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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 Powell

버드 파월 (1924–1966)

오른손으로는 관악기처럼 노래하고 왼손으로는 꼭 필요한 것만 짚은 피아니스트였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뉴욕 할렘 출생스트라이드 아버지아트 테이텀 영향2. 비밥민튼스 하우스밴드몽크와 우정비밥 서클 합류3. 시련필라델피아 구타전기충격 치료4. 정점언 포코 로코매시 홀 공연글래스 인클로저5. 상실카바레 카드 박탈동생 리치 사망매니저의 통제6. 파리와 말년파리 망명포드라의 돌봄할렘서 영면파월1924–1966폭력과 병마 속에서도 비밥 피아노의 문법을 세…
무대의 여정 🧭🗺️
N프랑스뉴욕1924–1959파리1959–1964뉴욕1964–1966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윌리엄 파월

    스트라이드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였다.

  • 영향아트 테이텀

    할렘에서 들은 그의 연주가 평생의 기준점이 됐다.

  • 스승텔로니어스 몽크

    민튼스에서 그를 이끌고 지켜준 평생의 벗이었다.

  • 동료찰리 파커

    매시 홀 무대를 비롯해 비밥의 황금기를 함께 지났다.

  • 가족리치 파월

    같은 길을 걷던 동생으로, 1956년 사고로 먼저 떠났다.

  • 우정프랑시스 포드라

    파리에서 그의 곁을 지키며 훗날 회고록을 남겼다.

YouTube에서 4곡 이어 듣기 ↗

I. 할렘의 피아노 소년 · 1924–1939 (0–15세)

(뉴욕) 1924년 9월, 미국 뉴욕시 할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윌리엄 파월은 그 동네 술집과 파티에서 스트라이드 피아노를 치며 생계를 보탰다. 어머니에 대해 전해지는 기록은 많지 않다. 형 윌리엄 주니어는 바이올린을, 뒤이어 태어난 동생 리치는 피아노를 배웠다. 음악은 집안에서 당연한 공기 같은 것이었다. (건반) 다섯 살 무렵부터 피아노 앞에 앉았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클래식 교습을 받게 했고, 바흐와 체르니의 연습곡이 손가락에 새겨졌다. 훗날 그의 연주에 깃든 정교한 운지와 빠른 패시지는 이때 다져진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테이텀) 할렘의 클럽과 라디오에서 아트 테이텀의 연주를 들으며 자랐다. 한 손으로 화성을 쌓고 다른 손으로 폭포처럼 음을 쏟아내는 테이텀의 기교는 소년에게 넘어야 할 산이자 지향점이 되었다. 아버지의 스트라이드와 테이텀의 비르투오소 기교, 두 흐름이 그의 안에서 겹쳐졌다. (학업) 열다섯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피아노에 전념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터라 일찍부터 클럽에서 연주비를 받아 보태야 했다. 또래 아이들이 교실에 앉아 있을 시간에 그는 이미 할렘의 밤업소에서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다.

II. 민튼스의 밤 · 1940–1943 (16–19세)

(민튼스) 1940년대 초, 할렘의 작은 클럽 민튼스 플레이하우스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곳은 텔로니어스 몽크가 하우스 피아니스트로 있던, 새로운 화성과 리듬을 실험하던 실험실이었다. 아직 십대였던 그는 밤마다 그 자리에 끼어 앉아 건반을 만졌다. (몽크) 몽크는 어린 파월을 아끼고 가르쳤다. 나이 차가 크지 않았지만 몽크는 형처럼, 때로는 보호자처럼 그를 감쌌다. 훗날 몽크가 곡 「인 워크드 버드 (In Walked Bud)」를 그에게 바친 것은 이 시절의 우정을 증언하는 일이었다. (동료들) 같은 자리에서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파커를 만났다. 빠른 코드 진행 위에서 즉흥연주를 쌓아올리는 새로운 어법, 비밥이 바로 그 좁은 무대 위에서 태어나고 있었다. 파월은 그 언어를 가장 먼저, 가장 깊이 피아노로 옮긴 사람 중 하나였다. (오른손) 그는 왼손으로는 꼭 필요한 화음만 짚고 오른손으로 색소폰이나 트럼펫처럼 길게 뻗는 선율을 그려내는 주법을 벼려갔다. 동료 연주자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III. 쿠티 윌리엄스와 필라델피아 · 1943–1945 (19–21세)

(쿠티 윌리엄스) 1943년, 트럼펫 주자 쿠티 윌리엄스가 이끄는 빅밴드에 피아니스트로 들어갔다. 윌리엄스는 한때 듀크 엘링턴 악단에서 뮤트 트럼펫으로 이름을 날린 연주자였다. 밴드에서 연주비를 받으며 처음으로 안정된 수입을 가져봤다. (라운드미드나잇) 1944년, 윌리엄스 악단은 몽크가 쓴 곡 「라운드 미드나잇 (Round Midnight)」을 녹음했다. 몽크 자신의 녹음보다 앞선, 이 곡의 첫 음반화였다. 파월은 그 세션에서 건반을 맡아 아직 다 알려지지 않았던 친구의 곡을 세상에 처음 들려주는 자리에 함께했다. (필라델피아) 1945년 1월, 필라델피아에서 경찰과 충돌했다. 전해지는 바로는 술에 취해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체포됐고, 그 과정에서 경찰봉에 머리를 심하게 맞았다. 이 구타가 그에게 평생 따라붙은 정신적 고통의 시작이었다고 여러 전기 작가들이 기록했다. (입원) 구타 이후 처음으로 정신병원에 수용됐다.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였다. 무대와 녹음실에서 갑자기 멀어진 몇 달, 그의 음악 인생에서 처음 찾아온 긴 공백이었다.

♪라운드 미드나잇 (Round Midnight, 쿠티 윌리엄스 악단 버전)1944 (20세)연주 Bud Powell Trio (피아노)

친구 몽크의 곡을 세상에 처음 들려준 자리에 파월이 피아노로 함께했다.

  • 뮤트 트럼펫의 명수 쿠티 윌리엄스가 주제 선율을 흐느끼듯 연주한다(뮤트란 금속관이나 천으로 나팔 입구를 막아 음색을 흐리는 주법이다).
  • 몽크 특유의 변칙적인 화성이 빅밴드 편곡 속에서도 묘하게 어두운 색을 낸다.
  • 파월은 반주에 머물지만, 코드 사이사이를 채우는 손놀림에서 이미 자기만의 터치가 엿보인다.
  • 스튜디오 녹음임에도 밴드 전체가 한 호흡으로 느릿하게 흐르는 템포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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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병원과 재기 사이 · 1946–1951 (22–27세)

(전기충격) 이후 몇 년간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했다. 크리드무어, 필그림 스테이트 같은 뉴욕 주립병원에서 전기충격요법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의료진은 조현병으로 진단했지만, 머리를 맞은 후유증과 과도한 치료가 병을 더 키웠다는 평가도 훗날 제기됐다. (재기) 병원을 나올 때마다 다시 건반 앞으로 돌아왔다. 1947년 루스트 레이블에서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내건 음반을 녹음했다. 몽크를 비롯한 동료들은 그가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며 곁을 지켰다. (블루노트) 블루 노트 레코드의 앨프리드 라이온과 손잡으며 녹음이 늘어났다. 베이스의 토미 포터, 드럼의 로이 헤인즈와 함께한 1949년 세션에서 「댄스 오브 디 인피델스」 같은 곡을 남겼다. 빠른 템포 위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오른손 선율이 이 무렵 완성되어 있었다. (언포코로코) 1951년, 드러머 맥스 로치, 베이시스트 컬리 러셀과 함께 「언 포코 로코」를 녹음했다. 로치의 카우벨 리듬 위에서 그가 쏟아낸 선율은 한 번의 테이크로 끝나지 않았다. 세 개의 테이크가 모두 세상에 남아, 완벽을 찾아 헤매던 그의 모습을 고스란히 들려준다.

♪댄스 오브 디 인피델스 (Dance of the Infidels)1949 (25세)연주 Emmet Cohen Trio

정신병원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녹음한, 재기를 알리는 퀸텟(5중주) 녹음이었다.

  • 주제부(헤드)를 쏜살같이 제시한 뒤 곧장 솔로로 넘어가는 전형적인 비밥 구성(헤드-솔로-헤드)을 들려준다.
  • 오른손이 색소폰처럼 길게 뻗는 선율을 그리는 동안 왼손은 꼭 필요한 화음만 짚어, 이후 모던 재즈 피아노의 기준이 된 주법을 보여준다.
  • 베이시스트 토미 포터와 드러머 로이 헤인즈는 그의 빠른 템포를 흔들림 없이 받쳐준다.
  • 거침없이 내달리다가도 한순간 숨을 고르는 프레이징에서, 병을 앓고 돌아온 사람의 조심스러움도 함께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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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포코 로코 (Un Poco Loco)1951 (27세)연주 Chick Corea 외 (1996 트리뷰트)

맥스 로치의 카우벨 리듬 위에서, 세 번의 테이크 모두가 완벽을 찾아 헤맨 흔적으로 남았다.

  • 맥스 로치가 카우벨(손으로 때리는 금속 타악기)로 라틴풍 리듬을 꾸준히 때리는 위에서 곡이 출렁인다.
  • 세 테이크가 모두 발매됐는데, 특히 마지막 테이크의 솔로가 가장 자주 회자된다 — 같은 모티프를 던지고 비틀기를 반복하며 점점 격해진다.
  • 컬리 러셀의 베이스는 단순한 반주를 넘어 리듬의 뼈대 역할을 한다.
  • 스페인풍 선율과 블루스 어법이 한데 섞여, 당시로서는 낯선 색채를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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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정점과 상실 · 1951–1959 (27–35세)

(매시홀) 1953년 5월, 토론토 매시 홀에서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찰스 밍거스, 맥스 로치와 한 무대에 섰다. 훗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즈 공연 중 하나로 꼽히는 밤이었다. 정신병원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축을 받아 피아노 앞에 앉았지만, 막상 건반 위의 연주는 그날 밤의 백미로 꼽히기도 한다. 이 공연은 음반으로 남아 비밥의 한 시대를 증언한다. (글래스인클로저) 같은 해, 베이시스트 조지 듀비비에, 드러머 아트 테일러와 트리오로 「글래스 인클로저 (Glass Enclosure)」를 녹음했다. 매니저가 그를 술집 출입과 사람들로부터 떼어놓으려 방 안에 거의 가둬두다시피 했던 시기에 쓰인 곡이라고 전해진다. 어둡고 조심스럽게 쌓이는 화성은 유리벽 안에 갇힌 사람의 심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카바레카드) 1955년 필라델피아에서 헤로인 소지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뉴욕시 경찰이 발급하는 카바레 카드를 얻기 어려워졌다. 술을 파는 뉴욕의 클럽에서 연주할 길이 사실상 막힌 것이었다. 녹음과 타지 공연에 의존해야 했고, 매니저 오스카 굿스타인이 그의 출연료와 일정을 사실상 틀어쥐었다. (리치) 1956년 6월, 동생 리치 파월이 세상을 떠났다. 트럼펫 주자 클리포드 브라운과 함께 이동하던 차가 사고를 당했고, 두 사람 모두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형을 따라 피아노를 치며 자기 길을 막 다져가던 동생의 죽음은 그에게 또 하나의 깊은 균열을 남겼다.

♪더 퀸텟: 재즈 앳 매시 홀 (The Quintet: Jazz at Massey Hall)1953 (29세)

파커, 길레스피, 밍거스, 로치와 한 무대에 섰던, 흠결마저 전설이 된 콘서트 실황이다.

  • 파커와 길레스피가 주고받는 솔로의 긴장감이 이 음반을 전설로 만든 핵심이다.
  • 밍거스는 훗날 베이스 소리가 작게 녹음된 것을 알고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파트를 다시 입혔다고 알려져 있다.
  • 완벽하지 않은 연주조차 그대로 남긴 실황 녹음이라는 점에서, 비밥 전성기의 생생한 공기를 들을 수 있다.

VI. 파리행 · 1959–1963 (35–39세)

(파리) 1959년, 뉴욕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카바레 카드도, 머물 곳도 마땅치 않던 뉴욕을 등지고 떠난 길이었다. 동반자였던 버터컵(앨터비아 에드워즈)이 함께했다. (포드라) 파리에서 프랑스인 팬 프랑시스 포드라를 만났다. 포드라는 그의 일상을 돌보고 매니저 노릇까지 자처하며 곁을 지켰다. 훗날 포드라가 쓴 회고록 「라 당스 데 쟁피델 (La Danse des infidèles)」은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 (Round Midnight)」의 바탕이 되었다. (블루노트클럽) 파리의 재즈 클럽 블루 노트에서 거의 상주하다시피 연주했다. 그곳을 거쳐가던 미국 출신 연주자들과도 자주 어울렸다. 1963년에는 색소포니스트 덱스터 고든의 음반 「아워 맨 인 파리 (Our Man in Paris)」에 드러머 케니 클라크, 베이시스트 피에르 미슐로와 함께 참여했다. (결핵) 건강은 꾸준히 나빠졌다. 1963년 결핵 진단을 받았고, 포드라의 보살핌 속에서도 몸은 점점 쇠약해졌다. 무대 위의 손가락은 예전만큼 날렵하지 않았지만, 그 느려진 호흡 속에서도 그의 터치는 여전히 그만의 것이었다.

♪아워 맨 인 파리 (Our Man in Paris, 덱스터 고든)1963 (39세)연주 George Gruntz (피아노) — Dexter Gordon 쿼텟

파리에서 만난 동료 덱스터 고든의 음반에 참여해, 쇠약해진 몸으로도 특유의 터치를 들려줬다.

  • 덱스터 고든의 굵고 느긋한 색소폰 톤과 파월의 재빠른 피아노가 대비를 이루며 서로를 돋운다.
  • 스탠더드 곡들을 다루면서도 각 솔로이스트가 주제를 변형해가는 과정이 또렷이 들린다.
  • 케니 클라크의 드럼은 가볍게 스윙하며(박자 뒷부분을 슬쩍 밀고 당기는 느낌) 전체를 느슨하게 풀어준다.
  • 베이시스트 피에르 미슐로와의 호흡에서, 파리에서 다져진 현지 리듬 섹션과의 합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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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할렘으로, 그리고 영면 · 1964–1966 (40–42세)

(귀국) 1964년, 뉴욕으로 돌아왔다. 건강이 더 나빠지기 전에 고향에서 지내고 싶어 했다고 전해진다. 할렘의 재즈 동료들은 돌아온 그를 반갑게 맞았다. (컴백) 귀국 직후 버드랜드 무대에 다시 섰다. 객석을 채운 청중은 뜨겁게 환호했지만, 건반 위의 손놀림은 전성기만큼 날카롭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무대는 오랜 공백 끝에 그가 여전히 거기 있다는 것을 알리는 자리였다. (쇠약) 이후 공연과 녹음은 뜸해졌다. 결핵과 오랜 음주로 몸은 눈에 띄게 야위어갔고, 조용히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영면) 1966년 7월 31일, 뉴욕에서 눈을 감았다. 결핵과 영양실조가 겹친 결과였다. 장례 행렬은 할렘 거리를 메웠고, 많은 음악가들이 뒤를 따랐다. 빌 에번스, 허비 행콕, 맥코이 타이너를 비롯한 후대의 피아니스트들은 하나같이 그의 오른손 선율에서 자신들의 출발점을 찾았다고 말했다.

덜 알려진 이야기

「라운드 미드나잇」의 공식 작곡자 표기에는 몽크 외에 쿠티 윌리엄스의 이름도 함께 올라 있다. 윌리엄스가 그 곡을 녹음하도록 자리를 만들어 준 대가로 저작권 일부를 나눠 가졌다는 사연인데, 파월이 건반을 맡았던 바로 그 1944년 세션이 그 출발점이었다. 곡이 워낙 몽크의 대표곡으로만 기억되다 보니, 이 공동 표기와 그 뒤에 얽힌 사정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일부 평가에서는 파월의 병이 조현병이 아니라 필라델피아에서 경찰에게 맞은 머리 부상에서 비롯된 손상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의료진의 진단과 전기충격 치료가 애초에 잘못된 전제 위에서 이뤄졌을 수 있다는 이 주장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한참 뒤 의료 기록이 재검토되면서야 나왔다. 입원 중 피아노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자 병실 벽에 건반을 그려 놓고 소리 없는 화음을 짚었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면회 온 동료 엘모 호프에게 그 화음이 어떻게 들리느냐고 묻기도 했다는데, 건반에서 멀어진 시간조차 그에게는 완전한 공백이 아니었던 셈이다.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에서 덱스터 고든이 연기해 오스카 후보에 오른 주인공은 파월과 레스터 영을 섞어 만든 가상의 인물이다. 많은 관객이 그 이야기를 파월의 실제 전기로 오해하지만, 영화 속 디테일 상당수는 포드라의 회고록을 거치며 각색된 허구다.

용어 노트 📚🔎

비밥

(재즈에서) 1940년대 뉴욕의 젊은 연주자들이 만들어낸 빠르고 복잡한 즉흥연주 양식이다. 정해진 멜로디를 그대로 반복하던 스윙 시대 빅밴드와 달리, 소수의 연주자가 빠른 코드 진행 위에서 매번 다른 즉흥선율을 쌓아올렸다. 체육 시간에 다 같이 맞춰 추던 단체 율동 대신, 음악에 맞춰 혼자 즉석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는 것과 비슷하다.

스트라이드 피아노

(말뜻) 스트라이드(stride)는 영어로 성큼성큼 걷는 큰 걸음을 뜻한다. 왼손이 낮은 베이스음과 가운데 화음 사이를 큰 걸음으로 오가듯 뛰어다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재즈에서) 왼손이 베이스음과 화음을 번갈아 짚어 리듬과 화성을 동시에 떠받치고, 오른손이 그 위에서 멜로디를 치는 피아노 주법이다. 줄넘기할 때 한 발은 계속 바닥을 짚고 다른 발로 재주를 부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스트라이드는 그냥 성큼성큼 걷는 걸음이나 진전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예: make strides, 진전을 보이다).

카바레 카드

(재즈에서) 술을 파는 뉴욕시의 공연장에서 연주하려면 경찰이 발급하는 신분증을 지니고 있어야 했는데, 이를 카바레 카드라 불렀다. 체포 기록이 있으면 이 카드가 취소돼 도시 안 어느 클럽에서도 연주할 수 없게 됐다. 한 번 퇴장당하면 그 리그의 어느 경기장에도 다시 들어갈 수 없는 선수와 같은 처지였다.

보이싱

(말뜻) 보이스(voice)는 목소리라는 뜻으로, 보이싱은 화음을 이루는 여러 음을 마치 합창의 각 성부처럼 배치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재즈에서) 파월은 왼손으로 화음의 꼭 필요한 음 두세 개만 짚고, 오른손으로 빠르고 긴 선율을 그리는 방식을 정착시켰다. 이후 많은 피아니스트가 이 방식을 따르면서 모던 재즈 피아노의 표준이 됐다. 다 같이 부르는 합창에서 한두 사람만 낮게 받쳐주고 나머지는 쉬는 것과 비슷한, 꼭 필요한 소리만 남기는 방식이다.

코러스

(말뜻) 코러스(chorus)는 원래 합창을 뜻하는 영어 단어다. (재즈에서)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화성 진행을 한 바퀴 도는 단위를 코러스라 부른다. 세 코러스를 솔로했다는 말은 그 화성 순환을 세 번 반복하며 즉흥연주를 했다는 뜻이다. 운동장 트랙을 한 바퀴 도는 것과 같아서, 몇 바퀴를 돌며 매번 다른 동작을 보여줬는지로 즉흥연주의 길이를 가늠한다. (다른 데서는) 대중가요에서 코러스는 노래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후렴구를 가리켜, 재즈에서의 뜻과는 다르다.

헤드-솔로-헤드

(말뜻) 헤드(head)는 머리라는 뜻으로, 곡의 맨 앞에 나오는 멜로디를 사람의 얼굴처럼 맨 먼저 보여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재즈에서) 먼저 주제 멜로디(헤드)를 연주하고, 그다음 연주자들이 돌아가며 즉흥연주(솔로)를 펼친 뒤, 마지막에 다시 주제 멜로디로 돌아와 곡을 마무리하는 가장 흔한 재즈 연주 형식이다. 운동회에서 처음에 다 같이 부르는 교가로 시작해, 각자 종목에서 기량을 뽐낸 뒤, 마지막에 다시 교가를 부르며 마치는 것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