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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itri Shostakovich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1906–1975)

공포의 시대를 살아남은 한 사람이, 말로 할 수 없던 것을 음표로 남겼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아버지의 죽음과 궁핍교향곡 1번2. 실험솔레르틴스키와 말러오페라 『코』『맥베스 부인』3. 공포「음악 대신 혼돈」대숙청과 침묵교향곡 5번4. 전쟁소방대원레닌그라드 교향곡피아노 3중주 2번5. 서랍즈다노프 결의바흐와 전주곡·푸가DSCH 서명6. 말년현악 4중주 8번브리튼·교향곡 14번비올라 소나타쇼스타코비치1906–1975스탈린 시대의 공포를 견디며 교향곡과 4중주에…
삶의 여정 🧭🗺️
N러시아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1906–1941쿠이비셰프(오늘날 사마라)1941–1943모스크바1943–1975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소피야 쇼스타코비치

    첫 피아노 스승이자, 남편을 잃은 뒤 생계를 꾸리며 아들의 음악 공부를 지켜 낸 어머니였다.

  • 후원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

    페트로그라드 음악원 교장으로서 굶주리던 내전기에 소년에게 배급과 장학금을 마련해 주었다.

  • 우정이반 솔레르틴스키

    말러의 음악을 알려 준 평생의 벗으로,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피아노 3중주 2번을 낳았다.

  • 가족니나 바르자르

    첫 아내이자 공포의 시절을 함께 견딘 동반자로, 『맥베스 부인』을 헌정받았다.

  • 경쟁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소련 음악의 두 기둥으로 서로를 의식했고, 1948년 함께 규탄받았으며 스탈린과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 우정벤저민 브리튼

    서로 작품을 헌정한 영국 작곡가로,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14번을 그에게 바쳤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페트로그라드의 소년 · 1906–1926 (0–20세)

(출생) 1906년 9월, 러시아 제국(오늘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드미트리 볼레슬라보비치는 시베리아로 유배된 폴란드계 집안 출신의 화학 기술자로, 멘델레예프가 이끌던 도량형국에서 일했다. 어머니 소피야 바실리예브나는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공부한 사람이었다. 위로 누나 마리야, 아래로 여동생 조야가 있었다. (피아노) 아홉 살이던 1915년에야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진도는 놀라웠다. 1919년 열세 살에 페트로그라드 음악원에 들어가 피아노를 레오니트 니콜라예프에게, 작곡을 막시밀리안 시테인베르크에게 배웠다. 시테인베르크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사위였고, 교장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는 내전기의 굶주림 속에서 이 소년에게 배급과 장학금이 돌아가도록 애썼다. (곤궁) 1922년 2월 아버지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자 집안은 곧 궁핍해졌다. 어머니가 사무원으로 일했고, 열일곱 살의 쇼스타코비치는 영화관에서 무성영화 반주를 치며 생활비를 보탰다. 1923년에는 림프샘 결핵으로 크림반도에서 요양했고, 그곳에서 첫사랑 타티야나 글리벤코를 만났다. 극장 일과 병치레 사이에서 쓴 졸업 작품이 교향곡 1번이었다. 1926년 5월 니콜라이 말코의 지휘로 초연된 이 곡은 몇 해 안에 브루노 발터와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며 열아홉 살의 작곡가를 국제 무대에 올려놓았다.

♪교향곡 1번 바단조, Op. 101924–1925 (18–19세)실황 서울시립교향악단 · Wilson Ng 지휘

아버지를 잃고 영화관에서 반주를 치던 열아홉 살 학생의 졸업 작품이다. 무성영화 반주자의 재치와 젊은 날의 그늘이 함께 담겼다.

  • 1악장 첫머리에서 약음기(소리를 줄이는 마개)를 낀 트럼펫과 바순이 짧게 주고받는 대화를 들어 보자. 무대 위 인형극처럼 비꼬고 장난치는 말투가 곡 전체의 성격을 알린다.
  • 2악장 스케르초에서는 피아노가 협주곡 독주자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한 악기로 끼어들어, 빠르게 오르내리는 음계와 강한 화음을 내리꽂는다.
  • 3악장의 오보에 독주는 느리고 쓸쓸한 선율로 시작해 점점 무겁게 부풀어 오른다. 갓 아버지를 잃은 시기의 곡이라는 점을 떠올리며 들으면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 4악장 한가운데 팀파니가 홀로 크게 두드리는 독주(솔로) 대목은 이 곡에서 가장 회자되는 순간이다. 팀파니 연주자의 기량을 비교하는 명장면으로도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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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실험의 시절 · 1926–1935 (20–29세)

(콩쿠르) 1927년 1월 바르샤바의 제1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 입상하지 못하고 명예 디플로마를 받았다. 피아니스트와 작곡가의 길 사이에서 그는 차츰 작곡 쪽으로 기울었다. 같은 해 레닌그라드에서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보체크』가 공연될 때 베르크를 직접 만났고, 이 경험은 그의 극음악에 오래 흔적을 남겼다. (솔레르틴스키) 1927년 만난 언어학자이자 비평가 이반 솔레르틴스키는 평생의 벗이 되었다. 박학하고 거침없던 그는 쇼스타코비치에게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열어 주었다. 이 시기 쇼스타코비치는 연출가 메이에르홀트의 극장에서 피아니스트로 일했고, 고골 원작의 오페라 『코』, 발레 『황금시대』, 영화 음악을 잇달아 쓰며 풍자와 실험의 기질을 마음껏 드러냈다. 어려서부터 열렬한 축구 팬이기도 했다. (결혼) 1932년 물리학을 공부한 니나 바르자르와 결혼했다. 몇 해의 망설임 끝에 이룬 결혼이었고 이후에도 굴곡이 있었지만, 니나는 그가 가장 의지한 동반자였다. 그는 이 무렵 완성한 오페라 『므첸스크 군의 맥베스 부인』을 니나에게 헌정했다. 숨 막히는 상인 집안에 갇힌 여인 카테리나가 시아버지와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야기였다. 1934년 1월 초연된 이 오페라는 두 해 동안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에서 거듭 무대에 올랐고 유럽과 미국에서도 공연되었다.

III. 음악 대신 혼돈 · 1936–1941 (30–35세)

(사설) 1936년 1월 스탈린이 『맥베스 부인』 공연을 보다가 끝나기 전에 자리를 떴다. 이틀 뒤 『프라우다』에 서명 없는 사설 「음악 대신 혼돈」이 실렸다. 사설은 이 오페라를 혼란스럽고 저속하다고 몰아붙이며 이런 장난은 매우 나쁘게 끝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연은 곧 사라졌고, 그를 칭찬하던 이들 상당수가 등을 돌렸다. (침묵) 그해 5월 딸이 태어났다. 그는 말러의 그림자가 짙은 교향곡 4번을 완성해 리허설까지 진행했으나 12월 스스로 거두어들였다. 이 곡은 25년 뒤인 1961년에야 초연되었다. 이듬해 대숙청이 절정에 이르렀다. 그를 후원하던 투하쳅스키 원수가 처형되었고, 누나 마리야의 남편이 체포되었으며 마리야도 유배되었다. 체포를 각오하고 짐가방을 꾸려 두고 지냈다는 이야기가 가족과 지인의 회고로 전해진다. (재기) 1937년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고, 11월 예브게니 므라빈스키의 지휘로 교향곡 5번이 초연되었다. 박수는 30분 넘게 이어졌고, 느린 3악장에서 울었다는 청중의 증언이 여럿 남아 있다. 한 기자가 붙인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창조적 응답'이라는 문구를 그는 공개적으로 받아들였다. 1938년 아들 막심이 태어났고, 첫 현악 4중주를 썼다. 무소륵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를 원작에 가깝게 다시 관현악화하는 작업도 이 무렵 시작했다.

♪교향곡 5번 라단조, Op. 471937 (31세)

「음악 대신 혼돈」 이후 대숙청 한가운데에서 쓴 재기의 교향곡이다. 공식적으로는 '정당한 비판에 대한 응답'이었지만, 청중은 그 속에서 다른 것을 들었다.

  • 1악장 첫머리에서 현악기들이 높고 낮은 음 사이를 크게 뛰어오르내리는(도약) 선율을 서로 뒤따라 연주한다. 첫 소리부터 날카롭고 불안한 긴장이 깔린다.
  • 3악장 라르고는 금관악기를 모두 빼고 현악을 여러 갈래로 잘게 나누어 쓴다. 초연 때 이 악장에서 많은 청중이 울었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 피날레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라(A) 음이 끝없이 되풀이되고 팀파니와 큰북이 두드린다. 이것이 진짜 승리인지, 억지로 짜낸 환호인지를 두고 해석이 지금도 갈린다.
  • 같은 피날레 끝부분은 악보의 속도 표시 해석이 엇갈려 지휘자에 따라 느리고 무겁게, 혹은 빠르고 화려하게 연주된다. 여러 녹음을 비교해 들으면 곡의 인상이 크게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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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포위된 도시 · 1941–1947 (35–41세)

(소방대) 1941년 6월 독일이 침공하자 자원입대를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음악원 소방대원이 되어 지붕 위에서 화재를 감시했다. 소방 철모를 쓴 그의 사진은 이듬해 미국 『타임』지 표지에 실렸다. 포위가 시작된 레닌그라드에서 교향곡 7번을 쓰기 시작했고, 10월 가족과 함께 볼가강 연안의 쿠이비셰프로 피란해 12월에 완성했다. (레닌그라드) 1942년 3월 쿠이비셰프에서 초연된 7번은 곧 '레닌그라드' 교향곡이라 불렸다. 마이크로필름에 담긴 악보가 테헤란과 카이로를 거쳐 미국으로 옮겨져 토스카니니가 방송으로 지휘했고, 8월에는 포위된 레닌그라드에서 굶주린 라디오 오케스트라가 카를 엘리아스베르크의 지휘로 연주했다. 이 곡으로 그는 거액의 상금이 따르는 스탈린상을 받았다. 한편 미국에 있던 벨라 바르토크는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4악장에서 이 곡의 행진 주제를 비꼬듯 인용했다. (상실) 1943년 모스크바로 옮겨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가 되었고, 전쟁의 참혹함을 정면으로 그린 교향곡 8번을 썼다. 1944년 2월 솔레르틴스키가 마흔하나의 나이로 급사하자 그를 기리는 피아노 3중주 2번을 썼다. 유대 민속 춤곡풍의 피날레는 당시 알려지던 나치 수용소 학살 소식과 겹쳐 들린다는 해석이 널리 퍼져 있다. 1945년 승전을 기릴 장대한 '9번'을 기대한 당국 앞에 그는 짧고 경쾌한 교향곡 9번을 내놓았고, 이는 곧 화근이 되었다.

♪교향곡 7번 다장조 「레닌그라드」, Op. 601941 (35세)실황 Mariinsky Theatre

포위된 레닌그라드에서 쓰기 시작해 피란지 쿠이비셰프에서 완성했다. 굶주린 연주자들이 포위된 도시에서 연주하면서 전쟁의 상징이 되었다.

  • 1악장 한가운데의 이른바 '침공 장면'에서는 작은북이 같은 리듬을 끝까지 되풀이하는 동안, 단순한 행진 선율이 열한 번 넘게 반복되며 점점 커진다.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와 자주 비교되는 대목이다.
  • 그 행진 선율은 처음엔 가볍고 우스꽝스럽게 시작해 금관이 더해지며 거대하고 무자비한 소리로 변한다. 바르토크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에서 비꼬아 인용한 것이 바로 이 선율이다.
  • 3악장 아다지오는 목관악기들이 교회 찬송가처럼 화음을 맞춰 부르는(코랄) 대목으로 시작한다. 작곡가는 이 악장에 고향 도시의 풍경을 담았다고 말한 바 있다.
  • 피날레 마지막에서 1악장의 첫 주제가 금관으로 크게 되돌아온다. 오랜 어둠 끝에 다장조의 밝은 화음으로 끝나는 순간을 귀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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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서랍 속의 음악 · 1948–1953 (42–47세)

(결의) 1948년 2월 당 중앙위원회는 이데올로기 책임자 즈다노프의 주도로 '형식주의'를 규탄하는 결의를 냈다. 쇼스타코비치는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하차투랸, 먀스콥스키 등과 함께 지목되어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음악원 교수직을 모두 잃었다. 수입은 영화 음악과 체제를 기리는 오라토리오 『숲의 노래』 같은 작품이 메웠다. 그 사이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연가곡 『유대 민속시에서』를 써 놓고 발표하지 않은 채 서랍에 넣어 두었다. (뉴욕) 1949년 스탈린이 직접 전화를 걸어 뉴욕 평화회의 대표단에 들라고 했다. 그는 그곳에서 준비된 연설문을 읽어야 했고, 망명 작곡가 니콜라스 나보코프가 『프라우다』의 이고리 스트라빈스키 비판에 동의하느냐고 묻자 동의한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대인들은 그를 수줍고 극도로 예민하며, 시간을 지나치게 엄수하고 줄담배를 피우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바흐) 1950년 바흐 서거 200주년을 맞아 라이프치히의 바흐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갔다가, 우승자 타티야나 니콜라예바의 연주에 자극을 받아 돌아오자마자 『24개의 전주곡과 푸가』를 썼다. 1953년 3월 5일 스탈린과 프로코피예프가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그해 겨울 초연된 교향곡 10번에는 자기 이름 머리글자를 독일식 음이름으로 옮긴 레-미♭-도-시(DSCH) 음형이 곳곳에 새겨졌다.

♪바이올린 협주곡 1번 가단조, Op. 77 (Op. 99)1947–1948 (41–42세)연주 Augustin Hadelich (바이올린) · WDR

즈다노프 결의의 해에 써 놓고 7년 동안 서랍에 넣어 두었던 곡이다. 스탈린이 죽고 나서야 오이스트라흐의 독주로 세상에 나왔다.

  • 1악장 '녹턴'은 바이올린이 낮고 어두운 음역에서 오래 숨을 쉬듯 노래한다. 화려한 협주곡의 시작과는 정반대의, 혼잣말 같은 첫머리다.
  • 2악장 스케르초에서는 유대 민속 춤곡 같은 선율과 함께 작곡가의 이름 음형(DSCH)이 숨어 나타난다. 날카롭게 튀는 바이올린의 리듬을 따라가 보자.
  • 3악장 '파사칼리아'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같은 저음 선율을 되풀이하고 그 위에서 바이올린이 변주를 쌓는다. 곡 전체의 무게 중심이 되는 비극적 악장이다.
  • 3악장 끝의 긴 카덴차(독주자 혼자 연주하는 대목)는 바이올리니스트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난관이다. 오이스트라흐가 숨 돌릴 틈을 부탁하자 작곡가가 피날레 첫 선율을 오케스트라에게 넘겨 주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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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개의 전주곡과 푸가, Op. 871950–1951 (44–45세)연주 Keigo Mukawa (피아노) · 2021 퀸 엘리자베스

라이프치히에서 바흐 서거 200주년을 기념하고 돌아와 쓴 곡이다. 공포의 시절에 그는 바흐의 형식 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자기 목소리를 지켰다.

  • 1번 다장조 전주곡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1번(역시 다장조)을 떠올리게 한다. 두 곡을 나란히 들으면 이 작품이 바흐에게 보내는 인사임이 분명해진다.
  • 곡의 순서는 다장조, 가단조, 사장조, 마단조처럼 장조와 그 짝이 되는 단조를 묶어 차례로 옮겨 간다. 쇼팽의 『24개의 전주곡』과 같은 순서다.
  • 각 푸가는 한 선율을 여러 성부(목소리)가 돌림노래처럼 차례로 이어받는다. 오른손과 왼손에서 같은 선율이 언제 다시 나타나는지 찾아가며 들어 보자.
  • 마지막 24번 라단조 푸가는 두 주제를 겹쳐 쌓아 올리는 장대한 마무리다. 초연자 타티야나 니콜라예바의 녹음은 지금도 기준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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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해빙의 그늘 · 1954–1966 (48–60세)

(상실) 1954년 12월 니나가 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 어머니도 숨을 거두었다. 1956년 재혼했으나 몇 해 못 가 헤어졌다. 1955년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 다비트 오이스트라흐의 독주로 마침내 빛을 보았고, 1957년에는 음악원 학생이던 아들 막심의 생일을 위해 밝고 장난기 어린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썼다. 1959년에는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를 위해 첼로 협주곡 1번을 썼다. (입당) 1958년 무렵부터 오른손에 힘이 빠지는 병이 시작되었다. 1960년 그는 오랫동안 피해 온 공산당 입당을 끝내 받아들였고, 친구들은 그가 그 무렵 몹시 괴로워했다고 회고했다. 그해 7월 드레스덴 근교에서 사흘 만에 쓴 현악 4중주 8번은 공식적으로 '파시즘과 전쟁의 희생자'에게 바쳐졌지만, 그는 친구 이사크 글리크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곡을 자신을 위한 추모곡이라고 썼다. (바비야르) 1962년 문학 편집자 이리나 수핀스카야와 결혼했고, 이 결혼은 그의 마지막 날까지 이어졌다. 같은 해 12월 시인 예브게니 옙투셴코의 시로 키이우 근교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교향곡 13번 『바비 야르』가 초연되었다. 므라빈스키가 지휘를 사양해 키릴 콘드라신이 맡았고, 당국의 압박 속에서도 공연은 열렸다. 이듬해에는 『맥베스 부인』을 고친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가 무대에 돌아왔다. 1966년 그는 첫 심장 발작을 겪었다.

♪현악 4중주 8번 다단조, Op. 1101960 (54세)연주 Borodin Quartet · 2002

공산당 입당 직후 드레스덴 근교에서 사흘 만에 쓴 곡이다. 공식 헌사는 전쟁 희생자였지만, 친구에게는 자신을 위한 추모곡이라고 털어놓았다.

  • 1악장 첫머리에서 첼로가 작곡가의 이름 음형 레-미♭-도-시(DSCH)를 느리게 연주하고, 다른 악기들이 차례로 같은 음형을 이어받는다. 곡 전체가 이 네 음에서 자라난다.
  • 곡 곳곳에 자기 옛 작품이 인용된다. 교향곡 1번과 5번, 피아노 3중주 2번의 유대풍 선율, 첼로 협주곡 1번, 『맥베스 부인』의 선율을 찾아 들어 보자.
  • 2악장은 네 악기가 미친 듯이 내달리는 빠른 악장으로, 피아노 3중주 2번의 유대 춤곡 선율이 비명처럼 터져 나온다.
  • 4악장에서 세 번씩 거듭 내리꽂히는 강한 화음은 한밤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린다는 해석이 있다. 이 악장에는 옛 러시아 혁명가 「고문에 지쳐」의 선율도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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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죽음을 응시하다 · 1966–1975 (60–69세)

(병) 병은 깊어졌다. 다리가 두 번 부러졌고, 1971년 두 번째 심장 발작이 왔으며, 오른손으로는 글씨 쓰기조차 힘들어졌다. 그는 외과의사 일리자로프를 찾아 멀리 쿠르간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1962년 무소륵스키의 『죽음의 노래와 춤』을 관현악화한 일은 1969년 교향곡 14번으로 이어졌다. 로르카, 아폴리네르, 릴케 등의 시 열한 편으로 오직 죽음만을 노래한 이 곡을 그는 벤저민 브리튼에게 헌정했고, 브리튼은 이듬해 영국 올드버러에서 이 곡을 지휘했다. (인용) 1971년 마지막 교향곡인 15번에는 로시니의 『빌헬름 텔』 서곡과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의 '운명의 동기'가 인용되었다. 그는 그 뜻을 끝내 설명하지 않았다. 이듬해 1월 지휘자가 된 막심이 초연을 맡았다. 1974년에는 현악 4중주 15번과 미켈란젤로의 시에 의한 연가곡을 잇달아 썼다. 느린 악장만 여섯 개 이어지는 15번 4중주는 그의 음악 가운데 가장 고요하고 어두운 작품으로 꼽힌다. (마지막) 1975년 7월 병상에서 비올라 소나타를 완성했다. 그는 마지막 악장을 '베토벤을 기리는 아다지오'라 불렀고, 그 안에는 『월광』 소나타 1악장의 음형이 스며 있다. 그해 8월 9일 모스크바에서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 노보데비치 묘지에 묻혔다. 열다섯 곡의 교향곡과 열다섯 곡의 현악 4중주가 그가 겪은 시대의 기록으로 남았다.

♪비올라 소나타, Op. 1471975 (69세)연주 Yuri Bashmet (비올라) · Mikhail Muntyan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 병상에서 완성한 마지막 작품이다. 그는 이 곡을 베토벤에게 바치는 작별처럼 마무리했다.

  • 1악장 첫머리에서 비올라가 활 대신 손가락으로 줄을 뜯어(피치카토) 텅 빈 5도 음정을 울린다. 아무런 장식 없는 이 시작이 곡 전체의 고요한 분위기를 정한다.
  • 2악장은 그가 1940년대에 쓰다 그만둔 고골 원작 오페라 『도박꾼』의 재료를 가져다 썼다. 비틀거리듯 익살스러운 리듬이 앞뒤 악장의 침묵과 대조된다.
  • 3악장에서 피아노가 연주하는 셋잇단 음형은 베토벤 『월광』 소나타 1악장에서 왔다. 그 위로 비올라가 낮고 긴 선율을 노래한다.
  • 마지막은 비올라와 피아노가 점점 잦아들며 소리가 사라지듯 끝난다. 숨을 죽이고 마지막 음이 꺼지는 순간까지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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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1927년 지휘자 니콜라이 말코는 쇼스타코비치에게 미국 노래 「Tea for Two」를 한 시간 안에 관현악으로 편곡할 수 있겠느냐며 내기를 걸었다. 그는 기억에 의지해 45분 만에 편곡을 끝냈고, 이것이 「타히티 트롯」(Op. 16)이다. 정치적 시련의 서사에 가려 잘 언급되지 않지만, 젊은 날의 그가 얼마나 빠르고 유쾌한 손을 가졌는지 보여 주는 일화다. 그는 축구를 단순히 즐긴 정도가 아니었다. 심판 자격 과정을 밟아 자격증을 땄고, 레닌그라드 팀 제니트를 응원하며 경기 결과와 득점자를 공책에 꼼꼼히 기록했다. 공포와 침묵의 이미지로만 기억되는 작곡가가 경기장에서는 누구보다 소리 높여 환호하던 관중이었다. 1953년 초 친구이자 작곡가인 미에치스와프 바인베르크가 체포되자, 쇼스타코비치는 위험을 무릅쓰고 비밀경찰 총수 베리야에게 그의 석방을 호소하는 편지를 썼다. 바인베르크의 아내가 남긴 증언에 따르면, 그는 그녀마저 체포될 경우 어린 딸을 자기가 맡겠다는 위임장까지 준비해 두었다. 바인베르크는 스탈린이 죽은 뒤 풀려났다. 이 일은 당사자들의 회고로 뒤늦게 알려졌다. 2004년 모스크바 글린카 박물관 문서고에서 한 연구자가 1932년 그가 쓰다 만 풍자 오페라 『오랑고』의 피아노 스케치를 찾아냈다. 사람과 원숭이의 교배라는 기묘한 소재를 다룬 이 작품은 반세기 넘게 정리되지 않은 원고 더미 속에 묻혀 있었다. 이후 관현악으로 완성되어 2011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초연되었고, 그의 작품 목록은 지금도 문서고에서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용어 노트 📚🔎

교향곡

(말뜻) 교향곡(交響曲)은 여러 소리가 서로 어울려(交) 울리는(響)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심포니도 그리스어 symphonia, 곧 '함께 울림'에서 왔다. (음악에서) 오케스트라를 위해 쓴 큰 규모의 곡으로, 보통 성격이 서로 다른 서너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다. 빠르고 긴장된 악장, 느리고 노래하는 악장, 가볍게 뛰노는 악장, 힘찬 마무리 악장이 차례로 놓이는 식이다. 코스 요리에서 수프, 주요리, 디저트가 맛도 분위기도 다르지만 한 끼 식사로 이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쇼스타코비치는 이런 교향곡을 열다섯 곡 남겼다.

현악 4중주

(음악에서) 바이올린 두 대, 비올라 한 대, 첼로 한 대, 모두 네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음악, 또는 그런 연주 모임을 가리킨다. 지휘자 없이 네 사람이 서로의 숨소리와 눈빛을 보며 맞추기 때문에, 오케스트라보다 훨씬 사적이고 속 깊은 대화처럼 들린다. 모둠 활동에서 네 명이 각자 맡은 부분을 하면서도 서로 의견을 주고받아 하나의 발표를 완성하는 것과 닮았다.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에서 할 수 없던 개인적인 이야기를 4중주에 많이 담았다.

푸가

(말뜻) 푸가(fuga)는 라틴어로 '도망'이라는 뜻이다. 한 선율이 앞서 달아나면 다른 선율이 뒤쫓는 모양에서 붙은 이름이다. (음악에서) 하나의 짧은 주제를 여러 성부(목소리)가 차례로 이어받으며 겹쳐 쌓아 가는 작곡 방식이다. 돌림노래에서 뒷사람이 같은 가락을 한 박 늦게 따라 부르는 것과 비슷한데, 푸가에서는 따라 부르는 쪽이 음높이를 옮겨 부르고, 서로 부딪치지 않고 어울리도록 정교하게 짜여 있다. 바흐가 이 형식의 대가였고, 쇼스타코비치는 바흐를 기리며 24곡의 푸가를 썼다.

파사칼리아

(말뜻) 스페인어 pasacalle에서 왔다고 보는데, '거리(calle)를 지나가다(pasar)'라는 뜻이다. 원래 거리를 걸으며 연주하던 춤곡에서 이름이 나왔다. (음악에서) 낮은 음에서 같은 선율을 계속 되풀이하고, 그 위에 다른 악기들이 매번 다른 변주를 쌓아 올리는 형식이다. 줄넘기에서 줄을 돌리는 박자는 내내 같지만, 뛰어드는 아이들이 매번 다른 동작을 보여 주는 모습을 떠올리면 쉽다. 같은 저음이 끈질기게 반복되기 때문에 무겁고 엄숙하며 비극적인 느낌을 낼 때 자주 쓰인다. 쇼스타코비치는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맥베스 부인』 등에서 이 형식을 썼다.

모티프

(말뜻) 라틴어 movere(움직이다)에서 나온 말로, 한자로는 동기(動機), 곧 무언가를 움직이게 하는 실마리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곡을 이루는 가장 작은 음악적 덩어리로, 몇 개의 음으로 된 짧은 음형이다. 작곡가는 이 작은 조각을 늘이고 뒤집고 쌓아 큰 곡을 만든다. 게임에서 특정 캐릭터가 나올 때마다 울리는 짧은 효과음처럼, 모티프가 들리면 듣는 사람은 무엇이 등장했는지 알아챈다. 쇼스타코비치는 자기 이름 머리글자를 음으로 바꾼 레-미♭-도-시(DSCH) 모티프를 자신의 서명처럼 여러 작품에 새겼다. (다른 데서는) 미술이나 문학에서는 작품의 중심이 되는 소재나 주제를, 일상에서는 어떤 일을 하게 된 계기를 가리킨다.

스케르초

(말뜻) 스케르초(scherzo)는 이탈리아어로 '농담', '장난'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교향곡이나 4중주 안에 들어가는 빠르고 경쾌한 악장으로, 익살스럽거나 들뜬 성격을 띤다. 무겁고 긴 악장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바꿔 주는 역할을 한다. 길고 어려운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장난치며 웃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쇼스타코비치의 스케르초는 웃음 뒤에 날카로운 비꼼이나 공포가 숨어 있어서, 웃는 얼굴로 화를 내는 것처럼 들릴 때가 많다.

카덴차

(말뜻) 이탈리아어 cadenza는 라틴어 cadere(떨어지다)에서 왔다. 원래 곡이 마침에 이르는 대목을 가리키던 말로, 그 마침 직전에 독주자가 솜씨를 펼치던 데서 지금의 뜻이 생겼다. (음악에서)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멈추고 독주자 혼자 자유롭게 기교와 표현을 펼치는 대목이다. 학교 장기자랑에서 다 같이 춤을 추다가 한 명이 무대 가운데로 나와 혼자 실력을 보여 주는 순간과 같다.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카덴차는 길고 어려워 연주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관현악화

(음악에서) 피아노곡이나 노래처럼 적은 악기로 쓰인 음악을 오케스트라의 여러 악기에 나누어 맡기도록 다시 쓰는 작업이다. 어떤 선율은 바이올린에, 어떤 화음은 금관에 주는 식으로 소리의 색깔을 정한다. 연필로 그린 밑그림에 어떤 물감을 어디에 칠할지 정해 색칠하는 것과 비슷하다. 쇼스타코비치는 무소륵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와 『죽음의 노래와 춤』을 관현악화하며 그의 음악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다른 데서는) 영어 오케스트레이션은 컴퓨터 분야에서 여러 서버와 프로그램이 함께 돌아가도록 자동으로 조율하는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