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st Mussorgsky
“예술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어머니 율리야 이바노브나
피아노를 가르쳐 그의 첫 음악 스승이 되었다.
- 영향알렉산드르 다르고미시스키
'말하듯 노래하기'라는 이상으로 그의 작곡관에 큰 자극을 주었다.
- 스승밀리 발라키레프
체계적인 교육 없이도 화성과 형식을 가르치며 '막강한 다섯'을 이끌었다.
- 우정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한 아파트에서 함께 지낸 가까운 벗이었고, 그가 죽은 뒤 미완성 유작들을 완성했다.
- 우정빅토르 하르트만
건축가이자 화가였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전람회의 그림》을 낳았다.
- 우정아르세니 골레니셰프쿠투조프
시인으로서 말년의 가까운 벗이 되어 《죽음의 노래와 춤》의 가사를 썼다.
I. 프스코프의 어린 시절 · 1839–1849 (0–10세)
(출생) 1839년 3월, 러시아 프스코프 현 토로페츠 군의 작은 마을 카레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무소륵스키는 대대로 땅을 가진 지방 귀족이었고, 어머니 율리야 이바노브나는 음악을 좋아하는 여성이었다. (가족) 형 필라레트가 있었고 두 형제는 유년을 함께 보냈다. 집안은 넉넉했지만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이었고, 농노들이 땅을 부치며 가문을 떠받쳤다. (피아노) 어머니가 직접 피아노를 가르쳤다. 여섯 살에 건반 앞에 앉았고, 아홉 살 무렵에는 손님들 앞에서 존 필드의 소곡을 쳐낼 만큼 자랐다. 어머니는 아들에게서 재능을 알아보았지만 음악을 직업으로 삼게 할 생각은 없었다. (유모) 유모와 농노들이 들려준 러시아 민담과 노래가 더 깊이 스며들었다. 그는 훗날 이 시절의 이야기와 가락을 또렷이 기억한다고 적었고, 러시아 농민의 목소리는 평생 그의 음악에서 떠나지 않을 재료가 되었다.
II. 페테르부르크의 사관생도 · 1849–1858 (10–19세)
(상경) 1849년, 열 살의 무소륵스키는 형과 함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보내져 독일계 학교 페터슐레에 들어갔다. 1852년에는 근위 사관후보생 학교에 입학해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군복) 1856년 프레오브라젠스키 근위연대의 장교로 임관했다. 외모가 단정하고 사교적이어서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고,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분위기를 사로잡는 재주도 있었다. 이 무렵 군 병원에서 알렉산드르 보로딘을 만났는데, 당시 보로딘은 군의관이었다. (만남) 1857년, 작곡가 알렉산드르 다르고미시스키의 살롱에서 밀리 발라키레프를 소개받았다. 발라키레프는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날카로운 귀와 확신에 찬 지도력을 지닌 인물이었고, 무소륵스키에게 화성과 형식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전역) 군복과 음악 사이에서 저울질하던 그는 1858년 장교직을 내려놓았다. 가족과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음악 외의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고 훗날 밝혔다. 안정된 수입과 사회적 지위를 포기한 대신, 발라키레프의 제자로서 본격적인 수업을 받을 길을 얻었다.
III. 몰락과 다섯의 결속 · 1858–1865 (19–26세)
(불안) 전역 직후 신경쇠약으로 추정되는 증세를 겪어 한동안 요양했다. 이 무렵의 그는 변덕스럽고 열정적이었으며, 발라키레프의 지도 아래 관현악과 화성을 배우면서도 체계적인 훈련을 끝까지 따르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해방령) 1861년 농노해방령이 선포되자 집안의 기반이 흔들렸다. 영지의 수입은 농노의 노동에 의존하고 있었고, 해방 이후 가족은 급속히 가난해졌다. 그는 형과 함께 남은 땅을 관리하려 애썼지만 끝내 재산을 지키지 못했다. (상실) 1865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깊은 우울에 빠졌고, 이 시기 술에 의존하는 습관이 뚜렷해졌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가족의 경제적 몰락과 어머니의 죽음은 그가 평생 벗어나지 못한 그늘이 되었다. (다섯) 같은 시기 발라키레프를 중심으로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체자르 큐이, 보로딘이 모여들어 이른바 '막강한 다섯' 또는 '모구차야 쿠치카'라 불리는 그룹이 이루어졌다. 이들은 서구 음악 교육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러시아적인 음악을 세우겠다는 믿음을 공유했고, 무소륵스키는 그 안에서 가장 거친 상상력을 지닌 인물로 통했다.
'막강한 다섯'의 민족주의적 이상과 유년의 민담이 한데 녹아든 초기 관현악곡이다.
- 도입부에서 현악기들이 빠르게 오르내리며 떨리듯 연주하는(트레몰로) 대목은 어둠 속에서 마녀와 악령들이 모여드는 장면을 그린다.
- 중반 금관악기가 쏟아내는 묵직한 화음은 작곡가가 1867년 악보에 적어 둔 대로 '사탄의 행렬'이 나타나는 순간을 나타낸다.
- 곡 말미, 새벽 종소리 뒤 클라리넷이 홀로 조용히 울리며 악령들이 흩어지는 결말은 후기 판본과 림스키코르사코프 판본의 것이고, 1867년 원곡은 마녀들의 잔치(사바스)로 끝난다.
- 오늘날 자주 연주되는 판본은 그가 죽은 뒤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다시 손본 것이어서, 무소륵스키 자신의 거칠고 투박한 원곡 관현악과 비교해 듣는 것도 흥미롭다.
IV. 생계와 보리스 고두노프 · 1865–1874 (26–35세)
(공무원) 가족의 재산이 사라진 뒤 생계를 위해 관청에서 일해야 했다. 임업국, 공공사업부 등을 옮겨 다니며 말단 관리로 근무했고,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밤과 휴일을 쪼개 작곡했다. (언어) 이 시기 그는 다르고미시스키가 내세운 '말하듯 노래하기'라는 이상에 깊이 끌렸다. 러시아어의 자연스러운 억양과 리듬을 그대로 선율에 옮기려 했고, 이런 생각은 가곡과 오페라의 성악 선율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동거) 1871년부터 약 1년간 림스키코르사코프와 한 아파트에서 책상을 나누어 쓰며 지냈다. 한 사람이 피아노를 치면 다른 사람이 책상에서 글을 쓰는 식으로 좁은 방을 나누어 썼다는 증언이 전해지며, 두 사람의 우정은 이후 무소륵스키의 유작을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손보는 인연으로 이어졌다. (고두노프) 푸시킨의 희곡을 바탕으로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를 써나갔다. 1869년 완성한 첫 판본은 황실극장 위원회에서 여성 주역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거절당했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대대적으로 고쳐 1872년 개정판을 내놓았고, 1874년 마린스키 극장 초연은 열렬한 반응을 얻었다. 권력을 쥔 자의 죄의식을 다룬 이 작품은 그의 이름을 러시아 음악사에 새겼다.
거절과 개작을 거쳐 1874년 초연된 그의 대표 오페라로, 권력과 죄의식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었다.
- 대관식 장면에서 울리는 종소리 모티프와 합창은 권력의 무게와 동시에 불안을 함께 드러낸다.
- 보리스가 홀로 부르는 '나는 최고의 권력에 이르렀다' 독백은 낮은 음역의 베이스 성부가 죄의식에 짓눌린 인간을 그려내는 대목으로, 베이스 가수들에게는 배역의 정점으로 꼽힌다.
- 마지막 장면, 백치가 부르는 탄식은 승리도 구원도 없이 끝나는 당시 오페라로서는 드문 결말이며, 고통받는 민중을 상징한다고 흔히 해석된다.
- 1869년 초판, 1872년 개정판, 그리고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다시 편곡한 판본이 서로 달라서, 어떤 판본으로 듣는지에 따라 인상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 연구자와 연주자들 사이에서 자주 논의된다.
'말하듯 노래하기'라는 이상을 어린아이의 목소리에 적용해 본, 생계와 작곡을 병행하던 시절의 가곡집이다.
- 각 곡은 어린아이가 실제로 말하는 듯한 리듬과 억양을 그대로 선율로 옮겨서, 어른이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아이의 목소리를 흉내 내듯 들린다.
- '구석에서'는 장난친 고양이를 두고 변명하는 아이의 재잘거림을 음악으로 그려서, 가사 한 줄마다 말투가 바뀌는 재미가 있다.
- '인형과 함께'에서는 아이가 인형을 재우며 자장가를 부르는데, 같은 가락이 흔들리듯 반복되는 리듬이 깔려 자장가 특유의 단조로운 안정감을 만든다.
V. 하르트만의 죽음과 전람회의 그림 · 1873–1877 (34–38세)
(죽음) 1873년, 가까운 친구였던 건축가이자 화가 빅토르 하르트만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무소륵스키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듬해 하르트만의 유작 전시회를 둘러본 기억을 피아노 모음곡으로 옮겼다. (그림) 이렇게 완성된 《전람회의 그림》은 전시장을 거닐며 그림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는 장면을 음악으로 그린 작품이다. 벗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과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존경이 함께 담겼다. (연가곡) 같은 시기 《어린이방》, 《해 없이》 같은 가곡집을 썼고, 시인 아르세니 골레니셰프쿠투조프와 가까워지면서 《죽음의 노래와 춤》을 구상했다. 죽음을 자장가 부르는 이, 유혹하는 연인, 춤추는 망령 등으로 그려낸 이 가곡집은 그가 줄곧 품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매혹을 드러낸다. (미완) 《호반시치나》와 고골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소로친치 장터》 두 오페라에 함께 손을 댔지만 둘 다 끝맺지 못했다. 관청 업무, 불규칙한 생활, 점점 심해지는 술 문제가 그의 작업을 자주 가로막았고, 동료들은 그가 몇 달씩 손을 놓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급사한 벗 하르트만의 전시회를 둘러본 기억을 옮긴 피아노 모음곡으로, 애도와 존경이 함께 담겼다.
- 곡 전체에 되풀이되는 '산책' 주제는 전시장을 걷는 작곡가 자신의 발걸음을 나타내며, 그림마다 걸음의 빠르기와 박자가 조금씩 달라진다.
- '그놈(난쟁이)'에서는 다리를 절듯 뒤틀린 리듬이 기괴한 인형의 움직임을 그린다.
- '카타콤'에서는 느리고 무겁게 쌓이는 화음이 하르트만을 떠나보낸 애도를 담고 있는데, 그는 '하르트만의 해골이 나에게 말을 건다'는 식의 메모를 악보에 남겼다고 전해진다.
- '닭발 위의 오두막(바바야가)'에서는 빠르고 거친 리듬이 마녀의 날아다니는 움직임을 그려내며, 피아니스트에게는 손가락이 꼬이기 쉬운 악명 높은 대목으로 꼽힌다.
- 마지막 '키예프의 대문'은 종소리를 닮은 화음이 겹겹이 쌓이며 장대하게 마무리되는데, 피아노 원곡과 모리스 라벨이 편곡한 관현악 버전을 번갈아 들으며 비교하는 것도 즐길 만하다.
시인 골레니셰프쿠투조프와의 우정 속에서 태어난 가곡집으로, 그가 줄곧 품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매혹을 드러낸다.
- '자장가'에서는 아픈 아이를 재우는 어머니 곁에 죽음이 다가와 대신 자장가를 불러 주는데, 다정한 가락이 오히려 서늘하게 들린다.
- '세레나데'에서는 죽음이 병든 소녀를 유혹하는 연인처럼 노래해, 아름다운 선율 뒤에 숨은 섬뜩함이 두드러진다.
- '트레팍'에서는 술 취해 눈밭에 쓰러진 농부를 죽음이 흥겨운 러시아 춤의 리듬으로 얼러 재우는데, 신명과 공포가 뒤섞인 대목으로 유명하다.
- '사령관'에서는 전쟁터를 굽어보는 죽음이 행진곡 리듬을 타고 승리를 선언하듯 노래해, 네 곡 중 가장 장대하고 위압적인 마무리를 이룬다.
VI. 마지막 나날 · 1877–1881 (38–42세)
(해직) 1880년 봄 그는 관청에서 자리를 잃었다. 수입이 끊기자 벗들이 나서서 그를 도왔는데, 관료이자 음악 애호가였던 테르티 필립포프 등이 《호반시치나》를 마저 쓰도록 매달 생활비를 모아 주었다. (여정) 그에 앞서 1879년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성악가 다리야 레오노바의 반주자로 러시아 남부를 함께 여행하며 잠시 활력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온 뒤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고, 발작과 떨림이 잦아졌다. (초상) 1881년 3월, 군 병원에 입원해 있던 그를 화가 일리야 레핀이 찾아가 초상화를 그렸다. 야윈 얼굴에 헝클어진 머리, 붉어진 코가 그대로 담긴 이 그림은 죽음을 며칠 앞둔 그의 마지막 모습으로 남았다. (임종) 1881년 3월 28일, 마흔두 번째 생일을 맞은 지 일주일 만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군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결혼도 자녀도 없었고, 남긴 재산도 거의 없었다. (완성) 그가 미완으로 남긴 《호반시치나》, 그리고 손댄 지 오래된 《보리스 고두노프》의 관현악 편성은 벗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넘겨받아 다듬고 완성했다. 《소로친치 장터》는 훗날 큐이 등 다른 작곡가들이 마무리했다. 그의 거친 화성과 투박한 관현악은 후대에 다시 손질되었지만, 그 밑에 깔린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지 분명했다.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오페라로, 벗 림스키코르사코프와 후대의 쇼스타코비치가 이어서 손을 대었다.
- 서곡 '모스크바강의 새벽'은 고요히 흐르는 선율로 강 위로 해가 떠오르는 풍경을 그리며, 뒤이어 펼쳐질 격렬한 정치적 소요와 대비를 이룬다.
- 마지막 장면, 구교도들이 스스로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부르는 합창은 신념을 위해 죽음을 택하는 이들의 비통하면서도 장엄한 울림을 전한다.
- 그가 세상을 떠날 때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관현악 편성은 림스키코르사코프가, 20세기에는 쇼스타코비치가 다시 손을 대어 오늘날 여러 판본으로 들을 수 있다.
덜 알려진 이야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보리스 고두노프》와 《민둥산의 하룻밤》을 대대적으로 손봐 발표했다. 거친 화성을 매끈하게 다듬은 이 판본이 오랫동안 '정본'으로 통했지만, 1920년대 말 음악학자 파벨 람이 무소륵스키의 원본 악보를 그대로 출판하면서 작곡가 자신의 더 과감하고 투박한 화성이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그의 진짜 목소리는 죽은 지 반세기가 지나서야 비로소 다시 들리게 된 셈이다. 《전람회의 그림》은 1874년 피아노곡으로 완성된 뒤 1886년에야 출판되었고, 그 뒤로도 수십 년간 피아노 독주곡으로는 거의 연주되지 않았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모습은 1922년 모리스 라벨이 관현악으로 편곡한 뒤부터이며,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이 곡을 애초에 관현악곡으로 여겼다. 관료였던 테르티 필립포프는 그에게 국가감사원 자리를 마련해 주고 잦은 결근도 눈감아 주었지만, 1880년 그는 끝내 관직을 잃었다. 그 뒤에는 필립포프를 비롯한 벗들이 《호반시치나》를 완성하도록 매달 100루블을 모아 생활을 떠받쳤다. 화가 일리야 레핀이 그린 마지막 초상화는 무소륵스키가 입원해 있던 군 병원에서 단 며칠 만에 완성되었다. 레핀은 이 그림을 돈을 받지 않고 벗을 위해 그렸으며, 완성된 지 열흘도 안 되어 그는 세상을 떠났다.
용어 노트 📚🔎
표제음악
(말뜻) 표제(標題)는 내용을 알리는 제목이라는 뜻이다. 표제음악은 말 그대로 제목이나 이야기를 붙여 그 내용을 그려내는 음악을 가리킨다. (음악에서) 표제음악은 특정한 이야기, 풍경, 인물을 음으로 묘사하려는 음악을 말한다. 학교에서 그림을 보고 그 장면을 말로 설명하는 놀이를 떠올리면 된다 — 표제음악은 그림이나 이야기를 말이 아니라 소리로 설명하는 음악이다.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과 《민둥산의 하룻밤》이 대표적인 예다.
모음곡
(말뜻) 모음곡(組曲)은 여러 곡을 한 묶음으로 모았다는 뜻이다. (음악에서) 성격이 다른 짧은 곡 여러 개를 이어 붙여 하나의 큰 작품으로 만든 것을 모음곡이라 한다. 좋아하는 노래를 모아 만든 재생목록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 다만 모음곡은 한 작곡가가 하나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 순서까지 짜 놓았다는 점이 다르다.
레치타티보
(말뜻) 이탈리아어 레치타레(recitare, 이야기하다)에서 왔다. (음악에서) 노래하듯 부르기보다 말하듯 노래하는 성악 양식을 가리킨다. 선생님이 평소 말투 그대로 운율만 살짝 넣어 읽어 주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무소륵스키는 러시아어의 자연스러운 억양을 그대로 살리려 이 기법을 즐겨 썼다.
트레몰로
(말뜻) 이탈리아어로 '떨리는'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한 음이나 화음을 아주 빠르게 반복해 떨리는 듯한 소리를 내는 연주법이다. 손전등을 빠르게 흔들어 불빛이 떨리듯 보이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현악기 주자들은 활을 짧고 빠르게 왕복시켜 이 효과를 낸다.
오케스트레이션
(음악에서) 작곡된 선율과 화음을 어떤 악기에, 어떻게 나누어 연주하게 할지 정하는 작업을 가리킨다. 반 친구들과 합창을 할 때 누가 높은 부분을 맡고 누가 낮은 부분을 맡을지 정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무소륵스키가 미완성으로 남긴 곡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다른 작곡가들이 이 작업을 대신 맡아 완성했다. (다른 데서는) 오케스트레이션은 음악 밖에서도 여러 요소를 조율해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뜻으로 쓰인다.
연가곡
(말뜻) 연가곡(連歌曲)은 이어진 노래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하나의 주제나 이야기로 묶인 여러 개의 가곡을 순서대로 이어 부르는 모음을 가리킨다. 한 주제로 쓴 짧은 글 여러 편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는 것과 비슷하다. 무소륵스키의 《어린이방》과 《죽음의 노래와 춤》이 이런 연가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