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or Stravinsky
“나는 음악이 그 본질상 무엇도 표현할 힘이 없다고 생각한다.” — 『자서전』(1935)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예카테리나(카탸) 노센코
외사촌이자 첫 아내로 네 자녀의 어머니였고, 남편과 베라의 관계를 알면서도 1939년 숨질 때까지 가정을 지켰다.
- 스승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1902년부터 세상을 떠난 1908년까지 관현악법을 가르친, 아버지 같은 스승이었다.
- 후원세르게이 댜길레프
발레 뤼스의 흥행가로 '불새'부터 '풀치넬라'까지 그를 세계 무대에 세웠고, 두 사람은 베네치아의 같은 섬에 묻혔다.
- 우정클로드 드뷔시
'불새' 초연 뒤 친구가 되어 '봄의 제전'을 함께 쳐 본 선배로, 스트라빈스키는 그를 추모해 '관악기를 위한 교향곡들'을 썼다.
- 가족베라 드 보세
1921년 만난 연인이자 1940년 두 번째 아내로, 화가로 활동하며 그의 마지막까지 곁을 지켰다.
- 경쟁아르놀트 쇤베르크
같은 로스앤젤레스에 살면서도 교류하지 않은 맞수였으나, 그가 죽은 뒤 스트라빈스키는 12음 기법을 받아들였다.
I. 페테르부르크의 소년 · 1882–1901 (0–19세)
(출생) 1882년 6월, 러시아 제국(오늘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의 여름 휴양지 오라니엔바움(오늘날 로모노소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표도르는 마린스키 극장의 이름난 베이스 가수였고 수천 권의 장서를 모은 교양인이었다. 어머니 안나는 성악 반주를 할 만큼 피아노를 쳤다. 로만, 유리, 이고르, 귀리 네 형제 가운데 셋째였다. (냉기) 집안의 공기는 차가웠다. 아버지는 성미가 급했고, 이고르는 부모의 정이 형들에게 더 간다고 느꼈다. 그는 훗날 어린 시절을 모든 것을 내던지고 떠날 수 있는 날을 기다린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마음을 붙인 사람은 독일인 유모 베르타와 동생 귀리였다. 맏형 로만은 1897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극장) 음악의 첫 기억은 극장에서 왔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마린스키 극장 무대 뒤를 드나들었고, 1892년 글린카 오페라 50주년 기념 공연 때 객석의 표트르 차이콥스키를 멀리서 본 일을 평생 간직했다. 아홉 살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즉흥 연주를 즐겼지만, 부모는 음악을 직업으로 여기지 않았다. 1901년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들어갔다.
II.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제자 · 1901–1909 (19–27세)
(스승) 대학에서 사귄 친구 블라디미르는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아들이었다. 1902년 여름 그는 하이델베르크에 머물던 림스키코르사코프를 찾아가 습작을 보였고, 대가는 음악원 대신 개인 지도를 권했다. 그해 말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법학 공부를 이어 가면서 스승의 집에서 매주 관현악법을 배웠고,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는 사람이 되었다. (결혼) 1906년 1월 외사촌 예카테리나(카탸) 노센코와 결혼했다. 정교회 법이 사촌 간 혼인을 막았기에 사정을 캐묻지 않는 사제를 찾아 조용히 식을 올렸다. 어려서부터 서로를 알아 온 카탸는 그의 음악을 깊이 이해한 동반자였다. 1907년 아들 표도르(훗날 화가), 1908년 딸 류드밀라, 1910년 아들 스뱌토슬라프(술리마, 훗날 피아니스트·작곡가), 1914년 딸 밀레나가 태어났다. 여름이면 처가 영지가 있던 볼히니아의 우스틸루크(오늘날 우크라이나)에 손수 지은 집에서 지냈다. (작별) 교향곡 1번을 스승에게 바친 그는 1908년 스승의 딸 결혼을 축하하는 관현악곡 '불꽃놀이'를 썼으나, 그해 6월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스승을 기리는 '장송곡'을 지어 이듬해 초 초연했다. 1909년 2월 '환상적 스케르초'와 '불꽃놀이'가 연주된 음악회 객석에 흥행가 세르게이 댜길레프가 있었다. 댜길레프는 먼저 발레 '레 실피드'에 쓸 프레데리크 쇼팽 피아노곡 두 편의 관현악 편곡을 그에게 맡겼다.
III. 파리의 폭풍 · 1910–1914 (28–32세)
(불새) 댜길레프는 다른 작곡가에게 맡겼다가 진척이 없던 '불새'를 스물일곱 살의 그에게 넘겼다. 1910년 6월 파리 오페라 극장 초연은 대성공이었고, 그는 하룻밤 사이 파리의 이름이 되었다. 공연 뒤 무대로 찾아온 클로드 드뷔시와의 우정도 이때 시작되었다. 스승에게 배운 색채의 관현악은 이 곡에서 절정에 닿았다. (페트루시카) 이듬해의 '페트루시카'는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소품 구상에서 자라났다. 장터 인형극의 슬픈 꼭두각시 이야기에서 그는 두 조를 동시에 울리는 복조성 화음을 썼고, 바슬라프 니진스키가 꼭두각시를 춤췄다. 1912년 여름 그는 드뷔시와 한 피아노에 앉아 '봄의 제전' 네 손 편곡을 초견으로 쳐 보았다. 드뷔시는 그 음악이 아름다운 악몽처럼 따라다닌다고 편지에 썼다. 같은 해 베를린에서는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를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제전) 1913년 봄 스위스 클라랑에서 그는 모리스 라벨과 함께 댜길레프의 의뢰로 모데스트 무소륵스키의 오페라 '호반시나'를 손질했다. 라벨은 '봄의 제전' 초연이 드뷔시의 '펠레아스' 초연만큼 중요한 사건이 되리라 내다보았다. 5월 29일 샹젤리제 극장 초연은 야유와 고함으로 음악이 묻힐 지경이었고, 그는 무대 뒤에서 박자를 외치는 니진스키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었다. 직후 그는 장티푸스로 여러 주를 앓았다. 이듬해 연주회 형식 공연에서는 청중이 그를 어깨에 메고 거리로 나섰다.
스승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배운 화려한 관현악법을 한껏 펼쳐 무명의 청년을 하룻밤에 파리의 스타로 만든 곡이다. 그는 저작권을 얻으려고 훗날 모음곡을 여러 차례 고쳐 썼다.
- 도입부에서 첼로·더블베이스가 어둡게 웅얼거리는 가운데, 현악기들이 줄을 살짝만 짚어 피리 같은 소리를 내는 배음(하모닉스)으로 미끄러지는 대목이 나온다. 작곡가가 스스로 자랑한 효과로, 마법의 정원 공기가 술렁이는 듯 들린다.
- '카스체이의 지옥 춤'에서는 금관과 큰북이 박의 앞뒤를 엇갈려 찌르는 당김음 리듬으로 마왕 무리의 광란을 그린다. 1919년 모음곡에도 실려 가장 자주 연주되는 대목이다.
- '자장가'에서 바순이 낮고 느릿한 독주 선율로 괴물들을 잠재운다. 바순이 이토록 서정적으로 노래하는 장면은 드물어 바순 연주자들이 아끼는 대목이다.
- 피날레는 호른 독주가 러시아 민요 가락을 조용히 부르면서 시작해, 오케스트라 전체가 그 가락을 이어받아 점점 크고 넓게 키운다. 마지막에 같은 가락을 7박 단위로 길게 늘여 장엄하게 끝나는 부분을 놓치지 말 것.
피아노 협주 소품 구상에서 출발해, 장터 인형극의 꼭두각시에게 사람의 슬픔을 입힌 발레다. 두 조를 겹친 화음으로 '제전'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 1장 장터 장면은 군중의 웅성거림, 손풍금, 거리 무희의 음악이 겹겹이 엇갈리며 지나간다. 여러 소리가 동시에 들리는 장터 한복판에 선 듯 들어 보자.
- 2장 '페트루시카의 방'에서 클라리넷 두 대가 다장조와 올림바장조 화음을 동시에 분다. '페트루시카 화음'이라 불리는 이 복조성(두 조를 겹침) 울림은 꼭두각시의 찢긴 마음처럼 들린다.
- 오케스트라 속 피아노가 독주자처럼 두드러진다. '러시아 춤'에서 피아노가 통통 튀는 화음으로 앞장서는 부분은 이 곡이 피아노 소품에서 출발한 흔적이다.
- 끝 장면에서 페트루시카가 죽은 뒤, 그의 유령이 트럼펫으로 지붕 위에서 날카롭게 외치고 현악기가 줄을 뜯는 피치카토로 작게 끝난다. 화려한 축제 끝에 남는 쓸쓸함이 이 곡의 마지막 인상이다.
고대 러시아 이교도의 제물 의식을 그린 발레로, 1913년 파리 초연의 소동은 20세기 음악의 출발점처럼 이야기된다. 일부는 우스틸루크의 여름 집에서 쓰였다.
- 맨 처음 바순이 이 악기로는 아주 높은 음역에서 홀로 선율을 부른다. 바순인 줄 모를 만큼 낯설고 가냘픈 소리로, 언 땅이 깨어나는 이른 봄을 그린 것으로 흔히 풀이된다.
- '봄의 징조'에서 현악기가 같은 화음을 쿵쿵 되풀이하는데, 강세(악센트)가 예측할 수 없는 곳에 떨어진다. 그 강세를 호른 여덟 대가 함께 찌르는 소리를 따라가 보면 발 구르는 춤이 보인다.
- 마지막 '희생의 춤'은 거의 마디마다 박자가 바뀌는 변박으로, 지휘자와 단원에게 악명 높게 어려운 대목이다. 선택된 처녀가 쓰러질 때까지 춤추는 장면이며, 끝의 짧은 일격 같은 마무리가 충격적이다.
- 작곡가 자신의 지휘 녹음은 날카롭고 건조하며, 피에르 불레즈의 녹음은 투명하고 정밀하다고 평가된다. 같은 대목을 두 녹음으로 비교해 들어 보면 해석의 폭을 실감할 수 있다.
IV. 스위스의 망명객 · 1914–1920 (32–38세)
(전쟁) 1914년 그는 카탸의 결핵 요양을 위해 머물던 스위스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맞았다. 그해 여름 우스틸루크와 키이우를 잠시 다녀온 것이 혁명 전 고국을 본 마지막이었다. 1917년 혁명으로 영지와 러시아 출판사에서 오던 수입이 끊겼고, 전시의 발레단은 공연이 줄어 댜길레프의 보수도 제때 오지 않았다. 여섯 식구는 레만 호숫가 모르주의 셋집에서 빠듯하게 살았다. (상실) 1917년 봄 그를 키운 유모 베르타가 모르주에서 숨졌고, 그해 동생 귀리가 루마니아 전선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국경이 막혀 그는 동생의 장례에도 갈 수 없었다. 1918년 3월에는 드뷔시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관악기만으로 쓴 '관악기를 위한 교향곡들'(1920)을 드뷔시의 영전에 바쳤다. (소편성) 궁핍은 새로운 형식을 낳았다. 1918년 그는 작가 C. F. 라뮈와 함께 연주자 일곱 명과 해설자, 무용수만으로 마을을 돌 수 있는 '병사 이야기'를 만들었다. 후원자 베르너 라인하르트가 비용을 댔지만 초연 직후 스페인 독감이 번져 순회는 무산되었다. 이 무렵 그는 러시아 농촌의 혼례 의식을 담은 '결혼'을 붙들고 있었고, 미국 래그타임 악보도 탐독했다. (전환) 1919년 댜길레프는 18세기 나폴리 작곡가 페르골레시의 것으로 전하던 악보를 내밀며 발레를 제안했다. 피카소가 무대를 맡은 '풀치넬라'(1920)를 그는 훗날 자신의 과거를 발견하게 한 계시였다고 불렀다. 신고전주의라 불릴 긴 시기가 이렇게 열렸다.
전쟁과 혁명으로 수입이 끊긴 망명지의 궁핍이 일곱 연주자라는 작은 편성을 낳았다. 영혼을 판 병사의 이야기에 래그타임과 탱고까지 끌어들였다.
- 연주자는 바이올린·더블베이스, 클라리넷·바순, 코넷(작은 트럼펫)·트롬본, 타악기 일곱 명뿐이다. 각 악기군에서 높은 악기와 낮은 악기가 한 쌍씩 모여 작은 오케스트라 전체를 대신한다.
- 바이올린은 병사가 악마에게 넘겨 준 영혼을 상징한다. 이야기 내내 바이올린이 누구의 손에 있는지에 귀를 기울이면 줄거리가 소리로 따라온다.
- 공주를 깨우는 '세 개의 춤'은 탱고·왈츠·래그타임으로 이어진다. 당시 유럽에 막 건너온 미국 래그타임 악보에서 받은 자극이 그대로 들린다.
- 마지막 '악마의 개선 행진'에서 악기들이 하나둘 빠지고 타악기만 남아 두드린다. 병사가 끝내 악마에게 끌려가는 결말을 리듬만으로 들려주는 대목이다.
V. 프랑스의 신고전주의자 · 1920–1939 (38–57세)
(이중생활) 1920년 가족과 프랑스로 옮긴 그는 처음 몇 달 동안 디자이너 코코 샤넬의 가르슈 별장에 머물렀다. 이듬해 댜길레프의 소개로 화가 세르게이 수데이킨의 아내 베라 드 보세를 만나 연인이 되었다. 이후 18년 동안 그는 남프랑스의 가족과 파리의 베라 사이를 오갔다. 카탸는 이 관계를 알고 견뎠다. 파리에서는 에릭 사티와도 가까이 지냈다. (생계) 돈은 늘 걱정거리였다. 러시아가 베른 저작권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기에 혁명 전에 쓴 '불새'와 '페트루시카'는 어디서 연주되어도 저작권료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플레옐 사와 자동 피아노용 녹음 계약을 맺고, 직접 협연할 '피아노와 관악기를 위한 협주곡'(1924)을 써서 독주자로 무대에 섰다. 지휘도 수입원이었고, 1935년에는 아들 술리마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하며 순회했다. (신앙) 1926년 그는 멀리했던 러시아 정교회로 돌아와 날마다 기도했다. 라틴어 오페라-오라토리오 '오이디푸스 왕'(1927)과 합창과 푸가를 품은 '시편 교향곡'(1930)에는 의식(儀式)적 경건함이 배어 있다. 1928년 '요정의 입맞춤'에서는 차이콥스키의 노래를 빌려 경의를 바쳤다. 혁명을 증오한 그는 1930년대 초 무솔리니를 찬양하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비탄) 1934년 프랑스 국적을 얻었지만 그 땅의 마지막 해는 상실로 채워졌다. 1938년 11월 딸 류드밀라가, 1939년 3월 카탸가 결핵으로 숨졌고, 6월에는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그 자신도 결핵으로 요양소에서 몇 달을 보냈다. 이때 쓰던 '교향곡 C조'를 그는 생애에서 가장 비극적인 해의 곡이라 했다.
정교회 신앙으로 돌아온 지 몇 해 뒤, 보스턴 교향악단 창립 50주년 위촉으로 쓴 곡이다. 그는 악보에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썼다고 적었다.
- 바이올린·비올라·클라리넷이 빠지고, 대신 피아노 두 대와 많은 관악기가 들어간다. 무엇이 빠졌는지 의식하며 들으면 돌로 지은 성당 같은 메마르고 단단한 색채가 들린다.
- 첫머리에서 짧게 끊어 치는 마단조 화음은 '시편 화음'이라 불린다. 같은 화음이 악장 곳곳에서 문장 부호처럼 다시 찍힌다.
- 2악장은 이중 푸가(두 주제가 차례로 따라 들어오며 얽히는 형식)다. 오보에가 먼저 주제를 내고 다른 목관이 뒤따른 뒤, 합창이 또 다른 주제로 들어오는 순서를 따라가 보자.
- 3악장 끝은 느린 '라우다테 도미눔(주님을 찬양하라)' 노래 아래로 베이스가 네 음짜리 같은 음형을 계속 되풀이(오스티나토)하며 시간이 멈춘 듯 흐른다. 작곡가는 이 악장의 빠른 부분에서 하늘로 오르는 엘리야의 수레를 떠올렸다고 회고했다.
VI. 할리우드의 이방인 · 1939–1956 (57–74세)
(신대륙) 1939년 가을 하버드 대학 초청 강연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이듬해 3월 매사추세츠에서 베라와 결혼했다. 1941년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작은 집에 자리를 잡아 28년을 살았다. 영화 음악 제안은 대개 성사되지 않았고, 디즈니가 '판타지아'(1940)에 '봄의 제전'을 쓸 때 저작권이 없던 그가 받은 돈은 적었다. 그는 1945년 '불새' 모음곡을 새로 손보아 미국 저작권을 확보했고, 그해 말 미국 시민이 되었다. (이웃) 1942년 같은 도시에 살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그의 집에서 저녁을 함께했고, 며칠 뒤 꿀 한 단지를 보내왔다. 반면 가까이 살던 쇤베르크와는 끝내 교류가 없었다. 그는 서커스 코끼리들을 위한 '서커스 폴카'(1942), 재즈 악단을 위한 '에보니 협주곡'(1945) 같은 의뢰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쟁 뉴스 영화의 인상이 스민 '3악장의 교향곡'(1945)은 그가 전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곡이었다. (탕아) 1948년 젊은 지휘자 로버트 크래프트가 조수로 들어와 사실상 가족이 되었다. 시카고에서 본 호가스의 판화 연작에서 출발해 W. H. 오든과 체스터 캘먼의 대본으로 쓴 오페라 '탕아의 행각'이 1951년 베네치아에서 초연되었다. 모차르트 오페라의 틀을 빌린 신고전주의의 결산이었다. 같은 해 쇤베르크가 세상을 떠났고, 크래프트는 이듬해 그가 더는 작곡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눈물을 보였다고 기록했다. 그 위기 속에서 그는 쇤베르크와 베베른의 12음 기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할리우드에서 본 전쟁 뉴스 영화와 무산된 영화 음악 작업이 함께 스며든 곡이다. 작곡가는 이 곡을 '전쟁 교향곡'이라 부를 수 있다고 했다.
- 1악장에서는 피아노가 오케스트라 안에서 독주처럼 두드러진다. 작곡가는 이 악장이 중국 전선의 초토화 작전을 다룬 기록 영화에서 자극받았다고 말했다.
- 2악장은 하프가 중심이 되는 고요한 악장으로, 원래 영화 '베르나데트의 노래'를 위해 구상했던 음악에서 왔다. 거친 바깥 악장들 사이의 짧은 휴식처럼 들린다.
- 3악장에서 피아노와 하프가 함께 나선다. 작곡가는 행진하는 독일군의 영상을 떠올렸다고 했고, 끝의 큰 화음은 연합군의 승리와 연결해 설명했다.
- 같은 리듬 조각을 짧게 끊어 반복하며 겹치는 방식이 '봄의 제전'의 리듬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두 곡을 이어 들으면 30년의 간격이 무엇을 바꾸었고 무엇을 남겼는지 보인다.
VII. 마지막 변신 · 1956–1971 (74–89세)
(전향) 일흔을 넘긴 그는 12음 기법을 자기 말투로 바꾸어 썼다. 1956년 베네치아 산마르코 대성당을 위한 '거룩한 찬가', 조지 발란신과 만든 발레 '아곤'(1957), 예레미야 애가에 붙인 '트레니'(1958)가 이어졌다. 오랜 지지자 가운데는 변절로 여긴 이도 있었지만, 그는 한자리에 머물지 않는 쪽을 택했다. 1956년 가을 베를린 순회 중 뇌혈전으로 쓰러졌다가 회복했다. (귀향) 1962년 여든 살을 맞은 그는 백악관 만찬에 초대받았고, 그해 가을 48년 만에 소련 땅을 밟았다.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서 지휘했고 흐루쇼프를 만났으며, 어린 시절의 마린스키 극장을 다시 보았다. 한때 '형식주의자'로 비판받던 망명자가 고국에서 갈채를 받은 순간이었다. (죽음) 말년의 작품은 짧고 엄격했으며 죽음을 자주 다뤘다. 존 F. 케네디를 위한 애가, 올더스 헉슬리를 기린 '변주곡'을 거쳐 1966년 '레퀴엠 칸티클'을 완성했다. 건강이 기울며 입원이 잦아졌고, 1969년 뉴욕으로 옮겼다. 1971년 4월 6일 뉴욕의 아파트에서 여든여덟 살로 세상을 떠났다. 베네치아의 장례식에서 '레퀴엠 칸티클'이 연주되었고, 그는 산미켈레 섬 묘지의 정교회 구역, 댜길레프의 무덤 가까이에 묻혔다. 1982년 베라도 그 곁에 묻혔다.
프린스턴 대학의 위촉으로 한 후원자를 기려 쓴 마지막 대작으로, 5년 뒤 자신의 장례식에서 연주되었다.
- 장례 미사 가사 가운데 일부만 골라 아홉 개의 짧은 곡으로 엮어 15분 안팎에 끝난다. 길게 슬퍼하지 않고 압축된 몸짓으로 죽음을 마주하는 말년의 문체를 느껴 보자.
- '리베라 메(나를 구하소서)'에서 합창의 일부는 노래하고 일부는 웅얼거리듯 말한다. 성당 안에 겹쳐 들리는 기도 소리처럼 들린다.
- 마지막 후주에서는 종, 첼레스타, 비브라폰 같은 금속성 악기가 띄엄띄엄 화음을 울린다. 종소리가 멀어지듯 끝나는 이 대목이 곡 전체의 무게를 거둔다.
- 12음 기법(열두 음의 순서를 정해 곡을 짜는 방식)으로 썼지만 리듬은 여전히 또렷하다. 노년의 스트라빈스키가 새 방법 속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지킨 증거로 자주 거론된다.
덜 알려진 이야기
스승을 기려 쓴 '장송곡'은 1909년 한 번 연주된 뒤 혁명의 혼란 속에 사라졌다. 스트라빈스키는 『자서전』에서 '불새' 이전 작품 가운데 가장 나은 것이었으리라 아쉬워했다. 201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도서관을 정리하던 중 연주용 파트 악보가 발견되었고, 이듬해 12월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지휘로 100여 년 만에 다시 연주되었다. 1920년 댜길레프가 '봄의 제전'을 새 안무로 되살릴 때, 제작비 보증금을 익명으로 댄 사람은 코코 샤넬이었다. 이 사실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가 훗날 전기 작가들의 조사로 확인되었다. 샤넬은 그 무렵 오갈 데 없던 스트라빈스키 가족에게 자기 별장을 내주기도 했다. '음악은 무엇도 표현할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이 실린 『자서전』(1935)은 그의 친구 발터 누벨이 문장을 다듬어 쓴 책이었고, 하버드 강연록 『음악의 시학』도 작곡가 롤랑마뉘엘이 상당 부분을 집필했다. 초고와 서신이 공개된 뒤에야 밝혀진 사실로, 그의 '공식 견해'가 얼마간 공동 작업의 산물이었음을 보여 준다. 1944년 보스턴에서 그가 편곡한 미국 국가가 연주되자, 경찰은 국가를 함부로 고치는 것을 금한 주법을 들어 다음 공연에서 빼라고 경고했다. 이 일은 그가 '국가 편곡으로 체포되었다'는 이야기로 부풀려 전해졌지만, 실제로는 경고로 끝났다.
용어 노트 📚🔎
관현악법
(말뜻) 관현악(管絃樂)은 대롱(管), 곧 관악기와 줄(絃), 곧 현악기로 하는 음악이라는 뜻이다. 관현악법은 그 악기들을 어떻게 나눠 쓸지 정하는 방법이다. (음악에서) 같은 선율을 플루트에게 맡길지 첼로에게 맡길지, 몇 개의 악기를 겹칠지 정하는 기술이다. 같은 곡이라도 관현악법에 따라 밝게도 어둡게도, 가볍게도 무겁게도 들린다. 학급 연극에서 같은 대사라도 어떤 친구에게 맡기느냐에 따라 장면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스트라빈스키는 이것을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서 배웠다. (다른 데서는) 영어 '오케스트레이션'은 컴퓨터 분야에서 여러 서버와 프로그램이 맞물려 돌아가도록 조율하는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복조성
(말뜻) 복조성(複調性)은 조성(調性)이 겹쳐(複) 있다는 뜻이다. (음악에서) 대부분의 곡은 한 번에 하나의 조(다장조, 사단조처럼 중심이 되는 음을 정한 음의 체계)를 쓰는데, 복조성은 두 조를 동시에 울린다. '페트루시카'에서 다장조 화음과 올림바장조 화음이 한꺼번에 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우리 반은 이 조로, 옆 반은 다른 조로 같은 노래를 동시에 부르면 어긋나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소리가 나는데, 그런 효과를 일부러 계산해 짜 맞춘 것이라고 보면 된다.
변박
(음악에서) 곡 중간에 박자가 자주 바뀌는 것을 말한다. 보통의 곡은 '하나 둘 셋 넷'을 계속 되풀이하지만, 변박에서는 두 박, 세 박, 다섯 박짜리 마디가 번갈아 나온다. '봄의 제전'의 '희생의 춤'은 거의 마디마다 박자가 바뀐다. 긴 줄넘기에서 줄 돌리는 친구들이 갑자기 박자를 바꾸면 뛰는 사람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듯, 연주자도 박을 세는 데 온 신경을 써야 한다.
오스티나토
(말뜻) 이탈리아어로 '고집스러운'이라는 뜻이다. 고집 세다는 뜻의 영어 obstinate 와 뿌리가 같다. (음악에서) 짧은 음형을 고집스럽게 계속 되풀이하는 것으로, 대개 그 위에서 다른 선율이 바뀌어 간다. 스트라빈스키는 오스티나토를 음악을 밀고 가는 리듬의 엔진처럼 썼다. 게임 배경 음악에서 '둥둥 둥둥' 하는 베이스가 계속 반복되고 그 위에서 멜로디만 바뀌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신고전주의
(말뜻) 새로운(新) 고전주의라는 뜻이다. 옛 '고전'을 새 시대의 눈으로 다시 쓴다는 의미가 이름에 들어 있다. (음악에서) 1920~1950년대에 바흐·모차르트 시대의 형식과 짜임새를 다시 가져와 20세기의 화음과 리듬으로 쓴 경향이다. 감정을 부풀리기보다 균형과 명료함을 앞세웠고, 스트라빈스키의 '풀치넬라'가 그 출발점으로 꼽힌다. 옛날 게임을 요즘 기술로 다시 만든 리메이크가 원작의 규칙은 지키면서 그래픽과 손맛은 새로운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미술과 건축에서 신고전주의는 18세기 후반 고대 그리스·로마 양식을 되살린 흐름을 가리켜, 음악의 신고전주의보다 150년쯤 앞선다.
푸가
(말뜻) 이탈리아어 fuga 는 '달아남'이라는 뜻이다. 한 성부가 주제를 내놓으면 다른 성부가 그 뒤를 쫓는 모습에서 이름이 나왔다고 본다. (음악에서) 하나의 주제를 여러 성부(각각 따로 움직이는 노래 줄기)가 차례로 이어받아 들어오며 얽히는 형식이다. 술래잡기에서 한 명이 달아나면 다른 친구들이 차례로 같은 길을 따라 뛰어드는 장면처럼, 앞 성부가 다음 이야기를 하는 동안 뒤 성부가 같은 주제로 따라온다. '시편 교향곡' 2악장은 주제를 두 개 쓰는 이중 푸가다. (다른 데서는) 정신의학에서 '해리성 둔주(fugue)'는 자기가 누구인지 잊은 채 집을 떠나 떠도는 상태를 가리킨다.
12음 기법
(음악에서) 한 옥타브 안의 열두 음(피아노의 흰 건반 일곱 개와 검은 건반 다섯 개)을 한 번씩만 써서 순서를 정한 '음렬'을 만들고, 곡 전체를 그 순서를 바탕으로 짜는 방법이다. 어느 한 음이 중심이 되지 않게 하려는 것으로, 쇤베르크가 1920년대에 만들었다. 반 친구 열두 명이 정해 둔 순서대로만 발표하되, 순서를 거꾸로 하거나 뒤집어 쓰는 것은 허용하는 규칙과 비슷하다. 스트라빈스키는 일흔이 넘어 이 방법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