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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jamin Britten

벤저민 브리튼 (1913–1976)

“나는 뿌리를, 연고를, 배경을, 사람 사이의 관계를 믿는다.” — 1964년 애스펀 상 수상 연설에서

한눈에 보기 🔭💭

1. 뿌리영국 로스토프트 출생치과의사 집안 막내스승 프랭크 브리지2. 청년베르크 유학 좌절오든과 영화 음악피어스와의 만남3. 망명미국의 3년크래브의 바다병역 거부4. 올드버러피터 그라임스올드버러 음악제잉글리시 오페라 그룹5. 화해발리와 노(能)전쟁 레퀴엠쇼스타코비치 우정6. 말년베네치아에서의 죽음심장 수술1976 레드 하우스브리튼1913–1976북해의 바닷가 마을에서 평화주의와 사랑을 오페…
삶의 여정 🧭🗺️
N영국로스토프트1913–1930런던1930–1939뉴욕1939–1942올드버러1947–1976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가족에디스 브리튼

    아마추어 성악가였던 어머니로, 막내의 재능을 일찍 알아보고 큰 기대를 걸었다.

  • 스승프랭크 브리지

    10대의 그에게 엄격한 작곡 기술과 평화주의를 함께 물려준 평생의 스승이다.

  • 우정W. H. 오든

    「야간 우편」 등을 함께 만들며 그에게 문학과 정치의 세계를 열어 준 시인이다.

  • 가족피터 피어스

    1937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한 테너이자 삶의 동반자로, 주요 테너 배역 대부분이 그를 위해 쓰였다.

  • 후원세르게이 쿠세비츠키

    보스턴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자신의 재단을 통해 「피터 그라임스」를 의뢰했다.

  • 우정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서로 작품을 헌정하며 냉전의 벽 너머로 깊은 존경을 나눈 소련 작곡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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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로스토프트의 소년 · 1913–1930 (0–17세)

(바다) 1913년 11월, 영국 잉글랜드 동부 서퍽의 바닷가 도시 로스토프트에서 태어났다. 생일인 22일은 음악의 수호성인 성 체칠리아의 축일이었다. 집은 북해를 마주한 거리에 있었고, 거친 바다와 어부들의 삶은 훗날 그의 오페라에 되살아났다. (가족) 아버지 로버트 빅터 브리튼은 치과의사였고, 어머니 에디스는 지역 합창단에서 노래하던 아마추어 성악가였다. 위로 누나 바버라와 베스, 형 로버트가 있었고 그는 막내였다. 어머니는 막내의 재능에 큰 기대를 걸어, 바흐·베토벤·브람스에 이어 '네 번째 B'가 되리라 말하곤 했다고 전한다. (조숙) 다섯 살 무렵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고, 열 살 즈음엔 오드리 앨스턴에게 비올라를 배웠다. 10대 중반까지 피아노곡·가곡·현악 4중주 등 수백 편을 써 두었는데, 이때의 선율 일부는 스무 살 무렵 「심플 심포니」에 다시 쓰였다. (스승) 열 살 때 노리치 음악제에서 프랭크 브리지의 관현악곡 「바다」를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고, 1927년 앨스턴의 소개로 브리지를 직접 만나 개인 지도를 받기 시작했다. 브리지는 음 하나하나의 쓰임을 엄격히 따지게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지켜본 평화주의자였던 그는 소년에게 전쟁에 대한 생각도 함께 심어 주었다. (기숙학교) 1928년 노퍽의 그레셤 스쿨에 들어갔으나 음악적으로 마음 둘 곳은 적었다. 그는 크리켓과 테니스를 즐겼고 일기를 꼬박꼬박 적었는데, 단체 생활을 버거워하던 마음이 그 일기에 남아 있다. 1930년 왕립음악원 장학생으로 뽑혀 런던으로 떠났다.

♪심플 심포니, Op. 41933–1934 (20–21세)연주 Norwegian Chamber Orchestra

열두 살 이전에 쓴 피아노곡과 노래의 선율을 스무 살 무렵 현악 합주로 다시 엮은 곡이다. 로스토프트의 소년이 자기 어린 시절을 정리해 내놓은 셈이다.

  • 2악장 '장난스러운 피치카토'는 처음부터 끝까지 활을 쓰지 않고 손가락으로 줄을 뜯는(피치카토) 악장이다. 빠른 템포에서 여러 현악기가 톡톡 튀는 리듬을 맞춰야 해서 합주단의 호흡이 그대로 드러난다.
  • 1악장 '떠들썩한 부레'는 옛 프랑스 춤곡 부레의 경쾌한 리듬을 빌렸다. 높은 현이 던지는 짧은 동기를 낮은 현이 받아치는 주고받기를 따라가 보면 좋다.
  • 3악장 '감상적인 사라반드'는 가장 길고 진지한 악장이다. 느린 3박자 옛 춤곡(사라반드)의 둘째 박에 무게가 실리는 걸음을 들으면, '심플'이라는 제목 뒤의 깊은 서정이 보인다.
  • 악장 제목은 Boisterous(떠들썩한), Playful(장난스러운), Sentimental(감상적인), Frolicsome(신나게 뛰노는)처럼 형용사와 춤곡 이름의 첫소리를 맞춘 말장난이다. 출판 악보에는 각 주제가 어린 시절 어느 곡에서 왔는지가 밝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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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런던, 그리고 오든 · 1930–1939 (17–26세)

(음악원) 1930년부터 3년간 왕립음악원에서 존 아일랜드에게 작곡을, 아서 벤저민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학교의 공기는 보수적이었고, 그는 수업보다 브리지와의 만남에서 더 많이 배운다고 여겼다. 재학 중 쓴 「신포니에타」에 작품번호 1을 붙였고, 합창 변주곡 「한 아이가 태어났네」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빈) 1934년 그는 빈으로 가 알반 베르크에게 배우고 싶어 했다. 베르크의 오페라 「보체크」를 라디오로 듣고 깊이 끌린 터였다. 그러나 음악원 쪽에서 베르크가 '좋은 영향이 아니다'라는 말이 부모에게 전해졌고, 결국 계획은 접혔다. 같은 해 4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영화) 1935년 우정공사(GPO) 영화부에 들어가 적은 주급을 받으며 다큐멘터리 음악을 썼다. 시인 W. H. 오든과 함께 만든 「야간 우편」(1936)에서는 열차 바퀴 소리와 시의 리듬을 맞물렸다. 오든은 그에게 정치와 문학의 세계를 열어 주었고, 자신의 동성애를 받아들이도록 북돋웠다. 둘은 연가곡 「우리 사냥하는 조상들」도 함께 만들었다. (만남) 1937년 1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해 그는 테너 피터 피어스와 가까워졌고, 두 사람은 이후 40년 가까이 삶과 음악을 함께했다. 어머니의 유산으로 서퍽 스네이프의 낡은 풍차 방앗간을 샀다. 그해 여름 잘츠부르크 음악제를 위해, 스승에게 바치는 「프랭크 브리지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한 달 남짓 만에 써냈다. 이듬해 미국 작곡가 에런 코플런드가 이 방앗간에 머물며 서로의 곡을 들려주었다. (출국) 유럽에 전쟁의 기운이 짙어지자 1939년 5월 그는 피어스와 함께 대서양을 건넜다. 먼저 미국에 가 있던 오든처럼, 그도 새 땅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프랭크 브리지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 101937 (24세)실황 Orchestra of the Swan · 2016 Kings Place

부모를 차례로 잃은 무렵, 그는 정신적 아버지였던 스승의 성품을 변주 하나하나에 담아 고마움을 표했다.

  • 주제는 브리지의 「현악 4중주를 위한 세 개의 목가」 제2곡에서 가져왔다. 서주 뒤 처음 나오는 차분한 주제를 기억해 두면, 뒤의 변주들이 그것을 어떻게 비틀어 가는지 따라갈 수 있다.
  • 그의 원고에는 변주마다 스승의 성품이 적혀 있었다 — '아다지오'는 성실함, '행진곡'은 활력, '로망스'는 매력, '이탈리아풍 아리아'는 유머, '장송 행진곡'은 공감. 각 변주를 들으며 어떤 사람이었을지 그려 보면 곡이 하나의 초상화가 된다.
  • '이탈리아풍 아리아'에서는 현악기들이 기타처럼 줄을 뜯는(피치카토) 반주 위로 높은 바이올린이 오페라 가수의 화려한 기교를 흉내 낸다. 이어지는 '빈 왈츠'는 일부러 과장된 감상으로 빈의 왈츠를 비튼 패러디다.
  • 마지막 '푸가와 피날레'에서 여러 성부가 차례로 쫓아 들어오는 푸가가 정점에 이르면, 주제가 넓고 따뜻하게 되돌아온다. 이 피날레의 원고에 적힌 말은 '우리의 완전한 이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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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대서양 저편에서 · 1939–1945 (26–32세)

(롱아일랜드) 미국에서는 뉴욕 롱아일랜드 애미티빌의 메이어 가족 집에 머물렀다. 정신과 의사의 부인 엘리자베스 메이어는 두 젊은이를 가족처럼 돌보았다. 이 무렵 랭보의 시에 붙인 「일뤼미나시옹」, 「바이올린 협주곡」, 부모를 기리는 「진혼 교향곡」, 피어스를 위한 「미켈란젤로의 일곱 소네트」가 나왔다. (브루클린) 1940년 가을부터는 오든이 꾸린 브루클린의 공동주택에서 작가·예술가들과 어울려 살았다. 자유로웠지만 소란해서 작업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오든이 대본을 쓴 오페레타 「폴 버니언」(1941)은 혹평을 받았고, 두 사람의 협업도 이 무렵 사실상 끝났다. 수입은 들쭉날쭉했고 병치레도 잦았다. (크래브) 1941년 여름 캘리포니아에서 그는 E. M. 포스터가 서퍽의 시인 조지 크래브에 대해 쓴 글을 읽었다. 고향 바닷가 이야기에 견딜 수 없는 향수를 느낀 그는, 크래브의 시 「자치구」 속 어부 피터 그라임스를 오페라로 만들기로 했다. 지휘자 세르게이 쿠세비츠키가 자신의 재단을 통해 1000달러를 내어 작곡을 의뢰했다. (양심) 1942년 봄 스웨덴 화물선을 타고 귀국하는 길에 「성 체칠리아 찬가」와 「캐럴의 의식」을 썼다. 귀국 뒤 병역 거부자 심사에서 그는 모든 사람 안에 신의 영이 있으니 그것을 파괴할 수 없다고 진술했다. 항소 끝에 조건 없는 면제를 얻었고, 피어스와 함께 전시 위문 연주로 전국을 돌았다. 홍역을 앓고 난 1943년에는 피어스와 호른 주자 데니스 브레인을 위해 「세레나데」를 썼다. (그라임스) 1945년 6월 7일 런던 새들러스 웰스 극장에서 「피터 그라임스」가 초연됐다.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받다 바다로 나가 죽는 어부의 이야기였다. 거기에는 평화주의자이자 동성애자로서 늘 바깥에 서 있던 두 사람의 감정이 겹쳐 있었고, 피어스는 이를 군중에 맞선 개인의 이야기라 불렀다. 초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영국 오페라가 다시 태어났다는 평을 받았다.

♪테너, 호른과 현을 위한 세레나데, Op. 311943 (30세)실황 Ian Bostridge · Radovan Vlatkovic

귀국 뒤 홍역에서 회복하며 쓴 곡으로, 저녁과 밤, 잠과 죽음을 노래한 영국 시들을 엮어 피어스와 데니스 브레인에게 맞춰 썼다.

  • 맨 앞 '프롤로그'와 맨 끝 '에필로그'의 호른 독주는 밸브를 쓰지 않고 관의 길이로만 낼 수 있는 음(자연배음)으로 분다. 몇몇 음이 피아노 음보다 높거나 낮게 들리는 것은 실수가 아니라 옛 나팔의 색깔을 살리려는 의도이고, 에필로그는 무대 밖에서 멀리 들리게 연주한다.
  • 테니슨의 '녹턴'('불어라, 나팔아, 불어라')에서 호른은 테너의 노래 끝마다 산울림처럼 응답한다.
  • 블레이크의 '엘레지'('오 장미여, 너는 병들었구나')에서는 호른이 반음씩 미끄러지는(반음계) 신음 같은 선율로 병든 장미를 그린다.
  • 작자 미상의 '라이크웨이크 만가'는 죽은 영혼이 저승길을 건너는 노래다. 테너가 같은 가락을 되풀이하는 동안 현악기가 푸가처럼 차례로 쌓여 오르고, 절정에서 호른이 날카롭게 터져 나온다.
  • 벤 존슨의 '찬가'는 사냥의 여신을 노래하는 빠른 곡으로, 호른 주자의 손가락과 혀를 시험하는 악명 높은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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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그라임스」 중 네 개의 바다 간주곡, Op. 33a1945 (32세)실황 WDR Sinfonieorchester

캘리포니아에서 고향 바다를 그리워하며 시작한 오페라의 간주곡들이다. 북해의 빛과 날씨가 오케스트라로 그려져 있다.

  • '새벽'은 세 층으로 나뉜다 — 바이올린과 플루트가 아주 높은 곳에서 한 줄로 부르는 가는 선율, 클라리넷·하프·비올라의 물결 같은 분산화음(아르페지오), 낮은 금관의 무거운 화음. 흔히 갈매기 울음, 반짝이는 물결, 묵직한 바다로 듣는다.
  • '일요일 아침'에서는 호른들이 서로 엇갈리며 짧은 음을 되풀이해 마을 교회의 종소리를 흉내 낸다. 뒤에서 울리는 진짜 종소리와 겹쳐지는 순간을 놓치지 말자.
  • '달빛'은 느리고 고요하다. 낮은 현의 넓은 화음이 밀려왔다 물러나는 사이로 플루트와 하프가 반짝이듯 끼어든다.
  • '폭풍'은 금관과 타악기가 몰아치는 격렬한 대목이다. 한가운데 잠시 바람이 잦아드는 순간, 그라임스가 오페라에서 안식을 꿈꾸며 부르던 선율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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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올드버러 · 1945–1955 (32–42세)

(벨젠) 1945년 7월,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과 함께 해방된 독일의 수용소들을 돌며 생존자들 앞에서 연주했다. 베르겐벨젠에서 본 광경을 그는 평생 거의 입에 올리지 않았다. 다만 돌아와 쓴 「존 던의 신성 소네트」에는 죽음과 심판의 그림자가 짙고, 피어스는 그 경험이 이후 그의 모든 작품에 배어 있다고 그가 말했다고 전했다. (오페라단) 큰 극장에 기대지 않고 작품을 올리려고 1947년 작가 에릭 크로지어, 화가 존 파이퍼와 함께 잉글리시 오페라 그룹을 세웠다. 소수의 가수와 열두어 명의 연주자로 순회할 수 있는 실내 오페라는 비용을 줄이는 실리적인 해법이기도 했다. 비극 「루크레티아의 능욕」(1946)에 이어 서퍽 시골을 풍자한 희극 「앨버트 헤링」(1947)이 나왔다. (축제) 1947년 그는 피어스와 올드버러 바닷가의 크래그 하우스로 옮겼고, 이듬해 두 사람과 크로지어가 올드버러 음악제를 열었다. 작은 교회와 마을 회관에서 시작한 축제는 그의 신작과 그가 아끼던 퍼셀·슈베르트의 음악이 오르는 무대가 됐다. 1952년부터는 구스타프 홀스트의 딸 이모겐 홀스트가 조수로 곁을 지켰다. (순수) 포스터와 크로지어가 대본을 쓴 「빌리 버드」(1951)는 순결한 젊은 수병이 악의에 의해 무너지는 이야기였다. 순수함이 파괴되는 주제는 그의 작품에 거듭 돌아왔다.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대관을 기념한 「글로리아나」는 갈라 초연에서 냉담한 반응을 얻어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예민) 그는 일에 철저했고 비판에 몹시 예민했다. 가까운 협력자라도 신뢰를 잃으면 멀리했다. 1954년 베네치아에서 초연한 「나사의 회전」에서 소년 마일스를 노래한 데이비드 헤밍스는, 그가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지냈지만 한 번도 선을 넘은 일이 없었다고 훗날 증언했다.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 Op. 341946 (33세)지휘 Saraste · WDR Sinfonieorchester

전쟁 직후 아이들을 위한 교육 영화에 쓰려고 만든 곡이다. 그가 평생 존경한 퍼셀의 선율로 오케스트라의 구석구석을 소개한다.

  • 처음에 퍼셀의 극음악 「압델라자르」에서 가져온 주제를 오케스트라 전체, 목관, 금관, 현, 타악기 순으로 들려준다. 같은 선율이 악기 무리에 따라 얼마나 다른 색을 띠는지 비교해 보자.
  • 이어지는 변주에서는 악기 하나하나가 주인공이 된다 — 피콜로와 플루트의 반짝임, 오보에의 노래, 바순의 익살, 트롬본과 튜바의 무게가 차례로 드러난다.
  • 타악기 변주에서는 팀파니가 계속 받쳐 주는 가운데 큰북과 심벌즈, 탬버린과 트라이앵글, 작은북과 우드블록, 실로폰, 캐스터네츠와 탐탐, 채찍이 짝을 지어 차례로 나온다.
  • 마지막 푸가는 피콜로부터 악기들이 하나씩 쫓아 들어와 점점 두꺼워진다. 정점에서 금관이 원래의 퍼셀 주제를 느리고 장엄하게 울려, 빠른 푸가와 느린 주제가 한꺼번에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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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동방에서 코번트리까지 · 1955–1965 (42–52세)

(동방) 1955년 말부터 다섯 달 동안 피어스와 세계 연주 여행을 하며 인도네시아 발리와 일본을 찾았다. 발리에서는 청동 타악기 합주인 가믈란에 빠져 그 가락을 악보에 받아 적었고, 그 소리는 발레 「파고다의 왕자」(1957)에 녹아들었다. 1956년 2월 도쿄에서는 아이를 잃고 실성한 어머니의 이야기인 노(能) 「스미다가와」를 두 번이나 보러 갔다. (은둔) 1957년 그는 화가 메리 포터와 집을 맞바꿔 올드버러 외곽의 레드 하우스로 옮겼다. 바닷가 산책로를 오가는 구경꾼들을 피해 조용히 일할 곳이 필요했다. 이곳에서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1960)을 오페라로 만들었다. (레퀴엠) 1962년 5월 30일,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무너진 뒤 새로 지은 코번트리 대성당의 봉헌 행사에서 「전쟁 레퀴엠」이 초연됐다. 그는 라틴어 위령 미사에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시인 윌프레드 오언의 시를 엮었다. 악보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싸웠던 친구 넷의 이름을 적었는데, 그중 셋은 전사했다. 독주자로 소련의 갈리나 비슈넵스카야, 영국의 피어스, 독일의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를 세워 화해를 드러내려 했으나, 비슈넵스카야는 소련 당국이 막아 초연에 서지 못했다. 이듬해 나온 음반은 다섯 달 만에 20만 장이 팔렸다. (우정) 1960년 런던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 제1번 영국 초연을 계기로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와 친구가 됐다. 그를 위해 첼로 소나타, 첼로 교향곡, 무반주 첼로 모음곡 세 곡을 썼다. 로스트로포비치를 통해 쇼스타코비치와도 가까워졌고, 두 사람은 냉전의 벽 너머로 서로의 음악을 깊이 존경했다. (우화) 1964년 그는 「스미다가와」의 기억을 중세 영국 교회로 옮긴 교회 우화극 「컬류 강」을 썼다. 같은 해 미국 애스펀 상을 받으며 작곡가는 자기 공동체를 위해 써야 한다고 말했고, 1965년에는 메리트 훈장을 받았다.

♪전쟁 레퀴엠, Op. 661961–1962 (48–49세)지휘 Currentzis · SWR Symphonieorchester

평생의 평화주의가 가장 크게 울린 곡이다. 폭격으로 무너진 성당의 봉헌을 위해, 적이었던 나라들의 목소리를 한자리에 세우려 했다.

  • 세 무리를 따로 들어 보자. 소프라노·합창·대규모 오케스트라는 라틴어 미사를, 테너·바리톤과 실내 관현악은 오언의 시를 부르고, 멀리 떨어진 소년 합창과 오르간은 다른 세계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 첫머리부터 종이 도와 파#(삼전음) 두 음을 번갈아 울린다. 중세에 '음악 속의 악마'로 불린 이 불안한 음정이 곡 전체를 꿰뚫다가, 큰 부분이 끝날 때마다 고요한 화음으로 풀린다.
  • '봉헌송'에서 테너와 바리톤은 오언이 비튼 아브라함과 이삭 이야기를 부른다. 천사의 만류에도 노인이 '아들을, 그리고 유럽의 씨앗 절반을 하나씩' 죽였다는 대목 뒤로, 소년들이 '찬미의 제물을 바칩니다(Hostias)'를 되풀이하는 대비가 섬뜩하다.
  • 마지막 '나를 자유롭게 하소서'에서 오언의 「이상한 만남」이 흐른다. 죽은 병사가 '나는 네가 죽인 적이다, 친구여'라고 말하고, 테너와 바리톤이 '이제 잠들자'를 주고받는 사이 모든 무리가 하나로 모인다. 초연에서는 영국 테너와 독일 바리톤이 이 대목을 함께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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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마지막 베네치아 · 1966–1976 (53–63세)

(몰팅스) 1967년 6월 스네이프의 옛 맥아 공장을 고친 콘서트홀 '몰팅스'가 문을 열었다. 1969년 음악제 개막일 밤 불이 나 홀이 타 버렸지만, 이듬해 축제에 맞춰 다시 지어졌다. 그는 이 홀을 다시 세우는 데 남은 힘을 아낌없이 쏟았다. (헌정) 1968년 교회 우화극 「탕자」를 쇼스타코비치에게 헌정했고, 쇼스타코비치는 이듬해 죽음을 노래한 교향곡 제14번을 그에게 바쳤다. 1970년 그는 올드버러에서 이 교향곡의 영국 초연을 지휘했다. (심장) 1970년대 초 심장 판막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그는 토마스 만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마지막 오페라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끝내려고 수술을 미뤘다.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무너져 가는 늙은 작가 아셴바흐는 피어스를 위해 쓴 역이었다. 1973년 5월 판막 교체 수술 도중 가벼운 뇌졸중이 와 오른손이 약해졌고, 그는 다시는 공개 무대에서 피아노를 치지 못했다. 그해 6월의 초연도 지켜보지 못했다. (만년) 그래도 몸이 허락하는 만큼 계속 썼다. 메조소프라노 재닛 베이커를 위한 칸타타 「페드라」(1975), 베네치아에서 마무리한 「현악 4중주 제3번」이 마지막 무렵의 작품이다. 1976년 7월에는 작곡가로는 처음으로 일대 귀족 작위를 받았다. (죽음) 1976년 12월 4일 레드 하우스에서 피어스의 품에 안겨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63세였다. 올드버러 교구 교회 묘지에 묻혔고, 1986년 피어스도 그 곁에 묻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피어스에게 조의를 전했는데, 이는 두 사람의 관계를 공적으로 인정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가 남긴 재산은 브리튼-피어스 재단이 되어 지금도 올드버러의 음악을 지원한다.

♪현악 4중주 제3번, Op. 941975 (62세)실황 Ives Quartet · 2013 Old First Concerts

수술 뒤 쇠약해진 몸으로 마지막 오페라의 무대였던 베네치아에서 마무리한 곡이다. 초연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 보름 뒤에 열렸다.

  • 다섯 악장 중 1악장 '이중주'는 네 악기가 둘씩 짝을 바꿔 가며 대화한다. 어느 두 악기가 지금 짝인지 귀로 맞혀 보면 구조가 선명해진다.
  • 3악장 '독주'에서는 제1바이올린이 아주 높은 음역에서 홀로 길게 노래하고, 나머지 악기들은 숨죽여 받친다. 높은 하늘에서 새가 우는 것처럼 들린다.
  • 마지막 악장 '레치타티보와 파사칼리아'에는 베네치아의 옛 별칭인 '라 세레니시마'라는 부제가 붙어 있고,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선율이 인용된다. 악기들이 말하듯 짧은 조각을 꺼내는 대목(레치타티보) 뒤에, 낮은 성부가 같은 음형을 되풀이하는 파사칼리아가 이어진다.
  • 곡은 완전히 풀리지 않은 화음으로 끝난다. 마침표라기보다 물음표처럼 들리는 이 마지막 울림을 서두르지 말고 끝까지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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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진혼 교향곡」은 흔히 부모를 기리는 곡으로만 소개되지만, 원래는 1940년 일본 정부가 황기 2600년 기념 행사를 위해 영국 문화원을 통해 의뢰한 곡이었다. 라틴어 위령 미사에서 딴 '눈물의 날', '분노의 날', '영원한 안식' 같은 악장 제목을 받아 본 일본 측은 경축 행사에 그리스도교 장례 음악은 맞지 않다며 연주를 거부했다. 브리튼은 이미 받은 작곡료를 돌려주지 않았고, 곡은 이듬해 뉴욕에서 존 바비롤리의 지휘로 초연됐다. 그가 열네 살 무렵부터 1938년까지 쓴 일기는 오랫동안 재단 문서고에만 있다가 2009년에야 책으로 묶였다. 작품번호 1 이전에 쓴 수백 편의 습작도 상당수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정리됐다. 그 덕에 「심플 심포니」 같은 곡이 실은 열 살 안팎 소년의 선율로 짜였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은 1946년 영국 교육부가 만든 교육 영화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을 위해 쓴 곡이다. 영화에서는 맬컴 사전트가 런던 교향악단을 지휘하며 직접 해설했다. 이후 연주회용 작품으로 널리 퍼지면서 영화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은 잘 언급되지 않게 됐다. 「피터 그라임스」의 성공 뒤에는 극단 안의 갈등이 있었다. 새들러스 웰스 극단의 일부 단원은 신작의 낯선 음악과 초연 준비가 극단을 흔든다며 반발했고, 극단을 이끌던 소프라노 조앤 크로스가 이 작품을 밀어붙였다. 초연 뒤 크로스와 피어스, 크로지어는 극단을 떠났고, 이 경험이 잉글리시 오페라 그룹을 세우는 씨앗이 됐다.

용어 노트 📚🔎

변주곡

(말뜻) 변주곡(變奏曲)은 바꾸어(變) 연주하는(奏) 곡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하나의 주제를 먼저 들려준 뒤, 리듬·화음·빠르기·분위기를 바꾸어 가며 여러 번 다시 들려주는 형식이다. 브리튼의 「프랭크 브리지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같은 주제에 행진곡, 왈츠, 장송 행진곡의 옷을 차례로 입힌다. 생일 축하 노래를 친구들이 각자 랩으로, 트로트로, 아주 느린 발라드로 바꿔 불러 보는 것과 비슷하다 — 노래는 같지만 매번 다른 얼굴이 된다.

피치카토

(말뜻) 이탈리아어 pizzicare(꼬집다)에서 온 말로, '꼬집듯이 뜯어서'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현악기를 활로 긋지 않고 손가락으로 줄을 뜯어 소리 내는 연주법이다. 소리가 짧고 톡톡 튀며 금세 사라진다. 고무줄을 팽팽히 당겨 손가락으로 튕기면 '퉁' 하고 짧게 울리는데, 바로 그 원리다.

자연배음

(말뜻) 배음(倍音)은 '곱절(倍)이 되는 음'이라는 뜻이다. 한 음이 울릴 때 그 진동수의 두 배, 세 배가 되는 음들이 희미하게 함께 섞여 나오는데, 이것을 배음이라 한다. (음악에서) 밸브나 손가락 구멍 없이 관의 길이만으로 낼 수 있는 음들을 자연배음이라 한다. 옛 사냥 나팔처럼 입술의 힘만으로 음을 바꾸면 이 음들만 나오는데, 그중 몇은 피아노 건반의 음보다 조금 높거나 낮게 들린다. 「세레나데」의 호른은 일부러 이 음들만으로 분다. 음악 시간에 리코더를 세게 불었더니 손가락을 그대로 두었는데도 한참 높은 소리가 '삑' 하고 튀어나온 적이 있다면, 그것이 한 배음에서 다음 배음으로 건너뛴 순간이다.

간주곡

(말뜻) 간주곡(間奏曲)은 사이(間)에 연주하는(奏) 곡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 오페라에서 막과 막, 장면과 장면 사이에 노래 없이 오케스트라만 연주하는 음악이다. 무대를 바꾸는 시간을 메우면서 다음 장면의 분위기를 미리 그려 준다. 「피터 그라임스」의 간주곡들은 바다의 새벽과 폭풍을 그려, 따로 떼어 연주회에서도 자주 연주된다. 학예회 연극에서 장면이 바뀌는 동안 조명이 어두워지고 음악만 흐르는 순간을 떠올리면 된다.

푸가

(말뜻) 라틴어 fuga 는 '달아남, 도망'이라는 뜻이다. 앞선 성부를 뒤의 성부가 쫓아가는 모습에서 이름이 붙었다. (음악에서) 짧은 주제를 한 성부가 먼저 연주하면, 다른 성부들이 차례로 음높이를 옮겨 같은 주제를 따라 들어오며 서로 얽혀 가는 형식이다.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의 끝은 피콜로부터 타악기까지 차례로 들어오는 푸가다. 돌림노래에서 뒷사람이 같은 가락을 늦게 따라 부르는 것과 비슷한데, 푸가에서는 따라 들어오는 쪽이 음높이를 바꿔 부른다는 점이 다르다. (다른 데서는) 정신의학에서는 '둔주(fugue)'라고 해서, 자기가 누구인지 잊은 채 집을 떠나 떠도는 상태를 가리킨다.

삼전음

(말뜻) 삼전음(三全音)은 온음(全音) 세(三) 개만큼 떨어진 두 음 사이의 거리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트라이톤(tritone)이라 한다. (음악에서) 예를 들어 도와 파#(올림 파) 사이의 거리다. 두 음을 함께 울리면 어딘가 불안하고 매듭지어지지 않은 소리가 나서, 중세에는 '음악 속의 악마'라 불리며 피하는 음정이었다. 「전쟁 레퀴엠」에서는 이 음정의 종소리가 작품 전체를 꿰뚫는다. 피아노에서 도와 파#을 동시에 눌러 보면, 어서 다른 음으로 옮겨 가고 싶은 찜찜한 느낌이 든다 — 숙제를 반쯤 하다 만 채 잠자리에 든 기분과 비슷하다.

가믈란

(말뜻) 자바어로 '두드리다' 또는 '망치'를 뜻하는 말 gamel 에서 왔다고 알려져 있다. (음악에서) 인도네시아 자바와 발리의 전통 합주로, 청동 징, 실로폰처럼 생긴 금속 건반악기, 북 같은 두드리는 악기 수십 개가 함께 연주한다. 여러 악기가 같은 선율을 서로 다른 빠르기로 겹쳐 반짝이는 소리의 층을 만든다. 브리튼은 발리에서 이를 듣고 「파고다의 왕자」 등에 그 울림을 옮겼다. 음악실의 실로폰·메탈로폰·트라이앵글을 반 친구들이 박자를 나눠 맡아 한꺼번에 두드리며 하나의 가락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가깝다.

파사칼리아

(말뜻) 스페인어 pasacalle(pasar 지나가다 + calle 거리)에서 왔다고 보는 설명이 널리 알려져 있다. 원래는 거리를 지나가며 연주하던 짧은 음악이었다. (음악에서) 낮은 음역에서 짧은 선율이 같은 모양으로 계속 되풀이되고, 그 위에서 다른 성부들이 쉬지 않고 변주를 펼치는 형식이다. 브리튼은 이 형식을 아껴 오페라와 「현악 4중주 제3번」의 마지막 악장에 썼다. 운동장에서 긴 줄넘기 줄이 같은 박자로 계속 돌아가는 동안, 안에 들어온 친구들이 저마다 다른 동작으로 뛰는 모습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