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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Bowie

데이비드 보위 (1947–2016)

그는 한 얼굴에 머무르지 않았다. 화성에서 온 록스타, 창백한 귀족, 분단 도시의 은둔자를 차례로 벗어 던지며 마지막 앨범까지 변했다.

한눈에 보기 🔭💭

1. 뿌리영국 런던 브릭스턴 출생이부형 테리브롬리의 색소폰2. 변신스페이스 오디티지기 스타더스트글램 록의 상징3. 방황플라스틱 솔LA 코카인 시절신 화이트 듀크4. 베를린이기 팝과 서베를린베를린 삼부작장벽 곁 한자 스튜디오5. 정상퀸과 언더 프레셔렛츠 댄스형 테리의 죽음6. 작별이만과 뉴욕블랙스타2016년 1월 별세보위1947–2016끊임없이 얼굴을 바꾸며 록을 연극과 미술의 영…
무대가 된 도시 🧭🗺️
N미국영국독일런던1947–1953로스앤젤레스1975–1976서베를린1976–1978뉴욕1992–2016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가족테리 번스

    동생에게 재즈와 비트 문학을 알려 준 이부형으로, 그의 병과 죽음은 「올 더 매드멘」에서 「점프 데이 세이」까지 보위의 노래에 그림자를 남겼다.

  • 프로듀서토니 비스콘티

    《세상을 판 사나이》에서 《블랙스타》까지 반세기 가까이 곁을 지킨 가장 오랜 음악적 동반자였다.

  • 멤버믹 론슨

    헐 출신 기타리스트이자 편곡자로 지기 시대의 사운드를 만들었고, 1993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 우정이기 팝

    서베를린에서 함께 살며 《디 이디엇》과 《러스트 포 라이프》를 만든 동료이자 평생의 친구였다.

  • 프로듀서브라이언 이노

    베를린 삼부작과 《1. 아웃사이드》에서 우연과 실험의 작업 방식을 함께 나눈 협업자였다.

  • 가족이만

    1992년 결혼해 뉴욕에서 마지막 날까지 함께한 아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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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브롬리의 소년 · 1947–1965

(출생) 1947년 1월, 영국 런던 브릭스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데이비드 로버트 존스였다. 아버지 헤이우드 스텐턴 존스는 아동 자선단체 바나도스의 홍보 담당자였고, 어머니 마거릿 메리 번스는 페기라고 불렸으며 영화관 안내원과 웨이트리스로 일했다. 1953년 가족은 런던 남동쪽 교외 브롬리로 옮겼다. 보위는 훗날 어머니와의 사이가 서늘했다고 여러 차례 회고했다. (형) 열 살 위 이부형 테리 번스는 동생에게 모던 재즈와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알려 주었다. 그러나 테리는 조현병을 앓아 오랜 세월 병원을 드나들었다. 어머니 쪽 집안에는 정신 질환을 겪은 이모가 여럿 있었고, 보위는 그 병이 자신에게도 이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평생 품었다고 말했다. 이 두려움은 훗날 노래의 주제가 되었다. (색소폰) 브롬리 기술고등학교에서는 미술 교사 오언 프램턴에게 배웠다. 열세 살 무렵 플라스틱 알토 색소폰을 얻어 재즈 주자 로니 로스에게 몇 차례 레슨을 받았고, 리틀 리처드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반에 사로잡혔다. 1962년 친구 조지 언더우드와 한 여학생을 두고 다투다 왼쪽 눈을 맞았는데, 그 뒤 동공이 커진 채 굳어 두 눈의 색이 달라 보이게 되었다. 둘은 평생 친구로 남았다. (밴드) 학교를 마친 뒤 광고 대행사 보조로 일하며 콘래즈, 킹 비즈, 매니시 보이스, 로어 서드 같은 밴드를 전전했다. 1964년 데이비 존스 앤드 더 킹 비즈라는 이름으로 첫 싱글 「리자 제인」을 냈지만 거의 팔리지 않았다. 이름도, 음악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시절이었다.

II. 이름을 찾아서 · 1966–1971

(개명) 1965년 9월 그는 당시 뮤지컬 배우로 알려져 있던 데이비 존스(훗날 몽키스 멤버)와 혼동되지 않도록 성을 보위로 바꿨다. 미국 개척자 짐 보위와 그의 이름이 붙은 칼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매니저 케네스 피트가 그를 돌봤고, 1967년 데람 레이블에서 낸 첫 앨범 《데이비드 보위》는 영국 뮤직홀 풍의 노래를 담았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이 무렵 마임 예술가 린지 켐프에게 몸짓과 무대 연출을 배웠다. 훗날 가면을 갈아 쓰듯 인물을 바꾸는 연극적 감각이 여기서 싹텄다. (우주) 1969년 7월, 아폴로 11호 발사 며칠 전에 「스페이스 오디티」가 나왔다. 우주로 떠난 비행사가 지상과의 연결을 잃는 이야기는 영국 차트 5위에 올랐다. 그러나 다음 달 아버지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의 첫 성공을 지켜본 뒤 떠난 아버지를 보위는 오래 그리워했다. (해든홀) 그는 런던 교외 베컨엄의 낡은 저택 해든 홀에 살며 동네 예술 모임 아츠 랩을 꾸렸다. 1970년 3월 미국 출신 앤젤라 바넷과 결혼했다. 같은 해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 헐 출신 기타리스트 믹 론슨과 함께 거칠고 무거운 기타의 《세상을 판 사나이》를 만들었다. 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올 더 매드멘」에는 형 테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었다. (아들) 1971년 5월 아들이 태어났고, 그는 훗날 영화감독 덩컨 존스로 활동했다. 보위는 갓 태어난 아들에게 바치는 「쿡스」를 담아 《헝키 도리》를 냈다. 「체인지스」와 「화성에 생명이?」가 실린 이 앨범에는 밥 딜런, 앤디 워홀, 벨벳 언더그라운드에게 보내는 노래도 들어 있었다. 피아노를 중심에 둔 단단한 노래들로 그는 비로소 작곡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스페이스 오디티 (Space Oddity)1969공식 MV — David Bowie · 2019 Mix

이름을 바꾸고 3년을 헤맨 끝에 얻은 첫 히트였다. 지상과의 끈이 끊어지는 비행사의 고독은 같은 해 아버지를 잃은 그의 처지와도 겹쳐 들린다.

  • 도입부의 어쿠스틱 12현 기타 스트로크 위로 가늘게 떨리는 전자음이 들린다. 금속판을 펜으로 짚어 소리를 내는 장난감 전자 악기(스타일로폰)로, 보위가 직접 연주했다.
  • 현악처럼 들리는 몽롱한 배경은 훗날 예스의 건반 주자가 되는 릭 웨이크먼의 멜로트론(테이프에 녹음된 현악 소리를 건반으로 틀어 주는 악기)이다. 발사 장면 뒤 현악 편곡이 부풀어 오르는 대목에 귀를 기울여 보자.
  • 곡은 지상 관제의 목소리와 비행사의 목소리가 대화하듯 오가는 형식이다. 보위가 두 인물을 어조를 달리해 부르는 차이를 따라가면 이야기가 선명해진다.
  • 후렴으로 마무리하지 않고 기타와 현악의 반복 음형이 점점 멀어지며 꺼진다. 비행사가 우주로 떠내려가는 모습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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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 생명이? (Life on Mars?)1971실황 David Bowie · 2000 Glastonbury

《헝키 도리》에서 작곡가로서의 그를 증명한 곡이다. 영화관 안내원의 아들답게, 현실을 잊으려 극장에 앉은 소녀의 실망을 노래의 무대로 삼았다.

  • 보위는 프랑스 노래에 영어 가사를 붙였다가 탈락했는데, 같은 노래가 훗날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가 되었다. 그 화음 진행을 비틀어 이 곡을 썼고, 앨범 속지에 프랭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적었다.
  • 피아노는 릭 웨이크먼이 쳤고, 현악 편곡은 믹 론슨이 처음으로 맡은 것이다. 후렴에서 현악이 피아노를 감싸며 솟아오르는 부분을 들어 보자.
  • 보컬은 절에서 낮게 이야기하듯 시작했다가 후렴에서 높은 음으로 치솟는다. 이 격차가 곡의 극적인 긴장을 만든다.
  • 현악이 잦아든 마지막 순간, 스튜디오에서 울린 전화벨 소리가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볼륨을 높여 끝까지 들어 보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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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지기 스타더스트 · 1972–1974

(지기) 1972년 그는 화성에서 온 양성적 록스타 지기 스타더스트가 되었다. 붉게 물들인 머리에 일본 디자이너 야마모토 간사이의 무대 의상을 입었고, 믹 론슨·트레버 볼더·믹 우드먼지의 밴드 스파이더스 프롬 마스가 뒤를 받쳤다. 그해 1월 『멜로디 메이커』 인터뷰에서 자신이 게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고, 이후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해서는 시기마다 다르게 말했다. 성별의 경계를 연극처럼 넘나든 그의 무대는 글램 록(반짝이는 의상과 화장, 연극적 무대를 앞세운 1970년대 초 영국 록)의 상징이 되었다. (방송) 7월 BBC 『톱 오브 더 팝스』에서 「스타맨」을 부르며 론슨의 어깨에 팔을 두른 장면은 영국 십대들에게 충격과 해방감을 함께 안겼다. 그 방송을 보고 음악을 시작했다고 말한 음악가가 훗날 여럿 나왔다. (조력) 성공은 동료들에게도 나눠졌다. 그는 론슨과 함께 루 리드의 《트랜스포머》를 프로듀싱했고, 해체를 앞둔 모트 더 후플에게 「올 더 영 듀즈」를 써 주었으며, 이기 앤드 더 스투지스의 《로 파워》를 믹싱했다. 소년 시절의 색소폰 선생 로니 로스를 불러 리드의 「워크 온 더 와일드 사이드」 끝부분 색소폰을 맡긴 것도 이때였다. (은퇴) 1973년 7월 3일 런던 해머스미스 오데온에서 그는 이것이 마지막 공연이라고 선언했다. 볼더와 우드먼지는 그 말을 무대 위에서 처음 들었다고 전해진다. 물러난 것은 보위가 아니라 지기였다. 이어 그는 조지 오웰의 『1984』를 무대에 올리려다 유족의 허락을 얻지 못하자, 그 구상을 디스토피아 콘셉트 앨범(여러 곡이 하나의 이야기나 주제로 이어지는 앨범) 《다이아몬드 독스》로 바꿨다. 론슨이 떠난 이 앨범에서는 보위가 직접 리드 기타를 쳤다.

♪앨범 《지기 스타더스트의 흥망과 화성에서 온 거미들》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1972공식 MV 「Starman」 — David Bowie

멸망을 앞둔 지구에 나타난 외계 록스타의 흥망을 그린 앨범이다. 그가 만든 인물이 실제 스타덤과 겹쳐지면서, 그는 이듬해 그 인물을 무대에서 은퇴시켜야 했다.

  • 런던 소호의 트라이던트 스튜디오에서 보위와 켄 스콧이 함께 프로듀싱했다. 첫 곡 「파이브 이어스」는 우드먼지의 드럼이 홀로 서서히 커지며 시작된다.
  • 믹 론슨은 깁슨 레스폴 기타와 마셜 앰프를 썼고, 소리를 바꾸는 발 페달(와와 페달)을 반쯤 눌러 고정해 콧소리 섞인 중음을 냈다고 알려져 있다. 「문에이지 데이드림」의 솔로에서 그 톤을 들을 수 있다.
  • 영상으로 고른 「스타맨」에서는 후렴 첫머리 선율이 한 옥타브 뛰어오른다. 「오버 더 레인보우」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이 많다. 절과 후렴 사이에는 모스 부호 같은 짧은 신호음이 피아노와 기타로 끼어든다.
  • 앨범은 무대 위 스타가 무너지는 「로큰롤 수어사이드」로 닫힌다. 어쿠스틱 기타의 독백으로 시작해 현악과 밴드가 합류하며 절규로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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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플라스틱 솔 · 1974–1976

(필라델피아) 1974년 미국 투어 도중 그는 소울 음악에 빠졌다. 필라델피아 시그마 사운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영 아메리칸스》를 그는 스스로 플라스틱 솔이라 불렀다. 영국 백인이 흑인 음악을 흉내 낸 인공의 소울이라는 자조였다. 이 녹음 기간에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스튜디오를 찾아왔다. 보위는 이미 그의 초기 곡 「그로잉 업」을 녹음해 둘 만큼 그를 일찍 알아본 터였다. 이듬해 1월 뉴욕에서는 존 레논과 「페임」을 만들었고, 이 곡은 그의 첫 미국 1위가 되었다. (계약) 같은 무렵 그는 계약 문제로 매니저 토니 디프리스와 결별했다. 1975년의 합의에 따라 디프리스는 1982년까지 그의 음반 수입 일부를 받았다. 이 경험은 그가 훗날 자기 음악의 권리를 직접 챙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코카인) 1975년 로스앤젤레스로 옮긴 그는 코카인에 깊이 빠졌다. 훗날 그는 우유와 고추로 버티던 시절이었고 《스테이션 투 스테이션》을 녹음한 기억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비학과 흑마술 책에 몰두했고 누군가 자신을 노린다는 망상에 시달렸다고 전기 작가들은 기록한다. 이 앨범의 차가운 귀족 캐릭터 신 화이트 듀크는 그 텅 빈 정신을 닮았다. 같은 해 니컬러스 뢰그의 영화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에서 고향 행성을 잃은 외계인을 연기했다. (실언) 1976년 그는 인터뷰에서 파시즘을 옹호하는 듯한 말을 해 거센 비판을 받았고, 그해 5월 런던 빅토리아역에서 찍힌 사진은 나치식 경례라는 논란을 불렀다. 보위는 손을 흔드는 순간이 찍혔을 뿐이라고 주장했고, 발언에 대해서는 약물로 정신이 무너졌던 때의 망언이었다며 거듭 사과했다. 그는 그 도시에서, 그리고 그 시절의 자신에게서 벗어나야 했다.

♪페임 (Fame)1975공식 MV 「Fame 90」 — David Bowie

존 레논과 뉴욕에서 만든 첫 미국 1위곡이다. 명성이 사람을 어떻게 비우는지에 대한 냉소가 담겼고, 매니저와 결별하던 시기의 피로가 묻어난다.

  • 기타 리프는 카를로스 알로마가 보위의 커버곡 「풋스톰핀」을 위해 만든 리프에서 출발했다. 짧게 끊어 치는 기타가 왼쪽과 오른쪽에서 엇갈리며 맞물린다.
  • 드럼은 데니스 데이비스, 베이스는 에미르 크사산이 맡았다. 빠르지 않은 템포에서 박자를 질질 끌듯 미뤄 치는 펑크(funk) 리듬의 긴장을 느껴 보자.
  • 제목 단어를 높은 가성으로 되풀이하는 목소리가 레논이다. 보위의 낮고 비꼬는 듯한 화법과 대비된다.
  • 끝부분에서 제목 단어가 아주 높은 음부터 아주 낮은 음까지 계단처럼 내려간다. 녹음된 목소리의 음높이를 기계로 바꿔 쌓은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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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베를린 · 1976–1980

(탈출) 1976년 가을 그는 이기 팝과 함께 서독(오늘날 독일)의 서베를린 쇠네베르크에 있는 아파트로 옮겼다. 분단된 도시에서 자전거를 타고 화랑과 카바레를 드나들며 약물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독일 표현주의 회화와 크라프트베르크, 노이! 같은 독일 전자 음악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이기 팝의 《디 이디엇》과 《러스트 포 라이프》를 함께 만들었고, 그의 투어에서 건반을 쳤다. (삼부작) 브라이언 이노, 토니 비스콘티와 만든 《로우》 《'히어로스'》 《로저》는 흔히 베를린 삼부작이라 불린다. 대부분 프랑스 에루빌 성에서 녹음한 《로우》는 앞면을 짧고 부서진 노래로, 뒷면을 신시사이저(전기 신호로 소리를 만들어 내는 건반 악기) 기악곡으로 채웠다. 비스콘티는 음높이를 바꾸는 장치(하모나이저)로 드럼 소리를 낮게 짓눌렀다. 뒷면의 앰비언트(배경처럼 공간을 채우는 음악) 풍 곡 「바르샤바」는 맨체스터 청년들이 꾸린 밴드의 첫 이름이 되었다. 그 밴드가 훗날의 조이 디비전이다. (장벽) 《'히어로스'》는 베를린 장벽에서 멀지 않은 한자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 장벽 곁에서 만나는 연인을 그린 타이틀곡에서는 로버트 프립의 기타 피드백(앰프 소리가 기타로 되돌아 들어가 끝없이 늘어나는 소리)이 길게 울부짖는다. 냉전의 도시가 낳은 이 노래는 그의 대표곡이 되었다. (정리) 1980년 그는 앤젤라와 이혼했다. 같은 해 《스케어리 몬스터스》로 1970년대를 정리하며, 「애시스 투 애시스」에서 11년 전의 우주비행사 메이저 톰을 다시 불러내 약물에 빠진 인물로 그렸다. 브로드웨이 연극 『엘리펀트 맨』에서는 기형의 몸을 지닌 존 메릭을 분장 없이 몸짓만으로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그 공연 기간인 12월, 친구 존 레논이 뉴욕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히어로스 ('Heroes')1977실황 David Bowie · 1985 Live Aid

베를린 장벽 곁 한자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노래다. 약물에서 벗어나려 분단 도시로 숨어든 그가 단 하루만이라도 영웅이 되자는 연인들을 그렸다.

  • 비스콘티는 보위 앞과 방 중간, 먼 끝에 마이크를 하나씩 세우고, 목소리가 커질 때만 먼 마이크가 열리도록 했다. 곡이 진행될수록 보컬이 커다란 홀의 울림을 머금으며 절규로 변하는 것은 이 장치 덕분이다.
  • 처음부터 끝까지 길게 늘어지는 기타는 로버트 프립의 것이다. 앰프 앞 어디에 서야 원하는 음의 피드백이 나는지 바닥에 테이프로 표시해 가며 녹음했다고 비스콘티는 회고했다.
  • 웅웅대며 떨리는 배경음은 이노가 가방 모양의 소형 신시사이저(EMS 신시 AKS)로 만든 소리다. 기타와 겹쳐진 이 층을 헤드폰으로 들으면 구분하기 쉽다.
  • 앨범 버전은 6분이 넘는다. 화음은 거의 바뀌지 않고 소리만 계속 쌓여 가는 형식이다. 싱글은 짧게 편집되었고,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부른 판도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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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스 투 애시스 (Ashes to Ashes)1980실황 David Bowie · 1999 Later with Jools Holland

「스페이스 오디티」의 메이저 톰을 11년 만에 다시 불러내, 우주의 영웅을 약물에 빠진 인물로 뒤집었다. 1970년대의 자신을 정리하는 고백처럼 읽힌다.

  • 현악처럼 부풀었다 가라앉는 소리는 척 해머가 기타 신시사이저(기타 줄의 떨림을 신시사이저 소리로 바꿔 주는 장치)로 여러 겹 쌓은 것이다.
  • 피아노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E 스트리트 밴드 소속 로이 비턴이 쳤다. 튕기듯 경쾌한 리듬 위에 침울한 내용이 얹힌 어긋남이 이 곡의 묘미다.
  • 마지막 부분은 아이들이 부르는 놀림 노래 같은 짧은 선율이 반복되며 사라진다. 보위는 이 대목을 동요에서 착안했다고 말했다.
  • 데이비드 맬릿이 감독한 뮤직비디오에서 보위는 피에로 의상을 입었고, 런던 블리츠 클럽의 젊은이들이 함께 등장했다. 당시 가장 제작비가 많이 든 뮤직비디오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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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경기장의 팝스타 · 1981–1991

(압박) 1981년 스위스 몽트뢰의 마운틴 스튜디오에서 퀸을 만나 거의 즉흥으로 「언더 프레셔」를 만들었다. 브라이언 메이는 프레디 머큐리와 보위가 보컬 선율을 두고 겨루듯 주고받았다고 회고했다. 레논의 죽음 뒤 그는 공개 행사를 줄이고 스위스의 집에 머무는 날이 많아졌다. (성공) 1983년 그는 EMI와 약 1,700만 달러로 알려진 계약을 맺고 나일 로저스와 《렛츠 댄스》를 만들었다. 텍사스의 무명 블루스 기타리스트 스티비 레이 본이 리드 기타를 쳤다. 이 앨범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 되었고, 시리어스 문라이트 투어는 대형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1985년에는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섰다. (공백) 그러나 이어진 《투나잇》과 《네버 렛 미 다운》을 두고 보위 스스로 대중이 원하는 것을 좇다 길을 잃은 시기였다고 돌아봤다. 1985년 1월 형 테리가 입원해 있던 병원을 빠져나가 철로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위는 언론의 소란을 피해 장례식에 가지 않고 화환과 짧은 글을 보냈는데, 이 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형에 대한 기억은 1993년 「점프 데이 세이」로 이어졌다. (밴드) 1989년 그는 기타리스트 리브스 게이브럴스, 세일스 형제와 함께 틴 머신을 만들어 한 사람의 멤버로 돌아가려 했다. 1990년 사운드+비전 투어에서 그는 옛 히트곡을 이번을 끝으로 부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렛츠 댄스 (Let's Dance)1983실황 David Bowie · 2002 파리

스스로 길을 잃었다고 돌아본 1980년대 팝스타 시절의 정점이다. 레논을 잃은 뒤 다시 대중 앞으로 걸어 나온 그의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이었다.

  • 나일 로저스는 보위가 이 곡을 12현 어쿠스틱 기타로 포크송처럼 쳐 왔다고 회고했다. 그것을 뉴욕 파워 스테이션 스튜디오에서 춤곡으로 다시 짰다.
  • 도입부에서 목소리가 한 단씩 쌓이며 올라가는 화음은 비틀스 「트위스트 앤 샤우트」의 고조를 본뜬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간주의 리드 기타는 스티비 레이 본이다. 펜더 스트래토캐스터로 줄을 밀어 올려 음을 꺾는 주법(벤딩)을 써서, 매끈한 댄스곡 한복판에 텍사스 블루스를 꽂아 넣는다.
  • 7분이 넘는 앨범 버전에는 관악기와 타악기만 남는 중간 휴지부가 있다. 싱글 버전과 비교해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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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마지막 별 · 1992–2016

(이만) 1992년 4월 런던 웸블리에서 열린 프레디 머큐리 추모 공연에서 그는 무대에 무릎을 꿇고 주기도문을 외웠다. 같은 달 소말리아 출신 모델 이만과 결혼했고, 부부는 뉴욕에 정착했다. 2000년 딸이 태어났다. (실험) 1990년대 그는 다시 실험가로 돌아갔다. 1993년 《블랙 타이 화이트 노이즈》에는 더 스미스 출신 모리세이의 「아이 노우 잇츠 고나 해픈 섬데이」를 실었고, 이노와 재회한 《1. 아웃사이드》를 들고 나인 인치 네일스와 투어했다. 《어스링》에서는 드럼 앤 베이스(아주 빠른 전자 드럼과 묵직한 베이스로 된 영국 클럽 음악)를 끌어들였다. 너바나가 MTV 언플러그드에서 「세상을 판 사나이」를 불렀을 때 그는 감탄하면서도, 젊은 팬들이 그 곡을 너바나의 노래로 안다며 웃었다. 1997년 쉰 살 생일 공연에는 더 큐어의 로버트 스미스, 소닉 유스, 픽시스의 프랭크 블랙이 함께 섰고, 2002년 비스콘티와 다시 만든 《히던》에서는 픽시스의 「캑터스」를 불렀다. (심장) 2004년 6월 독일 셰셀의 페스티벌 무대에서 가슴 통증을 느꼈고, 함부르크의 병원에서 막힌 동맥을 뚫는 응급 시술을 받았다. 그 뒤 그는 10년 가까이 무대에서 물러나 가족 곁에 머물렀다. (작별) 2013년 1월 66번째 생일에 그는 예고 없이 베를린 시절을 돌아보는 「웨어 아 위 나우?」를 내놓으며 《더 넥스트 데이》로 돌아왔다. 2014년 무렵 간암 진단을 받았지만 소수에게만 알린 채 뮤지컬 『라자루스』와 마지막 앨범 《블랙스타》를 만들었다. 2016년 1월 8일 69번째 생일에 앨범이 나왔고, 이틀 뒤 그는 뉴욕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비스콘티는 이 앨범을 그가 남긴 작별 선물이라고 했다.

♪앨범 《블랙스타》 (Blackstar)2016공식 MV 「Lazarus」 — David Bowie

병을 알리지 않은 채 만들어 69번째 생일에 내놓은 마지막 앨범이다. 이틀 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앨범 전체가 스스로 쓴 작별 인사로 다시 들렸다.

  • 뉴욕 재즈 색소포니스트 도니 매캐슬린의 4중주단이 연주했다. 록 밴드가 아닌 재즈 연주자들의 즉흥적인 호흡이 앨범 전체의 바탕이다.
  • 비스콘티는 녹음 중에 켄드릭 라마의 《투 핌프 어 버터플라이》를 들으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태도를 함께 들어 보자.
  • 타이틀곡은 약 10분 길이로, 불길한 주문 같은 앞부분과 따뜻한 선율의 중간 부분이 맞붙은 두 부분 구성이다.
  • 영상으로 고른 「라자루스」에서는 벤 몬더의 묵직하게 찢어진 기타 화음과 매캐슬린의 색소폰이 번갈아 운다. 병상에 누운 보위가 나오는 뮤직비디오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에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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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알려진 이야기

1964년 11월, 열일곱 살의 데이비 존스는 BBC 시사 프로그램 『투나잇』에 나와 장발 남성 학대 방지 협회의 대표 자격으로 긴 머리 남자들이 겪는 조롱을 성토했다. 반쯤은 홍보를 노린 장난이었지만 이것이 그의 첫 텔레비전 인터뷰였다. 스타가 되기 전의 일이라 대개 짧은 일화로 지나가지만, 대중매체를 무대로 다루는 감각이 이미 엿보인다. 1998년 그는 미술 잡지 『모던 페인터스』의 편집위원으로서 소설가 윌리엄 보이드와 함께 가공의 미국 화가 냇 테이트의 전기를 펴냈다. 뉴욕에서 열린 출간 기념 파티에서는 일부 손님이 실재하지 않는 화가를 아는 듯 이야기했다고 전해지며, 장난은 며칠 뒤 언론 보도로 드러났다. 음악 이야기에 가려 미술계의 각주로만 남은 일이다. 그는 평생 그림을 그리고 수집한 사람이었다. 1997년 그는 1990년 이전에 녹음한 앨범 25장의 미래 저작권 수입을 담보로 5,500만 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보위 본드라 불린 이 거래는 음악 저작권을 금융 상품으로 만든 초기 사례로 지금도 금융계에서 거론된다. 그는 이 돈으로 옛 매니지먼트 쪽에 남아 있던 권리를 정리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1998년에는 직접 인터넷 서비스 보위넷을 열었다. 1999년 BBC 인터뷰에서 인터넷이 사회를 송두리째 바꿀 것이라고 단언했을 때, 진행자는 회의적이었다. 당시엔 괴짜 스타의 부업쯤으로 여겨졌던 이 대화는 훗날 예언처럼 다시 인용되었다.

용어 노트 📚🔎

글램 록

(말뜻) 글램(glam)은 화려함, 매혹이라는 뜻의 영어 glamour 를 줄인 말이다. (록에서) 1970년대 초 영국에서 유행한 록으로, 반짝이는 의상과 짙은 화장, 높은 굽의 구두, 연극 같은 무대를 앞세웠다. 음악만큼이나 보여 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남자 가수가 여성스러운 차림을 하며 성별의 경계를 가지고 노는 일이 많았다. 학예회에서 평소의 나와 전혀 다른 인물로 분장하고 무대에 올라 친구들을 놀라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보위의 지기 스타더스트가 그 대표였다. (다른 데서는) 패션이나 사진에서 글램은 반짝이고 화려한 스타일 전반을 가리킨다.

플라스틱 솔

(말뜻) 플라스틱은 인공으로 만든 것, 솔(soul)은 영혼이자 미국 흑인 음악의 한 갈래인 소울을 뜻한다. 합치면 인공의 소울이다. (록에서) 보위가 1975년 앨범 《영 아메리칸스》를 두고 스스로 붙인 말이다. 영국 백인 가수가 미국 흑인의 소울 음악을 진지하게 흉내 냈지만, 진짜가 될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자조가 담겼다. 좋아하는 친구의 말투를 열심히 따라 해 보지만, 따라 한다는 걸 스스로 아는 것과 비슷하다. 그는 그 어색함마저 솔직하게 드러내 음악의 개성으로 삼았다.

콘셉트 앨범

(말뜻) 콘셉트(concept)는 생각, 구상이라는 뜻이다. 앨범 전체를 하나의 구상으로 묶었다는 말이다. (록에서) 여러 곡을 따로따로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나 주제로 이어지도록 만든 앨범이다. 곡 순서대로 들으면 소설의 장을 넘기듯 이야기가 흘러간다. 반 친구들이 한 문단씩 이어 쓰는 릴레이 소설처럼, 한 곡 한 곡이 큰 이야기의 한 조각이 된다. 보위의 《지기 스타더스트》와 《다이아몬드 독스》가 그런 앨범이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콘셉트는 오늘 옷 콘셉트처럼 분위기나 주제를 뜻할 때가 많다.

신시사이저

(말뜻) 영어 synthesize 는 여러 가지를 합쳐 새로 만든다, 즉 합성한다는 뜻이다. 신시사이저는 소리를 합성하는 기계다. (록에서) 전기 신호로 소리를 만들어 내는 악기로, 대개 건반이 달려 있다. 피아노처럼 줄을 때리는 게 아니라 전자 회로로 소리의 높이와 색깔, 떨림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게임 속 효과음이나 오락실 음악의 삐용삐용 하는 소리도 이런 원리로 만든다. 보위의 《로우》 뒷면은 신시사이저로 만든 기악곡으로 채워졌다. (다른 데서는) 화학에서 합성(synthesis)은 여러 물질을 반응시켜 새 물질을 만드는 일을 뜻한다.

피드백

(말뜻) 영어 feed back 은 되먹인다, 즉 나온 것을 다시 들여보낸다는 뜻이다. (록에서) 앰프에서 나온 소리가 다시 기타 줄이나 마이크로 들어가 소리가 끝없이 늘어나거나 울부짖는 현상이다. 원래는 사고였지만 록 기타리스트들은 이것을 일부러 조절해 표현 수단으로 삼았다. 강당에서 마이크를 스피커 가까이 대면 삐익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 바로 피드백이다. 「'히어로스'」에서 로버트 프립은 서는 자리를 바꿔 가며 원하는 음의 피드백을 얻었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는 선생님이나 친구가 내 과제에 대해 들려주는 의견을 피드백이라고 한다.

앰비언트

(말뜻) 영어 ambient 는 주변을 둘러싼, 주위의라는 뜻이다. (록에서) 귀 기울여 듣지 않아도 공간을 채우는 배경 같은 음악이다. 뚜렷한 노래나 박자보다 천천히 변하는 소리의 분위기가 중심이다. 브라이언 이노가 1970년대 후반에 이 이름을 붙였다. 게임을 켜 두면 대기 화면에서 조용히 흐르는 음악, 공부할 때 틀어 두는 잔잔한 소리가 이런 느낌이다. 보위의 《로우》 뒷면에는 앰비언트 풍의 곡들이 실렸다. (다른 데서는) 조명이나 사진에서 앰비언트 라이트는 방 전체에 은은하게 퍼진 주변광을 말한다.

드럼 앤 베이스

(록에서) 1990년대 영국 클럽에서 생겨난 전자 음악이다. 드럼 소리를 잘게 잘라 아주 빠르게 다시 짜 맞추고, 그 아래에 묵직하고 낮은 베이스를 깐다. 드럼은 정신없이 빠른데 베이스는 느긋하게 출렁여서, 빠른 것과 느린 것이 동시에 들리는 묘한 느낌이 난다. 줄넘기에서 줄은 쉴 새 없이 도는데 몸은 천천히 뛰는 것처럼 들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보위는 1997년 《어스링》에서 이 스타일을 록과 섞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