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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urice Ravel

모리스 라벨 (1875–1937)

“그런데 나는 아직 머릿속에 음악이 이렇게 많은데.”

한눈에 보기 🔭💭

1. 뿌리프랑스 시부르 출생바스크 어머니포레 문하2. 도약물의 유희로마상 스캔들드뷔시와 경쟁3. 발레어미 거위다프니스와 클로에댜길레프의 의뢰4. 전쟁트럭 운전병어머니 별세쿠프랭의 무덤5. 장인벨베데르 정착볼레로G장조 협주곡6. 말년택시 사고실어증1937년 별세라벨1875–1937바스크 어머니와 발명가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소…
삶의 여정 🧭🗺️
N프랑스시부르1875파리1875–1921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마리 들루아르

    바스크 출신의 어머니로, 그녀가 들려준 스페인 노래는 라벨 음악의 뿌리가 되었고 1917년 그녀의 죽음은 그를 깊이 흔들었다.

  • 우정리카르도 비녜스

    음악원 시절의 단짝으로, 「물의 유희」와 「밤의 가스파르」 등 여러 피아노곡을 초연했다.

  • 영향에릭 사티

    아버지의 소개로 만난 선배로, 관습을 벗어난 화성으로 젊은 라벨에게 새 길을 보여 주었다.

  • 스승가브리엘 포레

    제자의 개성을 존중한 작곡 스승으로, 라벨은 「물의 유희」와 현악 사중주를 그에게 바쳤다.

  • 경쟁클로드 드뷔시

    서로 존경하면서도 평단의 편 가르기 속에 멀어졌고, 라벨은 그의 죽음 뒤 추모 이중주를 썼다.

  • 후원이다 루빈시테인

    「볼레로」를 의뢰한 무용가로, 병든 라벨의 1935년 스페인·모로코 여행 경비도 댔다.

YouTube에서 8곡 이어 듣기 ↗

I. 바스크의 아이 · 1875–1889 (0–14세)

(출생) 1875년 3월 7일, 프랑스 남서부 바스크 지방의 항구 마을 시부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피에르조제프 라벨은 스위스 출신의 기술자로, 증기와 가스를 이용한 엔진과 초기 자동차를 연구한 발명가였다. 어머니 마리 들루아르는 시부르 태생의 바스크 여인이었다. 두 사람은 아버지가 스페인에서 철도 일을 하던 무렵 만나 1874년 파리에서 결혼했다. (파리) 아기가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가족은 파리로 옮겼고, 라벨은 이후 반세기 가까이 파리에서 살았다. 1878년에는 동생 에두아르가 태어났다. 에두아르는 아버지를 따라 기술자가 되었고, 평생 형의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 남았다. 라벨은 어머니를 각별히 따랐다. 어머니가 들려준 스페인 노래와 바스크의 기억은 그가 평생 자신의 뿌리로 여긴 것이었다. (기계)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공장과 작업장을 구경시켜 주곤 했다. 정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장치에 대한 애정은 라벨의 기질이 되었다. 훗날 스트라빈스키가 그를 '가장 완벽한 스위스 시계공'이라 불렀다는 말이 전하는데, 칭찬과 놀림이 반쯤 섞인 이 별명은 아버지의 나라와 그의 작곡 방식을 함께 가리킨다. (입문) 음악을 좋아한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일찍 알아보았다. 라벨은 일곱 살에 앙리 기스에게 피아노를, 열두 살 무렵 샤를르네에게 화성과 작곡의 기초를 배웠다. 연습을 그리 즐기지 않아 어머니가 용돈을 걸고 피아노 앞에 앉혔다는 일화도 전한다.

II. 음악원의 멋쟁이 · 1889–1900 (14–25세)

(박람회) 1889년, 열네 살에 파리 음악원 피아노 예비반에 들어갔다. 같은 해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그는 자바의 가믈란 합주와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지휘한 러시아 음악회를 들었다. 낯선 음계와 음색은 오래 그의 귀에 남았다. 그는 뒷날까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악보를 곁에 두고 악기를 짜 맞추는 기술, 곧 관현악법을 익혔다. (비녜스) 1891년 샤를 드 베리오의 피아노 반에 진학한 무렵, 동갑내기 스페인 피아니스트 리카르도 비녜스와 단짝이 되었다. 둘은 보들레르와 포를 함께 읽고 샤브리에의 음악에 열광했다. 비녜스는 이후 라벨의 중요한 피아노곡을 잇달아 초연하게 된다. (사티) 1893년 무렵에는 아버지의 소개로 에릭 사티를 만났다. 학교의 규칙을 비껴가는 사티의 화성은 젊은 라벨에게 해방감을 주었다. 반면 음악원 성적은 신통치 않아, 상을 받지 못한 그는 1895년 피아노 반에서 밀려났다. (포레) 1897년 음악원에 돌아와 가브리엘 포레의 작곡 반에 들었고, 앙드레 제달주에게 대위법을 배웠다. 포레는 제자의 개성을 억누르지 않았고, 둘은 평생 서로를 아꼈다. 1899년의 피아노곡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은 곧 살롱의 인기곡이 되었다. 라벨은 제목을 말의 울림이 좋아서 골랐을 뿐이라고 했다. 1900년 푸가 시험에 떨어져 정규생 자격을 잃었지만, 청강생으로 포레의 반에 남았다. (댄디) 키가 작고 마른 그는 옷차림에 공을 들여 친구들 사이에서 멋쟁이로 통했다.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차분한 태도도 이 무렵부터 그의 인상이 되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M. 19)1899 (관현악판 1910) (24–35세)연주 조성진 (피아노)

포레 문하 시절 라벨을 처음 살롱에 알린 곡이다. 그는 훗날 이 곡의 형식이 빈약하다고 스스로 비판하면서도 1910년 관현악으로 다시 옮겼다.

  • 관현악판은 호른 독주가 첫 선율을 부르며 시작한다. 여린 음을 둥글고 고르게 이어 가야 해서 호른 주자들에게 까다로운 대목으로 꼽힌다.
  • 같은 첫 선율이 다른 두 대목 사이사이에 되돌아오는 구조(론도)다. 돌아올 때마다 선율을 맡는 악기와 반주가 달라지는 것을 비교해 들으면 좋다.
  • 라벨은 너무 느리게 치는 연주자에게 '죽은 것은 왕녀이지 파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연주마다 빠르기가 크게 다르니 몇 가지 녹음을 견주어 볼 만하다.
  • 슬픈 사연을 그린 곡이 아니라, 옛 스페인 궁정에서 어린 왕녀가 추었을 법한 춤을 떠올린 곡이라고 라벨은 설명했다. 장례보다는 고풍스러운 장면으로 들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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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아파치와 로마상 · 1900–1908 (25–33세)

(아파치) 1900년 무렵 비녜스, 작곡가 플로랑 슈미트, 시인 레옹폴 파르그 등과 스스로를 '아파치(불량배)'라 부르는 모임을 꾸렸다. 1902년 드뷔시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초연되자 이들은 객석을 지키며 응원했다. (물) 1901년 피아노곡 「물의 유희」를 써서 '친애하는 스승 가브리엘 포레께' 바쳤다. 리스트의 「에스테 장의 분수」에 빚진 이 곡은 분수의 반짝임을 새로운 피아노 소리로 옮겼다. 1903년 완성한 현악 사중주를 두고는 드뷔시가 한 음도 고치지 말라고 격려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로마상) 그 사이 젊은 작곡가의 등용문인 로마 대상에 다섯 차례 도전했다. 1901년 3위가 최고 성적이었다. 나이 제한에 걸리는 마지막 해인 1905년, 이미 이름이 알려진 그가 예선에서 떨어지자 언론이 들끓었다. 본선 진출자가 모두 심사위원 샤를 르네프뵈의 제자였다는 사실까지 알려졌고, 음악원장 테오도르 뒤부아가 물러난 뒤 포레가 원장이 되었다. (드뷔시) 드뷔시와는 서로의 음악을 높이 샀지만, 평론가들이 라벨을 드뷔시의 모방자로 몰면서 지지자들이 두 편으로 갈렸다. 라벨은 「물의 유희」가 드뷔시의 비슷한 피아노곡보다 먼저 나왔다고 반박했다. 드뷔시가 아내 릴리를 떠난 뒤 친구들이 그녀를 돕는 모금에 라벨이 참여한 일도 둘 사이를 멀게 했다. (스페인) 1907~08년 「스페인 랩소디」와 오페라 「스페인의 시간」을 썼다. 어머니의 노래로 익힌 스페인은 그에게 이국이 아니라 또 하나의 고향이었다. 1908년 피아노 모음곡 「밤의 가스파르」를 완성했고, 그해 10월 건강이 기울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밤의 가스파르 (M. 55)1908 (33세)실황 「Ondine」 조성진 (피아노) · 카네기홀

아버지가 쇠약해지던 1908년, 알로이시우스 베르트랑의 산문시 세 편에 붙인 피아노 모음곡이다. 그해 가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 1곡 「옹딘」은 인간을 사랑한 물의 요정 이야기다. 첫머리에서 오른손이 잘게 떨리듯 반짝이는 화음을 이어 가고, 그 아래로 요정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 2곡 「교수대」에서는 B플랫(시♭) 한 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저녁 종소리처럼 되풀이된다. 이 음을 끝까지 같은 세기와 간격으로 지키는 것이 연주의 관건이다.
  • 3곡 「스카르보」는 밤에 나타나 방 안을 휘젓는 난쟁이 요괴다. 라벨은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보다 어려운 곡을 쓰려 했다고 밝혔고, 빠른 같은 음 연타와 큰 도약 때문에 가장 어려운 피아노곡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 악보 첫머리마다 베르트랑의 시가 실려 있다. 시를 먼저 읽고 들으면 음악이 그리는 장면이 훨씬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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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동화와 발레 · 1908–1914 (33–39세)

(아이들) 라벨은 결혼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었다. 연애에 관한 확실한 기록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신 친구의 집을 드나들며 아이들과 허물없이 놀았다. 폴란드계 친구 시파 고뎁스키 부부의 남매 미미와 장을 위해 1908~10년 네 손을 위한 피아노곡 「어미 거위」를 썼다. 페로와 도누아 부인의 동화를 담은 이 곡은 1911년 관현악 모음곡으로, 1912년 발레로 다시 태어났다. (독립) 1909년에는 포레를 회장으로 모시고 독립 음악 협회 창립에 앞장섰다. 뱅상 댕디가 이끌던 국민음악협회가 젊은 작곡가들의 새 작품을 외면한다는 불만에서였다. (발레) 같은 해 세르게이 댜길레프의 발레 뤼스에게서 의뢰를 받아 3년 가까이 「다프니스와 클로에」에 매달렸다. 1912년 6월 니진스키와 카르사비나 주연으로 초연되었으나, 안무가 포킨과 댜길레프의 갈등 속에 첫 시즌 공연은 몇 차례에 그쳤다. 라벨은 이 곡을 '안무 교향곡'이라 불렀고, 그의 작품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협업) 1913년 댜길레프의 의뢰로 스트라빈스키와 함께 무소륵스키의 미완성 오페라 「호반시치나」 편곡에 참여했다. 이때 스트라빈스키에게서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 이야기를 듣고 그 편성에 자극받아 「말라르메의 시 세 편」을 썼다. (삼중주) 1914년 여름, 바스크 해안의 생장드뤼즈에서 피아노 삼중주를 쓰던 중 전쟁이 터졌다. 그는 입대하기 위해 남은 부분을 몇 주 사이에 서둘러 끝냈다.

♪어미 거위 모음곡 (M. 60)1908–1910 (관현악판 1911) (33–36세)지휘 Edward Gardner · Radio Filharmonisch Orkest

고뎁스키 집안의 어린 남매를 위해 쓴 네 손 피아노곡이다. 아이들 손에 맞춘 단순한 짜임에, 뒤에 라벨의 섬세한 관현악이 더해졌다.

  • 「엄지 동자」에서는 새들이 숲길의 빵 부스러기를 쪼아 먹는 장면에서 바이올린이 미끄러지듯 오르내리는 음(글리산도)과 플루트·피콜로가 새소리를 낸다. 박자가 계속 바뀌는 것은 길 잃은 아이의 머뭇거리는 걸음처럼 들린다.
  • 「파고다의 여왕 레드로네트」는 피아노의 검은 건반만으로 칠 수 있는 다섯 음짜리 음계(5음 음계)로 동양풍 분위기를 낸다. 첼레스타·실로폰·징 소리를 찾아 들어 보자.
  • 「미녀와 야수의 대화」에서는 클라리넷이 미녀를, 아주 낮은 목관악기 콘트라바순이 야수를 맡는다. 하프가 쓸어내린 뒤 독주 바이올린이 나오면 야수가 왕자로 변한 순간이다.
  • 마지막 「요정의 정원」은 느린 현악 합주에서 시작해 종소리처럼 반짝이는 절정으로 천천히 부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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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제2번 (M. 57)1909–1912 (34–37세)지휘 Jukka-Pekka Saraste · WDR Sinfonieorchester

댜길레프의 발레 뤼스를 위해 3년 가까이 매달린 발레에서 마지막 장면들을 엮은 모음곡이다. 라벨의 관현악법이 가장 화려하게 펼쳐진 곡으로 꼽힌다.

  • 「해돋이」에서는 목관과 하프가 시냇물처럼 잘게 움직이는 위로 낮은 현악기가 떠오르는 해 같은 긴 선율을 천천히 펼친다. 피콜로와 독주 바이올린이 새소리를 더한다.
  • 「무언극」의 길고 자유로운 플루트 독주는 목신 판이 갈대 피리를 부는 장면이다. 오케스트라 플루트 입단 시험에 단골로 나오는 대목이다.
  • 마지막 「전원의 춤」은 한 마디를 다섯 박으로 세는 5/4박자로 휘몰아친다. 박자를 세기 어려웠던 무용수들이 '세르게이 댜길레프'를 다섯 음절로 외며 맞췄다는 일화가 전한다.
  • 원곡에는 가사 없이 소리로만 부르는 합창이 들어 있다. 합창이 있는 녹음과 없는 녹음을 비교해 들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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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전쟁과 어머니 · 1914–1920 (39–45세)

(전선) 서른아홉의 라벨은 체중이 2킬로그램 모자라 입대를 거절당했다. 조종사를 지원했다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끈질긴 시도 끝에 1916년 3월 군용 트럭 운전병이 되어 베르됭 인근을 달렸다. 그는 자기 트럭에 '아델라이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해 가을 이질에 걸려 수술을 받았다. (어머니) 1917년 1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라벨은 깊은 우울에 빠져 한동안 거의 아무것도 쓰지 못했고, 그해 6월 건강 악화로 제대했다. (무덤) 1917년 완성한 피아노 모음곡 「쿠프랭의 무덤」은 18세기 프랑스 건반 음악을 기리는 형식이다. 여섯 곡은 각각 전사한 친구들에게 바쳐졌고, 마지막 곡 토카타는 피아니스트 마르그리트 롱의 남편 조제프 드 마를리아브의 영전에 놓였다. 음악이 너무 밝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죽은 이들은 영원한 침묵 속에서 이미 충분히 슬프다'고 답했다고 전한다. (추모) 1918년 3월 드뷔시가 세상을 떠났다. 라벨은 멀어졌던 선배를 기리는 음악지 추모 특집에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주를 내놓았고, 이 곡은 뒤에 소나타로 자랐다. (결별) 1919~20년에는 댜길레프를 위해 「라 발스」를 썼다. 빈 왈츠에 대한 찬가로 구상했지만, 피아노 연주로 들은 댜길레프는 걸작이되 발레가 아니라 '발레의 초상화'라며 받지 않았다. 둘은 이 일로 틀어졌다. 같은 해 레지옹 도뇌르 수훈자 명단에 동의 없이 이름이 오르자 그는 훈장을 거절했다.

♪쿠프랭의 무덤 (M. 68)1914–1917 (관현악판 1919) (39–44세)지휘 Jaime Martín · hr-Sinfonieorchester

어머니를 잃고 전선에서 돌아온 해에 완성했다. 곡마다 전사한 친구의 이름을 새겼지만, 음악은 슬픔을 내세우지 않고 맑은 옛 춤곡의 모습을 지킨다.

  • 관현악판 「프렐류드」에서는 오보에가 쉬지 않고 빠른 음표를 이어 간다. 숨 쉴 틈이 거의 없어 오보에 주자들에게 악명 높은 대목이다.
  • 라벨은 피아노곡 여섯 가운데 「프렐류드」 「포를란」 「미뉴에트」 「리고동」 네 곡만 관현악으로 옮겼다. 두 판본을 견주면 같은 곡의 색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 수 있다.
  • 피아노판 마지막 곡 「토카타」는 같은 음을 빠르게 연달아 두드리는 손놀림으로 이루어져 있어 피아니스트에게 매우 어려운 곡이다.
  • 「리고동」은 활기찬 바깥 부분 사이에 오보에가 부르는 쓸쓸한 가운데 부분이 끼어 있다. 밝은 표면 아래 감춘 그늘이 드러나는 순간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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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발스 (M. 72)1919–1920 (44–45세)지휘 Pablo Heras-Casado · hr-Sinfonieorchester

빈 왈츠에 바치는 찬가로 구상했지만 전쟁을 막 지나온 귀에는 다르게 들렸다. 댜길레프가 이 곡을 거절하면서 둘의 관계는 끝났다.

  • 시작은 여러 갈래로 나뉜 콘트라베이스가 낮게 웅얼거리는 소리다. 악보 서문의 말처럼 '소용돌이치는 구름 사이로 왈츠를 추는 쌍들이 언뜻 보이는' 장면이다.
  • 라벨은 무대를 1855년 무렵의 황실 궁정이라고 적었다. 구름이 걷히고 무도회장이 드러나는 순간, 왈츠 선율이 오케스트라 전체로 환하게 퍼진다.
  • 후반부로 갈수록 왈츠의 박자가 비틀리고 소리가 뒤엉키다 마지막에 폭발하듯 무너진다. 흔히 제1차 세계대전과 옛 유럽의 붕괴를 떠올리지만, 라벨 자신은 현실과의 관련을 부인했다.
  • 라벨이 직접 만든 두 대의 피아노판도 자주 연주된다. 관현악의 색채와 피아노의 타악기 같은 박력을 비교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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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벨베데르의 장인 · 1921–1932 (46–57세)

(벨베데르) 1921년 파리 서쪽 몽포르라모리의 작은 집 '벨베데르'를 사서 정착했다. 그는 방을 일본 판화와 태엽 장난감, 모조 골동품으로 채우고 샴고양이를 길렀다. 동생 에두아르와 바이올리니스트 엘렌 주르당모랑주를 비롯한 친구들이 주말마다 찾아왔다. 수입은 출판사 뒤랑과의 계약, 그리고 늘어난 지휘·연주 여행에서 나왔다. (편곡) 1922년 지휘자 쿠세비츠키의 의뢰로 무소륵스키의 피아노곡 「전람회의 그림」을 관현악으로 옮겼고, 이는 오늘날 가장 널리 연주되는 판본이 되었다. 1925년에는 콜레트의 대본으로 쓴 오페라 「어린이와 마법」을 몬테카를로에서 초연했다. (미국) 재즈에 대한 관심은 1927년 바이올린 소나타의 '블루스' 악장에 이미 드러났다. 1928년 1월부터 넉 달 동안 미국과 캐나다를 순회하며 큰 환대를 받았고, 뉴욕 할렘에서 재즈를 듣고 조지 거슈윈과도 어울렸다. (볼레로) 귀국 뒤 무용가 이다 루빈시테인의 의뢰로 「볼레로」를 썼다. 작은북이 같은 리듬(오스티나토)을 끝까지 되풀이하는 위에서 두 선율이 악기만 바꿔 가며 점점 세지는(크레셴도) 곡이다. 라벨 스스로 '음악이 없는 관현악의 직물'이라 부른 이 실험은 뜻밖에 그의 가장 유명한 곡이 되었다. (협주곡) 1929~31년에는 두 피아노 협주곡을 나란히 썼다. 하나는 전쟁에서 오른팔을 잃은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위한 「왼손을 위한 협주곡」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이 악보를 마음대로 고쳐 연주하자 둘은 크게 다투었다. 다른 하나인 G장조 협주곡을 두고 라벨은 '모차르트와 생상스의 정신으로' 썼다고 말했다.

♪볼레로 (M. 81)1928 (53세)지휘 Markus Stenz · KBS교향악단 (2025)

미국 순회에서 돌아온 해 루빈시테인의 의뢰로 쓴 실험작이다. 라벨은 거기에 음악이 없다고 했지만, 이 곡은 그의 이름과 가장 단단히 묶였다.

  • 작은북이 아주 여리게 시작한 같은 리듬을 처음부터 끝까지 되풀이한다. 이 리듬을 흔들림 없이 지키는 일은 타악기 주자에게 대단한 집중력을 요구한다.
  • 선율은 두 개뿐이다. 플루트, 클라리넷, 바순, 색소폰 등이 차례로 받아 부르니, 같은 선율이 악기마다 얼마나 다르게 들리는지에 귀 기울여 보자.
  • 중간에 호른 위로 첼레스타와 두 대의 피콜로가 서로 다른 음높이에서 같은 선율을 겹치는 대목이 있다. 악기 하나하나가 아니라 오르간 같은 새 음색이 들리는, 라벨 관현악법의 백미로 꼽힌다.
  • 내내 같은 조(다장조)를 지키다가 끝 무렵 갑자기 마장조로 옮겨 가고, 쌓인 소리가 한꺼번에 무너지듯 끝난다.
  • 토스카니니가 빠르게 지휘하자 라벨이 항의했다는 일화가 있다. 일정한 빠르기를 지킬 때 쌓이는 긴장이 이 곡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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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협주곡 G장조 (M. 83)1929–1931 (54–56세)연주 Anna Fedorova (피아노) · Brussels Philharmonic

미국에서 듣고 온 재즈와 모차르트에 대한 존경이 한데 섞인 협주곡이다. 1932년 1월의 초연은 그가 무대에서 거둔 마지막 큰 성공이 되었다.

  • 1악장은 채찍 소리를 내는 타악기(슬랩스틱)의 '탁' 소리로 시작한다. 이어 피콜로가 흔히 바스크풍으로 설명되는 경쾌한 첫 주제를 연다.
  • 1악장 곳곳에서 소리를 막아 끼운 트럼펫(약음기), 블루스처럼 꺾이는 음 같은 재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 2악장은 피아노 혼자 긴 선율을 3분 가까이 부르며 시작한다. 라벨은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오중주를 곁에 두고 두 마디씩 애써 썼다고 털어놓았다고 전한다.
  • 2악장 후반에는 잉글리시 호른이 같은 선율을 이어받고, 피아노는 그 위로 가는 장식음을 흩뿌린다. 독주와 반주의 역할이 뒤바뀌는 순간이다.
  • 3악장은 짧고 빠르게 몰아친다. 피아노와 관악기가 쉴 새 없이 주고받아 연주자들 사이에서 맞추기 까다로운 악장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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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머릿속의 음악 · 1932–1937 (57–62세)

(사고) 1932년 1월 G장조 협주곡이 마르그리트 롱의 독주와 라벨의 지휘로 초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해 10월 파리에서 탄 택시가 사고를 당해 그는 얼굴과 머리를 다쳤다. (실어) 이듬해부터 몸과 말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기 시작했다. 수영을 하다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고, 글자를 제대로 쓰지 못해 짧은 편지 한 장에 여러 날이 걸렸다. 마지막 작품은 영화를 위해 쓰기 시작해 1933년에 마친 가곡집 「둘시네아에게 마음을 둔 돈키호테」였다. 지성과 음악적 판단은 남아 있었으나, 머릿속의 악상을 악보로 옮길 수 없었다. (여행) 1935년 이다 루빈시테인이 경비를 대어 조각가 친구 레옹 레리츠와 함께 스페인과 모로코를 여행했다. 어머니의 노래가 태어난 땅을 다시 본 마지막 길이었다. 그 무렵 그는 친구에게 '아직 머릿속에 음악이 이렇게 많은데'라고 털어놓았다고 전한다. (수술) 1937년 12월 신경외과의 클로비스 뱅상이 뇌수술을 했으나 종양은 발견되지 않았다. 수술 뒤 잠시 깨어났다가 혼수에 빠졌고, 12월 28일 예순둘의 나이로 숨졌다. 그는 파리 근교 르발루아페레 묘지의 부모 곁에 묻혔고, 유산은 동생 에두아르에게 돌아갔다. 그의 병명은 오늘날까지 확정되지 않았다.

덜 알려진 이야기

(공장) 섬세한 인상주의 작곡가라는 이미지와 달리, 라벨은 공장의 풍경에 매혹된 사람이었다. 1905년 여름 친구들과 요트를 타고 네덜란드와 독일의 운하를 여행하던 그는 제자 모리스 들라주에게 라인강 변 공업 지대를 녹은 쇠의 성, 불타는 성당에 빗대고 벨트와 기적 소리의 교향곡에 감탄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는 「볼레로」의 기계적인 반복을 공장의 리듬과 잇는 해석에 자주 근거로 인용된다. (신념) 1916년 전선에 있던 라벨은 독일·오스트리아 음악의 연주를 막자는 '프랑스 음악 수호 국민연맹'의 가입 권유를 편지로 거절했다. 쇤베르크나 바르토크 같은 외국 작곡가를 외면하면 프랑스 음악이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는 이유였다. 애국심이 들끓던 시절의 이 편지는 트럭 운전병 일화에 가려 일대기에서 짧게 지나가곤 한다. (진단) 그의 말년 병은 1948년 신경과 의사 테오필 알라주아닌이 '실어증을 앓은 한 음악가'로 학계에 보고한 사례로 남았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환자는 라벨이었다. 오늘날 신경학자들은 전두측두엽 치매 같은 퇴행성 질환을 거론하며, 택시 사고 이전부터 병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볼레로」의 반복이 초기 증상의 흔적이라는 가설도 나왔지만, 근거가 부족해 학계는 조심스럽게 다룬다.

용어 노트 📚🔎

관현악법

(말뜻) 관현악(管絃樂)은 관(管), 곧 불어서 소리 내는 관악기와 현(絃), 곧 줄을 켜거나 뜯는 현악기로 하는 음악, 다시 말해 오케스트라 음악이다. 관현악법은 그 음악을 짜는 방법이라는 뜻이고, 서양에서는 오케스트레이션이라 부른다. (음악에서) 어떤 선율을 어떤 악기에게 맡기고, 어떤 악기들을 겹쳐 울릴지 정하는 기술이다. 같은 선율도 플루트가 부르면 맑고 가볍게, 첼로가 부르면 깊고 따뜻하게 들린다. 학교 연극에서 같은 대본을 두고 어떤 친구에게 어떤 배역을 맡기느냐에 따라 연극의 느낌이 확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라벨은 이 기술의 대가로 꼽히며, 무소륵스키의 피아노곡 「전람회의 그림」을 오케스트라용으로 옮긴 솜씨가 특히 유명하다. (다른 데서는) 오케스트레이션은 컴퓨터 분야에서 여러 서버와 프로그램이 함께 잘 돌아가도록 자동으로 조율하고 관리하는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파반

(음악에서) 16~17세기 유럽 궁정에서 추던 느리고 위엄 있는 춤, 또는 그 춤을 위한 음악이다. 사람들이 짝을 지어 천천히 행렬하듯 걸으며 추었고, 음악도 대개 두 박자로 차분하게 흐른다.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이 음악에 맞춰 천천히 발을 맞춰 입장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파반의 걸음걸이와 비슷하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은 이 옛 춤의 느린 걸음을 빌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낸 곡이다.

모음곡

(말뜻) 여러 곡을 모아 놓은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스위트(suite)는 프랑스어로 '뒤따르는 것, 잇따르는 것'이라는 뜻이어서, 작은 곡들이 줄지어 이어지는 모양을 가리킨다. (음악에서) 짧은 곡 여러 개를 한 묶음으로 엮은 작품이다. 옛날에는 여러 춤곡을 이어 붙인 형태가 많았고, 근대에는 발레나 오페라에서 좋은 장면만 골라 연주회용으로 엮기도 했다. 좋아하는 노래들을 골라 하나의 재생 목록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은 여섯 곡짜리 피아노 모음곡이고,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은 발레에서 장면을 골라 엮은 것이다. (다른 데서는) 호텔의 스위트룸도 같은 말에서 왔는데, 여러 방이 이어져 한 벌을 이룬 객실을 뜻한다.

토카타

(말뜻) 이탈리아어 토카레(toccare), 곧 '만지다, 건드리다'에서 나온 말이다. 건반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동작이 이름에 담겨 있다. (음악에서) 손가락의 빠르고 화려한 움직임을 뽐내도록 만든 건반악기 곡이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빠른 음표가 특징이라 연주자의 기술을 시험하는 곡이 많다. 리듬 게임에서 빠르게 쏟아지는 노트를 한 번도 놓치지 않고 계속 두드려야 하는 고난도 곡을 떠올리면 된다.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 마지막 곡 토카타는 같은 음을 빠르게 연달아 두드리는 손놀림이 많아 매우 어렵기로 이름났다.

오스티나토

(말뜻) 이탈리아어로 '고집스러운, 끈질긴'이라는 뜻이다. 한 가지를 끈질기게 되풀이하는 모습이 이름에 들어 있다. (음악에서) 짧은 리듬이나 선율 조각을 곡이 이어지는 동안 계속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 위에서 다른 선율이 바뀌고 자라나도 오스티나토는 바닥처럼 꿋꿋이 반복된다. 운동회 응원에서 '짝짝 짝짝짝' 박수가 계속 반복되는 동안 그 위로 여러 응원 구호가 바뀌어 가는 것과 비슷하다. 라벨의 「볼레로」에서 작은북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리듬을 되풀이하는 것이 대표적인 오스티나토다.

크레셴도

(말뜻) 이탈리아어 크레셰레(crescere), 곧 '자라다'에서 나온 말로, '자라나면서'라는 뜻이다. 소리가 자라난다는 그림이 이름에 담겨 있다. (음악에서) 소리를 점점 세게 하라는 지시다. 악보에는 글자로 쓰거나 옆으로 벌어지는 꺾쇠 모양(<)으로 표시한다. 운동회에서 결승선이 가까워질수록 응원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과 같다. 라벨의 「볼레로」는 곡 전체가 아주 여린 소리에서 시작해 끝까지 커지기만 하는, 하나의 거대한 크레셴도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데서는) 일상의 글에서는 사건이나 감정이 점점 고조되어 절정으로 치닫는 것을 비유할 때도 쓴다.

협주곡

(말뜻) 협주곡(協奏曲)은 함께(協) 연주하는(奏)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콘체르토의 라틴어 뿌리 콘체르타레(concertare)에는 '겨루다'라는 뜻도 있어서,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겨루듯 주고받는 이 음악의 성격이 이름에 이미 들어 있다. (음악에서)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독주 악기 하나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곡이다. 독주자가 실력을 뽐내는 대목과 오케스트라가 받쳐 주거나 맞서는 대목이 번갈아 나온다. 반 대항 합창 대회에서 솔로를 맡은 친구가 한 소절을 부르면 반 전체가 이어받아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라벨은 1929~31년에 두 피아노 협주곡을 썼는데, 하나는 왼손만 쓰는 피아니스트를 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