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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elvet Underground

벨벳 언더그라운드 (1964–1973)

그들은 1960년대 뉴욕의 가장 어두운 거리와 가장 실험적인 음악실을 한 장의 레코드 안에서 만나게 했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리드의 롱아일랜드케일의 웨일스시러큐스 대학2. 결성미국 뉴욕 결성루드로 스트리트모 터커 합류3. 워홀팩토리와 니코바나나 앨범EPI 공연4. 소음화이트 라이트시스터 레이케일의 퇴장5. 고요더그 율 합류페일 블루 아이스로디드와 리드 탈퇴6. 유산1993 재결합명예의 전당후대 밴드들언더그라운드1964–1973뉴욕의 거리와 아방가르드를 록으로 엮어, 팔리…
무대가 된 도시 🧭🗺️
N영국런던1960–1963뉴욕1964–1973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멤버루 리드

    노래와 기타, 작곡을 맡아 거리의 이야기를 문학의 언어로 노래했고, 1970년 밴드를 떠나 솔로로 활동하다 2013년 세상을 떠났다.

  • 멤버존 케일

    웨일스 출신 클래식 연주자로 전기 비올라와 드론을 들여와 초기 사운드를 만들었고, 밴드를 떠난 뒤 프로듀서이자 솔로 음악가로 활동했다.

  • 멤버스털링 모리슨

    리드의 기타와 맞물리는 기타와 베이스를 맡았고, 밴드를 떠난 뒤 중세 영문학 박사가 됐다.

  • 멤버모린 터커

    서서 연주하며 눕힌 베이스 드럼과 말렛으로 장식 없는 박을 만들어, 밴드 특유의 최면 같은 리듬을 이끌었다.

  • 매니저앤디 워홀

    1966~1967년 밴드를 후원하며 니코를 합류시키고 데뷔 앨범의 바나나 표지를 만들었으며, 사후 리드와 케일의 재회를 이끈 계기가 됐다.

  • 영향데이비드 보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곡을 무대에서 연주하며 영향을 공언했고, 1972년 리드의 솔로 앨범 「트랜스포머」를 공동 제작했다.

YouTube에서 6곡 이어 듣기 ↗

I. 브루클린과 웨일스 · 1942–1964

(결성) 1964년, 미국 뉴욕에서 결성됐다. 밴드의 두 기둥은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전혀 다른 세계에서 자랐다. 루 리드는 1942년 3월 뉴욕 브루클린에서 회계사 아버지 시드니와 어머니 토비 사이에서 태어나 롱아일랜드의 교외 도시 프리포트에서 컸다. 십대 시절 그는 흑인 보컬 그룹이 화음으로 부르던 노래(두왑)와 로큰롤에 빠졌고, 열여섯 살에는 고교 밴드 제이즈로 싱글을 내기도 했다. (치료) 열일곱 살 무렵 리드는 부모의 동의로 전기충격 치료를 받았다. 리드는 훗날 그것이 동성애 성향을 고치려는 치료였다고 주장했고, 가족 쪽에서는 다른 설명이 나왔다. 어느 쪽이든 이 경험은 가족과 교외의 질서에 대한 깊은 불신을 남겼고, 그는 평생 사회가 정상이라 부르는 선 바깥의 사람들을 노래했다. (시러큐스) 시러큐스 대학에서 리드는 시인 델모어 슈워츠를 스승으로 만나 짧고 정확한 문장의 힘을 배웠고, 정해진 화음 진행 없이 자유롭게 즉흥하는 재즈(프리 재즈)를 연주한 오넷 콜먼에게 귀를 열었다. 이 시기 롱아일랜드 출신 기타리스트 스털링 모리슨과도 알게 됐다. 졸업 뒤에는 유행가를 값싸게 찍어 내는 픽윅 레코드에서 전속 작곡가로 일했다. (웨일스) 존 케일은 1942년 3월 웨일스의 탄광 마을 가넌트에서 광부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웨일스어를 쓰며 자랐다. 비올라를 공부해 런던 골드스미스 칼리지를 거쳤고, 1963년 장학금을 받아 미국 탱글우드로 건너갔다. 뉴욕에 자리 잡은 그는 작곡가 라몬트 영의 그룹에서 한 음을 몇 시간씩 길게 끌어 깔아 두는 소리(드론)를 연주했다. 아주 적은 재료를 오래 반복하는 이 음악(미니멀리즘)이 훗날 밴드 사운드의 바닥이 됐다.

II. 루드로 스트리트 · 1964–1965

(조율) 1964년 말 픽윅은 리드가 만든 춤곡 「디 오스트리치」를 팔려고 급히 연주자를 모았고, 그 자리에 케일과 토니 콘래드가 불려 왔다. 리드는 기타 여섯 줄을 모두 같은 음으로 맞추는 기묘한 조율(변칙 조율)을 썼는데, 케일은 그것이 라몬트 영의 그룹에서 하던 실험과 닮았다는 데 놀랐다. 로큰롤 작곡가와 기존 형식을 일부러 깨는 실험 예술(아방가르드) 쪽 음악가는 그렇게 서로를 알아봤다. (루드로) 두 사람은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 루드로 스트리트 56번지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함께 살며 곡을 다듬었다. 리드가 가져온 「헤로인」과 「나는 남자를 기다리고 있다」는 마약과 거리의 삶을 찬양도 비난도 없이 그렸고, 케일은 거기에 전기 비올라의 긁는 소리를 얹었다. 1965년 지하철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친 모리슨이 기타로 합류했고, 드럼은 같은 건물에 살던 시인이자 타악기 연주자 앵거스 매클리스가 맡았다. (이름) 이들은 워록스, 폴링 스파이크스 같은 이름을 거쳐, 콘래드가 구해 온 성 풍속에 관한 문고본의 제목을 밴드 이름으로 삼았다. 매클리스는 1965년 말, 돈을 받고 정해진 시간에 시작하고 끝내야 하는 공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떠났다. (터커) 빈자리는 모리슨의 대학 친구 짐 터커의 동생 모린 터커가 채웠다. 롱아일랜드 레빗타운에서 자라 아프리카 타악기 연주자 올라툰지를 즐겨 들으며 드럼을 독학한 터커는 서서 연주했고, 베이스 드럼을 옆으로 눕혀 끝이 둥근 북채(말렛)로 치며 심벌즈를 거의 쓰지 않았다. 1965년 12월 뉴저지의 서밋 고등학교 강당에서 첫 유료 공연을 한 뒤, 밴드는 그리니치빌리지의 카페 비자르에 상주했다. 리드는 노래와 기타와 작곡, 케일은 비올라·베이스·건반, 모리슨은 기타와 베이스, 터커는 드럼을 맡았다.

♪비너스 인 퍼스 (Venus in Furs)1967실황 The Velvet Underground

루드로 스트리트 시절부터 다듬은 곡으로, 리드의 로큰롤과 케일의 드론 음악이 처음 하나로 맞물린 결과다.

  • 처음부터 끝까지 쇳소리처럼 울리는 음은 케일의 전기 비올라다. 현을 바꿔 달고 증폭한 비올라를 활로 긁어 한 음을 길게 끄는 소리(드론)를 깔았으니, 곡 내내 그 소리가 바닥에 깔려 있는지 따라가 보자.
  • 리드의 기타는 줄을 같은 음으로 맞춘 이른바 오스트리치 조율로 연주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손가락이 움직여도 같은 음들이 겹쳐 웅웅 울린다.
  • 터커의 드럼은 장례 행렬처럼 느리고 단단한 박만 짚는다. 장식을 뺀 이 박이 곡을 최면처럼 끌고 간다.
  • 리드는 높낮이를 거의 바꾸지 않고 소설을 낭독하듯 노래한다. 제목과 주제는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의 같은 이름의 소설에서 왔다.
  • 1995년 박스 세트 「필 슬로리 앤 시」에 실린 1965년 루드로 스트리트 데모와 비교하면, 이 곡이 포크 발라드에 가까운 모습에서 출발했음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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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팩토리의 바나나 · 1965–1967

(워홀) 1965년 말 카페 비자르에서 이들을 본 사람들 가운데 영화감독 폴 모리시와 앤디 워홀이 있었다. 밴드는 손님을 쫓는 곡을 연주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도 「블랙 에인절스 데스 송」을 연주해 해고됐다고 전해지는데, 그 무렵 워홀이 매니저를 맡았다. 워홀은 작업실 팩토리를 리허설 공간으로 내주고 장비를 대는 대신 수입의 일부를 받았다고 전해지며, 독일 출신 모델이자 배우 니코를 함께 무대에 세우라고 요구했다. (니코) 1938년 쾰른에서 크리스타 페프겐으로 태어난 니코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에 출연한 배우였다. 리드는 그를 위해 「팜 파탈」과 「아일 비 유어 미러」를 썼고, 두 사람은 한동안 연인 사이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리드는 자신의 노래를 니코에게 넘기는 일을 끝내 달가워하지 않았고, 이 긴장은 밴드 안에 오래 남았다. (공연) 1966년 봄 워홀은 이스트빌리지의 무도장 더 돔에서 「익스플로딩 플라스틱 인에비터블」이라는 복합 공연을 열었다. 연주하는 밴드 위로 워홀의 영화가 겹쳐 투사되고 조명이 번쩍였으며, 시인 제라드 말랑가가 채찍을 들고 춤췄다. 이 공연을 들고 간 서부 순회에서 밴드는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던 캘리포니아의 히피 음악계와 정면으로 어긋났다. (바나나) 1966년 4월 맨해튼의 셉터 스튜디오에서 며칠 만에 녹음된 데뷔 앨범은 여러 음반사에 거절당한 끝에, 프로듀서 톰 윌슨의 주선으로 버브 레코드에서 1967년 3월에 나왔다. 워홀이 디자인한 바나나 표지는 껍질 스티커를 벗기면 분홍색 속살이 드러나는 장치였다. 마약과 사도마조히즘, 도시의 고독을 담담히 다룬 노래들을 라디오는 외면했고,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171위에 머물렀다.

♪앨범 《벨벳 언더그라운드 앤 니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1967실황 「I'm Waiting for the Man」 The Velvet Underground · 1969 댈러스

워홀의 후원과 니코의 목소리, 뉴욕 거리의 이야기가 한데 담긴 데뷔 앨범이다. 발매 당시 거의 팔리지 않았지만 오늘날 가장 자주 거론되는 록 데뷔작 가운데 하나가 됐다.

  • 카드의 영상은 「나는 남자를 기다리고 있다」다. 케일이 피아노 건반을 같은 박으로 쉬지 않고 두드리고 기타와 드럼이 그 박을 밀어붙여, 거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의 조바심을 리듬으로 만든다.
  • 첫 곡 「선데이 모닝」은 앨범에서 가장 늦은 1966년 11월 톰 윌슨의 제작으로 녹음됐다. 도입에서 종처럼 맑게 울리는 건반은 케일이 친 첼레스타다.
  • 니코가 부른 「팜 파탈」, 「올 투모로스 파티스」, 「아일 비 유어 미러」에서 낮고 억양이 독특한 그의 목소리를 리드의 노래와 나란히 비교해 들어 보자.
  • 마지막 곡 「유러피언 선」은 스승 델모어 슈워츠에게 바친 곡이다. 초반 노래가 끝나면 무언가 깨지는 소리를 신호로 곡이 소음 섞인 즉흥 연주로 무너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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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인 (Heroin)1967연주 The Velvet Underground · Andy Warhol 영상

리드가 대학 시절부터 써 온 곡으로, 마약을 찬양도 비난도 하지 않고 한 사람의 의식 속에서 그려 냈다. 라디오가 데뷔 앨범을 외면한 큰 이유이기도 했다.

  • 곡은 단 두 개의 화음을 오가며 7분 넘게 이어진다. 느리게 시작해 점점 빨라졌다가 다시 느려지는데, 이 속도의 오르내림이 곡의 줄거리를 대신한다.
  • 케일의 비올라가 한 음을 날카롭게 긁는 드론은 뒤로 갈수록 거세져, 빨라지는 대목에서는 비명처럼 들린다.
  • 터커는 녹음 도중 다른 악기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한동안 연주를 멈췄다고 회고했다. 곡 후반 드럼이 빠졌다가 돌아오는 대목을 찾아 들어 보자.
  • 리드의 목소리는 누구에게 호소하지 않고 혼잣말처럼 흘러간다. 조용히 말하듯 시작해 빨라지는 대목에서는 외침에 가까워져, 듣는 사람이 그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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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하얀 소음 · 1967–1968

(결별) 1967년 니코가 솔로의 길로 떠났고, 리드는 같은 해 워홀과도 결별한 뒤 스티브 세스닉을 새 매니저로 들였다. 리드는 평생 워홀을 스승처럼 여겼지만, 한 예술가의 후원 아래 머무는 대신 스스로 서는 록 밴드가 되기를 원했다. (소음) 1967년 9월 톰 윌슨의 제작으로 녹음한 두 번째 앨범 「화이트 라이트/화이트 히트」는 공연장의 굉음을 그대로 옮긴 음반이었다. 모두가 앰프를 한껏 올렸고, 소리를 일부러 찢어지게 일그러뜨린 음색(디스토션)과 스피커 소리가 다시 기타로 빨려 들어가 날카롭게 울리는 현상(피드백)이 녹음실을 채웠다. 17분이 넘는 「시스터 레이」는 한 번에 녹음됐고, 엔지니어가 다 끝나면 부르라며 자리를 떴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968년 1월에 나온 앨범은 차트 199위에 그쳤다. (긴장) 소리의 실험을 밀어붙이던 케일과, 노래와 이야기를 중심에 두려던 리드의 방향은 점점 갈라졌다. 1968년 9월 리드는 모리슨과 터커를 불러 케일이 떠나지 않으면 밴드를 끝내겠다고 했고, 결국 모리슨이 케일에게 그 뜻을 전했다. 오랜 동료를 내보내는 일을 떠맡은 모리슨은 이 결정을 내켜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케일) 밴드를 떠난 케일은 곧 프로듀서로 자리 잡아 니코의 「마블 인덱스」(1968)와 스투지스의 데뷔 앨범(1969)을 제작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가장 거친 소리를 만든 사람이, 바로 그 소리를 다음 세대의 밴드에게 건네는 다리가 됐다.

♪시스터 레이 (Sister Ray)1968실황 The Velvet Underground · Boston Tea Party

녹음실을 공연장처럼 쓴 두 번째 앨범의 정점이자, 리드와 케일이 함께 만든 소음 실험의 마지막 장이다.

  • 17분이 넘는 동안 몇 개 안 되는 화음으로 된 짧은 반복 악구(리프)가 거의 쉬지 않고 돌아간다. 멤버들은 누가 실수하더라도 멈추지 않기로 하고 한 번에 녹음했다고 회고했다.
  • 뒤에서 으르렁대는 건반은 케일이 복스 오르간 소리를 일그러뜨려(디스토션) 낸 것이다. 중반 이후 오르간과 리드의 기타가 서로를 덮으려 다투는 대목에 귀를 기울여 보자.
  • 모든 악기가 한 방에서 크게 울려 마이크마다 다른 악기 소리가 섞여 들어갔고, 그래서 소리의 경계가 뭉개진 한 덩어리로 들린다. 이 뭉개짐 자체가 곡의 질감이다.
  • 리드는 난잡한 파티 장면을 무심한 이야기꾼의 목소리로 늘어놓는다. 감정을 싣지 않는 그 화법이 소음과 묘하게 대비된다.
  • 조이 디비전이 무대에서 연주한 이 곡의 녹음은 그들의 앨범 「스틸」에 실려 있어, 원곡과 비교해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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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조용한 방 · 1968–1970

(율) 케일의 자리는 보스턴 밴드 그래스 미너저리 출신의 스물한 살 더그 율이 채웠다. 율은 베이스와 오르간을 맡았고 맑은 목소리로 몇몇 곡을 불렀다. 밴드의 소리는 그와 함께 급격히 조용해졌다. 1968년 말 할리우드의 TTG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세 번째 앨범은, 공항에서 장비를 도둑맞은 뒤 새로 들인 앰프로 녹음해 음색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고백) 1969년 3월에 나온 앨범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사랑과 죄의식, 신앙을 나지막이 고백하는 노래들로 채워졌다. 팩토리의 배우 캔디 달링을 그린 「캔디 세즈」는 율이 불렀고, 마지막 곡 「애프터 아워스」는 터커가 수줍은 목소리로 불렀다. 리드는 따로 녹음한 노래와 악기의 크기와 위치를 섞어 정하는 작업(믹스)을 직접 다시 해 보컬을 앞으로 당긴 판을 만들었고, 이것이 훗날 클로짓 믹스라 불렸다. (순회) 1969년 밴드는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캐나다를 돌며 쉼 없이 공연했고, 이때의 녹음은 1974년 라이브 앨범 「1969」로 나왔다. 그해 MGM과의 관계가 끝나면서 새로 녹음한 곡들은 정식 앨범이 되지 못하고 오래 창고에 남았다. (로디드) 1970년 애틀랜틱 계열의 코틸리언과 계약한 밴드는 히트곡을 요구받았다. 터커가 녹음에 함께하지 못해 율과 세션 연주자들이 드럼을 쳤고, 「스위트 제인」과 「록 앤 롤」이 이때 태어났다. 그러나 앨범이 나오기 전인 8월, 뉴욕 맥스 캔자스 시티 상주 공연의 마지막 밤을 끝으로 리드는 밴드를 떠났다. 그는 롱아일랜드의 부모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회계 사무실에서 타자수로 일했다.

♪페일 블루 아이스 (Pale Blue Eyes)1969실황 The Velvet Underground · 1993 재결성 투어

케일이 떠난 뒤 고요해진 밴드를 대표하는 발라드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향한 쓸쓸한 고백이다.

  • 리드의 목소리는 속삭이듯 가깝고, 상대에게 직접 털어놓는 2인칭 화법으로 이어진다. 앞선 앨범의 무심한 이야기꾼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다.
  • 드럼의 큰 소리 없이 탬버린 같은 가벼운 타악기와 은은한 건반이 박을 받친다. 소리를 덜어 낸 편성이 노래의 고백을 앞으로 밀어낸다.
  • 중간의 기타 솔로는 일그러짐 없는 맑은 음색으로 짧게 노래하듯 흐른다. 「시스터 레이」의 굉음과 이어 들으면 같은 밴드라고 믿기 어렵다.
  • 레코드사 엔지니어의 믹스와 리드가 만든 클로짓 믹스는 보컬과 악기의 거리가 다르다. 2014년 재발매 확장판 등에서 두 믹스를 비교해 들을 수 있다.
  • R.E.M.은 이 곡을 1984년 싱글 「사우스 센트럴 레인」의 B면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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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로디드》 (Loaded)1970공식 MV 「Sweet Jane」 — The Velvet Underground

히트를 바라는 레코드사의 요구 속에 만든 가장 대중적인 앨범으로, 리드는 이 앨범이 나오기 전에 밴드를 떠났다.

  • 카드의 영상은 「스위트 제인」이다. 도입의 기타 리프는 몇 개의 화음을 오가는 단순한 것인데, 훗날 수많은 밴드가 따라 친 록 기타의 교본이 됐다.
  • 앨범판에서는 곡 중간 분위기를 바꾸는 느린 대목(브리지)이 편집으로 잘려 나갔고, 리드는 이에 불만을 나타냈다. 1997년 확장판 「풀리 로디드」에서 원래 모습을 들을 수 있다.
  • 「록 앤 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로큰롤이 교외에 사는 아이의 삶을 바꾸는 이야기로, 리드는 훗날 자기 자신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 드럼은 터커 대신 율과 세션 연주자들이 쳐서 박이 단정하고 매끈하다. 앞선 앨범들의 서서 치는 터커의 드럼과 비교해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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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남은 사람들 · 1970–2013

(해체) 리드가 떠난 뒤 율이 노래를 이어받았고, 모리슨은 1971년 텍사스 공연을 끝으로 대학원으로 돌아갔다. 터커도 곧 밴드를 떠났다. 1973년 매니저 세스닉의 주도로 영국에서 녹음된 「스퀴즈」는 율이 대부분의 악기를 맡은 앨범이었고, 원년 멤버가 한 사람도 없는 이 음반을 끝으로 밴드의 이름은 사라졌다. (유산) 영향은 오히려 그 뒤에 퍼졌다. 데이비드 보위는 무대에서 그들의 곡을 연주했고, 1972년 믹 롱슨과 함께 리드의 솔로 앨범 「트랜스포머」를 제작했다. 케일은 1975년 패티 스미스의 「호시스」를 제작했다. 조이 디비전은 「시스터 레이」를, R.E.M.은 「페일 블루 아이스」를, 너바나는 「히어 쉬 컴스 나우」를 연주하거나 녹음했고, 소닉 유스는 그들의 소음과 변칙 조율을 이어받았다. 브라이언 이노는 1982년 인터뷰에서 첫 앨범을 산 사람은 적었지만 그들 모두가 밴드를 만들었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재결합) 1987년 워홀이 세상을 떠나자 리드와 케일은 20여 년 만에 다시 손잡고 그를 기리는 앨범 「송스 포 드렐라」(1990)를 만들었다. 1993년에는 네 원년 멤버가 재결합해 유럽을 돌았고, 몇몇 무대에서는 U2의 주 TV 투어 공연에 앞서 연주했다. 파리 올랭피아 공연은 라이브 앨범으로 남았지만, 이어질 미국 공연 계획은 리드와 케일의 관계가 다시 멀어지며 무산됐다. (작별) 1995년 8월 모리슨이 림프종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밴드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를 때 헌정 연설은 패티 스미스가 맡았고, 리드와 케일, 터커는 모리슨을 위해 새로 쓴 곡을 함께 연주했다. 리드는 2013년 10월 간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덜 알려진 이야기

스털링 모리슨은 밴드를 떠난 뒤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에서 중세 영문학을 공부해 1986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의를 하는 한편 휴스턴 항구에서 예인선 선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리드와 케일의 이야기에 가려 이 이력은 전기의 각주로 남았지만, 1993년 재결합 무대에 선 기타리스트는 학자이자 뱃사람이었다. 데뷔 앨범이 막 팔리기 시작했을 무렵, 뒷면의 공연 사진에 자기 모습이 허락 없이 실렸다며 팩토리 주변 인물이던 에릭 에머슨이 문제를 제기했다. 음반사는 앨범을 회수해 그 부분을 가리거나 지운 판을 다시 찍었고, 그 사이 판매 흐름이 끊겼다. 바나나 표지의 신화에 가려 잘 언급되지 않지만, 리치 언터버거 같은 연구자들은 날짜별 기록을 통해 이 일을 앨범 부진의 한 원인으로 짚는다. 데이비드 보위는 1971년 무렵 뉴욕에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공연을 보고 무대 뒤로 찾아가 리드라고 생각한 사람과 오래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중에야 상대가 더그 율이었음을 알았다고 회고했다. 리드가 떠난 뒤에도 밴드가 같은 이름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열성 팬조차 몰랐을 만큼, 이 시기는 기록이 드물다. 케일은 1963년 9월 뉴욕에서 존 케이지가 주도한 에리크 사티의 「벡사시옹」 18시간 연속 연주에 참여한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명이었고, 같은 해 TV 프로그램 「아이브 갓 어 시크릿」에 나와 그 경험을 소개했다. 록 밴드에 들어오기 전 그가 이미 뉴욕 실험 음악의 한복판에 있었다는 1차 기록이다.

용어 노트 📚🔎

드론

(말뜻) 영어 drone 은 원래 수벌, 그리고 수벌이 내는 붕붕거리는 낮은 소리를 뜻한다. 끊기지 않고 계속 울린다는 성질이 이름에 담겨 있다. (록에서) 한 음이나 몇 음을 길게 끌어 곡의 바닥에 계속 깔아 두는 소리를 말한다. 그 위에서 노래와 다른 악기가 움직여도 드론은 제자리를 지킨다. 합창 시간에 한 모둠이 음— 하고 한 음을 계속 내는 동안 다른 모둠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존 케일의 전기 비올라가 이 역할을 맡았다. (다른 데서는) 오늘날 흔히 드론이라고 하면 사람이 타지 않고 원격으로 나는 무인 비행기를 가리키는데, 이 이름도 날 때 나는 붕붕 소리에서 왔다.

미니멀리즘

(말뜻) 영어 minimal 은 최소한의라는 뜻이다. 재료를 최소한으로 줄인다는 생각이 이름에 들어 있다. (록에서) 아주 적은 재료 — 한 음, 짧은 가락, 두세 개의 화음 — 를 오래 반복하며 그 안의 작은 변화를 듣게 하는 음악이다. 1960년대 뉴욕의 라몬트 영 같은 작곡가들이 이끌었고, 그 그룹에서 연주한 존 케일을 통해 벨벳 언더그라운드로 흘러들었다. 줄넘기 구령처럼 같은 리듬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반복 자체가 몸에 붙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생활에서는 꼭 필요한 물건만 남기고 줄이는 방식이나, 장식을 덜어 낸 디자인을 가리킨다.

변칙 조율

(록에서) 기타는 보통 여섯 줄을 정해진 서로 다른 음으로 맞추는데(표준 조율), 일부러 그와 다르게 맞추는 것을 변칙 조율이라 한다. 루 리드는 여섯 줄을 모두 같은 음으로 맞춰 어디를 눌러도 같은 음들이 겹쳐 웅웅 울리게 했고, 그의 곡 이름을 따 오스트리치 조율이라고도 부른다. 실로폰 건반을 모두 같은 음으로 바꿔 두면 아무 데나 쳐도 같은 소리가 겹쳐 울리는 것과 비슷하다. 이 기법은 훗날 소닉 유스 같은 밴드가 더 깊이 파고들었다.

아방가르드

(말뜻) 프랑스어 avant-garde 는 원래 군대에서 본대보다 앞서 나가는 부대, 곧 전위(前衛)를 뜻했다. 남보다 먼저 낯선 땅에 발을 딛는 사람들이라는 뜻이 예술로 옮겨 왔다. (록에서) 익숙한 형식과 규칙을 일부러 깨고 새로운 소리와 방식을 시험하는 예술을 말한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실험 음악 출신의 존 케일과 팝 아트의 앤디 워홀을 통해 이런 실험을 로큰롤 안으로 끌어들였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발표할 때 혼자 연극이나 소리로 과제를 발표해 보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가 반의 아방가르드다. (다른 데서는) 패션에서는 평범한 옷의 틀을 벗어난 실험적이고 독특한 디자인을 가리킬 때 흔히 쓴다.

디스토션

(말뜻) 영어 distortion 은 비틀다, 일그러뜨리다라는 뜻의 distort 에서 왔다. 소리의 모양을 일그러뜨린다는 뜻이다. (록에서) 기타나 오르간 신호를 앰프나 장치로 지나치게 키워 소리가 거칠고 찢어지게 만드는 음색이다. 깨끗한 소리보다 두껍고 공격적으로 들린다. 휴대폰 스피커로 음악을 최대 음량으로 틀었을 때 소리가 지직거리며 갈라지는 것을 떠올려 보라 — 그것을 일부러, 쓸모 있게 다듬은 것이 디스토션이다. (다른 데서는) 사진이나 지도에서 렌즈나 투영 방식 때문에 모양이 실제와 다르게 휘어 보이는 것도 디스토션(왜곡)이라 부른다.

피드백

(말뜻) 영어 feed back 은 되돌려 먹인다는 뜻이다. 나간 소리가 다시 들어와 되먹여진다는 원리가 이름 그대로다. (록에서) 스피커에서 나온 소리가 다시 기타의 소리 받는 장치(픽업)나 마이크로 들어가, 돌고 돌며 점점 커져 날카롭게 울리는 현상이다. 원래는 사고로 여겨졌지만 1960년대 록 연주자들은 이것을 일부러 악기처럼 다뤘다. 학교 강당에서 누군가 마이크를 스피커 가까이 가져갔을 때 삐— 하고 귀가 아픈 소리가 나는 것이 바로 피드백이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누군가의 일이나 의견에 평가와 조언을 되돌려 주는 것을 피드백이라고 한다.

믹스

(록에서) 녹음실에서 따로따로 녹음한 노래와 악기 소리를 하나로 섞으며 각각의 크기와 왼쪽·오른쪽 위치, 울림을 정하는 작업이다. 같은 녹음이라도 믹스에 따라 노래가 앞으로 나오기도 하고 악기 뒤로 숨기도 한다. 비빔밥 재료가 같아도 고추장과 나물을 얼마나 넣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세 번째 앨범에는 엔지니어의 믹스와 루 리드가 직접 만든 클로짓 믹스, 두 가지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