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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 Debussy

클로드 드뷔시 (1862–1918)

'이론은 없다. 듣기만 하면 된다. 즐거움이 곧 규칙이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프랑스 생제르맹앙레 출생코뮌 가담한 아버지모테 부인의 가르침2. 수업파리 음악원폰 메크 가 피아니스트로마 대상 '탕자'3. 자극바이로이트의 바그너자바 가믈란사티와의 우정4. 도약목신의 오후펠레아스 초연크로슈 씨의 평론5. 가정가비·릴리·엠마딸 슈슈바다와 어린이 차지6. 말년빚과 직장암전주곡·연습곡포격 속 죽음드뷔시1862–1918규칙 대신 귀를 믿고 20세기 음악의 문을 연…
삶의 여정 🧭🗺️
N이탈리아프랑스생제르맹앙레1862–1867파리1867–1885로마1885–1887파리1887–1918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스승앙투아네트 모테 드 플뢰르빌

    아버지가 투옥된 시절 소년을 대가 없이 가르쳐 파리 음악원에 들여보낸 첫 스승이다.

  • 후원나데즈다 폰 메크

    차이콥스키의 후원자로, 열여덟 살 그를 집안 피아니스트로 데려가 유럽과 러시아를 보여 주었다.

  • 영향리하르트 바그너

    바이로이트에서 깊이 매혹되었다가 평생 벗어나려 애쓴, 동경과 반발의 대상이었다.

  • 우정에릭 사티

    몽마르트르에서 만나 평생 티격태격하며 지낸 친구로, 드뷔시는 그의 '짐노페디'를 관현악으로 편곡했다.

  • 가족엠마 바르닥

    스캔들 끝에 맺어진 두 번째 아내로, 딸 슈슈를 낳고 그의 마지막 날까지 곁을 지켰다.

  • 경쟁모리스 라벨

    서로를 존중했으나 주변이 두 사람을 맞세우면서 점점 멀어진 후배 작곡가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생제르맹앙레의 아이 · 1862–1872 (0–10세)

(출생) 1862년 8월, 프랑스 파리 서쪽 근교의 생제르맹앙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마뉘엘아실 드뷔시는 이곳에서 작은 도자기 가게를 꾸렸고, 어머니 빅토린 마누리는 결혼 전 재봉 일을 했다. 클로드아실은 다섯 남매의 맏이였고, 아래로 아델, 에마뉘엘, 알프레드, 외젠이 태어났다. 막내 외젠은 1877년 뇌수막염으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궁핍) 가게는 오래가지 못했다. 1867년 무렵 가족은 파리로 옮겼고, 아버지는 일자리를 자주 바꾸었다. 형편이 어려워 클로드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어머니에게서 읽고 쓰기를 배웠다. 동생 몇은 고모 클레망틴의 손에서 자랐다. (칸) 1870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을 피해 어머니와 함께 칸의 고모 집에 머물렀다. 여기서 이탈리아인 바이올리니스트 장 체루티에게 처음 피아노를 배웠다. 훗날 그는 집 앞을 지나던 철길과 수평선의 바다를 어린 시절의 또렷한 기억으로 적었다. 이 바다는 서른 해 뒤 관현악곡 '바다'로 돌아온다. (코뮌) 1871년 아버지는 파리 코뮌의 국민방위군에 가담해 대위가 되었고, 진압 뒤 체포되어 4년 형을 선고받았다. 실제로는 1년 남짓 갇혔다 풀려났지만 시민권을 잃었다. 감옥에서 아버지는 음악가 샤를 드 시브리를 알게 되었다. (인연) 시브리의 어머니 앙투아네트 모테 드 플뢰르빌은 쇼팽의 제자였다고 스스로 말하던 피아니스트였고, 시인 폴 베를렌의 장모였다. 그녀는 소년의 재능을 알아보고 대가 없이 가르쳐 1872년 열 살의 그를 파리 음악원에 합격시켰다. 드뷔시는 평생 그녀를 고마워했고, 그녀를 거쳐 전해진 쇼팽에 대한 경외는 마지막 작품들까지 이어졌다.

II. 음악원과 러시아의 여름 · 1872–1884 (10–22세)

(음악원) 파리 음악원에서 앙투안 마르몽텔에게 피아노를, 알베르 라비냑에게 음악 이론을 배웠다. 처음에는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으나 경연에서 1등상을 끝내 받지 못해 연주자의 길은 멀어졌다. 화성 수업에서는 규칙에서 벗어난 화음을 즐겨 쳐 교사들과 자주 부딪쳤다. 그의 관심은 손가락보다 소리 자체로 옮겨 가고 있었다. (러시아) 1880년 여름, 마르몽텔의 추천으로 차이콥스키의 후원자 나데즈다 폰 메크의 집안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스위스와 프랑스 아르카숑, 피렌체를 거쳐 1881년과 1882년에는 모스크바까지 동행했다. 부인의 자녀들을 가르치고 부인과 이중주를 쳤으며,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춤곡 몇 곡을 피아노 연탄곡으로 편곡했다. 부인이 그의 소품 '보헤미안 춤'을 차이콥스키에게 보냈으나, 차이콥스키는 너무 짧고 형식이 서툴다며 미지근하게 답했다. (바니에) 파리로 돌아와 성악 교실의 반주자로 일하다 소프라노 마리블랑슈 바니에를 만났다. 그녀는 그보다 한참 연상인 유부녀였고, 남편 앙리 바니에는 젊은 음악가를 집에 들여 책과 식탁을 내주었다. 드뷔시는 그녀를 위해 스무 곡이 넘는 가곡을 썼다. 몇 해 이어진 이 관계 속에서 쓴 노래들에는 훗날 그의 음악을 채울 관능과 망설임이 이미 비친다. (로마대상) 1884년, 칸타타 '탕자'로 로마 대상을 받았다. 심사에 참여한 샤를 구노가 그를 적극 지지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는 수상 소식을 들은 순간 기쁨보다 가슴이 내려앉았다고 훗날 회고했다. 로마 유학은 곧 바니에 부부와 파리를 떠난다는 뜻이었다.

III. 메디치 저택과 바이로이트 · 1885–1892 (23–30세)

(로마) 1885년 1월 로마의 메디치 저택에 들어갔으나 그곳 생활을 견디지 못했다. 편지마다 음식과 동료, 답답한 분위기를 불평했다. 1886년 그곳을 찾은 리스트를 만나 그의 연주를 직접 들었고, 페달을 숨 쉬듯 쓰는 그 손길을 오래 기억했다고 전해진다. 1887년 봄, 정해진 기한을 채우지 않고 파리로 돌아왔다. (꾸지람) 유학생은 해마다 작품을 보내야 했다. 그가 보낸 관현악곡 '봄'에 대해 심사단은 '모호한 인상주의'를 경계하라고 적었다. 훗날 그의 음악에 따라붙은 '인상주의'라는 이름은 이렇게 처음엔 꾸지람의 말이었고, 그 자신도 평생 이 꼬리표를 싫어했다. (바그너) 1888년과 1889년 바이로이트를 찾아 바그너의 '파르지팔'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보고 깊이 사로잡혔다. 그러나 곧 그 그늘에서 벗어나려 애썼고, 훗날에는 바그너를 '늙은 독살자'라고까지 불렀다. 동경과 반발이 뒤섞인 이 관계가 자기 언어를 찾는 출발점이 되었다. (자바)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자바의 가믈란 합주를 들었다. 서양 화성의 규칙과 무관하게 겹겹이 울리는 쇠붙이 소리, 다섯 음만 쓰는 5음 음계의 가락은 오래 그의 귀에 남았다. 같은 무렵 무소륵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악보를 접하고, 말에 가까운 노래와 거친 화성에 끌렸다. (사티) 몽마르트르의 카바레에서 에릭 사티를 만난 것도 이 무렵이다. 둘은 서로의 괴팍함을 놀리면서도 평생 우정을 이어갔다. 살림은 늘 쪼들려, 출판사에 팔 피아노 소품을 쓰고 개인 교습을 하며 지냈다. 훗날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으로 묶일 곡들의 초고도 이때 나왔다.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L. 75)1890년 초고, 1905년 개정·출판 (28–43세)연주 조성진 (피아노) · 「달빛」

로마에서 돌아와 가난하게 지내던 시절 처음 쓰고 15년 뒤에야 다듬어 펴낸 곡이다. 셋째 곡 '달빛'의 제목은 어린 시절 스승 모테 부인의 사위 베를렌의 시에서 왔다.

  • '베르가마스크'라는 말은 베를렌의 시 '달빛'에 나오는 '가면과 베르가마스크 춤'에서 왔다. 전주곡·미뉴에트·달빛·파스피에 네 곡 모두 옛 프랑스 춤곡의 틀을 빌렸으니, 18세기 궁정 춤을 꿈결처럼 회상하는 음악으로 들으면 좋다.
  • '달빛'은 아주 여리게, 첫 박을 비운 채 두 음씩 겹친 화음이 천천히 내려오며 시작한다. 박자가 바로 잡히지 않아 소리가 공중에 떠 있는 듯 들린다.
  • 중간부에서 왼손이 화음을 한 음씩 펼쳐 흐르게 하는 분산화음(아르페지오)이 물결처럼 깔리고, 그 위로 오른손 선율이 떠오른다. 흔히 달빛에 반짝이는 물결로 비유되는 대목이다.
  • '달빛'은 연주자마다 빠르기와 머뭇거림이 크게 달라 명연주끼리 비교해 듣는 재미가 크다. 한편 1890년 초고는 전하지 않아, 1905년 개정 때 얼마나 손이 더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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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목신과 펠레아스 · 1892–1902 (30–40세)

(가비) 1890년대 대부분을 가브리엘(가비) 뒤퐁과 함께 살았다. 그녀는 가난한 시절을 함께 견딘 동반자였다. 1894년 그는 가수 테레즈 로제와 약혼을 발표했다가 가비와의 관계가 알려지며 파혼했다. 그동안 그에게 돈을 빌려주고 아끼던 작곡가 에르네스트 쇼송과의 우정도 이 일로 끝났다. (목신) 같은 해 12월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이 초연되었다. 화요일마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의 집에 드나들던 그가 말라르메의 시를 관현악으로 옮긴 곡이다. 플루트 독주로 열려 조성이 흐릿하게 떠도는 이 10분 남짓의 음악은 초연에서 곧바로 다시 연주될 만큼 호응을 얻었고, 훗날 20세기 음악의 출발점으로 꼽혔다. (우정) 1896년에는 사티의 '짐노페디' 두 곡을 관현악으로 편곡했다. 아직 무명이던 친구를 세상에 알리려는 손길이었다. 1897년 가비가 그의 편지에서 다른 여인의 흔적을 발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일이 있었고, 두 사람은 이듬해 헤어졌다. (릴리) 1899년 10월 모델이자 재봉사였던 로잘리(릴리) 텍시에와 결혼했다. 결혼식 날 아침에도 피아노 교습을 해 피로연 비용을 마련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 시기 '녹턴'을 완성했다. (펠레아스) 그 사이 1893년부터 마테를링크의 희곡을 옮긴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 10년 가까이 매달렸다. 1902년 4월 앙드레 메사제의 지휘로 오페라코미크에서 초연되었으나, 마테를링크는 자기 연인 대신 메리 가든이 주역을 맡자 격분해 공연이 실패하기를 바란다는 글을 신문에 실었다. 첫 공연들은 웃음과 야유도 받았지만 젊은 관객들이 거듭 찾아오며 자리를 잡았다. 인물마다 짧은 동기(라이트모티프)를 붙이되 노래는 말의 억양에 붙인 이 오페라는, 바그너와 무소륵스키에 대한 그 나름의 대답이었다.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L. 86)1891–1894 (29–32세)연주 Oslo Philharmonic · James Gaffigan 지휘

말라르메의 화요 모임에 드나들던 그가 시의 나른한 꿈결을 소리로 옮긴 곡으로, 약혼 파탄과 궁핍 속에서 그의 이름을 처음 널리 알렸다.

  • 첫머리 플루트 독주는 반음씩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돌아오는 선율인데, 시작음과 바닥음 사이가 불안한 세 온음 간격(트라이톤)이라 어느 조인지 정해지지 않은 듯 들린다. 반주 없이 혼자 시작하는 이 플루트가 곡 전체의 숨결이다.
  • 플루트가 멈추면 하프가 건반을 쓸어내리듯 미끄러지는 소리(글리산도)와 호른이 응답한다. 여름 한낮 졸음에 겨운 목신의 반쯤 깬 상태로 흔히 풀이된다.
  • 플루트 주제는 여러 번 돌아오는데 그때마다 밑에 깔린 화음이 바뀐다. 같은 선율이 다른 빛을 받는 변화를 따라가 보자.
  • 곡 중간, 목관이 시작해 현악이 넓게 이어받는 노래하는 선율이 곡에서 가장 뜨거운 대목이다.
  • 마지막에는 손바닥만 한 작은 심벌즈(앤티크 심벌즈)가 맑게 울리며 소리가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 1912년 니진스키가 이 음악으로 만든 발레가 관능적 안무로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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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아스와 멜리장드 (L. 88)1893–1902 (31–40세)지휘 Alain Altinoglu · WDR Sinfonieorchester

가비와의 가난한 동거부터 릴리와의 결혼까지 10년 가까이 붙들고 있던 유일한 완성 오페라로, 초연의 야유와 마테를링크의 분노를 넘어 그를 하루아침에 유명하게 만들었다.

  • 1막 첫머리, 낮은 현악이 옛 교회 선법 같은 느리고 어두운 화음을 울린다. 길 잃은 숲을 그린다고 흔히 풀이되며, 곧 오보에 쪽에서 떠오르는 가냘픈 가락이 멜리장드를 가리킨다.
  • 가수들은 아리아로 크게 부르지 않고 프랑스어 말의 억양을 따라 거의 말하듯 노래한다. 대사 하나하나가 음표에 얹히는 방식을 들어 보자.
  • 3막 탑 장면에서 멜리장드는 창가에서 반주 없이 '내 긴 머리'를 노래하고, 늘어뜨린 머리칼에 펠레아스가 얼굴을 묻는다.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 4막에서 두 사람이 '사랑해'라고 고백하는 순간 오케스트라가 거의 침묵한다. 가장 큰 감정을 가장 작은 소리로 전하는 이 대목은 이 오페라를 상징한다.
  • 장면 사이의 관현악 간주곡은 초연 직전 무대 전환 시간이 모자라 급히 늘린 것이다. 지금은 오페라에서 가장 풍성한 관현악 대목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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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스캔들과 바다 · 1903–1908 (41–46세)

(독설) 1901년부터 잡지에 음악 평론을 썼고, 가상의 인물 '크로슈 씨'의 입을 빌려 날 선 말을 했다. 1903년 그리그의 음악을 '눈을 채운 분홍빛 사탕' 같다고 썼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틸 오일렌슈피겔'은 '정신병원에서 보낸 한 시간의 새로운 음악'이라 부르면서도 그 생명력은 인정했다. 같은 해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엠마) 1904년, 제자 라울 바르닥의 어머니이자 은행가의 아내인 가수 엠마 바르닥과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일찍이 포레가 가곡집 '좋은 노래'를 쓰던 무렵 그와 가까웠던 사람으로, 노래와 재치로 파리 음악계에 알려져 있었다. 그해 7월 그는 릴리를 떠나 엠마와 영국 해협의 저지섬으로 갔다. (상처) 10월 릴리가 스스로 가슴에 총을 쏘았다. 목숨은 건졌지만 총알은 평생 몸에 남았다. 이 일이 알려지자 많은 친구가 그에게서 등을 돌렸고, 라벨을 비롯한 몇몇은 릴리를 돕는 모금에 힘을 보탰다고 전해진다. 이혼은 이듬해 성립했다. (바다) 이 소란 속에서 '바다'를 완성했다. 부르고뉴 시골에서 시작해 1905년 여름 엠마와 머문 영국 이스트본의 바닷가에서 다듬은 곡이다. 그해 10월 초연은 냉담한 평을 받았고, 스캔들에 대한 반감이 평가에 섞였다는 말도 있다. 그는 악보 초판 표지에 호쿠사이의 판화 '가나가와 앞바다의 큰 파도'를 넣게 했다. (슈슈) 1905년 10월 딸 클로드엠마가 태어났다. 집에서는 '슈슈'라 불렀다. 1908년 1월 엠마와 정식으로 결혼했고, 불로뉴 숲 가까운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다. 딸에게 바친 피아노 모음곡 '어린이 차지'에는 '이어질 것에 대해 아빠가 다정한 사과를 담아'라는 헌사를 붙였다.

♪바다 (L. 109)1903–1905 (41–43세)실황 Orchestre national de France · Cristian Măcelaru 지휘

결혼 파탄과 릴리의 비극, 친구들의 외면이 이어지던 시기에 완성된 곡이다. 초연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표 관현악곡이 되었다.

  • 세 악장의 제목은 '바다 위의 새벽부터 정오까지', '파도의 놀이', '바람과 바다의 대화'다. 1악장 첫머리 낮은 현의 길게 끄는 음과 팀파니 위로 하프가 울리며, 어둠 속에서 바다가 깨어난다.
  • 1악장 끝 금관이 장엄하게 울리는 대목은 정오의 햇빛으로 들린다. 사티가 이 악장에서 '11시 15분 전쯤'이 특히 좋았다고 농담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 2악장은 하프, 철판 건반 악기(글로켄슈필), 트라이앵글이 물보라처럼 반짝이고 박자가 자주 바뀐다. 파도가 일정하지 않게 부서지는 모습을 떠올리며 들어 보자.
  • 3악장 중간에 있던 트럼펫 팡파르를 그는 출판 뒤 악보에서 지웠는데, 지휘자에 따라 되살리기도 한다. 명연주를 비교할 때 자주 화제가 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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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차지 (L. 113)1906–1908 (44–46세)연주 조성진 (피아노) · 「Golliwog's Cakewalk」

세 살 딸 슈슈에게 바친 모음곡으로, 스캔들 끝에 얻은 가정의 따뜻함이 장난기 어린 피아노 소품들에 담겼다.

  • 1곡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 박사'는 옛 피아노 연습곡집 이름을 빌려, 손가락 연습에 지친 아이를 놀린다. 중간에 느려지며 딴생각에 빠졌다가 다시 허둥지둥 달리는 흐름을 들어 보자.
  • 2곡 '지미의 자장가'는 슈슈의 코끼리 인형을 위한 곡이다. 낮은 음역의 느릿한 걸음과 검은 건반 위주의 다섯 음 가락(5음 음계)이 졸린 코끼리처럼 들린다.
  • 4곡 '눈이 춤춘다'는 같은 음형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창밖에 쉼 없이 내리는 눈을 그린다.
  • 6곡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는 미국 춤 케이크워크의 엇박 리듬(래그타임)으로 신나게 달리다가, 중간에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첫 화음을 끌어온다. 그 자리에 '큰 감정을 담아'라고 적어 넣고 곧 우스운 음형으로 받아쳐, 한때 숭배했던 바그너를 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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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빚과 전주곡 · 1909–1914 (47–52세)

(빚) 엠마와의 결혼이 가져다줄 것 같던 부는 오지 않았다. 엠마의 부유한 외삼촌 오시리스는 1907년 세상을 떠나며 재산 대부분을 기관에 남겼다. 넉넉한 살림을 꾸리느라 그는 출판사 뒤랑에서 선금을 거듭 받아 썼고, 내키지 않던 지휘 여행에 나섰다. 1910년 빈과 부다페스트, 1913년 러시아, 1914년 로마와 헤이그, 런던의 무대에 섰다. (병) 1909년 무렵부터 직장암의 첫 증세가 나타났다. 출혈과 통증이 잦았고, 아픔을 덜려고 모르핀을 썼다. 편지에는 몸과 돈에 대한 걱정이 점점 많아졌다. (전주곡) 그 와중에 '전주곡' 1권과 2권, 모두 24곡을 썼다. 곡마다 제목을 악보 맨 끝에 괄호와 말줄임표로 적었는데, 듣는 이가 먼저 소리를 듣고 상상한 뒤에 제목을 확인하게 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모든 음 사이가 같은 간격인 온음음계만으로 쓴 '돛', 물속에서 떠오르는 '가라앉은 성당' 같은 곡이 여기서 나왔다. (유희) 1911년 단눈치오의 신비극 '성 세바스티안의 순교'에 음악을 붙였고, 1913년 디아길레프의 러시아 발레단을 위해 '유희'를 썼다. 니진스키 안무로 5월에 초연된 '유희'는 2주 뒤 같은 극장에서 터진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소동에 가려졌다. 그는 그 전해에 스트라빈스키와 함께 '봄의 제전'을 피아노 연탄으로 처음 쳐 본 사람이기도 했다. (거리) 후배 모리스 라벨과의 관계도 이 무렵 식었다. 비평가와 지지자들이 두 사람을 맞세워 누가 누구를 따라 했는지를 따지자, 서로를 존중하던 둘은 점점 거리를 두었다.

♪전주곡 1권 (L. 117)1909–1910 (47–48세)실황 Evgeni Koroliov (피아노)

빚과 병이 시작되던 해에 쓴 12곡으로, 소리를 먼저 듣고 제목은 나중에 알게 하려는 그의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난 피아노곡이다.

  • 제목은 각 곡 끝에 괄호와 말줄임표로 붙어 있다. 제목을 보지 않고 먼저 들어 보고, 무엇이 떠오르는지 확인한 뒤 제목을 맞춰 보는 것이 작곡가의 뜻에 맞는 감상법이다.
  • 2번 '돛'은 모든 음 사이가 똑같은 온음음계만으로 쓰여, 바람 없는 바다 위에 걸린 돛처럼 떠 있는 듯 들린다. 가운데 잠깐 검은 건반만의 5음 음계로 바뀌는 순간 바람이 한 번 분다.
  • 8번 '아마빛 머리의 소녀'는 르콩트 드릴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짧고 소박한 노래로, 전곡에서 가장 사랑받는다.
  • 10번 '가라앉은 성당'은 물에 잠겼다 떠오른다는 브르타뉴 전설의 성당을 그린다. 아주 낮은 종소리 같은 음 위로 큰 화음들이 나란히 같은 간격을 유지하며 움직여 옛 성가처럼 울린다.
  • 드뷔시 자신이 1913년 자동 피아노 롤에 남긴 '가라앉은 성당'은 몇몇 대목을 악보보다 두 배 빠르게 친다. 악보 표기 문제인지를 두고 연주자들 사이에서 지금도 해석이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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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프랑스 음악가 · 1914–1918 (52–56세)

(전쟁) 1914년 8월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몇 달 동안 거의 쓰지 못했다. 전선에 나갈 수 없는 쉰두 살의 병자라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다. 독일 음악에 맞서 프랑스 음악의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져, 이후 악보에 '프랑스 음악가 클로드 드뷔시'라고 서명했다. 1915년 3월에는 어머니를 잃었다. (쇼팽) 같은 해 뒤랑의 요청으로 쇼팽 작품의 교정판을 만들며 다시 쇼팽에 몰두했다. 그해 여름 노르망디 해안 푸르빌에서 쓴 '연습곡' 12곡을 쇼팽에게 바쳤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흑과 백으로', 첼로 소나타, 플루트·비올라·하프를 위한 소나타도 이 짧은 여름에 쏟아져 나왔다. 그는 라모와 쿠프랭으로 이어지는 18세기 프랑스 음악을 잇는 소나타 여섯 곡을 계획했으나 세 곡만 완성했다. (냉대) 원로 생상스는 끝내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흑과 백으로'를 들은 뒤 포레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곡을 쓰는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학사원의 문을 닫아야 한다고 썼다. (수술) 1915년 12월 암 수술을 받았고, 당시 새로 쓰이던 라듐 치료도 받았지만 기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1917년 마지막 완성작인 바이올린 소나타를 끝냈고, 그해 9월 생장드뤼즈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가스통 풀레와 이 곡을 연주한 것이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죽음) 1918년 3월 25일, 독일군의 장거리 포격이 파리를 두드리던 날들 가운데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쉰다섯 살이었다. 장례 행렬은 포성 속 텅 빈 거리를 지났다. 열두 살 슈슈는 이복오빠 라울에게 아버지의 마지막을 적은 편지를 보냈고, 이듬해 7월 디프테리아로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엠마는 1934년까지 살았다.

♪첼로 소나타 (L. 135)1915 (53세)연주 Sol Gabetta (첼로) · Bertrand Chamayou (피아노)

전쟁과 투병, 어머니를 잃은 해 여름 푸르빌에서 쓴 '프랑스 음악가'의 소나타로, 18세기 프랑스 음악에 대한 그리움을 12분 남짓에 응축했다.

  • 세 악장은 '프롤로그', '세레나데', '피날레'다. 프롤로그 첫머리 피아노의 위엄 있는 화음은 쿠프랭과 라모 시대 프랑스 음악의 장중한 시작을 떠올리게 한다.
  • '세레나데'에서 첼로는 활 대신 손가락으로 줄을 튕기는 주법(피치카토)을 섞어 기타나 만돌린처럼 소리를 낸다. 그가 한때 '달에게 토라진 피에로'라는 부제를 생각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세레나데는 끊기지 않고 피날레로 곧장 이어진다. 경쾌하던 피날레가 중간에 느리게 꿈꾸듯 가라앉는 대목이 이 곡의 비밀스러운 중심이다.
  • 길이가 짧고 군더더기가 없어, 첼로 연주자들 사이에서는 음 하나하나의 색과 침묵의 길이를 얼마나 섬세하게 다루느냐로 해석이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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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드뷔시는 아버지가 파리 코뮌에 가담해 투옥되었던 일을 평생 거의 입에 올리지 않았다. 공화국의 훈장을 받고 '프랑스 음악가'라 서명한 그의 이미지와 반란군 대위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잘 어울리지 않았고, 이 대목이 전기 속에 자리를 잡은 것은 연구자들이 당시 재판 기록과 가족 문서를 추적한 20세기 중반 이후였다. 그러나 바로 그 감옥에서의 만남이 없었다면 모테 부인도, 음악원도 없었을 것이다. '펠레아스' 이전에 그는 다른 오페라를 3년 가까이 붙들고 있었다. 카튈 망데스의 대본에 의한 '로드리그와 시멘'이다. 그는 이 화려한 영웅담이 자기 기질과 맞지 않는다며 1893년 무렵 손을 놓았고, 악보는 오랫동안 개인 소장 속에 묻혀 있었다. 학자 리처드 랭엄 스미스가 초고를 정리하고 작곡가 에디슨 데니소프가 관현악을 채운 판본이 1993년 프랑스 리옹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다. 말년의 그를 사로잡은 것은 에드거 앨런 포였다. 그는 포의 '어셔 가의 몰락'을 오페라로 만들려고 대본을 직접 쓰며 여러 해 매달렸지만, 병과 전쟁 속에서 단편만 남기고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오늘날에는 음악학자 로버트 올리지 등이 남은 악보를 이어 붙인 판본이 공연된다. 그의 소리는 생각보다 많이 남아 있다. 1904년 메리 가든의 노래를 피아노로 반주한 음반이 있고, 1913년에는 자동 피아노 회사 벨테미뇽을 위해 '어린이 차지'와 '전주곡' 여러 곡을 직접 연주해 피아노 롤로 남겼다. 이 기록들은 그가 악보보다 훨씬 자유롭게 빠르기를 늘이고 줄였음을 보여 주어, 지금도 연주자들의 해석 논쟁에 쓰인다.

용어 노트 📚🔎

인상주의

(말뜻) 인상(印象)은 도장(印)을 찍은 듯 마음에 남은 모양(象), 곧 받은 느낌을 말한다. 이 이름은 화가 모네의 그림 '인상, 해돋이'를 비꼰 비평에서 처음 나왔다. (음악에서) 사물을 또렷하게 그리기보다 빛과 공기, 물결이 주는 순간의 느낌을 소리로 옮기려 한 음악을 가리킨다. 화음이 흐릿하게 번지고, 분명한 시작과 끝보다 분위기가 앞선다. 비 오는 날 김 서린 창문 너머 풍경을 떠올려 보자. 건물 윤곽은 흐려도 그날의 분위기는 오히려 더 잘 느껴진다. 드뷔시 자신은 이 꼬리표를 싫어했다. (다른 데서는) 미술에서는 모네, 르누아르 같은 19세기 프랑스 화가들이 야외의 빛을 빠른 붓질로 담아낸 화풍을 가리킨다.

가믈란

(말뜻) 자바어로 '두드리다'라는 말에서 왔다고 풀이된다. 이름부터 두드리는 악기의 음악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인도네시아 자바와 발리에서 징, 실로폰처럼 생긴 금속 건반 악기, 북 등이 모여 연주하는 합주다. 여러 악기가 같은 가락을 서로 다른 빠르기로 겹쳐 연주해 소리가 층층이 쌓인다. 친구 한 명은 노래를 느리게, 다른 한 명은 두 배 빠르게 부르면서 둘이 같은 자리에서 만나는 놀이를 상상해 보자. 가믈란은 그런 겹침이 여러 겹으로 이어진다. 드뷔시는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이 소리를 듣고 오래 잊지 못했다.

5음 음계

(음악에서) 한 옥타브 안에서 다섯 음만 쓰는 음계다. 서양의 보통 음계는 일곱 음을 쓰는데, 그중 부딪치기 쉬운 두 음을 빼서 어떤 음을 함께 쳐도 잘 어울린다. 피아노의 검은 건반만 아무렇게나 눌러 보면, 엉터리로 쳐도 신기하게 노래처럼 들린다. 그게 바로 5음 음계다. 우리 민요와 동아시아 음악, 자바의 가믈란에서도 흔히 쓰이며, 드뷔시는 이 음계로 먼 나라나 옛 시절의 느낌을 냈다.

온음음계

(말뜻) 온음(全音)은 반음 두 개를 합친 '온전한' 한 걸음이다. 온음음계는 모든 걸음이 온음인 음계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모든 음 사이가 똑같이 온음 간격인 여섯 음짜리 음계다. 예를 들어 도-레-미-파#-솔#-라#처럼 올라간다. 보통 음계는 반음과 온음이 섞여 있어 어디가 '집'(으뜸음)인지 알 수 있지만, 온음음계는 간격이 모두 같아 집을 찾을 수 없다. 계단 높이가 전부 똑같고 층수 표시도 없는 계단을 떠올려 보자. 어디가 1층인지 몰라 둥둥 떠 있는 느낌이 든다. 드뷔시의 '돛'이 이 음계로 쓰였다.

라이트모티프

(말뜻) 독일어 Leitmotiv에서 왔다. 이끄는(leiten) 동기(Motiv), 곧 이야기를 이끄는 짧은 선율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오페라에서 특정 인물이나 물건, 생각에 붙여 두고 그것이 나오거나 떠오를 때마다 다시 들려주는 짧은 선율이다. 바그너가 크게 발전시켰고, 드뷔시는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서 이를 훨씬 은근하게 썼다. 게임에서 보스가 나오기 직전 늘 같은 음악이 깔리면, 화면을 보지 않아도 누가 오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이 라이트모티프다.

전주곡

(말뜻) 앞(前)에서 연주하는(奏) 곡(曲), 곧 본 무대 앞에 놓이는 곡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원래는 큰 곡이나 예배, 오페라 앞에 붙는 짧은 도입곡이었다. 쇼팽 이후에는 앞뒤 없이 혼자 서는 짧은 피아노 곡을 가리키게 되었고, 드뷔시의 '전주곡' 24곡도 그렇다.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말라르메의 시 앞에 놓인 음악이라는 원래 뜻에 가깝다. 체육 수업 전에 하는 준비 운동이 본 경기의 분위기를 미리 띄우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폭풍의 전주곡'처럼 큰일이 일어나기 전의 조짐을 비유할 때 쓴다.

소나타

(말뜻) 이탈리아어 sonare(소리를 울리다)에서 왔다. 노래로 부르는 곡(칸타타)과 짝을 이루어 '악기로 연주하는 곡'이라는 뜻이었다. (음악에서) 피아노 혼자, 또는 피아노와 다른 악기 하나처럼 적은 수의 악기를 위해 쓴, 여러 악장으로 된 기악곡이다. 악장마다 빠르기와 성격이 달라 서로 대비를 이룬다. 축구 경기가 전반전, 후반전으로 나뉘어 흐름이 바뀌듯, 소나타도 악장마다 분위기가 바뀌며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드뷔시는 말년에 18세기 프랑스 전통을 잇는 소나타 여섯 곡을 계획했다.

연탄

(말뜻) 이어서(連) 탄다(彈)는 뜻으로, 한 악기를 여러 손이 함께 이어 친다는 말이다. (음악에서) 피아노 한 대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네 손으로 치는 연주다. 한 사람은 높은 음, 다른 사람은 낮은 음을 맡는다. 음반이 없던 시절에는 관현악곡이나 발레곡을 연탄으로 편곡해 집에서 즐겼다. 친구와 피아노 의자에 나란히 앉아 '젓가락 행진곡'을 함께 쳐 본 적이 있다면 그게 바로 연탄이다. (다른 데서는) 소리가 같은 '연탄(煉炭)'은 한자가 다른 말로, 겨울에 때던 구멍 뚫린 석탄 덩어리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