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ti Smith
랭보의 시집을 품고 뉴욕에 온 뉴저지의 소녀가 시를 로큰롤의 무대 위에 세웠다.
한눈에 보기 🔭💭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영향밥 딜런
십대의 우상이었고, 1995년 투어에 스미스를 초대해 복귀의 길을 열어 주었다.
- 연인로버트 메이플소프
연인에서 평생의 동반자가 된 사진가로, 『호시스』 표지를 찍었고 회고록 『저스트 키즈』의 주인공이 됐다.
- 멤버레니 케이
1971년 첫 낭송회부터 반세기 넘게 곁에서 기타를 친 음악적 동반자다.
- 우정톰 벌레인
텔레비전의 기타리스트로 첫 싱글에 참여했고, CBGB 레지던시를 함께했다.
- 가족프레드 소닉 스미스
MC5의 기타리스트이자 남편으로, 「피플 해브 더 파워」를 함께 썼다.
- 우정브루스 스프링스틴
미완성 곡을 건네 「비코즈 더 나이트」라는 스미스 최대의 히트를 낳게 했다.
I. 뉴저지의 몽상가 · 1946–1967
(출생) 1946년 12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그랜트는 공장의 기계공이었고, 어머니 베벌리는 한때 재즈 클럽에서 노래하다 웨이트리스로 일했다. 네 남매의 맏이로, 아래로 린다와 토드, 킴벌리가 있었다. 가족은 필라델피아를 거쳐 1950년대 중반 뉴저지주 우드버리 근교의 노동자 동네에 자리를 잡았다. (신앙) 어머니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고 아이들을 성경과 함께 키웠다. 스미스는 성경의 언어와 이미지에 깊이 매혹됐지만, 자라면서 교단의 울타리를 벗어났다. 신앙에서 멀어진 뒤에도 기도하듯 쓰고 읊는 태도는 평생의 화법으로 남았다. (랭보) 십대의 스미스는 아르튀르 랭보의 시집과 밥 딜런의 노래, 존 콜트레인의 재즈에 빠져들었다. 방 벽에 랭보의 사진을 붙여 두고 시인을 성인처럼 우러렀다. 글래스버러 주립대학에서 교사를 꿈꾸며 공부했지만 오래 다니지 못했고, 생활비를 벌려고 공장에서 일했다. 단조롭고 거친 그 노동의 기억은 몇 년 뒤 첫 싱글의 소재가 됐다. (결심) 1967년 스미스는 아이를 낳아 입양 보냈다. 훗날 회고록에서 스스로 밝힌 일이다. 같은 해 여름, 그는 얼마 안 되는 돈을 들고 뉴욕행 버스에 올랐다. 시인이 되겠다는, 막연하지만 단단한 결심이었다.
II. 첼시 호텔의 시인 · 1967–1974
(로버트) 뉴욕에 도착한 직후 스미스는 브루클린에서 미술학도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만났다. 둘은 연인이 되어 좁은 방을 나눠 썼고, 서점에서 일해 번 돈으로 빵과 그림 재료를 샀다. 메이플소프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며 연인 관계는 끝났지만, 서로를 예술가로 믿어 주는 우정은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첼시) 1969년 두 사람은 첼시 호텔에 들어갔다. 작가와 음악가, 화가가 뒤섞인 그곳에서 스미스는 극작가 샘 셰퍼드와 희곡 『카우보이 마우스』를 함께 썼고, 그림보다 시를 자신의 길로 정했다. 음악 잡지 『크림』 등에 록 비평을 쓰며 글로 생계를 꾸리기 시작했다. (낭송) 1971년 2월, 세인트 마크스 교회의 시 낭송회에서 스미스는 음반점 점원이자 평론가였던 레니 케이의 전기기타 반주에 맞춰 시를 읽었다. 음악에 실어 말로 읊는 낭송(스포큰 워드)과 로큰롤을 한 무대에 세운 첫 실험이었다. 1972년 첫 시집 『세븐스 헤븐』을 냈고, 1974년에는 피아니스트 리처드 솔이 합류해 셋이 됐다. (싱글) 1974년 6월, 셋은 지미 헨드릭스가 세운 일렉트릭 레이디 스튜디오에서 첫 싱글을 녹음했다. 비용은 메이플소프가 댔다. 앞면 「헤이 조」에서는 텔레비전의 톰 벌레인이 기타를 맡았고, 뒷면 「피스 팩토리」는 공장에서 보낸 십대의 여름을 낭송과 피아노로 풀어낸 곡이었다. 공장을 벗어나 뉴욕으로 가겠다는 결심이 그대로 노래가 됐다.
공장 노동의 기억과 뉴욕으로 떠나겠다는 결심을 낭송에 담은 첫 싱글의 뒷면이다. 메이플소프가 녹음 비용을 댔다.
- 편성은 단출하다. 리처드 솔의 피아노가 재즈풍의 짧은 음형을 되풀이하고, 레니 케이의 기타가 그 위에 얇게 깔린다. 드럼도 베이스도 없다.
- 스미스는 노래한다기보다 말한다. 처음엔 차분히 공장의 하루를 묘사하다가, 뒤로 갈수록 말의 속도와 열기가 올라가는 흐름을 따라가 보자.
- 피아노가 박자를 엄격히 지키기보다 낭송의 호흡에 맞춰 밀고 당기는 대목들이 있다. 시 낭송회의 즉흥이 녹음실로 옮겨 온 흔적처럼 들린다.
- 후반부에서 목소리가 결심을 선언하는 어조로 바뀌는 지점이 곡의 정점이다. 이 낭송(스포큰 워드) 방식이 이듬해 『호시스』의 바탕이 된다.
III. 말들 · 1975–1976
(CBGB) 1975년 봄, 패티 스미스 그룹은 텔레비전과 함께 맨해튼 바워리의 클럽 CBGB에서 7주 가까이 붙박이 연속 공연(레지던시)을 했다. 이 공연은 라몬즈, 토킹 헤즈가 함께 오르내리던 뉴욕 언더그라운드 신이 모양을 갖춘 결정적 계기로 꼽힌다. 베이시스트 이반 크랄과 드러머 제이 디 도허티가 합류하며 밴드의 골격도 완성됐다. (계약) 그해 아리스타 레코드의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계약을 제안했다. 스미스는 벨벳 언더그라운드 출신의 존 케일을 프로듀서로 골랐다. 케일은 밴드의 즉흥을 다듬기보다 끝까지 밀어붙이게 했고, 작업은 팽팽한 긴장 속에 진행됐다. 그 긴장은 결과적으로 앨범의 거친 생명력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시스) 11월에 나온 『호시스』는 반 모리슨의 곡에 자신의 옛 시를 이어 붙인 「글로리아」로 문을 열었다. 꿈에서 만난 짐 모리슨, 빌헬름 라이히의 아들이 쓴 회고록, 지미 헨드릭스의 기일에 녹음한 애도가 노래가 됐다. 표지는 메이플소프가 자연광 아래 찍은 흑백 사진으로, 흰 셔츠에 재킷을 어깨에 걸친 꾸밈없는 모습은 당시 여성 가수의 표지 관습을 정면으로 거슬렀다. (파장)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47위에 올랐고, 평단은 시와 거친 로큰롤(펑크)의 결합으로 받아들였다. R.E.M.의 마이클 스타이프는 십대에 이 앨범을 듣고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1976년 잭 더글러스가 프로듀싱한 두 번째 앨범 『라디오 에티오피아』는 더 길고 거칠게 즉흥으로 나아갔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반 모리슨이 이끈 그룹 뎀의 개러지 록 곡에 자신의 옛 시를 이어 붙여, 『호시스』의 첫 곡으로 놓았다.
- 도입부는 리처드 솔의 피아노가 세 개의 화음을 느리게 짚고, 스미스가 그 위에서 시를 읊듯 시작한다. 원곡을 아는 사람도 처음엔 같은 곡인지 알아채기 어렵다.
- 곡은 서서히 빨라진다. 레니 케이의 기타와 제이 디 도허티의 드럼이 하나씩 붙으며 속도와 음량이 계단처럼 올라가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 보자.
- 중반부터 원곡의 단순한 세 화음 반복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존 케일은 밴드의 이 고조를 다듬지 않고 날것으로 남겨 두었다.
- 스미스의 목소리는 낭송에서 외침으로 넘어간다. 마지막 부분에서 밴드 전체가 한 덩어리로 몰아치는 순간이 곡의 정점이다.
존 케일의 프로듀싱과 메이플소프의 표지 사진, CBGB에서 다져진 밴드가 한데 모인 데뷔 앨범이다. 영상은 대표곡 「랜드」로 찾는다.
- 앨범의 대표곡 「랜드」는 9분이 넘는 3부 구성이다. 소년이 겪는 폭력의 환상 같은 낭송, 1960년대 춤곡 「랜드 오브 어 사우전드 댄시스」의 반복, 다시 낭송으로 돌아오는 흐름을 구간별로 들어 보자.
- 「랜드」에서 스미스는 서로 다른 즉흥 낭송을 여러 번 녹음해 겹쳤다(오버더빙). 헤드폰으로 들으면 왼쪽과 오른쪽에서 다른 목소리가 동시에 말하는 대목이 있다.
- 「버드랜드」는 리처드 솔의 피아노에서 출발해 밴드가 즉흥으로 길게 이어 간 곡이다. 정해진 절과 후렴 대신 피아노의 물결 위에 이야기가 흘러간다.
- 마지막 곡 「엘레지」는 지미 헨드릭스의 기일에 녹음됐다. 앞의 격렬함이 가라앉은 뒤 조용한 피아노와 목소리로 앨범이 닫힌다.
IV. 추락과 귀환 · 1977–1979
(추락) 1977년 1월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밥 시거 공연의 오프닝 무대에 서던 스미스는 어두운 무대 아래로 떨어져 목을 크게 다쳤다. 몇 달의 재활 동안 그는 공연 대신 글로 돌아가 시와 산문을 엮었고, 이듬해 책 『바벨』로 묶어 냈다. (프레드) 그보다 앞서 1976년 디트로이트에서 스미스는 MC5의 기타리스트 프레드 소닉 스미스를 만났다. 둘은 곧 깊은 사랑에 빠졌고, 뉴욕과 디트로이트를 오가는 장거리 연애가 시작됐다. 이후 몇 년의 노래에는 이 사랑이 짙게 배었다. (밤) 1978년 앨범 『이스터』의 프로듀서 지미 아이오빈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미완으로 남겨 둔 곡의 데모를 건넸다. 스미스는 디트로이트의 프레드에게서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던 밤에 가사를 써 「비코즈 더 나이트」를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 13위까지 올라 그의 가장 큰 히트가 됐다. 무대에서 떨어졌던 가수가 1년여 만에 차트 위로 돌아온 것이었다. (파도) 1979년 토드 런그렌이 프로듀싱한 『웨이브』에는 프레드에게 바친 「프레더릭」과 이반 크랄과 함께 쓴 「댄싱 베어풋」이 실렸다. 「댄싱 베어풋」은 10년 뒤 U2가 커버해 싱글 B면에 실었다. 그해 9월 이탈리아 피렌체의 대규모 야외 공연을 끝으로 스미스는 돌연 무대를 떠났다. 명성의 정점에서 사랑을 택한 결정이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미완성 곡에 스미스가 프레드를 기다리던 밤의 마음을 가사로 입혀 완성했다. 그의 가장 큰 히트곡이다.
- 곡은 피아노의 반복 음형으로 시작한다. 이 단순한 도입이 쌓여 가며 긴장을 만든다는 점에 귀를 기울여 보자.
- 선율은 스프링스틴의 것이고, 가사와 노래하는 태도는 스미스의 것이다. 낭송하던 목소리가 여기서는 길게 뻗는 선율을 정면으로 노래한다.
- 지미 아이오빈의 프로듀싱은 『호시스』보다 훨씬 매끈하다. 드럼과 기타가 크고 또렷하게 앞으로 나와 라디오에 어울리는 소리를 만든다.
- 후렴에서 밴드 전체가 터지듯 커지는 순간과, 절로 돌아가며 다시 가라앉는 대비가 곡의 뼈대다.
『웨이브』에 실린 곡으로 이반 크랄과 함께 썼다. 사랑에 깊이 빠진 시기의 황홀과 몰입이 담겼고, 훗날 U2가 커버했다.
- 곡을 받치는 것은 이반 크랄의 베이스다. 느리게 굽이치는 베이스 선을 따라가면 곡 전체가 흔들리듯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기타는 화음을 한 음씩 풀어 차례로 퉁기는 주법(아르페지오)으로 반짝이는 배경을 깐다. 화려한 독주보다 반복으로 최면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 스미스는 낮고 나지막하게 시작해 점점 목소리를 키운다. 누군가에게 고백하듯 말하는 어조가 후반으로 갈수록 기도처럼 들린다.
- 토드 런그렌의 프로듀싱은 소리 사이에 여백을 남긴다. 중반의 낭송 대목에서 악기들이 물러나는 순간을 들어 보자.
V. 디트로이트의 침묵 · 1980–1994
(결혼) 1980년 3월 스미스는 프레드와 결혼해 디트로이트 근교 세인트클레어 쇼어스에 정착했다. 1982년 아들 잭슨이, 1987년 딸 제시가 태어났다. 이후 십여 년 그는 록 스타가 아니라 아내이자 어머니로, 그리고 이른 새벽에 홀로 쓰는 사람으로 살았다. (배움) 스미스는 이 시기를 은둔이 아니라 배움의 시간으로 기억했다. 집안일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썼으며, 프레드와 함께 곡을 다듬었다. 화려한 경력을 내려놓은 선택을 의아해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그는 스스로 원한 삶이었다고 말해 왔다. (꿈) 1988년 프레드와 지미 아이오빈이 함께 프로듀싱한 『드림 오브 라이프』가 나왔다. 부부가 함께 쓴 「피플 해브 더 파워」는 보통 사람들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담은 찬가였다. 앨범은 크게 팔리지 않았지만, 이 곡은 훗날 그의 공연 마지막을 지키는 노래가 됐다. (상실) 그 뒤로 상실이 잇달았다. 1989년 3월 메이플소프가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고, 1990년에는 리처드 솔이 숨졌다. 1994년 11월 프레드가 심장 이상으로 세상을 떠났고, 한 달 뒤 남동생 토드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마흔일곱의 스미스는 두 아이와 함께 남겨졌다.
디트로이트의 부엌과 거실에서 남편 프레드와 함께 쓴 곡이다. 보통 사람들의 힘을 믿는 찬가로, 지금도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 1980년대 후반의 크고 울리는 드럼 소리와 신시사이저가 전면에 나온다. 『호시스』의 거친 녹음과 비교하면 시대와 프로듀서의 차이가 선명하다.
- 곡은 행진곡처럼 일정한 걸음으로 나아간다. 베이스와 드럼이 흔들림 없이 박을 지켜, 여럿이 함께 따라 부르기 좋은 틀을 만든다.
- 스미스는 절에서는 이야기하듯 장면을 묘사하고, 후렴에서는 청중 전체에게 외치듯 목소리를 연다. 개인의 말이 집단의 노래로 바뀌는 순간이다.
- 라이브 영상에서는 관객과 게스트가 함께 후렴을 부르며 길게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앨범판과 라이브판을 나란히 들어 보면 좋다.
VI. 다시, 노래하다 · 1995–2009
(귀환) 슬픔 속의 스미스를 다시 무대로 이끈 사람들이 있었다. 남동생 토드는 생전에 누나에게 다시 공연하라고 권했고, 1995년 12월 밥 딜런은 동부 투어에 그를 초대했다. 십대에 우상으로 삼았던 사람과 한 마이크 앞에서 「다크 아이스」를 불렀다. (애도) 1996년 스미스는 아이들과 함께 뉴욕으로 돌아왔다. 같은 해 나온 『곤 어게인』은 프레드와 함께 쓴 마지막 곡들과 떠난 이들을 향한 애도로 채워졌다. 같은 해 R.E.M.의 「이-보 더 레터」에 목소리를 보태, 마이클 스타이프와의 오랜 우정을 음반에 새겼다. (지속) 『피스 앤 노이즈』(1997), 『겅 호』(2000), 『트램핀』(2004)이 이어졌다. 레니 케이와 제이 디 도허티가 1970년대부터 곁을 지켰고, 노래는 애도에서 점차 전쟁과 권력에 대한 분노, 환경과 인권으로 넓어졌다. 정치적 발언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 바탕에는 늘 보통 사람들의 존엄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전당) 2005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화훈장 코망되르를 받았다. 200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는데, 헌액 연설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잭 데 라 로차가 맡았다. 같은 해 커버 앨범 『트웰브』에서는 너바나의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을 밴조가 이끄는 느린 어쿠스틱 곡으로 다시 불러, 세대를 건너 커트 코베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프레드와 남동생을 잃은 뒤 뉴욕으로 돌아와 낸 복귀작이다. 영상은 대표곡 「비니스 더 서던 크로스」로 찾는다.
- 대표곡 「비니스 더 서던 크로스」는 어쿠스틱 기타의 조용한 반복으로 시작해 점차 커지는 곡이다. 애도가 체념에서 해방으로 옮겨 가는 흐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 보자.
- 이 곡에는 제프 버클리가 목소리를 보탰다. 스미스의 노래 뒤로 겹쳐 드는 또 하나의 목소리를 찾아 들어 보자.
- 타이틀곡 「곤 어게인」은 프레드와 함께 쓴 곡으로, 북처럼 둔탁하게 울리는 리듬 위에서 장례 행렬 같은 걸음을 만든다.
- 말콤 번의 프로듀싱은 1980년대의 매끈함을 걷어 내고 악기 소리를 가까이 들리게 했다. 레니 케이의 기타가 다시 날것에 가까워졌다.
VII. 기록하는 사람 · 2010–2026
(약속) 2010년 메이플소프와 보낸 젊은 날을 그린 회고록 『저스트 키즈』가 나왔다. 그가 죽기 직전 남긴 부탁, 둘의 이야기를 써 달라는 약속을 20년 만에 지킨 책이었다. 그해 미국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을 받았고, 음악보다 책으로 스미스를 먼저 만나는 독자층이 생겨났다. (산문) 2012년 앨범 『방가』 이후 그는 『M 트레인』(2015), 『이어 오브 더 몽키』(2019) 같은 산문집으로 꿈과 상실, 아침의 커피와 여행, 죽은 작가들의 무덤을 오가는 기록을 이어 갔다. 2011년에는 스웨덴의 폴라 음악상을 받았다. (노벨) 2016년 12월 스톡홀름의 노벨상 시상식에서 불참한 밥 딜런을 대신해 「어 하드 레인스 어-거너 폴」을 불렀다. 긴장으로 가사를 놓치자 그는 노래를 멈추고 양해를 구한 뒤 다시 불렀고, 객석은 박수로 답했다. 그는 이 경험을 『뉴요커』에 직접 써서 담담히 밝혔다. (현재) 2015년에는 『호시스』 40주년 투어를, 2025년에는 50주년을 맞아 다시 앨범 전곡을 연주하는 투어를 이어 갔다. 같은 해 가을에는 어린 시절부터의 삶을 돌아본 회고록 『브레드 오브 에인절스』를 펴냈다. 일흔을 훌쩍 넘긴 지금도 스미스는 쓰고, 읽고, 노래한다.
덜 알려진 이야기
1970년 여름, 스미스는 일렉트릭 레이디 스튜디오의 개관 파티에 갔다가 낯가림에 계단에 앉아 있었고, 그곳에서 지미 헨드릭스와 마주쳤다. 『저스트 키즈』에 따르면 헨드릭스는 이 스튜디오를 세계의 음악가들이 모여 소리로 대화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몇 주 뒤 세상을 떠났고, 5년 뒤 스미스는 바로 그 스튜디오에서 『호시스』를 녹음하며 헨드릭스의 기일에 「엘레지」를 남겼다. 이 만남은 회고록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글로리아」 첫머리의 도발적인 선언은 노래를 위해 쓴 것이 아니었다. 1970년에 쓴 시 「오스」의 첫 줄을 몇 년 뒤 반 모리슨의 곡에 붙인 것이다. 신앙 속에서 자란 사람이 스스로의 책임으로 살겠다는 선언이었다고 스미스는 여러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곡의 유명세에 가려 원래 시의 존재는 팬과 연구자 사이에서만 주로 이야기된다. 레니 케이는 스미스의 기타리스트이기 전에 음반 수집가이자 평론가였다. 1972년 그가 엮은 편집 음반 『너깃츠』는 1960년대 미국의 이름 없는 차고 밴드들의 곡을 모은 것으로, 개러지 록이라는 말을 널리 퍼뜨리고 펑크 세대에 직접적인 교본이 됐다. 패티 스미스 그룹의 날것 같은 소리에는 이 수집가의 귀가 스며 있다. 「비코즈 더 나이트」는 스프링스틴이 『다크니스 온 디 에지 오브 타운』 작업 중 끝내지 못하고 밀어 둔 곡이었다. 두 사람의 녹음실을 모두 오가던 지미 아이오빈이 데모를 건넨 덕에 곡이 살아났다. 스프링스틴은 훗날 당시 자신이 그런 사랑 노래를 끝낼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용어 노트 📚🔎
펑크
(말뜻) 영어 punk 는 원래 쓸모없는 녀석, 풋내기 같은 뜻의 낮춤말이었다. 그 깔보는 이름을 음악가들이 오히려 자랑스럽게 받아들였다. (록에서) 1970년대 중반 뉴욕과 런던에서 나온, 짧고 빠르고 거친 로큰롤이다. 화려한 연주 실력보다 하고 싶은 말을 지금 당장 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겼다. 학교 축제에서 악기를 막 배운 친구들이 서툴지만 신나게 무대를 뒤집어 놓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패티 스미스는 그 문을 시로 연 사람으로 꼽힌다. (다른 데서는) 패션에서는 찢어진 옷, 안전핀, 뾰족하게 세운 머리 같은 반항적인 차림새를 가리키기도 한다.
스포큰 워드
(말뜻) 영어로 spoken word, 곧 입으로 말한 말이라는 뜻이다. 노래로 부르는 말과 구분하려고 붙인 이름이다. (록에서) 선율을 붙여 노래하는 대신, 시를 읽거나 이야기하듯 말하는 방식으로 하는 공연이다. 음악 반주가 깔리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국어 시간에 시를 낭송하는데 친구가 뒤에서 기타를 쳐 주면, 같은 시도 훨씬 다르게 들린다. 패티 스미스는 이 낭송에 전기기타를 붙이며 음악 경력을 시작했다.
개러지 록
(말뜻) 개러지(garage)는 자동차를 넣어 두는 차고다. 집 차고에서 연습하던 동네 밴드들의 음악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록에서) 1960년대 미국의 십대 밴드들이 만든 단순하고 시끄러운 로큰롤이다. 세 개쯤의 화음을 반복하고, 녹음도 거칠다. 동네 친구들끼리 체육관 구석에서 서툴게 합주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이 투박함이 1970년대 펑크의 직접적인 뿌리가 됐다.
커버
(록에서) 다른 음악가가 먼저 발표한 곡을 새로 연주하고 녹음하는 것을 말한다. 똑같이 따라 하기보다 자기 식으로 바꿔 부를 때 의미가 커진다. 음악 시간에 유명한 노래를 우리 반만의 편곡으로 부르는 것과 같다. 패티 스미스는 「글로리아」나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을 원곡과 전혀 다른 곡처럼 바꿔 놓았다. (다른 데서는) 일상에서 커버는 덮개나 표지를 뜻하고, 남의 일을 대신 메워 준다는 뜻으로도 쓴다.
레지던시
(말뜻) 영어 residency 는 거주, 머무름이라는 뜻이다. 한 곳에 머물러 산다는 말에서 왔다. (록에서) 한 밴드가 같은 공연장에서 몇 주나 몇 달 동안 정기적으로 연속 공연하는 것을 말한다. 매번 다른 도시로 옮겨 다니는 투어와 반대다. 동아리가 매주 금요일 같은 교실에서 공연을 열면 소문이 나서 관객이 점점 늘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1975년 CBGB의 레지던시가 바로 그렇게 뉴욕 펑크의 중심이 됐다. (다른 데서는) 의학에서는 의사가 전문의가 되기 위해 병원에서 받는 수련 기간, 미술에서는 작가가 일정 기간 머물며 작업하는 프로그램을 가리킨다.
즉흥 연주
(말뜻) 즉흥(卽興)은 그 자리에서(卽) 일어나는 흥(興)이라는 뜻이다. 미리 짜 두지 않고 그 순간의 느낌대로 만든다는 말이다. (록에서) 악보나 미리 정한 순서 없이, 연주하는 그 자리에서 선율이나 말을 지어내는 것이다. 재즈에서 특히 중요하지만, 패티 스미스는 시 낭송을 즉흥으로 이어 가며 밴드와 함께 곡을 그 자리에서 키워 갔다. 친구들과 끝말잇기를 하며 다음 말을 바로 생각해 내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즉흥 연주에서는 멤버들이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함께 방향을 바꾼다.
오버더빙
(말뜻) 영어 over 는 위에, dubbing 은 소리를 덧입힌다는 뜻이다. 이미 녹음된 소리 위에 새 소리를 겹쳐 녹음한다는 말이다. (록에서) 녹음해 둔 연주를 틀어 놓고, 그 위에 다른 악기나 목소리를 따로 녹음해 하나로 합치는 기법이다. 한 사람이 여러 사람 몫을 할 수도 있다. 투명한 셀로판지에 그림을 하나씩 그려 겹쳐 놓으면 한 장의 그림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호시스』의 「랜드」에서는 스미스의 서로 다른 즉흥 낭송 여러 개가 겹쳐 있다. (다른 데서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화면에 목소리를 입히는 더빙과 같은 뿌리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