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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Dylan

밥 딜런 (1941–)

'저는 저 자신을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1965년 샌프란시스코 기자회견에서

한눈에 보기 🔭💭

1. 뿌리미국 덜루스 출생히빙과 리틀 리처드딩키타운 포크2. 빌리지우디 거스리바람만이 아는 대답워싱턴 행진3. 전기뉴포트 1965라이크 어 롤링 스톤더 호크스 순회4. 은거우드스톡 시절지하실 녹음헨드릭스의 망루5. 변신블러드 온 더 트랙스롤링 선더 레뷰가스펠 시기6. 유산끝나지 않는 투어노벨 문학상머더 모스트 파울딜런1941–포크의 목소리에서 전기 기타로, 노벨 문학상까…
무대가 된 도시 🧭🗺️
N미국덜루스1941–1947히빙1947–1959미니애폴리스1959–1960뉴욕1961–1966말리부1970년대–

일부 지명 좌표 출처(가공): GeoNames (CC BY 4.0) · Pleiades (CC BY 3.0)

멤버와 동료들 ⏳🌊

  • 영향우디 거스리

    히빙의 소년에게 노래하는 법과 떠돌이 정신을 가르친 우상으로, 딜런은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병상을 찾았다.

  • 연인수지 로톨로

    1960년대 초 그를 미술·연극·민권 운동의 세계로 이끌었고, 《더 프리휠링 밥 딜런》 표지에 함께 실렸다.

  • 우정조앤 바에즈

    이미 스타였던 그녀가 무명의 딜런을 무대에 세웠고, 1975년 롤링 선더 레뷰에서도 함께 노래했다.

  • 매니저앨버트 그로스먼

    1960년대 그의 매니저로 공연과 출판을 관리하며 포크 가수를 대중 스타로 키웠다.

  • 우정로비 로버트슨

    더 호크스·더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1966년 야유 속 순회와 지하실 녹음, 1974년 재기 순회를 함께했다.

  • 우정조지 해리슨

    우드스톡 시절 함께 곡을 썼고, 방글라데시 콘서트와 트래블링 윌버리스로 이어진 오랜 벗이었다.

YouTube에서 6곡 이어 듣기 ↗

I. 북쪽 나라의 소년 · 1941–1960

(덜루스) 1941년 5월, 미국 미네소타주 덜루스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지머먼이었다. 아버지 에이브럼은 스탠더드 오일의 사무원이었고, 어머니 비어트리스는 가족들에게 비티라 불렸으며 동유럽에서 건너온 유대계 이민자 집안의 딸이었다. 그에게는 남동생 데이비드가 있다. (히빙) 아버지가 소아마비를 앓아 일을 그만둔 뒤, 가족은 어머니의 고향인 철광 도시 히빙으로 옮겼다. 아버지는 형제들과 가전·가구 상점을 꾸렸다. 겨울이 길고 노천 광산이 땅을 깊게 파먹은 이 마을에서, 소년은 밤마다 라디오로 먼 남쪽의 블루스와 컨트리, 행크 윌리엄스의 노래를 찾아 들었다. (로큰롤) 고등학교 시절 그는 리틀 리처드에 빠져 밴드를 만들었다. 학교 장기자랑에서 피아노를 너무 세게 두드리며 소리치듯 노래해 교장이 무대 커튼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1959년 졸업 앨범의 장래 희망 칸에는 리틀 리처드와 함께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미니애폴리스) 1959년 가을 미네소타 대학교에 들어갔지만 강의실보다 대학가 딩키타운의 커피하우스에 머물렀다. 오데타의 음반을 듣고 전기 기타를 통기타로 바꿨고, 이 무렵부터 밥 딜런이라는 이름을 썼다. 이름이 시인 딜런 토머스에서 왔다는 설이 널리 퍼졌으나 그 자신은 때마다 다른 설명을 했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우디 거스리의 자서전 『바운드 포 글로리』였다. 그는 거스리의 말투와 노래하는 법을 통째로 익혔고, 1960년 겨울 학교를 떠났다.

II. 그리니치빌리지 · 1961–1964

(뉴욕) 1961년 1월, 눈 내리는 뉴욕에 도착했다. 그는 곧장 뉴저지의 병원으로 헌팅턴병을 앓던 우디 거스리를 찾아갔고, 그에게 바치는 노래 「송 투 우디」를 지었다. 그리니치빌리지의 카페 와?와 거디스 포크 시티에서 하모니카를 목에 건 채 노래하며, 옛 민요를 누구보다 빨리 흡수하는 젊은이로 이름이 났다. (컬럼비아) 1961년 9월 『뉴욕 타임스』의 로버트 셸턴이 호평 기사를 썼고, 프로듀서 존 해먼드가 그를 컬럼비아 레코드와 계약시켰다. 1962년의 데뷔 앨범은 대부분 옛 포크·블루스 곡이었고 판매가 저조해, 회사 안에서는 그를 해먼드의 실수라 부르기도 했다. 이 무렵 매니저 앨버트 그로스먼이 그를 맡아 공연과 출판권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1962년에는 법적으로 이름도 바꿨다. (수지) 연인 수지 로톨로는 그를 미술관과 브레히트 연극, 민권 운동의 세계로 이끌었다. 1963년 《더 프리휠링 밥 딜런》 표지에서 두 사람은 눈 덮인 웨스트 4번가를 팔짱 끼고 걸었다. (저항) 같은 앨범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과 「하드 레인스 어 고너 폴」은 핵전쟁의 공포와 인종 차별을 다뤘다. 이미 스타였던 조앤 바에즈가 그를 자신의 무대에 세웠고, 1963년 8월 워싱턴 행진에서도 그는 노래했다. 그러나 세대의 대변인이라는 꼬리표는 그를 답답하게 했다. 1964년 《어나더 사이드 오브 밥 딜런》에서 그는 구호보다 내면으로 눈을 돌렸다. 그해 8월 뉴욕에서 비틀스를 처음 만났고, 비틀스는 그의 가사에서, 그는 비틀스의 화음과 에너지에서 서로 자극을 받았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 (Blowin' in the Wind)1963노래 Bob Dylan · 1963 TV 무대

세대의 대변인이라는 꼬리표를 붙게 한 노래다. 그리니치빌리지의 스물한 살 청년이 민권 운동의 시대에 던진 질문이 이 한 곡에 담겼다.

  • 1962년 7월 뉴욕 컬럼비아 스튜디오에서 존 해먼드의 제작으로 녹음됐다. 통기타 한 대와 목걸이 거치대(하모니카 홀더)에 건 하모니카가 전부여서, 목소리와 손가락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린다.
  • 세 개의 절이 모두 같은 구조다. 질문을 잇달아 던진 뒤 같은 후렴으로 답을 미루는 형식이라, 절이 바뀔수록 질문의 무게만 커진다.
  • 선율은 흑인 영가 「노 모어 옥션 블록」에서 빌려 왔다고 딜런 자신이 밝혔다. 원곡과 나란히 들으면 노예제의 기억을 품은 가락이 어떻게 새 노래가 됐는지 들린다.
  • 절 사이의 하모니카 간주는 일부러 가늘고 투박하게 분다. 같은 해 피터, 폴 앤드 메리가 세 사람의 매끄러운 화음으로 부른 히트 버전과 비교해 들으면 딜런 원본의 거친 맛이 더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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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전기 기타를 들다 · 1965–1966

(전환) 1965년 3월 《브링잉 잇 올 백 홈》은 한 면을 전기 밴드로, 다른 면을 통기타로 채웠다. 버즈가 그의 「미스터 탬버린 맨」을 열두 줄 전기 기타로 편곡해 1위에 올리자 포크 록이라는 말이 생겼다. 봄의 영국 순회는 D. A. 페니베이커의 다큐멘터리 「돈 룩 백」에 담겼다. (뉴포트) 6월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을 녹음했고, 7월 25일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마이크 블룸필드 등과 함께 전기 기타를 들고 섰다. 객석에서 야유가 터졌는데, 음향이 엉망이고 공연이 너무 짧았던 탓이라는 증언과 포크 순수주의의 배신감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금도 함께 전한다. 피트 시거가 도끼로 전선을 끊으려 했다는 이야기는 시거 자신이 과장이라고 바로잡았다. (호크스) 그해 가을부터 그는 로니 호킨스의 반주 밴드였던 더 호크스, 곧 훗날의 더 밴드와 순회에 나섰다. 야유는 1966년 영국까지 따라왔고, 5월 맨체스터 공연에서 한 관객이 유다라고 외치자 그는 밴드를 돌아보며 더 크게 연주하라고 지시했다. 그날 밤의 녹음은 수십 년간 해적판으로 떠돌다 1998년에야 공식 발매됐다. (속도) 이 무렵 그는 한 해에 두 장꼴로 앨범을 냈다. 뉴욕에서 막힌 녹음을 내슈빌로 옮겨 1966년 여름 두 장짜리 《블론드 온 블론드》를 내놓았다. 쉬지 않는 순회와 녹음, 기자들의 질문 공세 속에서 그는 극도로 지쳐 있었고, 기자회견에서는 엉뚱한 대답으로 질문 자체를 비껴가곤 했다.

♪라이크 어 롤링 스톤 (Like a Rolling Stone)1965실황 Bob Dylan · 1965 Newport Folk Festival

포크의 기대를 등지고 전기 기타를 든 해의 한가운데에서 나왔다. 뉴포트에서 야유를 받은 그 무대에서도 이 곡을 불렀다.

  • 곡은 드러머 바비 그렉의 작은북(스네어) 한 방으로 시작한다. 스프링스틴이 헌액 연설에서 마음의 문을 걷어차는 소리라고 묘사한 바로 그 첫 순간이다.
  • 앨 쿠퍼는 기타를 치러 왔다가 해먼드 오르간 앞에 앉았다. 오르간 연주자가 아니었던 그는 화음이 바뀌는 것을 반 박자 늦게 보고 따라 쳤다고 회고했는데, 그 살짝 늦게 들어오는 오르간이 이 곡의 표정이 됐다. 프로듀서 톰 윌슨은 처음 반대했다가 결국 오르간 소리를 키우게 했다.
  • 마이크 블룸필드의 펜더 텔레캐스터는 노래 사이사이에 짧게 끼어드는 가락(오블리가토)을 친다. 보컬이 쉬는 틈마다 오른쪽 귀를 기울여 들어 보자.
  • 6분이 넘는 길이는 라디오 싱글은 3분이라는 관행을 깼다. 화법은 몰락한 상대에게 2인칭으로 따지듯 묻는 어조이고, 후렴이 돌아올 때마다 목소리가 점점 날카로워진다.
  • 1966년 맨체스터 공연에서 관객의 고함 직후 더 호크스와 터뜨린 라이브 버전은 스튜디오판보다 훨씬 크고 거칠다. 두 버전을 이어 들으면 그 밤의 긴장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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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블론드 온 블론드》 (Blonde on Blonde)1966실황 「Visions of Johanna」 Bob Dylan · 2000 포츠머스

뉴욕에서 막힌 녹음을 내슈빌로 옮겨 완성한, 탈진 직전의 정점이다. 몇 달 뒤 사고로 그의 첫 질주는 멈췄다.

  • 프로듀서 밥 존스턴의 권유로 내슈빌 컬럼비아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찰리 맥코이, 케니 버트리 같은 현지의 녹음 전문 연주자(세션 연주자)들이 딜런이 가사를 마무리할 때까지 새벽까지 대기하며 기다렸다고 증언했다.
  • 영상 카드의 곡은 「비전스 오브 조해나」다. 딜런이 1978년 인터뷰에서 가늘고 거친 수은 같은 소리라 부른 이 앨범의 음색이 가장 잘 들린다. 앨 쿠퍼의 오르간과 로비 로버트슨의 기타가 실처럼 엉키는 대목에 귀를 두자.
  • 케니 버트리의 드럼은 박을 살짝 뒤로 젖혀 치는 느긋한 그루브를 만든다. 서두르지 않는 리듬 위에서 딜런의 긴 문장이 흘러간다.
  • 록 음악 최초의 두 장짜리 앨범 가운데 하나이며, 마지막 면 전체를 11분 넘는 「새드 아이드 레이디 오브 더 로울랜즈」 한 곡이 차지한다. 당시로서는 길이의 파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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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우드스톡의 침묵 · 1966–1974

(사고) 1966년 7월, 뉴욕주 우드스톡 근처에서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 그는 훗날 이 일을 계기로 소란스러운 명성에서 벗어나 가족과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회는 멈췄고, 그는 이후 8년 가까이 대규모 순회에 나서지 않았다. (지하실) 1967년 더 밴드 멤버들이 근처로 옮겨 오자, 그들은 빅 핑크라 불린 분홍색 집의 지하실에서 거의 날마다 옛 민요와 새 노래를 녹음했다. 발매할 생각 없이 만든 이 녹음은 해적판으로 퍼졌고 1975년에야 《더 베이스먼트 테이프스》로 나왔다. 사이키델리아로 들끓던 1967년에 이 소박한 소리는 시대를 거꾸로 걸었다. (절제) 1967년 말 《존 웨슬리 하딩》은 성경과 우화의 어조를 띤 짧은 노래들을 베이스와 드럼만 곁들여 담았다. 1968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지미 헨드릭스가 「올 얼롱 더 워치타워」를 폭풍 같은 전기 기타로 다시 녹음했고, 딜런은 훗날 그 해석에 압도돼 자신도 무대에서 헨드릭스의 방식으로 부르게 됐다고 말했다. (컨트리) 1969년 《내슈빌 스카이라인》에서는 목소리마저 부드러운 바리톤으로 바꾸고 조니 캐시와 듀엣을 불렀다. 1970년 《셀프 포트레이트》는 평단의 냉대를 받았는데, 그는 훗날 자신에게 걸린 기대를 털어 내려던 앨범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로스먼과는 이 무렵 관계를 정리했다. 1971년 조지 해리슨이 연 방글라데시 구호 콘서트에 깜짝 출연했고, 1973년 영화 「팻 개릿과 빌리 더 키드」에 출연하며 「노킹 온 헤븐스 도어」를 썼다. 1974년 초 그는 더 밴드와 함께 마침내 다시 길 위에 섰다.

♪올 얼롱 더 워치타워 (All Along the Watchtower)1967실황 Bob Dylan · 1995 로큰롤 명예의 전당 콘서트

우드스톡의 침묵 속에서 나온 《존 웨슬리 하딩》의 짧은 우화다. 헨드릭스의 재해석이 원작자의 연주까지 바꿔 놓은 드문 경우이기도 하다.

  • 편성은 딜런의 통기타와 하모니카, 찰리 맥코이의 베이스, 케니 버트리의 드럼 세 사람뿐이다. 사이키델리아의 화려함을 걷어 낸 빈 공간이 곡의 긴장을 만든다.
  • 길이는 2분 반 남짓이고, 후렴 없이 세 개의 절만 있다. 마지막 절이 이야기의 시작처럼 느껴져 서사가 원을 그린다는 평이 많다. 끝 절을 듣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들어 보자.
  • 1968년 지미 헨드릭스의 버전과 나란히 들으면 같은 곡이 전혀 다른 짐승이 된다. 딜런은 1995년 인터뷰에서 헨드릭스의 해석에 압도됐다고 말했다.
  • 1974년 더 밴드와의 순회 이후 딜런의 라이브에서 이 곡은 헨드릭스식 전기 편곡으로 바뀌었다. 라이브 음반 《비포 더 플러드》의 버전과 스튜디오판을 비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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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다시 길 위로 · 1974–1987

(블러드) 1975년 1월 《블러드 온 더 트랙스》는 상실과 회한의 노래로 가득했다. 많은 이가 이를 자전적으로 읽었지만, 그는 자서전에서 체호프의 단편들에서 빌려 온 노래라고 썼다. 1974년 그는 화가 노먼 레이븐에게 그림을 배우며 과거·현재·미래를 한 화폭에 놓는 법을 익혔고, 이것이 시점과 시간이 뒤섞이는 이 앨범의 화법이 됐다고 설명했다. (롤링 선더) 1975년 가을에는 롤링 선더 레뷰라는 떠돌이 극단 같은 순회를 꾸렸다. 조앤 바에즈, 로저 맥귄, 시인 앨런 긴즈버그가 함께 작은 도시의 극장을 돌았고, 그는 얼굴에 흰 분칠을 하고 노래했다. 그해 여름 그는 뉴욕 클럽 디 아더 엔드에서 패티 스미스의 공연을 보고 무대 뒤로 찾아가 격려했다. 살인죄로 복역 중이던 권투 선수 루빈 카터의 무죄를 호소한 「허리케인」은 1976년 《디자이어》의 첫 곡이 됐다. (신앙) 1978년 말 그는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1979년 《슬로 트레인 커밍》은 제리 웩슬러가 제작하고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마크 노플러가 기타를 맡았으며, 그에게 첫 그래미 남성 록 보컬상을 안겼다. 이어진 순회에서 옛 노래를 빼고 새 가스펠 곡만 부르자 일부 관객이 등을 돌렸지만, 그는 노래 사이에 신앙을 이야기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모색) 1980년대는 길을 찾는 시기였다. 1983년 《인피델스》를 노플러와 함께 만들었고, 1984년 아일랜드 슬레인 공연에서는 U2의 보노와 무대에 섰다. 1985년 라이브 에이드에도 나섰다. 그러나 그는 『크로니클스』에서 이 무렵 자신의 옛 노래와 연결이 끊긴 듯했다고 털어놓았다.

♪앨범 《블러드 온 더 트랙스》 (Blood on the Tracks)1975공식 MV 「Tangled Up in Blue」 — Bob Dylan

그림 수업에서 배운 시간의 화법이 노래가 된 앨범이다. 상실과 회한을 다루면서도 딜런은 체호프의 단편을 출처로 들었다.

  • 1974년 9월 뉴욕에서 녹음을 마쳤지만, 딜런은 12월 미니애폴리스에서 동생 데이비드가 모은 현지 연주자들과 다섯 곡을 다시 녹음했다. 영상 카드의 「탱글드 업 인 블루」가 미니애폴리스 녹음으로, 뉴욕판보다 빠르고 밝게 굴러간다.
  • 「탱글드 업 인 블루」의 기타는 줄을 누르지 않아도 화음이 울리도록 조율을 바꾼 방식(오픈 튜닝)으로 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열린 줄들이 함께 울리는 넓은 잔향을 들어 보자.
  • 화자가 나와 그 사이를 오가고, 과거와 현재가 한 절 안에서 뒤섞인다. 딜런은 노먼 레이븐의 미술 수업에서 시간을 한 화폭에 놓는 법을 배웠다고 설명했다.
  • 원래의 뉴욕 녹음은 2018년 부틀렉 시리즈 《모어 블러드, 모어 트랙스》로 공개됐다. 통기타 중심의 더 어둡고 사적인 뉴욕판과 비교하면 앨범의 표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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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끝나지 않는 길 · 1988–2015

(재기) 1988년 1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헌액 연설에서 열다섯 살에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의 첫 스네어 소리를 들었을 때 누군가 마음의 문을 걷어차 연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해 조지 해리슨, 톰 페티, 로이 오비슨, 제프 린과 트래블링 윌버리스를 만들었고, U2의 「러브 레스큐 미」를 보노와 함께 썼다. (투어) 1988년 6월에 시작된 순회는 해마다 백 회 안팎의 공연으로 이어져 끝나지 않는 투어라 불렸다. 노래는 밤마다 편곡이 바뀌어, 관객이 익숙한 곡을 몇 소절 지나서야 알아차리는 일이 잦았다. 1989년 대니얼 라노이가 뉴올리언스에서 제작한 《오 머시》가 오랜만에 호평을 받았다. (뿌리) 1992년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데뷔 30주년 공연에는 닐 영, 펄 잼의 에디 베더와 마이크 매크리디, 조지 해리슨이 나와 그의 노래를 불렀다. 그는 1992년과 1993년 옛 포크·블루스만 홀로 녹음한 두 장으로 출발점에 돌아갔다. 1995년에는 롤링 스톤스가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을 다시 녹음했고, 1998년 초에는 밴 모리슨과 공동 무대에 섰으며 그해 5월에는 조니 미첼과 서부 해안 순회에 나섰다. (만년) 라노이와 다시 만든 1997년 《타임 아웃 오브 마인드》는 늙음과 죽음의 그림자를 다뤄 그래미 올해의 앨범을 받았다. 2001년 《러브 앤드 세프트》, 2004년 자서전 『크로니클스 1권』, 2005년 마틴 스코세이지의 다큐멘터리 「노 디렉션 홈」이 이어졌고, 2006년 《모던 타임스》는 30년 만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2006년부터 3년간 라디오 DJ로 옛 음반을 틀었고, 2012년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다.

♪앨범 《타임 아웃 오브 마인드》 (Time Out of Mind)1997노래 「Not Dark Yet」 — Bob Dylan

끝나지 않는 투어로 다져진 목소리가 늙음과 죽음을 정면으로 노래한 앨범이다. 그를 다시 시대의 중심에 세웠다.

  • 마이애미 크라이테리아 스튜디오에서 대니얼 라노이가 제작했다. 짐 켈트너와 브라이언 블레이드 두 드러머를 비롯해 여러 연주자를 한 방에서 동시에 연주하게 해, 소리가 안개처럼 겹겹이 쌓인다.
  • 영상 카드의 곡은 「낫 다크 옛」이다. 느린 걸음의 박자 위로 오르간과 기타의 잔향이 늦은 오후의 빛처럼 깔리고, 화자는 저물어 가는 삶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독백의 어조로 말한다.
  • 목소리는 거칠고 갈라졌지만 마이크에 바짝 붙어 녹음돼 숨결까지 들린다. 1960년대 녹음과 이어 들으면 같은 사람이 세월을 노래의 재료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 마지막 곡 「하이랜즈」는 16분이 넘는다. 같은 반주 고리가 되풀이되는 위에서 이야기가 흘러가는 구성으로, 길이 자체가 이 앨범의 마침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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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노래하는 시인 · 2016–2026

(노벨) 2016년 10월 스웨덴 한림원은 미국 노래의 위대한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했다며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주었다.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고, 12월 시상식에는 선약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패티 스미스가 「하드 레인스 어 고너 폴」을 불렀다. 그녀는 긴장해 가사를 놓치자 관객에게 사과하고 다시 이어 불렀다. 이듬해 그는 『모비 딕』,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오디세이아』가 자신의 노래에 남긴 흔적을 다룬 강연을 녹음해 보냈다. (스탠더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그는 프랭크 시나트라가 불렀던 미국 스탠더드 곡들을 세 차례에 걸쳐 녹음했다. 젊은 날 거칠다는 말을 들었던 목소리로 오래된 사랑 노래를 공들여 부르는 모습은, 그에게 노래가 가사만이 아니라 선율과 숨결의 일이었음을 보여 주었다. (봉쇄) 2020년 3월, 세계가 봉쇄에 들어가던 때 그는 17분짜리 「머더 모스트 파울」을 예고 없이 공개했다. 6월에 나온 《러프 앤드 라우디 웨이스》는 여든을 앞둔 그를 다시 평단의 한가운데에 세웠다. 같은 해 그는 자신이 쓴 600여 곡의 출판권을 유니버설 뮤직 출판 그룹에 넘겼고, 2022년에는 녹음 원반의 권리를 소니 뮤직에 넘겼다. (기록) 2022년 그는 다른 음악가들의 노래 예순여섯 곡에 관한 산문집 『현대 노래의 철학』을 냈고, 같은 해 오클라호마주 털사에 문을 연 밥 딜런 센터가 그의 원고와 녹음 기록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2024년 말에는 그의 1960년대 전반을 그린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이 개봉했다. 여든을 넘긴 그는 2020년대에도 순회를 이어 가며, 오래된 노래를 여전히 새 편곡으로 부르고 있다.

♪머더 모스트 파울 (Murder Most Foul)2020

봉쇄가 시작되던 2020년 3월 예고 없이 공개된 곡이다. 노벨상을 받은 노래꾼이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한 편의 긴 낭송으로 엮었다.

  • 16분 56초로 딜런의 녹음 가운데 가장 길다. 그런데도 빌보드의 록 디지털 송 판매 차트에서 1위에 올라, 그의 이름으로 된 첫 차트 1위 곡이 됐다.
  • 드럼 박자 없이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떠다니듯 깔린다. 리듬이 앞으로 밀지 않기 때문에, 듣는 이는 박자보다 말의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 선율이 거의 없는 낭송에 가까운 화법이다. 1963년 케네디 암살을 출발점으로 삼아, 시대의 상처를 증언하듯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 후반부로 갈수록 수많은 노래와 음악가의 이름이 호명되며 미국 대중음악의 목록처럼 펼쳐진다. 어떤 이름이 나오는지 메모하며 들으면 그 자체로 하나의 음악사 여행이 된다.

덜 알려진 이야기

(엘스턴 건) 포크의 신화가 시작되기 전인 1959년 여름, 그는 노스다코타주 파고에서 신인 로큰롤 가수 바비 비의 밴드에 엘스턴 건이라는 예명으로 잠시 피아노 연주자로 합류했다. 공연장에 피아노가 없는 날이 많아 오래가지 못했다고 비는 회고했다. 딜런은 『크로니클스』에서 비를 따뜻하게 기억했고, 2013년 미네소타주 세인트폴 공연에서는 객석의 비를 소개한 뒤 그의 노래 「수지 베이비」를 불렀다. 떠돌이 포크 가수라는 초기 이미지 때문에 그의 로큰롤 시절은 오랫동안 각주로만 남았다. (가명) 1963년 그는 다른 레이블의 음반에 본명을 쓸 수 없는 계약 사정 때문에 블라인드 보이 그런트라는 가명으로 포크 잡지 『브로드사이드』가 낸 음반에 참여했다. 옛 블루스 가수들의 별명을 흉내 낸 이 이름은 그가 일찍부터 가면 쓰기를 즐겼음을 보여 준다. (쇠와 붓) 그는 1960년대부터 그림을 그렸다. 더 밴드의 첫 앨범 《뮤직 프롬 빅 핑크》의 표지 그림도 그의 것이다. 또 용접으로 고철을 이어 쇠문 조각을 만들어 2013년 런던 핼시언 갤러리에서 전시했는데, 그는 철광 지대에서 자라며 늘 쇠를 곁에 두었다고 말했다. 음악의 그늘에 가려 이런 작업은 미술계 바깥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라디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그는 위성 라디오 「테마 타임 라디오 아워」의 진행자로 백 회가량 방송했다. 날씨, 커피, 돈 같은 주제를 하나씩 정해 블루스·컨트리·두왑 음반을 틀고 짤막한 이야기를 곁들였다. 말수 적은 인물로 알려진 그가 수다스러운 디제이였다는 사실은 그의 음악이 얼마나 넓은 음반 더미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 준다.

용어 노트 📚🔎

포크 리바이벌

(말뜻) 포크(folk)는 독일어 폴크(Volk)와 뿌리가 같은 말로 사람들, 민중을 뜻한다. 리바이벌(revival)은 다시(re) 살아난다(vivere)는 라틴어에서 와서 되살아남, 부흥이라는 뜻이다. (록에서)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미국 대학가와 커피하우스에서 오래된 민요를 다시 찾아 부르던 흐름을 말한다. 우디 거스리 같은 옛 가수들의 노래가 젊은이들에게 새롭게 사랑받았고, 밥 딜런과 조앤 바에즈가 이 흐름 속에서 나왔다. 할머니가 부르던 옛 동요를 어느 날 반 친구들이 유행처럼 다시 따라 부르기 시작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데서는) 연극이나 영화에서는 오래전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리는 재상연을 리바이벌이라고 한다.

프로테스트 송

(말뜻) 프로테스트(protest)는 라틴어 프로(pro, 앞에서)와 테스타리(testari, 증언하다)가 합쳐진 말로,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증언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항의, 저항이라는 뜻이 됐다. (록에서) 전쟁, 인종 차별, 가난 같은 사회 문제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노래를 말한다. 1960년대 초 딜런의 노래들이 대표적이며, 민권 운동 집회에서 사람들이 함께 불렀다. 학교 급식을 바꿔 달라는 건의문을 반 전체가 노래로 만들어 함께 부른다면, 그것이 작은 프로테스트 송이다.

포크 록

(록에서) 통기타로 부르던 포크의 가사와 선율에 전기 기타와 드럼을 더해 록 밴드의 소리로 연주하는 음악이다. 1965년 버즈가 딜런의 「미스터 탬버린 맨」을 반짝이는 열두 줄 전기 기타로 편곡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이 이름이 퍼졌다. 늘 먹던 김밥에 치즈 같은 새 재료를 넣었더니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맛이 나는 것과 비슷하다.

세션 연주자

(말뜻) 세션(session)은 라틴어 세시오(sessio), 곧 앉아 있음에서 온 말로, 사람들이 함께 앉아 일하는 한 차례의 시간을 뜻한다. (록에서) 특정 밴드에 속하지 않고, 녹음이 있을 때마다 불려 와 연주하는 전문 연주자를 말한다. 악보를 빨리 읽고 처음 듣는 곡도 금세 맞춰 치는 것이 특기다. 딜런의 《블론드 온 블론드》에는 내슈빌의 세션 연주자들이 참여했다. 학교 연극에서 반 친구가 아닌, 반주를 위해 따로 모셔 온 피아노 선생님을 떠올리면 된다. (다른 데서는) 회의나 학회에서는 한 순서를, 컴퓨터에서는 접속해 있는 동안의 상태를 세션이라고 부른다.

부틀렉

(말뜻) 부틀렉(bootleg)은 원래 장화(boot)의 목(leg) 부분을 가리킨다. 19세기 미국의 밀주업자들이 장화 목에 술병을 숨겨 팔았던 데서 몰래 만든 불법 물건이라는 뜻이 생겼다. (록에서) 음반 회사가 공식으로 내지 않은 녹음을 몰래 찍어 낸 음반, 곧 해적판을 말한다. 1969년 딜런의 미발표 녹음을 모은 「그레이트 화이트 원더」가 가장 유명한 초기 록 부틀렉으로 꼽힌다. 친구가 학예회를 몰래 찍어 허락 없이 돌린 영상과 비슷하다. 훗날 컬럼비아는 이런 미발표 녹음을 직접 정리해 공식 부틀렉 시리즈로 내고 있다. (다른 데서는) 미국에서는 지금도 밀주나 불법 복제품 전반을 부틀렉이라고 부른다.

가스펠

(말뜻) 가스펠(gospel)은 고대 영어 고드스펠(gōdspel), 곧 좋은 소식이라는 말에서 왔다. 한자로 옮기면 복음(福音), 복된 소식이다. (록에서) 미국 흑인 교회에서 자라난 찬양 음악으로, 힘찬 합창과 손뼉, 주고받는 노래가 특징이다. 많은 록과 소울 가수가 이 음악에서 노래를 배웠다. 딜런은 1979년부터 몇 해 동안 신앙을 담은 가스펠풍 앨범을 냈다. 합창 대회에서 한 사람이 먼저 부르고 반 전체가 크게 받아 부르는 순간의 벅찬 느낌을 떠올리면 가깝다. (다른 데서는) 일상 영어에서는 의심할 수 없는 진리라는 뜻으로도 쓴다.

오픈 튜닝

(록에서) 기타 줄의 높이를 평소와 다르게 맞춰서, 왼손으로 아무 줄도 누르지 않고 쳐도 하나의 화음이 울리도록 하는 조율법이다. 열린 줄들이 함께 울려 소리가 넓고 풍성해지고, 손가락 하나로 줄 전체를 눌러 화음을 바꿀 수도 있다. 딜런의 「탱글드 업 인 블루」가 이 방식으로 연주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코더 구멍을 하나도 막지 않았는데 저절로 도미솔 화음이 나도록 악기를 고쳐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다.