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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nín Dvořák

안토닌 드보르자크 (1841–1904)

기관차의 엔진 번호를 외우고 고향의 민요를 오선지에 옮겨 적은, 끝내 소박함을 잃지 않은 작곡가였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체코 넬라호제베스 출생정육점집 아들즐로니체 음악눈뜸2. 무명시절프라하 오르간학교극장 비올라 주자요제피나의 거절3. 브람스국가장학금 수상브람스의 후원슬라브 춤곡 성공4. 유럽명성런던 아홉 차례 방문교향곡 7번차이콥스키와 우정5. 신세계뉴욕 음악원 원장신세계 교향곡스필빌의 여름6. 귀환과말년오페라 루살카프라하음악원장1904년 선종드보르자크1841–1904체코 민족음악을 세계 무대에 올린, 평생 고향…
삶의 여정 🧭🗺️
N체코넬라호제베스1841–1853프라하1857–1904뉴욕1892–1895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곁의 사람들 ⏳🌊

  • 스승안토닌 리먼

    즐로니체에서 오르간과 화성법을 가르쳐 음악의 길을 열어 주었다.

  • 가족안나 체르마코바

    1873년 결혼한 아내로, 짝사랑했던 언니 요제피나의 동생이었다.

  • 후원요하네스 브람스

    국가장학금 심사에서 그를 눈여겨보고 출판사에 추천해 국제적 성공의 길을 열어 주었다.

  • 영향베드르지흐 스메타나

    프라하 극장 오케스트라에서 10년 가까이 그의 지휘 아래 비올라를 연주하며 체코 민족 오페라를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 우정표트르 차이콥스키

    1888년 프라하에서 처음 만나 서로의 음악을 존중하는 벗이 되었다.

  • 제자요제프 수크

    프라하 음악원 제자였고 훗날 그의 딸 오틸리에와 결혼해 사위가 되었다.

YouTube에서 7곡 이어 듣기 ↗

I. 넬라호제베스의 소년 · 1841–1857 (0–16세)

(출생) 1841년 9월, 오스트리아 제국(오늘날 체코) 보헤미아의 작은 마을 넬라호제베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프란티셰크 드보르자크는 정육점과 여인숙을 겸해 운영하는 동시에 치터를 연주할 줄 아는 아마추어 악사였고, 어머니 안나 즈데네코바는 영주 저택 관리인의 딸이었다. 부부는 모두 열네 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그중 여럿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안토닌은 살아남은 자식 가운데 맏이였다. (바이올린) 마을 학교 교사이자 오르간 연주자였던 요제프 슈피츠에게서 바이올린과 노래를 배웠다. 교회 성가대와 마을 축제에서 연주하며 재능을 드러냈고, 아버지의 여인숙에 드나드는 손님들을 위해 어린 나이부터 악기를 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즐로니체) 집안의 가업을 잇는 정육업자가 되려면 독일어를 익혀야 했으므로, 열두 살 무렵 숙부가 있는 즐로니체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만난 성당 오르간 주자이자 음악 교사 안토닌 리먼이 재능을 알아보고 오르간과 피아노, 비올라, 화성법을 가르쳤다. (갈림길) 아버지는 아들이 정육업 면허를 따서 가게를 물려받기를 바랐지만, 리먼과 숙부가 거듭 설득한 끝에 음악의 길을 허락받았다. 1857년, 열여섯 살의 그는 프라하 오르간 학교 입학을 위해 고향을 떠났다.

II. 프라하의 무명 연주자 · 1857–1873 (16–32세)

(오르간학교) 1857년 프라하 오르간 학교에 입학해 2년 과정을 마쳤다. 성적은 전체 2위였지만 생활은 궁핍했다. 독일어가 서툴러 따로 독일어 보충 수업을 들어야 했다. (비올라) 졸업 후 카렐 콤자크가 이끄는 악단에 비올라 주자로 들어갔고, 이 악단은 1862년 새로 문을 연 프라하 임시극장의 상주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1866년부터는 베드르지흐 스메타나가 극장 지휘를 맡았는데, 드보르자크는 10년 가까이 그 비올라 파트에 앉아 스메타나의 지휘 아래 연주하며 체코 민족 오페라가 무대에 오르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월급이 적어 피아노 개인 교습으로 생활비를 보탰다. (요제피나) 교습하던 제자 요제피나 체르마코바를 깊이 사랑해 1865년 그녀를 위한 가곡집 '사이프러스'를 썼지만 고백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요제피나는 훗날 다른 귀족과 결혼했고, 드보르자크는 몇 해 뒤 그녀의 여동생 안나 체르마코바와 가까워졌다. (침묵의 다작) 이 시기 교향곡과 현악 4중주, 오페라를 쉼 없이 썼지만 연주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해 초기작 여러 편의 악보를 스스로 불태워 없앴다고 전해진다. 1871년에는 극장 자리를 그만두고 작곡과 교습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III. 브람스라는 다리 · 1873–1878 (32–37세)

(결혼) 1873년 안나 체르마코바와 결혼했다. 이듬해부터 아이들이 태어났지만 1877년까지 딸 요제파, 딸 루제나, 아들 오타카르를 차례로 잃었다. 요제파는 태어난 지 이틀 만에, 루제나는 인(燐) 중독으로, 오타카르는 세 살의 나이에 천연두로 세상을 떠났다. (스타바트마터) 거듭된 자식의 죽음이 안긴 슬픔은 라틴어 기도시에 곡을 붙인 '스타바트 마터' 작곡으로 이어졌다. 1876년 요제파를 잃은 뒤 쓰기 시작해 이후 두 아이를 더 잃으며 곡을 확장했고, 1877년에 완성했다. (장학금) 가난한 예술가를 돕는 오스트리아 국가장학금에 거듭 지원해 1874년부터 여러 해 수상했다. 심사위원 가운데 음악평론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와 지휘자 요한 헤르베크, 그리고 1875년부터는 요하네스 브람스가 있었는데, 브람스는 심사 서류만으로 그의 재능에 깊이 감탄했다. (브람스와 슬라브춤곡) 브람스는 출판업자 심로크에게 그를 적극 추천했고, '모라비아 2중창'의 성공에 이어 1878년 피아노 연탄곡 '슬라브 춤곡'을 심로크의 의뢰로 완성했다. 이 작품이 유럽 전역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무명의 보헤미아 비올라 주자는 하룻밤 사이 국제적으로 알려진 작곡가가 되었다. 브람스는 이후로도 교정을 도와주고 돈을 빌려주는 등 평생 그를 후원했으며, 드보르자크는 자신보다 여덟 살 위인 그를 스승처럼 깊이 존경했다.

♪스타바트 마터 Op.581877 (36세)실황 hr-Sinfonieorchester · MDR-Rundfunkchor · Andrés Orozco-Estrada 지휘

세 아이를 잃은 슬픔이 라틴어 애도시에 곡을 붙이게 했다.

  • 도입 합창이 부르는 '어머니는 서 계셨다'라는 가사의 첫 대목은 느리게 가라앉는 저음현에서 시작해, 십자가 아래 서 있는 어머니의 무게를 음악으로 그린다.
  • 전체 10곡 중 독창과 합창이 교차하는 구성은 슬픔이 개인과 공동체 사이를 오가는 느낌을 준다.
  • 베이스 독창이 부르는 느리고 어두운 대목은 애도를 길게 끄는 숨결로 표현했다는 해석이 많다.
  • 합창단 사이에서는 호흡을 길게 유지해야 하는 느린 템포가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대목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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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브 춤곡 Op.461878 (37세)실황 「8번」 Berliner Philharmoniker · Simon Rattle 지휘

브람스의 추천으로 받은 출판 의뢰가 그를 하룻밤 사이 유럽의 작곡가로 만들었다.

  • 1번 다장조 춤곡은 체코 민속춤 '푸리안트'의 엇박 리듬을 그대로 살려, 당시 유럽 청중에게는 낯설고 신선한 리듬감을 주었다.
  • 피아노 연탄(네 손) 원곡과 이후 편곡한 관현악 버전을 비교해 듣는 것도 흥미롭다 — 관현악판에서는 현과 목관이 번갈아 민속 악기 소리를 흉내 낸다.
  • 2번 마단조 춤곡은 느린 '두므카' 풍으로, 흥겨움 속에 문득 스며드는 애수가 특징이다.
  • 연주자들 사이에서는 리듬을 악보 그대로 딱딱하게 치지 않고 살짝 밀고 당기는 유연한 템포 감각을 살리는 것이 해석의 관건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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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유럽이 알아보다 · 1879–1891 (38–50세)

(런던) 1884년 처음으로 런던을 방문해 왕립 필하모닉 협회의 초청으로 자신의 곡을 지휘했다. 합창 전통이 강한 영국에서 '스타바트 마터'를 비롯한 작품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이후 1896년까지 아홉 차례나 영국을 오가며 공연했다. (교향곡7번) 왕립 필하모닉 협회의 의뢰로 쓴 교향곡 7번은 1885년 런던에서 초연되었다. 그는 작곡 중 편지에 이 곡이 '세상을 뒤흔들 수 있어야 한다'고 썼으며, 이전의 민속적 색채보다 어둡고 치열한 울림을 담았다. (차이콥스키) 1888년 표트르 차이콥스키가 프라하를 방문했을 때 처음 만나 서로의 작품을 깊이 존중하는 사이가 되었다. 1890년에는 차이콥스키의 초청으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찾아 자신의 곡을 지휘했고,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이어 갔다. (스메타나 이후) 1884년 스메타나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계승자를 자처한 일부 체코 비평가들은 바그너적 혁신을 더 중시하며 드보르자크의 음악을 지나치게 보수적이라 비판했다. 그는 이런 논쟁에 거리를 두고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1891년에는 프라하 음악원의 작곡 교수로 임용되었다.

♪교향곡 7번 라단조 Op.701885 (44세)실황 Berliner Philharmoniker · Kirill Petrenko 지휘

런던의 의뢰로, 브람스의 교향곡 3번에 자극받아 세상을 뒤흔들 곡을 꿈꾸며 쓴 야심작이다.

  • 1악장 첫 주제는 어두운 라단조로 낮게 깔리며 시작해, 그가 품었던 비장한 각오를 들려준다.
  • 2악장의 느린 선율은 목관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처럼 흐르며, 평론가들은 종종 이 악장을 교향곡 전체에서 가장 서정적인 순간으로 꼽는다.
  • 3악장 스케르초는 보헤미아 춤곡의 리듬이 교향곡의 격식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대목으로, 지휘자들 사이에서 템포 선택이 자주 엇갈린다.
  • 4악장 결말부에서 어둠을 뚫고 올라오는 장조로의 전환은 연주회에서 가장 긴장되게 들리는 순간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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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신세계로 · 1892–1895 (51–54세)

(초청) 뉴욕에 미국 국립음악원을 세운 자네트 서버가 원장 자리를 제안하며 당시 프라하 월급의 몇 배에 달하는 연봉 만오천 달러를 제시했다. 가족의 생계를 안정시킬 기회로 받아들여 1892년 가을 대서양을 건넜다. (뉴욕) 뉴욕에서 작곡을 가르치며 흑인 바리톤 제자 해리 벌리와 가까이 지냈고, 벌리가 불러 주는 흑인 영가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아메리카 원주민 음악에 대한 관심도 있었으나 대부분 책과 지인을 통한 간접적인 것이었다. (스필빌) 1893년 여름은 아이오와주의 체코 이민자 농촌 마을 스필빌에서 지냈다. 고향 말이 그대로 쓰이는 그곳에서 모처럼 마음을 놓았고, 동시에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신세계교향곡과미국4중주) 뉴욕과 스필빌을 오가며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와 현악 4중주 '아메리카'를 짧은 기간에 완성했다. 두 곡 모두 미국에서 들은 새로운 소리에 대한 호기심과 보헤미아를 향한 그리움이 함께 녹아 있다. (귀향) 1893년 미국의 금융 공황으로 서버가 약속한 급여를 제때 지급하지 못하자 생활이 흔들렸다.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마다 고국을 향한 그리움이 짙게 배어났고, 1895년 봄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완전히 귀국했다.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Op.951893 (52세)실황 Berliner Philharmoniker · Herbert von Karajan 지휘

뉴욕과 스필빌을 오가며 쓴, 미국에 대한 호기심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함께 담긴 곡이다.

  • 1악장 도입 직후 호른이 제시하는 주제는 흑인 영가의 음계와 보헤미아 민요의 느낌이 겹쳐 들린다는 평이 많다.
  • 2악장 느린 악장의 잉글리시 호른 선율은 후에 노랫말이 붙어 독립된 노래로도 널리 불렸을 만큼 애틋하다 —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담겼다고 흔히 해석된다.
  • 3악장 스케르초는 롱펠로의 서사시 '하이아와사'의 춤 장면에서 받은 인상이 반영됐다고 작곡가 스스로 언급한 바 있다.
  • 4악장 도입의 금관 팡파르는 앞선 악장들의 주제를 차례로 불러들이는데, 이 돌림구조를 알아채며 듣는 것이 감상의 재미를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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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 4중주 12번 '아메리카' Op.961893 (52세)연주 Rubens Kwartet (현악 4중주)

스필빌의 짧은 여름 동안 완성된, 고향 사람들 사이에서 느낀 평온이 녹아든 실내악이다.

  • 1악장 비올라가 제시하는 첫 주제는 드보르자크 자신이 비올라 연주자였다는 사실과 맞물려, 이 악기가 유난히 따뜻하게 노래하도록 쓰였다.
  • 2악장의 느린 선율 역시 영가풍 음계를 띠고 있어 교향곡 9번과 함께 듣는 것을 권한다.
  • 3악장에서 반복되는 새소리 같은 짧은 음형은 스필빌에서 실제로 들었던 새소리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빠른 4악장은 네 악기가 쉴 틈 없이 짧은 음형을 주고받아, 실내악 연주자들에게는 호흡을 맞추기 까다로운 곡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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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협주곡 나단조 Op.1041895 (54세)연주 Anastasia Kobekina (첼로) · Tonhalle-Orchester Zürich

미국에서 쓰기 시작해 귀국 직후 마무리한, 첫사랑 요제피나를 떠올리며 옛 가곡을 인용한 곡이다.

  • 1악장 도입에서 오케스트라가 길게 제시하는 주제 뒤에 첼로가 낮은 음역에서 묵직하게 들어오는 순간은 협주곡 전체에서 가장 극적인 입장으로 꼽힌다.
  • 2악장에는 그가 1887~88년에 쓴 가곡 '나를 홀로 두오'의 선율이 인용되어 있는데, 당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첫사랑 요제피나를 떠올리며 넣었다고 전해진다.
  • 3악장 마지막에서 느려지며 다시 그 가곡 선율이 돌아오는 대목은 첼리스트들 사이에서 가장 감정이 북받치는 순간으로 꼽힌다.
  • 브람스는 이 악보를 보고 첼로로 이런 곡을 쓸 수 있다는 걸 왜 몰랐는지 모르겠다며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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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귀환, 오페라의 시간 · 1895–1901 (54–60세)

(귀환) 1895년 프라하로 돌아와 음악원 교수 자리를 다시 맡았다. 미국에서 돌아온 뒤로는 교향곡을 더 쓰지 않았고 관심의 중심은 교향시와 오페라로 옮겨 갔다. (전환) 리스트풍 교향시 연작과 함께 체코어 오페라에 집중했는데, 이는 스메타나가 세운 체코 민족 오페라의 전통을 자신의 방식으로 잇고자 한 선택이었다. (루살카) 1900년 완성한 오페라 '루살카'는 물의 요정이 인간을 사랑해 목소리를 잃는 동화를 바탕으로 한다. '달에게 부치는 노래' 아리아로 특히 널리 알려졌고, 오페라 가운데 가장 큰 성공을 거두어 오늘날까지 체코 극장의 대표 레퍼토리로 남아 있다. (원장과작위) 1901년 프라하 음악원 원장으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오스트리아 상원인 귀족원 의원으로도 지명되었다. 정육점집 아들이 받은 이 명예로운 자리를 그는 조용히,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받아들였다고 전해진다.

♪오페라 '루살카' Op.1141900 (59세)노래 Kristine Opolais (소프라노) · The Royal Opera

체코 민족 오페라의 전통을 잇고자 한 말년의 역작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 1막에서 루살카가 부르는 '달에게 부치는 노래'는 인간이 되고 싶은 물의 요정의 간절함을 느리게 차례로 올라가는(상행) 선율로 그려낸다.
  • 오케스트라의 현과 하프가 만드는 물결치는 반주는 요정이 사는 호수의 일렁임을 떠올리게 한다.
  • 2막에서 목소리를 잃은 루살카가 노래 없이 몸짓만으로 감정을 전해야 하는 대목은 연출과 연기력이 특히 시험대에 오르는 장면으로 꼽힌다.
  • 민담에 바탕한 줄거리와 체코어 가사의 리듬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점은 체코 성악가들 사이에서 특히 자랑스럽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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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말년과 죽음 · 1901–1904 (60–63세)

(기차와비둘기) 평생 비둘기를 기르고 기차를 구경하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겼다. 프라하의 프란츠 요제프역에 자주 나가 열차 시간표와 기관차 번호를 외우다시피 했고, 유명 인사를 만나는 자리보다 새로 들어오는 기관차를 보는 일을 더 좋아했다는 일화가 여럿 전해진다. (신앙) 평생 가톨릭 신앙을 지켰고 '스타바트 마터', 레퀴엠, 라단조 미사 같은 종교음악에 그 믿음을 꾸준히 담았다. 소박하고 말이 적은 성격이었으며, 격식보다는 가족과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더 소중히 여겼다고 동시대인들은 전한다. (쇠약) 1904년 초부터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신장 질환과 독감 증세가 겹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죽음) 1904년 5월 1일, 프라하의 자택에서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었다. 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의 죽음에 국가적 애도가 이어졌고, 프라하의 비셰흐라드 묘지에 체코 문화계 인사들과 나란히 묻혔다. (유산) 스메타나가 연 체코 민족음악의 길을 세계 무대로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사위이자 제자였던 작곡가 요제프 수크가 그 음악적 유산을 이어받았고, 다음 세대 체코 작곡가들도 그를 깊이 존경했다.

덜 알려진 이야기

그의 교향곡 1번 '즐로니체의 종'은 1865년에 완성해 독일의 한 공모전에 보냈지만 돌려받지 못했다. 드보르자크는 평생 이 곡이 사라졌다고 믿었고, 이후 자신의 작품 목록에서도 빼놓았다. 악보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성만 같을 뿐 그와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의 유품 속에서 발견되었고, 1936년에야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 그가 끝내 듣지 못한 자신의 첫 교향곡이다. 출판사 심로크는 그의 초기작을 마치 신작처럼 보이도록 실제보다 높은 작품번호를 붙여 내곤 했고, 드보르자크 자신도 계약을 피해 다른 출판사에 팔려고 신작에 낮은 번호를 붙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작품번호만으로는 실제 작곡 순서를 알 수 없게 되었고, 체코 음악학자 야르밀 부르크하우저가 1960년대에 따로 'B번호' 목록을 만들어 실제 연대순을 정리해야 했다. 교향곡 9번이 흑인 영가나 아메리카 원주민 선율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지만, 1893년 뉴욕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특정 곡을 그대로 인용한 적이 없으며 다만 그 음악들의 '정신'을 담아 새로 썼을 뿐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 구분은 대중적으로 잘 전해지지 않는다. 1891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영국을 찾았을 때, 주홍색 예복을 입고 라틴어로 진행되는 격식 있는 의식에 참석해야 했다. 당시 증언에 따르면 그는 이런 격식보다 평범한 사람들과 기차 구경을 훨씬 편하게 여겼다고 한다.

용어 노트 📚🔎

교향시

교향(交響)은 소리가 서로 울린다는 뜻이고, 시(詩)는 시처럼 이야기나 그림을 음악으로 그려 낸다는 뜻이다. 음악에서는 특정한 이야기나 그림, 인상을 하나로 이어진 악장에 담아낸 관현악 작품을 가리킨다. 프란츠 리스트가 처음 만들었고, 드보르자크도 말년에 여러 편을 남겼다. 만화의 한 장면을 대사 없이 그림만으로 보여 주는 것처럼, 교향시는 말 없이 오케스트라 소리만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현악 4중주

현악(絃樂)은 줄을 켜거나 뜯어 소리를 내는 악기를, 중주(重奏)는 여러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것을 가리킨다. 음악에서는 바이올린 둘, 비올라 하나, 첼로 하나, 이렇게 네 사람이 각자 다른 성부를 맡아 연주하는 실내악의 대표 형식을 말한다. 네 친구가 서로 다른 생각을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모둠 토론과 비슷하다.

아리아

이탈리아어 아리아(aria)는 원래 '공기', '분위기'라는 뜻이다. 노래가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흐른다는 느낌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음악에서는 오페라에서 등장인물이 대화를 멈추고 혼자 서서 자기 감정을 길게 노래로 펼치는 부분을 가리킨다. 연극에서 다른 인물과의 대화를 잠시 멈추고 혼자 마음속 생각을 길게 말하는 독백 장면과 비슷하다.

국민음악(민족악파)

국민(國民)악파는 한 나라나 민족 고유의 색을 담은 음악의 흐름이라는 뜻이다. 음악에서는 19세기 후반 유럽 여러 나라에서 자기 민족의 민요와 춤곡, 전설을 서양 고전음악의 틀 안에 담아낸 움직임을 가리킨다. 드보르자크와 스메타나, 그리그, 차이콥스키 모두 이 흐름 안에 있었다. 같은 재료(서양 관현악)로 지역마다 다른 사투리와 양념을 넣어 서로 다른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과 비슷하다.

스타바트 마터

라틴어로 '어머니가 서 계셨다'라는 뜻이다. 십자가 아래 서 있는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그린 중세의 기도시에서 왔다. 음악에서는 이 기도시에 곡을 붙인 합창 작품의 한 갈래를 가리킨다. 학교나 마을에서 큰 슬픈 일이 있을 때 다 함께 부르는 추모곡과 비슷한 자리를 차지하는 음악이다.

작품번호(Op.)

Op.는 라틴어 opus, 즉 '작업' 또는 '작품'이라는 말의 줄임으로, 작곡가의 작품에 매기는 순서 번호다. 음악에서는 출판이나 작곡 순서에 따라 붙는 일종의 일련번호로, 같은 작곡가의 여러 작품을 구별하는 데 쓰인다. 책의 쪽수나 교과서 단원 번호처럼, 어떤 곡이 먼저 나왔고 어떤 곡이 나중에 나왔는지 가늠하게 해 준다. 다만 드보르자크의 경우 출판사와 작곡가 자신이 번호를 뒤섞어 붙인 탓에, 실제 작곡 순서와 꼭 맞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