욕 빌리지 뱅가드 실황에서는 콜트레인, 피아노 매코이 타이너, 드럼 엘빈 존스와 나란히 섰고, 이어 유럽 투어에도 동행했다. (꼬리표) 그러나 같은 달 「다운비트」의 평론가 존 타이넌은 두 사람의 음악을 반(反)재즈라고 불렀다. 두 사람은 이듬해 같은 잡지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음악을 차분히 설명했지만, 그 꼬리표는 오래 따라다녔다. 클럽 주인과 기획자들은 그를 쓰기를 망설였고 일거리는 줄었다. 반면 마일스 데이비스는 1964년 같은 잡지의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그의 연주를 혹평하기도 했다. (인품) 미국에서 그의 수입은 끝내 안정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동료들은 그가 형편이 어려울 때도 남을 돕고 후배의 연주를 성심껏 들어 주는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1962년 콜트레인 밴드를 떠난 뒤에는 서드 스트림 작업에 참여하고, 이탈리아의 클래식 플루트 연주자 세베리노 가첼로니를 깊이 존경하는 등 클래식과의 경계로 시야를 넓혔다. (독주) 1963년 여름 그는 프로듀서 앨런 더글러스와 여러 차례 녹음했다. 이 세션은 「컨버세이션스」와 「아이언 맨」으로 나왔고, 베이스 리처드 데이비스와의 이중주 「얼론 투게더」, 무반주 알토 「러브 미」가 실렸다. 반주 없이 홀로 서는 연주가 늘어난 것은, 함께 설 무대가 줄어든 그의 처지와도 겹쳐 들린다.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베이스 클라리넷 하나로 풀어낸 그의 대표 레퍼토리다. 홀로 서는 연주가 늘어 가던 그의 처지와 겹쳐 들린다.
- 빌리 홀리데이가 부르고 함께 쓴 노래로, 남에게 기대지 말고 자기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담담한 정서를 지녔다. 돌피는 가사 없이 그 정서를 악기로 옮긴다.
- 반주 없이 혼자 연주하면서, 멜로디 사이사이에 화음을 이루는 음들을 아래위로 빠르게 흩뿌려(분산화음) 반주까지 스스로 채운다.
- 숨소리 섞인 굵은 저음과 갑자기 터지는 가는 고음이 한 악기에서 나온다. 베이스 클라리넷이 얼마나 넓은 소리를 낼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연주다.
- 1961년 무렵 클럽과 유럽 공연에서 여러 차례 연주되어 녹음마다 해석이 조금씩 다르다.
반재즈라는 꼬리표가 붙은 바로 그 빌리지 뱅가드 실황이다. 오랜 친구 콜트레인과 나란히 선 돌피의 베이스 클라리넷을 들을 수 있다.
- 흑인 영가(스피리추얼)에서 선율을 가져온 느린 곡이다. 기도처럼 엄숙하게 시작해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는 흐름을 따라가 보자.
- 돌피의 베이스 클라리넷 솔로는 낮은 음으로 웅얼거리다 높은 음으로 갑자기 외치듯 치솟는다. 콜트레인의 색소폰과 확연히 다른 음색이 대비를 이룬다.
- 매코이 타이너의 피아노는 왼손으로 같은 화음을 묵직하게 깔고, 엘빈 존스의 드럼은 박을 잘게 쪼개 출렁이게 만든다.
- 1961년 11월 뉴욕 빌리지 뱅가드 클럽 실황으로, 임펄스의 밥 틸이 프로듀서를 맡았다.
VI. 점심 외출, 그리고 베를린 · 1964 (36세)
(블루노트) 1964년 2월 25일, 그는 블루노트에서 「아웃 투 런치!」를 녹음했다. 프로듀서 앨프리드 라이언, 엔지니어 루디 반 겔더 아래 트럼펫 프레디 허버드, 비브라폰 바비 허처슨, 베이스 리처드 데이비스, 열여덟 살 드러머 토니 윌리엄스가 함께했다. 첫 곡 「햇 앤드 비어드」는 텔로니어스 몽크에게 바친 곡이었다. 3월에는 피아니스트 앤드루 힐의 「포인트 오브 디파처」에도 참여했다. (유럽) 4월 그는 밍거스 섹스텟의 유럽 투어에 나섰고, 투어가 끝나면 유럽에 남겠다고 밍거스에게 알렸다. 밍거스는 그를 위해 「소 롱 에릭」을 썼다. 그는 미국에서는 조금만 다른 것을 시도해도 깎아내린다고 말했고, 파리에 있던 약혼녀와 결혼해 그곳에 정착할 계획이었다고 전해진다. (라스트 데이트) 6월 2일 네덜란드 힐베르쉼의 방송 스튜디오에서 피아노 미샤 멩엘베르흐, 베이스 자크 숄스, 드럼 한 베닝크와 녹음했다. 이 연주는 뒤에 「라스트 데이트」로 나왔고, 음악은 끝나면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는 그의 육성이 끝에 실렸다. (베를린) 6월 말 그는 공연을 위해 서베를린(당시 서독, 오늘날 독일)에 갔다가 쓰러졌고, 6월 29일 서른여섯으로 숨졌다. 사인은 진단받지 못한 당뇨병의 합병증이었다. 병원이 약물 과용을 의심해 처치가 늦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전해지지만, 정확한 경위는 기록마다 다르다. 유해는 로스앤젤레스에 묻혔다. 콜트레인은 그를 안 것이 자기 삶을 더 낫게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유럽으로 떠나기 두 달 전 남긴 리더작으로, 그가 생각한 음악이 가장 온전히 담긴 앨범으로 평가된다.
- 첫 곡 「햇 앤드 비어드」는 텔로니어스 몽크의 모자와 수염에서 제목을 땄다. 한 마디를 아홉 박으로 세는 낯선 박자(9/4) 위에서 베이스 클라리넷이 몽크처럼 엇박으로 툭툭 끊어 말한다.
- 피아노 대신 바비 허처슨의 비브라폰이 화음을 맡는다. 금속판의 울림이 길게 퍼지거나 짧게 끊기며 소리 사이에 넓은 공간을 열어 둔다.
- 열여덟 살 토니 윌리엄스의 드럼은 박을 일정하게 짚지 않고 흩뿌리듯 친다. 리처드 데이비스의 베이스가 그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바닥을 받친다.
- 「가첼로니」에서는 그가 존경한 이탈리아 플루트 연주자의 이름을 딴 곡을 플루트로 연주한다. 1964년 2월 25일 루디 반 겔더 스튜디오에서 하루에 녹음했다.
유럽에 남은 그가 네덜란드 연주자들과 남긴 방송 녹음이다. 끝에 실린 그의 육성은 이 음반을 하나의 작별 인사처럼 들리게 한다.
- 몽크의 곡 「에피스트로피」를 베이스 클라리넷으로 연주한다. 몽크 특유의 비틀린 선율을 돌피가 더 크게 뒤틀며 노는 대목이 즐겁다.
- 「유 돈 노 왓 러브 이즈(You Don't Know What Love Is)」에서는 플루트가 도입부를 거의 홀로 길게 노래한다. 새소리를 흉내 내던 그의 연습이 떠오르는 높고 가는 음들이 이어진다.
- 피아노 미샤 멩엘베르흐와 드럼 한 베닝크는 이후 네덜란드 즉흥음악의 중심이 된 연주자들이다. 낯선 반주진과 처음 만나 서로 탐색하는 긴장이 느껴진다.
- 1964년 6월 2일 네덜란드 힐베르쉼의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라디오 방송용으로 녹음되었다.
덜 알려진 이야기
1961년 콜트레인의 「올레 콜트레인」 음반 표지에는 조지 레인이라는 연주자가 적혀 있다. 이는 돌피가 다른 레이블과 계약 중이어서 쓴 가명이었다. 당시 재즈계에서는 흔한 관행이었지만, 크레딧에 본명이 없다 보니 그의 참여를 모르고 듣는 이가 지금도 적지 않다. 1954년 클리퍼드 브라운이 돌피의 뒤뜰 연습실에서 함께 연주한 합주는 개인 테이프로만 남아 있다가 수십 년 뒤에야 음반으로 나왔다. 두 사람의 우정은 짤막한 회고로만 전해졌기에, 이 테이프는 그 관계를 소리로 확인시켜 준 드문 자료가 되었다. 「라스트 데이트」라는 제목은 이 녹음을 마지막 연주처럼 기억하게 했지만, 그 뒤에도 그는 6월 중순 파리에서 연주를 남겼다. 사후에 붙은 제목이 음반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정해 버린 경우다. 그의 악보와 작곡 노트는 작곡가 친구 헤일 스미스에게 맡겨졌고, 이후 플루트 연주자 제임스 뉴턴을 거쳐 2014년 미국 의회도서관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자료가 세상에 나오면서 즉흥연주자로만 알려졌던 그가 꾸준히 곡을 쓰고 정리하던 작곡가였다는 면모가 새로 조명되었다. 아들이 떠난 뒤 어머니 사디는 그의 플루트와 베이스 클라리넷을 콜트레인에게 건넸다. 콜트레인이 말년의 녹음에서 플루트를 분 데에는 이 유품이 닿아 있다고 전해진다. 두 사람의 우정은 악기를 통해 한 번 더 이어졌다.
용어 노트 📚🔎
비밥
(말뜻) 비밥(bebop)이라는 이름은 빠르게 꺾이는 가락을 입으로 흉내 낸 소리에서 왔다고 알려져 있다. (재즈에서) 1940년대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 등이 만든 재즈로, 춤추기 위한 음악보다 듣기 위한 음악에 가깝다. 빠른 템포, 촘촘하게 바뀌는 코드, 작은 편성 위에서 연주자가 길고 복잡한 즉흥연주를 펼친다. 줄넘기를 같은 리듬으로 하면서 그 사이에 이단 뛰기, 엇갈아 뛰기 같은 어려운 기술을 점점 더 많이 끼워 넣는 것과 비슷하다. 돌피는 이 비밥의 언어를 뿌리로 삼아 그 바깥으로 나아갔다.
음정 도약
(말뜻) 음정(音程)은 두 음(音) 사이의 거리(程)를 뜻하고, 도약(跳躍)은 뛰어오른다는 뜻이다. (재즈에서) 선율이 바로 옆 음으로 차례차례 움직이지 않고, 멀리 떨어진 음으로 한 번에 훌쩍 건너뛰는 것을 말한다. 계단을 한 칸씩 오르는 대신 서너 칸씩 껑충 뛰어오르는 것과 같다. 돌피는 이런 큰 도약을 빠르게 이어 붙여,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새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것 같은 독특한 선율을 만들었다.
코러스
(재즈에서) 곡의 형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바퀴 도는 단위를 말한다. 열두 마디짜리 블루스라면 열두 마디가 한 코러스이고, 연주자는 솔로를 몇 코러스 동안 이어 간다. 운동장 트랙을 한 바퀴 도는 것과 같아서, 같은 코스를 여러 바퀴 돌며 매번 다른 속도와 자세로 달리는 셈이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코러스는 여럿이 함께 부르는 합창이나 노래의 후렴을 뜻한다.
프리 재즈
(말뜻) 프리(free)는 자유롭다는 뜻으로, 정해진 틀에서 풀려난 재즈라는 의미다. (재즈에서) 정해진 코드 진행이나 마디 수, 일정한 박자를 꼭 지키지 않고 연주자들이 서로의 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서 반응하며 음악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1960년 오넷 콜먼의 음반 「프리 재즈」가 이 이름을 퍼뜨렸고, 돌피도 그 녹음에 참여했다. 대본 없이 서로의 말을 받아 이어 가는 즉흥극을 떠올리면 된다.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귀를 더 크게 열어야 하는 연주다.
서드 스트림
(말뜻) 서드 스트림(third stream)은 세 번째 물줄기라는 뜻이다. 클래식과 재즈라는 두 물줄기가 만나 생긴 새 흐름이라는 의미로, 작곡가 군터 슐러가 1950년대 후반에 붙인 이름이다. (재즈에서) 클래식 작곡의 짜임새와 악기, 재즈의 즉흥연주와 리듬을 한 작품 안에서 합치려 한 음악을 가리킨다. 두 나라 음식을 섞어 새 요리를 만드는 퓨전 요리처럼, 어느 한쪽만으로는 낼 수 없는 맛을 노렸다. 클래식 교육을 받고 플루트와 클라리넷을 다룬 돌피는 이 작업에 자주 불려 갔다.
베이스 클라리넷
(재즈에서) 보통 클라리넷보다 한 옥타브 낮은 소리를 내는 큰 클라리넷으로, 끝이 색소폰처럼 위로 휘어 있다. 원래 오케스트라에서 낮은 음을 받치는 악기였고 재즈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았는데, 돌피가 이것을 독주 악기로 처음 본격적으로 세웠다. 합창단에서 늘 바닥만 받치던 베이스 파트가 혼자 앞에 나와 주인공 노래를 부르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아주 낮고 굵은 소리부터 날카로운 고음까지 넓은 폭을 오가는 것이 그의 연주의 특징이었다.
변박
(말뜻) 변박(變拍)은 보통과 다른(變) 박자(拍)라는 뜻이다. (재즈에서) 재즈는 대개 한 마디를 넷으로 세는 4박자로 연주되지만, 다섯·일곱·아홉처럼 덜 익숙한 수로 세거나 곡 도중에 세는 법이 바뀌는 경우를 가리킨다. 「햇 앤드 비어드」는 한 마디를 아홉으로 센다. 줄넘기 구령을 하나둘셋넷으로 맞추다가 갑자기 아홉까지 세는 구령으로 바꾸면 발이 엉키기 쉬운데, 연주자들은 그 낯선 걸음을 자연스럽게 걷는 연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