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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Schumann

로베르트 슈만 (1810–1856)

"여러분, 모자를 벗으시오, 천재요." — 무명이던 쇼팽을 처음 알아보며 잡지에 남긴 말이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독일 츠비카우 출생서적상의 아들이른 아버지 상실2. 방황법학에서 음악으로비크 문하 수련손가락 부상3. 비평가새 음악 신문 창간쇼팽을 알아보다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4. 사랑클라라와 법정 다툼1840년 결혼가곡의 해5. 절정교향곡의 해여덟 자녀드레스덴 혁명6. 말년브람스를 발견하다라인강 투신엔데니히에서 별세슈만1810–1856법학도에서 낭만주의 가곡과 교향곡의 목소리를 …
삶의 여정 🧭🗺️
N독일츠비카우1810–1828라이프치히1828–1844드레스덴1844–1850뒤셀도르프1850–1854본(엔데니히)1854–1856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아우구스트 슈만

    서적상이자 출판업자로, 아들에게 문학적 소양과 초기 출판 경험을 물려주었다.

  • 스승프리드리히 비크

    피아노를 가르친 스승이었으나, 훗날 딸 클라라와의 결혼을 법정 다툼까지 벌이며 반대했다.

  • 가족클라라 슈만

    아내이자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평생에 걸쳐 남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알렸다.

  • 우정펠릭스 멘델스존

    라이프치히에서 가까이 지내며 서로의 음악을 존중했고, 교향곡 1번을 초연 지휘했다.

  • 영향프레데리크 쇼팽

    무명에 가깝던 그의 작품을 듣고 평론으로 세상에 소개해 유럽 음악계에 알렸다.

  • 우정요하네스 브람스

    말년에 찾아온 젊은 작곡가로, '새로운 길'이라는 글을 써 그의 재능을 세상에 알렸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츠비카우의 소년 · 1810–1828 (0–18세)

(출생) 1810년 6월, 작센 왕국(오늘날 독일) 츠비카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아우구스트 슈만은 서적상이자 출판업자였고, 바이런과 월터 스콧의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해 낼 만큼 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어머니 요한나 크리스티아네는 외과의사의 딸이었다. 로베르트는 다섯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고, 집 안에는 늘 책과 인쇄물이 쌓여 있었다. (문학) 어린 시절부터 음악보다 문학에 먼저 이끌렸다. 여섯 살 무렵부터 시와 희곡을 흉내 내어 썼고, 급우들과 함께 문학 동인을 만들어 낭독회를 열었다. 아버지는 이런 재능을 적극적으로 북돋아 아들이 쓴 글을 인쇄해 주기도 했다. 피아노는 일곱 살 무렵 지역 오르간 연주자에게 배우기 시작했지만, 당시로서는 여러 취미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상실) 1826년, 열여섯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죽음은 집안의 경제적 기반을 흔들었고, 어머니는 음악보다 안정된 직업을 원해 아들에게 법학 공부를 권했다. 로베르트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 했지만, 이 무렵 일기에는 이미 음악에 대한 갈망과 법학에 대한 무관심이 뒤섞여 나타난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은 훗날 그의 음악 공부를 뒷받침하는 밑천이 되었다.

II. 라이프치히와 비크 · 1828–1830 (18–20세)

(입학) 1828년 라이프치히 대학에 법학도로 입학했다. 그러나 강의보다 술집과 음악회, 도서관을 더 자주 찾았고,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법학에 대한 불만이 점점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이 시기 라이프치히에서 하숙하며 피아노 교사 프리드리히 비크를 찾아가 개인 지도를 받기 시작했다. (비크) 비크는 엄격하고 야심 찬 교육자로, 자신의 딸 클라라를 어린 나이부터 혹독하게 훈련시켜 신동 피아니스트로 키우고 있었다. 로베르트가 비크의 집을 드나들던 무렵 클라라는 아직 아홉 살의 소녀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때 시작되었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훗날 십 년에 걸친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리라고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전환) 1829년 하이델베르크로 옮겨 계속 법학을 공부하는 척했지만 마음은 이미 음악에 가 있었다. 1830년, 파가니니의 연주를 직접 듣고 나서 결심이 굳어졌다.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 법학을 그만두고 음악가의 길을 걷게 해 달라고 간청했고, 비크에게 자신을 봐 달라고 부탁했다. 비크는 조건부로 동의했고, 로베르트는 라이프치히로 돌아와 비크의 집에 입주하며 하루 여러 시간씩 건반을 두드리는 생활을 시작했다.

III. 손가락의 상처 · 1830–1834 (20–24세)

(부상) 비크의 집에 살며 최고의 비르투오소가 되겠다는 야심으로 훈련에 몰두했다. 그러나 1831년 무렵부터 오른손, 특히 넷째 손가락에 마비 증세가 나타났다. 손가락 힘을 따로 강화하려고 고안한 기계 장치를 쓰다가 다쳤다는 이야기가 오래 전해졌으나, 정확한 원인은 지금도 분명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이 부상으로 연주자로서의 미래가 영영 닫혔다는 사실이다. (전향) 피아니스트의 꿈이 꺾이자 작곡과 비평으로 방향을 돌렸다. 1834년에는 동료들과 함께 음악 잡지 '음악을 위한 새 신문'을 창간해 편집을 맡았다. 그는 이 잡지에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라는 가상의 필명을 내세워 글을 썼는데, 전자는 충동적이고 열정적인 자아를, 후자는 사색적이고 내성적인 자아를 대변했다. 이 이중의 인격은 그의 음악에도 그대로 새겨졌다. (쇼팽) 이에 앞서 1831년, 그는 무명에 가깝던 폴란드 청년 프레데리크 쇼팽의 '돈 조반니' 주제 변주곡을 듣고 라이프치히의 '일반 음악 신문'에 "여러분, 모자를 벗으시오, 천재요"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찬사를 썼다. 이 한 문장은 쇼팽을 유럽 음악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슈만 자신이 낡은 형식보다 새로운 목소리를 알아보는 비평가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1834년 무렵에는 제자 에르네스티네 폰 프리켄과 짧게 약혼했으나 이내 파혼했다.

♪나비 (파필리온) Op. 21831 (21세)실황 Vladimir Ashkenazy (피아노) · 1985

장 파울의 소설 속 가면무도회를 음악으로 옮긴 초기작으로, 훗날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로 나뉠 이중적 자아의 예고편과도 같다.

  • 마지막 곡에서 시계가 여섯 번 울리고 촛불이 하나씩 꺼지듯 음악이 잦아드는 대목 — 가면무도회의 끝과 새벽을 그린 장면으로 알려져 있다.
  • 옛 독일 민속 춤곡 '할아버지의 춤'(그로스파터탄츠) 선율이 슬쩍 끼어드는 순간 — 훗날 '카르나발'에도 다시 등장하는 옛것과 새것의 부딪힘이다.
  • 열두 개의 짧은 장면이 그림책을 빠르게 넘기듯 이어진다 — 한 곡이 끝나자마자 분위기가 확 바뀌는 지점들을 놓치지 말고 들어 볼 것.
  • 느린 왈츠풍으로 시작하는 첫 주제가 마지막에 변형되어 되돌아오는 대목은, 무도회를 여닫는 문처럼 곡 전체를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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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나발 Op. 91834–1835 (24–25세)실황 Boris Giltburg (피아노) · 2011 루빈스타인 콩쿠르

약혼자 에르네스티네의 고향 이름과 작곡가 자신의 이름 속 음이름을 숨겨 넣은 암호 위에, 자신과 친구들, 쇼팽과 파가니니의 초상을 나란히 그린 가면무도회 모음곡이다.

  • '쇼팽'이라는 제목의 짧은 곡은 쇼팽 특유의 노래하는 왼손 반주와 장식음을 흉내 낸 초상화 — 슈만이 쇼팽의 어법을 얼마나 정확히 포착했는지 비교해 들을 만하다.
  • '파가니니'는 손가락이 빠르게 엇갈리며 튀어 오르는(스타카토) 대목이 이어져, 바이올린의 현란한 기교를 피아노로 옮긴 듯 들린다.
  •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 두 곡은 각각 격정적인 자아와 몽상적인 자아를 그린 자화상으로, 나란히 놓고 들으면 대비가 뚜렷하다.
  • 라(A), 미b(Es), 도(C), 시(H) 네 음으로 이루어진 짧은 음형이 여러 곡에 되풀이해 등장한다 — 약혼자의 고향 마을 이름과 슈만 자신의 이름 철자에서 따온 암호다.
  • 마지막 '다비드 동맹의 행진, 속물들에 맞서'는 진보적 예술가 동맹이 보수적인 속물들을 물리치는 상상 속 행진으로, 피아노가 묵직한 화음과 행진 리듬으로 몰아치는 웅장한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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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클라라를 향한 투쟁 · 1835–1840 (25–30세)

(사랑) 1835년 무렵부터 열여섯 살로 자란 클라라 비크에 대한 감정이 우정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클라라는 이미 유럽을 순회하는 신동 피아니스트로 이름이 높았고, 아버지 비크는 딸의 경력을 관리하는 데 자신의 삶을 걸고 있었다. 비크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아채자 격렬히 반대했고, 가난하고 불안정한 음악가에게 딸을 내줄 수 없다며 만남과 편지 왕래를 막았다. (소송) 두 사람은 비크 몰래 편지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이어 갔고, 끝내 1839년 라이프치히 법원에 결혼 허가를 구하는 소송을 냈다. 비크는 법정에서 로베르트의 성격과 생활 습관을 문제 삼아 딸을 넘길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40년 8월 법원은 두 사람의 결혼을 허가했고, 두 사람은 클라라가 스물한 살이 되기 하루 전인 9월 12일 라이프치히 근교의 교회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다. (가곡) 1840년은 훗날 '가곡의 해'로 불릴 만큼 폭발적으로 노래를 쏟아 낸 해였다. 그는 이 한 해에만 백 곡이 넘는 가곡을 작곡했는데, 오랜 기다림 끝에 사랑을 이룬 감정이 하이네와 샤미소의 시에 실려 흘러나왔다. 그 이전까지 거의 피아노 독주곡만 써 왔던 그가,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목소리를 찾은 것처럼 가곡에 몰두했다.

♪어린이 정경 Op. 151838 (28세)연주 Lang Lang (피아노)

결혼을 앞두고 클라라와 떨어져 지내던 시기,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쓴 작품이다. 아이가 연주할 곡이 아니라 어른이 유년을 돌아보며 쓴 곡이다.

  • 일곱 번째 곡 '트로이메라이'(꿈꾸기)는 이 모음곡 중 가장 유명한 곡으로, 단순하고 노래하는 듯한 선율이 앙코르 곡으로도 자주 연주된다.
  • 전체적으로 밝은 동요풍이 아니라 아련하고 그리운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른의 시선으로 듣는 것이 어울린다.
  • 마지막 곡 '시인은 말한다'는 답을 내지 않은 채 질문하듯 조용히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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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사랑 Op. 481840 (30세)노래 Jonas Kaufmann (테너) · Helmut Deutsch (피아노)

결혼을 이룬 '가곡의 해'에 하이네의 시로 엮은 연가곡으로, 오랜 기다림 끝의 기쁨과 그 이면의 씁쓸함이 함께 담겨 있다.

  • 첫 곡 '아름다운 오월에'는 화음이 딱 맺히지 않고 흔들리는 채로 시작한다 — 아직 확신할 수 없는 새로운 사랑의 설렘과 불안을 함께 그린다.
  • 노래가 끝난 뒤에도 피아노가 홀로 이어지는 후주 대목들, 특히 마지막 곡의 긴 피아노 후주는 가수가 다 하지 못한 감정을 대신 마무리 짓는 듯 들린다.
  • 하이네 특유의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반어(아이러니)가 부드러운 선율과 겹쳐지는 지점들 — 가사와 음악의 온도차를 느끼며 들으면 더 깊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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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작곡가의 절정 · 1841–1849 (31–39세)

(교향곡) 결혼 이듬해인 1841년은 '교향곡의 해'라 불렸다. 나흘 만에 스케치를 마쳤다고 알려진 교향곡 1번을 비롯해 이 시기 주요 관현악 작품들의 골격이 잡혔다. 이 교향곡의 초연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절친한 벗 펠릭스 멘델스존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클라라는 뛰어난 피아니스트로서 남편의 작품을 연주회 프로그램에 자주 올려 알렸고, 두 사람은 서로의 일기장을 공유하며 하루하루의 감정과 작업을 기록했다. (가정) 1841년 첫딸 마리가 태어난 것을 시작으로 부부는 여덟 자녀를 두었다. 클라라는 임신과 출산을 거듭하면서도 연주 활동을 이어 갔고, 로베르트는 살림과 자녀 교육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그러나 한 집에 두 음악가가 있다는 사실은 늘 팽팽한 긴장을 동반했다. 클라라가 순회 연주로 집을 비우면 로베르트는 고립감을 호소했고, 반대로 그가 작곡에 몰두하는 동안 클라라는 자신의 연주 경력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을 감내해야 했다. (드레스덴) 1844년 라이프치히를 떠나 드레스덴으로 옮겼다. 신경쇠약과 불면 증세가 심해져 요양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1849년 5월 드레스덴에서 봉기가 일어나자 거리에 바리케이드가 세워졌고, 부부는 인근 마을 막센으로 몸을 피했다. 이 정치적 격변의 시기에도 괴테의 '파우스트'에 곡을 붙이는 대작업을 이어 갔고, 오페라 '게노페파'와 여러 실내악곡을 이 도시에서 완성했다.

♪교향곡 1번 '봄' Op. 381841 (31세)실황 Philharmonie Südwestfalen · Gerard Oskamp 지휘

결혼 이듬해 나흘 만에 스케치를 마쳤다고 알려진 곡으로, 새로 얻은 행복과 희망이 관현악 전체에 넘쳐흐른다.

  • 곡 첫머리 금관이 외치듯 연주하는 상승하는 신호(팡파르) — 봄을 노래한 시의 한 구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대목이다.
  • 1악장 전체에 걸쳐 리듬이 점점 빨라지고 활력이 붙는 흐름 —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 가는 듯한 속도감을 느끼며 들을 만하다.
  • 친구 멘델스존이 지휘한 초연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곡으로, 오케스트라 전체가 밝고 확신에 찬 어조를 유지하는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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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협주곡 가단조 Op. 541841/1845 (31–35세)연주 Martha Argerich (피아노) · Chailly 지휘

처음엔 클라라를 위한 단악장 환상곡으로 시작해 몇 해 뒤 온전한 협주곡으로 완성되었고, 클라라 자신이 초연을 맡았다.

  • 오케스트라가 짧은 화음을 내리찍자마자 피아노가 내려꽂듯 뛰어드는 도입부 — 협주곡 역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시작 중 하나로 꼽힌다.
  • 느린 2악장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말을 주고받듯 이어지는 대목이 많아, 흔히 '대화하는 악장'으로 불린다.
  • 3악장으로 넘어가며 박자가 미묘하게 어긋나는(당김음) 리듬이 등장한다 — 흥겨우면서도 살짝 불안정하게 들리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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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뒤셀도르프와 브람스 · 1850–1854 (40–44세)

(부임) 1850년 뒤셀도르프시 음악감독으로 부임했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자리였지만 지휘봉을 다루는 데 서툴렀고, 리허설 중 말수가 적어 단원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동시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지휘하면서도 종종 자신의 세계에 빠져든 듯 박자를 놓치곤 했다. 그럼에도 이 시기에 교향곡 3번 '라인'과 첼로 협주곡 등 원숙한 관현악곡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브람스) 1853년 9월, 스무 살의 무명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가 소개장을 들고 슈만 부부를 찾아왔다. 브람스의 연주를 들은 슈만은 곧바로 그 재능을 알아보았고, 자신의 잡지에 '새로운 길'이라는 글을 실어 이 젊은이를 유럽 음악계에 소개했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던 그가 다시 펜을 든 이 평론은 생애 마지막 주요 저술이 되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과도 이 무렵 가까워져 그를 위해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했다. (불안) 그러나 뒤셀도르프에서의 나날은 건강 악화와 맞물려 있었다. 환청과 불안 증세가 점점 심해졌고, 시립 음악 협회는 결국 그에게 지휘봉을 내려놓아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가족의 생계는 갈수록 클라라의 연주 수입에 기대게 되었다. 브람스는 이 무렵부터 슈만 가족과 가까이 지내며 힘든 시기를 함께 견뎠다.

♪교향곡 3번 '라인' Op. 971850 (40세)실황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 Paavo Järvi 지휘

뒤셀도르프에 부임해 라인강 유역에 정착한 직후 쓴 곡으로, 강의 흐름과 쾰른 대성당에서 받은 인상이 음악에 녹아 있다.

  • 4악장은 쾰른 대성당의 장중한 의식에서 받은 인상을 담았다고 전해진다 — 성가풍의 장엄한 금관 화음이 행렬처럼 이어지는 대목을 들어 볼 것.
  • 1악장과 5악장의 넓게 펼쳐지는 현악 주제는 라인강의 유유한 흐름을 연상시킨다는 평이 많다.
  • 전체적으로 관현악 편성이 두껍고 힘차게 울려, 뒤셀도르프 시절 지휘자로서 다루던 대규모 합창·관현악 무대의 경험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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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엔데니히 · 1854–1856 (44–46세)

(투신) 1854년 2월, 환청이 극심해진 그는 한밤중에 집을 나서 라인강에 몸을 던졌다. 어부들에게 구조되어 목숨은 건졌지만, 이 사건 이후 스스로 본 근처의 정신병원 엔데니히에 입원하기를 청했다. 클라라는 의사들의 권고로 거의 이 년 동안 면회를 허락받지 못했고, 브람스가 대신 자주 병원을 찾아 슈만의 상태를 클라라에게 전했다. (가족)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편지와 짧은 악상을 남기며 음악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병세는 회복되지 않았고, 1856년 7월 29일 엔데니히에서 숨을 거두었다. 클라라는 임종 며칠 전에야 면회가 허락되어 남편의 마지막을 지켰다. 여덟 자녀 가운데 몇은 어려서 세상을 떠났고, 살아남은 자녀 중 일부는 이후 음악과 관련된 길을 걷기도 했다. (유산) 클라라는 이후 사십 년 가까이 연주자로 활동하며 남편의 작품을 유럽 곳곳의 무대에 올렸고, 브람스를 비롯한 후배 음악가들과 깊은 우정을 이어 갔다. 슈만이 남긴 가곡과 피아노곡, 교향곡들은 낭만주의 음악의 핵심 어휘가 되었고, 문학과 음악을 함께 사랑했던 그의 정신은 이후 여러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남겼다.

덜 알려진 이야기

부부는 결혼 초기부터 '결혼 일기'라는 공동 노트를 번갈아 써 나갔다. 그 안에는 위대한 예술적 다짐뿐 아니라, 집 안에 피아노가 한 대뿐이라 누가 언제 연습할지를 두고 다투었다는 소소한 기록도 남아 있다. 이런 생활의 결이 남아 있는 이유는 이 일기가 오랫동안 가족 사이에서만 보존되다가 후대 연구자들에게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카르나발'에는 약혼자였던 에르네스티네의 고향 마을 이름 철자와 자신의 이름 철자에서 뽑아낸 네 개의 음이 암호처럼 곳곳에 숨어 있다. 이 암호는 슈만 스스로 '네 음에 의한 작은 장면들'이라는 부제와 악보 속 '스핑크스'로 밝혀 두어, 당대부터 알려져 있었다. 오른손 마비의 정확한 원인은 지금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손가락을 따로 강화하려는 기계 장치 탓이라는 이야기가 오랫동안 정설처럼 퍼졌지만, 이후 전기 작가들은 당시 처방받은 치료법의 부작용일 가능성도 함께 검토해 왔다. 어느 쪽이든 단정할 결정적 증거가 남아 있지 않아, 전기마다 서술이 조금씩 갈린다.

용어 노트 📚🔎

가곡

(말뜻) 노래 가(歌)와 곡조 곡(曲)이 합쳐진 말로, 말 그대로 '노래로 부르는 곡'이라는 뜻이다. 독일어 리트(Lied)도 그냥 '노래'를 뜻하는 평범한 낱말이었지만, 슈베르트와 슈만을 거치며 시와 피아노 반주가 대등하게 어우러지는 예술 장르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굳어졌다. (음악에서) 시 한 편에 곡을 붙여 부르는 짧은 성악곡을 가리킨다. 피아노는 단순히 노래를 받쳐 주는 반주가 아니라, 시의 분위기와 감정을 함께 그려 내는 또 하나의 목소리 역할을 한다. 시를 소리 내어 읽을 때 억양과 속도를 바꿔 감정을 살리듯, 가곡은 그 낭독에 선율과 화음을 입힌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연가곡

(말뜻) 이을 연(連)과 노래 가(歌), 곡조 곡(曲)이 합쳐져 '이어진 노래들'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여러 개의 가곡을 하나의 이야기나 주제로 엮어 순서대로 이어 부르도록 묶은 모음곡을 말한다. 여러 편의 만화가 따로 봐도 되지만 순서대로 읽으면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과 비슷하다. 슈만의 '시인의 사랑'은 실연의 시작부터 체념까지 열여섯 곡이 하나의 감정선을 따라 흘러간다.

교향곡

(말뜻) 함께 향(響)하여 울린다는 뜻의 한자로, 여러 악기가 함께 어우러져 울리는 곡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오케스트라 전체가 연주하는 대규모 기악곡으로, 보통 성격이 서로 다른 네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다. 체육대회의 여러 종목이 이어지며 하나의 대회를 이루듯, 빠른 악장과 느린 악장, 춤곡풍 악장과 활기찬 마지막 악장이 이어지며 하나의 큰 작품을 이룬다.

협주곡

(말뜻) 협주곡(協奏曲)은 함께(協) 연주하는(奏)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콘체르토의 라틴어 뿌리 concertare에는 겨루다라는 뜻도 있어서,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겨루듯 주고받는 이 음악의 성격이 이름에 이미 들어 있다. (음악에서)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독주 악기 하나가 오케스트라 전체와 주고받으며 연주하는 곡이다. 한 사람이 앞에 나서 노래를 부르고 나머지가 화음을 넣어 받쳐 주는 것과 비슷하지만, 협주곡에서는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번갈아 주인공이 된다.

변주곡

(말뜻) 변할 변(變)과 연주할 주(奏), 곡조 곡(曲)이 합쳐져 '주제를 변형시켜 가는 곡'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하나의 주제 선율을 정해 놓고, 리듬이나 화음, 빠르기를 바꿔 가며 여러 번 다르게 변형해 들려주는 곡이다. 같은 이야기를 다른 말투로, 다른 속도로, 때로는 농담처럼 다시 들려주는 것과 비슷하다.

낭만주의

(음악에서) 19세기에 이성과 형식의 균형보다 개인의 감정과 상상력, 문학적 상상을 음악으로 표현하려 했던 흐름을 가리킨다. 정해진 답을 쓰는 수학 문제보다,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 쓰는 일기나 소설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된다. 슈만은 이 흐름의 한가운데서 시와 소설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대로 음악에 옮긴 작곡가였다. (다른 데서는) 낭만주의는 문학과 미술에서도 같은 시기 같은 정신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며, 일상에서 '낭만적'이라는 말은 사랑이나 감성적인 분위기를 뜻하는 가벼운 뜻으로도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