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Beloved
새로 작곡한 곡은 한 마디도 없다. 대신 베토벤의 교향곡과 소나타가 장면마다 그의 기억이 되고, 그의 고백이 되며, 결국 그의 목소리가 된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만든 사람들 ⏳🌊
- 작곡가루트비히 판 베토벤
영화에 흐르는 모든 음악의 원작자로, 귀가 멀어 가면서도 교향곡과 소나타를 써 내려간 19세기 초 빈의 작곡가다.
- 지휘게오르그 솔티
헝가리 태생의 지휘자로, 1994년 런던 교향악단을 이끌고 이 영화의 관현악곡을 새로 녹음했다.
- 감독버나드 로즈
각본과 연출을 함께 맡아 베토벤의 기존 곡들을 축으로 이야기를 엮었다.
- 주연게리 올드먼
베토벤 역을 맡아 몇 주간 피아노를 집중 연습하고 촬영장에서 직접 건반을 쳤다.
- 주연예룬 크라베
불멸의 연인을 추적하며 이야기를 이끄는 비서 안톤 쉰들러를 연기했다.
- 주연이사벨라 로셀리니
베토벤의 후원자이자 벗인 안나 마리 에르되디 백작부인을 연기했다.
I. 베토벤을 영화로 연주하다
(기획) 「불멸의 연인」은 버나드 로즈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국·미국 합작 영화로, 1994년 12월에 개봉했다. 로즈는 이 영화를 위해 새 음악을 따로 주문하지 않았다. 베토벤이 남긴 교향곡·협주곡·소나타·실내악을 영화의 음악으로 삼고, 장면 하나하나를 그 곡들에 맞춰 짰다. 덕분에 이 영화의 작곡가는 1827년에 세상을 떠난 베토벤 자신이 되었다. (녹음) 녹음은 1994년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휘는 게오르그 솔티가 맡아 런던 교향악단을 이끌었다. 솔티는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시카고 교향악단을 22년간 이끈 지휘자로, 그래미상을 31차례 받았다. 피아노에는 머리 페라이어와 에마누엘 액스가, 바이올린에는 기돈 크레머와 패멀라 프랭크가, 첼로에는 요요 마가 참여했다. 사운드트랙 음반은 소니 클래시컬에서 나왔고, 1996년에는 속편 음반 「더 많은 불멸의 연인(More Immortal Beloved)」이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우) 베토벤 역은 게리 올드먼이 맡았다. 그는 이 배역을 준비하며 6주 동안 하루 여섯 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했고, 촬영장에서는 실제로 건반을 치며 연기했다고 한다. (계보) 귀가 들리지 않는 것과 음악의 관계는 시리즈에서 앞서 다룬 「홀랜드 오퍼스」에서도 이야기의 중심이었다. 그 영화의 음악 교사는 듣지 못하는 아들에게 음악을 건네려고 애쓴다. 이 영화에서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 자신이 소리를 잃어 간다.
II. 서랍 속의 편지
(장례) 영화는 1827년 3월 빈에서 열린 베토벤의 장례로 시작한다. 장례 장면에는 만년의 대작 「장엄 미사」의 첫 곡 「키리에」가 흐른다. 자비를 구하는 합창이 넓게 퍼지는 동안 운구 행렬이 거리를 지나간다. 실제 장례에도 빈 시민 수만 명이 모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편지) 유품을 정리하던 비서 안톤 쉰들러는 유언장과 함께 수신인이 적히지 않은 연서를 발견한다. 연필로 쓴 이 편지에서 베토벤은 상대를 나의 불멸의 연인이라고 부른다. 유언장에는 재산을 그 연인에게 남긴다고 적혀 있다. 쉰들러는 그녀가 누구인지 찾아 나서고, 영화는 그가 만나는 사람들의 증언을 따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만남) 쉰들러가 베토벤을 처음 만난 날의 기억에서 「크로이처 소나타」가 흐른다. 연주를 들은 베토벤은 음악이 듣는 사람을 작곡가의 마음속으로 데려간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이 곡을, 연인에게 가려고 서두르는데 마차가 진창에 빠져 버린 남자의 이야기로 풀어 준다. 화면은 그 말을 그대로 따라간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가 어떻게 듣고 보아야 하는 영화인지를 알려 주는 일종의 사용 설명서다.
쉰들러가 베토벤을 처음 만난 날, 베토벤이 진창에 빠진 마차 이야기로 풀어 준 곡이다. 음반에는 「마차가 진창에 빠지다(The Carriage Stuck in the Mud)」라는 장면 제목으로 실렸다.
- 이 곡은 영화에서 두 번 중요하게 쓰인다. 처음엔 음악을 듣는 법을 가르치는 비유로, 나중엔 쉰들러의 눈물과 함께 돌아온다. 같은 음악이 되풀이되며 인물과 사건을 가리키는 유도동기(라이트모티프)처럼 작동한다.
-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반주와 주선율로 나뉘지 않고 대등하게 다투듯 주고받는다. 서두르는 마음과 발목을 잡는 진창이 맞서는 이야기가 이 주고받기와 잘 겹쳐 들린다.
- 초연은 1803년 바이올리니스트 조지 브리지타워가 맡았지만, 출판할 때는 프랑스의 바이올리니스트 로돌프 크로이처에게 헌정되었다. 정작 크로이처는 이 곡을 연주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 톨스토이가 이 곡의 이름을 딴 중편소설 「크로이처 소나타」를 쓸 만큼, 이 곡은 격정적인 사랑과 질투를 떠올리게 하는 음악으로 여겨져 왔다.
III. 닫혀 가는 귀
(줄리에타) 쉰들러가 처음 찾아간 사람은 베토벤의 옛 피아노 제자 줄리에타 귀차르디다. 그녀의 회상 속에서 베토벤은 새 피아노를 시험하며 홀로 건반을 누른다. 그때 흐르는 곡이 「월광 소나타」 1악장이다. 줄리에타와 아버지는 몰래 그 연주를 지켜본다. (비밀) 베토벤은 건반 위로 몸을 숙이고 악기 몸통에 머리를 댄 채 연주한다. 귀가 아니라 나무의 떨림으로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엿보던 부녀에게 들킨 순간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그가 귀가 멀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고요하고 느린 음악이 사실은 감추고 싶은 비밀을 품고 있었던 셈이다. (리허설) 청력의 붕괴가 가장 날것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피아노 협주곡 리허설이다. 베토벤은 오케스트라 소리를 듣지 못해 몇 번이나 처음부터 다시 하자고 한다. 이때 영화는 음악 대신 웅웅거리는 울림과 메아리, 귀를 찌르는 이명(耳鳴) 같은 소리를 들려준다. 관객은 잠시 그의 귀가 듣는 세상 안에 갇힌다. 청중은 그를 비웃고, 에르되디 백작부인이 그를 부축해 나간다. (역사) 실제로도 베토벤은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의 초연을 직접 맡지 못했다. 이 곡의 독주는 다른 피아니스트들이 맡았다.
줄리에타와 아버지가 숨어서 베토벤의 연주를 지켜보다가 그가 귀가 멀어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이다. 음반 제목은 「줄리아와 아버지가 지켜보다(Julia and Her Father Watch)」다.
- 오른손이 화음을 한 음씩 셋씩 묶어 펼쳐 흐르게 하는 분산화음(아르페지오)을 쉼 없이 이어 간다. 그 위로 느린 선율이 떠오른다. 이 고요한 흐름 덕분에 몰래 엿보는 장면의 숨죽인 긴장이 커진다.
- 베토벤은 이 소나타를 실제로 줄리에타 귀차르디에게 헌정했다. 영화는 역사 속 헌정을 출발점으로 삼아 두 사람의 장면을 만들었다.
- 「월광」이라는 별명은 베토벤이 붙인 것이 아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비평가 루트비히 렐슈타프가 이 악장을 달빛 비치는 호수에 빗댄 데서 굳어졌다. 베토벤이 붙인 부제는 '환상곡풍으로'였다.
- 베토벤이 피아노 몸통에 머리를 대고 연주하는 모습은, 들리지 않게 된 귀 대신 몸으로 떨림을 느끼려는 몸짓이다. 이 장면에서는 소리를 어떻게 듣느냐가 곧 이야기가 된다.
IV. 포성과 위로
(전쟁) 영화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넘어간다. 교향곡 5번 1악장이 흐르는 동안 화면에는 행군과 포격, 무너지는 마을이 이어진다. 그 끝에서 베토벤은 한때 나폴레옹에게 바치려던 악보의 헌정사를 긁어 지운다. 역사 속에서는 교향곡 3번 「영웅」의 일화다. 영화는 다섯 번째 교향곡의 운명적인 첫 동기 위에 이 장면을 얹어, 한 영웅에 대한 환멸과 시대의 폭력을 한데 묶는다. (포격) 1809년 5월 프랑스군이 빈을 포격했을 때, 베토벤은 동생 집 지하실에서 베개로 귀를 감싸고 있었다고 제자 페르디난트 리스가 전한다. 남은 청력이라도 지키려 했던 것이다. (에르되디) 쉰들러가 두 번째로 찾아간 사람은 안나 마리 에르되디 백작부인이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전쟁통에 아이를 잃는다. 슬픔에 잠긴 그녀를 위로하는 장면에 피아노 삼중주 「유령」의 느린 악장이 흐른다. 베토벤은 실제로 이 삼중주를 에르되디 백작부인에게 헌정했다. 영화는 이 사실을 단서 삼아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함을 그려 냈다. (부정)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그 편지의 주인공은 아니라고 말한다. 쉰들러의 추적은 이제 베토벤의 가족에게로 향한다.
나폴레옹 전쟁과 빈 포격 장면을 이끄는 곡으로, 음반 첫 트랙 「나폴레옹이 빈을 포격하다(Napoleon Shells Vienna)」로 실렸다.
- 짧은 음 셋 뒤에 긴 음 하나가 오는 네 음짜리 동기가 악장 전체를 끌고 간다. 이 영화에서는 이 동기가 포성과 진군의 박자처럼 들린다.
- 짧은 동기 하나를 쪼개고 겹치고 쌓아 올려 거대한 악장을 만드는 방식은 베토벤 작곡법의 대표적인 예다. 영화는 이 끈질긴 반복을 전쟁의 기세로 바꾸어 쓴다.
- 이 교향곡은 1808년 12월 빈의 한 음악회에서 6번 「전원」과 같은 날 초연되었다. 영화에서도 두 교향곡이 각각 전쟁과 가족의 다툼에 쓰여 서로 짝을 이룬다.
- 솔티는 시카고 교향악단과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두 차례 녹음했다. 이 영화를 위해서는 런던 교향악단과 새로 녹음했다.
아이를 잃은 에르되디 백작부인을 베토벤이 위로하는 장면에 흐른다. 음반 제목은 「루트비히가 안나 마리를 위로하다(Ludwig Consoles Anna Marie)」다.
- 피아노·바이올린·첼로 세 악기가 함께하는 삼중주다. 이 음반의 연주진에는 에마누엘 액스, 패멀라 프랭크, 요요 마가 올라 있다.
- 피아노가 한 음을 빠르게 떨며 되풀이하는 트레몰로(떨림음)가 낮게 깔린다. 그 위로 현악기가 느리고 어두운 선율을 이어 간다. 위로라기보다 함께 슬퍼해 주는 음악처럼 들린다.
- 「유령」이라는 별명은 이 느린 악장의 으스스한 분위기에서 나왔다. 제자 체르니는 이 악장을 「햄릿」의 유령 장면에 빗댔다. 같은 시기 베토벤의 스케치북에는 「맥베스」 오페라 구상도 남아 있다.
- 베토벤은 이 삼중주를 실제로 에르되디 백작부인에게 헌정했다. 영화 속 두 사람의 친밀함은 이 헌정에서 출발한 상상이다.
V. 형제와 조카
(형제) 이야기는 베토벤 가문으로 들어간다. 바덴에서 형제가 함께 지내는 장면에는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이 흐른다. 팀파니가 네 번 부드럽게 두드리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협주곡은 1806년 초연 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영화에서는 아직 금이 가지 않은 가족의 한때를 비춘다. (폭풍) 금은 곧 간다. 베토벤은 동생 카스파어의 결혼을 못마땅해했고, 형제의 싸움은 교향곡 6번 「전원」의 4악장 「폭풍」과 함께 터진다. 시골 풍경을 그린 교향곡 안에서 갑자기 몰아치는 뇌우가 집 안의 격한 다툼이 된다. (후원자) 젊은 날 리히노프스키 공작 앞에서 연주하는 회상에는 피아노 소나타 「비창」이 쓰였다. 베토벤은 실제로 이 소나타를 리히노프스키 공작에게 헌정했다. (카를) 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 베토벤은 조카 카를의 양육권을 두고 오랜 소송을 벌인다. 그는 카를을 음악가로 키우려 집요하게 매달렸고, 압박을 견디지 못한 카를은 폐허가 된 성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 이 장면에 교향곡 7번 2악장 「알레그레토」가 흐른다. 1826년 카를이 바덴 근처 라우엔슈타인 성터에서 권총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난 것은 실제 기록에 남은 일이다.
베토벤과 동생 카스파어가 격하게 싸우는 장면에 쓰였다. 음반 제목은 「루트비히와 카스파어의 싸움(Ludwig and Caspar Fight)」이다.
- 앞의 세 악장 내내 쉬던 팀파니가 이 악장에서 처음 울린다. 천둥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느낌은 그렇게 아껴 둔 악기에서 나온다.
- 가장 높은 소리를 내는 작은 피리 피콜로가 날카롭게 끼어들어 바람 소리와 번개를 그린다.
- 시골의 평온을 그린 교향곡 한가운데서 폭풍이 몰아친다. 영화는 이 갑작스러운 날씨의 변화를 가족 사이에 터진 분노로 옮겨 놓았다.
- 실제 교향곡에서는 폭풍이 끝나면 쉼 없이 목동의 감사 노래로 넘어간다. 영화의 싸움에는 그런 화해가 곧바로 찾아오지 않는다.
궁지에 몰린 조카 카를이 폐허가 된 성터로 향하는 장면에 흐른다. 음반 제목은 「폐허의 카를(Karl at the Ruins)」이다.
- '길게-짧게-짧게-길게-길게'로 이어지는 리듬이 처음부터 끝까지 고집스럽게 되풀이된다. 이렇게 같은 음형을 끈질기게 반복하는 것을 오스티나토(고집 반복)라 한다. 벗어날 수 없는 압박을 그리기에 알맞다.
- 낮은 현악기에서 조용히 시작한 선율 위로 악기가 하나씩 더해지며 점점 두꺼워진다. 카를이 짊어진 무게가 차곡차곡 쌓이는 것처럼 들린다.
- 1813년 초연 때 청중의 요청으로 이 악장을 앙코르로 다시 연주했다고 전한다. 이후 「킹스 스피치」를 비롯한 많은 영화가 이 악장을 썼다.
- 장조인 교향곡 한가운데 놓인 단조 악장이다. 이 영화에서 이 악장은 카를을 가리키는 주제처럼 쓰인다.
VI. 아홉 번째 교향곡의 밤
(초연) 영화의 절정은 1824년 5월 빈에서 열린 교향곡 9번 초연이다. 거의 들리지 않는 귀로 무대에 선 베토벤 앞에서 마지막 악장의 합창이 시작된다. 실러의 시에 붙인 이 합창은 온 인류가 형제가 되는 기쁨을 노래한다. 그 노래 위로 영화는 이 작품에서 가장 대담한 장면을 펼친다. (회상) 음악이 흐르는 동안 화면은 소년 베토벤의 밤으로 건너간다. 술 취한 아버지를 피해 집을 빠져나온 소년은 어둠 속을 달려 숲을 지나 호수에 이른다. 그리고 물 위에 등을 대고 눕는다. 카메라가 위로 멀어지면 호수 수면에 비친 별들 한가운데에 소년이 떠 있다. 현악기의 긴 호흡과 합창의 고조가 그 이미지를 밀어 올린다. 공연장의 박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음악과 기억만 남는다. (박수) 노래가 끝나도 베토벤은 객석을 등지고 서 있다. 독창자 한 사람이 그를 돌려세우고서야 그는 일어선 청중을 본다. 실제 초연 때 알토 가수 카롤리네 웅거가 그를 돌려세웠다는 일화가 전하는데, 영화는 이 일화를 그대로 살렸다. (목소리)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 쓴 음악이 귀가 들리지 않는 그를 대신해 말하는 장면이다. 이 순간만큼은 음악이 대사도 설명도 필요 없게 만든다.
교향곡 9번 초연 장면이다. 합창이 흐르는 동안 소년 베토벤이 별이 비친 호수에 떠 있는 회상이 겹친다. 음반 마지막 트랙 「초연의 밤(The Night of the Premiere)」이다.
- 교향곡에 처음으로 사람의 노래가 들어온 악장이다. 바리톤 독창자가 앞선 악장들의 어두움을 물리치고 기쁨을 노래하자고 외치는 말투로 노래를 연다. 이어 합창이 실러의 시로 온 인류의 형제애를 노래한다.
- 영화는 이 대목에서 무대 대신 소년의 밤을 보여 준다. 음악이 커질수록 카메라는 하늘로 멀어지고, 호수에 비친 별들 사이에 떠 있는 소년이 작게 남는다. 영화사에 손꼽히는 음악과 영상의 결합으로 자주 거론된다.
- 환희의 선율은 처음에 낮은 현악기가 반주 없이 조용히 꺼낸다. 이어 악기가 차례로 더해지며 같은 가락이 점점 커지는데, 이렇게 한 선율을 반복해 쌓는 구성이 장면의 고조를 이끈다.
- 실제 초연에서 알토 가수 카롤리네 웅거가 청중을 등진 베토벤을 돌려세웠다는 일화가 전한다. 영화는 이 장면을 그대로 옮겼다.
VII. 편지가 닿는 곳
(추적) 쉰들러의 추적은 마지막 증인들과 카를스바트의 한 여관으로 이어진다. 여관 주인은 베일을 쓰고 머물다 떠난 한 여인을 기억한다. 크로이처 소나타에 얽힌 진창 속 마차 이야기가 여기서 다시 떠오른다. 처음엔 음악을 설명하던 비유였던 그 이야기가 이제는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되풀이) 쉰들러가 그 선율을 다시 들으며 눈물짓는 장면에서, 크로이처 소나타는 처음과 같은 음표로 전혀 다른 뜻을 띤다. 같은 음악이 이야기의 앞과 뒤에서 의미를 바꾸며 돌아오는 것이다. 그 사이에 관객은 베토벤의 삶을 겪었다. (황제) 편지가 마침내 누군가의 손에 닿을 때 흐르는 곡은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의 느린 2악장이다. 영화는 이 악장을 사랑의 주제로 썼고, 엔딩 크레디트에도 이 선율이 이어진다. 웅장한 별명과 달리 이 악장은 오케스트라가 낮게 깔아 준 화음 위로 피아노가 조용히 혼잣말하듯 노래한다. (여운) 영화가 내놓는 답이 무엇인지는 직접 보며 확인하는 편이 좋다. 다만 이 마지막 대목에서 음악이 하는 일은 분명하다. 한 번도 부쳐지지 않은 편지를 대신 읽어 주는 것이다.
편지의 마지막 여정과 엔딩 크레디트에 흐르는 이 영화의 사랑의 주제다. 음반에는 11분이 넘는 「편지(The Letter)」로 실렸다.
- 2악장에서는 약음기를 낀 현악기가 성가처럼 고요한 화음을 깔고, 피아노가 그 위에서 혼잣말하듯 선율을 노래한다. 연서를 소리 내어 읽는 목소리처럼 들린다.
- 2악장 끝에서 피아노가 다음 악장의 주제를 아주 느리게 미리 비춘 뒤, 쉬지 않고 힘찬 3악장으로 넘어간다. 조용한 고백이 기쁨으로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 「황제」라는 별명은 베토벤이 붙인 것이 아니다. 귀가 나빠진 베토벤은 이 곡의 초연에서 직접 독주를 맡지 못했다. 영화 속 리허설 장면의 아픔이 이 곡과 함께 떠오른다.
- 웅장한 1악장보다 내밀한 2악장을 사랑의 주제로 고른 선택이 눈에 띈다. 영화는 이 곡의 화려한 이름 뒤에 있는 가장 조용한 부분을 들려준다.
덜 알려진 이야기
영화의 화자 안톤 쉰들러는 역사 속에서 믿기 어려운 증인이다. 귀가 들리지 않게 된 베토벤은 대화를 나눌 때 상대에게 공책에 글을 써 달라고 했는데, 이 대화 수첩의 상당수가 쉰들러의 손을 거쳤다. 1977년 베를린 베토벤 학술대회에서 연구자 다그마어 베크와 그리타 헤레는 쉰들러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뒤 수첩에 가짜 기록을 끼워 넣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가 쓴 전기는 오랫동안 베토벤 이해의 기초 자료였기 때문에 이 발견은 늦게 퍼졌다. 영화가 하필 그를 진실을 좇는 사람으로 세운 것은 이 사실을 알고 보면 묘하게 겹쳐 읽힌다. 불멸의 연인 편지에는 연도가 없다. 7월 6일 아침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연필로 나눠 쓴 세 부분으로 되어 있고, 베토벤 사후 그의 서랍에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은행 주식 증서와 함께 발견되었다. 날짜와 요일을 맞춰 보고 종이를 조사한 끝에, 20세기에 들어서야 1812년 보헤미아의 온천 도시 테플리츠에서 쓴 편지라는 결론이 굳어졌다. 수신인을 두고는 지금도 학설이 갈린다. 메이너드 솔로먼은 1970년대에 안토니 브렌타노를 지목했고, 요제피네 브룬스비크를 꼽는 연구자들도 있다. 영화 속에서 쉰들러가 이르는 결론은 로즈 감독의 해석이다. 위키백과는 그 해석을 지지한 베토벤 학자가 없다고 정리한다. 이 영화는 역사의 답이라기보다 하나의 상상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영화 속 카를의 장면은 지어낸 것이 아니다. 1826년 여름 카를은 바덴 근처 라우엔슈타인 성터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했고, 살아남았다. 이 일 뒤 카를은 군에 입대했다. 베토벤의 마지막 해를 무너뜨린 사건이었지만, 위대한 작곡가의 전설에서는 흔히 각주로만 남는다.
용어 노트 📚🔎
교향곡
(말뜻) 교향곡(交響曲)은 서로 어울려(交) 울리는(響)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심포니의 그리스어 뿌리 syn(함께)과 phone(소리)도 똑같이 함께 내는 소리를 뜻한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큰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보통 네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긴 곡이다. 이 영화에는 베토벤 교향곡 3·5·6·7·9번이 장면마다 쓰인다. 반 전체가 합주하는 발표회에서 1부는 빠르게, 2부는 잔잔하게, 3부는 경쾌하게, 4부는 다 같이 크게 끝내는 순서를 짜는 것과 닮았다. 각 부분이 다르면서도 한 공연으로 이어진다.
협주곡
(말뜻) 협주곡(協奏曲)은 함께(協) 연주하는(奏) 곡이라는 뜻이다. 서양 이름 콘체르토의 라틴어 뿌리 concertare 에는 겨루다라는 뜻도 있어서,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겨루듯 주고받는 이 음악의 성격이 이름에 이미 들어 있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독주 악기 하나가 오케스트라 전체와 짝을 이루는 곡이다. 이 영화에서는 피아노 협주곡 「황제」와 바이올린 협주곡이 쓰인다. 피구 경기에서 혼자 남은 선수가 상대 팀 전체를 상대하며 공을 주고받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협주곡의 독주자도 혼자서 오케스트라와 맞선다.
소나타
(말뜻) 소나타는 이탈리아어 sonare(소리 내다, 연주하다)에서 왔다. 노래하다(cantare)에서 온 칸타타와 짝을 이루는 말로, 처음에는 노래가 아니라 악기로 연주하는 곡이라는 뜻이었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피아노 혼자, 또는 바이올린과 피아노처럼 한두 악기가 연주하는 여러 악장짜리 곡이다. 이 영화의 「월광」「비창」「크로이처」가 모두 소나타다. 오케스트라 곡이 학급 전체의 합창이라면 소나타는 한두 사람이 나와서 하는 장기자랑에 가깝다. 사람 수는 적어도 무대는 꽉 찬다.
악장
(말뜻) 악장(樂章)은 음악(樂)의 한 장(章)이라는 뜻이다. 책이 여러 장으로 나뉘듯 긴 곡이 여러 덩어리로 나뉜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교향곡이나 소나타처럼 긴 곡을 이루는 하나하나의 독립된 부분이다. 영화는 대개 한 곡을 통째로 쓰지 않고 한 악장, 또는 그 일부만 장면에 맞춰 잘라 쓴다. 이 영화에서도 「월광」 1악장이나 「황제」 2악장이 그렇게 쓰였다. 드라마 한 시즌이 여러 회로 나뉘고 회마다 분위기가 다른 것과 비슷하다. 그래도 끝까지 보면 한 이야기다. (다른 데서는) 영어 movement 는 음악에서는 악장이지만, 일상에서는 움직임이나 사회 운동을 뜻한다.
삼중주
(말뜻) 삼중주(三重奏)는 세(三) 겹으로(重) 연주한다(奏)는 뜻이다. 세 악기가 각자 한 겹씩 소리를 맡는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세 사람이 각각 다른 악기로 함께 연주하는 곡으로, 피아노 삼중주는 피아노·바이올린·첼로로 이루어진다. 이 영화의 「유령」 삼중주가 그렇다. 지휘자가 없어서 세 사람이 서로 눈빛과 숨소리로 맞춰야 한다. 세 명이 한 팀이 되는 이어달리기나 모둠 발표처럼, 한 사람만 튀어도 전체가 흔들린다. (다른 데서는) 영어 trio 는 음악 밖에서도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무리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쓴다.
유도동기(라이트모티프)
(말뜻) 독일어 라이트모티프(Leitmotiv)는 이끌다(leiten)와 동기(Motiv)를 합친 말이다. 이야기를 따라가도록 이끌어 주는 짧은 음악 조각이라는 뜻이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특정 인물·장소·감정이 나올 때마다 되풀이되는 짧은 선율이다. 관객은 그 선율만 들어도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아챈다. 이 영화에서는 「크로이처 소나타」나 교향곡 7번 「알레그레토」가 그런 역할을 한다. 게임에서 보스가 나타날 때마다 같은 음악이 깔리면 화면을 보기 전에 소리만으로 긴장하게 되는 것과 같다.
분산화음(아르페지오)
(말뜻) 아르페지오는 이탈리아어 arpa(하프)에서 온 말로, 하프를 뜯듯이 연주한다는 뜻이다. 하프는 화음의 음들을 한꺼번에 내기보다 한 줄씩 차례로 튕기는 악기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여러 음을 동시에 누르는 화음을 한 음씩 차례로 펼쳐 흐르게 하는 연주법이다. 「월광 소나타」 1악장의 오른손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움직이며 잔잔한 물결 같은 배경을 만든다. 계단을 한 번에 뛰어오르지 않고 한 칸씩 오르내리는 것과 같다. 도착하는 곳은 같아도 걸음마다 소리가 생긴다.
미사
(말뜻) 미사는 가톨릭 예배가 끝날 때 사제가 외치는 라틴어 'Ite, missa est(가라, 파견되었다)'의 missa 에서 온 이름이라고 풀이된다. (영화·뮤지컬 음악에서) 가톨릭 예배의 정해진 기도문에 곡을 붙인 큰 합창곡이다. 첫 곡 「키리에」는 자비를 구하는 기도다. 이 영화는 베토벤 만년의 「장엄 미사」 중 「키리에」를 장례 장면에 썼다. 졸업식처럼 늘 같은 순서로 진행되는 의식에서 순서마다 정해진 노래가 있는 것처럼, 미사곡도 예배 순서를 따라 곡이 이어진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미사는 음악이 아니라 가톨릭의 예배 자체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