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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ck Corea

칙 코리아 (1941–2021)

클래식의 정확한 손끝, 라틴의 리듬, 비밥의 속도를 하나의 건반 위에 올려놓은 피아니스트.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매사추세츠 첼시 출생트럼펫 연주자 아버지버드 파월 동경2. 뉴욕라틴 밴드 수업스탄 게츠 쿼텟첫 트리오 걸작3. 전환마일스 밴드 입단펜더 로즈서클과 신앙4. 퓨전리턴 투 포에버「스페인」「로맨틱 워리어」5. 확장행콕과 듀오일렉트릭 밴드모차르트와 버드6. 말년「트릴로지」그래미 20여 회2021년 작별코리아1941–2021마일스 밴드를 거쳐 퓨전을 열고 평생 장르를 …
무대의 여정 🧭🗺️
N미국첼시1941–1959뉴욕1959–1970년대로스앤젤레스1970년대–2000년대클리어워터말년–2021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아르만도 코리아

    보스턴 일대에서 딕실랜드 밴드를 이끈 트럼펫 연주자로, 아들에게 비밥 음반과 음악의 기초를 처음 건넸다.

  • 영향버드 파월

    10대 시절의 우상으로, 그는 1996년 「리멤버링 버드 파월」로 오랜 존경을 갚았다.

  • 스승마일스 데이비스

    1968년 그를 밴드에 불러 전기 피아노를 쥐여 주며 재즈의 전환점 한가운데 세웠다.

  • 가족게일 모런

    1972년 결혼한 반려자이자 가수로, 리턴 투 포에버와 그의 여러 앨범에서 노래했다.

  • 동료스탠리 클라크

    리턴 투 포에버 창단부터 재결합까지 함께한 베이시스트로, 밴드 사운드의 한 축이었다.

  • 우정허비 행콕

    마일스 밴드의 전임자였고, 1978년 피아노 두 대의 듀오 순회공연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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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첼시의 소년 · 1941–1958 (0–17세)

(첼시) 1941년 6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첼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아르만도 앤서니 코리아였고, 칙이라는 이름은 어린 시절 숙모가 부르던 애칭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남이탈리아계 이민 가정이었다. 아버지 아르만도는 1930~40년대 보스턴 일대에서 딕실랜드 밴드를 이끈 트럼펫 연주자였고, 어머니는 애나였다. (레코드) 집에는 아버지가 모은 음반이 있었다. 네 살 무렵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파커의 비밥 음반을 들으며 자랐고, 아버지에게서 악보 읽는 법과 화성의 기초를 배웠다. 그는 훗날 아버지가 음악가로 사는 길을 처음 보여 준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스승) 여덟 살 무렵부터는 콘서트 피아니스트 살바토레 술로에게 배우며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익혔다. 같은 시기 드럼도 쳤다. 그는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또렷하게 두드리는 자신의 감각이 이때의 드럼 경험에서 왔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우상) 10대에는 버드 파월의 빠르고 단단한 오른손, 호레이스 실버의 흥겨운 리듬, 텔로니어스 몽크의 비틀린 화성에 빠졌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동네 행사와 클럽에서 연주하며 돈을 벌었다. 클래식의 정확함과 비밥의 자유를 한 손에 쥐려는 태도가 이 무렵 이미 자리 잡았고, 이 두 갈래는 그가 노년에 모차르트와 버드 파월을 같은 시기에 녹음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II. 뉴욕의 수업 · 1959–1968 (18–27세)

(학교) 1959년 무렵 뉴욕으로 가 컬럼비아대학교에 들어갔으나 오래지 않아 그만두었고, 이어 줄리아드에 들어갔다가 역시 곧 떠났다. 그는 강의실보다 밤의 클럽이 자신에게 맞는 학교였다고 회고했다. (라틴) 처음 그를 받아 준 곳은 라틴 밴드였다. 콩가 연주자 몽고 산타마리아, 팀발레스 연주자 윌리 보보의 밴드에서 일하며 쿠바 음악의 되풀이되는 반주 음형(몬투노)과 리듬의 뼈대(클라베)를 몸에 익혔다. 훗날 그의 음악 곳곳에 스민 라틴과 스페인의 색채는 이 시절 밤마다 맞춘 리듬에 뿌리를 두었다. (사이드맨) 1960년대 중반에는 트럼펫 연주자 블루 미첼, 플루트 연주자 허비 맨의 밴드를 거쳤다. 1967년에는 스탄 게츠의 쿼텟에 들어가 앨범 「스위트 레인」을 녹음했다. 게츠는 이 앨범에 그의 곡 「리사」와 「윈도스」를 실어, 젊은 피아니스트의 작곡 재능을 일찍 알아본 선배가 됐다. (데뷔) 1966년에는 첫 리더 앨범 「톤스 포 존스 본스」를 녹음했다. 이름이 조금씩 알려졌지만 생계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밴드에서 받는 사이드맨 출연료에 기대고 있었다. (트리오) 1968년 3월, 베이스의 미로슬라프 비투시, 드럼의 로이 헤인스와 함께 트리오 앨범 「나우 히 싱스, 나우 히 소브스」를 녹음했다. 크게 팔린 음반은 아니었지만, 빌 에번스 이후 피아노 트리오가 갈 수 있는 새 길을 보여 준 작품으로 연주자들 사이에서 오래 회자됐다. 클래식에서 다진 명료한 터치, 라틴 밴드에서 얻은 리듬, 비밥의 어휘가 처음으로 한 그릇에 담긴 기록이었다.

♪나우 히 싱스, 나우 히 소브스 (Now He Sings, Now He Sobs)1968 (27세)실황 Chick Corea·Haynes·Vitous · 1982 백악관

라틴 밴드와 비밥, 클래식 수업을 거친 뉴욕 시절의 결산이다. 비투시, 헤인스와의 대화가 피아노 트리오의 새 문법이 됐다.

  • 「매트릭스」는 12마디가 한 바퀴인 블루스 형식(12마디 블루스)을 바탕으로 하지만, 각진 선율과 빠른 템포 때문에 전통 블루스와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들린다.
  • 로이 헤인스의 드럼은 박을 꼬박꼬박 지키기보다 스네어 테두리를 치는 날카로운 소리(림샷)로 피아노의 말에 즉석에서 대꾸한다. 세 악기가 서로 끼어들며 주고받는 연주(인터플레이)가 이 앨범의 핵심이다.
  • 미로슬라프 비투시의 베이스는 박마다 한 음씩 걷는 반주(워킹 베이스)에만 머물지 않고 피아노와 대등하게 선율을 엮는다.
  • 코리아의 오른손은 음 하나하나가 또렷이 끊어지는 타악기 같은 터치를 지녔다. 어린 시절의 클래식 수업과 드럼 경험이 함께 들리는 대목이다.
  • 1968년 3월 뉴욕에서 몇 차례의 세션으로 녹음됐고, 원래 LP에는 다섯 곡만 실렸다. 훗날 CD 재발매에서 같은 세션의 곡들이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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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마일스의 전기 피아노 · 1968–1971 (27–30세)

(마일스) 1968년 가을, 마일스 데이비스의 밴드에 허비 행콕의 후임으로 들어갔다. 첫 녹음은 「킬리만자로의 딸들」의 일부 곡이었다. 마일스는 그에게 스튜디오에 놓인 펜더 로즈 전기 피아노를 치라고 했다. 그는 처음엔 그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회고했지만, 곧 음색과 음량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이 악기의 가능성에 끌렸다. (퀸텟) 웨인 쇼터, 데이브 홀랜드, 잭 디조넷과 함께한 이 시기의 밴드는 곡과 곡의 경계를 허물고 쉼 없이 이어지는 즉흥으로 유럽과 미국의 무대를 누볐다. 정규 스튜디오 앨범을 남기지 않아 훗날 잃어버린 퀸텟이라 불렸다. 1969년 그는 「인 어 사일런트 웨이」와 「비치스 브루」 녹음에 참여해 재즈가 록의 리듬과 전기 악기를 끌어안는 전환점의 한가운데 섰다. (서클) 1970년 마일스의 밴드를 떠난 그는 홀랜드와 함께 색소폰의 앤서니 브랙스턴, 드럼의 배리 알철을 모아 그룹 서클을 결성했다. 정해진 화성 없이 소리를 주고받는 프리 재즈였다. (신앙) 그보다 앞선 1968년, 그는 L. 론 허버드의 「다이어네틱스」를 읽은 것을 계기로 사이언톨로지에 입문했고 평생 신자로 남았다. 이 믿음은 예술가가 청중과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에게 심었다. 그는 서클의 음악이 청중에게 닿지 않는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1971년 그룹을 떠났다. 같은 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ECM의 프로듀서 맨프레트 아이허와 솔로 앨범 「피아노 임프로비제이션스」를 녹음했다. 추상에서 벗어나 맑게 노래하는 선율로 돌아선 첫 기록이었다.

♪비치스 브루 (Bitches Brew)1969 (28세)실황 Miles Davis · 1969 코펜하겐

마일스의 밴드에서 전기 피아노를 처음 손에 익힌 그가 재즈의 방향이 바뀌는 현장에 있었음을 보여 주는 기록이다.

  • 코리아는 조 저비눌과 함께 펜더 로즈 전기 피아노를 쳤다. 두 대의 전기 피아노가 몽롱하게 울리는 화음을 깔아 다른 악기들이 그 위를 떠다닌다.
  • 베이스 두 대(어쿠스틱과 전기)와 여러 명의 드럼·타악기가 같은 리듬 패턴을 되풀이하며 록에 가까운 단단한 바닥(그루브)을 만든다.
  • 곡마다 정해진 코드 진행보다 한두 개의 화음이나 음계 위에서 길게 즉흥하는 방식(모달 재즈의 연장)이 쓰여, 긴 곡이 한 덩어리의 분위기로 흐른다.
  • 1969년 8월 뉴욕 컬럼비아 스튜디오에서 사흘간 녹음했고, 프로듀서 테오 마세로가 녹음 테이프를 잘라 붙여 곡의 형태를 완성했다. 편집 자체가 작곡의 일부가 된 앨범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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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영원으로의 귀환 · 1972–1977 (31–36세)

(결혼) 1972년 가수이자 피아니스트 게일 모런과 결혼했다. 모런은 이후 반세기 가까이 그의 곁을 지켰고, 리턴 투 포에버와 그의 여러 앨범에서 노래했다. (결성) 같은 해 2월, 그는 베이스의 스탠리 클라크, 색소폰과 플루트의 조 패럴, 드럼과 타악기의 아이어토 모레이라, 보컬의 플로라 푸림과 리턴 투 포에버를 꾸려 ECM에서 첫 앨범을 녹음했다. 브라질 리듬 위에 맑은 선율이 흐르는 이 음악은 서클의 추상과 정반대 쪽에 있었다. 가을에는 같은 멤버로 「스페인」이 담긴 「라이트 애즈 어 페더」를 녹음했고, 비브라폰 연주자 게리 버턴과는 듀오 앨범 「크리스털 사일런스」를 남겼다. 스탄 게츠의 「캡틴 마블」에도 리턴 투 포에버의 멤버들과 함께 참여했다. (전환) 1973년 밴드는 전기 기타와 신시사이저를 앞세운 편성으로 바뀌었다. 드럼에 레니 화이트가 들어왔고, 기타는 빌 코너스를 거쳐 1974년 열아홉 살의 앨 디 메올라가 맡았다. 록 공연장을 채우는 강한 소리로 리턴 투 포에버는 웨더 리포트,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와 함께 재즈 록(퓨전)을 대표하는 밴드가 됐다. (정점) 컬럼비아로 옮겨 1976년에 낸 「로맨틱 워리어」는 밴드 최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일부 평론가는 그가 상업성에 기울었다고 비판했지만, 그는 장르의 경계를 묻는 질문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같은 해 「마이 스패니시 하트」로 어린 시절부터 사랑한 스페인 음악에 헌정했고, 1977년 리턴 투 포에버의 활동을 일단 마무리했다.

♪스페인 (Spain)1972 (31세)실황 Chick Corea · 2004 Montreux

서클의 추상을 떠나 청중에게 닿는 음악을 찾던 그가 라틴과 스페인의 색채로 내놓은 답이다. 이후 수많은 연주자가 연주하는 현대의 스탠더드가 됐다.

  • 느린 도입부는 호아킨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스 협주곡」 2악장 선율을 빌려 와 펜더 로즈로 조용히 연다. 그다음 갑자기 빠른 템포로 넘어가는 대비가 곡의 첫 인상을 만든다.
  • 빠른 주제는 전기 피아노와 조 패럴의 플루트가 같은 선율을 함께 연주(유니즌)하며 아주 정교한 리듬으로 몰아친다.
  • 스탠리 클라크의 어쿠스틱 베이스와 아이어토 모레이라의 드럼이 라틴 리듬 위에서 밀고 당기며, 리듬 섹션이 단순한 반주가 아니라 곡을 끌고 가는 엔진 역할을 한다.
  • 1972년 가을 런던에서 녹음한 앨범 「라이트 애즈 어 페더」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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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털 사일런스 (Crystal Silence)1972 (31세)실황 Chick Corea·Gary Burton (비브라폰) · 2016 NPR Tiny Desk

리턴 투 포에버를 시작한 해, 그는 비브라폰의 게리 버턴과 단둘이 마주 앉아 가장 조용한 음악을 녹음했다. 이 듀오는 반세기 가까이 이어졌다.

  • 베이스와 드럼 없이 피아노와 비브라폰 둘뿐이다. 두 악기 모두 건반처럼 두드리는 타악기 성격이어서, 서로의 소리가 맑게 겹치며 울린다.
  • 버턴은 말렛(채) 네 개를 한꺼번에 쥐고 화음을 치는 주법으로, 피아노와 화음과 선율을 번갈아 나눠 맡는다.
  • 타이틀곡은 느린 템포에서 소리 사이의 여백과 울림의 잔향을 길게 살린다. 맑고 투명한 녹음으로 알려진 ECM 레이블의 소리 결이 잘 드러난다.
  • 1972년 11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맨프레트 아이허의 프로듀싱으로 녹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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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워리어 (Romantic Warrior)1976 (35세)실황 「Duel of the Jester and the Tyrant」 Return to Forever · 2008 Montreux

전기 악기로 무장한 리턴 투 포에버가 가장 크게 팔린 앨범이다. 중세 기사 이야기를 빌린 구성 속에 그의 작곡 야심이 가장 크게 펼쳐졌다.

  • 곡들이 중세의 서곡, 마법사, 광대와 폭군의 결투 같은 제목을 달고 있다. 여러 부분이 이어 붙은 긴 곡 형식이 록 밴드라기보다 실내악에 가깝게 들린다.
  • 코리아는 신시사이저 여러 대로 관악기나 오르간 같은 다양한 음색을 만든다. 앨 디 메올라의 빠르고 정확한 기타가 그와 똑같은 선율을 겹쳐 연주하는 대목이 많다.
  • 타이틀곡에서는 밴드가 피아노, 어쿠스틱 베이스, 어쿠스틱 기타로 바꿔 연주해, 전기 사운드가 주를 이루는 앨범 안에서 따뜻한 대조를 이룬다.
  • 1976년 2월 콜로라도의 캐리부 랜치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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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두 개의 밴드 · 1978–1999 (37–58세)

(듀오) 1978년 마일스 밴드에서 자신의 전임자였던 허비 행콕과 그랜드피아노 두 대로 듀오 순회공연을 벌였다. 두 사람은 경쟁자라기보다 서로의 소리를 가장 잘 아는 동료였고, 이 공연은 실황 앨범으로 남았다. (로스앤젤레스) 1970년대 후반 로스앤젤레스에 근거지를 두고, 1978년 앨범 「매드 해터」의 이름을 딴 매드 해터 스튜디오를 열었다. 리턴 투 포에버의 성공 이후 그는 자신의 녹음 환경을 스스로 갖출 수 있는 음악가가 돼 있었다. (실내악) 1981년 테너 색소폰의 마이클 브레커, 베이스의 에디 고메스, 드럼의 스티브 개드와 「스리 쿼텟츠」를 녹음했다. 같은 해 11월 비투시, 헤인스와 다시 만나 「트리오 뮤직」을 녹음했는데(1982년 발매), 그 절반을 텔로니어스 몽크의 곡에 바쳤다. 1984년에는 10년 넘게 써 온 피아노 소품 모음 「칠드런스 송스」를 ECM에서 발표했다. (일렉트릭) 1986년 베이스의 존 파티투치, 드럼의 데이브 웨클과 일렉트릭 밴드를 결성했고, 기타의 프랭크 갬발리와 색소폰의 에릭 마리엔설이 합류했다. 같은 리듬 섹션으로 어쿠스틱 밴드도 꾸려 스탠더드 곡을 연주하며 전기와 어쿠스틱 두 세계를 나란히 오갔다. 1992년에는 GRP 산하에 자기 레이블 스트레치를 세워 자신과 동료들의 음반을 냈다. (헌정) 1990년대 후반 그는 뿌리를 돌아보았다. 1996년 보비 맥퍼린과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녹음했고, 같은 해 녹음한 「리멤버링 버드 파월」로 10대 시절의 우상에게 헌정했다. 어린 시절 술로에게 배운 모차르트와 레코드로 익힌 비밥이 한 시기에 나란히 섰다. 1998년에는 젊은 연주자들과 밴드 오리진을 꾸렸다.

♪스리 쿼텟츠 (Three Quartets)1981 (40세)실황 Chick Corea · Michael Brecker · 2003 Blue Note

퓨전 이후 어쿠스틱 재즈로 돌아온 그가 클래식의 현악 4중주처럼 짜임새 있게 쓴 작품이다. 재즈의 선배들에게 바치는 헌사도 담겼다.

  • 제목처럼 현악 4중주를 염두에 두고 쓴 세 개의 큰 곡으로 짜였다. 미리 작곡된 부분과 자유로운 즉흥 부분이 정교하게 맞물린다.
  • 「쿼텟 2번」의 두 부분은 각각 듀크 엘링턴과 존 콜트레인에게 바쳐졌다. 콜트레인 쪽 부분에서는 마이클 브레커의 테너 색소폰이 거세고 빽빽한 음의 물결로 그 영향을 드러낸다.
  • 에디 고메스의 베이스는 활처럼 높은 음역까지 노래하듯 움직이고, 스티브 개드의 드럼은 정확하면서도 여유 있는 스윙(박의 뒤쪽을 살짝 끌어 밀고 당기는 느낌)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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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끝나지 않은 연주 · 2000–2021 (59–80세)

(재회) 2000년대에도 그는 쉬지 않았다. 2008년에는 마일스 밴드 시절의 동료 존 매클러플린과 파이브 피스 밴드를 꾸렸고, 같은 해 스탠리 클라크, 레니 화이트, 앨 디 메올라와 리턴 투 포에버 재결합 순회공연을 했다. 게리 버턴과는 「크리스털 사일런스」 36년 뒤인 2008년 「뉴 크리스털 사일런스」를 내며 오랜 듀오를 이어 갔다. (블루노트) 2011년 일흔 살 생일을 맞아 뉴욕 블루노트에서 여러 주에 걸쳐 편성을 바꿔 가며 공연했다. 옛 동료와 새 세대가 번갈아 무대에 올랐고, 이 기록은 훗날 「더 뮤지션」으로 묶였다. (트릴로지) 2010년 무렵부터 베이스의 크리스천 맥브라이드, 드럼의 브라이언 블레이드와 피아노 트리오로 세계를 돌았다. 각지의 실황을 모은 「트릴로지」는 그래미 두 부문을 받았다. 1968년 비투시, 헤인스와 시작한 트리오의 길이 반세기 뒤 다시 이어진 셈이었다. (클리어워터) 말년에는 플로리다주 탬파베이 지역의 클리어워터에 살며 2019년 스패니시 하트 밴드와 「안티도트」를, 2020년 솔로 실황 「플레이스」를 냈다. 공연이 멈춘 2020년에는 자택에서 연주와 강의를 인터넷으로 중계했다. (작별) 2021년 2월 9일, 진단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희귀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79세였다. 사후 공개된 마지막 메시지에서 그는 연주하고 쓰고 공연할 수 있는 이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세상에는 더 많은 예술가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당부했다. 그해 그래미에서 「트릴로지 2」로 두 부문을 더 받아, 평생의 그래미 수상은 스무 차례를 훌쩍 넘겼다.

♪트릴로지 (Trilogy)2013 (72세)실황 「This Is New」 Chick Corea · 2015 MJF

일흔 무렵 다시 피아노 트리오로 돌아간 그가 세계 각지의 무대에서 남긴 실황이다. 1968년의 트리오가 반세기 뒤 다시 이어진 모습이다.

  • 크리스천 맥브라이드의 베이스는 묵직하게 박을 걸어가다가도 순식간에 피아노와 선율을 주고받는 대화 상대로 바뀐다.
  • 브라이언 블레이드의 드럼은 아주 작은 소리에서 폭발적인 소리까지 셈여림의 폭이 넓어, 같은 곡이 공연마다 다른 얼굴을 갖게 만든다.
  • 잘 알려진 재즈 명곡들(스탠더드)과 자작곡을 나란히 놓아, 그가 평생 걸어온 여러 갈래를 한 트리오로 다시 훑는다.
  • 여러 도시의 공연을 골라 세 장의 음반으로 묶었고, 그래미에서 최우수 재즈 연주 앨범과 즉흥 솔로 부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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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스페인) 그의 가장 유명한 곡 「스페인」의 느린 도입부는 그의 창작이 아니라 스페인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스 협주곡」 2악장에서 빌려 온 선율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와 길 에번스가 1960년 「스케치스 오브 스페인」에서 같은 악장을 편곡한 바 있어, 코리아의 인용은 스승의 음반에 대한 응답으로도 읽힌다. 많은 연주자가 빠른 주제부만 연주하면서 도입부의 출처는 상대적으로 덜 언급돼 왔다. (독일) 1993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는 그가 사이언톨로지 신자라는 이유로, 슈투트가르트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맞춰 주 정부가 지원하는 공연에서 그를 배제했다. 독일 정부가 사이언톨로지를 경계하던 시기의 일이었고, 미국 국무부는 이후 여러 해 동안 인권 보고서에서 이 사례를 언급했다. 음악 평전에서는 대개 한두 줄로 지나가는 일이지만, 한 연주자의 신앙이 국가 간 외교 문서에까지 오른 드문 사례였다. (소품) 「칠드런스 송스」는 1984년 앨범으로 묶이기 전 10년 넘게 조금씩 쓰인 곡들이다. 그 첫 곡은 1972년 「크리스털 사일런스」 무렵부터 이미 연주됐다. 그는 단순한 재료로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말을 거는 음악을 쓰고 싶었다고 밝혔다. 화려한 퓨전 스타로 기억되는 같은 시기에, 그는 몇 마디짜리 피아노 소품을 꾸준히 다듬고 있었다.

용어 노트 📚🔎

퓨전 (재즈 록)

(말뜻) 영어 fusion은 녹여서 하나로 합친다는 뜻이다. 쇠붙이를 녹여 붙이듯 서로 다른 음악을 섞었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었다. (재즈에서) 1960년대 말부터 재즈의 즉흥연주에 록의 강한 리듬과 전기 기타·전기 피아노·신시사이저 같은 전기 악기를 합친 음악을 말한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비치스 브루」가 출발점으로 꼽히고, 칙 코리아의 리턴 투 포에버가 대표 밴드 가운데 하나였다. 떡볶이에 치즈를 넣으면 원래 떡볶이도 치즈 요리도 아닌 새 맛이 되는 것처럼, 재즈와 록이 섞여 어느 쪽과도 다른 소리가 났다. (다른 데서는) 요리에서 퓨전은 여러 나라 음식을 섞은 요리를, 과학에서는 원자핵이 합쳐지는 핵융합을 가리킨다.

프리 재즈

(재즈에서) 정해진 코드 진행이나 박자, 곡의 형식 없이 연주자들이 그 자리에서 서로의 소리를 듣고 반응하며 음악을 만들어 가는 재즈다. 1950년대 말 오넷 콜먼 등이 길을 열었고, 칙 코리아는 1970년 그룹 서클에서 이 방식에 몰두했다. 공 하나로 규칙 없이 친구들과 즉석에서 놀이를 만들어 가는 것과 비슷하다. 재미있지만, 구경하는 사람은 무슨 놀이인지 알기 어려울 수 있다. 코리아가 서클을 떠난 이유도 바로 그 점이었다.

펜더 로즈 (전기 피아노)

(재즈에서) 건반을 누르면 작은 망치가 쇠막대를 때리고, 그 진동을 전기로 바꿔 스피커로 내는 피아노다. 소리가 종처럼 둥글고 몽롱하게 울리며, 음량과 음색을 기계로 조절할 수 있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칙 코리아에게 이 악기를 치게 한 뒤 퓨전 시대의 대표 소리가 됐다. 같은 노래를 그냥 부를 때와 노래방 마이크에 에코를 걸어 부를 때 느낌이 확 달라지듯, 같은 화음도 이 악기로 치면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된다.

클라베

(말뜻) 스페인어 clave는 열쇠, 또는 아치 꼭대기에 끼워 전체를 버티게 하는 쐐기돌이라는 뜻이다. 리듬 전체를 붙잡아 주는 열쇠라는 의미가 이름에 담겨 있다. (재즈에서) 쿠바 음악과 라틴 재즈의 바탕이 되는 짧은 리듬 무늬로, 두 마디 안에서 다섯 번 치는 박이 특정한 자리에 놓인다. 모든 악기가 이 무늬에 맞춰 리듬을 짠다. 줄넘기에서 긴 줄을 돌리는 박자가 일정해야 모두가 그 박에 맞춰 뛰어들 수 있는 것과 같다. 칙 코리아는 젊은 시절 라틴 밴드에서 이 감각을 몸에 익혔다. (다른 데서는) 이 리듬을 연주하는 나무 막대 두 개짜리 타악기의 이름도 클라베스다.

리듬 섹션

(재즈에서) 밴드에서 박자와 화음의 바탕을 맡는 악기들, 보통 피아노·베이스·드럼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 색소폰이나 트럼펫이 앞에서 솔로를 하는 동안 뒤에서 바닥을 깔아 준다. 그런데 재즈에서는 이들이 반주만 하지 않고 솔로이스트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축구에서 수비수와 미드필더가 공을 돌리며 공격수가 골을 넣을 판을 만들어 주는 것과 비슷하다. 칙 코리아는 대개 이 리듬 섹션의 일원이자 동시에 밴드의 리더였다.

인터플레이

(말뜻) 영어 inter는 서로 사이, play는 놀이나 연주를 뜻한다. 말 그대로 서로 주고받는 연주다. (재즈에서) 밴드 멤버들이 미리 정하지 않은 채 상대의 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서 대꾸하며 연주를 만들어 가는 것을 말한다. 피아노가 짧은 가락을 던지면 드럼이 그 리듬을 받아치고, 베이스가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식이다. 친구들과 끝말잇기를 할 때 앞사람이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계속 귀를 기울이는 것과 같다. 「나우 히 싱스, 나우 히 소브스」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세 사람의 인터플레이다.

12마디 블루스

(재즈에서) 열두 마디가 한 바퀴를 이루고, 정해진 세 가지 기본 화음이 정해진 순서로 돌아가는 형식이다. 연주자들은 이 열두 마디를 여러 번 돌면서 즉흥연주를 하는데, 한 바퀴를 코러스라고 부른다. 재즈 연주자라면 누구나 아는 형식이라 처음 만난 사람끼리도 바로 함께 연주할 수 있다. 운동장 트랙 한 바퀴의 길이가 정해져 있어 누구든 같이 달릴 수 있지만, 달리는 방식은 저마다 다른 것과 같다. 칙 코리아의 「매트릭스」도 이 형식을 바탕으로 한다.

스탠더드

(재즈에서) 많은 연주자가 되풀이해 연주해 온 잘 알려진 곡을 말한다. 원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나 영화 노래였던 것이 많지만, 재즈 연주자가 쓴 곡도 많이 연주되면 스탠더드가 된다. 칙 코리아의 「스페인」이 그런 예다. 학교에서 누구나 아는 노래를 반마다 다르게 편곡해 합창대회에 나가는 것처럼, 같은 곡을 연주자마다 자기 식으로 해석한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표준이나 기준이라는 뜻으로 쓰여, 표준 규격이나 기본형 제품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