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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t Baker

쳇 베이커 (1929–1988)

적게 불고 오래 남긴 트럼펫, 그리고 귓가에 대고 말하듯 부른 노래.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오클라호마 예일 출생글렌데일 성장13세 트럼펫2. 입문베를린 군악대찰리 파커 발탁3. 전성멀리건 사중주다운비트 1위쳇 베이커 싱스4. 유랑트바르직의 죽음루카 수감유럽 추방5. 재기이 손상과 의치길레스피의 도움CTI 재기작6. 말년유럽 순회 녹음하노버 마지막 공연암스테르담 추락사베이커1929–1988쿨 재즈의 얼굴, 속삭이는 트럼펫과 노래로 남…
무대의 여정 🧭🗺️
N미국예일1929–1940로스앤젤레스1940–1959뉴욕1973–1975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함께한 사람들 ⏳🌊

  • 가족베라 베이커

    어머니로, 어린 아들을 노래 대회에 데려가는 등 그의 노래를 일찍부터 북돋운 것으로 전해진다.

  • 스승찰리 파커

    1952년 오디션에서 무명의 베이커를 골라 서부 공연에 세워 그의 이름을 처음 알렸다.

  • 동료제리 멀리건

    피아노 없는 사중주를 함께 이끌며 쿨 재즈의 대표 소리를 만들었고, 1974년 카네기홀에서 다시 만났다.

  • 후원리처드 보크

    퍼시픽 재즈 레이블을 세워 멀리건 사중주와 그의 첫 노래 음반을 냈다.

  • 경쟁마일스 데이비스

    베이커가 영향을 숨기지 않은 선배였으나, 1953년 독자 투표에서 베이커에게 밀린 일을 두고두고 불편해했다.

  • 우정디지 길레스피

    1973년 무너진 베이커를 뉴욕 클럽에 추천해 재기의 길을 열어 주었다.

YouTube에서 2곡 이어 듣기 ↗

I. 오클라호마의 소년 · 1929–1946 (0–17세)

(예일) 1929년 12월, 미국 오클라호마주 예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체스니 헨리 베이커 주니어였다. 아버지 체스니 시니어는 기타와 밴조를 연주하던 직업 음악가였다. 어머니 베라는 향수 공장에서 일하며 살림을 거들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태어나기 두 달 전 뉴욕 증권시장이 무너졌다. 대공황과 모래 폭풍이 덮친 오클라호마에서 아버지는 음악만으로 가족을 부양하기 어려웠다. (글렌데일) 1940년 가족은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옮겨, 로스앤젤레스 북쪽의 글렌데일에 자리 잡았다. 소년은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했다. 어머니가 아들을 아마추어 노래 대회에 데려가곤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아버지는 처음에 트롬본을 사 주었다. 그러나 몸집이 작은 아이가 다루기 버거워하자 트럼펫으로 바꿔 주었다. 열세 살 무렵이었다. (귀) 중학교 밴드에서 악기를 배웠지만 악보 읽기는 끝내 능숙해지지 않았다. 대신 라디오와 음반에서 들은 가락을 귀로 외워 불었다. 화려한 스윙 트럼펫 주자 해리 제임스를 흉내 냈다고 그는 회고했다. 학교 공부에는 흥미가 적었다. 1946년 열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육군에 입대했다. 화성 이론을 몰라도 코드의 울림을 들으며 가락을 짓던 그의 평생의 방식은 이 시절 귀로 익힌 습관에서 비롯됐다.

II. 베를린에서 버드까지 · 1946–1952 (17–23세)

(베를린) 입대한 그는 서베를린에 주둔한 제298 군악대에 배치됐다. 미군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스탠 켄턴 악단의 음악과 디지 길레스피의 비밥을 들으며 새로운 재즈에 눈떴다. 1948년 제대한 뒤에는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엘카미노 칼리지에서 화성과 음악 이론을 공부했다. 그러나 오래 다니지 않고 클럽의 즉석 합주(잼 세션)로 발길을 돌렸다. (샌프란시스코) 1950년 다시 입대해 샌프란시스코 프레시디오의 제6군 군악대에 들어갔다. 밤이면 블랙호크와 밥 시티 같은 클럽을 찾아 연주했다. 군대의 규율은 그와 맞지 않았다. 그는 군 생활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아 제대했다. 이후 로스앤젤레스의 클럽 무대에서 일거리를 찾았다. (파커) 1952년 봄, 찰리 파커가 로스앤젤레스에 와서 서부 공연에 함께할 트럼펫 주자를 찾았다. 틱퍼니 클럽의 오디션에는 이름난 연주자들이 몰렸다. 파커는 그중에서 갓 스물을 넘긴 베이커를 골랐다. 파커가 동부로 돌아가 길레스피와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서부에 조심해야 할 젊은 백인 트럼펫 주자가 있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 일화는 유명하지만 출처가 분명하지 않고, 주로 베이커 자신이 전한 이야기로 남아 있다. 파커와 함께한 몇 주는 그에게 비밥의 어법을 몸으로 익히는 시간이었다. 동시에 그는 무명의 신인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연주자가 됐다.

III. 피아노 없는 사중주 · 1952–1955 (23–26세)

(멀리건) 1952년 여름, 그는 바리톤 색소폰 주자이자 편곡자인 제리 멀리건과 할리우드의 작은 클럽 헤이그에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편성은 트럼펫과 바리톤 색소폰에 베이스, 그리고 치코 해밀턴의 드럼이었다. 피아노 없이 두 관악기가 서로의 가락 아래위로 얽히며 화음을 대신했다. 두 가락을 동시에 엮는 이 짜임(대위법)은 새로웠다. 프로듀서 리처드 보크가 막 세운 퍼시픽 재즈 레이블에서 낸 음반도 잘 팔렸다. 차분하고 절제된 서부의 재즈(쿨 재즈, 웨스트코스트 재즈)의 얼굴이 이렇게 생겨났다. (갈림길) 사중주는 1년을 채우지 못했다. 1953년 멀리건이 마약 혐의로 수감되면서 끝났고, 그 전에 베이커가 보수 인상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해 둘 사이가 틀어졌다고도 전해진다. 베이커는 피아니스트 러스 프리먼과 자신의 사중주를 꾸렸다. 그해 다운비트 독자 투표에서는 마일스 데이비스와 클리퍼드 브라운을 제치고 트럼펫 부문 1위에 올랐다. 데이비스는 훗날 자서전에서 베이커가 자신의 스타일을 따라 했는데 평가는 더 받았다며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베이커도 데이비스의 영향을 숨기지 않았다. (노래) 단정한 외모 덕에 할리우드의 관심도 받아, 1955년 영화 「헬스 호라이즌」에 배우로 출연했다. 1954년 보크는 그의 노래를 음반으로 냈다. 떨림(비브라토)을 거의 쓰지 않고 마이크 가까이에서 속삭이듯 부르는 노래였다. 평론가와 동료의 반응은 엇갈렸지만 청중은 열광했다. 이 무렵 그는 헤로인을 쓰기 시작했다. 이 중독은 이후 30여 년 동안 그의 삶의 방향을 좌우했다.

♪마이 퍼니 밸런타인 (My Funny Valentine)1952 (23세)실황 Chet Baker (트럼펫) · 1959 토리노

제리 멀리건 사중주 시절의 연주 녹음으로, 스물두 살의 베이커를 단번에 서부 재즈의 얼굴로 만든 곡이다. 이후 36년 동안 그는 이 노래를 수없이 다시 불고 불렀다.

  • 베이커는 선율을 거의 꾸미지 않고 중음역에서 담담하게 분다. 떨림(비브라토)을 아끼고 음을 길게 끌다가 조용히 놓는다. 이 프레이징은 이후 평생 그의 서명이 됐다.
  • 멀리건의 바리톤 색소폰은 주선율 아래에서 느린 맞선율을 그어 피아노가 맡았을 화음의 몫을 나눠 진다. 두 관악기가 겹쳤다 갈라지는 자리를 따라가면 피아노 없는 편성이 어떻게 소리를 채우는지 들린다.
  • 치코 해밀턴은 스틱 대신 철사 솔(브러시)로 북면을 쓸듯이 쳐서 박을 아주 가볍게 띄운다. 베이스는 화음의 바닥음을 또박또박 짚는다. 리듬 섹션이 한 걸음 물러서 있어 관악기의 숨소리까지 가까이 들린다.
  • 3분 남짓한 짧은 녹음이다. 화려한 즉흥 솔로보다 이미 있는 노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심이다. 이 곡이 실린 음반의 성공으로 리처드 보크의 퍼시픽 재즈는 신생 레이블에서 서부 재즈의 중심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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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베이커 싱스 (Chet Baker Sings)1954 (25세)노래 「Time After Time」 — Chet Baker

평론가와 동료들이 고개를 갸웃했던 그의 노래는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오늘날 그의 가장 오래 사랑받는 음반이 됐다.

  • 목소리에 떨림이 거의 없고 음역도 좁다. 마이크 바로 앞에서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네듯 부르는 화법이다. 이 창법이 훗날 브라질 보사노바 가수들, 특히 주앙 지우베르투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언급된다.
  • 노래가 끝나면 그는 같은 곡을 트럼펫으로 이어 분다. 노래에서 쓴 음역과 숨결이 트럼펫에서도 거의 그대로 이어져, 두 소리가 한 사람의 같은 목소리처럼 들린다.
  • 러스 프리먼의 피아노는 화음을 짧게 끊어 넣으며 가수의 숨 쉴 자리를 비워 둔다. 「But Not for Me」처럼 빠른 곡에서는 박의 뒷부분을 살짝 끌며 밀고 당기는 느낌(스윙)이 가볍게 살아난다. 「I Fall in Love Too Easily」처럼 느린 곡에서는 거의 멈춘 듯이 가라앉는다.
  • 처음에는 짧은 10인치 음반으로 나왔다. 1956년 곡을 더한 12인치 음반으로 다시 나왔고, 오늘날 흔히 듣는 것은 이 확장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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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파리의 가을 · 1955–1959 (26–30세)

(유럽) 1955년 가을 그는 사중주를 이끌고 유럽 순회에 나섰다. 함께 간 보스턴 출신의 젊은 피아니스트 딕 트바르직이 그해 10월 파리의 숙소에서 헤로인 과다 투여로 숨졌다. 스물네 살이었다. 공연과 녹음은 이어졌다. 그러나 이 죽음이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고 주변 사람들은 회고했다. 같은 약에 손대고 있던 그에게 이 일은 경고였지만 습관을 끊게 하지는 못했다. (귀국) 1956년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마약 관련 체포가 잇따랐고, 짧은 수감도 겪었다. 공연과 녹음으로 번 돈의 상당 부분이 약값으로 나갔다. 그래도 퍼시픽 재즈에서 「Chet Baker & Crew」 같은 음반을 꾸준히 냈다. 무대 위의 그는 여전히 젊은 스타였다. 그러나 앞서 대중을 사로잡았던 소년 같은 이미지와 실제 삶 사이의 거리는 점점 벌어졌다. (뉴욕) 1958년 무렵 그는 뉴욕으로 무대를 옮겨 리버사이드 레이블의 프로듀서 오린 킵뉴스와 일했다. 빌 에번스, 페퍼 애덤스, 폴 체임버스와 함께 느린 노래(발라드)만 모은 음반 「Chet」를 녹음했다. 같은 해 시카고에서는 스탄 게츠와 「Stan Meets Chet」을 녹음했다. 두 사람은 쿨 재즈를 대표하는 백인 연주자로 자주 함께 묶였지만, 서로 편한 사이는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1959년 그는 미국을 떠나 이탈리아로 갔다.

♪쳇 (Chet)1959 (30세)

뉴욕으로 무대를 옮긴 뒤 오린 킵뉴스의 리버사이드에서 녹음한 발라드 음반이다. 마약과 체포로 흔들리던 시기에 나온 가장 고요한 음악 가운데 하나다.

  • 노래 없이 느린 곡만 모은 음반이다. 첫 곡 「Alone Together」부터 음을 많이 쏟아 내기보다 한 음을 얼마나 오래 머금는지를 들으면 좋다.
  • 빌 에번스는 화음의 음들을 쌓는 방식(보이싱)을 세심하게 고른다. 그 피아노는 같은 시기 마일스 데이비스와 녹음한 「Kind of Blue」의 울림과 닮아, 두 음반을 이어 들으면 비교가 된다.
  • 페퍼 애덤스의 바리톤 색소폰, 허비 맨의 플루트, 케니 버렐의 기타가 곡마다 번갈아 들어와 색을 바꾼다. 다른 악기의 솔로가 끝나고 트럼펫이 돌아오는 순간의 대비가 이 음반의 짜임이다.
  • 폴 체임버스의 베이스는 아주 느린 템포에서도 박을 단단히 붙잡는다. 그래서 솔로가 느슨하게 떠도는 것처럼 들려도 음악이 흩어지지 않는다.

V. 루카의 감옥 · 1959–1964 (30–35세)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그를 반겼다. 1959년 밀라노에서 현악 오케스트라와 「Chet Baker with Fifty Italian Strings」를 녹음했다. 이탈리아 영화에 얼굴을 비추며 연주하기도 했다. 청중에게 그는 미국에서 온 멋진 재즈 스타였다. 연주와 노래 모두 환대받았고, 그 역시 이탈리아의 생활과 언어에 정을 붙였다. (루카) 1960년 여름, 그는 토스카나의 도시 루카에서 마약 관련 혐의로 체포됐다. 재판은 이탈리아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그는 유죄 판결을 받아 1년 넘게 루카 교도소에서 지냈다. 그 사이 연주 활동은 멈췄다. 1961년 출소한 그는 다시 무대로 돌아왔지만, 서른을 넘긴 그의 이름에는 이미 마약과 수감의 기록이 따라다녔다. (추방) 1962년 로마에서 녹음한 음반 「Chet Is Back!」은 제목대로 그의 귀환을 알렸다. 이탈리아어로 부른 노래 음반도 냈다. 그러나 이후 몇 해 동안 서독과 영국 등지에서 마약 문제로 체포되거나 추방되는 일이 이어졌다. 유럽에서 머물 자리는 점점 줄었다. 그는 결국 1964년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탈리아 시절 녹음에는 현악의 넉넉한 울림과 함께 고단한 생활의 흔적이 섞여 있다. 평론가들은 이 시기를 그의 음악이 젊은 날의 매끈함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때로 보기도 한다.

VI. 잃어버린 이 · 1964–1975 (35–46세)

(플뤼겔호른) 미국으로 돌아온 뒤 그는 한동안 트럼펫보다 소리가 둥글고 부드러운 플뤼겔호른을 즐겨 불었다. 1965년에는 프레스티지 레이블에서 테너 색소폰 주자 조지 콜먼 등과 며칠 동안 많은 곡을 몰아 녹음해 여러 장의 음반으로 나눠 냈다. 녹음이 많았던 것은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 196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는 폭행을 당해 이를 크게 다쳤다. 경위는 이야기마다 엇갈린다. 그 자신은 마약을 구하려다 시비가 붙어 맞았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의치를 해 넣어야 했다. 관악기 주자에게 입술과 이의 조합(앙부셔)은 소리의 근본이었다. 그는 몇 해에 걸쳐 그것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 그동안 생계를 위해 주유소에서 일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는 헤로인 대체 치료제인 메타돈 처방을 받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가장 낮은 곳을 지나던 시기였다. 그는 생전에 세 번 결혼해 자녀를 두었다. (재기) 1973년 디지 길레스피가 클럽 주인들에게 그를 추천해 뉴욕 무대에 다시 설 수 있게 도왔다. 1974년 크리드 테일러의 CTI 레이블에서 낸 「She Was Too Good to Me」는 재기의 신호가 됐다. 같은 해 11월에는 카네기홀에서 제리 멀리건과 재결합 공연을 열었다. 고음은 예전만 못했다. 대신 중음역에 머무는 짧고 여린 프레이징에는 상처를 거친 사람의 무게가 실렸다는 평이 따랐다.

♪쉬 워즈 투 굿 투 미 (She Was Too Good to Me)1974 (45세)

이를 잃고 몇 해를 보낸 뒤 크리드 테일러의 CTI에서 낸 재기작이다. 다시 만든 입술로 부는 트럼펫에는 젊은 날과 다른 무게가 실렸다.

  • 크리드 테일러가 제작하고 돈 서배스키가 현악과 관악 편곡을 맡았다. 매끈하게 다듬은 반주 위에서도 베이커의 트럼펫은 장식 없이 앞에 선다.
  • 고음 대신 중음역에 머물며 짧은 구절을 조심스럽게 잇는다. 이것이 의치에 맞춰 새로 익힌 입술(앙부셔)의 한계이자 새 표현으로 들린다.
  • 몇 곡에서는 옛 서부 재즈 동료 폴 데즈먼드의 알토 색소폰이 들어온다. 둘 다 가늘고 맑은 음색이어서, 나란히 놓이면 1950년대 쿨 재즈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 론 카터의 베이스와 스티브 개드의 드럼은 1970년대다운 단단하고 또렷한 박을 깐다. 1950년대 브러시 드럼 시절과는 다른 바닥 위에서 그가 노래하는 셈이다. 타이틀곡에서는 직접 노래도 부른다.

VII. 암스테르담의 봄 · 1975–1988 (46–59세)

(유랑) 1975년 이후 그는 삶의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냈다. 정해진 집 없이 기차와 자동차로 도시를 옮겨 다니며 클럽과 축제에서 연주했다. 덴마크의 스티플체이스, 독일의 엔야 같은 작은 레이블에 엄청난 양의 녹음을 남겼다. 그는 인세 계약보다 녹음 당일 현금으로 받는 일시불을 택하는 일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음반 수에 비해 손에 남는 돈은 적었다. (교류) 1983년 영국 가수 엘비스 코스텔로의 노래 「Shipbuilding」에 트럼펫 솔로로 참여해 록 청중에게도 이름이 알려졌다. 같은 해에는 스탄 게츠와 스칸디나비아 순회에 나섰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갈등 끝에 베이커가 도중에 빠졌다고 전해진다. 1987년에는 일본 순회공연을 했다. 이 무렵 사진가 브루스 웨버가 그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Let's Get Lost」를 찍었다. 영화 속 그의 얼굴에 새겨진 깊은 주름은 젊은 날의 사진과 나란히 놓이며 오래 회자됐다. 그 얼굴을 두고 빅스 바이더벡 이후 가장 서정적인 백인 트럼펫 주자라는 오래된 수식도 다시 불려 나왔다. (죽음) 1988년 4월 그는 독일 하노버에서 방송 빅밴드, 오케스트라와 함께 큰 공연을 열었다. 2주 남짓 지난 5월 13일 새벽, 암스테르담의 프린스 헨드릭 호텔 앞 길바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층 창문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몸에서는 헤로인과 코카인이 검출됐다. 네덜란드 경찰은 사고사로 결론지었다. 쉰여덟 살이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근교 잉글우드의 묘지에 묻혔다. 호텔 벽에는 지금 그를 기리는 작은 명판이 붙어 있다.

♪더 터치 오브 유어 립스 (The Touch of Your Lips)1979 (50세)

유럽을 떠돌던 시절 덴마크의 스티플체이스에 남긴 녹음이다. 작은 레이블과 작은 편성 속에서 그의 말년 음악이 가장 내밀해졌다.

  • 드럼 없이 트럼펫, 기타, 베이스 셋이 연주한다. 박을 지키는 일은 닐스헤닝 외르스테드 페데르센의 베이스가 거의 혼자 떠맡는다. 그 베이스가 솔로와 대화하듯 가락을 주고받는 대목을 들어 볼 만하다.
  • 더그 레이니의 기타는 피아노보다 화음을 엷게 깔아 트럼펫이 숨 쉴 공간을 넓게 남긴다. 악기가 적은 만큼 음과 음 사이의 침묵도 음악의 일부가 된다.
  • 1950년대의 매끈한 음색 대신 바람 소리가 섞인 음과 일부러 비운 쉼표가 늘었다. 화려함을 덜어 낸 대신 한 음 한 음이 더 무겁게 들린다.
  • 타이틀곡에서 50대가 된 그의 목소리는 젊은 날보다 낮고 거칠어졌다. 그래도 말하듯 부르는 화법은 그대로다.
♪마이 페이버릿 송스: 더 라스트 그레이트 콘서트 (My Favourite Songs: The Last Great Concert)1988 (59세)

세상을 떠나기 2주 남짓 전 하노버에서 독일 방송 빅밴드,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공연 실황이다. 평생 불러 온 노래들을 마지막으로 큰 편성에 실었다.

  • 「My Funny Valentine」이 현악을 포함한 오케스트라 반주로 길게 이어진다. 1952년의 3분짜리 연주와 이어 들으면 같은 노래 위로 지나간 36년이 들린다.
  • 큰 악단(빅밴드)과 작은 편성의 곡이 번갈아 나온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1959년에 녹음한 「All Blues」 같은 곡도 포함돼, 두 트럼펫 주자의 오랜 인연을 떠올리게 한다.
  • 음량이 큰 악단 앞에서도 그는 소리를 키우지 않는다. 편곡자들은 트럼펫이 묻히지 않게 반주를 물리고 비우는 방식으로 그의 작은 소리에 맞췄다.
  • 독일 방송국이 녹음해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음반으로 나왔다. 그래서 흔히 그의 마지막 큰 공연으로 불린다.

덜 알려진 이야기

그는 회고록을 쓰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1960년대 초 유럽 시절까지를 직접 적은 원고였는데, 생전에는 책으로 나오지 않았다. 세상을 떠난 뒤 유족이 보관하던 원고가 1997년 「As Though I Had Wings: The Lost Memoir」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야기가 1960년대 초에서 끊겨 있어 미완의 기록이다. 다큐멘터리와 전기가 쌓아 올린 비극적 이미지와 달리, 원고 속의 그는 무엇보다 자동차와 연주와 길 위의 생활을 신이 나서 이야기한다. 1950년대의 사건들을 본인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드문 자료지만, 출간이 늦어 전기 작가들 사이에서만 주로 인용돼 왔다. 1955년 파리의 녹음에는 덜 알려진 실험이 담겨 있다. 함께 간 피아니스트 딕 트바르직은 작곡가 밥 지프의 곡들을 레퍼토리로 가져왔다. 지프의 곡은 당시 재즈로서는 화성이 낯설고 복잡했다. 악보에 서툴렀던 베이커가 이 곡들을 녹음했다는 사실은 그가 귀에만 기대 쉬운 노래만 불렀다는 통념과 결이 다르다. 이 녹음은 트바르직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가려 오래 주목받지 못했다. 그는 배우이기도 했다. 1955년 할리우드 영화 「헬스 호라이즌」에 출연했고, 1960년 무렵에는 이탈리아 영화들에 연주자로 얼굴을 비쳤다. 할리우드가 그를 제2의 제임스 딘처럼 키우려 했다는 이야기가 오래 따라다녔지만, 남은 필모그래피는 몇 편에 그친다. 그의 인생이 다큐멘터리로 더 유명해지면서 이 짧은 배우 이력은 대개 각주로만 남았다.

용어 노트 📚🔎

쿨 재즈

(말뜻) 영어 cool 은 본래 서늘하다는 뜻이지만, 1940년대 미국 흑인 음악가들의 속어로는 침착하고 멋지다는 뜻으로 쓰였다.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고 차분하다는 느낌이 이름에 담겨 있다. (재즈에서) 1950년 전후에 나타난 재즈의 한 흐름이다. 빠르고 격렬한 비밥에 비해 템포를 누그러뜨리고, 음색을 부드럽게 하고, 편곡을 정갈하게 다듬었다. 운동장에서 목청껏 외치는 응원이 비밥이라면, 옆 친구에게 낮은 목소리로 차분히 이야기하는 것이 쿨 재즈에 가깝다. 같은 마음을 전해도 말투가 다르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쿨하다고 하면 뒤끝 없이 시원시원하다는 뜻으로 쓴다.

웨스트코스트 재즈

(말뜻) 웨스트코스트는 미국의 서쪽 해안, 곧 캘리포니아 일대를 가리킨다. (재즈에서) 1950년대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활동한 연주자들의 재즈를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쿨 재즈의 차분함을 이어받으면서 편곡과 짜임새를 중요하게 여겼다. 할리우드 영화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연주자도 많았다. 같은 축구라도 지역마다 즐겨 쓰는 전술이 다른 것과 비슷하다. 뉴욕의 재즈가 몸싸움이 많은 빠른 공격이라면, 서부의 재즈는 패스를 정교하게 주고받는 쪽이었다.

피아노리스 쿼텟

(말뜻) 피아노가 없는(piano-less) 사중주(quartet), 곧 네 사람이 피아노 없이 연주하는 편성이라는 뜻이다. (재즈에서) 재즈 밴드에서 피아노는 보통 화음을 깔아 주는 바닥 역할을 한다. 제리 멀리건과 베이커의 사중주는 이 피아노를 빼고 트럼펫, 바리톤 색소폰, 베이스, 드럼만으로 연주했다. 두 관악기가 서로 다른 가락을 동시에 불어 화음을 대신 만들었고, 그 빈자리 덕분에 소리가 가볍고 투명해졌다. 피구에서 공을 받아 줄 친구가 적으면 남은 사람들이 더 넓게 움직이며 빈 공간을 채워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대위법

(말뜻) 대위(對位)는 마주 대하는(對) 자리(位)라는 뜻이다. 영어 counterpoint 의 라틴어 뿌리 punctus contra punctum 은 음표에 맞서는 음표라는 뜻이다. 한 가락의 음에 다른 가락의 음을 마주 세운다는 생각이 이름에 들어 있다. (재즈에서)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가락을 동시에 울리면서도 둘이 잘 어울리게 엮는 작곡과 연주의 기술이다. 멀리건 사중주에서는 트럼펫이 주선율을 불 때 바리톤 색소폰이 아래에서 다른 가락을 그어 화음을 만들었다. 두 친구가 서로 다른 노래를 동시에 부르는데도 신기하게 잘 어울리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이 대위법의 원리다. (다른 데서는) 문학이나 영화에서 두 이야기 줄기를 나란히 엮어 서로를 비추게 하는 구성을 가리킬 때도 이 말을 빌려 쓴다.

비브라토

(말뜻) 이탈리아어 vibrare(떨다, 흔들다)에서 나온 말로, 떨림이라는 뜻이다. (재즈에서) 음을 길게 낼 때 음높이나 세기를 아주 조금씩 빠르게 흔들어 물결치게 하는 표현이다. 많이 쓰면 소리가 풍성하고 감정적으로 들리고, 적게 쓰면 맑고 담백하게 들린다. 베이커는 트럼펫에서도 노래에서도 이 떨림을 거의 쓰지 않아 곧고 여린 소리를 냈다. 노래방에서 끝음을 꺾고 떨며 부르는 친구와 한 음을 곧게 뻗어 부르는 친구를 떠올리면 차이를 알 수 있다.

앙부셔

(말뜻) 프랑스어 embouchure 는 입(bouche)을 대는 곳이라는 뜻이다. (재즈에서) 관악기를 불 때 입술, 이, 얼굴 근육을 마우스피스에 맞추는 방식과 그 근육의 단련된 상태를 말한다. 트럼펫 주자에게는 소리의 높이, 음색, 지구력이 모두 여기서 결정된다. 베이커는 1966년 이를 잃고 의치를 한 뒤 이것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했다. 리코더나 단소를 불 때 입술 모양을 조금만 바꿔도 소리가 확 달라지거나 아예 안 나는 경험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다른 데서는) 프랑스어로는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는 어귀, 곧 하구를 뜻하기도 한다.

플뤼겔호른

(말뜻) 독일어 Flügel(날개)과 Horn(뿔나팔)이 합쳐진 말이다. 옛날 사냥이나 군대에서 대열의 양 날개 쪽에 신호를 보내던 나팔에서 이름이 왔다고 알려져 있다. (재즈에서) 트럼펫과 생김새와 연주법이 비슷하지만 관이 더 굵고 넓어서 소리가 둥글고 부드러운 금관악기다. 트럼펫이 또렷하고 반짝인다면 플뤼겔호른은 따뜻하고 흐릿하다. 같은 말을 확성기로 하느냐, 손을 오므려 입에 대고 하느냐의 차이와 비슷하다. 베이커는 1960년대 중반 이 악기를 즐겨 불었다.

발라드

(말뜻) 춤추다라는 뜻의 라틴어 ballare 에서 나와, 본래는 춤에 맞춰 부르던 노래를 가리켰다. (재즈에서) 느린 템포로 정서를 깊게 드러내는 노래나 연주를 말한다. 빠른 곡에서는 음을 많이 쏟아 내는 기교가 돋보인다면, 발라드에서는 한 음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섬세하게 다루는지가 중요하다. 달리기 시합에서는 속도를 겨루지만 줄넘기 대신 천천히 균형을 잡는 요가 동작에서는 버티는 힘과 섬세함이 드러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문학에서는 이야기를 담은 짧은 시(담시)를 가리키고, 한국 대중가요에서는 느리고 서정적인 사랑 노래를 흔히 발라드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