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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lai Rimsky-Korsakov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1844–1908)

"관현악법은 작품의 영혼 그 자체의 일부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러시아 티흐빈 출생예순 넘은 아버지수도원 종과 민요2. 바다해군 사관생도알마즈호 세계 항해제복 입은 초연3. 무리발라키레프의 지도무소륵스키와 한 방나데즈다와 결혼4. 독학스물일곱 살 교수수십 곡의 푸가눈 아가씨5. 색채셰에라자드스페인 기상곡친구들 유작 완성6. 말년1905년 해임황금 수탉 검열스트라빈스키 장송가림스키코르사코프1844–1908해군 장교에서 출발해 러시아 관현악의 색채를 …
삶의 여정 🧭🗺️
N러시아티흐빈1844–1856상트페테르부르크1856–1908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스승밀리 발라키레프

    열일곱 살 생도에게 교향곡을 쓰게 하며 그를 음악의 길로 이끌었지만, 1890년대에 관계가 틀어졌다.

  • 우정모데스트 무소륵스키

    한 방에서 피아노를 나눠 쓰고 결혼식 들러리를 서 준 친구였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유작을 완성하고 다듬었다.

  • 가족나데즈다 림스카야코르사코바(푸르골트)

    피아니스트였던 아내로, 남편의 곡을 편곡하고 비평한 첫 독자였으며 사후 회고록 출간을 도왔다.

  • 제자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

    열네 살에 개인 제자가 되어 무소륵스키와 보로딘의 유작 완성을 함께했고, 1905년에는 스승과 함께 음악원을 떠났다가 원장이 되어 돌아왔다.

  • 후원미트로판 벨랴예프

    목재상 출신 출판인으로, 러시아 교향악 연주회와 출판으로 그와 젊은 러시아 작곡가들을 뒷받침했다.

  • 제자이고리 스트라빈스키

    아들의 대학 친구로 집을 드나들다 개인 제자가 되었고, 스승이 세상을 떠나자 「장송가」를 바쳤다.

YouTube에서 5곡 이어 듣기 ↗

I. 티흐빈의 종소리 · 1844–1856 (0–12세)

(티흐빈) 1844년 3월, 러시아 제국(오늘날 러시아) 노브고로드현의 소도시 티흐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안드레이 페트로비치는 볼히니아현 부지사를 지낸 귀족 관리였다. 폴란드인들을 너그럽게 대했다는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난 뒤 고향에 은거하고 있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그는 이미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였다. (집안) 어머니 소피야 바실리예브나는 지주와 농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다. 스물두 살 위의 형 보인은 해군 장교였고, 훗날 해군 사관학교 교장까지 지냈다. 큰아버지도 제독이었다. 이 집안에서 둘째 아들이 바다로 가는 것은 거의 정해진 길이었다. (민요) 음악은 생활 속에 있었다. 아버지는 귀로 익힌 노래를 악보 없이 피아노로 치곤 했다. 니콜라이는 여섯 살 무렵부터 동네 선생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티흐빈 수도원의 종소리와 정교회 성가, 하인과 농민들이 부르던 민요가 일찍부터 귀에 배었다. 그래도 음악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는 먼 바다에서 형이 보내오는 편지와 항해 이야기를 읽으며 바다를 동경했다. (출발) 1856년, 열두 살의 소년은 해군 사관학교에 들어가려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났다. 훗날 그의 오페라와 관현악에는 교회 종과 민요, 그리고 끝없이 일렁이는 바다가 거듭 나타난다. 그 재료는 모두 이 작은 도시의 유년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II. 제복 입은 작곡가 · 1856–1865 (12–21세)

(오페라) 사관학교의 규율은 엄격했다. 그래도 주말이면 피아노 레슨과 오페라 극장이 그를 기다렸다. 그는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와 「차르에게 바친 목숨」을 들으며 처음으로 음악에 깊이 사로잡혔다. 1859년부터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표도르 카닐레는 화성과 작곡의 기초를 알려 주었고, 소년의 습작을 진지하게 봐 주었다. (발라키레프) 1861년 말, 카닐레는 그를 밀리 발라키레프에게 데려갔다. 그 집에는 체자르 큐이와 모데스트 무소륵스키가 드나들고 있었다. 발라키레프는 열일곱 살 생도의 습작을 보고 곧장 교향곡을 써 보라고 했다. 체계적인 이론 공부는 시키지 않았다. 대신 함께 악보를 읽고 고쳐 가며 그를 이끌었다. (항해) 1862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쾌속 범선 알마즈호에 올라 약 2년 반 동안 항해했다. 배는 영국 그레이브젠드, 남북전쟁 중이던 미국의 뉴욕과 볼티모어,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지중해를 거쳤다. 그레이브젠드에 머무는 동안 그는 교향곡의 느린 악장을 썼다. 그러나 항해가 길어질수록 음악은 멀어졌다. 회고록에는 장교 생활 속에서 음악에 대한 생각이 시들어 갔다고 적혀 있다. (데뷔) 1865년 그가 귀국하자 발라키레프가 다시 그를 붙잡았다. 그해 12월, 발라키레프의 지휘로 무료음악학교 연주회에서 그의 교향곡 1번이 초연되었다. 박수에 답하러 무대에 오른 작곡가는 해군 제복 차림의 젊은 장교였고, 청중은 그 모습에 놀랐다. 큐이는 이 곡을 '최초의 러시아 교향곡'이라 불렀다. 안톤 루빈시테인이 먼저 교향곡을 썼으니 과장이었지만, 이 말에는 젊은 민족주의 음악가들의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III. 힘센 무리 · 1865–1873 (21–29세)

(무리) 1867년 비평가 블라디미르 스타소프는 발라키레프를 중심으로 모인 작곡가들을 '힘센 무리'라고 불렀다. 발라키레프, 큐이, 무소륵스키, 화학자 알렉산드르 보로딘, 그리고 림스키코르사코프였다. 이 다섯 가운데 음악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은 발라키레프뿐이었다. 1867–68년 겨울에는 엑토르 베를리오즈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와서 지휘했다. 그는 이 노거장의 관현악을 눈여겨보았다. (전설) 이 무렵 그는 바다와 전설로 눈을 돌렸다. 1867년에는 노브고로드의 전설을 바탕으로 관현악곡 「사트코」를 썼고, 1868년에는 아랍 영웅담을 소재로 「안타르」를 썼다. 모스크바에서 비평을 쓰던 표트르 차이콥스키는 「사트코」를 호의적으로 평했다. 다르고미시스키의 집에서는 「석상 손님」이 한 장면씩 완성되어 갔다. 그는 그 모임에서 말의 억양을 그대로 따라가는 노래 방식을 익혔다. (한방) 1871년 가을부터 이듬해까지 그는 무소륵스키와 한 방에서 지냈다. 피아노가 하나뿐이어서 정오까지는 무소륵스키가 쓰고, 무소륵스키가 관청으로 출근한 오후에는 그가 썼다. 그는 그 방에서 첫 오페라 「프스코프의 처녀」를 썼고, 무소륵스키는 「보리스 고두노프」를 고쳤다. 1872년 여름 그는 피아니스트 나데즈다 푸르골트와 결혼했다. 결혼식의 신랑 들러리는 무소륵스키였다. 나데즈다는 남편의 곡을 피아노용으로 편곡했고, 악보를 가장 먼저 꼼꼼히 비평하는 사람이었다. (교수) 1871년 그는 스물일곱 살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작곡·관현악법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회고록에서 그는 당시 성가 한 곡에 화성조차 제대로 붙이지 못했고, 대위법 연습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솔직한 부끄러움이 다음 시기의 그를 만들었다.

♪음악적 그림 「사트코」 Op. 51867 (23세)

힘센 무리에 막 합류한 해군 장교가 처음으로 바다와 러시아 전설을 하나로 엮은 곡이다. 차이콥스키가 호평했고, 30년 뒤 같은 이름의 오페라로 다시 태어났다.

  • 도입부에서는 낮은 현악기가 같은 음형을 끝없이 되풀이한다. 이 반복이 고요히 일렁이는 바다를 그린다.
  • 중간에 바다 왕의 궁전에서 잔치가 벌어지면 하프와 현을 손가락으로 뜯는 주법(피치카토)이 들린다. 사트코가 타는 러시아 현악기 구슬리 소리를 흉내 낸 것이다.
  • 사트코의 연주에 맞춰 춤이 점점 빨라지고, 바다도 함께 들끓어 오른다. 금관과 타악기가 쌓여 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들어 보자.
  • 사트코가 구슬리의 줄을 끊는 순간 춤은 갑자기 멈춘다. 음악은 처음의 잔잔한 바다로 돌아온다. 이 급격한 전환이 작곡가가 붙인 줄거리의 결말이다.

IV. 늦깎이 학생 · 1873–1884 (29–40세)

(감독관) 1873년 그는 장교직을 내려놓았다. 해군성은 그를 위해 '해군 군악대 감독관'이라는 민간 직책을 새로 만들었다. 그는 1884년까지 이 자리에 있으면서 관악기의 운지와 음역을 직접 익혔다. 음악원 급여와 이 봉급으로 늘어나는 가족을 부양했다. 1873년 첫아들 미하일이 태어났다. 이어 딸 소피야, 훗날 음악학자가 된 안드레이,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블라디미르, 딸 나데즈다가 태어났다. (푸가) 그는 학생보다 한 걸음 앞서 공부하는 교수였다. 화성학과 대위법 교재를 붙들고 한여름에 수십 곡의 푸가를 써 내려갔다. 이 고된 독학을 전해 들은 차이콥스키는 존경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반면 발라키레프와 무소륵스키는 그가 '학자'가 되어 간다며 서운해했다. 실제로 이 시기의 몇몇 작품은 메마르다는 평을 들었다. (민요) 1874년 그는 발라키레프의 뒤를 이어 무료음악학교를 맡았다. 러시아 민요 100곡을 모아 책으로 펴냈고, 발라키레프와 함께 글린카의 오페라 악보를 교정했다. 이렇게 쌓은 민요와 기법은 고골 원작의 「5월의 밤」(1879)과 오스트롭스키 원작의 「눈 아가씨」(1881)에서 꽃을 피웠다. 「눈 아가씨」는 스텔료보의 시골 별장에서 한여름에 쓴 오페라였고, 그는 이 작품을 평생 아꼈다. (유고) 1881년 3월 무소륵스키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친구가 남긴 원고를 거두어 「호반시치나」를 완성하고 관현악을 입혔다. 열네 살에 그의 개인 제자가 된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가 곁에서 도왔다. 1883년부터는 궁정 합창단에서 발라키레프를 보좌했다. 1882–83년에는 리스트가 즐겨 쓴 단악장 형식으로 피아노 협주곡을 썼다. 1886년 리스트가 세상을 떠난 뒤 이 곡을 출판하면서 그의 영전에 바쳤다.

♪피아노 협주곡 올림다단조 Op. 301882–1883 (38–39세)연주 Alexander Malofeev (피아노) · Gergiev 지휘

민요를 모으고 독학으로 대위법을 쌓던 시기의 결실이다. 리스트식 단악장 형식에 러시아 민요 하나를 담았고, 리스트의 영전에 바쳤다.

  • 처음에 관현악이 들려주는 짧은 민요 선율이 곡 전체의 유일한 주제다. 이 주제가 빠르게, 느리게, 장엄하게 모양을 바꾸며 돌아온다. 리스트가 즐겨 쓴 주제 변형 기법이다.
  • 피아노는 등장하자마자 건반 위를 휘몰아친다. 화려한 독주 부분(카덴차)을 연상시키는 이 대목에서 리스트의 그림자가 짙게 느껴진다.
  • 가운데 느린 부분에서는 같은 민요가 서정적인 노래로 바뀐다. 앞의 선율과 같은 주제라는 것을 알아채며 들으면 재미있다.
  • 전체 길이가 15분 안팎이라 짧다. 그래서 무대에 자주 오르지 않는 숨은 레퍼토리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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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셰에라자드의 여름 · 1884–1889 (40–45세)

(벨랴예프) 목재상 미트로판 벨랴예프는 글라주노프의 재능에 반해 러시아 작곡가들의 악보를 출판하기 시작했다. 이어 '러시아 교향악 연주회'도 열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 연주회의 지휘자가 되었고, 벨랴예프가 지원할 젊은 작곡가를 고르는 자문도 맡았다. 벨랴예프의 출판사는 작곡가들에게 넉넉한 원고료를 치렀다. 그의 집에서 금요일마다 열린 실내악 모임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가들이 모이는 사랑방이 되었다. (보로딘) 1887년 2월 보로딘이 가장무도회에서 쓰러져 숨졌다. 그는 다시 친구의 미완성 원고를 맡았고, 글라주노프와 함께 「이고르 공」을 완성했다. 글라주노프는 보로딘이 생전에 피아노로 들려준 서곡을 기억에 의지해 악보로 옮겼다. 「이고르 공」은 1890년에 초연되었다. (색채) 남의 작품을 마무리하는 동안 그 자신의 관현악은 정점에 올랐다. 1887년에 「스페인 기상곡」을 썼고, 1888년 여름에는 「셰에라자드」와 「러시아 부활절 서곡」을 잇달아 썼다. 「스페인 기상곡」 첫 리허설에서는 단원들이 첫 부분이 끝나자마자 박수를 쳤다. 그는 단원 예순일곱 명의 이름을 악보에 적어 이 곡을 그들에게 헌정했다. (신앙) 「러시아 부활절 서곡」은 정교회 성가집의 선율로 지은 곡이다. 그러나 그는 교회 신앙을 지닌 사람이 아니었다. 회고록에서 그는 성경의 엄숙함과 함께 부활절 아침의 이교적인 기쁨을 이 곡에 담고 싶었다고 썼다. (바그너) 1889년 앙겔로 노이만의 순회 극단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전곡을 공연했다. 그는 리허설까지 따라다니며 바그너의 관현악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후 그가 쓴 오페라의 관현악은 한층 두터워졌다.

♪스페인 기상곡 Op. 341887 (43세)지휘 Heras-Casado · hr-Sinfonieorchester

첫 리허설에서 단원들이 박수를 쳤고, 작곡가는 그들 예순일곱 명의 이름을 적어 헌정했다. 관현악 자체가 주인공인 곡이다.

  • 다섯 부분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첫 부분 '알보라다'(아침의 노래)에서는 클라리넷 독주가 흥겨운 춤을 이끈다. 세 번째 부분에서 같은 음악이 돌아올 때는 바이올린 독주가 그 역할을 넘겨받는다.
  • 두 번째 부분인 변주곡(같은 선율을 조금씩 바꿔 가며 되풀이하는 형식)에서는 호른들이 부드럽게 선율을 부른다.
  • 네 번째 부분 '장면과 집시의 노래'에서는 작은북이 잘게 떨며 깔린다. 그 위에서 금관, 바이올린, 플루트, 클라리넷, 하프가 차례로 혼자 솜씨를 뽐내는 독주 부분(카덴차)을 연주한다. 이 곡의 백미다.
  • 마지막 '아스투리아스의 판당고'에서는 캐스터네츠가 리듬을 몰아간다. 첫 부분의 알보라다 선율이 다시 돌아오며 곡은 숨 가쁘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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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적 모음곡 「셰에라자드」 Op. 351888 (44세)지휘 Alan Gilbert · Tokyo Metropolitan SO

친구들의 유작을 완성하던 해 여름에 쓴 곡이다. 바다를 아는 해군 출신 작곡가가 『천일야화』의 바다와 이야기꾼을 관현악의 색채로 그렸다.

  • 곡은 낮은 금관과 현이 한 덩어리로 내는 위압적인 주제로 열린다. 이것이 잔혹한 샤리아르 왕이다. 곧이어 하프 화음 위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가녀린 선율을 부르는데, 이것이 이야기꾼 셰에라자드다.
  • 그는 처음에 악장마다 '바다와 신드바드의 배', '칼렌다르 왕자', '젊은 왕자와 공주', '바그다드의 축제'라는 제목을 붙였다가 나중에 지웠다. 이야기를 담은 표제음악이면서도, 듣는 사람의 상상에 맡기려 한 것이다.
  • 3악장에서는 현악기가 부드럽게 노래하고, 클라리넷과 플루트가 꾸밈음으로 장식을 더한다. 사랑 이야기로 흔히 듣는 대목이다.
  • 4악장 끝에서는 축제 음악 위로 1악장의 바다가 밀려든다. 배가 절벽에 부딪혀 부서지는 순간 징(탐탐)이 울린다. 곡은 독주 바이올린이 현을 살짝 짚어 내는 높고 투명한 소리(하모닉스)로 사라진다.
  • 독주 바이올린 파트는 오케스트라 악장(콘서트마스터)의 실력을 가늠하는 시험대로 유명하다. 연주마다 셰에라자드의 성격이 다르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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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부활절 서곡 Op. 361888 (44세)실황 경상북도 도립교향악단 · 2021 교향악축제

교회 신앙을 갖지 않았던 작곡가가 정교회 성가로 지은 곡이다. 회고록대로 엄숙함과 이교적인 축제의 기쁨이 함께 담겨 있다.

  • 서주에서 목관이 조용히 부르는 선율은 정교회 성가 '하느님이 일어나시니'다. 정교회 성가집 『오비호드』에서 가져왔다.
  • 서주 사이사이에 독주 바이올린과 독주 첼로가 홀로 즉흥처럼 노니는 짧은 독주 부분(카덴차)이 끼어든다. 촛불이 흔들리는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 중간의 트롬본 독주는 사제가 복음서를 낭송하는 소리를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하듯 노래하는(레치타티보) 느낌으로 들어 보자.
  • 끝부분에서는 종, 글로켄슈필(철금), 하프가 겹쳐 부활절 아침의 종소리를 울린다. 티흐빈 수도원의 종소리를 듣고 자란 그의 유년이 겹쳐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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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침묵과 귀환 · 1890–1904 (46–60세)

(상실) 1890년대 초에는 상실이 잇따랐다. 1890년 어머니와 갓난 아들 슬라프치크가 세상을 떠났고, 1893년에는 어린 딸 마리야가 병으로 숨졌다. 그는 머리가 짓눌리는 듯한 증상과 깊은 우울에 시달렸다. 작곡을 거의 멈춘 채 철학과 미학 책을 읽으며 음악 미학에 관한 글을 쓰려 했다. 발라키레프와의 오랜 관계도 이 무렵 틀어졌고, 1894년 그는 궁정 합창단을 떠났다. (차이콥스키) 1893년 차이콥스키가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은 1880년대 후반 벨랴예프 모임에서 자주 어울리며 가까워져 있었다. 고골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차이콥스키가 이미 오페라로 만든 이야기여서 그는 그동안 손대지 않았다. 차이콥스키가 떠난 뒤인 1894–95년, 그는 이 이야기로 오페라를 썼다. 긴 침묵은 그렇게 깨졌다. (모스크바) 황실 극장은 오페라 「사트코」를 외면했다. 그러자 모스크바의 철도 부호 사바 마몬토프가 이끄는 사설 오페라단이 1898년 초 이 작품을 초연했다. 베이스 표도르 샬랴핀과 소프라노 나데즈다 자벨라브루벨이 그의 음악을 노래했다. 그는 「차르의 신부」의 주인공 마르파를 자벨라의 목소리에 맞춰 썼다. 푸시킨의 극에 붙인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도 이 극단에서 초연되었고, 살리에리 역은 샬랴핀이 맡았다. (제자) 1896년에는 「보리스 고두노프」 개정판을 내놓았다. 그가 거친 화성과 관현악을 매끄럽게 다듬은 덕분에 「보리스」는 세계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원작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했다는 비판도 따랐다. 1900년 무렵에는 비올라 주자로 이 도시에 머물던 오토리노 레스피기가 그에게 관현악법을 배웠다. 1902년 무렵부터는 아들의 대학 친구 이고리 스트라빈스키가 그의 집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살탄 황제 이야기」(1900)와 「보이지 않는 도시 키테즈」(1905)도 이 시기에 쓰였다.

♪오페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Op. 481897 (53세)실황 Arctic Philharmonic · Øyvind Bjorå 지휘

침묵을 깬 뒤 마몬토프 오페라단과 손잡고 쓴 작은 오페라다. 다르고미시스키를 기리며 푸시킨의 대사를 거의 그대로 노래로 옮겼고, 샬랴핀이 살리에리를 불렀다.

  • 대사를 말하듯 노래하는 방식(레치타티보)으로 거의 전부가 이어진다. 젊은 시절 다르고미시스키의 「석상 손님」에서 배운 방식으로, 말의 억양이 그대로 선율이 된다.
  • 1장 첫머리의 살리에리 독백에서는 평생 노력해 온 자부심이 질투로 무너져 가는 과정이 낮은 현의 어두운 음색 위에 그려진다.
  • 1장에서 거리의 눈먼 바이올린 악사가 모차르트의 아리아를 서툴게 켜는 장면이 나온다. 모차르트는 즐거워하고 살리에리는 분노한다. 두 사람의 대비가 선명하다.
  • 2장 끝에서 독이 든 잔을 마신 모차르트가 「레퀴엠」을 들려주는데, 이때 실제 모차르트의 선율이 인용된다. 원곡을 알고 들으면 더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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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탄 황제 이야기」 모음곡 Op. 571903 (59세)

모스크바 무대에서 다시 꽃핀 시기에 푸시킨의 동화를 옮긴 오페라에서 세 장면을 골라 엮은 곡이다. 악장마다 푸시킨의 시구가 붙어 있다.

  • 세 곡 모두 트럼펫 팡파르로 시작한다. 오페라에서 막이 오를 때마다 울리던 전령의 신호를 옮긴 것이다.
  • 두 번째 곡에서는 모함을 받은 왕비와 아기가 통에 갇혀 바다를 떠돈다. 출렁이는 현과 쓸쓸한 목관에서 「셰에라자드」와는 또 다른 바다가 들린다.
  • 세 번째 곡 '세 가지 기적'에는 호두를 까며 민요를 부르는 다람쥐,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서른세 명의 용사, 백조 공주가 차례로 나온다. 높은 음역의 가벼운 악기와 묵직한 금관의 대비를 따라가 보자.
  • 유명한 「왕벌의 비행」은 이 모음곡에 들어 있지 않다. 같은 오페라의 3막에서 왕자가 벌로 변해 날아가는 장면의 음악으로, 따로 떼어 연주되며 유명해졌다.

VII. 황금 수탉 · 1905–1908 (61–64세)

(1905) 1905년 1월 '피의 일요일' 이후 음악원 학생들도 동맹휴학에 나섰다. 그는 학생들 편에 서서 신문에 음악원 운영을 비판하는 공개서한을 냈다. 러시아 음악협회 이사회는 그해 3월 그를 해임했다. 학생들이 그의 오페라 「불사신 카셰이」를 공연한 날, 객석은 정치 집회처럼 들끓었다. 경찰은 한동안 그의 작품 공연을 금지했다. 글라주노프와 아나톨리 랴도프는 항의의 뜻으로 음악원을 떠났다. 그해 말 음악원이 자치권을 얻고 글라주노프가 원장이 되자, 그도 교단으로 돌아왔다. (파리) 1907년 봄, 그는 세르게이 댜길레프가 파리에서 연 러시아 음악 연주회에 초청되어 지휘했다. 파리 청중이 러시아 음악에 눈뜬 이 연주회는 훗날 발레 뤼스로 이어지는 길목이 되었다. (검열) 마지막 오페라 「황금 수탉」(1907)은 푸시킨의 동화를 빌린 풍자극이다. 게으르고 어리석은 왕과 무능한 군대는 러일전쟁의 패배를 떠올리게 했다. 검열 당국은 대사를 삭제하라고 요구했지만, 그는 타협을 거부했다. 결국 이 작품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최후) 그는 1906년에 회고록을 마무리했다. 협심증 발작이 잦아지던 1908년 6월, 그는 루가 근처의 류벤스크 영지에서 예순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 직전에 딸 나데즈다가 그의 제자 막시밀리안 시테인베르크와 결혼했다. 스트라빈스키는 스승을 기리는 「장송가」를 써서 이듬해 초에 초연했다. 「황금 수탉」은 1909년 가을 모스크바에서 초연되었다. 관현악법 교과서는 사위 시테인베르크가 엮어 1913년에 출간되었다.

덜 알려진 이야기

(뉴욕) 1863년 가을, 생도 림스키코르사코프가 탄 알마즈호는 러시아 함대의 일원으로 뉴욕항에 들어갔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때라, 북부 사람들은 이 방문을 러시아가 연방 정부를 지지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환영했다. 그의 회고록에서는 이 일이 음악과 상관없는 항해의 한 장면으로 짧게 지나가서 음악사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는다. (색채) 그는 조성마다 특정한 색을 떠올렸다. 라마조는 해가 비치는 노란빛, 마장조는 짙은 푸른빛 같은 식이었다. 라흐마니노프의 회고에 따르면 1907년 파리에서 그는 스크랴빈과 조성의 색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두 사람의 색은 일부만 겹쳤다. 다만 림스키코르사코프 자신은 이를 눈에 보이는 감각이라기보다 연상으로 여겼다고 전해진다. (야스트레프체프) 그의 일상 대화가 지금까지 상세히 남은 것은 숭배자 바실리 야스트레프체프 덕분이다. 그는 1880년대 후반부터 작곡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나눈 대화를 꼼꼼히 기록했다. 이 기록은 소련 시대에야 러시아어로 출판되었고, 영어로는 축약본만 나왔다. 그래서 러시아어권 밖에서는 잘 인용되지 않는다. (장송가) 스트라빈스키가 스승에게 바친 「장송가」는 1909년 초연 뒤 혁명의 혼란 속에서 악보가 사라졌다. 스트라빈스키 자신도 「불새」 이전의 작품 가운데 가장 좋은 곡이었다고 회고했지만 선율은 기억하지 못했다. 201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도서관을 정리하던 중 파트 악보가 발견되었고, 이듬해 마린스키 극장에서 백 년여 만에 다시 연주되었다.

용어 노트 📚🔎

관현악법

(말뜻) 관현악(管絃樂)은 관(管), 곧 입으로 불어 소리 내는 관악기와 현(絃), 곧 줄을 켜거나 뜯는 현악기가 함께하는 음악이라는 뜻이다. 관현악법은 그 악기들을 다루는 법이다. 서양에서는 오케스트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음악에서) 같은 선율을 어떤 악기에게 맡기고, 어떤 악기를 겹치며, 얼마나 크게 울리게 할지를 정하는 기술이다. 똑같은 멜로디도 플루트가 불면 가볍고, 트롬본이 불면 묵직하게 들린다. 같은 그림을 색연필로 칠하느냐 물감으로 칠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과 같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 분야의 교과서를 쓴 대가였다. (다른 데서는) 컴퓨터 분야에서 오케스트레이션은 여러 서버와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손발을 맞춰 돌아가도록 조율하는 일을 가리킨다.

대위법

(말뜻) 대위법(對位法)은 음과 음을 마주(對) 놓는 자리(位)의 법이라는 뜻이다. 라틴어 이름 punctus contra punctum도 '점 대 점', 곧 음표 대 음표를 뜻한다. (음악에서) 서로 다른 선율 두 개 이상을 동시에 흐르게 하면서도, 각자 자기 노래를 하고 함께 들으면 잘 어울리도록 엮는 기술이다. 합창에서 소프라노와 베이스가 서로 다른 가락을 부르는데도 하나의 음악으로 들리는 것이 대위법 덕분이다. 단체 줄넘기에서 두 사람이 각자 다른 리듬으로 뛰면서도 줄에 걸리지 않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다른 데서는) 문학이나 영화 평론에서는 서로 다른 이야기나 분위기를 나란히 놓아 대비시키는 수법을 대위법적이라고 한다.

푸가

(말뜻) 푸가는 라틴어 fuga에서 왔는데, 달아난다는 뜻이다. 한 성부가 주제를 부르며 앞서 나가면 다른 성부가 쫓아가듯 뒤따르는 모습에서 나온 이름이다. (음악에서) 하나의 짧은 주제를 여러 성부가 차례로 이어받아 쌓아 올리는 엄격한 형식으로, 대위법의 꽃이라고 불린다. 돌림노래에서 뒷사람이 같은 노래를 늦게 따라 부르는 것과 시작이 비슷하다. 다만 푸가에서는 따라 부르는 쪽이 음높이를 옮겨 부르고, 이후 주제가 쪼개지고 겹치며 훨씬 복잡하게 발전한다.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늦깎이로 수십 곡을 써 가며 익힌 것이 바로 이것이다. (다른 데서는) 정신의학에서 푸가(둔주)는 자기가 누구인지 잊은 채 집을 떠나 떠도는 상태를 가리킨다.

표제음악

(말뜻) 표제(標題)는 겉에 붙인 제목이나 표지라는 뜻이다. 표제음악은 제목이나 줄거리 같은 '이야기 꼬리표'가 붙은 음악을 말한다. (음악에서) 음악 바깥의 이야기, 그림, 풍경을 소리로 그려 내려는 기악곡이다. 반대로 제목 없이 소리의 짜임만으로 들려주는 음악은 절대음악이라고 부른다. 대사도 화면도 없이 배경음악만 듣고 게임 속 장면이 전투인지 마을인지 알아맞히는 것과 비슷하다. 「셰에라자드」는 작곡가가 악장 제목을 지웠는데도 대표적인 표제음악으로 꼽힌다.

카덴차

(말뜻) 카덴차는 '떨어지다'라는 뜻의 라틴어 cadere에서 온 이탈리아어다. 곡이 마침(종지)으로 떨어지기 직전, 독주자가 홀로 솜씨를 펼치던 자리에서 이름이 생겼다. (음악에서) 오케스트라가 멈추거나 아주 작게 반주하는 동안 독주 악기 하나가 자유롭고 화려하게 연주하는 부분이다. 원래는 독주자가 즉흥으로 연주했지만, 나중에는 작곡가가 악보에 적어 두는 일이 많아졌다. 단체 공연 중간에 한 명씩 나와 개인기를 선보이는 순서와 같다. 「스페인 기상곡」에서는 여러 악기가 차례로 이런 독주를 이어 간다. (다른 데서는) 같은 뿌리의 영어 cadence(케이던스)는 자전거에서 1분 동안 페달을 돌리는 횟수를 가리킨다.

모음곡

(말뜻) 말 그대로 여러 곡을 모아 엮은 곡이다. 서양 이름 suite(스위트)는 프랑스어로 '뒤따르는 것, 이어지는 것'을 뜻한다. (음악에서) 성격이 다른 짧은 곡 여러 개를 한데 묶어 차례로 연주하는 형식이다. 바로크 시대에는 여러 춤곡을 묶었고, 19세기에는 오페라나 발레에서 좋은 장면을 골라 관현악곡으로 엮는 일이 많았다. 긴 드라마를 다 볼 수 없을 때 명장면만 모아 보는 하이라이트 영상과 비슷하다. 「살탄 황제 이야기」 모음곡이 그런 경우다. (다른 데서는) 호텔의 스위트룸도 같은 단어로, 침실과 거실 같은 여러 방이 이어져 있는 객실을 뜻한다.

레치타티보

(말뜻) 레치타티보는 '낭송하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recitare에서 왔다. 말하듯 노래한다는 뜻이다. (음악에서) 오페라에서 선율을 아름답게 펼치기보다 말의 억양과 빠르기를 따라 대사를 전하는 노래 방식이다. 주로 이야기를 앞으로 진행시키는 장면에 쓰이고, 감정을 길게 펼치는 아리아와 짝을 이룬다. 뮤지컬에서 배우가 대사와 노래 사이쯤으로 읊조리며 상황을 설명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거의 전부가 이 방식으로 되어 있다.

하모닉스

(말뜻) 영어 harmonics는 '배음(倍音)'이라는 뜻이다. 한 음을 낼 때 그 음의 두 배, 세 배 빠르기로 떨리는 높은 소리가 함께 섞여 나는데, 이것을 배음이라고 한다. (음악에서) 현악기에서 줄을 꾹 누르지 않고 특정한 자리에 손가락을 살짝 대기만 한 채 켜면, 이 배음만 따로 울려 휘파람처럼 높고 투명한 소리가 난다. 기타의 12번째 칸 위 줄에 손끝을 살짝 대고 튕기면 종소리 같은 음이 나는 것도 같은 원리다. 「셰에라자드」의 마지막 음을 독주 바이올린이 이 소리로 낸다. (다른 데서는) 전기·물리 분야에서는 고조파라고 옮기며, 기본 주파수의 정수배로 생기는 진동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